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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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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최근연재일 :
2023.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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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44,383

작성
23.11.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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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다음날(1)

DUMMY

위협을 느낀 일본인들이 몸을 피해 공사관을 찾아왔고 그들이 진입할 때마다 길을 터주기 위해 수비병들은 조선인 군중들 머리 위로 위협 사격을 했다.

김옥균과 가까운 한성순보의 기자 이노우에 가쿠고로도 일본도를 든 채 군중 사이를 뚫고 공사관으로 들어왔다.


- 고균 상. 다친 데는 없으시오?


이노우에가 개화당의 방을 찾아와 안부를 물었다.

하지만 김옥균은 도무지 대꾸할 기운이 없었다. 눈도 뜨지 않은 채 손을 들어 보이는 김옥균에게 이노우에는 더 이상 말을 붙이지 않았다.

아무 말이 없었어도 방 안에서 침묵하고 있는 개화당 아홉 명의 심정은 느낄 수 있었다. 이노우에도 역시 말 없이 방을 나왔다.


김옥균은 생각했다.

조선의 백성들은 왜 저리 개화당과 일본을 증오하는 것일까? 그들의 가난과 고통이 개화당과 일본의 탓이 아닌 것은 분명했다.

저들은 억울하고 힘든 삶의 응어리를 풀고 싶어서 소수인 개화당과 아직 청국보다 약한 일본을 욕받이로 택한 것이 아닐까?


역적놈들을 내 놓아라, 왜놈들은 물러가라, 김옥균 박영효는 목을 내 놓아라.


‘나는 지금 저들의 적이다.’

변명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이었다.

나라를 이끌겠다고 나섰던 자신이 백성들의 적이 돼 있었다. 지금은 억울한 마음도 사치였다.


‘나는 지금 저들의 적이다.’

이틀 간 거의 잠들지 못한 몸이었지만 머릿속은 너무도 환했다.

한숨도 자지 못하고 고통에 눌려 있을 게 뻔한 밤이었다. 그러나 날이 밝는 것은 더 두려웠다. 빛나는 태양 아래서 제 나라 백성의 증오를 똑똑히 목도해야 하는 아침을 맞기 싫었다.

차라리 어둠이 계속되기를 바라는 밤에 김옥균은 입속말을 되뇌었다.


나는 저들의 적이다.



다음날


일본 공사관 앞은 새벽까지도 소란스러웠다.

도성 백성들은 욕지거리를 하면서 돌멩이와 깨진 기와를 집어던졌다. 그로 인해 1층 유리창이 곳곳이 깨져나갔다.

보초병이 하늘에 대고 위협사격을 몇 번 하면 물러갔다가 다시 와서 또 돌을 던졌다. 돌을 던지는 이들 중엔 새로 합류한 이도 있었고 도망쳤다가 다시 온 사람도 있었다.


도성 안을 순찰하던 청군 일개 소대가 공사관 앞에 멈춰섰다.

백성들은 자기들을 도우러 군대가 온 것처럼 신이 나서 목이 터져라 함성을 지르면서 돌멩이를 던져댔다.

일본 보초병은 청군이 백성들 뒤에 서 있는 것을 봤지만 하늘을 향해 다시 총을 쐈다. 백성들은 잠시 움츠리고 조금 뒤로 물러갔다가는 곧바로 투석전을 재개했다.


청군 사관은 일본 보초병에게 쏘지 말라고 외쳤다.

기 죽기 싫었던 일본 보초병은 다시 사격을 했다. 이번에는 조금 탄도가 낮아져 있었다.

청군 사관은 다시 한 번 쏘지 말라고 외친 뒤 사격자세를 취했다. 흥분한 백성들은 청군의 사격 자세에 기운을 얻었다. 돌팔매가 날아가는 것을 신호로 일본군과 청군이 거의 동시에 방아쇠를 당겼다. 이번엔 적군을 겨눈 조준 사격이었다.


공사관 창문과 건너편 길가에서 총구들이 불을 뿜었다. 짧은 순간 격렬한 사격이 양쪽을 오갔다.

중간에 있던 백성들은 혼비백산해서 땅바닥을 기어 도망쳤다. 도성 백성 셋과 청군 둘이 총에 맞고 쓰러졌다. 청군이 부상병을 옮기느라 사격을 멈추자 일본군도 창턱에서 총을 거두었다.


하얗게 칠한 서양식 목조 삼층 건물의 멋을 낸 유리창들이 모두 박살났다. 실내에 있던 일본군 한 명이 팔뚝이 찢긴 경상을 입었고, 일본 보초병은 옆구리에 총상을 입고 뒹굴어서 공사관 안으로 들어와 있었다.

공사관 뒷방에서는 일본군 군의관이 보초병의 옆구리를 눌러 치솟는 피를 지혈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돌을 던지던 떠꺼머리 조선 청년은 숨이 끊기기 직전인 아우를 끌어안고 통곡했다.

청군 신병 한 명도 쓰러진 동료들을 보고 흥분해서 눈이 돌아갔다. 귀가 떨어져나간 병사와 아래턱이 측면에서 관통돼 박살난 이를 뱉어내며 피를 토하는 병사는 신병과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청군 신병이 다짜고짜 사격을 시작하자 이차 총격전이 터졌다.

일본 공사관 내부 곳곳에 총탄이 날아와 박혔다. 1층 로비의 천장에 달린 커다란 샹들리에도 총탄 세례를 받았다.

유리가루를 흩뿌리면서 장식용 유리알들이 우박처럼 쏟아졌다. 파괴의 찰나, 휘황한 빛이 퍼졌다가 사라졌다.


청군 소대장이 사격 중지 명령을 고래고래 외쳤다.

일본 공사관원을 사살하고 공사관을 파괴하는 것은 상관에게 받은 지시사항이 아니었다.


- 멈춰! 멈춰! 사격 중지! 중지이이!


몇 명은 중지 명령을 듣지 못했고, 몇 명은 못 들은 체하고 총을 쐈다. 소대장이 신병과 그 옆에 엎드려 사격하는 병사의 뒤통수를 후려치고 욕지거리를 뱉은 다음에야 사격이 멈췄다.


- 소대장님! 왜 중지합니까!

- 시끄러! 명령이다. 후퇴! 사격자세 그대로 십 보 물러난다.


청국군의 사격이 멈추고 엎드리거나 엉거주춤 앉은 채로 뒤로 물러나는 게 보이자 일본군도 총구를 돌렸다. 귀를 찌르던 소음이 사라지자 조심스런 발걸음 소리도 바스락대는 뒤척임도 화약 냄새 속에서 또렷하게 퍼졌다.

청군 소대장은 목청을 높이지 않고 부하들을 진정시켰다.


- 일본놈들이 죽도록 미워도 공격은 너희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섣불리 흥분하면 청국군에 불리한 일을 만들 수 있다. 장수들을 믿고 지시를 기다려라.



길가 쪽이 아닌 이층 뒤쪽 방에 모여 있던 개화당들은 총격전이 시작되자 방바닥에 납작 엎드렸다. 시끄러운 소리를 막으려고 두 귀를 틀어막은 이도 있었고, 수치심과 분노에 엎드린 채 몸을 떠는 이도 있었다.

유리창을 뚫은 총탄 몇 발은 엎드린 그들의 머리 위로 날아가 벽에 구멍을 냈다.


이 위기의 시간에 조선 개화당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공포를 느끼면서 살기 위해 몸을 움츠리는 것과 죽고 싶다고 느끼면서 모멸과 절망감에 몸을 떠는 것.



총성이 지나간 뒤에도 불 꺼진 방 안에서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벽에 기대 앉은 김옥균은 눈을 감고 있었다. 현실을 보는 게 지금은 너무 힘겨웠다. 차라리 잠에 빠지면 좋을 텐데, 김옥균뿐 아니라 다들 물에 빠진 것처럼 몸은 피곤했지만 정신이 어두워지질 않았다.


머릿속에 밴 먹물이 우환덩이라 그런가, 김옥균은 잠을 청하는 대신 맹자가 한 말을 떠올렸다.

‘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

하늘이 준 때는 지형의 이로움만 못하고 지형의 이로움은 인간의 화합만 못하다. 군대의 전술로도 인간 삶의 이치로도 해석할 수 있는 말이었다.


정변 첫날 영사들을 놓치고 민영익만 쓰러뜨렸을 때는 천시를 놓친 것처럼 생각됐었다.

‘하늘이 우리에게 때를 맞춰주지 않는구나.’


다음날 주상과 중전 대왕대비의 간청으로 환궁하게 됐을 때는 지리, 지형의 이점을 놓친다고 안타까워 했었다.

천시보다 중요한 게 지리인데 그것을 또 놓쳤으니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맹자의 말처럼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의 화합(인화人和)이었다. 같은 목표를 위해 목숨을 걸 것 같았던 맹서는 헛된 말이 되어버렸다.

적병의 총소리에 달아나버린 군사들과 개화당 장사들도 원망스럽지만, 총성이 울리기 전부터 빠져나갈 궁리를 하고 있던 일본 공사의 변심은 뼈아픈 것이었다.



유대치를 비롯한 주변 사람들은 자주 일본을 경계하라는 조언을 했었다.

김옥균이 일본에서 가깝게 지낸 후쿠자와 유키치 등 일본 야권 인사들도 결국 자국의 이익이 우선일 것이라는 경고의 말들이 적지 않았다.


동북아에서 일본의 안보와 이익을 위해 조선을 정복해야 한다는 정한론이 일본 정계에 대두됐을 때 후쿠자와 유키치는 반대 입장이었다.

하지만 조선 입장에서는 정한론을 반대하는 후쿠자와 유키치에게 고마워할 수가 없었다. 조선은 미개한 야만국이라서 쳐들어가 봐야 이익을 얻을 것도 없다는 것이 후쿠자와의 반대 논리였다.


김옥균은 조선의 지인들에게 발언의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고 열심히 해명했었다.

일본인들 간의 논쟁에서 정한론을 반대하기 위해서 했던 말이라고, 후쿠자와 유키치는 공격할 가치가 없다는 이유를 들어서 전쟁론자들의 의지를 꺾으려 한 것이라고 변론했었다.

하지만 그 말을 하는 김옥균의 심정도 편치 않았었다. 자기 나라가 망신을 당하는데 일본과의 협력을 위해 변명만 하는 느낌이었다.


물론 일본 야권 인사들은 김옥균 앞에서는 조선 민족을 폄하하는 발언은 하지 않았다. 조선의 양반과 같은 봉건 귀족들에 대한 비판을 주로 했을 뿐이었다.

후쿠자와는 프랑스 혁명, 영국의 대헌장, 일본의 메이지 유신 등 구체제를 무너뜨린 정변의 과정을 김옥균에게 여러 번 상세하게 이야기했다. 권력의 핵심을 장악해서 통제권을 빼앗는 게 무엇보다 우선임을 강조했다.


일본 야권의 거두였던 후쿠자와나 고토 쇼지로 등의 야당쪽 인사들은 다들 조선 내의 정변을 부추기는 발언을 끊임없이 했었다. 폭약을 구입하고 거사에 동원된 일본인 자객들을 알게 된 것도 일본 야당 인사들을 통해서였다.


‘이 사람들이 내 머리에 자기들 욕망을 심으려 하는구나.’


그들은 왕권보다 민권이 우선임을 강조해 왔지만 관념 속의 민권만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일본 야권 인사들이 원한 것은 민권이라는 모토를 통한 그들의 권력 쟁취, 그들 식의 권력 운용이었다.


그들은 이웃나라 조선에서 자기들이 기획한 정변이 일어나서 자기들이 원하는 형태의 정권이 들어서기를 바랐다. 그리고 조선에서 일어난 바람이 역으로 자기네 나라에 불어 들어가길 바랐다.

이웃나라를 지도해서 개조함으로써 실력을 인정받아서 자기 나라의 권력을 차지하기를 원한 것이다. 조선은 자기들의 힘과 지략이 만들어낸 모범사례가 되고, 장차 자기들이 주도할 강대한 일본의 영향력을 존중하는 나라가 되기를 꿈꾸었다.


김옥균이라고 경계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야당의 계획을 듣는 것이고 야당과 협조하는 것일 뿐이다. 일본 정부의 뜻을 따르는 것은 아니니까 괜찮다. 조선의 자주를 훼손한 게 아니다.’

이런 식으로 안심할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굳이 그들 앞에서 조선 변혁의 주인공이자 기획자는 조선인 김옥균이라는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일본 야당의 꿈과 조선인 김옥균의 꿈이 함께 이루어지면 되는 것이니까.


물론 차선책에 대한 생각은 서로 달랐다. 조선이 자기들 꿈이 실현된 모범사례가 되지 못한다면 일본 야당의 차선책은 청국을 밀어내고 일본이 조선을 지배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일본 야권 인사들은 김옥균에게 독립한 조선의 우방이 되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김옥균 같은 조선인들’로 한정해서 우방이 되려는 것이었다.

중전이나 그녀의 척족들이나 ‘왜놈’을 입에 달고 사는 백성들의 우방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그들에게는 일본을 따라오겠다는 조선이 아니라면 일본 밑에 있는 조선이 나았다.


‘일본 정부는 후쿠자와나 고토 같은 야당 인사들의 꿈과 타협할 수 있을 거다. 조선과 일본에 민권이 강한 체제가 들어서고 일본이 형님 노릇을 한다는 꿈을 이루기 어렵다면, 일본의 힘을 키우는 게 먼저라는 데 서로 합의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타협안은 결코 내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


조선이 청으로부터 독립하고 문명개화를 이루기 위해, 외세인 일본과 손을 잡는 것은 분명 위험했다.

그렇지만 위험하다고 손을 놓고 관망할 수는 없는 시국이었다. 독립을 천명할 기회를 놓치면 청나라에의 예속이 심화될 뿐 아니라 서구 열강에게도 주권 없는 땅덩어리 취급을 받게 될 터였다


작가의말

어젯밤 업로드 예약을 해놓은 줄 알았는데 깜빡하고 안 했더군요. 

기다리셨던 독자 여러분(멸.살.법. 수준이긴 하지만...)께 사과드립니다. 

이제 거의 끝나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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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사흗날(13) 23.10.30 7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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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사흗날(6) 23.10.26 6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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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사흗날(4) 23.10.25 8 2 12쪽
51 사흗날(3) 23.10.24 9 2 12쪽
50 사흗날(2) 23.10.24 7 2 12쪽
49 사흗날(1) 23.10.23 8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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