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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학도

슬기로운 망겜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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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hakdo
작품등록일 :
2019.04.01 20:13
최근연재일 :
2020.08.29 22:04
연재수 :
123 회
조회수 :
48,340
추천수 :
517
글자수 :
443,039

작성
20.06.29 23:02
조회
388
추천
3
글자
7쪽

아아, 맛있었다.

DUMMY

.



.



줄곧 누군가를 기다려왔다.

계속 앞을 향해 가는 그림자를 쫓아서, 언젠가 그 아이의 얼굴을 다시 볼 수 있을 그 날을 고대하며.


도대체 누구를?


.




“지오! 일어나. 벌써 아침 11시라고? 오늘은 영화관 가서 가족 다 같이 점심 먹고 영화 보기로 했잖아?”


해가 중천에 뜬 시간. 본래의 밝은 파란색에 스팀이 든 실키 밀크를 녹인 상냥한 하늘색.

창문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나무들은 한데 모여서 오늘은 어떤 재밌는 놀이를 할까 정하고 있었다.


아까까지 꾸고 있던 가상현실의 꿈의 내용이 생각이 나질 않아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내 방의 문턱을 넘었다.


그것들은 뭐였을까?

이제는 그것들의 실루엣도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기억이 나는 것은 아주 정신없이 그것들을 부쉈던 것과 옆에서 같이 싸워주었던 동생의 손을 꼭 붙잡았던 것뿐.


그 감촉들을 전부 느끼고 있었던 손은 아직도 이렇게 떨리고 있는데, 머릿속에 남겨진 영상들은 마치 현실에 작별을 고하듯 사라져간다.

그렇게나 강렬했던 꿈인데도 말이다.


“뭐야? 아직도 방 문턱 앞에 서 있어? 그러지 말고 빨리 양치질하고 옷 갈아입어. 너 빼고 다 준비 다 했어.”


엄마는 식탁에 앉아서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말을 하고 있었고, 아빠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반쯤 누워서 TV 시청.

오늘도 채널은 대하 역사드라마가 연속으로 방송되는 24번이었다. 질리지도 않는가, 거실의 TV를 힐끔 보며 생각했다.


너 다 준비하면 바로 출발할 거니까 빨리 준비해줘? 엄마의 그 말을 들으며 나는 화장실에 갔다. 엄마 말대로 간단히 씻기를 끝내고 바로 내 방으로 들어가 옷을 갈아입었다.


솜이 들어간 하얀 후드에 검은 바지. 언젠가 동생이 이 옷차림을 맘에 들어 했던 게 기억난다. 체크 안감과 하얀 후드의 조합이 꼭 속이 꽉 찬 찹쌀떡 같다던가?

하여튼, 동생이 귀엽다고 해준 후드티의 후드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나는 핸드폰과 이어폰을 챙겨 밖에 나왔다.


내가 준비를 끝마치자마자 우리는 집을 나와서 차에 올라탔다.

아빠와 엄마는 각각 운전석과 조수석.

각각의 후드를 뒤집어쓴 나와 동생은 뒷좌석에 앉아서 차창 밖을 멍하니 보기도 하고, 핸드폰을 만지기도 했다.


“······.”

“······.”


말은 섞지 않았다. 설령 말을 섞어도 그렇게 길게 이어지진 않았다.

동생과의 관계는 원래부터 이랬다.

형제지만 그렇게 친밀하지 않은 사이. 서로의 관심사가, 성격이 하나도 맞지 않는 사이.

남이었다면, 한번 쓱 보고 바로 ‘나와는 맞지 않는 녀석이군.’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나는 눈을 감고 오늘 아침까지 꾸고 있었던 꿈속에서 일어난 기억을 필사적으로 헤집고 다녔다.


설마 내가 꿈을 꾸고 남은 기억 중 하나가 동생의 손을 붙잡았던 거라니.


나는 옆에서 누군가가 선물로 준 게임이라며 마치 그 속으로 빨려가려는 듯이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검은 후드의 동생을 바라봤다.


······꿈에서 입었었던 복장과 똑같은 복장.


계속 동생을 바라보다가, 다시 고개를 돌려 창문 밖을 바라봤다. 높이 솟은 빌딩 숲 가운데서도 그 초록을 잃지 않는 가로수들이 둘이 짝지어서 서로의 중심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흘러, 영화관. 영화를 볼 수 있는 공간 뿐만이 아니라 온갖 음식점들도 즐비한 문화 타운의 야외 주차장.

다 왔다! 지피오! 게임 그만하고 내려! 엄마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릴 때까지 나는 계속 빌딩 사이에 있는 가로수를 세고 있었다.



영화를 보기 전 간 스테이크 집.


우리는 그 집에서 무슨 고기 반죽을 통째로 접시에 내놓는 메뉴를 시켰는데, 엄마와 아빠는 그걸 보고 역시 이게 먹고 싶었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지피오! 이리 와봐라!”

“으음?” “왜? 엄마?”

“너희들 이런 스테이크 처음 먹어보지?”


“처음이지

“나 이런 거 처음 봐. 반죽 스테이크? 생으로 먹는 건 아닐 테고.”


고개를 갸우뚱거리는 우리를 보고, 엄마는 내 접시에 담긴 스테이크 고기 반죽을 조금 떼어서는 엄마 자리에 있는 작은 불판에 그 반죽을 올렸다.


“여보. 여보는 피오 좀 부탁해.”

“알았어.”


아빠도 엄마 말을 듣고는 피오의 스테이크 반죽을 조금 떼어서, 자기의 불판에 가져다 놓았다.


“잠시만 있어 봐! 아빠가 금방 맛있게 만들어줄 거니까.”


치이익- 소리를 내며, 작게 떼어낸 고기 반죽은 익어가기 시작했다. 엄마는 고기 반죽을 오래 불판에 놔두지는 않고, 살짝 연갈색이 보일 때까지만 구운 다음, 내 고기 접시에 올려놓았다.


“자, 잘 봤지? 이제 내가 보여줬으니까 너도 할 수 있을 거야! 해봐!”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해 보라는 제스쳐를 남겼다. 나는 우선 고기 접시에 올려진 고기를 입에 물고는 스테이크 고기 반죽을 조금 떼어냈다.


입에 퍼져나가는 육즙을 느끼면서 고기 반죽을 불판에 올렸다. 머금고 있는 육즙과 고기가 입에서 살살 녹으며 퍼져가는 부드러운 단맛.


아아, 맛있다.


남은 고기를 입속에 넣고 고기 익기를 기다리며 옆자리에 있는 피오와 아빠를 슬쩍 봤다.


“자~ 여기. 다 익었다.”

“되게 맛있어 보여! 아빠는 이런 거 자주 먹어봤어?”

“아빠 고향에는 이런 거 전문적으로 하는 가게가 많아서 자주 먹으러 갔었지! 아빠 대학교 졸업 때도 이런 거 자주 먹었어.”

“진짜?”


아빠와 피오는 정말로 즐거워 보였다. 서로 하나씩 스테이크를 구워주며 대화하고 있는 그 모습만을 봐도 저절로 웃음이 지어질 정도였다.


평범한 한 때. 아무런 걱정도 없고, 아무런 슬픔도 느낄 수 없는 시간. 무엇보다도 소중한 한 때가 그 웃음 속에 녹아있었다.


그러고보니 스테이크 반죽을 차례차례 구워 먹다가, 피오와 아빠를 보고 나와 똑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지.

반짝반짝 빛나는 은하수를 눈에 담은 그 동그란 눈.


아.

오랜만에 아빠를 보고 활짝 웃고 있는 엄마를 본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순간, 갑자기 스테이크 집의 온 조명이 빛을 잃어버렸다.

잘 먹고 있던 고기도, 불판의 아래에서 타고 있던 작은 불꽃도, 심지어 피오가 열심히 하고 있던 휴대폰의 디스플레이도 어둠에 삼켜졌다.



갑자기? 무슨 전조도 없이?



당황한 나는 구워져 가고 있던 고기에서 눈을 떼서, 내 옆에 앉아있던 피오를 바라봤다.

피오도 나와 똑같이 당황했는지 자기 접시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슬쩍 이쪽을 바라봤다.


어? 잠시만.

뭐야? 얘 눈에서 왜 푸른 불꽃이 이는 거야?

그리고.


넌 왜 나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짓는 거야?


슬픈 듯한. 기쁜 듯한. 그러나 뭔가 분한 듯한. 불타는 회전목마. 검게 변해버린 메르헨. 안도의 한숨, 지키겠다는 약속. 꼭 붙잡고 있는 동아줄.

부서진 마네킹.



······윤피오.

넌 도대체 누구야?






.


작가의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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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0 SOS - 너의 세계에서. 20.07.28 479 3 12쪽
119 SOS - 먼 옛날의 우리, 지금의 우리. 20.07.24 394 3 9쪽
118 찰나 20.07.21 430 3 4쪽
117 WAVE 20.07.16 381 3 7쪽
116 YOUR BEST FRIEND 20.07.13 417 3 9쪽
115 너를 가두는 방법 20.07.09 406 3 8쪽
114 죽은 아이들의 진혼가 20.07.06 395 3 9쪽
113 흑백 스크린 너머에 20.07.02 429 3 9쪽
» 아아, 맛있었다. 20.06.29 389 3 7쪽
111 나락 20.06.25 412 3 8쪽
110 나와 함께 왈츠를. 20.06.22 397 3 8쪽
109 ETERNAL 20.06.19 488 3 7쪽
108 GAME : 이것은 게임이 아니다. 20.06.15 391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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