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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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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7.0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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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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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76,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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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7.03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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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3쪽

호사가

DUMMY

지부장이 칠우회를 모를 리가 없었다.

그들은 외압에 굴복하지 않고 신념을 관철하며 보답을 바라지 않는 분명한 협의지사들이다.

염성현을 벗어나 그 협의를 인정받을 만큼 강하지 않다는 게 야속한 현실일 뿐.

정파인으로서 측은심도 느끼고 있으나, 어찌 보면 자신은 그들의 대척점에 있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상인들의 의뢰를 받아 곡식을 중원 각지로 운송하는 사람으로서 칠우회를 위해 땅을 사는 건 신의에 반하는 일.


그러나 붕산혈귀 북궁백이 누구인가?

요즘 들어 무림에 떠오르고 있는 신진고수임은 제쳐두더라도 남궁세가의 가장 큰 어른이 지대한 관심을 받는 무인이다.

그의 요청에 적극 협조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만큼 구색은 갖춰야 했다.


“땅을 사는 거야 어렵지 않은 일이나 칠우회의 명의로는 지난한 일입니다.”

“칠우회는 관원과 지주들에게 단단히 밉보여서 그런 거요?”

“아시는군요.”

“웃돈을 얹어주면 되지 않소?”


지부장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들의 결속이 단단합니다. 그것을 깨려면 다섯 배는 주어야 할 것인데···.”

“금 이백 냥이면 얼마나 살 수 있소?”


지부장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커졌다.

떨리는 목소리가 그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려주었다.


“이, 이백 냥이요? 금자로?”

“그렇소.”


북궁백은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엄청난 자금의 출처는 다름 아닌 만락광야였다.

북궁백이 의식을 잃고 누워있는 동안 서막이 서호 일대를 평정해 만락광야가 모은 재산을 손에 넣었다.

밤의 지배자답게 그 재산은 눈이 돌아갈 만큼 어마어마했다.


그렇다 하여 그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삼 할은 세금으로, 삼 할은 항주 관원들의 품으로, 일 할은 만락광야가 미지급한 사업 대금으로.

서막의 손에 남은 건 삼 할이 전부였으나, 그 삼 할만으로도 서호 인근 땅을 모두 살 수 있을 정도였다.


서막은 그 돈을 모두 넘겨주려 했으나 북궁백이 거부했다.

그렇게 많은 돈을 가져봐야 쓸모가 없으니.

금 백 냥만 돌려주고 나머지는 소화방 운영에 쓰라고 했지만, 서막은 막무가내로 전표를 집어 전낭에 쑤셔 넣었다.

그것이 약 금 삼백 냥 정도 된다.


“다섯 배로 쳐준다고 하면 약 백 묘(畝)는 가능할 것 같습니다만, 터무니없는 폭리입니다.”

“그래도 괜찮소.”


지부장이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눈을 씰룩거렸다.

그는 돈 귀한 줄 모르는 북궁백이 못마땅해 이대로 확 치워버릴까 하다가 태상가주의 지시를 떠올리고는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기대볼 만한 묘책이 떠올랐다.


“차라리 황보세가에 부탁하는 건 어떻습니까?”

“황보세가? 오대세가 중 하나인 그 황보세가 말이오?”

“맞습니다. 황보세가에서 염성현 인근에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산동성 제남에 있지 않소? 그런데 왜 염성현에 땅을 가지고 있단 말이오?”


북궁백이 의아해했다.


“창천표국처럼 세가의 사업수단으로 보유한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다만 대단한 수익을 기대하기에는 그 땅이 좁아 어떤 사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음.”


북궁백은 잠시 고심하다가 땅이 얼마나 넓은지 물었다.


“삼백 묘가 조금 넘습니다.”


땅 넓이가 세 배가 넘는다는 말에 북궁백의 마음이 기울었다.

그러지 않아도 산동성 청주에 들를 예정이었다.

남궁세가로 가는 길에서 조금 돌아가야겠지만, 흑파가 있으니 상관없었다.

그리고 그들이 팔지 않겠다고 하면 백 묘라도 사면 되니까.


“내가 그들을 설득해 보겠소. 서신을 보낼 터이니 이 돈을 맡고 있다가 황보세가나 다른 지주들과 거래를 진행해주시오.”

“아, 예···.”


지부장은 지극히 부담스러운 손길로 전낭을 받아들였다.


* * *


북궁백이 강소성 술양현에 도착해 요기를 해결하기 위해 객잔에 들어섰다.

객잔은 거의 만석에 가까웠고, 자리를 차지한 이들은 식사를 하기보다는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따라가 보니 반주치고는 많은 술이 올라와 있는 식탁에 피풍의와 묵유경장을 걸친 울적한 표정의 중년인이 있었다.


“군중들은 천자께서 병약하고 심지가 굳세지 못하다 숙덕이며 항상 우려를 드러내곤 했소. 허나 그분께선 세간의 평과는 전혀 다른 분이셨소.”

“어떻게 다르단 말이오?”


누군가 질문을 던지자 호사가로 보이는 그 남자가 그쪽을 보며 대답했다.


“천자께선 황태자 시절, 친정을 나선 선제를 대신해 국정을 돌봤소. 그 치세가 대단히 뛰어났기에 선제가 친정에 집중할 수 있었지.”


다른 자가 언성을 높여 반론을 제기했다.


“치세가 뛰어나다는 건 나중 일이오. 천자께서 그런 우려를 달고 있다는 건 내전의 빌미가 될 수 있소.”

“하지만 일어나지 않았지. 왜 그런지 아시오?”


호사가는 거칠게 술을 들이켜더니 말을 이었다.


“천자께 수시로 무례를 범한 한왕도 알고 있던 것이오. 자신의 능력이 천자께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천자께서 군재도 뛰어나 선제가 황위에 오르기 전, 경군의 손에서 순천부를 한 해를 넘게 방어한 적도 있지.”

“그 한왕을 방치한 것이 문제외다.”

“천자께서 인자하다는 증거요. 앞서 말한 능력에 더해 인자함까지 갖추셨으니 승하하지 않았다면 요순에 버금가는 태평성대가 찾아왔을 것이오.”


점소이에게 음식을 주문하던 북궁백이 흠칫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승하라고 했다.

즉위한 지 일 년도 지나지 않은 황제가 죽었다는 말이다.

황제의 죽음은 항상 긴장을 가져온다.

막북 원정을 주도한 전 황제가 장성 너머에서 죽었을 때도 그랬다.

도독동지 유청이 경고한 바도 있으며, 실제로 원정군은 북경 북쪽에 머물며 혹시 모를 역란에 대비했다.


“허나 그대의 말처럼 승하하셨지. 그리 난폭하다 소문이 자자한 한왕은 산동성 낙안주에 멀쩡히 살아있고. 그가 가만히 있겠소? ”

“황태자 전하께서 항상 벼르고 계셨으니 숨죽이고 있어야지. 산동 비왜군의 지휘관은 천자께서 직접 임명한 충신이오. 게다가 한왕에게는 대항할 사병이 없소.”


계속 반론을 제기하던 자가 언성을 누그러트렸다.


“그럼...안심해도 되는 거요?”

“내가 신선도 아니고 앞날을 어찌 알겠소? 다만, 돌아가는 정세를 보아 변고가 생겨도 크게 걱정할 정도는 아닐 것이오.”


그사이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북궁백은 음식을 먹으며 호사가를 훔쳐보았다.


‘평범한 호사가는 아닌 것 같군.’


아무리 입담으로 먹고사는 호사가들이라 하더라도 황실에 관한 이야기는 금기에 가깝다.

거짓된 이야기를 잘못 떠들고 다니면 역모죄로 몰려 목이 달아날 수도 있고, 진실을 이야기하더라도 황실 모욕죄로 극형에 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개방된 곳에서 저리 확신을 갖고 떠들어댄다는 것은 적어도 지어낸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황제를 찬양하고 있으니 모욕이라 생각할 수도 없고.


‘저런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이나 정세를 판단하는 능력을 보면 관원 출신이거나 명문가의 후손일지도 모르겠군.’


어떤 사연이 있는지 행색만 보면 한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사연은 신경 쓰지 않는다.

다만, 걸리는 것이 있다.


‘객잔에서 대놓고 난폭하다 할 정도면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지?’


듣자 하니 유배(流配)에 가까워 보이지만, 군왕은 군왕이다.

객잔에서 함부로 논할 신분이 아님에도 난폭하다는 말이 나오고, 호사가의 말에 안심하는 것을 보면 보통 성미가 아닐 것이다.

문제는 그가 있는 낙안주는 자신의 행선지인 청주와 황보세가가 있는 제남 위에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걱정하는 것처럼 어떤 변고가 발생한다면 자신 역시 휘말릴 가능성이 컸다.


‘저 자에게 물어봐야겠어.’


식사를 절반쯤 비웠을 때, 거나하게 취한 호사가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궁백은 음식을 남겨두고 그를 따라 객잔을 나섰다.

행낭을 메고 휘청거리며 나아가는 호사가를 따라 술양현을 벗어나 한적한 길에 들어서는 순간, 그가 걸음을 멈추더니 뒤를 돌아보았다.


“그대는 누구인데 계속 나를 미행하는 것이오?”


북궁백도 걸음을 멈추고 그와 눈을 마주쳤다.

얼굴은 여전히 붉으나 동공이 또렷한 것이 절대로 만취한 자의 눈이 아니었다.

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기분이 상했다면 사과하겠소. 나는 북궁백이라 하오. ”

“최근 명성이 자자한 붕산혈귀셨군. 그런 분이 어찌 나 같은 범부의 뒤를 밟는단 말이오?”

“객잔에서 우연히 그대의 말을 듣게 되었소. 몇 가지 물을 것이 있어 그대를 쫓아온 거요.”

“사람들 앞에서 꺼낼 주제가 아니었나 보구려.”

“조심스러운 주제요.”


그 말에 호사가가 박장대소를 터트렸다.


“이미 객잔에서 천자를 입에 담았는데 조심스러울 게 뭐가 있소?”

“천자의 승하보단 내란이 재발 여부가 더 중하지 않겠소?”


호사가는 실소를 지으며 말했다.


“객잔에서 들었을 거 아니오. 내란이 일어날 가능성은 적소.”

“이런 말도 들었소. 앞날은 모른다, 한왕이 천자께 수시로 무례를 범했다, 한왕은 난폭한 천성을 지녔다.”

“...”

“내가 겪은 바에 의하면 천성은 숨길 수 없소. 질남을 죽이고 황제에 올라 십오 년간 다섯 차례의 친정을 떠난 전 황제처럼.”


호사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의 눈 깊은 곳에서 차디찬 원념이 번뜩였다.

북궁백이 예측한 것이 맞았다.

그는 전 황제, 주체에게 원한이 있다.

객잔에서 이야기할 때, 현 황제는 꼬박꼬박 경어를 하면서도 주체에 대해선 평어를 썼다.

웬만큼 눈치가 빠른 사람이 아니라면 알아챌 수 없을 정도로 미미한 적의가 담겨있기도 했다.

호사가는 금방 표정을 수습하고 천연덕스럽게 말했다.


“갑자기 선제가 왜 나오는지 모르겠군. 하지만 그때와는 처지가 전혀 다르오.”

“누군가와 손을 잡을 수도 있지 않소?”

“허 참. 누가 한왕 주고후와 손을 잡으려 할까. 그의 흉악하고 천박한 품행을 모르는 관료는 없소. 정도껏 오만방자해야지, 도성에서 백성을 약탈하고 철퇴로 병마지휘사의 머리통을 깨부수는 자를 누가 받들어 모시겠소?”


북궁백의 눈이 커졌다.

한왕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난폭한 자였다.


“처음 듣는 이야기인가 보군.”

“그렇소.”

“그런 일들로 인해 선제의 미움을 산 한왕은 사병을 빼앗기고 낙안주로 쫓겨났소. 평생 도성의 출입을 금했지. 도성의 백성들에게는 희소식이었으나, 낙안부와 그 주변 일대에는 비보나 마찬가지였소.”

“낙안부에서도 그랬던 거요?”


호사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대의 말마따나 천성이 어디 가겠소? 귀족, 양민, 노예, 무림인 가리지 않고 그의 패악질에 시달렸지.”

“흠···.”


북궁백이 침음을 흘렸다.

그의 우려에 확신이 더해졌다.

유배를 당하고도 변하지 않은 천성이니 절대로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정세를 살피는 것만으로는 알 수 없는, 사람의 본질에 대한 통찰력이다.

북궁백은 그것을 내색하지 않고 감탄한 척, 호사가에게 물었다.


“그대의 식견이 놀랍구려. 한 가지 그대의 생각을 듣고 싶소.”

“이만하면 그대 한 사람을 위해 대가 없이 떠든 것치곤 충분하다 생각하오만···.”


호사가가 말끝을 흐리며 딴청을 피웠다.

북궁백은 품에서 전낭을 꺼내며 말했다.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리다.”


쩔렁이는 소리를 들은 호사가는 반색을 표하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러면 달라지지. 너무 아니꼽게 생각하지 마시오. 나는 입으로 빌어먹는 호사가가 아니오.”

“그렇게 생각하지 않소. 아무튼, 한왕이 난을 일으키고자 한다고 가정했을 때, 언제부터 행동에 옮기겠소?”


호사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미 움직이고 있겠지. 다만, 외부로 드러나는 건 시간이 걸릴 거요.”

“그 시간이 얼마나 될 것 같소?”

“음. 빠르면 반년, 늦어도 일 년 안에는 끝을 보려 할 거요. 그 기간이 넘어가면 새로운 황제가 권력을 수습했을 테니 말이오.”


반년에서 일 년.

그 정도면 문제없다.

북궁백은 은자 두 냥을 꺼내 그에게 내밀었다.


“고견을 들려주어 고맙소.”

“어이쿠. 도량이 붕산혈귀라는 위명에 뒤지지 않는구려. 잘 쓰겠소.”

“그럼.”


북궁백이 희희낙락한 호사가를 일별하고 돌아서려 할 때였다.

호사가가 선심 쓰는 척, 한 마디 내뱉었다.


“낙안부 인근에 볼일이 있는 것 같소만, 가급적 빨리 처리하고 떠나시오. 내란은 둘째치고, 한왕과 엮이면 좋은 꼴을 볼 수 없을 터이니.”


북궁백은 흑파에 올라타며 대답했다.


“그럴 생각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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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보타암-2 +2 24.06.17 1,319 33 12쪽
41 보타암-1 +2 24.06.16 1,344 31 13쪽
40 해적-3 +3 24.06.15 1,396 28 13쪽
39 해적-2 +2 24.06.14 1,352 28 13쪽
38 해적-1 +2 24.06.13 1,394 28 12쪽
37 노예의 행방-2 +1 24.06.12 1,390 27 13쪽
36 노예의 행방-1 +2 24.06.11 1,411 29 13쪽
35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2 24.06.10 1,439 28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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