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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7.01 18:30
연재수 :
56 회
조회수 :
76,217
추천수 :
1,496
글자수 :
348,090

작성
24.06.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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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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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6쪽

반야(反夜)-6

DUMMY

만락광야의 팔이 예(乂)자로 교차했다.

그의 손을 떠난 쌍월륜이 초삭(草索)처럼 몸을 꼬며 빛살처럼 날아들었다.

북궁백은 그의 팔이 교차하자마자 비무대에 언월도를 박아넣은 채 몸을 움직였다.


굳이 쌍월륜을 상대할 생각이 없었다.

언뜻 보기에도 대기를 이지러트리는 것이 보통 위력이 아니었다.

게다가 십오 장가량 떨어진 거리.

이는 만락광야의 권역이지, 그의 권역이 아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은 최소한의 손실로 권역에 끌어들이는 것이요, 그 권역에 묶어둘 수 있게 장소를 좁히는 일이다.

그것이 생사결의 장소를 수상 비무대로 제한한 이유, 지금 언월도를 박아놓고 뗏목을 부수는 이유였다.


그런데 갑자기 조금 전까지 그가 있던 곳에서 아주 작은 파공성이 들렸다.

불길함을 느낀 북궁백은 반사적으로 전력을 다해 언월도를 그어 올렸다.


꾸우웅.


언월도와 월륜이 부딪친 접점에서 불현듯 주먹만 한 구름이 탄생했다.

병기와 병기가 부딪쳤음에도 금속성은 울리지 않았다.

충돌한 여파로 발생한 압력이 대기를 응축시키며 발생한 구름이 소리를 삼킨 것이다.

이윽고, 구름이 폭발했다.


푸엉!


그 범위 안에 있던 비무대가 폭사함과 동시에 북궁백의 신형이 튕겨 나왔다.

십 장 밖으로 날아간 그는 가까스로 몸을 뒤집어 언월도를 내리찍었다.

끔찍할 정도로 저릿한 팔에 덜컥, 과부하가 걸린다.

그로부터 일 장을 더 밀려나고 나서야 비무대에 발을 붙였다.

그러나 안심하기엔 일렀다.

또 하나의 월륜이 대기를 찢어발기며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방(防)? 회(回)?’


고민은 찰나에 불과했다.

북궁백은 월륜을 시야에 담고 만락광야가 서 있는 방향으로 보법을 밟았다.

그 직후, 월륜이 누가 잡아당긴 것처럼 방향을 틀었다.


“흡!”


대비하고 있던 북궁백은 언월도의 넓은 면으로 월륜을 후려쳤다.

굉음이 터져 나오며 월륜과 북궁백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튕겨 나갔다.


‘성공이다.’


호구가 찢어지고 근육이 뚜둑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이만하면 충분히 감수할 만한 교환이다.

만락광야와의 거리를 좁혔으며 월륜의 움직임을 확인했기에.

적을 알면 알수록 승리할 가능성은 커진다.


공중에서 신형을 돌린 북궁백이 눈을 부릅떴다.

어찌 된 일인지 처음 튕겨낸 월륜을 손에 쥔 만락광야가 눈앞에 있었다.

그가 월륜을 내리쳤다.


쩌어엉!


귀를 떨쳐 울리는 금속성과 함께 북궁백의 몸이 비무대에 처박혔다.

숨이 턱 막히는 고통이 느껴지며 갈라진 틈 사이로 솟구친 물이 온몸을 적셨다.

그런 그에게 하늘에서 월륜이 떨어져 내렸다.


“나려타곤!”


멀리서 관중들의 경악이 들려왔다.

한심한 듯 혀를 차는 소리도 섞여 있다.

그러나 북궁백은 얼굴을 붉히거나 그들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았다.

안력과 청력, 기감을 극대화해 만락광야와 쌍월륜의 움직임을 좇았다.


쉬익.


두 번째로 쳐냈던 월륜이 만락광야에게 돌아왔다.

어떻게 한 것일까?

고민할 시간도 없이 수면 아래서 살기가 느껴졌다.

방금 자신이 있던 곳을 관통했던 월륜이 솟구치는 중이었다.

피하기는 늦었다.

몸을 최대한 비틀었다.


스아악.


얼굴 한 치 앞에서 월륜이 날아올랐다.

예기가 실린 돌풍이 눈을 할큄에도 북궁백은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다.


‘없다.’


만락광야와 월륜을 잇는 그 무엇도.

그렇다면 무슨 방법을 쓴 것인가?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북궁백은 훌쩍 몸을 물렸다.

비무대로 내려선 만락광야는 그 자리에 서서 전음을 보냈다.


-아해야. 본좌에게 올라오라 말하던 그 기세는 어디 가고, 몸을 물리는 것이냐? 본좌가 즐겁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

-혹 도망치려는 건 아니겠지? 너에게 도망칠 곳은 없나니...네가 등을 보이는 순간, 나는 소화방에 소속된 모든 이들의 피로 서호를 물들일 것이니라. 끌끌.


음험한 웃음을 흘린 만락광야가 팔을 교차하며 출수를 준비했다.

북궁백은 즉시 자세를 낮추며 월륜을 받아낼 채비를 갖췄다.

그러자 만락광야가 팔을 내리더니 내공을 담아 대소를 터트렸다.


“허허허. 다들 저 거구가 잔뜩 움츠린 꼴을 보시오. 조금 전 나려타곤도 그렇고, 본좌 앞에 무인 대신 살찐 당나귀가 여기 있구려.”

“우.”


그에게 호응한 관중들이 야유를 퍼부었다.

꽤 길게 이어지던 야유가 잦아들더니 이어서 비난이 쏟아졌다.


“이 겁쟁이 놈. 자라처럼 웅크려서 뭐 하는 것이냐?”

“광야를 도발할 때처럼 사내답게 덤비거라!”

“이런 졸전을 보여 줄 거면 왜 금일천을 암습한 거냐? 싸워라!”


이내 하나가 되어 목에 핏대를 세우고 고성을 토해냈다.


“투(鬪)! 투! 투!”


그 한 마디가 터져 나올 때마다 서호에 물결이 일었다.

그것도 잠시, 만락광야가 한쪽 팔을 들어 올리자 목소리가 조금씩 줄어들었다.

그 소리가 완전히 줄어들길 기다린 만락광야가 차분히 입을 열었다.


“솔직한 심정을 털어놓자면 그동안 상당히 적적했소. 오만한 말이오만, 정상에 오른 자의 고독이라고 할까? 무인으로서 호승심이 점점 식어가는 중이었지.”


만락광야가 손가락으로 북궁백을 가리켰다.


“그러던 중에 저 당나귀가 항주에 나타났소. 그리고 본좌와 생사결을 치르기로 약속했다는 소문을 퍼트렸지. 본좌는 심히 황당했소만, 한편으로는 식은 줄로만 알았던 심장이 뛰더이다.”


그는 거칠게 자신의 가슴을 치며 패기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본 관중들이 즐거워하며 함성으로 화답했다.


“알다시피 화경에 오른 뒤, 누구도 본좌에게 맞서려 하지 않았소. 흥미가 돋더군. 그래서 저놈의 수작인 줄 알면서도 받아들인 것이오.”


그때, 북궁백의 귓가에 화경이란 말이 화살처럼 틀어박혔다.

화경? 화경이라···. 화경이 왜?

화경이란 단어를 읊조리던 중, 불현듯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그거였어!’


북궁백의 눈앞에 과거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퇴역해 남궁세가에 찾아간 날, 남궁천과의 첫 대면이.

그는 남궁기가 떨어트린 검에 팔을 뻗자 검이 유령처럼 날아와 그의 손에 안착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모른다.

허나, 이곳에는 그때 그걸 시현한 장본인이 와 있다.


-어르신.

-무슨 일인가? 이제 만용이었다는 생각이 드는가?


조금은 탐탁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손자 손녀를 나무라는 느낌이었지, 빈정거리는 느낌이 아니었다.


-아닙니다. 질문이 있습니다.

-허 참. 고집이 여전하군. 말하게.

-처음 만난 날, 어르신께서 손을 뻗어 땅에 떨어진 검을 당겨오셨지요. 그게 무엇입니까?

-허공섭물이네만···. 자네는 만락광야가 무슨 수로 쌍월륜을 다루는지 몰랐단 말인가?

-예.

-...당황스럽지만 그걸 따질 때가 아니지. 잘 듣게. 허공섭물은···.


그렇게 전음을 주고받는 사이, 만락광야는 계속 관중들에게 이야기를 늘어놓고 있었다.


“본좌는 유흥과 향락의 애호가로서 이왕 생사결을 펼치는 김에 다수의 관중을 모아 즐거움을 공유하기로 했소. 그런데 저 미련한 당나귀 놈이 다 망쳐버렸지.”


만락광야는 어조에 변화를 주고 몸짓을 더해 관중도의 몰입을 높였다.

그 모습은 꼭 시전에서 입담으로 사람들을 끌어모아 엉터리 약재를 팔아넘기는 사기꾼과 비슷했다.


“하여 본좌는 그대들에게 사과하고자 하오. 그리고 저놈의 배를 갈라 단죄할 것이오.”


관중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만락광야의 별호를 연호했다.

두 팔을 벌린 채 사방을 돌아보며 관중의 환호를 만끽한 만락광야가 북궁백을 바라보았다.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야.”

“그럴 수 있다면.”


북궁백은 무심한 어조로 대답하며 비무대를 살폈다.

이미 삼분지일은 부서지거나 고정한 끈이 풀려 둥둥 떠 있었다.

그 잔해는 충돌의 여파로 일어난 물결에 빌려 관중선까지 밀려난 상태였다.

의도한 바이나, 생각보다 거리가 가깝다는 문제가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고민하는 사이, 만락광야가 월륜을 날렸다.

월륜에는 강기가 아닌 검사가 맺혀 있었다.

강기가 맺혀 있을 때는 강기 덩어리가 날아오는 것 같았지만, 지금은 월륜 자체가 커진 느낌이었다.

그 위력은,


가가가각.


월륜을 받아낸 북궁백은 한 걸음 물러서야 했다.

몸 전체가 울리는 위력이었으나,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다.

다만, 그 월련이 날아오는 간격이 훨씬 빨라졌고 튕겨 나가는 방향을 조절하는 느낌이었다.


‘날 얕보고 있군. 그리고 어르신의 조언대로야.’


남궁천은 허공섭물의 단점을 알려주었다.

허공섭물은 강기와 함께 쓰기에는 내공 소모가 만만치 않다는 점과 내공 운용이 난해해진다는 점.

그러면서 쌍월륜의 크기가 작고 가볍다 해도 십오 장이 넘는 거리에서 허공섭물을 자주 펼치는 것은 화경이라고 해도 쉽지 않다고 평했다.


허나 쉽지 않다고 하여 불가능한 건 아니다.

단기결전을 노리고 강기를 실었다면 북궁백은 반드시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다.

그가 강기를 받아내는 방식은 양으로 질을 압도한다는 개념이었으니까.

그 말인즉, 매 합마다 진원진기를 떼어내야 한다는 말이다.

혈도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물론, 언월도를 타고 육신에 가해지는 충격도 엄청나다.


‘다행이지.’


관중을 위해, 자신의 유흥을 위해 농락하는 방향으로 틀었으니까.

그렇기에 만락광야는 대전사에 비할 바가 아니다.

북궁백은 머리로 날아오는 월륜을 직시하며 일 보를 내디뎠다.

그가 서 있는 뗏목의 고정끈이 끊어지면서 발목까지 물이 차올랐다.

무릎을 굽힘과 동시에 흉곽을 허벅지에 붙인다.

관중들이 비난하는 것처럼 자라처럼 웅크렸다.


-아무리 만락광야가 허공섭물에 능통하다 해도 자유자재로 방향을 전환할 순 없어. 그건 어검술(御劍術)이야. 무림에서 딱 한 사람, 무명무신만 펼칠 수 있는 현경의 경지지.


남궁천의 조언을 맹신하진 않는다.

다만, 지금까지의 배려와 확신에 찬 목소리를 보면 참고할 여지는 충분하다 생각했다.

그 판단이 옳았다.


쉬악!


등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그러나 운신에 영향을 줄 정도는 아니다.

북궁백은 전력을 다해 발을 박찼다.

‘꽝’하는 폭음과 함께 그의 몸이 발사되었다.

만락광야가 월륜을 던질 틈도 없이 순식간에 십 장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전력으로 언월도를 휘둘렀다.


“이놈! 잔수작을···.”


만락광야는 고함을 치며 물러서는 대신 정면 대결을 선택했다.


쩌엉.


무지막지한 쇳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일어났다.

비무대가 출렁이고 파도가 일어나 근처에 있는 배를 덮쳤다.

배에 타고 있던 관중들이 비명을 질렀으나, 연이은 공방에 묻혀 널리 퍼지지 못했다.


“큭!”


십여 합에 걸친 공방 끝에 먼저 몸을 물린 것은 만락광야였다.

대경한 그의 눈에서 치욕과 당황이 묻어나왔다.

상상을 넘어서는 괴력을 지녔다는 소문은 들었다.

별호에 붙은 붕산이란 문자 역시 북궁백의 힘이 남다르다는 것을 표현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럼에도 만락광야는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본좌는 그런 하수들과 눈높이가 다르다.’


그런데, 그런데···.

손아귀가 찢어질 것 같다.

어깨가 끊어질 듯 아파오고, 미처 해소하지 못한 여력이 뼈를 울렸다.

나이를 먹어 육신이 노쇠한 것인가?

향락을 즐기느라 육신이 퍼진 것인가?


‘그럴 리가.’


만락광야는 인정했다.

북궁백의 거력이, 아니 신력이 자신을 뛰어넘었다고.

그 직후, 그의 눈빛이 진중하게 바뀌었다.


스스스.


북궁백이 휘두른 일참이 그의 몸을 갈랐다.

그러나 허공을 가른 듯 손에 걸리는 감각이 없었다.

놀란 북궁백이 눈을 치켜뜨자 물에 비친 인형을 흩트리듯 그의 잔영이 지워졌다.

만락광야의 독문신법, 월령보(月靈步)다.


만락광야의 몸이 유령처럼 스산하게 미끄러지며 북궁백의 측면을 파고들었다.

북궁백은 창대로 월륜을 막아냈으나, 어느새 자리를 이동한 만락광야가 연격을 퍼부었다.


따라라랑.


북궁백은 단번에 수세에 몰렸다.

만락광야는 절대로 힘으로 누르려 하지 않았으며 누구나 감탄할만 한 상승 묘리를 선보이지도 않았다.

쾌(快), 쾌, 쾌.

오로지 쾌였다.

북궁백은 그 속도를 따라가는 것도 버거웠다.

가까스로 창대만 움직여 투로 앞을 막아서는 게 전부였다.

그러던 중, 등 뒤에서 예기가 느껴졌다.

위기를 느낀 북궁백은 이를 악물고 몸을 틀었으나,


스걱.


만락광야는 빈틈을 놓치지 않고 팔뚝을 베었다.

이어서 다른 월륜을 회수한 그가 지혈할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인다.

야심한 밤을 밝히는 월광처럼 시야 가득 쌍월륜이 채워진다.


“크으윽.”


베이고 베이고 베인다.

차가운 날붙이의 느낌이 가시기도 전에 새로운 통증이 치솟았다.

전신에 자상이 그어졌다.

각각의 상처는 깊지 않다.

운신에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나 북궁백은 알고 있다.

야금야금 갉아 먹히고 있다는 것을.

차가울 정도로 신중한 만락광야의 눈빛이 증명한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북궁백은 마음을 굳혔다.

진원진기를 떼어내 이미 한계치에 가까운 혈도로 흘려보냈다.


쯔즈즉.


몸속에서 그런 소리가 들리는듯했다.

팽창할 대로 팽창해 찢어지기 직전인 혈도가 비명을 지르는 것이다.

그러나 무시한다.

쌍월륜에 몸을 베이는 것 또한.

내상과 외상은 치료할 수 있다.

살아만 있다면.


슈악, 스악.


쌍월륜이 옆구리와 허벅지를 베고 지나갔다.

만락광야의 차분한 눈에 의문이 깃들었다.

그리고 그 눈은 경악으로 바뀌며 황급히 월령보를 펼쳤다.


부와악!


폭풍이 불어닥치며 그의 잔영이 일거에 지워졌다.

만락광야는 나풀거리는 흉부를 내려다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그러나 안심할 때가 아니었다.

언월도가 떨어져 내린다.

하늘이란 천을 끌어 내리면서.

만락광야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피해야 해!’


그러나 잔영을 만들어 벗어나기 위해선 반 호흡이 부족했다.

그 찰나의 시간.

북궁백은 자신의 살을 주고 그 시간을 가져온 것이다.


만락광야는 이를 악물고 월륜을 들어 올렸다.

곧이곧대로 받아낼 생각은 하지 않았다.

흘린다.

유의 묘리는 익힌 적이 없지만, 정상은 하나로 통하는 법.

힘의 방향성을 바꾸는 것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다.

금일천을 가르치며 몇 번이고 선보였다.

분명 그랬는데.


“...!”


손목이 꺾였다.

근육이 찢어져 올올히 흩어지고, 팔꿈치가 부스러졌다.

어깨가 탈골되고 목 허리, 다리를 거쳐 발끝까지 무지막지한 신력이 짓눌렀다.


“끼아아압!”


귀를 째는듯한 기합성이 장내를 떨쳐 울렸다.

만락광야는 그동안 머금고 있던 여유를 내던지고 사력을 다했다.


꽈아아아앙!


굉음이 터져 나오며 물기둥이 삼 장이나 치솟았다.

그 물기둥은 만락광야의 가슴에서 한 감정을 깨끗하게 지워냈다.


즐거움이란 감정을.


그리고 얼굴에 박힌 자잘한 나무 파편은 그가 까맣게 잊고 있던 감정을 되새겼다.


“...”


만락광야가 눈을 좁혔다.

가슴속에 철철 넘치는 이 감정은 언젠가 느꼈던 것 같은데 생소했다.

살펴보자면 절대 보고 싶지 않고, 어서 빨리 자리를 떠나고 싶고, 어디론가 쫓아버렸으면 하는 기분.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루하군.’


그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르자마자 축 늘어진 손에서 월륜이 떨어져 내렸다.

월륜이 비무대에 떨어져 ‘철그렁’ 소리가 울리는 순간,


스스스.


등을 돌려 전력으로 월령보를 펼쳤다.

그리고 보았다.

그것은 비가 온 뒤 만평산을 타고 흘러내리는 운무처럼 허리를 감싸오는 핏빛 운해를.

그 직후, 만락광야는 문득 다리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가까워지는 서호의 밑바닥을 바라보며 허탈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따라...재미없구나.’


그것이 마지막 상념이었다.

항주의 밤을 지배하던 절대고수의.

그리고 황천길로 떠나는 그를 배웅하는 수많은 사람의 장송곡은,


“우와아아아!”


북궁백을 향한 관중들의 함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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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 24.06.08 1,219 24 13쪽
32 남창살인사건 -2 +2 24.06.07 1,211 23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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