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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변신한 짐승이 당신 옆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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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12.26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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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13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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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14 0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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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밝은 밤, 어두운 밤

DUMMY

도도한 고양이를 닮아서 우아하고 가볍게 걸어가는 여인. 그녀 옆에는 술기운에 얼굴이 벌게진 총각 형사가 있었다.


중국집에서의 회식이 끝나고 마종대가 맥줏집으로 2차를 가자고 목청을 높일 때 묘화는 조용히 백형사의 소매를 잡아 끌었다. 두 사람은 소리 없이 기도원 파이터스 무리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고 네온싸인들 위로 하얀 달이 밝은 밤길을 나란히 걸었다.


“아직도 그렇게 생각해요?”

“뭘요?”

“내가 완전한 변신을 위한 모험을 하려고 강력반 형사인 남자한테 접근했다고.”

“아니··· 그건 그때 잠깐 떠올라서 물어본 건데···”


첫 번째 데이트랄까? 할아버지 마중을 가던 주성과 옥,희를 길에서 마주쳤던 지난 만남에서는 두 사람의 속엣말이 제대로 오가지 않았다.

한눈에 팜므파탈처럼 보이는 묘화는 사실 진지하게 남자를 사귄 경험이 별로 없었다. 능구렁이 형사인 백기철 경위도 사적인 감정 부분에선 매우 순진한 면이 있었다. 피살자의 아내 미랑을 만나러 갈 때 심하게 말을 더듬었던 것처럼.


그래서 두 사람은 중간자들과 늑대파에 대해서, 강력범을 다루는 수사기법에 대해서 정보를 주고 받는··· 토론 비스무리한 시간만 보내다 헤어졌었다.

싱겁고도 뻘쭘하게.


“신기했어요.”

“내가요?”


묘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웃음기 있는 얼굴로. 백형사는 왠지 모르겠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미랑 언니 정체가 밝혀지고 옥,희 생부 사망에 어쨌든 관련이 있다는 거 알았잖아요.”

이번엔 백형사가 끄덕끄덕.


“그 전엔 고양이 인간한테 심하게 당했고요.”

씁쓸할 수밖에 없는 백형사는 입맛을 다셨다. 쩝쩝···


“보통 형사라면 난리가 났을 거예요. 이게 보통 사건인가? 엄청난 걸 터뜨리면서 자기 복수도 하려고 했겠죠. 아드레날린, 도파민이 펄펄 끓었을 거야.”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다행이네. 많이 안 해서. 애니웨이, 후배가 여우 아줌마랑 결혼한다니까 입 다물어주고··· 지지해 주고. 고박사 죽었을 때도 중간자들 짓이라고 단정하기 쉬운데 안 그러대요.”

“곧바로 이해한 건 아닌데··· 주성이랑 미랑 씨가 진심으로 보였거든요.”

“기철 씨는 오리지널 인간이냐 중간자냐를 판단기준으로 삼지 않았어요. 무시무시한 놈들하고 싸우는 걸 피하지도 않았고요.”


험험, 백형사는 칭찬을 듣자 머쓱해졌다. 그 얼굴을 바라보면서 묘화는 걸음을 멈췄다. 당연하게 백형사도 따라서 정지했는데,


“나는요? 어떤 데 필이 왔는지 말해 줄래요?”

잽이 아니라 곧바로 스트레이트, 묘화가 직진해 들어왔다. 잠시 움찔한 백형사, 우물쭈물할 수만은 없다고 판단했다.


“강한 사람이 멋있어요. 형사라서 유도를 해서 그런가··· 남을 제압할 수 있는 여자는 눈길이 가죠. 덩치 커서 힘센 게 아니라 민첩하고 에너지 넘치는 여자···”

“어머, 싸움 잘하는 게 매력이었네.”


쑥스러운 미소를 지은 묘화, 다시 걷기 시작하자 백형사도 따라 출발했다.


“아주 극강의 여성을 만난 거니까요.”

“그 여자가 둔갑해서 무지막지하게 공격했는데도요?”


잠시 눈을 감고 긴 숨을 내쉰 백형사. 회상을 마치고 말했다.

“너무 강렬한 인상이랄까··· 죽도록 맞았는데도 느낌이 특이하더라고요. 내가 변탠가 헷갈리기도 했고.”


‘섹시하다는 생각도 했다’는 말은 차마 밝히지 못한 백형사.

“그런데, 진짜 텔레파시 같은 감각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 내가 꿈꾼 걸 알았어요?”


풋, 가볍게 웃은 묘화가 다시 멈춰섰다.

두 사람은 구립 문화회관 한쪽 벽면에 조성된 인공암벽 앞에 있었다.


“남자친구 생기면 저기 같이 올라가 보고 싶었는데···”

백형사의 질문에 답하는 대신 묘화는 인공암벽을 가리켰다.

아무 때나 마음대로 기어오를 수 없는 인공암벽이었다. 3미터 높이까지는 붙잡을 수 있게 돌출된 홀더가 없었다. 로프를 먼저 설치하거나 발판으로 쓸 프레임 같은 걸 설치한 다음에 클라이밍 행사를 하는 장소였다.


대답은 안 해주고 왜 엉뚱한 소린가? 백형사는 인공암벽을 멍청히 바라봤다.

묘화는 뒷걸음으로 백형사에게서 멀어졌다가 빠르게 도움닫기를 했다. 벽을 향해 돌아서 있는 백형사의 어깨를 짚고 점프!

뭐야? 놀라는 백형사의 어깨 위에 이번엔 묘화의 양발이 얹혔다. 다시 한 번 순발력을 발휘해 뛰어오르는 묘화!

백형사는 놀라서 입이 벌어졌고 묘화는 어느새 암벽에 매달려 있었다.


“오케이, 성공!”

하, 하하하··· 백형사는 웃었다. 대단하다고 감탄하는 박수와 함께.


“꿈 얘기 말이에요.”

묘화가 인공 암벽에 매달린 채 고개를 돌려 말했다.

“거대한 고양이를 닮은 괴물인간한테 맞아죽을 뻔했는데, 악몽 안 꿀 사람이 있을까요? 당연한 통밥 아니에요?”


‘내 꿈 꿨지··· 그 말 한 마디가 충격이었는데. 대단한 인연 같아서 확 끌렸는데···’

백형사가 ‘아이고’ 탄식할 때, 묘화는 재빨리 암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했다. 밑에 있는 총각이 ‘어어’ 감탄사를 뱉으며 걱정했지만 묘화는 거침없이 수직상승을 거듭했다. 그래서 5층 건물 옥상 높이의 꼭대기까지 올라가고야 말았다.


“근데 어떻게 내려오려고 그래요?”

드문드문 밤길의 행인들도 묘화를 올려다 봤다. 폰으로 촬영하는 사람도 있었다.

“몰라요. 어떻게 내려가지?”

“중간자 모드로 바꾸면 안 돼요?”

‘변신’이나 ‘둔갑’이란 단어를 안 쓰면 행인들이 들어도 괜찮겠지 판단한 백형사의 말이었다.


“어머. 미쳤어. 어떻게 사람들도 있는데··· 그래도 안 될 거예요. 너무 높아서 위험해. 술까지 먹었는데···”


아주 잠시 장난기가 발동한 백형사는 묘화를 놔두고 가버릴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뒤에 닥칠 무서운 장면이 떠오르자 움직일 수가 없었다.

112나 119에 도움을 청해야 되나 생각하다가 이삿짐 사다리차를 모는 친구를 떠올린 백형사.


급한 통화가 끝나고 10분 후에 사다리차가 도착했고, 묘화는 겁내지 말고 올라와 보라고 백형사를 도발했고, 백형사와 묘화가 인공암벽 꼭대기에서 어깨동무하고 있는 걸 지나가던 인플루언서가 인싸그램 라이브방송으로 세계 만방에 알렸다.


SNS 라이브의 위력은 만만치 않았다.

얼마 안 돼 순찰차 한 대가 찾아왔고, 황급히 사다리차를 이용해 하산한 두 사람은 냅다 뛰어서 도주를 시도했고, 50미터도 못 가 순찰차에게 추월당했다.

지구대로 가자는 순찰 경관에게 백형사가 신분증을 보여주며 사과했고, 그 덕에 두 사람은 겨우겨우 체포를 면할 수 있었다.


“장하다! 백기철 형사! 경찰 신분을 이용해서 또라이 여친을 구해냈다!”


깔깔거리는 묘화를 보면서 백형사는 자신의 앞날이 더 힘겨워질 것을 직감했다.

그런데··· 피하고 싶지가 않았다. 실실 멍청한 웃음이 자꾸 새나왔다.


* * * * * * * * * * * * * * * * * * *


두 개의 사진 문자는 우리를 잠시 얼어붙게 했다.

기도원에는 사진을 찍을 만한 자가 없었는데, 현장을 조사한 형사들이 CCTV나 몰카 같은 걸 발견하지도 않았는데··· 대체 이건 누가 찍은 거고 누가 보낸 걸까?


급하게 머리를 굴리던 내 눈에 미랑의 표정이 들어왔다.

가로등 불빛 때문인가, 유달리 얼굴이 하얗게 보였다. 미랑이 혼자 몸이 아니라는 게 내 마음을 더 불안하게 했다. 일단, 미랑을 안심시키는 게 급선무였다.


“괜찮아요?”

사진을 전송받은 다음 나온 첫마디였다.


미랑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초기 임산부의 상태를 걱정하는 나보다 오히려 더 차분해 보였다. 아마 차분하려고 애쓰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누굴까? 누가 찍어서 보낸 걸까?”

미랑의 질문에 당장 확실한 답을 할 순 없었다.

누군가 숨어서 촬영을 했거나 카메라를 설치해 놓았을 거다. 소형 몰카가 설치돼 있었다면, 경찰은 발견 못한 거다.


아마 지금까지 원래 위치에 남아 있지는 않을 거다. 그런 카메라를 설치하고 문자를 보낸 놈. 아니면 그것들을 지시한 놈은 노보형일 가능성이 제일 컸다.

현장에 있다가 도망친 놈이니까. 게다가 늑대파 두목이고 우리한테 앙심을 품은 놈이니까.


“회색 늑대. 노보형일 가능성이 가장 크겠지.”

“주성 씨. 늑대파 놈이라면 왜 사진만 보낸 걸까?”


요구조건이나 협박의 말 같은 다른 문자는 없었다. ‘아마 조만간 또 익명의 연락이 오겠지. 그때까지 우리가 불안해 할 거라 생각하면서 즐거워 하겠지.’


“우리가 겁먹길 바라는 거겠지. 나쁜 새끼.”

나는 미랑의 어깨에 가볍게 팔을 둘렀다. 몸이 많이 굳어 있거나 떨고 있지는 않았다. 다행이었다.

일단 빨리 집에 들어가자고 미랑이 말했다. 나도 그게 좋을 것 같았다.



회식 동안에는 연호 씨의 남편이 옥,희와 자기 아이 하늘이를 데리고 있었다.

연호 씨가 집에 가서 옥,희가 계속 잘 놀면 아예 자기 집에서 하루 재우겠다고 했었다. 아이들이 양쪽 집을 오가면서 놀다가 같이 자는 건 종종 있는 일이었다.

연호 씨가 연락하지 않으면 그냥 그 집에서 자나보다 생각하면 되는 상황이었다.


“혹시··· 다른 친구들한테도 그런 게 오지 않았을까?”


그럴 수도 있는 일이었다.

기도원 파이터스 멤버들에게 확인해 보자는 미랑의 얘기에 나도 동의했다. 하지만 우리한테 전송된 것들을 그대로 밝히지는 않기로 했다. 다른 멤버들에게 불길한 메시지가 안 왔다면 공연히 알려서 불안하게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슬쩍 돌려서 알아 보기 위해 미랑이 단톡방에 문자를 썼다.

「다들 잘 들어갔나요? 우린 잘 왔어요. 근데 어떤 뉴스 화면에 나랑 주성 씨 얼굴이 보였나 봐요. 지인들한테 기도원 사건이 너네 얘기냐고 연락이 왔네요. 혹시 그런 얘기 들으시거나 그런 짤 보신 분?」


염선생과 연호 씨 그리고 종대 세 사람에게서는 곧바로 답이 왔다. 집에 잘 들어갔다는 말과 함께 기도원 사건 관련된 연락을 받거나 우리가 나온 영상을 본 적은 없다는 공통된 답문자였다.

반장님 앤드 기철 묘화 커플은 답이 없었다.


나는 내일 출근해서 반장님과 기철이 형이랑 상의해 보겠다고 미랑에게 말했다.

“일단 오늘은 자자고요. 술기운도 있고 피곤하니까.”


미랑도 내 말에 동의했다. 우리는 불을 끄고 자리에 누웠다.

그때까지 단톡방 두 형사와 묘화의 이름 옆에 1자는 지워지지 않고 있었다.


‘왤까? 왜 나와 미랑한테만 사진을 보냈을까? 너희들 정체를 안다. 그런 협박의 의도가 분명한데. 중간자와 중간자를 돕는 형사는 우리 둘뿐이 아니었는데···’


늑대파라면, 노보형이라면 나와 미랑이 미울 것 같기는 했다.

고박사를 찾으려고 나서서 시신을 발견한 것도 우리 부부였으니까. 오늘 모였던 기도원 파이터스의 중심에 있는 게 우리 부부이기도 했다. 나와 미랑의 결혼이 중간자들과 삼각산 경찰서 강력반을 연결해 줬다고 봐도 되니까.


‘그렇지만 콕 집어 우리 둘한테만 보낼 이유가 있는 걸까? 설마 우리 둘 사진만 잘 나온 건 아닐 테고···’


뾰족한 답은 떠오르지 않았다. 취기가 돌고 몸이 피곤한데 잠도 오지 않았다. 점점 정신이 말똥말똥해지고 있었다.

나는 살며시 미랑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어둠 속이지만 눈을 감고 있는 미랑의 모습이 보였다. 천천히 규칙적으로 숨을 쉬고 있었지만 잠든 것 같지는 않았다.

내 아내는 나를 안심시키려고 밤새 자는 척만 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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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사냥 중계방송 24.04.24 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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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다가오는 용의자 24.04.16 12 2 12쪽
66 특이한 부부싸움 24.04.12 11 2 13쪽
65 당신이 왜 그자와 +2 24.04.11 12 2 13쪽
64 두 가지 대답 24.04.10 9 2 12쪽
63 개를 데리고 걷는 여자 24.04.05 9 2 13쪽
62 축소된 말의 귀 +2 24.04.05 11 3 12쪽
61 밴이 찾아왔다. +1 24.04.03 12 3 12쪽
60 아내가 있는 방 +3 24.04.01 12 3 12쪽
59 아이 없는 숨바꼭질 +2 24.03.29 16 3 12쪽
58 베타 테스트 +4 24.03.27 14 3 12쪽
57 두 개의 그린Green +2 24.03.26 11 4 13쪽
56 아빠의 눈물 +2 24.03.22 18 4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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