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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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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최근연재일 :
2023.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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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7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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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흗날(9)

DUMMY

김옥균과 홍영식, 다케조에는 돈화문으로 달려갔고, 박영효와 이재원, 무라카미는 선인문으로 달려갔다.

직접 현장을 확인하고 그들은 즉시 발길을 돌려 다시 관물헌 앞에 모였다.


“저들의 의도가 뭐라 보시오? 전면전을 원하는 거요?”


영의정 이재원의 초조한 질문에 명쾌한 답을 내려줄 사람은 없었다. 김옥균도 무시무시한 불안 말고는 앞일에 대해 어떤 예측도 할 수 없었다.

입을 다문 채 서로를 돌아보던 중에 개화당의 군사 책임자 박영효가 말문을 열었다.


“누구도 장담할 순 없습니다. 한데 청군이 곧바로 진입할 수 있는데도 궐 앞에 멈춰 있는 것을 보면 전면전을 원치는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찌 움직여야 된다 생각하시오?”

“먼저 양쪽 문의 수비를 강화해야 합니다.

비록 백 정도 안 되지만 쓸 수 있는 전영 소총수 모두를 양쪽 문에 배치하고, 일본군 병력도 삼분의 이 이상 전영 소총수 뒤쪽으로 배치해야 할 것입니다.”


말을 마치고 박영효는 무라카미 대위를 봤다. 무라카미도 동의의 뜻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김옥균은 무라카미의 협조적인 자세를 보고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청군을 눈으로 확인한 후 누구 못지않게 충격을 받고 흔들리고 있었다.


‘움직여야 돼. 행동해야 돼. 가만 있으면 안 돼.’

맞서서 행동하지 않으면 두려움이 점점 커진다는 것을 김옥균은 알았다. 행동을 정하려면 생각을 해야 했다. 생각, 생각, 필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제대로 생각이 되지를 않았다.


그러다가 김옥균은 자신이 방금 무라카미를 보고 조금이나마 안심했다는 것을 상기했다.

지금 원세개의 마음은 알 수 없지만 또 다른 외국인의 마음은 확인해야 한다고 김옥균은 생각했다. 자주 마음을 바꿨던 그의 태도가 정해지면 우리 편의 대응이 좀 더 자신 있어 지리라, 김옥균은 예측했다.


- 공사께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옥균이 나서서 일본어로 다케조에에게 물었다.


- 뭘 말이오?

- 원세개가 쳐들어올 거라고 보십니까?


다케조에는 이제까지 원세개가 자신에게 어떤 신호를 보내 올 것이라 믿고 있었다.

하지만 궁궐 앞에서 휘날리는 용을 수놓은 깃발들을 본 순간 기존의 판단이 흔들리고 있었다.

의견을 밝히지 못하는 다케조에를 기다려 주지 않고 김옥균이 좌중을 향해 말했다.


“원세개의 속마음은 아무도 모릅니다. 어쩌면 원세개 자신도 결정을 못 내렸거나, 우리 태도에 따라 결심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상대방의 속셈을 모를 때 일차로 해야 할 일은,”


김옥균은 좌중을 돌아보며 잠시 숨을 골랐다.


“물어보는 겁니다. 돈화문에 나가서 물어 봅시다.

여기 왜 왔느냐고요. 그런데 혼자 가서 물어보지 말고 둘이 같이 가는 겁니다. 일본군 지휘관과 조선군 지휘관이 나란히 가서 원세개에게 묻기로 합시다.

우리 진영에 왜 왔느냐고요? 만약 싸우려고 왔다면 우리 양국군이 합심해서 맞설 것임을 보여 줍시다.”

“질문을 하는 것이 군대의 대치 상황에서 도움이 될 수 있소?”


이재원이 물었다.


“만약 원세개가 탐색을 한 후 공격 결정을 내리기로 했다면, 효과를 볼 수도 있습니다.

아군이 당당하고 단합된 모습을 보이면 위험한 선택을 포기할 수도 있지요. 앞일은 모르지만 해볼 만한 시도일 것입니다.”


군사를 재배치하는 것 말고는 김옥균의 방안밖에 달리 할 수 있는 것도 없었다.

통역 아사야마의 전언을 들은 다케조에도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옥균은 티 내지 않고 다케조에의 반응을 확인했다. 이 순간의 다케조에는 다행히도 철군을 생각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상황은 급박하게 전개됐다.

전후영 군사들과 일본군들은 양쪽 문 주위로 전진 배치됐고, 관물헌을 둘러싸고 있던 개화당의 장사들도 수비 범위를 넓혀 양쪽 문 쪽으로 전진했다.


주상과 중전의 거처를 지키는 동시에 감시하던 사관생도들도 양전과 거리를 두고 개화당 장사들 근처로 이동했다.

주상과 중전의 처소 앞에는 전부터 호위 임무를 맡아왔지만, 정변 이후 개화당의 감시자들에게 한 귀퉁이로 밀려났던 무감(무예별감의 약칭, 궁궐 숙직과 호위 담당)들이 세 명씩 자리를 잡았다.

탈출의 기회를 엿보는 심상훈은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주상이 있는 관물헌 근처를 떠나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중희당에는 고장난 소총을 재조립하는 전영 군사들이 있었다.


좌우영사 겸 좌포도장 서광범과 일본 공사관 중대장 무라카미 대위가 돈화문 앞으로 나아갔다.

그들이 신분을 밝히고 무슨 까닭으로 청나라의 대군이 궁궐 앞에서 시위를 하느냐고 외쳐 물었다. 그러자 청군의 통역이 앞으로 나와서 역시 큰 소리로 답했다.


“도성 안에 변란이 있다고 해서 민심이 어지럽다. 변란을 해결하고 조선 대군주 및 일본 공사와 협력하기 위해서 청군이 온 것이다.

곧 원세개 장군께서 서찰을 보내실 것이다. 청군 무변이 서찰을 전달할 테니 잠시만 기다리시오!”


일단은 안심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서광범과 무라카미는 돈화문 안으로 들어왔다.

전영 부영관 신복모와 일본인 사관 한 명이 대기하고 있다가 원세개의 서찰을 받도록 했다.

서광범과 무라카미는 급하게 발을 놀려 관물헌 앞으로 돌아왔다. 원세개가 서찰을 보낼 거라는 말에 개화당 지도부와 다케조에는 조금이나마 긴장을 풀었다.



돈화문 앞에 도열한 청군의 후미에서 원세개는 말에 올라 있었다. 그는 수신인이 다케조에인 서찰을 마상에서 다시 한 번 읽었다.


‘그제 밤에 변란이 일어나서 조선의 조정대신이 죽었다고 한다.

일본군과 공사만 입궐해 있으니 일본이 조종한 역모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진상을 파악하고 일본군과 협력해서 왕권과 조정을 안정시키기 위해 궁으로 들어간다. 두 나라가 힘을 합치면 조선 왕실과 조정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청군의 진의를 오해하지 말고 협력해 달라.’


서찰은 상대편의 혼란을 일으키기 위한 마지막 통첩인 동시에 청군의 진입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는 분명히 협력 의사를 전달했고 통보한 후에 궁에 진입했는데 상대편 일부 군사들이 반발하는 바람에 전투가 벌어진 것이라고 잡아 뗄 근거를 만든 것이었다.

그런 목적에 적합하게 쓰였다면 내용을 더 따질 필요는 없었다. 원세개는 서찰을 옆에 있는 부관에게 넘겼다.


‘조선은 중요한 곳이다.’

원세개는 화려한 조각과 단청으로 꾸며진 돈화문의 지붕을 올려다 보며 생각했다.

불란서와 전쟁을 벌이고 있는 안남보다 훨씬 중국에게 필요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동북아의 대세를 결정지을 수 있는 요충지 조선은 중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원세개 자신에게도 매우 중요한 나라가 조선이었다.

현재 청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북양대신 리홍장은 태평천국의 난을 평정함으로써 실력을 인정받고 권력을 잡았다.

무인 원세개가 인정받은 것은 두 해 전 임오군란 때 과감하게 전과를 올린 덕이었다.

갑신년의 이 변란도 확실하게 진압함으로써 대륙에 있는 사람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길 계획이었다. 그가 야망을 실현할 첫 관문이 조선이었다.


‘나는 조선을 좋아한다.’

단지 출세의 발판으로서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은 청나라보다 유교를 더 숭상하고 중화사상을 중시하는 나라였다. 변발을 한 청나라의 관리지만 한족 출신인 원세개는 조선 선비들의 특이한 사고방식이 마음에 들었다.


원세개의 뿌리를 고향 사람들보다 더 인정해주는 남의 나라 사람들이 조선인들이었다.

그 조선인들은 머리도 매우 영리했다. 아직 잘 돌아가는 머리를 새 세상에 맞게 사용하는 법을 못 익혔을 뿐이라는 게 원세개의 시각이었다.

그 좋은 한글을 만들 머리를 갖춘 게 조선인들이었고, 좋은 한글을 제대로 활용 못하고 있는 것도 조선인들이었다.

그리고 조선의 여인들은 아름다웠다. 원세개는 젊은 나이에 여러 명의 후처를 두었고 그 중에 조선 여인들도 있었다.

그 때문에 조선인들은 원세개를 욕했지만 어쨌거나 그가 가장 아끼는 여인은 재작년 조선에서 얻은 여인 김씨였다.


원세개는 서찰이 조선 전영 부영관 신복모에게 전달되는 것을 보았다.

신복모는 서찰 겉봉에 적힌 ‘일본공사친전’이라는 문구를 잠시 들여다 보다가 서찰을 일본 사관에게 건네 줬다.

그리고 신복모와 일본군 사관은 돈화문 안으로 들어갔다. 원세개는 허리에 찬 칼집을 쓸어 보았다. 듬직한 느낌이 들었다. 오른손으로 칼자루를 잡으면서 그는 생각했다.


‘앞길을 방해하는 것은 모두 쓸어버린다. 궁궐이든 묘당이든 앞길을 막는다면 태우고 부숴 없애겠다.’


원세개는 조선을 좋아하고 조선을 중시했다. 하지만 그는 조선을 존중하지 않았다.



오후 두 시 삼십분이었다. 관물헌 앞에서 무라카미 대위와 얘기를 나누던 다케조에는 일본군 사관이 빠르게 다가오는 것을 봤다.

그 뒤를 신복모가 따라오고 있었다. 사관은 다케조에의 표정이 보일 만한 거리가 되자 외쳤다.


“공사 각하, 원세개가 각하께 서찰을 보냈습니다.”


사관은 자기네 공사의 얼굴에 웃음기가 도는 것을 보았다.

다케조에는 자기 예측이 맞아들어간다고 여겼다. 이제는 원세개와 협의를 통해 일본의 권리를 인정받을 차례라고 생각했다.

지금 무력으로 원세개를 이기기는 어렵지만 마주 앉아서 말로 하는 머리와 기의 싸움에는 뒤지지 않으리라는 것이 다케조에의 진심이었다.


하지만 원세개의 생각은 다케조에와 달랐다. 원세개는 지금은 협상을 하는 것 자체가 자신의 패배라고 여기고 있었다.

일본군 사관이 팔을 뻗으면 닿을 만큼 다가왔을 때 다케조에는 원세개의 진심을 귀로 들을 수 있었다.


쾅! 쾅! 콰광!


서찰이 아니라 포성이 원세개의 진심이었다. 그는 평화로운 타협을 바라지 않았다.

확실한 전공을 얻길 원했다. 궁궐 뒷산에서 날아온 포탄은 후원 가운데 있는 정자 청심정을 때렸다.

기와와 서까래가 사방으로 튀어 날았다. 얼음같이 투명한 옥을 닮았다는 작은 연못 빙옥지의 물이 솟구쳤다.

쾅! 쾅! 이어지는 굉음에 빙옥지를 지키던 돌거북이 산산조각이 나고 아름드리 소나무의 허리가 꺾였다.


포성은 동궐 안의 공기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궁녀들의 자지러진 비명과 장교들의 호통소리가 어지럽게 뒤섞였다.

포탄이 떨어진 곳과 발사된 곳을 확인하느라 군관들이 뛰어다니며 소리를 질렀다.


일본군 사관은 급하게 서찰을 다케조에에게 건넨 뒤 군인들 진영으로 달려갔다.

다케조에는 봉서를 주머니에 꾸겨 넣었다. 읽을 겨를도 없지만 포성과 동시에 읽을 가치도 급격히 하락한 서찰이었다.

뒤통수를 맞고 농락당한 기분에 다케조에의 얼굴은 흙빛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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