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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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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최근연재일 :
2023.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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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4,3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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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0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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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사흗날(17)

DUMMY

동궐의 전투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있었다.

원세개는 국왕과 일본군이 궁궐 북쪽 옥류천에 있고 두 배 이상의 청군 병력이 그 앞쪽 후원에 진을 치고 있음을 보고받았다.

대세는 이미 확정된 셈이었다. 중요한 것은 왕이 다치지 않고 청군 수중에 들어오는 것이었다.

원세개는 휘하의 장교들을 불러 모았다.


- 똑바로 들어라! 덤벼드는 자들을 죽여 없애는 데는 거침이 없어야 한다!

하지만 일의 선후를 놓쳐서는 절대, 절대 안 된다!

너희가 명심해야 할 제 일 과제는 국왕을 확보하는 것이다! 동궐을 점령하는 것은 시간 문제다.

무턱대로 쏘고 베지만 말고 확실하게 국왕을 붙들어라. 결단코 온전히 붙들어야 한다! 알겠느냐!

- 예! 장군!

- 일본공사나 일본군 고관도 생포한다면 좋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면 죽일 수밖에.

조선군은 신경쓸 것 없다. 일본당 대신놈들 따위는 다 죽여도 좋다!

국왕을 온전하게 붙들어라! 이게 네놈들 목숨을 걸고 명심할 일이다!



원세개의 명령 이후에 청군의 공격은 조금 조심스러워졌다. 이미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이기도 하고 만에 하나 국왕을 다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었다.

짧은 겨울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청군은 함부로 사격을 하기보다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국왕의 움직임을 파악하는 데 신경을 썼다.


창경궁과 대조전 뒤쪽에서 방어선을 구축했던 일본군 병력도 해가 저물면서 옥류천으로 이동해서 다케조에 일행과 합류했다.

그들은 청군이 더 이상 공격을 하지 않고 궁궐의 전각을 점거하고만 있다고 보고했다.

어둠 속에서 무리한 전투로 사상자를 내고, 만에 하나라도 국왕에게 해를 끼칠까봐 걱정하는 것이 분명했다.


총성이 멎은 시간은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었다.

이대로 동궐 안에서 밤을 지새울 수는 없었다. 다케조에가 먼저 확실한 의사 표시를 했다.

총포를 쏘아 대다가 멈추었던 별기군이 다케조에에게 큰 명분을 제공했다. 일본군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국왕이 위험해졌다면서 다케조에는 일본군이 물러갈 때가 됐다고 했다.


김옥균은 펄쩍 뛰면서 만류했지만, 일본군의 호위 때문에 국왕이 위험해졌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일본군이 물러간다는 얘기에 주상은 기다렸다는 듯 곧장 북관묘로 갈 것임을 다시 밝혔다. 버릇처럼 개화당 일부가 아니된다 만류하는 말을 했지만 힘이 없었다.

이제는 무감들도 개화당 대신들의 말을 무겁게 여기지 않았다.


이제는 정말 끝이었다.

정변 세력과 헤어져 청군 진영으로 가겠다는 주상을 말리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어 보였다.

왕과 개화당이 다 같이 이곳에서 죽는 것. 다시 말해 ‘왕을 죽이고 자결하는 것’뿐이었다.


김옥균은 눈을 감았다. 한숨도 나오지 않았다.

다케조에는 개화당들에게 어찌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일본군을 따라 공사관으로 숨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조언을 덧붙였다.

배려로 여기기에는 너무 참담한 현실이었다.



옥류천에는 열여덟 명의 개화당이 있었다. 의견은 반으로 갈렸다.

홍영식은 일본군을 따르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어디로 향하시든지 국왕을 따라가 모시겠다고 했다.


박영효가 홍영식에게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국사범이라도 붙잡히거나 죽은 시체가 드러나지 않으면 가족이 죄에 연좌되지 않는다.’

박영효의 법률적 조언은 결국 도망치는 게 네 가족들에게 유리하다는 말이었다.

전임 영의정 홍순목의 아들 홍영식은 박영효의 조언에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아버지 홍순목이 국법의 처벌이 없다 해도 모른 체 살아갈 인물이 아닌 것도 분명히 알았다.

홍영식은 말했다.


“내가 주상전하를 따르려 함은 평소 사대당 대신들과 무난한 사이여서가 아닐세.

지금 이 순간은 개인의 정리로 운명이 정해질 때가 아닌 건 다들 알걸세.

하나는 비록 무감들이 있다고 하나 국왕의 행차를 따르는 대신들도 없는 초라한 거둥으로 만들고 싶지 않음이오.

그리고 ······ 신하의 도리와 왕실의 위신보다 더 큰 하나는 우리가 권력에 눈이 먼 역도가 아님을 보이기 위함이네.

권세와 목숨을 위해 거사에 나선 것이 아니라 올바른 뜻을 좇았기에 죽음이 앞에 있더라도 바른 길을 갔음을 보여주려 하네.”


곳곳에서 참지 못한 흐느낌이 새나왔다.

열여덟 개화당 중 절반인 아홉명이 주상의 뒤를 따르기로 했다. 주상이 무감의 등에 업히려 할 때 남은 아홉 명이 무릎을 꿇고 고개를 조아려 하직 인사를 올렸다.


국왕은 김옥균과 박영효에게 물었다.


“너희는 정녕 나를 버리고 가는 것이냐?”


자격지심 탓인지 김옥균은 그 음성에 원망과 비웃음이 담긴 것 같았다.

그리 장담을 하고 그리 잘난 척을 하더니 결국 이 꼴이란 말이냐? 왕을 위해 목숨을 초개같이 한다더니 결국 살자고 도망이냐?

김옥균의 부끄러움이 만들어낸 왕의 비웃음소리가 김옥균의 가슴을 찌르고 있었다.



주상 일행은 아무런 저항도 받지 않고 건무문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건무문을 나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별초군들이 나타났다. 그들은 주상을 향해 큰 절을 올리고는 주상 일행을 둘러쌌다.

별초군들은 주상을 업은 이를 비롯한 무감들과는 눈짓으로 교감을 나누었으나, 홍영식을 비롯한 개화당 아홉 명에게는 경계의 시선을 놓지 않았다.

비록 국왕을 모시고 나온 이들이어서 함께 움직이고 있으나 그들이 보기에 홍영식 일행은 역적이었다.


금방 건무문 앞 언덕을 넘자 북관묘와 그 앞에 도열한 좌우영 군사와 청군이 보였다.

죽음을 각오한 홍영식이지만 두근두근 심장이 울릴 수밖에 없었다.

별기군들이 달려가서 북관묘에서 사인교(가마)를 들고 나왔다. 국왕을 태운 사인교는 오조유 휘하 청군들의 진영을 향해 움직였다.


홍영식이 가마 앞을 막아섰다.


“아니되옵니다. 전하. 청군 진영으로 가시는 것은 독립의 열망을 물거품으로 만드시는 것이옵니다.”


주상은 뭐라 대꾸가 없었다.

박영교를 비롯한 나머지 개화당 여덟 명도 홍영식을 따라 주상 앞에 꿇어 앉았다.

주상은 사인교를 멘 별기군들에게 말없이 턱짓을 했다. 가마가 옆으로 돌아 개화당들을 피하자, 주상을 따라왔던 무감들이 칼을 뽑아들고 개화당 앞을 가로막았다.


“전하! 가시면 아니되옵니다! 전하! 통촉하소서!”


절절하게 외치는 홍영식의 뺨을 무감이 후려쳤다. 주상을 업고 가다가 박영효에게 뺨을 맞았던 무감이었다.


“역적놈들이 감히 어디서 큰 소리냐!”


가마를 따르지 않은 별기군들도 칼을 뽑아들고 무감들에게 합세했다. 홍영식 곁의 박영교가 마지막으로 호령했다.


“네 이놈들! 대신의 몸에 손을 대고 칼을 뽑고 무사할 것 같으냐?”


무감과 별기군들은 말로 대꾸하지 않았다. 칼날이 원을 그리고 피가 솟았다. 아홉 명의 개화당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었다.

좌의정 홍영식, 도승지 박영교, 그리고 일본 군사학교 생도 출신으로서 별군관에 임명됐던 일곱 청년 박응학, 윤영관, 이건영, 하응선, 정행징, 이병호, 백낙운. 아홉 명의 젊은이가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저께 밤 경우궁에서는 청나라를 추종하는 대신들이 일본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칼에 찔려 죽었다. 그리고 이 밤에는 일본과 손을 잡은 젊은이들이 청군이 지켜보는 가운데 칼을 맞고 죽었다.

이틀 전도 이 날도 직접 칼을 휘두른 이들은 죽은 이들과 같은 나라 사람들이었다.



북관묘에서 홍영식을 비롯한 아홉 명이 숨을 거둘 무렵이었다.

무라카미 대위가 선두에 서고 일본 군인들과 아홉 명의 개화당이 뒤를 따르는 행렬이 어둠을 틈타 조심스럽게 북장문을 빠져나왔다.

패잔병을 색출하고 있는 궁궐 안에서는 간간이 총성이 들려왔지만 전투는 실질적으로 종료됐다.



개화당의 정변은 끝났다. 실패였다.

12월 6일 오후 7시.

우정국에 불길이 올랐을 때부터 날수로는 삼일, 46시간만이었다.



침묵 속에서 그들은 불빛에 의지하지 않고 나무와 풀들을 손을 뻗어 더듬으면서 전진했다.

다행히도 청군과 조선 좌우영 군사들은 궁을 점거하고 왕실을 손아귀에 넣은 것에 만족하고 있었다. 일차 목표를 이룬 그들은 어가를 호위해 자기 진영으로 옮기고, 동궐을 수색해서 적의 잔당을 색출하는 데 전념하고 있었다.

덕분에 일본군과 아홉 명의 개화당 수뇌부는 적군과 마주치지 않고 궁궐 북쪽 산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일본군과 개화당은 삼청동 산기슭을 내려와서 경복궁 동쪽 길로 달렸다.

간간이 멀리 떨어진 곳에서 총성과 함성이 들려왔다. 일본군 뒤를 쫓아 달리면서 김옥균은 왼편으로 고개를 돌려 홍현 언덕을 보았다.

어둠 속에서도 연기가 올라가는 것이 보였다. 김옥균의 집은 성난 백성들에 의해 부서지고 마당에 버려진 가재도구들은 불에 타고 있었다.


동십자각 앞에서부터는 일본군 병사들이 이열 종대 좌우로 늘어서서 사방을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이동했다. 몇몇 백성들이 군인들을 목격했지만 살기를 띤 총검의 행렬에 숨을 죽이며 지나쳐 갔다.


공사관에 접근할수록 주변은 시끄러워졌다. 역적들을 내놓으라고, 왜놈들은 물러가라고 외치는 백성들의 음성이 점점 가까워졌다.

해가 진 다음에도 공사관 앞에 모인 군중의 시위는 계속되고 있었다.

공사관 안에는 열 명이 안 되는 일본군이 초조하게 총을 겨누며 경계하고 있었다. 이십대 초반의 젊은 군인들은 흥분한 남의 나라 백성들의 고함에 둘러싸여서 본대가 어서 돌아와 주기만을 바라고 있었다.


공사관이 보이는 위치에서 일본군과 개화당의 대열은 잠시 정지해서 주위를 살폈다. 시위 군중말고 다른 병력은 없는 것을 확인하자 일본군은 행동을 개시했다.

무라카미의 지시로 일본군 척후병들이 군중들의 머리 위로 소총을 발사했다. 놀라서 갈라지는 군중들 사이로 일본인들과 조선 개화당이 속보로 전진했다.


공사관 문 앞에 이르기까지 김옥균은 앞만 보면서 발길을 옮겼다.

공사관에 발을 들이기 직전 안도의 한숨을 쉴 만한 순간에 김옥균은 뒤를 돌아 봤다. 어둠에 덮여 어렴풋하지만 공사관을 노려보는 백성들의 얼굴이 보였다.

적의와 경계심으로 그들은 단단하게 굳어져 있었다. 일본 공사관을 둘러싼 이들의 표정은 개화당과 백성 사이의 높고 두꺼운 장벽을 보여주고 있었다.



다케조에는 개화당 아홉 명에게 방 하나를 내줬다.

참담한 심정의 아홉 사람은 방 안에서도 말이 없었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도 괴로운 일이었다.

그들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는 것처럼 눈을 감고 가만히 앉아 있었다.


밖에서는 쉬지 않고 일본과 개화당을 욕하는 함성이 들려왔다.

역적놈들을 내 놓아라, 왜놈들은 물러가라, 김옥균 박영효는 나와서 목을 내 놓아라.

그리고 사이사이에 총성이 들렸다.

도성 안은 개화당과 일본인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로 들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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