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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6.29 18:30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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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21
추천수 :
1,348
글자수 :
336,997

작성
24.06.23 18:15
조회
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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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글자
13쪽

권력자-2

DUMMY

관원은 북궁백이 전혀 예상지 못한 곳으로 데려갔다.

바로 구 황궁, 조천궁이다.

황궁 안쪽으로 들어가던 중에 넓은 광장 한쪽에 쌓여 있는 자재들이 보였다.

재천도를 계획 중이라더니 이문지가 운송하던 자재들을 쌓아 놓은 듯했다.

외조와 내정을 가르는 중문 앞에 도착하자 관원이 말했다.


“여기부터는 그대 혼자 들어가시오.”


북궁백은 고개를 끄덕인 후 혼자 중문을 넘었다.

내정으로 들어가자마자 거대한 금빛 전각 앞 광장에 서 있는 한 무리의 무관들과 환관들이 보였다.

그들은 한 사람을 원형으로 둘러싸 철통같이 호위하고 있었는데, 누가 호위대상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그들에게 다가가자 무관 다섯이 검자루에 손을 올리고 다가왔다.


“병장기를 내려놓고 의복을 벗어라.”

“의복까지 말입니까?”

“두말하지 않겠다. 벗어라.”


북궁백의 미간이 좁혀졌다.

병장기와 짐을 내려놓는 건 상관없으나 옷을 벗으라니.

자신을 안내한 조무도 그렇고 얼마나 대단한 자이길래 이렇게까지 철저한 걸까?

설마 황제가 와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금의위와 동창이 이곳을 물샐틈없이 지키고 있었겠지.


북궁백은 일단 철봉과 기형도를 내려놓고 머뭇거렸다.

무관들이 눈을 부라리며 무언의 재촉을 가했지만, 영 내키지 않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때였다.


“되었다. 그냥 데려오도록.”


위엄있으면서도 중성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러자 여자처럼 얇고 가는 환관의 목소리가 뒤를 이었다.


“태감(太監). 저자가 태감께 위해를 가할까 두렵습니다.”

“그리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그리고 오랜만에 돌아왔다고 내가 누구인지 잊은 것인가?”

“태감! 그런 뜻이 아니오라···.”


계급이 낮은 환관이 당황해하자 태감이란 자가 웃으며 말했다.


“농을 한 것이니 첩형관(貼刑官)은 괘념치 마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그나저나 객을 오래 세워두었다. 어서 이리 데려오도록.”


무관들이 눈치를 주었다.

자신이 만나는 자가 누구인지 눈치챈 북궁백은 순간적으로 긴장했으나, 내색하지 않고 그에게 다가갔다.

그를 둘러싸고 있던 무관과 환관들이 차례대로 길을 열었다.

그러면서 곁을 지나갈 때마다 눈빛으로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경고를 날린다.

그럴 생각은 추호도 없다.

마침내 그와 마주했다.


주변에 있는 이들보다 머리 한 개는 더 큰 장신.

북궁백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장대한 기골.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압도적인 존재감과 기도.

수염 하나 없는 하얀 얼굴에서 느껴지는 여유와 위엄.

연왕 주체를 황제로 올린 장본인이자 그의 총애를 독차지한 공신, 정화였다.

그만큼 연식이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정작 용모는 북궁백보다 훨씬 어려 보였다.


“북궁백이라 합니다. 태감을 뵈어 영광입니다.”


북궁백은 즉시 한쪽 무릎을 꿇고 포권했다.

정화가 웃으며 말했다.


“자네와 나는 만난 적이 없거늘, 내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나 보군.”

“태감의 위명은 장성 너머에도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그런가? 하하.”


호탕하게 웃은 정화는 호의가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선제께서 막중한 과업을 내리신 탓에 원정에 참여할 수 없었으나, 야인대의 활약은 오래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네.”

“과찬이십니다.”

“과찬이 아닐세. 자네들이 없었으면 원정으로 이룬 성과의 삼분지일은 반환해야 했겠지.”


북궁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왜 부른 건지 의도를 알 수 없는 이상 빌미가 잡힐 여지가 있는 말은 조심해야 했다.

그러나 정화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꺼냈다.


“한 번쯤은 만나보고 싶었으나 도통 인연이 허락하지 않더군. 그런데 남경에 내려오니 자네의 소식이 귀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운명인 게야.”

“그리 생각해주시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일어나게. 안에 들어가서 차나 한잔하지.”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북궁백이 몸을 일으키자 정화가 서슴없이 몸을 돌리며 등을 내보였다.

암습따윈 전혀 생각지도 않는다는 듯 여유롭기 그지없는 걸음.

어쩐지 그의 등에서 천하를 발아래 둔 제왕의 풍모가 느껴졌다.

그를 따라 앞에 보이는 금빛 전각이 아닌 옆에 있는 전각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첩형관이 직접 차를 내왔다.

그 모습을 본 정화가 혀를 찼다.


“또 자네가 수발을 드는군. 다른 아이들을 시키라 하지 않았나.”

“그런 말씀 마십시오. 제가 아닌 제독동창이 있었어도 똑같이 수발을 들었을 겁니다.”

“폐하께 내쳐진 내게 병필태감이 그럴 리가 있겠는가?”

“태감께선 그럴 만한 자격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허 참.”


정화는 실소를 지으며 차를 들었다.


“자네도 들게. 마음에 들 걸세.”


과연 그랬다.

북궁백이 마셔본 차 중 이보다 뛰어난 것은 없었다.

북궁백의 표정을 본 정화는 흡족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야인대가 해체된 후 자네가 무슨 일을 했는지 개인적으로 알아봤네. 많은 일이 있었더군.”


북궁백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저 첩형관이란 자와 다른 환관들도 무공을 익혔다는 것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아마 동창이겠지.’


다른 이들에게 듣기로는 금의위와 쌍벽을 이루는 황제의 수족이라 했다.

그들 역시 북진무사처럼 초법적인 권한을 부여받아 무소불위의 권력을 지니고 있으며, 정보력은 금의위보다 한 수 위라고 들었다.

그렇다면 이미 모든 것을 다 파악하고 있을 가능성이 컸다.

북궁백은 고개를 숙였다.


“소요를 일으켜 송구스럽습니다.”

“아니야. 자네는 무림인 중에서도 백성을 해악을 끼치는 악인들만 처단하지 않았는가? 그리고 수적들의 조수들을 군에 투신하도록 설득하지 않았나?”

“그렇습니다만···.”

“그 덕에 수적들의 비전 무공을 손에 넣었지. 수군을 이끈 제독으로서 정말 대단하더군.”

“...”

“그리고 흑염왕이라던 밀염상을 처단했다지? 대명률을 어기는 것도 모자라 칭왕이라니. 미친 게야. 죽을 수밖에 없는 자였어.”


정화는 조소를 지었다.

그 후 차로 목을 축이고 은근한 목소리로 본론을 꺼냈다.


“자네는 그 왕수란 자의 현상금을 받으러 왔겠지?”

“그렇습니다.”

“금 백 냥이라···. 적지 않은 돈이지. 한데 자네는 잠악채를 일소하여 남궁세가와 현상금을 나누어 가진 것으로 알고 있네만.”

“맞습니다.”

“그대도 평해위 지휘첨사에게 내시(內示)은 받아 알겠지만, 폐하께서 남경으로 재천도를 추진하면서 황실 재정이 썩 여유로운 상황이 아닐세. 그래서 말인데···.”


북궁백은 서막의 말대로 빈손으로 돌아가나 싶어 살짝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잠시 뜸을 들이던 정화가 씩 웃으며 말했다.


“다른 것으로 받아가면 안 되겠는가? 가령 관직이라던가.”

“동창에...투신하란 말씀입니까?”

“이미 군부와 금의위에서 접촉한 것으로 아네. 도찰원에서도 자네를 떠보려는 눈치더군. 우리라고 못 할 이유가 있는가?”


동창은 환관이다.

그 말은 즉 거세를 해야 한다는 말이다.

서막이 아무리 고자라 놀려대도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출세를 원한다면 차라리 군부로 들어가고 말지.

북궁백은 고민하는 척 시간을 끌다가 정중히 사양했다.


“태감께서 절 귀히 여기시는 것은 감사하오나 소인에겐 무림에서 할 일이 있습니다.”

“말해줄 수 있겠느냐?”

“전우들의 유언과 유품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정화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좋은 취지이나 동창의 조력을 받으면 더 편할 터인데?”

“그러면 동창이 무림에 개입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궁무원 같은 일이 또 있을 거란 말인가?”

“무어라 장담하긴 이른 듯싶습니다.”


북궁백의 단호한 의지를 읽은 정화가 아쉬워했다.


“완고하군. 자네의 말은 알겠네. 여기서 그만두지. 그러면 신병이기나 영약은 어떠한가? 자네의 무림행에 큰 도움이 될 게야.”

“...”

“마음에 들지 않나 보군. 속 시원하게 말해보게. 막북 구석구석을 휘젓고 다닌 야불수라 그런지 조심성이 많군.”


망설이던 북궁백이 입을 열었다.


“송구하오나 야인대 전우가 곤란한 상황에 놓여 급전이 필요합니다.”

“급전이 필요한 상황이라···. 말해보게. 내가 해결해 줄 수 있는 일이면 해결해주지.”


북궁백은 딱히 신뢰가 가진 않았으나 면전에서 그리 말할 수는 없었다.

자신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는 걸 보면 항주의 일도 조만간 그의 귀에 들어갈 것이 분명했기에 서막과 만락광야의 일을 털어놓았다.

이야기를 들은 정화는 수염 하나 없이 매끈한 턱을 문지르며 말했다.


“내가 나설 수는 없겠어. 폐하께서 관무불가침을 부활시키려는 의지가 강하셔서 말일세.”


“알겠네. 돈을 내어주라 이르지.”

“대인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무거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지. 원정 당시 어떤 일을 겪었는지 들려주겠나?”

“그리하겠습니다.”


북궁백은 생각을 정리한 후 야인대에서 있었던 일을 꺼냈다.

정화는 탄성을 터트리거나 탄식하기도 하며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말재주가 뛰어난 것은 아니었으나, 워낙 특별한 임무를 담당했기에 그 사실 자체만으로도 재미가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장시간 떠들어댄 탓에 목이 탄 북궁백이 잠시 말을 멈춘 사이, 첩형관이 끼어들었다.


“태감. 일어나실 시간입니다.”

“벌써 그리되었나? 시간 가는 줄 몰랐군.”


정화가 아쉬워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북궁백이 따라 일어나자 그에게 말했다.


“즐거웠네. 언젠가 다시 만났으면 좋겠군.”

“그리 말씀하시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소인도 재회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첩형관. 일러둔 것은 어찌 되었는가?”

“여기 있사옵니다.”


첩형관이 품에서 작은 목함 하나를 꺼내 북궁백 앞에 내려놓았다.


“열어보게.”


북궁백은 정화가 시키는 대로 목함을 열었다.


화악.


목함을 열자마자 정신이 씻겨 내려가는 듯한 청량한 향이 방을 가득 채웠다.

그 중심에는 엄지손톱 크기의 작은 환단이 있었다.


“이것이...무엇입니까?”


정화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무당파의 비전 영약, 태청단일세. 자네가 큰 공을 세워 내리는 상이네. 여기서 먹고 운기조식까지 마치고 가게나.”


북궁백은 경악한 표정을 지었다.

태청단은 북궁백도 모를 수가 없는 영약이다.

무림 최고의 영약이라는 소림의 대환단과 유일하게 비견된다는 영약 중 영약.

태청단을 연단하기 위해서는 수십 가지 진귀한 재료가 필요해 천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다고 한다.

하기야 그 기운을 온전히 흡수한다면 일 갑자의 내공도 얻을 수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친우, 현원은 태청단은커녕 그보다 급이 낮은 소청단조차 먹어보지 못했다고 들었거늘.

그 천고의 영약이 주어졌다.


“제가 무슨 공을 세웠다고 이런 보물을 내리시는 겁니까? 혹시 주산 군도에서 왜구와 해적을 격퇴한 보상인지요?”


정화가 흥미로운 표정으로 말했다.


“왜구를 격퇴한 건 처음 듣는군. 보타산에 간다더니 왜구와도 전투를 치른 것인가?”

“...그렇습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포상금을 내주어야겠구나. 이거 자네가 황실 재정을 거덜 내는 게 아닌지 모르겠군.”


정화의 농에도 북궁백은 꺼림칙한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 표정을 본 정화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자세히 말해주기에는 시기가 이르네. 오해하지 말게. 무언가 원하는 게 있어 내어주는 것도 아니고 밀염상의 현상금은 따로 내어줄 것이니.”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보세나.”


정화는 몸을 돌려 방을 나섰다.

문지방을 넘기 전, 그가 잠시 발을 멈췄다.


“조언 하나 하지. 자네를 원하는 곳이 많아. 어딘가에 몸을 의탁하고자 한다면 신중하게 골라 충성을 다하게. 그러길 원치 않는다면 그들이 악감정을 품지 않도록 처신 잘하게나.”

“그리하겠습니다.”

“...조심하게. 자네는 이미 두 곳에 발을 걸친 셈이니.”


그 말을 남기고 정화는 첩형관과 함께 방을 벗어났다.

그와 동시에 사방에서 느껴지던 시선이 거두어졌다.

딱 하나, 천장에 느껴지는 시선만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태청단을 먹으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가만히 탁자 위에 놓인 태청단을 내려다보던 북궁백은 얼마 지나지 않아 마음을 정했다.


스르륵.


가부좌를 틀고 앉아 태청단을 입에 넣었다.

혀에 닿자마자 씹을 필요도 없이 물처럼 녹아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이윽고, 단전에서 무구(無垢)한 기운이 폭포수처럼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북궁백은 눈을 반개하고 북궁명심결을 운용했다.

그렇게 두 시진이 지나고 북궁백이 운기조식을 마쳤을 때,


번쩍.


그의 눈에서 광망이 터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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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노예의 행방-1 +2 24.06.11 1,048 22 13쪽
35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2 24.06.10 1,079 22 13쪽
34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2 +2 24.06.09 1,059 21 14쪽
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 24.06.08 1,090 22 13쪽
32 남창살인사건 -2 +2 24.06.07 1,080 21 13쪽
31 남창살인사건 -1 +2 24.06.06 1,088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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