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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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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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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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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5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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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흗날(4)

DUMMY

전날 좌우영사로 제수된 서광범이 총기 상황을 다시 확인해 줬다.


“어제 삼청동 기기창과 서소문 좌영의 무기고를 확인했고, 오늘 금위영과 호위청 무기고 그리고 신선원전 뒤 큰 창고까지 모두 다시 뒤져봤습니다.

점검하지 않은 소총은 없고 금릉위가 말씀하신 것이 있는 그대로의 실정입니다.”


곳곳에서 한숨 소리가 새 나왔다. 김옥균이 박영효에게 질문했다.


“같은 총이라면 일본군은 괜찮은 것이오?”

“원래는 같은 것이지만 지금은 완전히 다른 것이 돼 버렸소이다. 훈련에 자주 사용하고 손질해온 일본군의 총기는 상태가 양호하외다.

조선의 지휘관으로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오.”

“어떻게 조치를 했소이까?”


이번에는 홍영식이 진행상황을 물었다.

“신복모와 사관생도들을 앞장세워서 급하게 소총을 손질하고 있소이다. 탈 없이 이른 시간에 소총들이 정상화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박영효는 쉽게 고쳐질 것 같지 않은 소총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다케조에와 무라카미 대위는 관물헌 앞의 중희당에서 전영 군사들이 총기를 손질하는 것을 지켜봤다.

신복모의 지휘를 받고 사관생도들에게 설명을 들으면서 병졸들은 열심히 소총을 고쳐보려 애쓰고 있었다.


하지만 이 순간의 상황은 열심히 소총 구조와 손질 방법을 배울 때가 아니었다.

병졸들은 그저 한두 번 사격훈련을 해 본 경험밖에 없었고, 신참 병졸들은 소총 분해법은커녕 노리쇠니 방아쇠니 하는 기본적인 구조와 명칭을 모르는 이까지 있었다.


총을 제법 다루어 본 군사들도 고치지 못하는 소총은 일본 군사학교 출신 사관생도들에게 넘겨졌다.

그러나 그들도 어찌할 수 없게 망가진 총이 한두 자루가 아니었다. 신복모는 재생이 불가능해 보이는 소총들을 한 쪽으로 모았다.


‘땔감으로도 못쓸 나무토막, 대장장이도 되살리지 못할 쇠뭉치······.’

마음 같아서는 이 자리에서 소총을 거꾸로 내리쳐서 박살내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총을 손질하는 병졸들의 사기가 점점 하락하고 있는 것과, 일본 공사와 지휘관이 지켜보고 있는 것을 알았다.


‘금릉위가 조련하던 남한산성의 병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그 병사들을 빼앗아 전영에 재배치한 뒤라도 제대로 된 지휘관이 훈련을 시켰더라면······.’


박영효가 애써 키운 부대를 해체해서 자기 세력 밑으로 편성해 놓고는 군대답지 않게 방치해서 오합지졸로 만들어버린 민씨 척족들과 친청사대파에게 분노가 치밀었다.


‘왜놈식 군대든 뙤놈식 군대든 싸울 수 있는 군대는 남겨놔야 하지 않나!’


세력을 강화하려는 정치 싸움이 아무리 다급하더라도, 나라를 지킬 군대의 본분은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는 신복모의 분노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지만 전투가 코 앞에 닥쳤는데 발사되지 않는 총을 붙들고 쩔쩔매고 있는 것이 조선군의 현실이었다.



- 가자.


부영관 신복모의 답답한 표정을 지켜보던 다케조에가 무라카미 대위에게 말했다.

두 사람은 일본 공사관 병력의 본부로 쓰고 있는 인정문 앞의 호위청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 대위는 저 부하들과 저 총을 준다면 싸울 수 있겠나?

- 명예를 지킬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승리는 못할 것입니다.

- 하하. 우리 중대장이 달변가가 되었구나. 어지러운 나라에서 고생한 보람이 있다.


무라카미는 쓴웃음을 지었다.

말장난을 칭찬받는 것 같아서 무관으로서 민망함을 느꼈다.


- 나쁜 뜻이 아니다. 대위의 말이 옳다. 대위는 물러나지 않고 죽음으로 맞설 군인이 맞다. 하지만 귀신이 지휘를 한대도 저 병력으로 이기지는 못할 거다.

- 처음부터 기대하지는 않았지만 무기 상태가 저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휘이이, 다케조에는 휘파람을 닮은 한숨을 뿜어냈다.


- 그렇지. 아마 대위 입장에서는 나보다도 걱정이 클 것이다.


호위청 직전에 있는 상서원 앞에서 무라카미가 멈춰섰다. 그는 오른편의 인정문 쪽으로 몸을 돌리면서 말했다.


- 저 큰 문에 가려서 여기서는 뒷산 봉우리가 잘 안 보입니다.


당연한 얘기였다. 다케조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 공사께서도 실감하셨다시피 궁궐을 방어하려면 우리 공사관 병력이 큰 몫을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병력은 채 이백이 안 됩니다. 천오백에 달하는 청군에게 수적으로 열세입니다.

- 그래서?

- 궁궐 뒷산 응봉 기슭에 소총수 오십 명 정도를 배치해서 고지대에서 아래쪽을 보고 사격을 하게 하면 전력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궐 안의 어느 곳에 병력을 분산 배치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것으로 사료됩니다.

- 안 된다.


무라카미는 놀랐다.

평소 군사와 관련된 결정에는 지휘관인 무라카미 대위의 의견을 존중해온 다케조에 공사였다. 자신은 원래 책 읽던 사람이라 칼을 논할 때는 사무라이인 대위를 이길 수 없다며 겸양을 보이기도 했었다.

그런 그가 공사관 병력 지휘관의 전술에 대한 견해를 단칼에 잘라버리는 것은 참으로 뜻밖의 일이었다.


‘비장의 전술이라도 감추고 계신가?’

무라카미는 의문의 시선으로 상관을 바라보았다.


- 일부 병력이라도 궁 밖으로 나가는 일이 없도록 한다. 부대가 분리돼서 연락이 어려운 상황을 만들면 안 된다. 신속히 이동할 수 있어야 한다.


무라카미는 자신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다케조에가 준비하고 있음을 느꼈다.


- 이동이라면?

- 군대에 진군이 있으면 퇴각도 있는 것 아닌가?

공사관 병력은 일단 집결한 상태로 사태를 주시하다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공사관으로 돌아간다.

- 돌아간다고요?

- 일본의 이익과 우리 공사관의 안전을 위해 선택할 것이다. 필요하면 귀관에게 의견을 묻겠다.


군인 무라카미의 입장에서 다케조에의 말은 아리송하게 들렸다.

상관인 공사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 중대장 무라카미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때 시마무라 서기관과 그가 인솔한 1개 분대 병력이 호위청 앞마당으로 통하는 진선문을 들어서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일본군에게 필요한 총탄을 보충하기 위해 공사관에 다녀오는 중이었다. 무거운 나무 괘짝을 나르는 병사들을 뒤에 두고 시마무라가 달려서 다케조에 앞으로 다가왔다.


- 공사 각하!

- 무슨 일인가?

- 공사관에서 총탄 상자를 꺼낼 때 나카야마라는 무역상이 급하게 달려왔습니다.

- 나카야마?

- 제물포와 한성을 오가면서 장사를 하는 자인데, 쓸모 있는 정보를 자주 제공하는 애국자입니다.


급하게 달려온 정보 제공자라, 다케조에와 무라카미는 예삿일이 아님을 직감했다.


- 청군 200명이 탄 배가 어제 저녁에 제물포로 입항했다 했습니다. 남양만에 있던 병력들로 보인다고 합니다.

- 그들의 현재 위치는 알 수 있나?

- 청군은 오늘 새벽 일찍 행군을 시작했는데, 그 상인이 앞질러 말을 달려왔다고 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한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을 것입니다.

- 오늘 밤, 늦어도 내일 새벽이면 그들이 입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행군 속도를 예측해서 무라카미가 다케조에에게 말했다.

다케조에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일본 병사들이 맡은 임무대로 움직여 총탄을 분배하고 저장하는 동안 지휘부 세 사람은 말 없이 호위청 앞 마당에 서 있었다.

다케조에의 머릿속은 당연히 바빴다.


‘외국 주재 공사는 본국 정부의 방침을 이행하는 존재다.

이노우에 외무상을 비롯한 일본 정부는 청국과의 전면전을 바라지 않는다.

김옥균 당의 정변을 지원하기로 결정한 이유는 조선 내의 청국 세력과 일본의 야당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김옥균 당이 일본 내 야당세력과 밀착하는 것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그들이 경거망동 끝에 실패하면 일본 정부가 부담을 떠안고, 만에 하나 성공하면 엉뚱한 세력을 키워줘서 역시 일본의 발전에 장애가 된다. 동시에 일본은 청국이 조선을 좌지우지하는 것을 견제하고 조선 문제에 발을 들여놓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본 외무성은 나에게 김옥균 당을 지원하라 지시한 거다.’


다케조에는 자신의 말을 기다리는 두 부하를 향해 입을 열었다.


- 지금 이 순간 우리는 매우 중대하고 위험한 지점에 있다.


일본 공사 휘하의 서기관과 중대장도 인지하고 인정하는 사실이었다.


- 우리는 조선 내에 우리에게 의지하는 세력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조선 군주의 요청문을 받아 조선에 개입하는 명분도 만들었다.

해군으로 치면 상륙에 성공한 셈이다.

- 예, 그렇습니다.


군인답게 무라카미가 대답했다.


- 전병력은 언제든지 퇴각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는다.

- 공사 각하. 그것은······


역시 군인이기 때문에, 싸우기도 전에 우군을 남겨 두고 물러날 준비를 한다는 것은 무라카미의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지금 전면전을 하자는 것이 본국의 방침이 아니다.

우리는 추후 청국과 대결할 수 있는 근거를 만들었다. 한 단계를 마무리지은 것이다.

- 그렇다면 원세개 측의 의도를 타진해 볼 필요는 없을까요?


무라카미와 달리 서기관 시마무라는 정치 쪽으로 머리를 굴렸다.


- 지금까지 드러난 모습을 볼 때 그들은 더 이상 관망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원세개도 나처럼 본국의 뜻을 헤아려야 하는 입장이다. 함부로 결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아마도 그쪽에서 우리에게 신호가 있을 것이다.


‘아마도 신호가 있을 것이다?’

무라카미는 공사의 예측을 전략의 기준으로 삼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 청군 쪽에서 협의할 의사가 없다면 어떻게 하시렵니까?

- 전면전으로 덤벼들면 우리는 빠져나간다. 그것은 이겨낼 수 없다. 피해가 너무 클 거다.


공사의 발언은 중대장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무라카미가 발끈 화가 나서 말했다.


- 그건 조선 개화당과의 약속을 어기는 게 아닙니까?


무라카미의 말투에서 ‘항명’이라는 단어를 떠올리긴 했지만 다케조에는 기분이 상하지는 않았다.

젊은 군인 입장에서는 충분히 분노할 수 있다고, 이해하기로 했다.


- 대위. 내가 조선 개화당과 영원히 함께 할 거라 약속한 건 아니다.


다케조에의 음성은 차분했다. 상관의 변명을 들으면서 무라카미는 감정을 누그러뜨리려고 애썼다.


- 그리고,


다케조에는 잠시 말을 끊고 화제를 전환시켰다.

학자 출신인 공사는 읽고 들은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 스페인이 남아메리카 인디오를 정복할 때의 얘기다.

흔히들 스페인 군대가 묻혀간 세균, 박테리아가 인디오들을 쓰러뜨렸다고 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또 하나가 있지. 인디오에 비해서 스페인군은 당연히 병력이 모자랐다. 그래서 그들은 인디오 왕을 뵙고 드릴 말씀이 있다며 무기를 숨기고 들어가 왕을 협박하고 죽였다. 남아메리카의 인디오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왜?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 인디오 사회에서는 그때까지 역사에서 그런 식으로 싸운 적이 결코 없었다.


다케조에는 비유를 통해서 일본과 조선 개화당의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무라카미는 아직 다케조에의 진의를 정확히 알지 못했다. 하지만 다케조에가 조선 개화당을 동등한 협력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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