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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님의 서재입니다.

링 월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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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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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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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2.26 0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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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

DUMMY

플라누스, 유스티아, 호프스, 케시, 마이는 한 30대 후반의 남성과 함께 칼데의 안내를 받아 빈민가에서도 특히 인적이 드문 곳으로 이동했다. 유스티아는 오랫동안 밖에 나오지 않아 숨을 부족했던 남성을 부축하며, 그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넸다.


“아버님, 협조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선생님, 제 아이를 찾기 위해서라면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입니다.”


맨 뒤에 호프스가 들고 있는 두꺼운 종이 상자에는 다섯 살 전후의 어린아이가 사용할 만한 의류와 장난감들이 한가득 담겨 있었다. 형형색색 장난감에 아주 살짝 쌓여있는 먼지는 주인이 사라진 지 그리 오래되진 않았다는 사실을 암시했다.


“···이쪽은 거의 다 빈집이야. 만약 정령과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을걸.”


마침내 운명의 때가 눈앞으로 다가오자 남성은 숨을 더 헐떡였다. 그는 오늘 계획에 있어서 핵심적인 인물이었기에 유스티아와 플라누스는 그의 건강 상태를 면밀히 살피면서 계속 말을 걸었다.


“괜찮으세요?”


“···정령의 정체가 제 아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까, 저도 모르게 긴장이 많이 돼서···.”


“천천히, 심호흡하세요.”


하지만 남성은 그날 자기 잘못을 잊으려야 잊을 수가 없다는 듯이 자기 무릎을 쥐어뜯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아이가 가지고 싶어 하는 게 있었습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어도 곧 아이 생일이기도 했으니까 꼭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눈 딱 감고 끊었던 도박장에 다시 들렀습니다. 그날은 신기할 정도로 게임이 잘 풀렸어요. 큰돈을 따서 신나서 집에 돌아갔는데···.”


“괜찮아요, 아버님 잘못이 아닙니다.”


“아닙니다! 제 잘못입니다! 가장으로서 제일 먼저 지켜야 했던 건 가족이었습니다! 제 욕심 때문에 제 아내는 강도를 당하는 동안 아이를 홀로 지켜야만 했습니다! 바로 집으로 돌아갔었다면 아내가 외롭게 죽고 우리 애가 납치당하는 일도 없었을 텐데!”


플라누스가 절규하는 남성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서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부인의 죽음과 동시기에 나타난 붉은 정령이 정말로 동일 인물이라면··· 정령과 어떤 식으로든 소통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오리무중인 아드님의 행방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경찰의 수사에도 진전이 있을 겁니다.”


한 아이의 아버지라면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었다. 사랑의 결실인 자식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지옥에 걸어서라도 다녀오는 게 바로 부모니까.


“···해보겠습니다.”


플라누스는 친구들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각자 자리를 잡고 다음 상황에 대비했다. 남성은 상자 속에서 현악기를 하나 꺼냈다. 그가 아내와 아이를 위해서 연주해주고는 했던 전통 악기였다.


“과연 이게 먹힐까···.”


호프스가 근심 어린 목소리로 중얼거리자 케시는 무언가 일어날 것 같다는 고양된 목소리로 답했다. 


“가능성은 분명히 있어!”


잠깐의 침묵, 남성의 팔이 중력을 따라서 흘러내렸다. 활과 현이 만들어내는 진동이 차가운 심야 공기에 이리저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제국 서쪽 지방 원주민들이 삶의 슬픔을 달래기 위해서 노래하고는 했던 구슬픈 민요가 친구들의 가슴을 아프게 했다.


“···앗, 왔어요!”


어두운 골목 사이사이로 그들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는 붉은 기운,이 사실을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던 마이가 알렸다. 그들이 의도 한 대로 붉은 정령이 생전에 자주 들었던 노래에 반응한 것이었다.


“성공했다!”


자신의 이론이 적중하자 근심걱정을 떨치지 못하던 호프스의 얼굴에도 잠깐은 기쁨이 맴돌았다.


“설마 정말 정령 같은 게 실존했다니···.”


기존의 마법적 상식으로는 도저히 믿기 힘든 결과였지만, 두 눈으로 본 이상 칼데도 결국 받아들였다.


“좋았어!”


쉬지 않고 연주를 이어가는 남성의 앞에 케시는 방패를 뽑아 자리를 잡으며 외쳤다.


“모두, 반드시 해내자!”


역할을 마친 마이가 빠르게 몸을 숨기면서 붉은 귀신이 거의 당도했음을 알렸다.


“곧 도착해요! 3··· 2··· 1!!!”


쾅!!!


그 어느 때보다도 맹렬한 기세로 등장한 붉은 정령은 지체 없이 자신을 끌어당기는 멜로디를 향해서 달려들었지만, 그곳에는 넓은 지역에 아우라를 전개할 수 있는 케시가 있었다.


“죄송하지만··· 여기는 지나갈 수 없습니다!”


밀도 높은 아우라에 가로막힌 정령은 우회하려 했지만, 곧바로 유스티아가 전개한 아우라에 가로막혀 이동을 제한당했다.


“자기야! 나야! 알아보겠어!?”


악기를 천천히 내려놓은 한 아이의 아버지는 기적적으로 재회한 아내에게 상자를 들고 다가섰다. 눈코입이 달린 것도 아니건만, 정령도 무언가를 느꼈는지 몸을 이루는 소거인의 형태가 빠르게 뒤바뀌었다.


“여기 담겨있는 옷들, 다 자기가 우리 아이를 위해서 직접 만든 거잖아!”


모두가 정령과의 대화에 집중하는 동안, 플라누스의 엄호받는 칼데는 자신이 시전할 수 있는 마법 중에서 가장 화력이 강한 화염 방사를 준비했다.


이미 한 번 죽었다고 하더라도 정령으로서 되살아났을지도 모르는 한 사람을, 최악의 경우에는 소멸시키겠다는 잔인한 계획의 잔인한 역할이다.


그러나 최악의 상황에 이곳 주민들을, 보육원의 아이들과 진찰소의 환자들, 그리고 그녀의 할아버지를 안전하게 지키는 건 오직 그녀만이 해낼 수 있었다.


“···지금까지 혼자 둬서 미안해! 그동안 너와 아이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어서 한심하게 집안에 틀어박혀 있었지만··· 아이를 찾기 위해서는 단서가 필요해!”


남성은 정령을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케시는 말리려 했지만 다른 사람이 사이에 끼어들어 있어서는 진정한 대화를 할 수 없을지도 몰랐다.


“부탁이야, 말해줘, 우리 사랑을 지킬 수 있도록···.”


아버지가 목도리를 정령을 향해 내밀었다. 아이를 위하는 사랑과 정성이 담긴 그 목도리, 자신이 짠 목도리를 알아봤는지 정령의 움직임이 먿었다.


“······.”


정령의 색이 점점 초록색으로 변화했다. 미쳐 날뛰던 소거인의 리듬도 점점 안정화되어갔다.


“성공했나?!”


마침내 한 달여 간의 고통을 딛고 부부의 육체와 정신이 감동의 재회를 이루려던 그 순간···.


퍼어어어어어엉···!!!


상당히 먼 곳에서 터진 폭발이 만들어낸 진동이 그들의 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모든 것이 잘 되어가고 있었는데, 급작스럽게 터진 돌발 상황에 친구들은 물론이고 정령 또한 하늘 위로 부유하여 상황을 살폈다.


“누나! 무슨 일이야!? 뭔가 보여!?”


“호프스! 여러분! 폭발이!!! 불이 났어요!!!”


이런 심야에 불이라니?


“어디서 불이 났는데!? 얼마나 크게 났어!?”


“그러니까··· 서, 설마 그럴 리가!? 안 돼!!!”


상상 이상의 충격과 압도적인 공포에 전율하는 마이의 모습을 통해서 친구들은 단숨에 무언가 크게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직감했다. 


“누나!? 누나!!!”


호프스는 단숨에 계단을 뛰어 올라가서 상황을 살폈다. 역시나 경악을 금치 못한 호프스가 이내 절박한 목소리로 다른 이들에게 소리치며 뛰어내렸다.


“보육원이 위험해!!!”


“뭐···!?”


화염 방사를 준비하던 칼데가 무심코 지팡이를 떨어뜨렸다. 너무 예상외의 상황이었기에 케시는 발이 얼어붙어서 자리에서 움직이지도 못했다.


“설마···!!!”


아무런 근거도 없었지만, 확신에 휩싸인 플라누스는 다급하게 뛰쳐나가서 유스티아를 불렀다.


“유스티아!”


“···플라누스!”


똑같은 생각을 한 유스티아도 그를 바라보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놈들이 벌인 짓이었다.


“!!!”


말릴 틈도 없이 정령은 최대 속도로 진원지를 향해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유스티아와 플라누스가 바로 그 뒤를 따라 쫓아갔고, 뒤늦게 정신을 차린 나머지도 붉게 물들어가는 밤하늘 밑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 * *


쉬지 않고 달린 그들의 앞에 펼쳐진 참상은 차마 보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이들이 뛰어놀던 놀이터는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이었고 사방에는 불이 번지고 있었다. 플라누스와 유스티아는 가슴팍을 크게 베인 채로 그들을 향해 손을 뻗는 원장님을 향해 달려갔다.


“원장님!”


“피를 너무 많이 흘렸어. 당장 응급처치를···.”


“아, 아이들이, 납치됐다!”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보육원 안을 바라봤다. 흐느끼고 있는 아이들이 여럿, 눈에 들어왔지만, 그 수가 현저하게 부족했다. 원장님은 지혈하려는 그의 손을 뿌리치면서 혼신의 힘을 다해 외쳤다.


“나··· 같은 늙은이 따위는··· 죽거나 말거나 신경 쓰지 마라! 빨리 놈들을··· 쫓아! 애들을, 애들만큼은··· 반드시 구해야 한다!”


잠시 고민하던 유스티아와 플라누스는 원장님의 뜻을 헤아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가라!”


그들은 비장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원장님이 가리킨 골목을 방향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몇 걸음도 채 가지 않아서 작열하는 불길 속에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던 한 암살자와 그들은 마주할 수 있었다.


“···셰퍼드!!!”


유스티아는 극도의 실망감과 분노가 담긴 목소리로 그 암살자의 이름을 불렀다. 함께 제국의 미래와 정의를 논하던 과거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이익을 위해서라면 그 어떤 짓도 서슴지 않는 악마만이 남았다.


“저 개새끼가···!”


셰퍼드는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는 듯이 비열한 웃음을 짓고는 불길 속으로 사라졌다. 그들은 망설임 없이 그를 쫓으려 했지만, 어느새 나타난 붉은색의 정령이 하필이면 그 사이에서 폭주하기 시작했다.


“이런···!?”


한 아이의 어머니, 그녀는 불완전한 정령이 된 이후로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를 찾아서 빈민가를 맴돌았다. 아이가 우는 소리가 들리면 달려가 확인하고, 범죄자가 나타나면 달려가 박살 냈다. 무의식에 가까운 상태에서조차 무고한 피해자를 낳지 않았다.


어디선가 들려온 그리운 노랫소리에 한걸음에 달려가 마침내 자신의 아이를 되찾나 싶었는데, 그것이 보육원을 습격해 아이들을 납치하기 위한 함정이었다고 인식한 ‘감정의 응어리’, 그 분노는 마침내 온 세상을 향해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원장님!!!”


뒤늦게 달려온 마이가 원장님에게 달려가서 지혈을 도왔고, 아이들이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호프스, 케시, 칼데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럴 수가···.”


“자기야, 그만 해! 이건 아니야!!!”


폭주를 막으려 남성이 절박하게 호소했지만, 분노에 사로잡힌 정령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이 상정했던 최악의 상황보다 훨씬 더 최악인 상황.


“젠장···!!!”


납치된 아이들을 구하려면 한시가 급했지만, 이대로 폭주하는 정령을 내버려 두고 놈들의 뒤를 쫓았다가는 더 많은 주민이 그 급류에 휘말리고 만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는 포기해야만 하는 것인가? 그 선택의 갈림길에서 그와 유스티아가 내린 결정은···.


“나다!!!”


어느새 거리를 벌린 호프스가 온 동네가 울릴 정도의 큰 목소리로 폭주하는 정령을 향해서 외쳤다. 터전을 잃는 공포에 벌벌 떨던 주변 주민들은 물론이고, 폭주하던 정령마저 그가 선 곳을 바라봤다.


“호프스?!”


다시 한번 더 호프스가 외쳤다.


“나다!!! 내가 바로 범인이다!!!”


“···쟨 또 무슨 헛소리를···!?”


도대체 무슨 짓을 하려는 건가, 의도를 다 파악하기도 전에 호프스는 모두의 앞에서 충격적 고백을 했다.


“내가 바로 아이를 납치한 범인이다!!!”


“···뭐?”


“거기! 아이는 내가 잘 데리고 있다. 혹시라도 돌려받고 싶다면 당장 나를 따라와라! 응하지 않는다면 아이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다!!!”


100% 거짓말에 너무나도 터무니없는 선언이었다. 당연히 그의 말을 믿는 인간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정령의 목표를 그로 바꾸는 데에는 성공했다.


“호프스···!?”


호프스는 친구들을 향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정령은 자신이 목숨 걸고 유인할 테니, 납치된 아이들을 되찾아오라는 그의 의도를 모두 단숨에 알아차렸지만···.


“···이 바보 멍청아! 죽을 셈이야!?”


아우라를 다루거나 마법을 쓸 수 있다면 혹시나 모를까, 둘 중 아무것도 사용하지 못하는 호프스가 미끼 역할을 맡는 것은 사실상 자살 행위나 마찬가지.


“호프스! 그만둬! 그러다가 정말···.”


하지만 호프스는 다 알면서도 그들을 향해 소리쳤다.


“너희들, 믿고 맡긴다!!!”


정령은 이제 그들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들을 지나쳐 도망가는 호프스의 뒤를 맹렬하게 쫓기 시작했다. 플라누스는 멀어져가는 호프스의 뒷모습에서 고개를 돌리고 모두에게 말했다.


“···놈들을 쫓아가자. 아이들을 구하자!”


작가의말

학교가기 싫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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