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최근연재일 :
2023.11.03 22:10
연재수 :
69 회
조회수 :
1,088
추천수 :
227
글자수 :
344,383

작성
23.10.28 21:10
조회
7
추천
2
글자
12쪽

사흗날(10)

DUMMY

돈화문 앞에 횡대로 늘어선 청군 소총수 일열이 무릎 앉아로 자세를 낮췄다.

이열의 소총수들이 서서쏴 자세로 겨냥을 했다. 청룡이 꿈틀대는 세모꼴 깃발이 세차게 요동치자 일열과 이열의 소총수들이 동시에 격발했다.


탕! 타다당!

포성에 얼이 반쯤 빠져 있던 돈화문 앞 전영 군사들이 우수수 쓰러졌다.

깃발이 다시 반원을 그리자 일차 사격이 중지됐다.

눈꺼풀 몇 차례 깜빡일 짧은 시간의 고요함. 그리고 뱃심 두둑한 목청이 허공을 흔들었다.


“역적들은 항복하라!”


우영 장교의 우렁찬 선창을 따라서 청군 뒤에 도열한 좌우영 군사들이 우레 같은 소리로 구호를 반복했다.


“역적들은 항복하라!”


궁궐 끝까지 들릴 함성이었고, 종거리 전체에 퍼질 만한 함성이었다.


“전후영 군사들은!”


다시 우영 장교가 선창을 했다. 역적들 즉 정변 수뇌부와 동원된 군사들을 분리해서 말하고 있었다.


“전후영 군사들은!”


좌우영 군사들의 함성은 더 거대해져 있었다. 이어진 구호는 군사들을 회유하면서 이탈을 유도하는 심리전이었다.


“무기를 버리면 죄를 묻지 않는다!”

“무기를 버리면 죄를 묻지 않는다!”


돈화문도 선인문도 가장 앞에서 지키는 군사는 조선 전후영 병력이었다.

무시무시한 총포의 소음과 쓰러지는 동료들을 겪은 다음에, 자신들을 에워싼 적진에서 울려나오는 함성을 들었다.

엊그제까지 같은 편이었던 제 나라 군사들이 외치는 소리는 전후영 군사들의 마음을 세차게 흔들었다.


‘저들은 우리의 지휘관들을 역적으로 일컫는다.

하지만 우리는 항복하면 죄를 묻지 않겠다고 한다. 지금 저들은······ 우리보다 강하다.’



함성의 시간이 짧게 지나가고 다시 총성의 시간이 왔다.

선인문에서도 돈화문에서도 청군의 일제 사격이 이어졌다.

땅바닥에 엎드리고 죽은 동료의 시체를 방패삼고, 궁궐 문에 몸을 숨기고 전후영의 소수 군사들이 응사를 했지만 수적으로 너무 차이가 컸다.


두 차례의 일제 사격으로 완전히 기선을 제압한 청군은 횡대로 늘어섰던 대오를 흩어 좌우로 전개해서 궁궐문으로 진입했다.

대열의 선두가 궁 안으로 들어가서 좌우를 살피며 위협 사격을 시작할 때, 뒷전에 있던 원세개가 칼을 뽑아 높이 치켜들었다.


“전진하라! 가로막는 자는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청나라 장졸들의 커다란 함성이 장군의 호령에 호응했다.

원세개는 말을 몰아 돈화문 앞으로 들려가면서 도망치는 전영 군사 둘을 베었다.

또 다시 청군의 함성이 터져나왔다.


돈화문 안 궁궐 입구에서 소총수들이 사격하는 동안, 칼을 든 청군 장교들과 기병들은 아직 살아 있는 전영 군사들을 쫓아가서 찌르고 베었다.

총에 맞고 쓰러져 쿨럭쿨럭 피를 뱉어내던 군사가 말발굽에 입을 밟히고, 총성에 놀라 엎드렸다가 걸음아 나살려라 달아나던 군사가 쫓아온 기병의 칼에 목이 잘렸다.


돈화문 안도 상황이 비슷해졌다.

돈화문을 지키던 전영 군사들은 총탄에 쓰러지지 않으면 달아나기 바빴다. 운 좋게 총탄을 피한 군사들은 홍문관과 내의원으로 뛰어들어가 몸을 숨겼다.

일부는 돈화문 옆의 금호문으로 도망쳐 나가다가 어느새 창덕궁 서쪽 길까지 들어선 청군을 만났다.

도망쳐 나오는 조선 군사들을 소총수가 쓰러뜨리자, 금호문으로 청군 기병들이 돌진해 들어왔다. 돈화문으로 진입해서 사격을 하던 청군들이 기세 좋게 달려오는 기병을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최초 방어선인 조선 전영 병사들이 죽고 흩어지자 궁궐의 핵심부로 통하는 중문 진선문을 방어선으로 삼아 일본군이 사격을 개시했다.

탕, 타당탕탕 양쪽에서 마주 쏘아대는 총성이 콩 볶듯 요란하게 진동했다. 은폐물에 몸을 기대거나 땅바닥에 엎드린 양쪽 병사들이 쉴 틈 없이 서로를 죽이려는 총탄을 날려댔다.

응봉에서 흘러내려와 돈화문 옆으로 나가는 인공하천의 다리 금천교를 사이에 두고 청군과 일본군의 맹렬한 총격전에 불이 붙고 있었다.



‘왔다!’

청군의 포격이 반가운 사람도 있었다. 중전은 누비 솜옷 위에 담비가죽으로 된 갖옷을 겹쳐 입고 조바위까지 쓴 채 언제든 밖으로 나갈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아침부터 같은 방에 있던 세자와 세자빈도 마찬가지였다. 방 안이 덥다고 머리에 쓴 휘항을 벗으려고 하는 세자를 세자빈이 시어머니 눈치를 보며 말리던 참이었다.


마른하늘의 천둥 같은 대포 소리에 세자빈은 자기도 모르게 꺅 비명을 질렀다.

궁궐의 어른답지 않은 반응이었지만 열세 살 소녀로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시어머니 중전은 며느리를 나무라지 않았다. 그럴 틈이 없었다.


“무감! 무감 밖에 있느냐!”


중전은 수행할 무감을 급하게 불렀다. 그리고 아들 며느리를 채근했다.


“일어나시오 세자. 세자빈도 어서 나갈 채비를 하라.”


장지문이 거칠게 열렸다. 무시무시한 포성이 무감의 팔뚝을 긴장시킨 탓이었다.


“불러 계시옵니까!”

“너희 중 한 명은 빨리 달려가서 대왕대비전에 알려라.

동쪽 담장 옆길을 달려서 건무문을 통해 북관묘로 나간다. 어서 가!”


한 차례 총소리가 지나가고 좌우영 군사들의 커다란 함성이 들려오고 있었다.

중전은 곧장 방에서 나와서 대왕대비전으로 달렸다. 무감 둘과 상궁 둘 그리고 세자와 세자빈이 중전의 뒤를 따라 달렸다.

왕비가 뛰는 것을 처음 본 상궁이 놀라서 소리쳤다.


“중전마마, 가마 대령을 못할 정도로 급하시면 쇤네가 업어 모시겠습니다.”

“한시가 급하다. 먼저 대왕대비마마를 모셔야 한다. 나는 업히느라 지체가 된다면 달리는 것이 낫다.”


무감도 중전을 보며 상궁 못지않게 당황하고 있었다.

무감이 중전과 대왕대비를 업고 뛴다면 이동이 빠르겠지만 사내로서 감히 왕비의 몸에 손을 대겠다고 나설 배짱은 없었다.

임오년 군란으로 중전이 피신할 때 무감의 등에 업혀 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은 있으나, 지금이 그와 같은 상황인지는 잘 판단이 되지 않았다.

어찌 할까 망설이던 무감은 겁먹은 얼굴로 달리는 소년을 보고 제 할 일을 찾았다.


“세자저하는 저희 무감들이 업어 모시겠사옵니다.”

“그래라. 세자는 무감의 등에 업히라.”


세자가 무감의 등에 업힐 때, 대왕대비가 상궁에게 업혀서 전각을 나왔다. 그 뒤로 왕대비와 궁녀들이 따르고 있었다.


‘이제는 나갈 일만 남았다. 전하께서도 곧 따라나서실 거다.’

“마마!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중전은 대왕대비에게 외치고 앞에서 방향을 잡았다.

아이고 어찌 저리 뛰실까, 간이 콩알만해진 상궁이 쩔쩔매며 중전 뒤를 바짝 쫓았다.

상궁의 마음을 당장 조급하게 하는 것은 대포도 청군도 아니고 하늘같이 받들어 모셔야 할 중전마마께서 스스로 달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부용지 영화당 옆을 지나 관람정 옆길로 달려서 취한정 오른편 언덕을 오를 것이다. 건무문을 나가 북관묘로 간다!”


세자를 업은 무관뿐 아니라 뒤따르는 대왕대비전 사람들까지 들으라고 외친 소리였다.


“대왕대비전 상궁들도 들었느냐?”

“예! 마마!”


끊이지 않는 총성이 도망치는 이들의 머릿속을 뒤흔들고 있었다.

대왕대비를 업은 상궁이 휘청이다 주저앉자, 뒤따르던 상궁이 바꾸어 업었다.

대왕대비는 입을 앙다물고 앞서가는 중전을 바라볼 뿐이었다. 무감의 등에 업힌 세자가 옆에서 달리는 어미에게 물었다.


“어마마마, 포탄과 총탄이 날아들까 두렵습니다.”

“괜찮다. 우리가 가는 길에는 아무것도 날아오지 않을 게다! 걱정마라.”


아들은 어미의 단호한 얼굴을 보며 눈물을 참았다. 생사의 위기 속에서 그들은 지엄한 왕족이 아니라 바둥거리는 새끼와 토닥이는 어미였다.



포성을 들은 다케조에는 무라카미와 함께 진선문 앞으로 달려갔다.

궁궐 안 조선군의 심리를 흔드는 함성이 지나가고 총격이 재개되고 있었다.


조선 군사들이 쓰러지고 도망치는 것을 보다가 다케조에는 더 급하게 확인할 일을 깨달았다. 비록 청군에게 밀리더라도 조선국왕을 확보하고 있으면 살 수 있었다.

그러나 국왕이 청군에게 넘어가면 싸워서 뚫고 나가는 것밖에 살 길이 없었다.

다케조에는 싸움터는 무라카미에게 맡긴 채 통역 아사야만만 데리고 관물헌으로 달렸다.


“대감, 국왕께서는 어찌 계시오?”


숨을 헐떡거리고 달리면서 아사야마가 외쳐 물었다. 정전으로 삼은 관물헌 큰방 앞에는 심상훈이 혼자 서 있었다.


“전하께서는 방 안에 좌정하고 계십니다.”


아사야마가 국왕이 움직이지 않고 있다고 다케조에에게 전했다.

휴우, 다케조에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스무 걸음쯤 다케조에 앞에 떨어져 있는 심상훈이 초조한 음성으로 외쳤다.


“적병이 이리 다가오지 못하게 막아 주시오. 그리고 위험해지면 호위병을 보내주시오!”


심상훈은 다케조에에게 임무를 알려주고 있었다.


‘이리 다가와서 왕이 있나 확인하는 것은 너희 할 일이 아니다,

너희는 저리 돌아가서 싸워라.’

심상훈이 하고 싶은 얘기는 그것이었다.


아사야마가 급하게 통역을 하자 다케조에는 돌아섰다.

개화당 장사 대신 국왕 곁에 무감들을 배치해 호위하게 했던 것을 그는 기억하지 못했다. 쏟아지는 총성이 여러 가지 생각을 못하게 한 탓이었다.


무감들은 이미 주상을 모시고 부용지 쪽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다케조에는 총탄이 오가는 진선문으로 발길을 옮겼다. 다케조에와 아사야마가 멀어지는 것을 확인한 심상훈은 주상이 간 길을 따라 죽을 힘을 다해 달리기 시작했다.



“대감! 대감! 큰일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통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서서 선인문 쪽 교전상황을 확인하던 개화당 수뇌부는 변수의 다급한 음성을 들었다.

김옥균과 박영효가 돌아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변수가 달려오고 있었다.


‘큰일이라니? 전쟁이 벌어진 판국에 더 큰일이 있는가?’

잠시의 궁금증을 변수가 빠른 말로 깨뜨렸다.


“침전이, 침전이 비었습니다! 중궁전 대왕대비전 모두 비었습니다.

전하께서도 아니 계십니다. 관물헌에도 대조전에도 아니 계시고 무감들도 보이지 않습니다!”


윙, 망치로 정수리를 맞은 것처럼 머릿속이 울렸다. 김옥균은 지난 이틀 동안 예상 못한 일들에 놀랐지만 이런 충격은 처음이었다.

살아서 나타났던 이조연과 한규직보다도, 다케조에의 환궁 결정보다도, 원세개의 대포보다도 큰 충격이었다.

김옥균을 바라보는 박영효와 홍영식도 넋이 나가 있었다. 김옥균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쫓아가야 돼, 붙들어야 돼.”


박영효가 얼이 빠진 사람처럼 김옥균에게 물었다.


“어디로 가야 되지? 어느 쪽으로 거둥하신 거지?”

“나갈 문은···, 빠져나갈 수 있는 곳은 북장문과 건무문뿐이네.

나머지 문은 총알을 피하기 어려울 테니 북산으로 갈 수밖에 없어.”

“갑시다. 시간이 없소.”


홍영식이 먼저 달리기 시작했다. 말보다 발이 중요할 때였다. 주상과 중전이 궁궐에서 사라지면 정변은 막을 내릴 것이었다.


“어디야? 북문이야? 동문이야?”

“무조건 뛰어! 연경당 앞까지 가서 둘로 나눠 뛰어!”


달리기에 지면 끝장이었다.

관복을 입은 양반 나으리들이 지금껏 살아 움직여온 어느 때보다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삼일(三日)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오후 9시 10분, 10시 10분에 업로드합니다. 23.10.09 8 0 -
공지 하루 두 편씩 업로드 23.10.02 10 0 -
공지 연재 시각은 주 6회(월~토) 오후 9시 10분입니다. 23.09.22 31 0 -
69 다음날(4)-최종화 23.11.03 15 3 12쪽
68 다음날(3) 23.11.03 8 2 13쪽
67 다음날(2) 23.11.03 7 2 12쪽
66 다음날(1) 23.11.03 7 2 12쪽
65 사흗날(17) 23.11.01 7 2 12쪽
64 사흗날(16) 23.11.01 6 2 12쪽
63 사흗날(15) 23.10.31 7 2 12쪽
62 사흗날(14) 23.10.31 9 2 12쪽
61 사흗날(13) 23.10.30 7 2 12쪽
60 사흗날(12) 23.10.30 7 2 11쪽
59 사흗날(11) 23.10.28 8 2 11쪽
» 사흗날(10) 23.10.28 8 2 12쪽
57 사흗날(9) 23.10.27 8 2 12쪽
56 사흗날(8) 23.10.27 6 2 11쪽
55 사흗날(7) 23.10.26 7 2 12쪽
54 사흗날(6) 23.10.26 6 2 12쪽
53 사흗날(5) 23.10.25 10 2 13쪽
52 사흗날(4) 23.10.25 9 2 12쪽
51 사흗날(3) 23.10.24 9 2 12쪽
50 사흗날(2) 23.10.24 7 2 12쪽
49 사흗날(1) 23.10.23 8 2 12쪽
48 이튿날(21) 23.10.23 7 2 12쪽
47 이튿날(20) 23.10.21 8 2 12쪽
46 이튿날(19) 23.10.21 8 2 12쪽
45 이튿날(18) 23.10.20 8 2 12쪽
44 이튿날(17) 23.10.20 9 3 13쪽
43 이튿날(16) 23.10.19 7 2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