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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흠나양 님의 서재입니다.

야인무적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판타지

공모전참가작 새글

유한세상
작품등록일 :
2024.05.08 22:07
최근연재일 :
2024.06.27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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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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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4,0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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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1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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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향락의 성, 항주-2

DUMMY

친우를 만난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그와 생사고락을 함께했다면 더욱 그렇다.

얼마 만에 만났느냐는 전혀 중요치 않다.

친우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순간의 번민이 사라지고, 마음이 평안해진다.

북궁백도 마찬가지.

유일하게 야인대 앞에서만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너 이 자식. 육 개월 사이에 아주 폭삭 늙었구만. 어깨는 좀 펴졌네?”


서막은 특유의 능청스러운 미소를 띠고 북궁백의 몸을 샅샅이 훑었다.


“그렇게 되었지.”

“그렇게 되긴···. 호남이랑 강서, 복건에서 한바탕 난리 쳤다고 여기까지 소문이 자자하더만. 어디 다친 곳은 없나?”


서막은 말로 묻는 것도 모자라 북궁백의 몸 이곳저곳을 만지며 상태를 살피려 했다.

북궁백은 슬며시 그의 손길을 밀어냈다.


“뭐야? 왜 그래?”

“사람들이 본다.”


어느새 창문을 활짝 열어 재낀 여인들이 흥미로운 눈으로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


“뭐 어때?”

“나는 남색이라고 오해받기 싫다.”


서막을 처음 만난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 몇 가지 있다.

송옥, 반안의 환생이라던가, 관옥 같다던가, 아니면 경멸조로 기녀들처럼 동경이나 보게 생겼다거나.

그만큼 서막은 잘생겼다.

북궁백을 비롯한 다른 야인대 전우들조차 저렇게 잘생긴 미장부는 처음 봤다고 감탄할 정도로 말이다.

체구가 작지는 않으나 머리가 워낙 작아 호리호리해 보이는 터라 간혹 남색으로 오해는 경우도 더러 있었지만.

막북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는지 서막이 잘생긴 얼굴을 구겼다.


“적어도 소화방에선 그렇게 생각할 사람은 없어.”

“네가 방주라서?”

“아니지. 여기 있는 여인들은 내 정력이 얼마나 절륜한지 익히 알고 있기 때문이야.”

“허.”


북궁백이 황당해서 입을 벌리자, 서막은 어깨동무하며 음침하게 속삭였다.


“생각 있으면 말만 해. 내가 항주 기녀들은 죄다 꿰고 있으니 최고로...”

“필요 없다.”


북궁백이 정색했다.


“그렇게 말할 줄 알았지. 이 고자 같은 놈.”


서막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북궁백의 어깨를 끌어당겼다.


“들어가자. 회포나 풀어보자고.”


그러면서 크게 소리쳤다.


“명옥 누님. 여기 술상 좀 차려주오!”

“대낮부터 무슨 술상이야!”


어디선가 들려온 구박에 머쓱한 얼굴로 속삭였다.


“나가서 먹어야겠다.”


* * *


“아이고. 이 정신 나간 놈아. 죽을 작정이야? 왜 혼자 천 명한테 덤비고 난리야? 먼저 간 이들이 퍽 고마워하겠다.”


서막은 황흥도에서 있었던 전투를 듣고는 입에서 음식물을 튀어가며 잔소리를 퍼부었다.


“현원이 무당파 말코도사인 걸 잊었어? 그놈이 사문으로 돌아갔다고 나 몰라라 할 인간이야?”

“그건 아니야. 한수의 정인도 있고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들이 그들을 기억하고 추모해주길 바랐지.”


북궁백의 대답에 서막이 긴 한숨을 쉬었다.


“네가 유독 마음의 빚이 큰 건 아는데, 그러지 마라. 막북에선 그리 계산적이던 놈이 딸이 완치됐다니까 아주 망아지처럼 날뛰는구나?”


북궁백은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

서막은 못마땅한 얼굴로 술잔을 들었다.


“고집부리는 건 변하지 않았군. 술이나 먹자고.”


둘은 술잔을 부딪친 후 동시에 입에 털어 넣었다.

여태껏 마시면서 느꼈지만, 쓴맛도 없고 감미로운 향이 일품인 명주였다.

취기 역시 적당하다.

북궁백은 이 술이 다 떨어지기 전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추걸개에게 얼핏 들었지만, 서막의 입으로 자세한 내용을 듣고 싶었다.


“귀향하자마자 방주를 죽이고 다른 문파들과 싸웠다고 들었다.”

“흐.”


서막이 쓰게 웃었다.

곧바로 술병을 집어 술잔을 채우더니 독작으로 잔을 비웠다.

한 잔으로 부족했는지 석 잔을 더 입에 털어 넣고 작은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는 텅 빈 술잔을 내려다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전 방주는 내 사형이었어. 사부님 밑에서 함께 십삼 년을 지냈지만 그리 좋다고 말하기 힘든 사이였지.”


서막은 손가락으로 술잔을 굴려대며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사형은 사부님의 눈을 피해 누님들을 괴롭혔어. 사부님께 고자질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협박도 곁들여서. 왜 그런 줄 알아?”

“글쎄···.”

“날 질투해서.”


서막은 한심하다는 듯 낮게 웃은 웃음을 흘렸다.

북궁백은 무심코 고개를 주억거렸다.

서막의 얼굴을 생각하면 어렸을 때 얼마나 기녀들의 총애를 받았을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사실 사부님도 모르는 건 아니었어. 누님들이 사부님께 혼내지 말라고 감싸서 대부분 그냥 넘어갔지. 머저리가 아닌 이상에야 사형도 몰랐을 리는 없지만···. 아무튼, 사부님은 그 이유로 사형을 야인대로 보내려고 하셨어.”

“그런데 왜 네가 왔지?”

“소화방과 내가 살려면 어쩔 수 없었어. 이 얼굴이 적당히 잘나야지. 가만히 있고 싶어도 나비들이 구애한다니까? 하필 그중에 좌 포정사의 딸도 있었던 것이 문제였지만.”


양지의 뒤편에는 음지가 있다.

서막의 잘생긴 얼굴은 대부분 많은 호의와 애정을 가져다주었지만, 하필 그때 예기치 못한 불행을 가져왔을 뿐이다.


“어쨌거나 야인대에서 나이를 좀 먹고 나니까 사형이 이해가 되긴 하더군. 그런데 말이야.”


빠드득.


서막이 손에 힘을 주어 술잔을 부서트렸다.

역팔자로 휘어진 눈썹이나 바르르 떨리는 입술이 그의 분노를 대변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머니처럼 밥을 차려 주고 아플 때마다 간호해주고 용돈 주고 간식도 챙겨주던 누님들을 인정사정없이 매음굴로 보내?”

“...”

“소화방은 겉으로는 기녀를 관리하는 것 같지만, 정확히는 기녀들을 보호하는 문파야. 기녀들도 문도로 데리고 있어. 그런데 문파의 장이라는 자가 문도를 버린 거야.”


서막은 분기를 참지 못해 병나발을 불었다.

소매로 대강 입가를 닦은 그가 으르렁거리듯 말했다.


“그래서 죽였어. 얼마나 수련을 등한시했으면 일 초도 못 견뎠을까? 그러니까 다른 놈들이 기루를 빼앗아도 아무 말도 못 했지.”


북궁백은 말없이 술을 따라 들이켰다.

속사정을 알고 나니 그가 왜 돌아오자마자 피를 봤는지 확실히 이해가 되었다.


“함부로 전쟁을 벌인 대가로 눈총을 사긴 했지만, 난 후회하지 않아.”

“눈총? 관원들 말인가?”

“아니. 그들은 별로 신경 안 써. 만락광야(萬樂光夜)라고 항주의 밤을 지배하는 노야가 무섭지.”


서막이 진저리를 쳤다.

북궁백은 내색하진 않았으나 조금은 놀랐다.

서막의 외관이 가벼워 보인다 한들 속내까지 그런 것은 아니다.

전장에 오래 있다 보면 경솔한 사람도 진중하게 바뀐다.

죽고 죽이고, 쫓고 쫓기고, 버리고 버려지고.

심지가 절로 단련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그런 곳에 십오 년을 보낸 서막이 그런 모습을 보일 줄은 누가 알았겠는가.

보통 인물이 아닌 것은 분명하다.


“그자가 해코지라도 가한 거냐?”

“그건 아닌데 말도 없이 소란을 피웠다며 배상하라 하대. 금액이 커서 곤란한 상태야.”

“얼마?”

“금 백 냥.”


북궁백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양민 사인 가족이 이천 년을 먹고살 수 있는 돈이다.

어지간한 부호도 그만한 돈을 한 번에 지급하기는 쉽지 않을 터.

작은 문파의 배상금이라고는 믿기 힘든 액수였다.


“그걸 배상하겠다고 수락한 거냐?”

“만락광야는 화경에 오른 무인이야.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항주의 밤을 지배해왔고 관원들과의 선도 끈끈하지. 다 죽기 싫으면 어쩔 수 없어.”

“지급할 수는 있고?”

“나눠 내기로 했지. 이대로 가면 자금이 말라 소화방이 망할 게 뻔하지만, 지금 당장 사는 게 중요하니까. 에이.”


서막은 분통을 터트리며 다시 술을 마셨다.

북궁백은 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불쑥 한마디를 던졌다.


“도와줘?”


술잔을 입에 가져가던 서막이 멈칫하더니 북궁백의 눈을 바라보았다.

짧은 정적이 흐르더니 갑자기 그가 실소를 터트렸다.


“아서라. 아무리 네가 있어도 우리 둘로는 못 이긴다. 다른 녀석들도 와야 해.”

“안다. 내 말은 돈을 빌려준다는 말이야.”


서막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돈이 어디서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거냐?”

“복건에서 참살한 왕수란 자의 현상금이 금 백 냥이라더군.”

“허. 이 자식. 도대체 뭘 하고 다니길래 금 백 냥짜리와 부딪쳐? 나도 이참에 현상범이나 잡으러 다닐까?”


서막이 진지한 척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나 북궁백은 그가 민망해서 허언하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 남경에 다녀오겠다.”

“아니, 달란 말을 꺼내지도 않았어.”

“안 받을 거냐?”

“주면 고맙긴 한데···. 정말 주려고?”

“내겐 그다지 필요 없는 돈이니까.”


북궁백의 말에는 망설임이나 아까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서막은 머리를 긁적이다가 툭 던지듯 말했다.


“...고맙다.”

“그런 말은 됐다. 막북에서 너의 가르침과 조력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가르침이라니 누가 들으면 욕해. 보법의 기본만 알려 주고 생색낸다고.”

“그 덕에 내가 살아남았지.”


서막은 입을 닫고 북궁백을 응시했다.

친우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가끔은 부담감을 느낄 정도의 헌신이 말이다.

지금 거절해도 소용없겠지.

예전처럼 몰래 와서 두고 갈 놈이니까.

서막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며칠 있다가 갔다 와. 퇴역 후 첫 원단(元旦)은 제대로 지내야지.”

“벌써 시간이 그렇게 지났군.”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그만 일어나자고. 이제 일할 시간이야.”


* * *


하늘이 황혼으로 물들자 적막하던 색향로에 생기가 채워졌다.

식자재와 술을 실은 수레가 오가고 벌써부터 한량들이 기루를 기웃거리기 시작했다.

해가 지고 반대편에서 달이 떠올랐다.

그러나 서호 인근은 어둠에 잠겨 들기는커녕 수많은 횃불과 등불로 불야성을 이루었다.


“한 잔 더 해야지?”


기녀들의 출근을 돕고 소화방으로 돌아온 서막이 술을 마시는 시늉을 하며 북궁백을 잡아끌었다.

북궁백은 잠짓 얼굴을 굳혔다.


“기루는 됐다.”

“쯧쯧. 이 목석같은 놈을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지? 절개가 대단해 아주. 그런다고 누가 상이라도 준다더냐?”


서막이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러나 북궁백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럴 줄 알고 청루에 상을 펴달라고 했으니까 잠자코 따라오기나 해.”


그 말에 북궁백은 피식 웃으며 서막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기루는 두 가지로 나뉜다.

매예불매신((賣藝不賣身)이라 하여 몸 대신 기예를 파는 청루와 몸을 파는 홍루.

홍루는 객실을 침실처럼 꾸며 욕정을 풀고 나가지만, 청루는 호화스럽게 꾸민 탁 트인 공간에서 기녀들의 춤과 노래, 연주 등을 즐기는 곳이다.

따라서 주요 고객층도 다르다.

청루는 돈이 많은 부호나 고관대작들이 품위를 지키며 유흥을 즐기고자 찾는 곳이고, 홍루는 화대만 있으면 아무 사내들이나 받는 곳이다.

그러다 보니 청루에 속한 기녀들의 미색이 훨씬 뛰어나며, 하루 벌어들이는 수입 역시 천양지차였다.


그러나 향락지성, 항주는 조금 다르다.

애초에 풍류지사라는 건 돈이 넉넉지 않다면 할 수 없다.

일반적으로 청루를 상위 등급, 홍루를 하위 등급 기루로 여기지만, 항주에서는 청루와 홍루를 따로 분리해 등급을 매긴다.

서막이 데려간 월화각(月花閣)은 정확히 중간으로 여겨지는 삼 등급 청루였다.


“수화원(羞花院)이나 폐월각(閉月閣)으로 데려가고 싶은데 네 기도가 좀 그래.”


미리 음식이 차려진 자리에 앉자마자 서막이 겸연쩍게 말했다.

북궁백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됐어. 너희들과는 노상이라도 상관없다. 이만하면 황궁이야.”


삼 등급이라고는 하나 동정호의 청월루와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정도로 호화롭다.

오히려 춤을 추고 악기를 연주하는 기녀들을 내려다볼 수 있어 운치는 훨씬 뛰어났다.


북궁백과 서막은 주거니 받거니 대작을 시작했다.

낮에 먹은 술도 있고, 서막이 일을 겸하고 있어 과음은 하지 않았다.

그저 이야기를 나누는데 목이 아프지 않도록 축이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다른 곳에서 소란이 벌어졌다.


“처리하고 올 테니 여기서 기다려.”

“도와줘야 하나?”

“됐다. 널 보면 다신 오지 않을 거야.”


서막이 웃으며 자리를 떴고, 혼자 남은 북궁백은 기녀들의 가무를 구경했다.

그런 그를 한 남자가 지켜보고 있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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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일기당천-1 +1 24.06.18 849 24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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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보타암-1 +1 24.06.16 880 22 13쪽
40 해적-3 +1 24.06.15 936 19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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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해적-1 +1 24.06.13 925 19 12쪽
37 노예의 행방-2 +1 24.06.12 941 19 13쪽
36 노예의 행방-1 +1 24.06.11 951 20 13쪽
35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3 +2 24.06.10 980 22 13쪽
34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2 +2 24.06.09 967 21 14쪽
33 정파와 사파, 그것이 이유요-1 +2 24.06.08 994 22 13쪽
32 남창살인사건 -2 +2 24.06.07 990 21 13쪽
31 남창살인사건 -1 +2 24.06.06 996 22 13쪽
30 이별과 만남-5 +2 24.06.05 1,018 23 14쪽
29 이별과 만남-4 +2 24.06.04 1,035 2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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