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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군수

각성한 정육점 사장에게 던전은 고기 창고일뿐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퓨전

우피랑
작품등록일 :
2023.05.14 06: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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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03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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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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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거대 녹색 행성이 다가왔다

DUMMY

「쿠구구궁.」


어느 날 우리의 머리 위로 거대한 녹색 행성이 다가왔다.

워낙 큰 행성이라 누군가 거대 녹색 행성이 내는 우주의 소리가 들린다며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고 사람들은 순식간에 너나 할 거 없이 그 소리를 들었다며 곧 행성 간의 충돌로 지구는 멸망할 것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은 원인 모를 행성의 접근에 대해 뚜렷한 설명을 내놓지 못한 채 ‘아틀라스 형벌의 재현’ 이라느니 ‘외계인들의 트로이 목마 전술’ 이라느니 하는 엉뚱한 가설들만 제시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죽음을 생각하며 슬피 울었고 사랑하는 가족, 친구, 연인들과 남은 시간을 보내기 위해 노력했다.

이 혼돈의 아마겟돈에 유일하게 미소지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건한이 알바로 일하던 동네 정육점 마트 사장이었다.

지구 종말 시나리오 덕분에 사장이 운영하던 정육점의 고기들이 불티나게 팔린 것이었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시간을 보내는 데에는 식사 시간만큼 애틋한 자리가 없었고 그 식사 자리를 빛낼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음식은 바로 고기이기 때문이었다.

사람들은 허옇게 비계만 껴있는 삼겹살도 ‘삼겹살은 비계 맛으로 먹는다.’ 며 웃돈을 주고서라도 사갈 정도였다.

고기들을 진열대에 내놓기가 무섭게 사람들은 집어 갔다.

소든 돼지든 오리든 손에 집히는 대로 부위도 상관없이 집어 갔다.

무게도 따로 재지 않고 눈대중 만으로 붉은 고기다 하면 집어 갔으니 가격은 물론 사장의 마음에 따라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지구의 종말을 앞둔 시점에 사장은 정육점의 매출 극대화를 위해 알바 채용 공고를 냈다.

마침 대형 마트 축산 코너에서 하루 10시간씩 고기를 썰다 손가락을 다치고 악덕 업주에게 부당해고를 당한 건한이 그 공고에 지원했다.

유일한 지원자였다.


“내가 널 뽑은 건 대형 마트에서의 6개월 경력 때문이 아니야. 사실 그건 경력으로 치기도 뭐하지. 내가 널 뽑은 건 너가 손과 발이 있기 때문이야. 크하하.”


알바를 시작한 둘째 날 사장이 대뜸 건한에게 건넨 말이었다.


「쿠구구궁.」


거대 녹색 행성이 지구와 같이 공전을 시작한 지 어느덧 4개월째가 되었다.

TV에서는 존엄사와 자살에 대한 토론이 한참이었고 SNS 에서는 국경분쟁 중 죽어가는 병사들과 총기 난사 테러 등의 영상이 높은 조회수를 올리고 있었다.

종말론자와 창조론자들은 여전히 지구의 종막을 외치고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던 사업을 접고 직장을 그만둔 채 지구에서의 마지막 챕터를 아름답게 장식하기 위해 노력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건한 역시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며 그 순간을 가장 행복한 장면으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 왔던 포르투갈로의 여행, 에그타르트를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사람들이 한참 지구 멸망 D-day를 외치며 광란에 빠져있을 그 시점에 동네 정육점 마트에서 알바를 시작한 것이었다. 왜냐고?

지구의 마지막 순간까지도 시장주의의 경제 논리가 지구를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구가 내일 종말한다면 나는 오늘, 사과나무를 심겠··· 쿨럭.’


그러나 돈이 다가 아니란 말은 사실이었다.

비행기표를 구하기가 매우 어려웠던 것이다.

기장과 승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항공사의 직원들까지 모두 너나 할 것 없이 직장을 그만 두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암암리에 수억 원에 달하는 매우 비싼 표가 거래되고 있다는 소문이 돌았다. 그마저도 편도만 어쩌다 한 번씩 기회가 생길 뿐이었고 수 억원에 수 배를 준다 해도 다시 돌아올 거란 보장은 없었다. 건한은 그 표를 사야겠다고 결심했다.


일개 알바생이 그 돈이 어디서 나서?


건한은 전세계에서 종말론자를 제외하고는 거의 유일하게 행복 라이프를 즐기고 있던 사장의 비위를 적절히 맞추며 초고액의 알바비를 받을 수 있었다.

하루 14시간씩, 잠을 줄여가며 일했다.

사장은 그런 건한이 병신 머저리라 생각했지만, 남들이 고기로 행복의 순간을 즐길 때 사장 자신은 어느새 일에서는 손을 뗀 채 술독에 빠져 자신만의 행복한 시간을 즐기고 있던 걸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로봇처럼 불만 없이 일만 하는 건한이 참 고맙게 느껴졌다.

술에 마비된 뇌와 혀는 기분에 따라 요동쳤고 그쯤, 일상이 늘 즐겁기만 하던 사장은 건한의 알바비를 시가로 책정하여 일당으로 지급하고 있었다.


“오늘 매출이 얼마더라. 2억 5천? 병신들 고기가 그렇게 좋나. 지들이 사자야 늑대야. 크하하하. 너. 오늘 알바비 얼마 줄까? 그래 너 로봇 같은 너 덕분에 내가 남은 여생을 남들보다 길게 살고 있지. 기분이다. 5천 만원 가져가. 어차피 술이야 사놓은 것들이 많거든. 남은 시간 그것만 다 먹고 죽어도 여한이 없겠군. 아니, 아니다. 너 하루에 억 단위로 벌어본 적 있냐? 2억 5천 다 가져가. 크하하하. 나도 알바비로 억 단위 줘본 사장 돼보게. 아마 없을걸? 나처럼 성공한 정육점 사장은 크하하하.”


‘17억 4천 300만원···. 이로써 비행기 값은 마련됐다. 알바를 시작한지 9개월, 행성이 출현한 지 9개월 하고 11일···. 비행기 표 한 장으로 귀결될 나의 전 재산···. 나의 다시 없을 소중한 시간과 맞바꿀 때가 됐군.’


통상적으로 정상적인 세상이었다면 이 정도의 액수는 비루한 알바생이 삶을 살아 가는데 틀림없이 부족함이 없을 금액이었겠지만,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작금의 세상은 치솟는 물가와 떨어지는 화폐가치, 그리고 무엇보다 1분, 1초의 값어치가 값을 매길 수 없는 역사상 유래없는 초유의 상황이 벌어···


- 긴급 뉴스 속보입니다. 외계 행성이 출현한 지 9개월째, 드디어 행성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외계 행성이 길어도 일주일 안으로 지구와 충돌할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진짜야? 진짜로? 어머 어떡해. 나 못하겠어요. 그만. 그만!


“야 너 남은 일주일 뭐할 거냐? 나는 말이야. 끄윽. 이 통에다가 숙취제랑 술을 같이 섞어서 남은 일주일을 아주 천천히 취해 갈 거다. 끄윽. 돈? 내가 큰돈을 만져 봐서 아는데 그거 다 부질 없다. 크하하. 술이 최고야. 마누라도 필요 없어. 어차피 마누라는 진작에 뒈져버렸지만···. 끄윽. 술만이 내 친구고 내 마누라다. 섹스? 술 먹는 게 섹스지. 크하하하. 너 그래도 내가 마지막 선물을 줄까 한다. 마지막 타오르는 인류애적 감정으로 말이야. 아마 이런 정육점 사장은 전에 없었을 걸? 끄윽. 나처럼 성공한 정육점 사장 말이야. 크하하. 이게 뭐냐면. 이 가게 권리양도 문서다. 끄윽. 그리고 이건, 그동안 빌어먹을. 끄윽. 그동안 벌어놓은 돈.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종이 쪼가리란 말이지. 끄윽. 이제 알바만 찌끄리던 너도 사장이 된 거야. 아니 사장이 돼버린 거지. 크하하하. 끄윽. 강사장! 남은 일주일 사장 놀이 잘 해보라지! 크하하하. 나는 이제 이 빌어먹을 출근도 때려칠 거다. 집에서 술만 먹다 뒈져버릴 거야. 이 지구와 함께. 크하하하하. 끄으윽.”


사장은 지구와 거대 녹색 행성이 충돌하기 7일 남았다는 그 날, 건한에게 준다던 돈다발을 가게 앞 도로에서 불장난으로 태우며 모두 소진해버렸다.


“크하하하. 어렸을 때 나도 보이스카웃 같은 걸 해보고 싶었다구. 젠장 끄윽.”


그렇게 수십 억의 현금을 모두 태워 버린 사장은 그날 이후 가게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그게 건한이 기억하는 사장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쿠구구구궁.」


뉴스에서 말한 행성과의 충돌이 3일 하고 15시간 남은 날, 건한은 가까스로 포르투갈행 티켓을 구했다.

누가 장난으로 올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지구의 마지막 날이자 자신의 마지막 날이 될 어떤 괴상한 기장이 직업적 소명을 느끼며 마지막 비행을 행성 충돌로 장식하고자 하는 지는 몰라도, 건한은 분명 포르투갈행 비행기 티켓을 구하게 된 것이었다.


“나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장식할 수 있겠어.”


건한은 그래도 자신이 적어도 냉장 창고에 매달려 있는 저 돼지들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지구의 마지막 날 배가 갈린 채 비계 덩어리가 너저분하게 조명 아래 전시되는 저 돼지들 보다는 낫다.’


건한은 출국 직전까지 돼지들을 발골하고 분쇄했다.

원체 칼을 쓰는 게 재미있어 시작한 일이었다고는 하지만 다른 이유보다도 전 사장의 아는, 돼지 납품업체 사장이 신의를 강조하며 자신이 키우던 돼지들을 모두 건한의 정육점으로 유통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도 이제 살생은 그만 해야겠어. 남은 돼지들이랑 입장을 바꿔 볼까도 해. 돼지들을 풀어주고 나는 축사에서 저 개같은 행성인지 혜성인지 우리 농장으로 떨어지는 걸 지켜볼까 해. 불쌍한 돼지들. 그냥 그렇다고. 고생 많았어. 강사장. 제엔장. 퉤!”


행성과의 충돌 2일하고 1시간 남은 시점. 건한은 짐도 하나 없이 백팩 하나 둘러맨 체 인적이 드문 인천공항에 들어섰다.

간혹 공항 탑승 수속 데스크 쪽에서 전화 통화를 하거나 사진을 찍으며 자신들의 추억을 회상하는 사람들만이 있을 뿐 공항은 조용하고 한산했다.


- 삐익. 삐익.


“가방 안에 뭐가 들었습니카?”


적색의 머리칼을 가진 늘씬한 외국인 승무원이 어눌한 한국말로 건한에게 물었다.


“제가 평소 아끼는 저··· 칼입니다.”

“칼? 비행기 타는데 이런 스티일-은 못 들어가요. 게다가 칼이라니? 오 마이 가쉬.”

“제가 정말 아끼는 거라 마지막을 같이 하고 싶은데 어떻게 안 될까요?”

“오 나 정말 미치겠어. 퍽킹 코리안. 아이 헵 노 아이디어. 왓더···.”


건한이 간절한 눈빛으로 승무원을 바라봤다.

승무원은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건한에게 말했다.


“오케이. 절대 네버, 네버 나이프 아웃. 오케이? 알겠어요? 이 나이프 꺼내면 안 돼요. 그럼 나한테 죽어. 유 다이-이? 오케이?”

“오케이. 오케이. 땡큐. 땡큐.”


- 이 비행기는 3월 16일 20시 14분 인천공항을 출발하여 3월 17일 오전 11시 도착 예정입니다. 디스 이즈 캡틴 스피킹 디스 플라잇트 에이 시발 이딴 게 다 무슨 소용이야. 크큭. 승객 여러분 저의 마지막 비행을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리스본에 도착하면 행성 충돌과는 32시간이 남게 됩니다···. 안전벨트는 하시든지 마시든지 남은 시간 의미 있게 보내시길 바라겠습니다. 저도 마지막 비행을 버번 위스키 한잔과··· 아니 농담입니다. 그럼 이만.


「슈우우웅」


비행 고도에서 바라본 행성은 이제 그 표면의 분화구마저 맨눈으로 보일 정도로 가까워져 있었다.


‘공항에 도착해서 에그타르트 집에 가려면 택시를 타야 할텐데. 택시는 운행을 하려나? 아니 에그타르트는 남아 있으려나? 근데 이 비행기 왜 이렇게 흔들려. 진짜 음주 비행인가?’


“이거 마쉴래?”


트레이닝복으로 차림의 승무원이 건한에게 맥주를 건네며 말했다.


“아임 카롤리나. 캐롤 이라고 불러. 안 마신다고? 이런 평쉰.”

“아니 아무리 마지막이라도 승무원이 더더군다나 초면인 승객한테 욕은···.”

“어 머더퍼커 죄성합니다. 오 노잼 찌지리.”

“후···. 오케이. 헤이 캐롤 웨어 아 유 고잉?”

“한쿡말 써. 영어 좆도 못할 거 같은데. 곧 죽을 건데 스트레스 받지 말라쿠.”

“하···. 포르투갈 사람?”

“어. 암 포르투갈. 진또배기.”

“포르투갈은 왜 가려고?”

“이 퍽킹 또라이야. 지쿠 내일 멸망한다는데 카족 보러 카야지. 넌 엄마 없어?”

“이거 완전 미친여자네. 야이 여자야. 내가 뭐 만만이로 보이니?”

“오 맨. 진정하라구. 오 시리어스맨~”

“내가 지금 이 귀한 시간에 캐롤 당신이랑 이렇게 얼굴 붉히는 게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어이가 없어. 내일 지구가 멸망하는 마당에.”


건한은 불쑥 자신의 미래, 즉 몇 시간 남지 않은 짧은 시점에 대해 생각을 하니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캐롤은 그런 건한의 모습에 진저리를 치며 멀리 자리를 옮겼다.


“괜히 사람 심정 어지럽히고 지랄이냐고. 망할년.”


건한은 어린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그리고 얼마 남지 않은 소중한 시간을 잠에 들어 꿈조차 꾸지 않은 체 그렇게 보내 버렸다.

그리고 얼마가 지났을까


「콰아아아앙」


격렬한 마찰음과 충격에 건한이 깼다.

산소마스크가 떨어져 대롱대롱 흔들렸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음과 진동이 멈췄다.

밖을 바라보니 저 멀리, 아주 멀리, 까마득히 멀리에 공항이 보였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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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국가헌터연구원(2) 23.05.30 25 1 12쪽
19 섹션2, 버려진 사원은 클로징 된다 23.05.29 26 1 12쪽
18 초록색 호박 23.05.28 31 1 11쪽
17 다크우드 23.05.27 29 1 12쪽
16 섹션2, 버려진 사원 23.05.26 34 1 12쪽
15 검은 늑대단 +2 23.05.25 40 3 13쪽
14 악당은 몬스터가 된다 23.05.24 41 2 12쪽
13 국가헌터연구원 23.05.23 39 2 12쪽
12 벽돌무늬 나방의 영역 23.05.22 47 2 12쪽
11 극복해야 할 것(2) +2 23.05.21 56 4 12쪽
10 극복해야 할 것 23.05.21 55 3 12쪽
9 S급 몬스터, 청룡(2) 23.05.20 75 2 12쪽
8 S급 몬스터, 청룡 23.05.19 84 3 12쪽
7 스톤골렘의 성지 23.05.18 89 4 12쪽
6 세나 23.05.17 106 5 11쪽
5 위성규 23.05.16 128 5 12쪽
4 노란 프레리독 23.05.15 171 5 12쪽
3 신시대의 영웅 23.05.14 252 8 13쪽
2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 23.05.14 294 9 14쪽
» 어느날 거대 녹색 행성이 다가왔다 23.05.14 379 1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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