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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빗 님의 서재입니다.

망겜 속 주술사 생존기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현대판타지

완결

솔빗
그림/삽화
솔빗
작품등록일 :
2023.05.15 00:15
최근연재일 :
2023.10.04 01:22
연재수 :
129 회
조회수 :
5,390
추천수 :
119
글자수 :
716,143

작성
23.05.27 00:02
조회
37
추천
1
글자
21쪽

16. 작은 신들이 숨긴 것 (5)

DUMMY

상념과 꿈. 그 승강기는 그런 모호함을 품어 몹시 위태롭게만 보였다.


다 끊어진 밧줄과 반쯤 녹은 도르래, 틈이 벌어진 바닥,


그리고 그 바닥을 뿌리 삼아 자란 듯한 거석 우상.


과연 그 모습으로 왜 추락하지 않는지 의아할 정도였던 것이다.


그리고 현수 일행은 그곳에 막 도착하자마자,


우선 현수의 암석 분신이 그 안전을 시험해볼 때까지 기다리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그 분신이 제 무게를 늘린 채 우상 위로 서자,


우상이 승강기 전체를 탁한 풀빛으로 감싸며, 승강기와 함께 부드럽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애초에 그 낡은 부품들에 의미를 두지 않은 승강기였던 것이다.


그 후, 승강기가 한 번 왕복 절차를 끝내자마자, 그 벌어진 바닥 틈으로 그 어인 아이가 추락했다.


그래서 습합정령, 옛 흡혈귀는 그 모습에 살짝 당황하고 말았다.


하지만 디컨이 뒤이은 말에, 그 둘도 저 아이처럼 추락해볼지를 고민해보게 되었다.



「생각보다 승강기 속도가 느리군요. 바뀌기 전엔 좀 더 빨랐던 것 같은데.


그리고 여기가 확 변화한 후, 많은 게 달라졌을 것 같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입니다.


모습만 바뀌었지. 핵심적인 부분들은 많이 안 바뀐 것 같습니다.


아마 저승 같아 보이는 저 곳. 그 겉보기와 달리 안전할 겁니다.」



그러더니 디컨 역시도 그 틈으로 냉큼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 시점에 맞춘 듯 어인 아이가 외쳤다.


하지만 수액을 마시다 살에 들린 탓에 그 말에 기침 소리가 좀 섞여 있었다.


「캑. 여기 위에서 볼 때나 새카맣지. 내려와서 보면 위랑 비슷···. 콜록.


하얀 빛만 쓸데없이 많다. 큭. 그래도 냉기가 뼛속을 파고드는 게···.」



그 시점에 맞춰 디컨이 그 아이 옆쪽에 도착했다.


그리고 냉기 때문인지 그 낯빛이 파랗게 질렸다.


물론, 승강기 위에서 그 모습은 잘 보이지 않았기에,


일행 대부분은 그 냉기가 어느 정도인지 잘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현수의 조심성, 올피의 슈르푸계 주술 덕분에,


그들 사이로, 화톳불 바로 앞에 있는 듯한 느낌. 그 따뜻함이 퍼져나갔다.


다만 그때, 흡혈귀의 경우, 그 주술에 직접 걸린 것도 아닌데,


자신이 갑자기 사막의 빛, 열기에 불탄다는 착각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그 기원과 현재 상태가 잡귀다 보니 생긴 사고였다.



그래도 위쪽 일행이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는 동안,


흡혈귀는 그 냉기의 확산에, 제 착각을 끝내 이길 수 있었다.


그리고 암석 분신이 승강기 시험을 했을 당시 없었던 것.


그 잿빛 안개가 갑자기 나타나며, 승강기 탑승자들. 그들의 머리 위를 맴돌았다.



곧 안개는 그러면서 슈르푸계 주술에 자신이 밀리자, 도리어 그들 쪽에 성을 냈다.


그 후, 안개는 일행의 생각, 기억 등을 읽거나 조작해보려, 여기저기 고개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때마침 암석 분신이 흩어지며, 그 마지막 발악을 가볍게 밀어버렸다.


그러더니 예의 그 암염빛으로 변화. 현수, 올피 융합체의 몸속으로 녹아들었다.



다만 그 안개는 어린 아이 같은 구석이 있었다.


때문에 그것은 자신 나름의 호기심만 제 속에 남긴 채, 이젠 일행을 좀 먼 곳에서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바슈티의 돌은 그 모습에서, 왠지 모를 동질감,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주사위 굴림 실패! 그래서 검은 안개는 후퇴. 그리고 그 존재를 목격한 플레이어들은···.


흠, 그러고 보니 상태창 공유. 저 안개에도 될까 한 번 해볼까요? 줬다 뺏어 보는 걸로요.


그렇게 저 미지의 존재에 대해 정보도 얻고 좋을 것 같은데요.」


「모르는 건 함부로 건드리면 안 돼. 그게 상식이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호기심도 없는 거예요?」



그 질문에 구현수는 주머니 속에서 한 손에 들어오는 조각칼을 꺼냈다.


그리고 말없이 그 머리를 긁어내려 했다.


「죄송합니다! 다시 조용히 있을게요!」


그리고 그때쯤, 어인 아이의 외침이 다시 그 안을 울려왔다.


「어차피 이 몸은 죽더라도 여신님께 소생될, 축복 받은 몸.


그렇기 때문에 이 흰 지역을 난장판으로 어질러 보았다!


읏, 문제없으니 날 노려보진 마라. 여신님 덕분에 돋친 뿔들.


이 눈을 대신한 것들이 내 직감을 뛰어나게 만드니까.」



때마침 그 변명이라도 하듯, 디컨이 입을 열었다.


「위험한 곳들은 저희가 못 가게 다 막았으니, 그리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암! 내 후배도 이 사건의 공범이다. 그렇게 해서 찾은 게 있다.


이보다 더 지하로 가는 통로, 그리고 약간 위로 향하는 통로다.


하지만 지하로 가는 통로는 온갖 것들이 다 뒤섞여 그곳을 완벽히 막아놓고 있었다.」



그렇게 아이는 긴 말을 더 쏟아내려 했다.


하지만 그 시점에 맞춰 승강기가 도착. 그 풀빛을 깜빡이며 아이의 관심을 그쪽으로 돌려버렸다.


그렇게, 그 일행 전체. 약 여섯 존재들이 한 자리에 다시 모였다.


그리고 올피는 융합체 속 그 분체로 구현수에게 속삭였다.


「바다 비린내가 다시 나는데?」



과연 그 말대로, 인스머스 특유의 악취. 흰 빛에 같이 없어졌던 악취가 다시 그 공간을 채웠다.


다만 아직은 좀 그 냄새가 희미하게 느껴지는 수준이었다.


그런 희미함에도 그 냄새는 존재감 자체가 워낙 강렬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제 유백색으로, 탁하게 보이는 그 공간은,


두 길 끝에서부터 자신들이 그 냄새와 관련됐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렇게 현수 일행은 위로 향한다는, 그 통로를 향해 천천히 나아갔다.


그리고 그 갱도 같은 곳에, 시대에 안 맞는 장치들.


그 기계 장치들이 탐조등들 아래서 그 녹슨 빛을 반사했다.


「여기서부터는 잡귀 냄새가 난다. 혹시 모르니 조심해라.」



그 순간, 잡종 구울들, 옛 흡혈귀들. 잠복 중인 그 잡귀들이 땅굴을 파서 그 주변 쪽으로 기어 나왔다.


하지만 그것들은 그곳에 어울리게도 정상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그 각각의, 머리가 있어야 할 곳에, 반투명한 장치가 원뿔 형태로 솟아있고,


그 안에서 물거품과 뇌 일부, 두개골 조각 등이 엿보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은 그렇게 등장하자마자,


현수, 올피 융합체를 보더니 다시 각자의 땅굴 속으로 숨어들었다.


그래서 옛 흡혈귀가 곧 혀를 찼다.


「쯧. 기원, 전통, 혈통, 근본. 난 여기서 하나라도 빠진 게 없는 흡혈귀건만, 저것들은 연장자를 못 알아보네.」



하지만 일행 대부분은 그 앞길의 장애물들이 줄어, 편하다는 느낌만 받을 뿐이었다.


그렇게, 현수 일행은 그 희게 물든 통로를 넘어, 악취가 진동하는 한 문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 문은 살짝 열린 채 맥동하는 것이, 생명이 접목된 피조물로만 보였다.


하지만 잡귀들이 현수, 올피 융합체를 보고 공격 의도를 버렸듯,


그 문 역시도 융합체를 보자마자 그 흉부 같은 속살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문은, 늑골 같은 철근들을 뜯어 양 옆으로,


폐 같은 문짝 둘을 위로, 붉게 녹슨 것을 중간 아래에서 더 밑으로 옮겼다.


그렇게 일행 앞에 그 계단이, 제 지저분하고 팽창한 형체를 드러났다.


다만 부푼 그 계단은, 그 중앙만큼은 비우고 나선형으로 배배 꼬여 있었다.


또한 계단은 그 위에 악취의 원인. 그것들 중의 한 부분을 일행에게 내보이고 말았다.



일행이 찾던 실종자들. 그들 중 보이지 않던 자들이 그 천장에 모두 매달려 있던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 상태가, 도축돼 매달린, 그런 가축 같았기에, 도무지 살아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그들은, 그 썩은 상처들에 구더기들 대신, 인스머스산 괄태충들을 가득 품고 있었다.


그래서 일행은 그 상처들이, 곧 그곳 악취의 근원임을 곧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때쯤 가장 많이 부패한 시체 쪽에서 거친 목소리가 울렸다.


뒤이은 목소리들 역시도 시체들 쪽에서 들려오는 것이었다.



「우리들 목에 걸린 밧줄들. 이것들만 좀 끊어주시오.


그러면 내가 이 자들을 데리고 함께, 구해준 그 대가를 갚으리다.


그 대가로 목숨값을 치르라 해도, 우린 그리 할 것이오. 그러니···」


「이딴 미친 소린 듣지 마쇼. 이 미친 놈 때문에 우리들이 다 이 꼴이니까.


어쨌든 제 밧줄 좀 끊어주십쇼. 그러면 가진 거 다 내려놓고,


존재감 하나 없이, 쥐도 새도 모르게 여기서 꺼져드리겠습니다.」


「밧줄 말고 우리들 몸 곳곳의 쇠사슬이랑 고리 보이세요?


잘 보시면, 거기 금속이 아니라 끈으로 덧대어진 부분들이 있어요. 그쪽만 어떻게 좀 해주시면···」


「열수구에서 생명을, 그 모든 시작을 토해내시는, 그 영원한 바다를 사랑하라!」



다만, 매달린 그 자들. 그들 몇몇의 요구대로, 그들 전부를 무작정 풀어주기엔 무리가 있었다.


그들 중에, 중증 정신질환자들, 폭력적인 광신도들이 포함돼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한 몸에서 여러 비명들을, 동시에 내지르는 존재,


인면창 돋친 바다 게들. 그것들로 말하는 존재.


그런 존재들이 성급히 행동하여, 일행이 진짜 피해자들을 좀 더 빨리 선별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일행 대부분은 조심성 있는 자들답게, 그때까지 관찰로만 그 선별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구할 만한 존재들이 조심스럽게 정해질 때쯤.


진정 위험 요소로 볼만한 자들. 그들만이 우선 현수의 암염빛에 꿰어졌다.


그리고 그때, 아이가 그 피해자들을 구하려다 실패한 일, 흡혈귀가 아이의 행동을 빠르게 막아선 일.


그 두 가지의 일이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뒤이어 흡혈귀가 아이의 지금 감정을 진정시키고, 제 시선으로 피해자들을 쏘아보았다.



「보아하니 흡혈귀 체액 밀수하는 것들. 그 중에서도, 고름 긁어모으는 것들 같은데.


그래. 인스머스는 거래상대로 만만치 않았나 보지?」


그 말에, 매달린 자들 대부분이 아우성을 멈췄다.


그리고 한 광신도의 경우, 원래 다곤 숭배자가 아니었는지 변명하듯 외쳤다.


「그래요! 살기 위해 뭐라도 해야 했습니다!」


매달린 자들. 그들 대부분이 감추려던 것이 폭로된 순간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 두 존재가 말을 이었다.



「전 고름 긁개는 아니었습니다.」


「잡귀가 깝치고 자빠졌네. 네 부모 아니면 주인이나 불러와.


아, 네 부모도, 주인도 없어진 지 오래됐지 참?」


「그래, 그래. 넌 계속 더 그래라.


어쨌든 저희가 밀수범들인 건 맞습니다. 그 외에 다른 일들도 했지만.」


「난 그런 걸 듣기 위해 말한 것이 아니다.


너희들이 그 체액으로, 주인도 없는 가고일들이 됐는지 알고 싶어 입을 연 것이지.」



「생각하신대로, 저희들 대부분이 그런 시한부 가고일들이 된 게 맞습니다.


죽기 직전에 어금니 안쪽 캡슐을 터뜨려, 그 안의 정제된 흡혈귀 성분들.


그러니까 말씀하신 대로 그 피, 침 등에서 구한 걸로 가고일이 되는 데 성공했죠.


젊은 흡혈귀의 식사, 주술 등으로 제대로 재탄생한 게 아니라서, 말씀드린 대로 그 앞길이 뻔하지만 말입니다.」



「네 앞의 흡혈귀가 그 젊은 흡혈귀와 친분 있는 존재라면?」


「치매 걸린 고대 흡혈귀는 또 오랜만에 보네. 그 치매 소식 듣고 빨리 사냥꾼들이 찾아갔으면 좋겠다.」


「말씀하신 대로 젊은 흡혈귀와 친분 있으시다면,


지금 제가 최대한 당신께 비굴하게 굴며, 도와 달라 울부짖어야겠죠.


하지만 이건 가정일 뿐입니다. 제가 그렇게까지 운 좋을 것 같진 않거든요.」



그때쯤 계단 쪽, 금속제 난간이 휘며, 지성체들의 시선을 그곳에 집중시켰다.


옛 트롤 하나가, 놀랄 정도로 비대한 몸집을 그곳에 드러내 일어난 일이었다.


그리고 그 트롤이 제 코를 긁으며 노래하듯 말했다.


「주인님께서, 첫째께서 당신들을 안쪽으로 초대하셨습니다.」



동시에 경쾌한 굉음과 함께, 난간들이 구부러지고 계단들이 으스러졌다.


트롤이 제 무게를 못 이기고, 그만 그 위에서 굴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피해는 트롤만이 받을 게 아니었다.


그렇게, 날카로운 쇳조각들, 돌 부스러기들, 이끼 찌꺼기 등이 사방으로 튈 뻔했다.



때마침 그곳 너머의 거체가 주문을 속삭이지 않았다면, 그런 파괴적인 실수가 터질 뻔했던 것이다.


뒤이어 그 트롤 자매의 둘째가 거대 손들로 약식 수인을 맺어, 그 계단의 파괴를 완전히 없었던 것으로 했다.


또한 자매의 셋째를 그 계단에서 먼 곳으로 이동시켰다. 그리고 제 셋째 쪽에 고함쳤다.


「내가 손님들을 죽이라 했니?」


「그쪽 방향에서 손님 마중하는 게 편하잖아. 거기 그냥 다 뜯어고쳐서 트롤 전용 계단 만들면 안돼?」



그 물음에 둘째가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염동 마법으로 어인 아이를 제 쪽으로 끌어올렸다.


그리고 일행의 대부분은 그 괴상한 계단을 올라, 그곳의 내막을 확인하게 되었다.


당하는 존재의 의사를 고려하는, 그 트롤이 익힌 염동 마법.


그들이 그 염동 마법에 크게 저항했기에 벌어진 결과였다.


-


「그래서, 그 가고일들이 이번 일의 실종자들이라 결국엔 여기서 나가야 된다는 거군요.


하지만 그들은 되도록 한 곳에 봉인해 놓는 게 좋아요.


소신격체들이 낡아빠진 주술을 걸어놔서, 옛 주술사 왕들 몇몇처럼 한 곳에 굳어 있어야 하거든요.」


「여신님이 보내주신 수액이 여기선 차오르지 않는다. 나 여기서 잠깐만 나가면 안 되나?」


「얘야. 너를 포함한, 이번 손님들도 그런 지독한 주술에 걸렸단다.


작은 공간에 갇혀서, 가급적 왕 대접 받으며, 특정 자세로, 정해진 생활 방식에만 맞춰서 살아야 해.」



구현수는 그 말에 은둔형 외톨이, 혹은 히키코모리란 말을 떠올렸다.


일상의 경쟁. 그 치열함 때문에 도태 당한 존재들.


그 존재들의 삶이, 몇몇 주술사 왕들의 인생.


그것과 약간 비슷했다는 점. 그 생각이 그의 머릿속에 맴돈 것이다.


그리고 그는 올피가 융합체로 속삭이는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우리들, 지금 홀린 것 같아. 우리들 전신에서 마녀 특유의 체취가 나거든.


나도 본체와 잠깐 연결해서 이걸 알아챘어. 그러니 너도.」



다만 그녀가 홀린 것 같다는 얘길 꺼내자, 그는 내면으로 침잠.


그녀가 그 말을 마치기도 전에, 머릿속 외부간섭을 흩어버렸다.


그리고 그러자마자 트롤 자매의 그 첫째가,


그 그림자가 둘째와 셋째를 조종해, 그 둘이 엷게 웃게끔 만들었다.


「악의는 없었으니 용서해 줬으면 좋겠구나.


너희들이 이 몽환시, 정령계 접경 지역에 들어왔을 때, 옛 주술에 걸린 게 맞거든.


혹시 외부에서 이쪽 내부 근처에 올 때 이상한 기분 안 들었니?」



「굳이 말하고 싶진 않군요. 당신께서 먼저 이게 무슨 일인지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노예화된 소신격체를 신의 알 형태로 재구성하는 실험이 있었단다.


어인 주술사들이라면, 소신격체를 원래 노예로 되돌리는 방법을 아니, 나름 시도할 만하다 봤겠지.


그리고 그걸 분해할 때 빙의자의 혈액이 많이 들어가.」


「협조할 걸 아시고 끌어들인 겁니까?」



그때쯤 융합체의 전신으로 나른함이 번졌다.


그래서 현수, 올피는 그 융합을 풀며, 전신에 번진 그 마력을 둘로 분산시켰다.


그와 동시에, 올피가 날카롭게 소리쳤다.


「아니, 헤카계 주술을 이딴 식으로 쓰면 안 되죠. 생명 그 자체를 다루는 힘이라고요.


딴 거랑 섞어 써서 뭔 사고를 터뜨릴려고!」



그 순간, 그 주술 말고도 인체를, 지성체를 건드리는 갖가지 힘들이,


사이비 기예로 엮여 지성체 둘의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거기에 적대감은 전혀 없었기에, 그 둘은 잠에 빠진 채, 그 자리에서 풀썩 고꾸라졌다.


곧 그 소리에 다른 지성체들이 눈을 떴지만, 어인 아이처럼 칭얼대거나 곧 다시 졸음에 빠져버렸다.


-


구현수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는 얼어붙은 한 거신을 보게 되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죽어 설산이 된, 옛 시대의 흔적. 그는 그런 잔해를 목격한 것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동사한 시체에 빙의했음을 확인.


그 몸이 산 정상에 파묻힌 상태에서 벗어나게끔 발버둥쳤다.



곧 그 모습에 설산이 시리게 빛나며, 그 결정들의 각도에 따라 다양한 형상을 내비쳤다.


시랍화한 익사체, 강직해 보이는 노부인, 풋풋함을 자랑하는 처녀, 그리고 뱃속의 태아.


그리고 현수는 그 존재의 거안들이, 그 새파랗게 불타는 두 눈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 너를 무엇이라 부르면 좋을까? 시몬 마구스의 좌를 침탈한 마귀? 천마의 공석을 내팽개친 마인?


그것도 아니라면, 빙의해 오기 전. 그때의 그 병자라 부름이 옳을까?>


「부르기 편하신 이름을 골라 쓰십시오.


어차피 제가 사는 시대, 공간은 말과 이름, 그 자체들에 이능이 거의 없으니 말입니다.」


<여긴 옛 몽환시에서 베푼 힘 덕분에 과거와 같단다.


그러니 네 이름이 여기에서 무엇인지 답하라. 세상에 고통스레 부딪히는 아이야.>



「구현수로 부르시지요. 그리고 전 당신을 뭐라 부르면 됩니까?」


「좋다. 그럼 병자의 이름은 구현수라 하는구나.


그러므로 나 또한 늙은이로서 말하매, 내 이름은 홀레 부인이라 한다.


나와 그 세 자매.


그러니까 그 화신체 넷에 불만이거든, 나와 그녀들을 마귀할멈들 중 하나. 페르히타라 불러도 좋지.


내 너에게 더 나은 이름들을 말하고 싶으나, 그런 옛 이름들은 모두 잊혀 없어졌다.


그저 지금 여기엔 이야기들과 헛되이 늙은 존재들만 남았지.」



「그건 그렇고 소신격체나, 신의 알은 이제 어떻게 하시는 겁니까? 제가 잠에 빠졌을 때 처리되는 겁니까?」


「네가 이곳에 오는 찰나, 바로 그 시점에 내가 네 피로 완전히 불살라 버렸단다.


그건 그렇고 세 자매에게로의 네 방문은 필연일 가능성이 높더구나.


거시세계의 필연, 미시세계의 우연. 그 둘 중 우연이었더라도 그건 기적, 가피라 할 수 있겠지.


네 피 한 방울이 정화의 소금을 품은 채, 내 꿈에 힘입어 큰 불을 일으켰으니 말이다.」



「그 원리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그 문제가 빨리 해결돼서 다행이군요.


그런데 여긴 정확히 어딥니까?


그리고 소신격체, 알 관련 문제가 해결됐다면, 저는 언제쯤 여기서 해방됩니까?」


「알 관련 일로, 네게 당분간 헤르메스의 피조물들이 쏟아질 거라, 이쪽으로 널 잠시 피신시킨 거란다.


이 고색창연한, 옛 시절의 몽환시로 말이다.


동시에 이곳은, 하나이며 여럿인 자가 악취미로 잘라 여러 미래의, 그 잔해들을 보관한 곳. 그런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구현수, 넌 이 과거와 미래. 그 허상 속에서 네 앞날의 여러 방향에 대해 알게 될 거다.」



그 말에 맞춰, 악마든 호랑이든, 제 말을 듣고 그곳에 찾아왔다.


한때 지혜들이었지만 지금은 거짓이 된, 폐기된 학설들.


헤르메스의 피조물들이 그 거짓들에서 태어나, 제 우둔한 핏줄들을 뻗어온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에 맞춰, 홀레 부인이 그의 피로 만든 마력막이 크게 반응해왔다.


그렇게 헤르메스의 피조물들이 패퇴.


그 그림자의 색채로, 구현수의 시야에 지혜였던 걸 덧그리려다 푸르게 타올랐다.


뒤이어 홀레 부인이 그 잿가루를 들이마시며,


주문을 속삭이듯, 신탁과 예언을 뇌까리듯, 그의 앞날을 읊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가둔 병자라도 지혜의 편린에 닿을 수 있으니, 세상에 손을 뻗어 보일 수 있으니.


옛적의 뱀신 둘을 엮어 지팡이로 휘두르는 셋아. 그 가련한 병자를 질투하지 말지어다.



실로 그러함으로, 별에 허상을 씌워 별에 닿을 자들아.


듣거라. 거짓 남십자성 아래의 병자를 위해 이를지니.


죽은 뱀들께서 이르시되,


허영을 엮은 섬망, 공상에 이은 몽상, 무아일 뻔한 망아가,


헛된 예지로써 거짓의 바다 위로 솟는다고 설하시니.



그 허망함이 알리는 건 옛 것이요. 과거, 현재, 미래에 흩어지고 섞여 거짓 별들이 된 자들이니.


뭇 점성술사들은 이 자들을 귀환한 이라 일컫고. 그 이름이, 얼굴이 수없이 많다 외치니라.


그 가운데 셋이 부른 뱀들은, 전령이 부른 마귀들은 셋이 된 전령을 물어뜯을게 선연하도다.>



「그렇게 말씀하시면 그 전령이란 자가 세상에 개입해 그런 미래를 바꾸려 하지 않을까요?」


「걱정 말거라. 그 자가 현실에 개입하는 건 분명한 한계가 있단다.」



그 순간, 그 전령의 뱀 한 쌍이,


자신들이 위대한 옛 신들. 그 일부분임을 잊은 그 둘이, 그 자리에 자신들의 화신체를 강림시켰다.


그렇게 연금술 상에서, 자비르 학파에서, 세 머리 용왕이라 불리는 상징. 그 허상이어야만 할 소신격체.


바로 그 용이, 제 머리들 각각에서 정화의 소금, 영생의 수은, 필멸의 황을 황동빛 불 형태로 한껏 내뿜었다.



그리고 현수는 그 불이 자신을 무너트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또한 그 불이 자신의 힘을, 지혜를 드높임을 깨닫고, 그는 그 불의 세례로, 재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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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 빙의자 수집가들 (7) +2 23.06.05 32 1 14쪽
23 23. 빙의자 수집가들 (6) [오타 등을 수정했습니다.] +2 23.06.03 29 1 14쪽
22 22. 빙의자 수집가들 (5) [오타를 수정했습니다.] +2 23.06.02 30 1 14쪽
21 21. 빙의자 수집가들 (4) +2 23.06.01 31 1 15쪽
20 20. 빙의자 수집가들 (3) +2 23.05.31 33 1 13쪽
19 19. 빙의자 수집가들 (2) +2 23.05.30 33 1 14쪽
18 18. 빙의자 수집가들 (1) +2 23.05.29 35 1 15쪽
17 17. 작은 신들이 숨긴 것 (6) [오타를 수정했습니다.] +2 23.05.27 39 1 17쪽
» 16. 작은 신들이 숨긴 것 (5) +2 23.05.27 38 1 21쪽
15 15. 작은 신들이 숨긴 것 (4) +2 23.05.26 40 1 15쪽
14 14. 작은 신들이 숨긴 것 (3) +2 23.05.25 39 1 16쪽
13 13. 작은 신들이 숨긴 것 (2) +2 23.05.24 38 1 15쪽
12 12. 작은 신들이 숨긴 것 (1) +2 23.05.23 52 1 14쪽
11 11. 발작 버튼 (3) +2 23.05.22 58 1 14쪽
10 10. 발작 버튼 (2) +2 23.05.22 53 1 15쪽
9 9. 발작 버튼 (1) +2 23.05.20 57 2 13쪽
8 8. 다간의 성물 (5) [고증 오류인 단어를 수정했습니다.] +2 23.05.19 73 1 13쪽
7 7. 다간의 성물 (4) [순서를 고쳤습니다.] +2 23.05.19 74 1 13쪽
6 6. 다간의 성물 (3) [순서 등이 수정됐습니다.] +2 23.05.18 77 1 13쪽
5 5. 다간의 성물 (2) +2 23.05.17 106 3 13쪽
4 4. 다간의 성물 (1) +2 23.05.16 148 3 15쪽
3 3. 흡혈귀 추적 (3) +6 23.05.15 222 5 14쪽
2 2. 흡혈귀 추적 (2) +2 23.05.15 414 6 15쪽
1 1. 흡혈귀 추적 (1) [끊기는 부분들이 수정됐습니다.] +16 23.05.15 1,911 14 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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