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제논의역설 님의 서재입니다.

링 월드 판타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제논의역설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6
최근연재일 :
2024.05.28 03:22
연재수 :
92 회
조회수 :
5,415
추천수 :
76
글자수 :
635,005

작성
24.05.21 04:01
조회
6
추천
0
글자
13쪽

2-46

DUMMY

“너··· 대체 뭐 하는 거야?!”


“오빠···.”


리네아는 경악에 물들어 해명을 요구하는 그의 강렬한 시선을 고개를 돌려서 회피했다. 그는 소녀의 어깨를 붙잡고 일으켜 세워서 재차 추궁했다.


“이게 뭐 하는 짓이냐고, 내가 너한테 묻고 있잖아!”


리네아는 자기 입으로 말하기가 힘들었는지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는 소녀의 가녀린 어깨를 더욱더 강하게 쥐면서 더욱더 강하게 대답을 요구했다.


“대답해.”


“···몰라서 물어요? 다 봤잖아요?! 이렇게 직접 잡기까지 했잖아요?! 맞아요! 빈집 털러 왔다고요!”


“리네아! 너!”


“제가··· 제가 뭐 그렇게 잘못했어요? 사람이 떠난 지 오래된 집에 뭐 남아있는 거 없다 보는 게 그렇게 나빠요? 주인도 없는 물건들인데 가져갈 수도 있죠!”


소녀는 뭐가 그렇게 억울했던 건지, 울분에 몸서리치면서도 그에게 또박또박 항변했다. 적반하장에 말문이 턱하고 막혀버린 그는, 입을 뻐금거리며 무슨 반박이라도 하려다, 끝내는 헛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너 진짜···.”


실망으로 가득 찬 한숨, 혐오가 담긴 시선에 리네아는 어깨가 잔뜩 움츠러들었다. 어떻게든 참아내려고 했지만, 참아낼 수 없는 눈물이 한 방울씩 흘러내렸다. 숨을 헐떡이면서, 한 마디를 겨우 짜냈다.


“···돌아갈 수가 없어요.”


“왜? 부모님이 호적에서 파버린다고 했어? 아니잖아! 당장이라도 돌아오라고 푯값도 챙겨주시지 않았나? 근데 그걸 홀라당 써먹은 게 누군데?”


“···돌아가고 싶지 않아요.”


“이대로 고향에 돌아가면, 너가 패배한 거야? 졌으니까 부모님이 시키는 대로 원하지 않는 결혼을 받아들어야 해?! 웃기지 마, 되지도 않는 변명이니까!”


리네아가 애처로운 눈길로 그를 바라보면서 천천히 양손을 내밀었다. 손을 마주 잡아주기를, 따뜻하게 꼭 안아주기를, 소녀가 그의 지지를 원한다는 것쯤이야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오빠, 지금도 제 편이에요? 우리 약속했잖아요.”


“···최소한 지금의 너한테는 어떤 것도 줄 수 없어.”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리네아의 앞에서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여기서 봐줬다간 소녀는 점점 더 위험한 일에 손을 대게 될 것이고, 결과적으로 상황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생각했기에.


“···그렇죠? 이런 도둑질이나 하는 년한테···.”


“그거 그대로 돌려놔, 다시 되돌릴 수 있어.”


이번에는 그가 리네아에게 손을 내밀었다. 소녀가 이 손을 잡기만 한다면, 다시 그날로 돌아갈 수 있었다.


“···싫어요.”


“뭐?”


하지만 리네아는 그의 기대와는 180도 다른 답을 내놓았다. 거절당한 그의 손끝이 희미하게 떨렸다.


“···이제 아무런 사이도 아니잖아요. 그런데 왜 제가 당신 말을 들어야 하는데요? 죄송하지만 이제 저한테 신경 쓰지 말아줄래요? 그게 당신한테도 좋을 테니까.”


“···너 자꾸 이딴 식으로 기 싸움을 할 거야?”


화가 머리끝까지 난 그에게, 소녀의 다음 말은 결정타를 날리고 말았다.


“당신이 제 곁에 없다 하더라도, 저는 살아남을 거예요.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살아남을 거라고요. 그걸 위해서라면 하! 까짓거 부자한테 몸을 팔아서라도···!!!”


짝!!!


결국 참지 못한 그는 리네아에게 손찌검했다.


“흐으윽···!!!”


“···내가 사람을 잘못 봤네. 너는··· 자주적인 삶을 만들어 나가는 소녀가 아니라, 사춘기의 자기 파괴충동에 사로잡혀서 가출한 싸가지없는 애새끼에 불과해.”


리네아는 손에 쥐고 있던 물건을 땅바닥에 내던지곤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소녀를 뒤쫓아가지 않고 텅 빈 집 거실 가운데에 가만히 서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창문 바깥에서 조용히 엿듣고 있었던 유스티아가 창문 열고 거실로 조심스럽게 들어왔다.


“···플라누스, 괜찮아?”


“유스티아. 나는···.”


그는 주인을 잃은 식탁 의자 하나에 털썩 주저앉아서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그녀에게 털어놓았다.


“난··· 리네아한테서 죽은 그녀의 모습을 겹쳐봤어. 학교에 다니고 싶어 하던 간절한 소원을···.”


“어쩐지. 이상할 정도로 리네아한테만 특별 대우를 해주더니, 역시 그것 때문이었구나···.”


그는 주먹으로 식탁을 내리쳤다.


“내 알량한 이기심 때문에 리네아가 저렇게 되어버린 걸까? 냉정하게 현실을 일깨워줬어야 했나···?!”


자신이 어떻게 했어야만 하는 걸까, 고민하는 그에게 유스티아도 빈 의자 하나에 걸터앉으며 답했다.


“그건 이기심이 아니야. 자신의 길을 찾아 나서는 소녀를 돕고 싶은 건 당연하잖아.”


“하지만 이대로 두면 결국 자기 자신을 망치게 될 거야. 안타깝지만, 꿈을 접도록 만들 수밖에 없어.”


유스티아는 잠시 고민하더니, 답을 내놓았다.


“아니,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꿈을 접게 만드는 게 아니라, 잘못된 길로 들어서지 않게 돕는 거야.”


“···옛날의 너였으면 그런 말은 안 했을 텐데.”


“지금의 나는 기사가 아니라, 선생님이니까.”


유스티아는 달라진 자기 모습이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어색했는지 쓴웃음과 함께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오늘 밤은 쉬면서 흥분을 좀 가라앉히고, 내일 학교에서 리네아와 만나서 천천히 풀어보자. 둘이 다시 만나면, 분명히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렇다, 다시 만난다면 분명히···.


* * *


다음날 학교에 간 그는 가장 먼저 리네아의 뒷모습을 찾았다. 하지만 익숙한 소녀의 머리칼은 교실에서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자취를 감췄다. 아무래도 아예 등교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설마 정말 돌아가 버린 건 아니겠지··· 아니면 정말 진짜로 그걸··· 젠장···! 어디 있는 거야···!”


혹시라도 리네아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버리지는 않았을까, 불안에 수업에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는 그를 안심시키기 위해서 유스티아가 말했다.


“진정해, 교무실에 주소를 적어놓은 서류가 있으니까, 오후에 리네아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보자.”


“···그래, 그게 좋겠네.”


끝이 보이지 않던 오후 수업이 마침내 마무리되고, 그는 학교 후문에서 유스티아를 기다렸다. 멀리서 다가오는 그녀의 한쪽 손에 서류 하나가 들려있었다.


“그게 주소록이야? 통째로 들고나올 필요는···.”


“아니, 직접 확인해 봐.”


그는 그녀에게서 의문의 서류를 받아서 들었다. 수취인의 이름을 확인해보니까, 시어가 그들에게 보낸 것이었다. 전에 부탁했던 윤활유의 출처에 대한 분석 결과가 드디어 나온 것이었다.


“하필이면 이럴 때 도착하다니.”


“어떻게 할 거야? 너가 하자는 대로 할게.”


리네아가 몹시 걱정되기는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춘기 소녀의 탈선 문제보다는 여러 사람의 목숨이 걸려있는 문제가 더 위중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그는 근처 카페에 가서 서류부터 확인하기로 했다.


“자, 보자. 원심분리를 통해서 윤활유의 성분을 면밀하게 분석한 결과, 4대 방위산업체 중의 하나인 베오잉에서 사용하는 제품으로 확인되었음···.”


“베오잉? 어디선가 들어본 이름인데··· 아, 맞아.”


분명 케이의 가문, 아니스티아가 몰락하기 전까지 통솔하고 있던 기업이 바로 베오잉이었다··· 정계에 발을 들이기 위해서 어디의 이상한 가문과 결합하다가 뒤통수를 맞았다고 했었는데··· 우연의 일치일까?


“흠, 윤활유의 제조법은 기업의 최고 비밀 중 하나며, 외부에 유출될 경우 회사에 심각한 타격을 입힐 수도 있기에 철저하게 관리됨. 범인은 베오잉 관련자이너가 내부에 협력자를 가지고 있을 가능성···.”


“그렇게 굉장한 물건을 셰퍼드 단독으로 만들어 내거나 빼돌렸을 가능성은 없을 테고···.”


“···이걸로 셰퍼드의 뒷배, 쾌락주의자는 베오잉과도 관련되어 있다는 게 확실해진 거네···.”


그와 유스티아는 입을 굳게 닫은 채로 한동안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야 그들의 적이 제국의 막강한 군사력을 구성하는 한 축인 거대 기업 베오잉이라면, 앞으로의 싸움이 아주 험난해질지도 모르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현 치안부장은 베오잉을 경영하는 앰뒤의 가신이었고, 베오잉에서 정부와 여러 건의 납품 계약을 끌어냈으며, 이러한 공로로 그 자리에 임명될 수 있었다는 정계의 평가가 있다···.”


“그러니까, 시어 씨의 말은 치안부장이···.”


유스티아는 서류를 내려놓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그럴 리가. 아무리 그래도 치안부가···.”


하지만 누가 듣기에도 그럴싸한 얘기였다.


“유스티아, 치안부에서 쫓겨나기 직전에 위에서 수사를 무마하라는 압력이 들어왔다면서. 만약 그게 정계나 재계의 압력뿐만 아니라, 아예 치안부장 본인이 연루되어 있어서 그랬던 거라면?”


“······.”


“생각해보니까 이상한 게 한 두 가지가 아니야. 거대한 노예 농장을, 합법적 운영이라는 탈까지 쓰고 대범하게 운영해왔어. 공권력, 특히 경찰의 협력이 없으면 그렇게 완벽하게 덮어줄 수 있을 리가···!”


“말도 안 돼. 치안부가···.”


“유스티아. 어디 의심 가는 곳 없어?”


“···치안부장님이 제도를 떠나 에듀그라운드에 방문할 때마다 머무르는 거처는 잘 알고 있어. 모를 수가 없지, 아주 유명한 건물이니까···.”


“당장 가보자.”


그는 유스티아를 따라서 그곳을 향해서 이동했다. 점점 목적지에 가까워질 때마다 그는 왠지 모를 위화감을 느꼈다. 익숙한 거리, 익숙한 풍경.


“···유스티아. 여기는···.”


“그래, 바로 이곳이야.”


그는 그 건물을 올려다봤다. 그가 친구들과 함께 던전 탐험 보드게임을 즐겼던 카페가, 리네아가 아르바이트를 하는 바로 그곳이 있는 빌딩이었다! 설마 이곳이었다니, 그는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다.


“음,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치안부장님은 이 고층 빌딩 옥상에 있는 펜트하우스에 사실 거야··· 그 밖에도 에듀그라운드 기업의 총수, 유명 연예인, 시 정부의 요인, 토착 귀족들도 있어. 경호를 위한 치안부의 직속 부대도 배치되어 있을 정도로 귀한 분들이···.”


“젠장··· 저 개새끼가···.”


“응?”


“저기 위를 봐봐.”


“···저건···!!!”


20층 정도에 툭 튀어나와 있는 발코니에서, 정장을 갖추어 입은 한 남자가 그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거리가 꽤 멀었지만, 양쪽 눈에 난 큰 흉터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다. 셰퍼드였다.


“빌어먹을···!”


유감스럽게도, 이제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 저 위에 있는 모든 사람··· 치안부, 기업, 유명인, 귀족, 정치인 전부가 인간의 존엄성을 능멸하고 비참하게 죽어가게 하였던 그들의 진정한 적이라는 걸.


“···이제 이 요리도 끝날 때가 됐다.”


셰퍼드는 품속에서 편지 봉투 하나를 꺼내서, 발코니 바깥으로 툭 떨어뜨렸다. 고층 빌딩 사이사이를 흐르는 바람을 타고 떨어진 봉투는 이내 차량이 빠른 속도로 내달리는 도로 한복판에 떨어졌다.


“플라누스! 위험해!”


유스티아가 채 말릴 새도 없이, 그는 도로로 뛰어들어서 차량 사이를 위태롭게 헤쳐 나가 바닥에 떨어진 편지지를 잡아챘다. 다시 인도로 빠져나온 그는 봉투를 뜯어서 안에 적혀있는 내용을 바로 확인했다.


‘플라누스 및 유스티아님, 귀하를 내일 저녁에 열리는 저희 경매 행사에 초대합니다. 귀하가 관심이 있을 만한 품목은 -드라켄 리네아-입니다. 본 초대장은 잘 소각해 처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리네아가?!”


“유스티아, 리네아 주소가 어디라고?!”


플라누스와 유스티아는 리네아가 자취하고 있는 방으로 급하게 향했다. 방문은 잠기지 않아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었다. 난장판이 된 내부를 보고 그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이 서류··· 빚 독촉··· 리네아한테 걸려있는···.”


성인이라도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액수가 적혀있는 빚 독촉장이 남겨져 있었다. 옆에서 내용을 훑어보던 유스티아는 완전히 당했다는 듯이 이를 꽉 깨물었다.


“···알 것 같아. 대출을 받은 돈을 다시 빌려주면, 집세를 싸게 해주겠다고 꼬드겼을 거야. 사회 초년생을 노리는 전형적인 사기 수법이라고.”


“리네아··· 이런 시발··· 왜 말을 안 했던 거야?!”


“제국은 금융 범죄를 엄벌하고 예방하기 위해서··· 빚을 갚지 못하면 가까운 친족에게 전가하는 연좌제를 적용하고 있어.”


“뭐 그딴 좆같은 같은 법이···.” 


“리네아는 사기를 당해서 이렇게 큰 빚이 생겼다고 누구에게도 고백할 수가 없었던 거야. 갚아 줄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래서 도둑질이라도 해서 자력으로 갚아 보려 했던 건가? 나는 그것도 모르고 리네아한테 그렇게 험한 말로 상처를 준 건가···!?”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쳤다. 유스티아는 어두운 얼굴로 리네아의 흔적이 남아있는 방을 둘러보며 자신에 안일함에 대해서 자책했다.


“바로 이걸 그동안 쾌락주의자 놈들이 노렸던 거였어.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이 생길 때까지 기다린 거야. 우리를 낚을 미끼로 삼기 위해서···.”


최후의 결전이 눈앞에 다가왔다. 아무 잘못 없이 말려든 소녀를 구하기 위해서라도, 물러설 수는 없다.


작가의말

암나앎낭람아아파아팡난아판아아파앞아난아파아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링 월드 판타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6월 3일, 6월 10일 휴재 공지 24.05.28 2 0 -
92 2-47 24.05.28 5 0 13쪽
» 2-46 24.05.21 7 0 13쪽
90 2-45 24.05.14 7 0 12쪽
89 2-44 24.05.07 9 0 11쪽
88 2-43 24.04.30 8 0 16쪽
87 2-42 24.04.23 9 0 16쪽
86 2-41 24.04.16 10 0 17쪽
85 2-40 24.04.09 10 0 19쪽
84 2-39 24.04.01 11 0 17쪽
83 2-38 24.03.26 9 0 14쪽
82 2-37 24.03.19 10 0 18쪽
81 2-36 24.03.12 9 0 15쪽
80 2-35 24.03.04 6 0 12쪽
79 2-34 24.02.26 9 0 13쪽
78 2-33 24.02.19 14 0 14쪽
77 2-32 24.02.12 10 0 13쪽
76 2-31 24.02.05 11 0 14쪽
75 2-30 24.01.29 10 0 12쪽
74 2-29 24.01.22 14 0 17쪽
73 2-28 24.01.15 12 0 15쪽
72 2-27 24.01.08 15 0 15쪽
71 2-26 23.12.31 11 0 15쪽
70 2-25 23.12.24 12 0 16쪽
69 2-24 23.12.17 11 0 13쪽
68 2-23 23.12.10 18 0 15쪽
67 2-22 23.12.03 15 0 14쪽
66 2-21 23.11.26 15 0 15쪽
65 2-20 23.11.19 17 0 17쪽
64 2-19 23.11.12 13 0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