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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님의 서재입니다.

링 월드 판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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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논의역설
작품등록일 :
2023.05.10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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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5,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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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2.17 2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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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4

DUMMY

봄과 함께 찾아온 따뜻한 바람에는 꽃향기가 가득 넘쳤다. 교실에는 갓 입학한 신입생들이 각자 자리를 하나씩 차지한 채로 서로의 눈치를 봤다.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기대감과 혹시라도 안 좋은 인상을 남기지는 않을까 하는 그런 공포감이 공존했다.


“그래서··· 왜 너희들이랑 같은 반인 거지?”


반평생 동안 모았던 저축을 깨고 급하게 구입한 지팡이로 교실 바닥을 두드리며, 칼데는 굉장히 언짢다는 표정으로 주변에 있는 세 사람을 째려봤다. 그녀의 오른쪽에 앉아 있는 케시가 실실 웃으면서 칼데를 바라보며 핑거 스냅을 쳤다.


“어쩌면 운명이라는 걸지도!”


“빌어먹을 운명 좋아하시네···.”


그녀의 왼쪽에 앉아있던 호프스도 그녀의 불평불만을 가만히 듣고만 있지는 않았다.


“쳇, 누구는 좋은 줄 알아? 내 뒤통수를 후리려던 여자랑 최소 1년간 얼굴을 맞대고 지내야 한다니···.”


“아하, 싫으면 나갈까?”


“너는 플라누스 덕분에 거기 앉아 있는 줄 알아! 그놈들이랑 함께 경찰에 넘겼어야 하는데!”


“잠깐만, 잠깐만! 아무리 그래도 애들 앞에서 싸우는 건 아니지?! 첫인상이 앞으로의 1년을 결정한다고!”


같은 반 학생들 앞에서 한판 하려는 칼데와 호프스를 말리는 역할은 결국 케시가 맡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이 싸우든지 말든지, 반대편에 앉아있던 플라누스는 전날에 만났던 암살자, 셰퍼드를 물리칠 방법에 대해서 골몰히 생각하는 중이었다.


“모든 공격을 피할 수 있는 건 아니야··· 그렇다면.”


깊은 고민에 잠겨 있던 그의 어깨를 누군가가 두드렸고, 반사적으로 뒤돌아보자 손가락이 그의 볼을 쿡 찔렀다. 그는 약간 놀란 얼굴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리네아, 너도 붙었구나?”


“하아, 그러면 떨어졌게요!? 제가 이곳까지 오기 위해서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 정도는 당연하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무려 가출까지 무릅쓰고 혼자서 제국의 절반을 횡단했다는 용감한 소녀가 결국 해낸 것이었다.


“그런데 너 옷이 왜 그래? 교복은 어디에다 두고 사복 차림이야.”


“그게··· 돈이 없어서 못 샀어요.”


“아···.”


횡단 열차를 타기 위한 열차 푯값, 숙박비, 식비를 스스로 해결해온 것만 해도 기적에 가까웠는데, 이 학교에 다니기 위한 학비와 기타 비용을 그녀 혼자만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져도 불가능했다.


“리네아··· 슬슬 부모님께 연락하는 게 어때?”


여윳돈이 없어 학비 지원이 어렵다고 말했는데도, 이를 무시하고 가출까지 해버리더니, 반년간 연락이 두절되어 생사도 불분명했으니 화가 머리끝까지 나는 것을 넘어서 이제는 딸이 무사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분명히 화내시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너희 부모님도 너의 그 추진력은 인정할 수밖에 없을 걸···.”


자력으로 합격까지 해버렸다고 연락하면 그녀의 부모님이라고 하더라도 뭘 할 수 있겠는가? 자기 딸을 막을 수 있는 건 이 세상에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편지는 이미 보내놨어요. 하지만 엄마랑 아빠한테 돈을 받을 생각은 없어요.”


“어째서···.”


“사실 학교를 보내줄 만큼 집안 형편이 좋지 않다는 것 정도는 저도 알고 있었어요. 엄마랑 아빠는 누구보다도 제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지만, 정말로 집에 돈이 없으니까 도저히 허락할 수 없었다는 것도···.”


리네아는 양손 주먹을 꽉 쥐면서 가슴을 펴고 숨을 크게 들이쉬면서 힘을 냈다.


“교복, 그까짓 거 헌 옷이라도 주워서 고쳐 입으면 되죠! 학비는 무슨 일이라도 해서 벌면 되고요! 지금까지 해온 일인데 뭔들 못하겠어요!?”


플라누스는 그녀가 기특해서 피식 웃었다.


“식비는 어떻게 하게?”


“···다이어트라 생각하고 몇끼 거르면 되죠!”


“밥 안 먹으면 공부도 일도 힘내서 못할 텐데?”


“끄으응···.”


“밥은 내가 사줄게.”


“엣? 정말로요!? 아싸!”


“나중에 두 배로 갚아라.”


“두 배는 너무하잖아요! 고리대금업이라도 시작하게요? 차라리 굶어 죽겠어요!”


“장난이야.”


쿵!


교실 앞문이 열리는 것과 동시 조용한 목소리로 떠들기 시작하려던 학생들의 입도 바로 꾹 닫혔다. 경쾌한 발걸음으로 걸어들어온 여성이 교탁 앞에서 멈춰서더니, 들고 있던 종이 뭉치를 '쾅' 하고 내려놓았다.


“음음, 과연.”


그러더니 칠판에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아, 모두 반갑다. 나는 1년간 1반의 담임을 맡게 된 레이저라고 한다. 그리고 소거인 학과의 기사 담당 수석 교관이기도 하고!”


그리고는 아직 열려있는 앞문에 손짓했다. 그러자 다른 사람이 앞문을 닫고 교실로 들어와 레이저의 옆에 바로 서서 학생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유스티아라고 합니다. 부담임을 맡게 됐습니다. 저도 여러분들이랑 같이 신입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대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학생들이 그녀에게 박수를 보내주었는데, 레이저는 교탁을 손바닥을 내리쳐 그걸 가차 없이 끊어버린 다음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자! 서로서로 잘 돌아봐라! 이 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지겹도록 봐야 할 테니까 지금 외워두도록!”


그녀의 명령 아닌 명령대로 학생들은 서로의 얼굴을 돌아봤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곳의 누군가와는 친구가 될 테지만 어쩌면 누군가와는 적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누구도 편안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시작하기에 앞서서 내가 반드시 너희들한테 물어봐야 하는 질문이 있다.”


레이저가 칠판에 ‘목표’이라고 적었다.


“너희들은 학교에서, 선생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려고 왔지? 반대로 이 학교가, 선생들이 너희들한테 가르쳐야 하는 것은 무엇이지? 이에 대해서 대답할 수 있는 학생은 있나?”


학생 하나가 손을 들고 대답했다.


“저희는 검과 마법을 배우러 왔습니다.”


레이저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중얼거렸다.


“그래, 검과 마법을 배우러 왔다고?”


그녀는 고개를 가로젓더니 교탁을 다시 내리쳤다.


“왜 검과 마법을 배우러 이 학교에 왔다는 건지, 나는 전혀 이해를 못 하겠다! 너희들은 누군가가 가르쳐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바보들인가? 손이 안 달려있나?! 눈에 안 달려있나!?”


그러자 아까 그 학생이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혼자서도 공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를 통해서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데 이를 마다할 이유는 없지 않나요? 가능하다고 해서 독학을 고집하는 건 비합리적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공부하면 성장이 느리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지? 반대로 가르침을 얻으면 성장이 빠르다는 사실은 어떻게 알았지?”


“네?”


“너는 혼자서 지독하게 공부해 본 적이 있었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남들과의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은 적이 있나? 그러다가 가르침을 통해서 그 벽을 뛰어넘어 본 적이 있었나?”


그 학생은 대답하지 못했다.


“학생은 그런 경험이 있었나?”


“···없었습니다.”


“이상하군, 왜 경험해본 적도 없는데 어째서 독학보다 가르침을 얻는 게 낫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 왜 경험해보지도 못한 한계를 스스로 규정하지? 그거야말로 진정으로 비합리적인 태도 아닌가?”


그 학생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도 대답할 수 없었다.


“자신이 어디에서 어떻게 얼마만큼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우친 제자만이 진정으로 필요한 가르침을 청하고 구하며, 이를 제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레이저가 학생들을 향해서 호통쳤다.


“그런데 자신이 부족하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하여 뭘 배워야 할지도 모르는 제자들을 상대로, 내가 뭘 해야 하지? 내가 너희들을 공부해야 하나!?”


“······.”


학생들은 그녀의 호통에 입도 뻥끗하지 못했다.


“학생들도 알다시피 입학 후에 한 달 동안은 본격적인 수업에 들어가기 전에, 학생들끼리 친목을 다지고 선생이 제자를 알아가는 자유 학습 기간이다!”


레이저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스티아는 앞에 있는 종이를 학생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했다.


“그 기간을 활용하여 자기가 얼마나 부족하고 뭐를 배워야 하는지 알아가는 시간을 가져보겠다! 이번 과제는 조별로 진행할 테니,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 * *


학교 내부에는 학생들이 자유롭게 모여서 대화하고 토론할 수 있는 카페, 식당, 도서관 등이 존재했다. 마침 레이저의 과제를 받아 든 같은 반 같은 조의 학생 여럿이 그곳에서 회의하고 있었다.


“그래서··· 왜 너희들이랑 같은 조인 거지?”


“잠깐, 그 대사 오늘 아침에 하지 않았어?”


칼데가 비아냥거리자 케시가 옆에서 의문을 표했다.


“야, 누구는 좋아서 여기 있는 줄 알아!?”


“싫으면 니가 나가든가?”


“아오, 플라누스만 아니었으면 이 여자를 확 그냥!”


“잠깐, 이 대화 오늘 아침에 하지 않았어?”


지치지도 않는지 티격태격하던 칼데와 호프스가 의외로 한마음 한뜻이 되어 케시를 향해서 외쳤다.


“넌 좀 조용히 해!”


보다 못한 플라누스가 한마디 했다.


“둘 다 조용히 해.”


그제야 둘은 입을 다물었다.


“귀찮게 끌지 말고 빨리하자. 그래야지 남는 시간 동안 자유롭게 자습을 하든 놀든 할 수 있잖아.”


훌륭한 학생이 되는 게 그의 목적이 아니었기에 성실하게 과제를 해야 할 필요는 없었지만, 지나치게 불성실해봤자 좋을 일이 없었다. 최소한 중간 정도는 가는 게 최선의 대처라 할 수 있었다.


“흥!”


“쳇···.”


옆에서 지켜보던 리네아가 그의 어깨를 건드렸다.


“두 사람 사이에 무슨 일 있었어요?”


“그런 건 딱히 몰라도 돼···.”


케시가 테이블에 놓여있는 종이에 적힌 내용을 또박또박 읽기 시작했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는··· 버려진 던전에 숨겨놓은 보물 상자를 회수하라!”


에듀그라운드는 한때 고대의 유물들을 회수하는 모험가들 덕분에 번영했던 던전도시였다. 학원도시로서 정체성을 바꾼 이후에는 비어있는 폐던전을 활용하여 교육을 진행하고는 했다.


“보물 상자?”


“부피가 10x10x10인 작은 상자라는데, 의외로 본격적인데?”


“그게 끝?”


케시는 뒷면도 뒤집어 봤지만, 추가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적혀있지 않았다.


“끝이네···.”


“저희 일단 가보는 게 어때요?”


* * *


던전으로부터 스산한 기운에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이야 아무런 위협 요소도 없고 전부 답파 된 폐던전에 불과하지만, 수백 년 전만 해도 수많은 모험가가 일확천금을 노리고 목숨을 내던지던 장소였다.


입구에는 관리 직원이 입장 명단을 관리하고 있었다.


“예약하신 분 성함이 어떻게 되십니까?”


“저희는 예약한 적이···.”


플라누스가 대신 대답했다.


“레이저라는 이름으로 되어있을 겁니다.”


“···확인했습니다.”


관리 직원이 그들에게 서류를 한 장씩 내놓았다.


“작성하신 후에 팔찌를 착용하고 들어가면 됩니다. 길을 잃더라도 팔찌만 제대로 차고 있으면 언제든지 구조하러 갈 수 있으니, 안전은 확실합니다.”


그들 다섯명은 팔찌를 착용한 후에 던전을 어둠을 향해서 걸어 들어갔다. 초입에는 인공조명이 많이 설치되어있었기에 의외로 바깥 거리와 크게 다르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


안전하다고는 하지만, 난생처음 와보는 던전의 이질감 앞에서 그들도 긴장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사방을 경계하면서 앞으로 나아가자 그들의 앞에 갈림길이 하나 나타났다.


“···어디로 갈 거야?”


“···글쎄?”


“기다려봐, 내가 소더로 살펴볼 테니까···.”


갈림길 너머에 있는 것을 탐지하기 위해서 잠시 정신을 집중하던 칼데는 고개를 저었다.


“내 소더로는 아무것도 안 보여. 무슨 특수한 장막이 있는 것 같아.”


케시는 입맛을 다시면서 핑거 스냅을 쳤다.


“그러면 위험을 무릅쓰고 가볼 수밖에 없겠네! 뭐어··· 딱히 진짜 위험하지는 않을 테니,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고!”


리네아가 다른 이들에게 물었다. 


“오른쪽이 좋을까요? 아니면 왼쪽이 좋을까요?!”


케시가 리네아의 옆에 서서 외쳤다.


“모두 잘 들어! 이 몸은 이유 불문 리네아가 고르는 방향으로 간다!”


“정말로요? 고마워요 케시!”


그러자 칼데와 호프스가 불현듯 서로를 바라보더니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서로 다른 갈림길에 섰다.


“잠깐, 뭐 하는 거야? 설마 너희들, 그건 아니지!?”


불안한 일은 현실이 된다더니, 케시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들은 딱 잘라 대답했다.


“난 뭐가 됐든 호프스와는 다른 방향으로 가겠어.”


“하! 누구는 너랑 같은 쪽으로 가고 싶다고 했냐!?”


“······.”


케시와 리네아가 플라누스를 돌아보자 그는 가슴 속에 쌓아놨던 깊은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개씹···.”


빠른 탈주가 마려워지는 어느 날의 점심이었다.


작가의말

보통은 일요일 새벽에 올리고는 했었는데, 대학교 시험도 있고 어제는 감기 때문에 컨디션이 굉장히 안 좋았어서 쉬느라 이제야 올립니다. 그나저나 UI가 굉장히 이쁘게 바뀌었네요. 원래 UI는 진짜 2000년대 초반 웹사이트 같았는데 훨씬 좋아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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