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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퇴역병의 무림보은행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6.20 18:15
연재수 :
45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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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81,0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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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0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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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DUMMY

사색이 된 진충이 북궁백에게 전음을 날렸다.


-금의위 북진무사(北鎭撫司) 소속 언상현 소기(小旗)요.


금의위는 금위친군지휘사사(錦衣親軍指揮使司)의 약자로서 황제의 직속 명령만 받는 친위대이다.

전원이 무공을 익힌 고수들로 금의위의 위명과 위세는 중원 전반에 알려질 정도로 대단했다.

황제의 호위 및 황궁 방위, 의장 같은 평범한 임무 때문이 아니라 황제의 명령에 따라 황제를 제외한 모든 이들을 대상으로 염탐, 체포, 구금, 조사, 집행까지 할 수 있는 초법적인 권한 때문이다.

그 초법적인 권한을 가진 기구가 바로 북진무사다.


“너는···.”


시신을 내려다보던 안성현이 입을 열었다.


“지금 누굴 죽인 것인지 명확히 인지하고 있느냐?”

“그렇소.”

“그의 숙부님과 숙모님이 누구인지까지?”

“그가 말해주었소.”

“그걸 알면서도...내 앞에서 형님을 죽여?”


언상현이 흉악한 얼굴로 돌아보며 으르렁거렸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던 숲속에 살을 엘 듯한 살기가 몰아쳤다.

이립도 되지 않은 사람이 발휘하는 것이라고는 믿기 힘든, 농밀하기 그지없는 살기였다.

북궁백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그가 내 가족과 지인을 죽인다기에 어쩔 수 없었소.”

“그저 입 밖으로 나온 헛소리에 불과했지.”

“당신도 그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고 있기에 경고했던 것 아니오? 과연, 헛소리에 불과했을까?”

“형님은 사파만 죽인다. 그렇기에 그동안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야.”

“사파 친우들이 있다고 하니 날 똑같이 사파로 여겼소.”


그 말에 언상현은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

대신 뜨거운 숨을 내뱉으며 북궁백을 노려보기만 했다.

그러다 갑자기 그의 정보를 줄줄이 읊기 시작했다.


“야인대장 북궁백. 십오 년 전, 갓난아기와 남궁세가를 방문, 남궁운으로 사칭해 야인대에 차출. 퇴역 후 남궁세가 방문. 그날 세가 안에서 소란 발생.”


그의 말이 나오자마자 북궁백의 얼굴이 바짝 굳었다.

언상현은 차디찬 눈으로 그 얼굴을 노려보며 계속 말을 이었다.

그 내용이 놀라울 정도로 정확했다.

산행에서 있었던 일까지 알았다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다녔다고 착각할 만큼.

언상현이 전음으로 방점을 찍었다.


-현 남궁세가에 십오 세에서 십칠 세 혈족은 셋.


북궁백의 눈은 미동조차 없었다.

다만, 그 눈을 마주 보고 있는 언상현은 눈 깊숙한 곳에서 검붉은 안개 같은 것이 스멀스멀 차오르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와 더불어 인중과 목덜미, 등이 가려웠다.

특유의 혈향이나 진득한 살기도 더욱 강해진 느낌이었다.

북궁백이 언월도를 고쳐잡는다.

그가 막북에 있을 때 어떤 위용을 자랑했는지 익히 잘 알고 있는 언상현은 그것만으로도 몰골이 송연해졌다.


“설마 날 죽일 생각인가?”

“...”

“금의위를 건드린다는 말은 곧 황명에 거역하는 셈이다. 구족이 참형에 처하는 역모지. 내 사촌 형님을 죽인 것과 비교도 안 될 만큼 중대사안인 것을 모르나?”

“...잘 아오.”


북궁백은 그리 대답하면서 서서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언상현의 말이 조금 빨라졌다.


“아는데도 멈추지 않는군. 나 하나 죽인다고 끝날 것 같나? 자네에 대한 정보를 나만 알고 있을 것 같아?”

“그러지 않겠지.”


북궁백의 몸에서 살기가 화산처럼 터져 나왔다.

그 살기는 언상현의 살기를 순식간에 지워버린 것도 모자라 꽤 멀리 떨어져 있던 진충을 비롯해 언상현과 함께 도착한 안찰사 관원들의 핏기를 없애버렸다.

가장 멀리서 낑낑대던 종후견은 아예 거품을 물고 눈을 뒤집기도 했다.

그 살기의 여파만으로도 그랬다.

온전히 뒤집어쓴 언상현은 머릿속이 하얗게 물들었고, 심장이 쥐어짜이는 고통을 느꼈다.

북궁백은 언월도를 치켜세우며 천천히 말했다.


“전부 죽이겠소. 그 사실을 알고 모든 놈을. 모조리 불태우겠소. 그 정보를 보관한 모든 전각을. 나 역시 죽겠지만, 당신들은 단 한 놈도 살아남지 못할 거요.”


마혈이 짚인 것처럼 완전히 얼어붙은 언상현의 머리 위에 언월도가 수직으로 세워졌다.

시퍼렇게 질린 채로 숨도 쉬지 못하고 있던 언상현은 단전에서 내공을 있는 대로 퍼 올려 간신히 숨통을 틔웠다.

그 직후,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만! 금의위를 없앤다고 끝이 아니다! 네 정보는 오군도독부는 물론 동창과 육부까지 전부 알고 있어!”

“그게 무슨 소리지?”

“황실에서 너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멀리서 듣고 있던 전충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언상현은 진정으로 북궁백이 금의위를 없애버릴 수 있다고 여기는 건가?

금의위 수만 오천에 궁성을 지키는 금군이 십만 명이다.

야인대의 위명은 들었지만, 그것이 가능할 거라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그게 가능하다면 십대고수의 수좌라는 무신도 그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왜 저렇게 말하는 거지? 목숨이 위험해서 그러는 건가?’


사실 전충은 상당히 오해하고 있었다.

무력만 놓고 보자면 북궁백은 무신은커녕 남궁천도 이길 수 없다.

그들도 할 수 없는 황성을 뚫는다는 것이 가능할 리 만무하다.

그러나 여러 가지 계략을 펼치고 금의위 지휘관들만 노린다면 꼭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다.

북궁백은 무인이 아닌, 명군 출신이기에 그렇다.

전충이 그렇게 생각하는 사이 북궁백과 언상현의 대화가 계속 이어졌다.


“상관없소. 조치를 취한 후 금의위만이라도 전부 없애겠소.”

“그럴 필요 없어! 금의위는 너와 척질 생각이 없다! 오히려 널 끌어들이길 원해!”

“그럼 조금 전 일은 뭐였소?”


언상권이 이빨을 갈며 소리죽여 말했다.


“언가에서 내놓은 자식이라고는 하나 내 사촌 형님이다. 피붙이가 죽었는데 말이 곱게 나가겠나?”

“그게 전부는 아닌 것 같군.”


가족을 잃은 분노의 표출이었다면 굳이 금의위의 정보까지 꺼낼 필요는 없었다.

언상권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주저했다.

그러나 북궁백이 언월도를 움직이자 마지못해 실토했다.


“이왕 끌어들일 거 금의위에게 복종하게 할 셈이었다. 그렇게 되면 내 직위가 더욱 빠르게 올라가겠지.”

“결국, 개인 욕심 때문이군. 그럼 이제 내가 어찌해야 할지 말해보시오.”


언상권은 눈을 질끈 감았다.

돌이킬 수만 있다면 대가를 치러서라도 그러고 싶은 마음이다.

막북에서는 사려 깊고 조심성이 많았다고 하던데 이렇게까지 막 나갈 줄은 생각도 못했다.

단단히 실수한 것이다.

이미 물은 저질러졌으니 닦기라도 해야 한다.


“이 일은 내가 덮겠다. 입단속도 시키지. 내가 너에게 죽을 뻔했다는 걸 윗선에서 알게 되면 나는 그날로 끝이야.”

“왜 그렇소?”

“다들 너를 탐내고 있으니까! 출셋길은 막히고 북진무사 소속으로 저지른 것이 있으니 관둘 수도 없지. 원한이 있는 놈들이 내 목숨을 노릴 테니.”


북궁백은 이를 가는 언상현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짓말은 아니군.’


그러나 온전히 언상현만 믿고 넘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면 변심하여 음모를 꾸밀지도 모르니까 말이다.

그러니 방수가 필요하다.

북궁백은 그에 적합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강. 안부를 묻기 전에 도움을 먼저 청하게 되는구나.’


이참에 다른 전우들에게도 서신을 보내기로 했다.

북궁백은 눈짓으로 암찰사 관원들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저들은 건드리지 마시오.”

“그럼 내가 곤란해.”

“잘 구슬려보시오. 나중에 정치적 동반자가 될지 누가 알겠소?”

“저들이? 별로 기대는 안 되는데···. 그리고 부담도 너무 크고.”

“개방의 추걸개 선배께 부탁해놓을 거요. 이들이 살아있는지 알려달라고.”


언상현이 잔뜩 얼굴을 구겼다.

북궁백은 그를 보며 말했다.


“나도 안전장치는 있어야 하지 않겠소?”


한참 망설이던 언상현은 끝내 고개를 끄덕였다.

실패를 인정한 그는 의외로 협조적이었다.


“그렇게 하지.”

“그리고···.”

“또 뭐가 필요한가?”


언상현이 인상을 쓰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언상권이 이런 짓을 벌인 이유를 알고 있소? 작은 원한이라 하던데.”

“알고 있긴 한데···. 그걸 원한이라 할 수 있나?”


언상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더니 순순히 이야기해 주었다.


“상권 형님이 어렸을 때 좋아했던 소녀가 있었다. 외가에 갔을 때 만난 중소문파의 딸이었지. 형님은 매일 외가에 가고 싶다고 졸라댔을 정도였지. 어느 날 그 문파의 사정이 어려워졌고, 고리대금업을 영위하는 사파에 손을 벌렸다. 당연히 풍비박산 났지. 재산은 빼앗기고, 문주는 목이 잘리고, 사모와 딸은 기방으로 팔려갔어. 형님이 찾아갔을 땐 이미 늦었지. 그게 전부야.”


언상현은 이렇게 정의했다.


“철없는 시절, 순수하기만 한 추억.”


* * *


전충은 언상현과 따로 밀약을 맺어 보고 들은 것을 함구하기로 하고 암찰사가 뇌옥에 가둬두었던 무인 하나를 빼돌려 흉수로 둔갑시켜 이 사건을 마무리했다.

북궁백은 전충과 나중산을 만나 작별 인사를 한 뒤, 다시 복건성으로 향했다.

작별 인사를 하며 전충이 말하길.


-언 소기가 힘을 쓴 모양이오. 상관들도 모른 척 넘어가 주더이다. 앞으로 그대가 불편할 일은 없을 거요.


그러면서 고맙다고 말했다.

사건도 해결하고 위로 올라갈 동아줄과 이어주었다면서.

더불어 나중에 곤란한 일이 있으면 꼭 서신을 보내라고 말했다.

스스로 자신은 신의를 중히 여긴다고 말했다.

등쳐먹지 않는다는 언상권의 말이 떠올랐으나,


‘적어도 언상권보단 믿을 만하지.’


적어도 그는 먼저 믿음을 보여준 사람이니까.

어쨌든 딱히 개의치 않는다.


북궁백은 무이산맥을 넘은 후 소무현, 연평부를 거쳐 십오 일 만에 복건성의 성도, 복주에 도착했다.


복주는 대표적인 무역항 중 하나로서 환관 정화의 하서양(下西洋) 함대가 실질적으로 출발한 지역이다.

건국 직후 시행된 해금령으로 인해 사무역은 엄격히 금지되었으나, 조공무역의 핵심 무역항 중 하나로서 중원 각지의 상인들이 몰리는 상업의 중심지였다.

몇 년 전, 정화의 함대가 귀환하였기에 복주에는 상인과 하릴없이 시간을 보내는 수군병으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시전 거리마다 물건을 파는 장사치와 물건을 흥정하는 사람들, 술에 취해 돌아다니는 병사들과 이제 막 들어오는 상단 및 표국 행렬로 시끌벅적한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곤륜노와 색목인도 자주 보이는군.’


객잔에 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 북궁백의 눈에 수갑과 족쇄를 찬 곤륜노들이 사슬로 엮인 채 한 색목인을 뒤따르는 모습이 보였다.

곤륜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고개를 땅으로 떨구고 있고 기운이 없는 것이 밝은 얼굴로 당당한 보무로 나아가는 색목인의 피부색과 함께 극렬히 대비되었다.


‘인시(人市)가 상당히 활발하구나.’


인시란 노예를 사고파는 시장이다.

대도시에 가면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지만, 이처럼 시전 거리에서 당당히 구속당한 노예가 돌아다니는 것은 처음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귀향한 이후 노비가 꽤나 많아졌다.

전 황제의 원정과 정화의 하서양으로 많은 백성을 동원하였고, 높은 세금 때문에 견디지 못한 양민들이 자신의 몸을 팔아넘겼기 때문이다.


‘오랑캐의 침략에서 백성과 나라를 보호하겠다더니 오히려 백성들을 수렁으로 빠트렸구나.’


북궁백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

돌아온 병사 중 몇이나 예전의 삶을 되찾을 수 있을지, 야인대 친우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문득 걱정되었다.

식사를 마친 북궁백은 객잔을 떠나 해간원이란 장원을 찾아갔다.


‘한수···.’


야인대는 각자 서로의 사정을 묻지 않았지만, 가끔 저 스스로 털어놓을 때가 있다.

독석보로 귀환해 진탕 술을 퍼마셔 만취가 된 이들이 그렇다.

야인대로 와야만 했던 사정은 다양했다.

강제로 차출된 이들이 많았지만, 의외로 자원한 이들도 상당수 있었다.

누군가는 가문 때문에, 누군가는 형제 때문에, 누군가는 빚을 갚고자, 누군가는 도피처로, 누군가는 애정 때문에.

지금 찾아가는 해간원은 연정 때문에 자원한 전우의 정인이 사는 곳이었다.


큰 기대는 하지 않는다.

십오 년이란 세월은 결코 짧지 않으니까.

누군가와 혼인을 했을 수도 있다.

부모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죽었을 수도 있다.

한수는 옥가락지를 남기며 만약 그런 경우 복주 앞바다에 던져달라고 했다.


쿵쿵쿵.


북궁백은 그러지 않길 바라면서 해간원의 문을 두드렸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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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보타암-1 24.06.16 494 9 13쪽
40 해적-3 24.06.15 551 10 13쪽
39 해적-2 24.06.14 528 11 13쪽
38 해적-1 24.06.13 548 10 12쪽
37 노예의 행방-2 24.06.12 566 9 13쪽
36 노예의 행방-1 24.06.11 562 10 13쪽
»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24.06.10 578 11 13쪽
34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2 24.06.09 584 9 14쪽
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4.06.08 608 11 13쪽
32 남창살인사건 -2 24.06.07 610 9 13쪽
31 남창살인사건 -1 24.06.06 613 11 13쪽
30 이별과 만남-5 24.06.05 624 12 14쪽
29 이별과 만남-4 24.06.04 642 14 13쪽
28 이별과 만남-3 24.06.03 669 14 16쪽
27 이별과 만남-2 24.06.02 685 12 14쪽
26 이별과 만남-1 24.06.01 727 14 17쪽
25 형산혈사-3 +1 24.05.31 716 10 15쪽
24 형산혈사-2 24.05.30 668 13 13쪽
23 형산혈사-1 +2 24.05.29 701 11 13쪽
22 형산-4 24.05.28 688 11 14쪽
21 형산-3 +1 24.05.27 714 13 14쪽
20 형산-2 24.05.26 716 11 13쪽
19 형산-1 24.05.25 759 12 15쪽
18 피의 첫걸음 -3 24.05.24 776 12 16쪽
17 피의 첫걸음 -2 24.05.23 775 1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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