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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도

슬기로운 망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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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akdo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3
최근연재일 :
2020.08.29 22:04
연재수 :
12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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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337
추천수 :
517
글자수 :
443,039

작성
20.07.02 23:37
조회
428
추천
3
글자
9쪽

흑백 스크린 너머에

DUMMY

.




한바탕 소동 후.

스테이크 집은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평소의 모습을 되찾았다. 고기 굽는 소리, 주문하는 소리, 누군가의 게임 소리, 말소리, 매장 내에 울려 퍼지는 아이돌의 노랫소리.

어느 유명한 화가가 그린 풍경화처럼 평범한 일상은 그곳에 있었다.


우리 가족의 빈 접시들이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점 층을 이뤄가고, 추가로 시킨 음료수병의 바닥이 드러날 때 즈음, 심심한 나는 한 번 피오가 하는 게임 화면을 훔쳐봤다.


흑백의 형제 캐릭터.

그와 반대로 형형색색 찬란한 몬스터들과 건물들. 훔쳐보는 거라 잘은 모르겠지만, 무엇인가 퀄리티가 다른 양산형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었다.

자세히 보니 피오의 손가락과 눈이 쉴 새 없이 움직이고 있었고, 게임 화면에서 몇 번이고 피버 타임이 발동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살짝만 봐도 그 게임의 난이도가 쉽지 않다는 것과 피오의 게임 실력이 장난이 아니라는 걸 쉽게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저기, 저···”

“······.”


“저기.”

“······아, 놓쳤다.”


“······.”

“아싸- 최고 스코어다-”


내가 옆에서 어깨를 툭툭 쳐도 피오는 무응답. 완전히 게임의 세계에 빨려 들어가서는 옆에 있는 형제의 부름에도 답하지 않았다.

지금 최고기록의 스코어를 달성하고 있어서 그런가? 피오는 눈에 쌍심지를 켜고 조그마한 실수라도 하지 않겠다는 듯 절제 있는 동작으로 게임을 진행해 나갔다.


옆에서 훔쳐보고 있는 나도 모르게 긴장을 느낄 정도의 열기가 피오에게서 퍼져나갔다.


그리고 얼마 뒤.


“아- 결국 3억 점은 못 넘었나.”


피오의 볼멘소리와 함께 그 레이스는 275.019,050점(이억칠천오백만구천오십 점)을 기록했다.

평소에 똥컨인 나는 꿈도 못 꿀 점수.


내가 넋을 놓고 바라봤던 열 손가락의 컨트롤 댄스는 그렇게 화려한 점수를 남기고 막을 내렸고, 그 춤에 매혹된 나는 피오에게 할 말을 잊어버린 채로 스테이크 집을 나올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도착한 영화관.


“저기 있는 저 카라멜 팝콘 L 사이즈 2개랑요, 여보, 지피오. 음료수는 뭘 먹을래?”

“나 콜라!”

“사이다.”

“콜라 하나 더.”


“오케이. 알겠어. 콜라 작은 거 2개랑 사이다 작은 거 2개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지오? 미안하지만 우리 볼 영화 팜플렛 네 장만 가져다줄래?”

“···알았어.”


무엇인가 분위기가 다른 것 같은 우리 엄마와 아빠에게 여전히 위화감을 느끼며 나는 영화관의 팜플렛을 찾아서 돌아다녔다.

음. 어디 보자. 우리가 볼게··· 여깄다.


“자. 여기.”

“고마워.”


“어디 보자. 오늘 볼 영화 줄거리는··· 오오. 판타지도 들어가있는 줄은 몰랐는데.”

“이 역으로 이 배우를 쓴다고? 이 배우 악역 한 적이 별로 없을 텐데?”

“원래 하지 않았던 역할을 더 잘할 수도 있잖아? 원래 착한 역할을 도맡아 했던 수아가 그 야킹에서 그렇게 악독한 연기를 잘했던 것을 보면, 말이지.”

“뭐, 그렇긴 하지만···”


······.

치익, 치익- 치익.

노이즈가 끼어 제대로 재생되지 못하는 동영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는 그 둘을 바라보았다.


뭐야. 왜 또 이런 이상한 일이.

윤가(家)의 첫째 아들로서, 이 장면은 입가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는 장면인데.

왜 이 장면이 원래는 없었던 것처럼, 아주 먼 옛날의 일인 것처럼 그렇게 노이즈가 끼는 거지?


뭐, 신경 쓰면 지는 거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은 다음 영화가 상영될 1관으로 향했다.




*



영화는 끝났다.

어디에서 있을 법한 도입부와 긴장감이 적당히 있던 중반부. 반전이 뒤통수를 때리던 후반부. 뭉클한 감동도 주고 약간의 쓸쓸함도 주던 결말.

그 영화는 좋은 영화였다.

악역을 별로 해 본 적이 없다는 그 배우는 꽤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고, 주인공도 그에 만만찮은 연기를 보여줬다.

그 둘 뿐만이 아니라 조연들도 자신들의 역할을 잊어버리지 않고, 충실히 그 소행을 다했다.

좋은 영화였다.


“이야~ 설마 그 사람이 모든 사건의 원흉이라니. 놀랬어. 응? 처음엔 진짜 사람 순하게 보였는데 말이지!”


손을 앞으로 내민 채로 아직도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지 아빠는 떨리는 목소리로 엄마를 바라봤고, 엄마는 그런 아빠를 보고는 조금 이해가 안된다는 듯 바라봤다.

음? 그게 그렇게 큰 반전이었어? 제일 처음에 복선 있지 않았어? ···생각해보니 그야 그렇긴 한데··· 아마 그거 너만큼 주의 깊지 않으면 찾아내긴 어려울걸? 난 너만큼 그렇게 날카롭지 않다고?


나는 멍하니 그 둘 뒤에 서서 팝콘을 부여잡고, 계속 팝콘을 먹고 있었다.


손끝에 부드럽고도 까끌까끌한 팝콘의 촉감이 아니라 반들반들한 팝콘 통이 만져질 때까지 쉬지 않고 팝콘의 부스러기를 찾았다.


아아, 좋은 영화다.



“형.”

“······.”

“형!”

“······.”


“혀엉!”

“······정말로 사람 마음 간 떨어지게 하네. 이 영화.”


“영화는 끝났다고! 형!”


······.

어라.


어디선가 모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에서 아까와는 다른, 앳된 피오의 목소리가 아닌 더 성숙한 목소리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 

“넌 누구야?”


순간, 내가 발을 딛고 있던 이 공간이 균열을 내며 부서지기 시작했고, 균열이 만든 틈 사이로 무엇인가 하늘에 가까운 파랑이 나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



눈을 떠보면, 온통 검은색의 공간.

재회..jpg

“이제 좀 정신이 들어?”


“···넌.”

“에이. 오랜만에 만났는데 좀 이름으로 불러줘! 응? 내가 형 되게 만나고 싶었는데~ 알잖아? 응?”


“피오. 윤··· 피오.”

두려움을 담아 그 이름을 불렀다.


넌······.


······.

눈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내 눈앞에 있는 피오를 힘껏 껴안았다.



“···형?”



“미안해··· 미안해! 피오!

눈치 못 채서 미안! 나는 아무것도 모른 채로 여기 끌려왔는데··· 그저 여기로 와서 평생 즐기려고 했는데! 넌··· 네가···!”


“······.”


“다른 몸에 갇혀있는 동안 너, 힘들었지? 슬펐지? 도망가고 싶었지? 응? 이제는 괜찮아. 괜찮아. 내가 함께 있어··· 줄곧 함께 있어!

계속···! 피오 곁에 있을 거야! 그러니까···”



“형··· 고마워! 이렇게 꿈속에서라도 형하고 있으니까 좋다.

그러니까 괜찮아···! 형 이제 괜찮아. 나도 형과 같이 걸어갈 거야! 같이 있을 거야!”


피오가 안긴 상태에서 내 등을 쓸어주었다. 마치 내가 예전에 피오에게 해주던 것 같이.


이윽고 피오가 나의 포옹을 풀고 내 눈을 바라보며 말을 하기 시작했다. 피오의 눈에는 아직 닦아내지 못한 눈물 자국이 선명했다.


“형.”

“···응?”

“나는 말이지··· 테오 형을 구하고 싶어.”


“······.”

“몸 뿐만이 아니라, 마음까지 통째로.”


······.

“···그 녀석은 이유야 어찌 되었든 네 몸을 뺏었던 녀석이잖아···.”



“······물론 그렇지. 하지만, 내 동경이기도 했던 사람이니까.

그리고, 내 어린 시절이기도 했으니까.”


그렇게 선언하는 피오의 눈은 맑게 빛나고 있었다.


순간.


나와 피오, 그리고 테오 셋이서 달의 커브의 마지막을 지켜보았던 그 스크린을 기억해냈다. 우리가 이사하기 직전에 테오 집에 가서 했었던 게임의 엔드 롤을.

거기 있었던 누구나 슬퍼했었던 그 마지막을.



“···역시, 그렇지?”

“응! 모든 걸 제자리로 돌려놓는 거야. 형도, 나도 테오 형도!”


나는 피오의 눈을 보며 살짝 웃어 보인 다음에 오른손에 힘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럼···! 이 꿈 같은 세계를 어서 파괴해야겠지?

피오! 게임 속의 너는 지금 어디에 있어?”


“나는 항상 그곳에 있어! 정신을 잃지 않고 계속 그 자리에 있을게. 얼른 데리러 와줘!”



“알았어. 기다려. 내가 곧 찾으러 갈게···!”


내 눈에 깃든 파랑과 꿈의 균열로부터 새어나온 하늘과 같은 파랑이 한데 모여, 내 손에 만들어져있던 에너지탄을 감쌌다.


나는 그것을 그대로 내 발을 지탱해주고 있는 공간을 향해서 발사했다.


발밑을 안전하게 지탱하고 있던 검은 바닥이 산산조각이 나고, 나는 약간의 부유감을 느끼며 꿈과 멀어지기 시작했다.


[서포트 캐릭터 민테오의 서포트 스킬 발동.]





.


작가의말


누적 경험치 따위.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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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영원에 가까운 시간 속에서. 20.07.31 406 3 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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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WAVE 20.07.16 381 3 7쪽
116 YOUR BEST FRIEND 20.07.13 417 3 9쪽
115 너를 가두는 방법 20.07.09 406 3 8쪽
114 죽은 아이들의 진혼가 20.07.06 394 3 9쪽
» 흑백 스크린 너머에 20.07.02 429 3 9쪽
112 아아, 맛있었다. 20.06.29 388 3 7쪽
111 나락 20.06.25 411 3 8쪽
110 나와 함께 왈츠를. 20.06.22 397 3 8쪽
109 ETERNAL 20.06.19 488 3 7쪽
108 GAME :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20.06.15 39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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