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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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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6.26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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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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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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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보타암-1

DUMMY

전투에는 수많은 변수가 존재한다.

경험이 많거나 지략이 뛰어난 이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 철저히 대비해도 모든 변수를 예측하고 방지할 수 없다.

병력이 더 많아도, 성을 끼고 있어도, 적보다 병장기의 질이 뛰어나도 그것이 승전을 보장하지 않는다.

전염병이 돌기도 하고, 향수병에 걸려 기력을 잃기도 하고, 깨끗한 물인 줄 알았는데 몸에 맞지 않아 설사하기도 하는 등 별의별 일이 벌어진다.

그 모든 변수를 뒤엎고 이것만 가져오면 반드시 승리할 수 있는 요소가 딱 한 가지 있다.


‘사기.’


혹은 기세, 전의라고도 불리는 것.

기세등등한 부대의 병사는 특별한 용력이 없어도 일당백의 용장이 된다.

반면에 기세가 꺾인 부대는 그 수가 아무리 많아도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는다.

북궁백이 겪어본 무림인들도 다르지 않았다.

기세를 휘어잡은 순간, 그들도 여지없이 굴복하고 무너졌다.

그 기세를 휘어잡기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압도적인 격차를 보여주는 것과 잔인함이다.


스걱.


북궁백은 기형도를 휘둘러 사로잡은 왜인의 손을 날려버렸다.

피가 분수처럼 터져 나오고 날카로운 비명이 귀청을 긁었다.


“칙쇼!”


다른 왜인이 무어라 소리치며 얇고 긴 도를 머리 위에 치켜들고 달려왔다.

왜인 특유의 보법인지 손이 잘린 왜인과 마찬가지로 짧은 보폭으로 바퀴벌레처럼 소리 없이 접근했다.

그리고는 태산압정의 초식으로 내리쳤다.


쩡.


북궁백은 가볍게 기형도를 휘둘러 도와 함께 왜인의 머리통을 날려버렸다.

그 직후, 사로잡은 왜인의 발목을 끊었다.

그러면서도 달조차 비추지 않는 야밤의 호수같이 시커먼 눈이 해적 전체를 담고 있었다.


다시 손목을 베고, 발목을 벤다.

사지를 잘라낸 다음에는 팔꿈치, 무릎이다.

북궁백이 차근차근 왜인의 사지 길이를 줄여나가는 동안 해적들의 기세도 줄어들었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저들도 본능적으로 안다.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것을.

그걸 깨달은 자 중 용기가 있는 놈은,


“죽어!”


저 자처럼 달려든다.

그리고 죽는다.

혹은 지금처럼 제 이의 희생양이 되거나.


“헉!”


북궁백은 사지를 잃어버린 왜인을 버리고 머리만 살짝 움직여 스치듯이 검을 피했다.

이어서 해적의 품에 파고들어 단숨에 마혈을 짚었다.

동공이 확대된 녀석의 눈을 일견한 후 손목을 잘랐다.


“크아아악!”


북궁백은 무심하게 해적들을 보며 사지를 줄여나갔다.

기세가 꺾일 대로 꺾인 해적들은 사색이 된 얼굴로 흔들리는 눈동자를 숨기지도, 피하지도 못한다.

열두 번의 칼질을 끝으로 사지를 잃은 해적의 몸을 바다에 던졌다.


풍덩.


동료가 물에 빠졌어도 몸을 움직이는 놈은 없다.

기세가 완전히 잡아먹힌 적은 맹수에게 목을 내준 사슴처럼 모든 것을 체념하고 움직임을 멈춘다.


“무기를 버려라.”


덜그럭. 텅. 텅.

무심한 목소리에 해적들은 저도 모르게 무기를 버렸다.


“내려가서 노를 잡아라.”


해적들이 몸을 돌려 하판으로 달려가기 직전, 한 해적이 기어가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 그럼···.”


일순간, 해적들의 발이 멈췄다.

항구까지 북궁백과 대화하며 걸어왔던 그 해적은 힘겹게 비굴한 미소를 띄웠다.


“살려...”


‘퍽’ 소리와 함께 얼굴에 검이 박힌 해적이 뒤로 넘어갔다.

북궁백은 검을 걷어찬 발을 거두며 말했다.


“노를 잡아라.”


* * *


보타산의 항구에는 삼십여 명의 여인들이 검을 빼 들고 부두에 몸을 붙이는 배를 노려보며 살기를 흘리고 있었다.

특이하게도 여인들은 승복을 입고 있었으나 흑단 같은 머리카락을 곱게 묶어 늘어트리고 있었다.

그녀들은 보타암(普陀庵)의 제자들이었다.


보타암은 성관음을 모시는 불교 문파로 여자들로만 이루어져 있다.

사천성 아미산에 있는 아미파 역시 여승으로 이루어진 불교 문파이나 그곳은 정식으로 불가에 귀의한 승려로 구성된 반면에 보타암은 속가의 형식으로 적을 두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언제든지 속세로 떠나도 무방하며 그런 경우를 대비해 삭발하지 않고 행자로 남는다.

진정 불가에 귀의하고자 하는 이는 삭발을 하고 검 대신 목탁과 염주를 쥐어 보타산에 있는 다른 절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보타암 대신 검각(劍閣)이라 부르기도 했다.


배가 멈췄다.

하선을 위한 발판이 놓였고 겁에 질린 사람들이 허둥지둥 하선한다.

보타암의 제자들이 얼굴을 굳혔다.

나이가 어린 제자들은 살기를 더욱 뿜어내며 이를 갈았고, 나이가 있는 제자들은 불호를 외며 살심을 억눌렀다.

모를 수가 없는 얼굴이다.

얼마 전, 보타산을 침략해 사문의 식구들을 해친 해적들이었으니까.

뒤를 이어 북궁백이 모습을 드러내자 일제히 흠칫 놀라면서 소매로 코를 가렸다.


“욱!”


비릿한 혈향이 코를 찔렀다.

무슨 일이 있던 건지 흠뻑 젖어 축 늘어진 검은 무복에서 뻘건 피가 뚝뚝 떨어진다.

보보마다 발판에 진득한 흔적을 남겼다.


북궁백은 부두에 내려서자마자 해적들에게 시선을 주었다.

일렬로 서서 안절부절못하던 해적들은 그와 눈을 마주칠 생각도 못 한 채 황급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북궁백은 한 놈씩 마혈을 점한 후 보타암 제자들에게 다가갔다.

가장 앞에 나와 있는 중년 여자가 소리쳤다.


“그대는 누구죠? 무슨 연유로 저 해적들과 함께 왔는지, 배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소상히 밝혀야 할거에요!”


경계심과 적대감이 물씬 풍기는 목소리였다.

북궁백은 그 자리에 멈춰 포권을 취했다.


“복건성에서 온 북궁백이오.”


자신의 이름을 밝힌 북궁백은 주산에 도착했을 때부터 조금 전까지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그 말을 들은 중년 여자는 조금 적대감을 누그러트리긴 했으나 여전히 경계심을 풀지 않았다.


“본인은 보타암의 지안이에요. 보아하니 시주의 말이 사실인 듯싶으나 전적으로 신뢰하긴 어렵군요. 간악한 저들은 참배객과 섞여 들어와 본 문의 제자들에게 해를 입힌 전적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당신의 살기와 혈향도···.

지안은 뒷말을 삼켰다.

아직 정식 승려가 되진 않았으나 불도를 수행하고 있는 행자로서 겉으로 드러난 것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믿지 않아도 좋소. 나는 이 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소. 다만, 보타암의 행자들에게 물을 것이 있어 온 것이니 그것만 묻고 바로 떠나리다.”


지안은 의외라는 듯 눈을 살짝 크게 뜨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대답할 수 있는 거라면 알려드리지요.”

“보타암에서 진조의의 해적기와 유사한 해적기를 단 해적을 소탕한 적 있다는 소문을 들었소. 혹시 그곳에서 정혜련이란 여인을 구출하지 않았는지 여쭙고자 하오.”

“정혜련?”

“노예였소. 십삼 년 전, 복건성 평해위에서 다른 곳으로 팔려가는 중 해적에게 납치를 당했다고 하오.”


북궁백은 무언가 고민하는듯한 지안 외에도 다른 보타암의 제자들을 한눈에 담았다.

지안이 대표로 나섰다고 하여 꼭 그녀에게만 대답을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질문을 듣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꼭 그것이 누구나 알아차릴 정도의 반응이 아니어도 괜찮다.

북궁백처럼 말이 통하지 않은 이들과 마주한 경험이 많다면 눈빛만으로도 어느 정도 추측이 가능하다.


‘정혜련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군.’


북궁백의 눈 깊숙한 곳에서 한순간 빛이 번뜩였다.

수양을 쌓는 이들답게 어린 제자들까지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눈빛까지 다스리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어린 제자들은 전부 모르는 눈치였지만, 나이가 제법 있는 제자 중 몇몇은 놀라거나 경계심이 비쳐 나왔다.

상대를 살피는 것은 북궁백만이 아니다.

오감을 비롯한 기감을 더해 북궁백을 살피던 지안 역시 그가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걸 눈치챘다.


“그녀를 왜 찾는 거죠?”

“정인의 유품을 전하러 왔소.”


보타암 제자들 사이에 작은 소요가 일었다.

지안은 가볍게 발을 굴러 그들을 진정시킨 후 말을 이었다.


“사매들이 시주의 말에 반응한 모양이니 솔직하게 말하지요. 시주가 찾는 혜련 사매는 보타암의 제자가 되었어요. 하지만 정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군요.”

“누구나 마음속에 말할 수 없는 비밀을 품고 있지 않겠소? 만나게 해주시오. 이야기를 나눠보면 거짓이 아니란 걸 알게 될 것이오.”


북궁백의 말에 지안은 고개를 저었다.


“아까 말했다시피 본인은 시주에 대한 의심을 완전히 거두지 못했어요. 그리고 시주도 본인의 입으로 이곳에서 움직이지 않겠다고 했고요.”

“그럼 정혜련 행자를 불러주면 되지 않소?”

“사매는 큰 내상을 입어 몸을 움직일 수 없어요.”


북궁백은 답답한 마음에 미간을 좁혔다.


“이래도 안된다, 저래도 안된다. 그럼 어찌해야 하오?”

“유품을 저희에게 주면 사매에게 전달하지요.”


그러자 이번엔 북궁백이 고개를 저었다.


“지안 행자께서 날 의심하시듯이 나 역시 그녀가 내 전우의 정인이 맞는지 십 할 확신한 건 아니오. 이렇게 합시다. 정혜련 행자께 십오 연전, 막북으로 떠난 한수의 전우가 유품을 전하러 만남을 청한다 전해주시오. 그녀가 허락한다면 되지 않소?”

“아무리 사매가 허락하더라도 사문에 남자 외인을 들이는 것은...”

“그럼 존장의 허락도 함께 구하시오. 나는 그녀를 꼭 만나봐야겠소.”


더 이상 왈가왈부하기 싫었던 북궁백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지안은 북궁백의 완고한 태도에 순간 얼굴을 굳혔다가 이내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소연. 지금 바로 산문으로 올라가 보고 들은 바를 가감 없이 장문인께 아뢰거라.”

“예. 사부님.”


후열에 서 있던 가장 어린 제자가 공손히 읍소를 한 후 경공을 펼쳐 자리를 떠났다.

그러자 지안이 북궁백을 향해 물었다.


“장문인께서 허락하지 않으면 어쩔 건가요?”

“그러지 않길 바라오. 가급적 이곳에 머물며 허락을 구하려고 할거요.”


지안은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가급적이란 조건이 달렸다.

끝내 허락하지 않을 경우, 제 마음대로 사매를 만나겠다는 말이었다.

보타암을 무시한다고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겠다는 다짐으로 보였다.

필부에 불과하다면 그리 대수롭지 않으나 그의 기도, 분위기, 해적들에게 한 일을 생각하면 도저히 필부라고 보이지 않았다.

문득, 꿇어앉아 있는 해적들이 눈에 들어왔다.


“저들은 어찌할 건가요?”

“저 배를 움직이려면 사공이 필요해서 일단은 데리고 있을 생각이오.”

“돌아간 후에는요?”

“저들이 덤비지 않는다면 굳이 피를 볼 생각은 없소.”

“해적이란 걸 알면서도? 주산의 공관과 상관에 머물던 이들도 저들에게 죽임을 당했을 거예요.”

“그 광경을 직접 목격했으면 모를까, 나와 상관없는 일에 모두 관여하고 싶지 않소. 설사 그것이 악행이라 하더라도. 나는 악인을 단죄하기 위해 중원을 돌아다니는 사람이 아니오.”


북궁백의 어조는 시종일관 담담했다.

그것이 진심이라는 것이 유독 짙게 다가왔다.

그래서인지 보타암의 제자 대부분이 질린 기색을 드러내거나 분기를 보였다.

지안 역시 불편한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꾹 누르고 물었다.


“시주 혼자 타고 갈 수 있는 배를 내어 드린다면 저들의 처분을 저희에게 맡겨주실 수 있나요?”

“원한다면 그리하리다.”


아무렇지 않은 승낙에 지안은 소름이 돋았다.

순간적으로 그가 사람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로 보였다.

무심하게 모든 참배객을 내려다보는 인왕 혹은 피에 절은 마귀거나.

작은 섬에 살고 있다 하여 십오 연전 막북으로 떠났다는 말의 의미를 모르지는 않았다.

수십, 수백의 피를 보는 이곳도 현세의 지옥이라 할 만한데 수천, 수만의 피를 보았을 막북은 어떠했을지 상상만으로도 두렵다.

그곳에서 십오 년을 버틴 그의 인간성은 닳고 닳아 사라진 것일지도 몰랐다.

아니면 버티기 위해 인간성을 포기했거나.


“아미타불.”


지안은 불호를 외며 속으로 생각했다.


‘장문인. 허락하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 자는 마귀가 되어 산문에 피를 흘릴지도 모릅니다.’


지안은 만약 소연이 허락을 가져오지 않는다면 직접 장문인을 찾아뵈어 설득할 생각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기우에 그쳤다.

오래 지나지 않아 돌아온 소연이 장문인의 허락을 구해온 것이다.


“장문인 사조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혜련 사숙도 만남에 응했고요.”


지안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북궁백이 발걸음을 옮기며 말했다.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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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보타암-2 +1 24.06.17 820 25 12쪽
» 보타암-1 +1 24.06.16 853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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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해적-1 +1 24.06.13 897 19 12쪽
37 노예의 행방-2 +1 24.06.12 912 18 13쪽
36 노예의 행방-1 +1 24.06.11 918 19 13쪽
35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2 24.06.10 943 21 13쪽
34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2 +2 24.06.09 937 20 14쪽
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 24.06.08 963 21 13쪽
32 남창살인사건 -2 +2 24.06.07 963 20 13쪽
31 남창살인사건 -1 +2 24.06.06 971 22 13쪽
30 이별과 만남-5 +2 24.06.05 993 23 14쪽
29 이별과 만남-4 +2 24.06.04 1,008 25 13쪽
28 이별과 만남-3 +2 24.06.03 1,047 26 16쪽
27 이별과 만남-2 +2 24.06.02 1,063 24 14쪽
26 이별과 만남-1 +2 24.06.01 1,111 26 1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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