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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치 님의 서재입니다.

삼일(三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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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신성치
작품등록일 :
2023.09.22 18:39
최근연재일 :
2023.11.03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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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0.21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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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이튿날(20)

DUMMY

- 금릉위, 고정하시오.


아사야마의 통역으로 사태를 파악한 다케조에가 박영효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칼을 뽑더라도 더 들어본 연후에 합시다.”


김옥균이 박영효의 팔을 잡고 눈짓을 하자 신복모가 말을 이었다.


“통역을 통해 청군 사관이 말하기를 조정에 위태로움이 있다고 들었다면서 언제든 청군이 도울 수 있도록 선인문을 열어 두라고 했습니다.”


박영효는 아직 분기를 진정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김옥균이 대신 물었다.


“그자가 병정은 얼마나 이끌고 왔나?”

“소총수 십인에 창과 칼을 든 보병이 십인이었습니다.

선인문 근방 오조유 진영에서 온 병력이 확실해 보였습니다.”

“배후에 지원 병력이 나와 있지는 않았나?”

“없었습니다.”

“음······ 당장 접전을 원하는 것 같지는 않소. 위협적인 병력도 아니고.”


다케조에의 견해를 아사야마가 조선말로 옮겨 주자 신복모도 일단은 그렇다고 동의했다. 다시 김옥균이 질문을 던졌다.


“선인문을 닫지 않으면 방어에 문제가 있나?”

“별 지장은 없습니다. 문 입구의 방비만 제대로 된다면 차이가 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방 안의 분위기와 박영효의 분노도 조금은 누그러지고 있었다.

박영효가 다케조에에게 말을 건넸다


- 무라카미 대위에게 지시해서 일본군 소총수를 열에서 스물 정도 선인문 앞으로 보내 지원하도록 해 주시오.


다케조에가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평정을 되찾은 박영효가 자기 책임에 걸맞게 대책을 말했다.


“이리 합시다. 동궐 외곽 경비에 주력중인 전 ․ 후영 병력 중 사백명을 궐내 주요 거점 네 군데에 백명씩 배치합시다.

그리고 부영관은 일본 소총수와 함께 선인문 경비에 주력하게.”



청군의 간섭이 동궐 안을 긴박하게 만들었다. 한밤의 고요함이 깨지고 군사들이 허겁지겁 집합하고 이동했다.

김옥균과 군권을 맡은 박영효, 서광범, 서재필도 방 안에 머물 수 없었다. 촉각을 곤두세운 그들은 선인문을 시작으로 잰걸음으로 동궐 안을 돌았다.


전후영 병사의 재배치가 마무리되고 점검을 마친 김옥균과 박영효가 관물헌으로 들어설 때였다. 김옥균의 하인으로 연락책 역할을 하는 이서방, 이점돌이 두 사람 앞에 고개를 숙였다.


“무슨 일인가?”

“큰 일에 바쁘신데 괜한 말씀을 드리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이서방은 저녁 먹을 무렵부터 김옥균을 만날 기회를 보고 있었다.

바쁘게 돌아가는 정변의 수뇌부들은 늘 모여 있었고 심각한 회의를 거듭해서, 하인이 끼어들어 말을 건넬 틈을 찾기 어려웠었다.


“어서 말해 보게.”

“신이가 왔었습니다.”

“신이?”


누군지 알지 못하는 박영효가 물었다.


“대치 어르신 심부름 하던 아이인데 하도감 청 군영 감시를 맡겼습니다.”


박영효가 조금 주저하는 이서방에게 거리낄 것 없이 전달하라고 지시했다.

이서방은 옆에서 김옥균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확인한 후 보고를 시작했다.



‘친군 우영 군영에 군사들이 모이고 있다.

우영 병졸들 중심이지만 좌영 병사들도 합류하고 있다. 우영의 영관은 청군과 함께 궁궐로 쳐들어갈 거라고 공언을 했고, 군사들은 열렬히 호응했으며 사기도 높았다.

신이가 확인했을 때는 우영 안의 군사가 백 명이 안 돼 보였으나 점점 늘고 있었다. 그들은 군사를 먹이고 무기를 챙기며 싸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도성 안에는 역적들이 왜놈과 작당하여 왕을 가두고 있다는 벽서가 붙었다. 백성들은 벽서 내용을 믿고 동조했다. 왜놈당을 쳐죽이자며 분노하는 사내들이 많았다.

평소 국왕 호위의 임무를 맡던 별초군들도 남소영에 모이기 시작했다. 청군이 지원해서 남소영 주변을 경계하고 있었다. 그리고······,

어제 새벽에 계향을 공격한 자들은 벽서를 붙이고 개화당을 모함하는 자들의 우두머리로 보였다.’



개화당에게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마지막 계향과 현명에 관련된 보고를 듣고 김옥균은 큰 불안을 느꼈다.

계향 피습에 대해 모르고 있던 박영효가 이서방에게 다시 물었다.


“계향이가 누구였지?”

“진홍이가 있는 운영각 기생입니다. 어제 새벽에 괴한들에게 습격당해서 대치 어르신 댁에 실려갔는데······

아마도 사대당 놈들이 우리 거사에 대해 캐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누군가 움직이고 있다.’

박영효는 방금 들은 보고가 반대세력의 조직적 움직임을 나타낸 것이라고 판단했다.

기습으로 민씨 척족의 핵심들을 제거했고, 구체제 친청 세력의 핵심인 중전은 궁궐 안에 갇혀 있다.


‘그런데 어떻게 하루만에 곳곳에서 반동의 움직임이 일어난단 말인가?’

박영효는 구체제의 보이지 않는 뿌리가 질기고 완강함을 새삼 실감했다. 하아, 자기도 모르는 새 입에서 탄식이 새나왔다.


김옥균은 박영효의 무거운 마음을 달래고 싶었다. 그러면서 자신을 압박해 오는 불안감도 덜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뾰족한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언변으로 무마한다 해서 덮어질 위기가 아니었다.


“분명 신이가 그렇게 말했나?”


차라리 신이의 탐색이나 이서방의 전달에 오류가 있으면 좋겠다는 게 김옥균의 바람이었다.


“예. 제가 혹 실수할까 해서 똑똑히 듣고 속으로 되뇌다가 말씀드린 것입니다.”

“고균, 사대당의 촉수가 사방에 퍼져 있어서 우리 예상보다 대비가 철저했나 보오.”


입으로 드러내지는 않았지만 김옥균도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사대당의 대비, 그게 아니면 원세개의 대비라 할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둘 다이든 이제 곧 그 크기가 드러나겠지.’


하지만 김옥균은 자신의 불안을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말을 할수록 불안감이 자란다고 생각했다.

조금 들떠 보이더라도 우리 편의 기세를 살릴 필요가 있다는 게 김옥균의 지론이었다.


“신이라는 아이가 없는 얘기를 하지 않을 신실한 아이인 건 맞소.

하지만 열일곱 피가 끓는 소년의 눈에는 벌어지는 일들이 더 크게 보일 수도 있소.”

“그러면 좋겠소만······,”

“우리만 재빨리 나서고 저들은 손 놓고 있으리라 예상한 것도 아니잖소. 공격이 있으면 반격과 역습이 있는 건 당연지사.

들어가서 대응책을 논하고 실행합시다. 까짓것, 우리 일을 하면 될 것이오.”


김옥균은 말 끝에 하하 소리내어 웃어 보였다. 박영효와 이서방이 보기에 그는 쾌활했다.


‘이런 면이 고균의 장점이지······.’

관물헌의 대청에 오르면서 박영효는 생각했다. 하나, 그 장점이 들어 맞아 일이 잘 풀리리라 장담은 하지 못했다.



태풍이 이는 여름처럼 밤 바람이 거세졌다. 음력 열여드레(18일) 조금 일그러진 달이 급하게 지나가는 구름에 덮였다가 빛을 내기를 거듭했다.

창덕궁 안팎에서 경계 근무를 서는 전후영 군사들은 소매 속에 손을 모아 쥐고 발을 연신 굴렀다. 추위를 막으려고 곳곳에 불을 피워 놓았지만 바람이 드세다 보니 불길을 크게 키울 수는 없었다.

작은 나뭇더미 위로 이는 화톳불처럼 약한 불은 쓸 데 없이 불티만 튀어 날리다가 자주 꺼졌다.


병졸들은 빛을 내다가 곧 사라지곤 하는 이지러진 달을 올려다보면서 빌었다.

이 밤이 어서 새기를, 임금을 둘러싸고 있는 자신들이 옳은 일을 하는 중이기를, 곧 탈 없이 식구들에게 돌아갈 수 있기를······.



“선생님, 서··· 선생님.”


하얀 색의 한자로 약재 이름들이 적힌 서랍들로 가득한 농짝이 보였다. 머리맡의 소반에는 약사발이 놓여 있었다.

진한 한약 냄새가 코를 파고들었고 절절 끓는 온돌의 열기로 등에 돋은 땀이 느껴졌다. 축축해진 베개와, 화로에서 전해진 온기로 따스해진 뺨도 느껴졌다.

두툼한 광목이 머리띠처럼 자신의 이마에서 뒤통수까지를 감싸고 있었다.


베개 위의 고개를 살짝 돌리니 벽에 기대 앉아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는 초로의 사내가 보였다.

‘운영각에 종종 들렀던 의원··· 김옥균과 가깝던··· 대치 어르신······,’


자신이 누워 있는 곳이 어디인지 계향은 확실히 알아차렸다. 하지만 유대치의 약방에 어떻게 실려 왔는지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아침에 복면을 한 무서운 사내들에게 끌려갔다가 방망이에 맞고 정신을 잃었었다. 어느새 이제는 등잔불을 밝힌 밤이 돼 있었다.


“선생님······,”


가느다랗던 음성에 조금 힘이 들어갔다.

꾸벅 아래로 떨어지던 유대치의 머리가 튕기듯 되돌아왔다. 피곤에 지쳐 있던 의원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소리 난 곳을 주시했다.


“정신이 드느냐?”

“예··· 제가 언제부터 여기에서······.”

“어제 아침에 괴한들에게 맞아서 정신을 잃은 것을 신이가 업고 왔다.”

“어제 아침이요? 그럼 꼬박 하루 반을 넋을 놓고 있었단 말입니까?”

“그래··· 그야말로 천만다행이다. 지금은 어디가 제일 불편하느냐?”

“얻어 맞은 데가 뒤통수 같습니다.”

“그래.”

“뒤통수가 조금 당기는 느낌이고 어지럽기는 합니다만······”


계향은 자기가 어른 앞에서 누운 채로 말한다는 것을 깨닫고 몸을 일으켰다.

받치는 팔에 힘이 없어 조금 무겁게 느껴졌지만 움직이는 데 별 지장은 없었다.


“괜찮다. 환자가 누워 말하는 것은 흉이 아니다.”

“아닙니다. 덕분에 크게 괴로운 곳은 없는 듯합니다.

뒷목이 살짝 뻣뻣하고 힘이 빠져 있는 것을 빼면······.”


계향은 전반적으로 괜찮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휴··· 의원으로서 유대치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계향과 같은 경우는 어혈을 풀어주는 약을 숟가락으로 입에 넣어주고 상처를 싸맨 천을 갈아 주면서 기다리는 것 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젊은 덕인지 스스로 깨어나 준 것이 유대치는 고마웠다.


의식을 잃은 환자가 큰 걱정거리인 것은 당연하지만, 정변과 관련을 맺고 있는 지금의 입장에서는 더 곤란한 문제였다.

정변 세력에게 이상이 생겨서 도성 안을 떠나야 할 경우에는 의식을 잃은 환자를 두고 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었다.


“정신이 들자마자 이런 것을 물어서 미안하다만······,”

“말씀 하십시오. 제 목숨을 구해주신 은인이신데 무슨 말씀인들 못 듣겠습니까?”

“아니다. 내가 의원이지만 특별히 한 것이 없다. 나중에 신이를 만나면 고맙다고 하거라.”

“예.”

“그래··· 운영각 말고 도성 근처에 잠시 신세질 만한 친지는 없느냐?”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시나, 조금 의아했지만 계향은 있는 대로 답을 했다.


“마석 땅 조금 못 미쳐서 외삼촌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마석이라······. 그나마 다행이구나. 도성에서 하루 걸어 갈 만한 곳이니······.”

“제가 그리 가야 하는 급한 사정이라도 있는 것입니까?”

“아니다. 아직은 어찌 될지 모르는 일이니 내일 기력을 좀 차리면 내가 얘기하마.

아, 지금 가져다 줄 것은 없느냐? 물이든 음식이든······.”

“저······ 그런 건 아닌데, 제가 오래 누워 있다 보니까······.”


계향은 이야기를 끝맺지 못하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유대치도 계향의 시선을 따라가다가 멈추는 지점을 주목했다.

방문 앞에 놋요강이 놓여 있었다. 험험, 유대치가 쑥스러운 헛기침을 했다.


“나는 이만 나가마. 심부름하는 계집아이를 들여보낼 테니 뭐든 그 아이에게 얘기하거라.”

“예. 고맙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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