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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님의 서재입니다.

링 월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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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6
최근연재일 :
2024.06.25 04:06
연재수 :
9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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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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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글자수 :
64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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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01 2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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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39

DUMMY

혹시라도 누가 엿듣기라도 할까,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릴락 말락 한 장소로 그를 데리고 온 마이는 혹시라도 누군가가 엿보기라도 할까 불안한 시선으로 주변을 둘러보곤, 그가 재촉하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자 마침내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저기, 플라누스···.”


“···무슨 일인데?”


“밤새 많이 고민했어, 이 얘기를 너한테 꼭 전해야 하는 걸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더 괴롭고 가슴이 무거워져서.”


“······.”


“그래도 조금 전에 결심했어. 살아있을 때밖에 전할 수 있는 소중한 마음도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그래.”


마이의 흔들리는 눈동자가 자아내는 불안감에는 ‘미래에 대한 기대’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그녀가 그에게 전하려는 말이 사랑 고백처럼 흔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그는 알아차렸다. 정말로 고백이었다면 오히려 대답하기가 더 곤란했을 거라고 생각하며 그가 오히려 더 안심하는 찰나-


“···플라누스, 옛날에 있었던 일에 대해서는 새벽에 호프스한테 들었어. 그런 안타까운 과거가 있었다니 정말 가슴이 아파···.”


아무래도 호프스 그 바보가 멋대로 그의 과거를 털어놓은 모양이었다. 누나를 위해서 자기 목숨을 거는 놈이니, 그녀 뭐를 물어보든 곧이곧대로 전부 대답해준 게 분명했다. 돌아가면 따끔하게 경고를 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그녀에게 답했다.


“아니··· 옛날 일이고, 마이 너랑은 크게 상관없는 일이니 그리 마음 쓰지 않아도 돼··· 위로해 주려고 따로 불러낸 거야?”


쓸데없는 오지랖이라고 생각하며 조금은 짜증이 나려던 그 순간, 그녀는 선을 넘고 더욱더 깊숙한 기억을 파고들어 왔다.


“마지막 날, 그 격렬했던 싸움 도중, 분명 플라누스가 소중하게 여기던 사람들도 목숨을 잃었을 거야··· 그렇지?”


그는 마이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거야 당연한 거 아닌가? 그때 그 자리에 없었던, 그날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상상도 못 할 그녀가 그런 질문을 함부로 하는 건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너무 예의가 없었다. 그래서 더욱더 이상한 질문이었다. 마이가 그 정도도 모를 리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래 맞아. 죽었지. 많이 죽었다고. 바로 내 앞에서··· 어찌나 처절하게··· 그토록 끔찍하게··· 모두···!”


“···그래, 역시···.”


하지만 이렇게 그의 아픈 과거를 후벼파야만 하는 이유가 그녀에게 있을 리가 있을까? 그는 이마를 찌푸리면서 단도직입적으로 그녀가 건넨 괴상한 질문의 의도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마이, 대체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은 거야?”


“정령님이 발생한 게, 강한 원한과 집착 때문이라고 했지?”


대화가 또 종잡을 수 없는 곳으로 튀었다. 밤새 고민했다면서, 대체 뭘 그에게 전하고 싶다는 걸까. 팍 몰려오는 짜증을 가까스로 참으며 그는 말없이 그녀에게 고개를 끄덕여줬다.


“플라누스··· 정령님이 나한테 말해주셨어. 너의 등 뒤에···.”


“등 뒤?”


그는 곧바로 등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는다면 곧바로 길을 잃어버릴 정도로 반복되는 빈민가의 낡아빠진 골목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별다른 특이점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무것도 없잖아. 흔해 빠진 풍경인데.”


“···정령님이 말씀하시길, 또 다른 정령님이 있데.”


“뭐?”


그게 대체 무슨 뜬구름 잡는 소리란 말인가? 그녀는 그를 상대로 말장난하는 건가? 그가 도통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는 떨리는 목소리로 간신히 말을 이으면서도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알고 있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정령님은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겠지만, 아주 희미하나마 존재를 유지하고 있는 또 다른 정령님이 플라누스의 등 뒤를 계속 따라다니고 있다고 하셨어!”


“또 다른··· 정령? 내 등 뒤에? 따라다니고 있다?”


“처음에는 나도 정령님이 잘못 본 게 아닐까 싶었어. 하지만 혹시나 해서 호프스한테 플라누스한테 안 좋은 일이 있었던 적 있냐고 물어보고 나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겠더라.”


“···설마.”


“확실해. 그때 희생자분들 중 하나가 정령이 되어서 플라누스의 곁을 맴돌고 있는 거야.”


 “···설마 그럴 리가.”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원래였다면 코웃음 치거나 되레 화를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눈으로 직접 확인하지 않았나, 정령이라는 환상적 존재는, 사실 이 세상에 엄연히 실존하고 있는 개념이라는 현실을. 그는 손으로 입을 대신 틀어막았다.


“대체 누가?”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그를 향해 손을 뻗으며 살려달라고 빌던 수많은 수용소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은 그들을 구할 방법 따위는 없었다. 수용소 사람들을 선동하여 반역을 일으킨 그에 대한 그들의 원망과 증오를 감히 헤아릴 수는 없었지만, 그렇다기에는 그는 나름대로 멀쩡했다.


“케이?”


다음으로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이제는 윤곽이 흐릿해져 제대로 그릴 수가 없어진 절친의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는 감히 케이를 의심할 수 없었다. 동료들의 자유를 위해서 자신을 기꺼이 미끼로 삼아서 희생하던 케이가 정작 최후의 순간에 자신을 원망하는 그런 모습을 그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다.


“라미.”


어느샌가 입에 담기 너무 무거워진 그 이름이 결국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애써 부정하고 싶었던 현실이 그를 엄습해왔다. 누구보다도 사랑했던 사람, 미래를 함께 살아가고 싶었던 사람, 그 순간 누구보다도 죽음을 두려워하고 생에 대한 집착이 강했을 사람, 그에게 억울하게 마감해야 했던 삶에 복수를 부탁했던 사람.


바로 그녀였다. 오직 그녀밖에 없었다.


“······.”


불현듯이 들려오곤 했던 희미한 환청이, 잊어가고 있었던 라미의 목소리가, 이제는 분명하게 떠올라 그의 머리를 가득 울렸다.


‘아아, 들려? 플라네타? 아니면 플라누스라고 부를까?’


“헉···!?”


그는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온 곳을 돌아봤다. 당연하게도 그곳에 그녀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그동안 흘려듣곤 했던 그녀의 목소리, 그건 망상이나 환청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그는···.


‘그동안 쭉 지켜봤는데··· 은근히 즐거워 보이더라?’


“어?! 라미···?!”


‘아아, 미워라. 언제쯤이면 내 소원을 이뤄줄 거야? 그날 분명히 약속했잖아. 놈들에게 복수해주겠다고. 그런데 언제까지 나를 기다리게 할 셈이야?’


“아, 아니야. 그런 게···.”


‘혹시 나를 버리고 유스티아로 갈아타기로 했어? 그러면 정말 슬플 텐데··· 하지만 괜찮아. 너는 반드시 이뤄줄 거라고 믿고 있어. 분명 깜짝 놀랄 만한 굉장한 계획이 있는 거겠지?’


“나, 나는 피하려 했던 게···.”


‘걱정하지 마··· 나는 질리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까. 떠나지 않고 지켜볼게. 모든 것이 끝날 때까지 말이야.’


“대체, 내가 무슨 짓을···.”


라미의 목소리는 그의 머리를 직접 울렸기에 이제는 어디론가 피하는 것도 도망치는 것도 숨는 것도 불가능했다. 맹세를 알음알음 잊어버리는 망각의 죄가 앞에서 그녀의 영혼 앞에 명명백백히 밝혀지자, 그는 형언할 수 없는 공포에 벌벌 떨면서도 자신에 대한 분노를 형벌로 삼아 자신을 스스로 채찍질했다.


“미안해, 미안해, 너는 줄곧 지켜보고 있었는데 나는···!”


라미가 엄연히 그의 곁에 살아 숨 쉬고 있음에도 그는 은연중에 죽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는 은연중에 유스티아에게 끌리고 있었다. 그는 은연중에 친구들과 함께하며 즐거워했다. 이제 그 모든 것이 죄가 되어서 그에게 벌로 돌아온다.


“플라누스!? 괜찮아!? 안색이 너무 안 좋아! 혹시 정령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거야?! 안 좋으면 다른 사람을 불러올 테니까···?”


새파래진 그의 얼굴색을 보고 마이가 다가와서 비틀거리는 그의 몸을 받쳤다. 하지만 그에게는 자신을 걱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너무나도 고통스러웠다. 라미를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은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그런데도 그는 그동안 그녀의 기억과 직접 마주하는 것을 피하고 있었다.


“됐어!”


“꺅!!!”


그는 자기 몸을 받쳐주던 마이를 팔로 강하게 밀쳐냈다. 그녀는 물기가 남아있는 바닥에 강하게 내팽개쳐졌다. 그저 자신을 걱정해줬을 뿐인데, 마이에게 너무 모질게 굴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머릿속에서 윙윙 울리는 목소리에 완전히 질려버려 고개를 마구 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밀지 않았다.


“플라누스···!”


“···미안, 마이. 다른 애들한테는 먼저 돌아간다고 전해줘.”


* * *


다음 날 오전, 다른 학생들이 화염 마법을 어떤 규모로 얼마나 시전해야 고기를 가장 맛있게 구울 수 있나 열띤 토론을 벌이는 가운데, 그는 잘 가꾸어진 정원의 한구석, 벤치에 홀로 앉아 허공을 바라보면서 조곤조곤 되뇌었다.


“미안해, 이제부터는 망설이지 않을 테니까, 지켜봐 줘···.”


그렇게 목이 쉬도록 속죄의 말을 내뱉다 보면, 그의 심장을 꽉 옥죄며 숨을 틀어막던 압박감도 잠깐만큼은 가라앉아 간신히 숨을 돌릴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몸을 추스르고 자리에서 일어나던 그의 몸은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그대로 굳어버렸다.


“선생님? 저희가 꼭 묻고 싶은 얘기가 있는데 괜찮을까요!?”


“너희들··· 설마 어디서 사고 친 건 아니지? 그런 거면···.” 


“에이, 아니에요! 근데 여기서 하기에는 조금 그런데···.”


“···옥상이 좋겠어. 거기면 새어나가는 일은 없겠지.”


“그런데 너희들, 플라누스는 어디 있어? 같은 조잖아?”


“플라누스 몰래 해야만 하는 얘기니까 괜찮아요!”


 “무슨 얘기길래?!”


“가서 말씀드릴게요!”


유스티아를 잡아끄는 호프스, 케시, 칼데의 흥분한 목소리가 점점 멀어져가자 그는 한숨을 내쉬고는 다시 벤치에 주저앉았다. 실의의 빠져 술이나 찾던 한심은 온데간데없고, 유스티아는 어엿한 선생의 모습을 갖춰나가고 있었다. 호프스, 케시, 칼데는 모난 부분이 없잖아 있으면서도 좋은 친구들이었다.


‘밖에 나간다면 학교에 다니고 싶어.’


라미가 바라던 삶이 이런 모습이었을 것이라 생각하니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누리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역겨웠다. 도무지 떨쳐버릴 수가 없는 무거운 죄책감은 그의 가슴을 무엇보다도 강하게 짓눌렀다.


“···오빠.”


“···안녕, 리네아.”


“오랜만이라기에는 별로 안 됐죠?”


“···기껏해야 3일밖에 안 되긴 했지. 아르바이트는 어때? 일도 하고 공부도 하려면 아주 힘들 것 같은데···.”


던전 공략 조를 이끌 리더를 정하겠다고 그들이 잠시 딴 길로 샌 덕분에, 리네아는 그동안 아르바이트에 집중할 수 있었다. 밤늦게까지 공부하느라 다크 서클이 짙어진 소녀는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면서 환하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냈다.


“아르바이트는 할만해요. 사장님이나 다른 동료들도 먼 곳에서 온 저를 여러모로 배려해주시고요. 다들 좋은 분이에요.”


하지만 역시 연이은 노동으로 피로가 많이 누적되었는지 잔뜩 치켜든 어깨는 금방 바닥으로 쳐졌고, 얼굴에는 한창때의 소녀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근심·걱정이 가득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한숨을 크게 내쉰 리네아는 지갑을 꺼내서 살폈다.


“하지만 시급만으로 비싼 학비를 충당하기에는 턱도 없어요. 역시 도시는 기숙사조차도 억 소리 나게 비싸다고요.”


“···부모님께는 연락해봤어? 제국을 횡단해서 합격까지 했는데, 부탁하면 아무래도 들어주지 않을까 하는데···.”


그러자 리네아는 쓴웃음을 짓더니 품속에서 구겨진 편지 봉투를 그에게 건넸다. 발신인 부분을 살펴보니 그녀의 부모님에게서 온 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리네아는 내용물을 봐도 된다고 고개를 끄덕였으며, 그는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펼쳐봤다.


‘리네아, 합격했다니 너의 실력과 고집은 인정할 수밖에 없겠구나. 하지만 말이다, 이 어미와 아비는 도저히··· 어쨌든 돌아오는데 필요한 돈을 충분히 넣어놨으니 당장이라도 집으로···.’


딸에게 차마 욕바가지를 퍼부을 수는 없었으니, 분노를 꾹 눌러 담은 글씨체로 왜 지원해줄 수 없고 열차 편에 필요한 돈을 첨부해놨으니 지금 당장 돌아오라는 살벌한 경고가 빼곡하게 적혀있었다. 하지만 봉투를 다시 살펴봐도 첨부했다는 돈은 없었다.


“···리네아, 부모님이 보낸 돈은 어쨌어?”


“···뭘 물어요? 당연히 학비에 보탤 생각이에요.”


“···야, 아무리 그래도 이제는 좀 현실을 봐야 하지···.”


“현실이요? 아니요! 지금도 잘 보고 있는걸요?!”


리네아는 물러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소녀는 깊은 한숨을 또다시 뱉어내더니, 눈물이 고여있는 눈으로 그를 바라보면서 고향의 풍경을 천천히 표현했다. 고향은 풍요로운 과수원이 시야를 가득 메우고, 수백마리의 가축들이 드넓은 초원의 풀을 뜯어 먹는 평화로운 농촌이었다. 그녀는 농촌에서도 나름 여유롭게 사는 편에 속한 집안의 자녀로 남부러워하면서 살아오지는 않았다.


“그렇게 나쁜 동네도 아니었네.”


“굳이 따지자면 엄청 좋은 동네죠···.”


리네아는 슬쩍 흘러내린 눈물을 닦아내고는 말을 이었다.


“하지만 오빠, 저에게는··· 그 아름다운 고향의 풍경이 죽을 날까지 갇혀 살아야만 하는 감옥처럼 느껴졌어요.”


“···!”


 “농촌은 그리 넓지 않아서, 알고 지내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아요. 제가 원하지 않아도 부모님이 하던 일을 그대로 이어서 해야 하죠. 그리고 자유롭게 연애할 기회 같은 것도 없어요. 사실··· 홧김에 집에서 뛰쳐나왔던 것도 부모님이 옆집에 7살 많은 남자랑 결혼하라고 강요해서 그랬어요. 뭐, 그 사람이 못 봐줄 정도로 못생긴 것도 아니고 성격이 개차반인 것도 아니었지만, 잘사는 집안과 이어지는 건 좀처럼 오지 않는 기회니까 꼭 잡아야 한다는 둥, 앞으로의 삶이 훨씬 편해질 거라면서···.”


“······.”


리네아가 입으로 꺼낸 ‘감옥’이라는 말이 그의 입을 저리게 만들었다. 비교하는 게 미안할 정도이기는 하지만, 리네아의 고민도 결국 자유롭게 살아가고 싶다는 당연한 소망을 바라고 있었고, 그 모습은 그로 하여금 라미를 연상시키기에는 충분했다.


현실적인 조언이라면 얼마든지 할 수 있었다. 세상일이야 해봐야 아는 것이기는 하지만 부모를 떠나서 살아갈 수 있는 그런 자식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100명 중에 겨우 1명이나 해낼 법한 그런 스토리로 리네아 너도 해낼 수 있다며 부추기는 것은 무책임하고 경솔한 발언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과연 정말로 행복한 삶인가? 세상을 일을 해보지도 않고 다 알 수 있다고 할 수 있을까? 그녀의 가능성을 현실이라는 말로 무참히 짓밟고 나서는 그녀를 위한 일이었다며 합리화하는 건 아닌가? 어쩌면 스스로 편해지기 위해서 내뱉는 세상에서 가장 무책임하고 경솔한 발언일지도 몰랐다.


그는 소녀를 라미에 투영했다. 결국 그의 선택은···.


“리네아.”


“오빠···.”


“넌 할 수 있어. 너 자신을 믿어. 너는 제국의 절반을 무일푼으로 횡단해서 건너온 소녀잖아? 그런 너가 여기서 못 해낼 일이 대체 뭐가 있겠어? 나는 알아, 너가 결국은 해낼 거라는 걸.”


부모가 뒤로 돌아섰을 때, 차가운 현실이 앞길을 가로막았을 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용기가 필요한 때, 누군가의 진심 어린 응원이 절실한 때, 그를 찾아온 소녀는 그토록 바라던 짧은 메시지만으로도 아주 큰 힘을, 압도적인 확신을 얻었다.


“고마워요. 오빠. 진심으로요.”


그래도 소녀를 위해서 그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있었다.


“···내가 애들한테 사정에 대해서는 말 해놓을 테니까, 오후에 던전은 신경 쓰지 말고 너는 학비를 구하는 데만 집중해.”


“에? 그래도···.”


“그리고 걔들은 성적에 연연할 애들이 전혀 아니니까 괜찮아. 오히려 나서서 돕겠다면서 난리를 피울 놈들이라서···.”


“······.”


소녀는 그에게 다가가 볼에 가벼운 입맞춤을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언짢은 얼굴로 바라보자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환한 미소로 화답하면서 손을 흔들었다.


“아무나 받을 수 없는 비싼 보답이니까 얼굴 좀 펴요!”


작가의말

유스티아의 015부대의 최후 관련해서 설정 충돌이 나서 고쳤습니다. 해체당했다랑 전선에 보내졌다가 괴멸당했다로 나뉘었는데, 후자인 걸로...


ㅁㄴㅇㄻㄴㅇㄻㄴㅇㄻㄴㅇㄻㄴㅇㄻㄴㅇ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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