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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님의 서재입니다.

F급 무한재생 헌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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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구석
작품등록일 :
2023.11.26 04:32
최근연재일 :
2024.06.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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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9,976

작성
24.03.06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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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12쪽

96화

DUMMY

척추가 부러진 탓에 잠시 하체를 쓸 수 없었지만 나는 척추가 재생되는 동시에 어떤 경고나 위협 없이 즉시 기습을 감행했다.


“응?”


역시.

그녀는 강력한 각성자인 만큼 나를 때린 감각으로 내 척추가 부러졌음을 확실하게 인지했고 그렇기에 오히려 내가 반격할 거라곤 상상도 하지 않고 방심하고 있었다.


- 퍽! 퍽! 퍼억!


덕분에 나는 그라고스의 메이스로 그녀의 턱주가리를 정확히 후려갈길 수 있었다.

나는 확실하게 마무리하기 위해 연속으로 세 번 그녀의 턱을 후려쳤다.

묵직~한 타격감이 손잡이를 통해 전해졌다.


“⋯⋯⋯⋯.”

“후우~.”


하지만 메이스에 맞아 고개가 휙 돌아간 여성은 그럭저럭 버틸만하다는 듯 입을 이리저리 움직여 턱뼈를 맞추며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지긋이 응시했다.

솔직히 맞는 느낌과 때리는 느낌으로 대충 예상하긴 했지만 역시 내 공격에 한 방에 뻗을 정도로 낮은 등급의 각성자는 아니었다.

진짜 서럽다, 서러워.

세상에 뭐 이렇게 만만한 상대가 없냐.


“⋯⋯⋯⋯.”

“⋯⋯⋯⋯?”


그렇게 이번엔 그녀의 턴이 돌아왔다.

나는 방어적인 자세로 그녀를 집중해 노려보며 대치했는데 그녀는 가벼운 미소를 머금고 팔짱을 낀 채 가만히 서 있을 뿐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처음엔 너무 전투에만 집중해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혹시 무슨 스킬을 쓰기 위한 사전작업인가, 의심했지만 이내 눈치챈 그녀의 의도는 단순했다.


“빨리 옮겨, 빨리!”


우리 둘이 싸움을 시작하면 얽히고설키고 구르고 자빠지고 주변이 난장판이 될 테니 부하들이 창고를 정리하는 동안 나를 잡아두기만 할 생각인 듯했다.

결국 시간은 내 편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쩔 수 없이 먼저 그녀를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 부웅!

- 퍽! 퍼벅! 퍽! 빠악!


씨발.

겨우 메이스 한 번 휘두르는 동안 안면에 네 대의 주먹이 꽂혔고 마무리로 배에 니킥까지 맞았다.

입술과 잇몸이 터지고 코가 부러져 단숨에 얼굴이 피범벅이 됐다.


“⋯⋯⋯⋯.”


여성은 나를 간단히 두들겨 패고 밀어난 뒤 다시 옅은 미소를 띤 얼굴로 팔짱을 낀 채 가만히 기다렸다.

완전히 얕보이고 있었다.


“⋯⋯응?”


데미지 뱅크가 있으니 이렇게 계속 맞다 보면 한 번 일발역전의 기회가 오긴 하겠지만 그 전에 창고 정리가 끝날 것 같았다.

내가 가진 패를 어떻게 활용하면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을까, 계속 눈앞의 여성을 경계하며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드는 생각이 있었다.


‘젊은 여성, 꽤 강한 각성자, 긴 머리카락을 뒤로 동글게 묶고 정장을 입은, 좀 예쁜 얼굴.’


젊은 여성이고 강한 각성자고 긴 머리를 뒤로 동글게 묶고 있고 깔끔한 정장 차림에 눈매가 살짝 처져 눈웃음이 매력적이고 순해 보이는, 이런 상황이 아니라 길가에서 마주쳤으면 한 번쯤은 돌아봤을 법한 미인.

언젠가 박시후가 말했던 자신에게 약물을 건넸다는 사람의 인상착의와 내 눈앞의 여성의 특징이 완전히 일치했다.


“당신이죠? 서울헌터아카데미 학생에게 약물을 건넨 게.”


내가 뜬금없이 꺼난 말에 그녀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놀람이라기보단 흥미롭다는 놀람이었고 그녀는 입가의 미소가 번지는 것으로 대신 대답해주었다.

뭐지, 말을 할 줄 모르나?

아닌데, 아까 부하들한테 지시 내릴 때 분명히 말했는데.

아무래도 그녀는 계속 묵비권을 행사할 생각인 모양이다.


“⋯⋯⋯⋯.”

“⋯⋯⋯⋯.”


늘어지기만 하는 대치, 계속해서 옮겨지는 창고 안 물품,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불리해지기만 했다.

하지만 그동안 멍때린 건 아니었다.

어차피 내가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그녀는 공격하지 않았고 그동안 나는 나름의 작전을 구상해 지금 막 실행할 참이었다.


‘⋯⋯⋯지금.’


- 파앗!


때를 노린 나는 물건이 적재된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녀는 당연히 재빠른 움직임으로 날 따라잡아 주먹질과 발길질을 날렸지만 나는 몸을 만년빙으로 둘러 공격을 방어했고.


- 쩌저저저적!


물건이 쌓여 있는 주변 공간을 최대한 많은 수의 건달과 함께 만년빙으로 돔을 만들어 가둬버렸다.


“이, 이게 뭐야!”


- 까앙! 깡!


건달들은 급히 물건 주변에 널려있는 삽이나 빠루 같은 걸로 만년빙을 깨려고 해봤지만 그게 어림 있을 리는 없고.


- 콰앙! 쾅!


그녀도 얼음을 깨려고 시도했지만 아주 두껍게 얼린 만년빙은 그녀의 주먹에도 꿈쩍하지 않았다.

다행히 만년빙을 깰 수 있을 정도의 강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녀는 여전히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를 향해 ‘이거 뭐야?’라고 표정으로 말하는 듯 눈을 크게 뜨고 갸웃했다.


“⋯⋯⋯⋯.”


그래서 이번엔 나도 말을 하지 않고 보란 듯 웃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


그러자 그녀는 얘 재밌네? 하는 표정을 지으며 손발을 털더니 나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한번 제대로 붙어보자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그에 응해 나도 자세를 잡았다.

말 한마디 없이 이렇게까지 뜻이 통할 수 있다니, 외국 나가서 꼬부랑말 못해도 손짓, 발짓하면 어찌저찌 통한다는 게 진짜구나.


- 타앗!


이번 전투는 그녀가 먼저 달려들며 시작됐다.


- 부웅!


나는 그녀가 달려드는 타이밍에 맞춰 메이스를 휘둘렀다.


- 퍼버벅!


하지만 그녀는 능숙한 더킹으로 메이스를 피하며 내 품으로 쑥 파고들어 연속으로 주먹을 날렸다.

그녀의 주먹은 정확히 복부에 적중했지만 만년빙을 둘러둔 덕에 큰 데미지가 들어오진 않았다.


- 부웅!


나는 다시 한번 메이스를 휘둘렀지만 그녀는 다시 능숙한 위킹으로 공격을 피하고 이번엔 만년빙을 두르지 않은 안면을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또 코뼈가 부러지고 잇몸과 입술이 터져 코와 입으로 피를 뿜어냈다.


“퉷.”


나는 깨지고 빠진 이를 뱉어내곤 이번엔 아예 안면까지 얼음으로 덮어버렸다.


- 부웅! 붕!


움직임이 둔해지고 시야가 방해돼 제대로 그녀를 맞출 순 없었지만.


- 빠악! 빠각! 파박!


그녀의 공격도 내게 별다른 데미지는 주지 못했다.


- 타앗!


그렇게 한참 서로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하는 허우적거리기를 얼마나 이어갔을까.

그녀는 백스탭으로 뒤로 한번 빠지더니 항의하듯 팔짱을 꼈다.


“⋯⋯⋯⋯.”


찡그린 얼굴로 고개를 갸웃거리는 그녀는 진짜 계속 이럴 거야? 라는 표정을 짓고는 현란한 스텝을 밟고 허공에 주먹을 날리는 쉐도우 복싱으로 자신의 실력을 자랑했다.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잡기술로 짜치지 말고 화끈하게 한 판 붙어보자는 듯했다.


“하!”


그에 나는 헛웃음을 지었다.

멀쩡히 들고 있는 튼튼한 갑옷과 강력한 무기를 포기하고 정정당당히 주먹으로 맞짱 뜨자고?


- 땡그랑!


이건 못 참지, 당장 들어와.

나는 바로 만년빙 갑옷을 해제한 뒤 그라고스의 메이스를 바닥에 떨궜고 그 모습을 본 그녀는 목숨을 앗으려 싸우는 상대에게 도저히 지을 수 없는 환한 미소를 보이며 기뻐했다.


- 툭, 툭, 툭.


갑옷과 무기를 내려놓은 나는 예전의 기억을 살려 가볍게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글러브를 내려놓은 지 이미 몇 년이나 지났지만 뇌가 아닌 몸에 새겨진 기억은 언제든 생생히 끄집어낼 수 있었다.


- 툭, 툭, 툭, 타앗!


가드를 올리고 스텝을 밟기 시작하자 그녀도 따라서 스텝을 밟기 시작했고 그렇게 1라운드가 시작됐다.


- 슉, 슉, 부웅!


무기를 메이스가 아니라 주먹으로 바꾸자 그녀와 합을 겨루기 한결 수월해졌다.

아무리 내게 무기술을 전수한 스승이 윤아린이라고 해도 어차피 2달이 조금 안 되는 시간 동안 내가 흡수할 수 있는 가르침은 한정적이었기에 몇 년간 수련한 킥복싱만큼 익숙하진 않았고 아무래도 뭔가를 들고 휘두르는 것보단 내 몸인 주먹을 휘두르는 게 훨씬 편안하고 다루기 쉬웠다.


- 빡! 빠악! 뻐억!!!


가벼운 레프트 잽, 바로 이어지는 라이트 훅, 다시 레프트 어퍼.

깔쌈한 콤보가 그녀의 안면에 연속으로 적중했다.

연속으로 턱에 꽂힌 펀치에 여성은 머리가 좀 울렸는지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 부웅, 빠각!


하지만 때렸으면 당연히 맞기도 하는 게 격투기다.

튕기듯 뻗은 내 라이트 스트레이트에 반응한 그녀는 사이드 스텝으로 옆으로 빠지며 역으로 내 턱에 스트레이트를 먹였다.

그녀의 펀치에 제대로 맞은 내 아랫턱은 덜렁거릴 정도로 완전히 떨어져 나갔지만 이내 다시 붙었다.

그 모습을 본 그녀는 살짝 고개를 갸웃했다.


- 푸욱!


“윽!”


다시 몇 번의 주먹을 주거니 받거니 하던 중 그녀가 내 복부를 공격했다.

그런데 주먹이 아니라 손끝을 세워 칼처럼 푹 찔렀고 그녀의 손은 내 배를 뚫고 들어왔다.

아, 맞다.

이거 경기가 아니라 싸움이지.


“크아악⋯!”


배가 뚫린 건 상관없는데 그녀는 괴상하게도 내 배에 넣은 손을 점점 깊숙이 찔러넣었다.

타인의 손이 장기 속을 휘젓고 다니는 느낌은 도저히 남에게 설명할 수가 없을 만큼 끔찍했다.


- 푸화악!


내 뱃속 깊숙이 손을 넣은 그녀는 내 순대를 꽉 움켜쥐고 손을 확 뽑았다.

갑자기 벌어진 장기자랑에 우리 둘의 싸움을 지켜보던 몇몇 건달이 구토를 했다.

다들 겉모습은 험상궂지만 마음은 여린가 보다.

아니, 그나저나 이 여자, 얼굴이랑 하는 짓은 완전 딴판이네.

이런 게 반전 매력인가?


“핥짝.”

“???”


내 뱃속을 맘껏 휘젓고 손을 뺀 여성은 잠시 뒤로 빠지더니 자신의 손에 묻은 내 피를 핥았다.

그 기이한 행동에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하지만 그녀는 의심할 것 없이 내가 본 것에 확실하게 못 박아주듯 내 피를 핥고 냄새를 맡고 얼굴에 발랐다.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았다.


“하아아아⋯.”


손에 묻은 피의 맛과 향과 감촉을 한껏 즐긴 그녀는 다시 이제는 멀쩡히 재생된 내 배를 바라봤다.


“아⋯아아아⋯!”


이미 몇 번의 경험으로 그녀도 알았을 것이다.

내겐 부상을 입혀봤자 금세 재생이 된다는 걸.

보통의 적은 그 사실을 알면 경악한다.

하지만 그녀는 오히려 천국이라도 본 듯 황홀해했다.


“좀 더, 좀 더⋯ 좀 더!!!”


그녀는 도저히 못 참겠다는 듯,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짐승처럼 내게 달려들었다.

그 모습에 나는⋯.

나는 뒷걸음질 쳤다.

인간이 가장 큰, 가장 근본적인 공포를 느끼는 미지의 공포.

강한 적도, 많은 적도 무섭지 않지만 대체 왜 저러는 건지 모르는 적은 정말 무서웠다.


“크흑⋯!”


최고의 퍼포먼스를 뽑아내도 상대하기 어려운 적을 공포로 몸과 사고가 굳은 채 제대로 상대하기란 불가능했다.

나는 그녀의 태클에 걸려 그대로 넘어졌고 그녀는 내 위에 올라타 마치 짐승이 먹이를 찾으며 땅을 파듯 손으로 내 배와 흉부를 마구 찢고, 잡아 뜯고, 그 안에 든 피와 살과 내장을 마구 헤집고 끄집어내며 미친 듯이 웃었다.


“꺄하하하하! 아하하하하하!”


얼굴에 피칠갑을 하고 입이 찢어져 귀에 걸릴 듯 깔깔 웃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악령이 들린 듯했다.

그 청순하고 얌전한 얼굴을 가진 사람이었다고는 도저히 상상할 수가 없었다.


“흐음⋯ 흐으음⋯ 하아아⋯.”


자신의 몸은 물론 사방팔방을 다 피로 적신 그녀는 숨을 헐떡이며 조금 진정하더니 갑자기 피 묻은 손으로 내 볼을 부드럽게 슥 어루만졌다.

그리고 말했다.


“사랑해, 정말 사랑해⋯.”


이게 대체 무슨⋯?

그녀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내뱉었다.

갑자기 사랑한다니, 미친년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은 정말 사랑에 빠진 소녀의 눈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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