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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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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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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0. 아델바이스

DUMMY


브리튼의 통치를 담당하는 브라이틀란트 가문은 여식이 귀하기로 유명했다.

언약의 힘에 종속된 육체는 정자가 생성될 때 Y 염색체만 선택적으로 취해지기라도 하는 것일까?

정말 과학적으로 그러한 가는 증명된 바 없었으나 역사적 통계는 충분히 그 가설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게끔 하고도 남았다.


브라이틀란트의 적장자는 대대손손 자녀를 많이 낳기로 유명했다.

사별이라는 사유가 없는 한 일평생 반드시 한 반려만을 둠에도 그러했다.

평균적으로 열 명 이상의 자녀가 있었는데 그나마 근래에는 적어진 편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황실 후계자의 직계 자녀 중 여성의 비율은 5% 미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황녀들은 황자들과는 또다른 의미에서 귀하게 여겨졌다.


참고로 이 현상은 비신도들이 장난스레 불경스럽게 표현하는, 소위 ‘신적인 성차별’과는 전혀 무관했다.

그 증거로 브리튼의 신적 언약에 함유된 중요 항목인 ‘장자 제일의 법칙’은 여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즉, 언약 계승자에게서 제일 먼저 태어난 자녀가 여자일 경우, 그 여성도 동일한 법칙의 적용을 받아 형제들과 자매들 가운데서 가장 탁월한 존재가 되었다.

당연히 그 여성은 신적 계약에 의해 자동으로 황제직을 계승받았다.

실제로 크리스토프 이후로 브리튼 황가에는 두 명의 여황이 존재했다.

두 사람 모두 훌륭한 위인이었고 당대 모든 시민의 존경을 받았다.


어쨌건 이 알 수 없는 이유에서 기인한 ‘성별 불균등’은 오늘날까지 이어졌다.

현 황제 알폰스 1세에게는 열두 명의 아들이 있었으나 딸은 한 명 뿐이었다.


혹여 누구가가 이렇게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알폰스 황제의 아들들 중에는 무려 다섯 명의 양아들이 있지 않은가.

허나 양딸은 단 한 명도 없다.

이것이 그들이 남아선호사상을 은연 중 갖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 주장은 타당하지 않았다.

황실 언약은 매우 강력한 법칙이며 황제 마음대로 제어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황실이 어떤 아이를 양육하고 후원하는 일은 온전히 자유이다.

그러나 입양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만약 직계가 아닌 방계, 혹은 적통이 아니거나 후계자가 아닌 자가 입양을 하겠다면 그것은 별 문제가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더 크라이스토브 브라이틀란트’가 입양을 하려면 이야기가 복잡해진다.


황제나 황태자나 황태손이 정식으로 받아들인 자녀는 자신의 세대로 한정이지만 브라이틀란트의 라스트네임을 소유할 수 있다.

이것은 입양아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 이름은 현존하는 지구상의 이름 중 단연코 가장 무거운 명예이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울타리가 아니며 마음대로 취할 수 있는 권리가 아니다.


황제 부부가 한 아이를 긍휼과 사랑의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그 아이를 입양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조건이다.

하지만 충분조건은 아니다.

그 아이는 ‘당대의 적통 황자들과 동급’의 격을 소유해야만 들어올 수 있다.

설령 사촌이나 방계 친척 출신이라고 해서 예외는 없다.


레미온 황자의 친아들인 엘리어트도,

레미온의 입양아인 유타도,

알폰스의 의자매의 아들인 에드윈도,

방계 친척인 에쉬튼도,

심지어는 조금도 연이 없던 전쟁 고아 리키도,

하나같이 그 같은 조건에 합하였기에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어쨌건 출생에 의해서든 입양에 의해서든, 브라이틀란트 가문 특유의 ‘성비 불균형’이라는 이름의 징크스 아닌 징크스는 희석되지 않았다.


아델바이스 황녀는 그렇기에 형제들 가운데 홍일점이었다.

그리고 그녀는 여러 의미에서 황제 부부의 사랑을 받는 꽃이었다.


금발에 찬란한 적자색 눈을 소유한 여인.

아델바이스 다이애나 브라이틀란트.

그녀는 황후의 여섯 번째 자녀였다.


엄밀히 말하면 쌍둥이었는데, 그녀와 한 시에 태어난 인물이 바로 전직 용병왕인 랜슨 제블런 브라이틀란트였다.

뭐, 지금은 준장으로 승급했으니 용병왕이라고 부를 수도 없게 되었지만.


같은 날에 태어나긴 했으나 두 오누이는 참으로 달랐다.

대체로 황실의 직계 혈통이 전인적으로 완전무결에 가까운 자들이긴 하다만, 이 둘은 형제들에 비해 능력치가 조금 한쪽으로 치중되어 만들어졌다.


랜슨은 육체적으로 탁월했다.

날 때부터 기골이 남달랐고 커서는 키가 196cm을 훌쩍 넘겼다.

또 온 몸이 근육으로 팽팽히 조여진, 그야말로 전사 중의 전사였다.

운동 신경도 가히 상식 이상으로 천재적이어서 그 어떤 올림픽 챔피언과 겨루어도 해당 항목에서 이길 수 있을 정도였다.

게다가 전투 머리와 격투 두뇌가 비상했다.

전략이나 전술에 있어서도 뛰어났는데, 이런 면을 보면 형제들에 비해 바보 소리를 들을 뿐 IQ도 상당히 높은 편이긴 했다.

대신 공부 머리쪽은 형제들에 비해 조금은 뒤떨어졌다.


반면에 아델바이스는 학식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브라이틀란트 황가는 대대로 배움에 있어서 남녀 차별을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했다.

전 세계적으로 여성 인권이 바닥을 치던 과거 시절에조차도.

그런 좋은 배경 덕분에 아델바이스의 천부적 재능은 날개 돋친 새마냥 훨훨 날아 상공으로 비상하였다.


그녀는 순수 학문을 사랑했고 연구를 좋아했으며 가르치기에도 능숙했다.

그런 재능을 살려 그녀는 학계에 진출하여 교수가 되었다.

그것도 무려 수학, 화학, 역사학, 법학, 언어학, 사회학 여섯 분야에 걸쳐서.

전부 그녀 자신의 힘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고 어느 정도는 석학들과도 교류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만일 어느 하나에 집중했더라면 세계 최고급이 될 수도 있었겠지만, 그녀는 그보다는 남들을 가르치는 일에 좀 더 관심이 많았다.

실제로 그녀는 학식도 학식이지만 교육에 천재적이었고 그만큼 수많은 학생들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세계 제일의 일타강사.’


교수님을 이런 식으로 불러드리면 다소 무례할 수도 있겠다.

그 선생님이 무려 황녀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녀의 능력을 설명하기에 이 단어보다 적합한 말은 없었다.


이렇듯 유능하고 슬기로운 그녀였으나 이러한 커리어 자체는 흔히 ‘황녀’하면 떠올리는 고매한 이미지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었다.

확실히 근대 유럽의 귀족들이나 왕족들의 사교 문화와는 멀어도 한참 멀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천연 미모는 그 어떤 동화책 속의 공주보다도 품위가 넘쳤다.

대륙 제일의 미인이라 불리던 어머니 세일린을 쏙 빼닮은 덕분일까?

아델바이스 또한 다음 세대를 이끌 대륙 제일의 미인임이 분명했다.


이렇게 자주적이고 똑똑한데다 외적인 조건까지 훌륭하다보니 그녀는 매우 눈이 높았다.

이 점은 황제에게 있어서 자랑스러운 점인 동시에 고민 유발점이기도 했다.


‘아델에게 과연 마음에 드는 짝을 찾아줄 수나 있을꼬.’


정작 그녀 자신은 생각하지도 않는 고민을 진지하게 곱씹는 아버지였다.




*


오랜만에 황궁으로 돌아온 아델바이스는 친구들과 수다를 나누었다.


“그러니까 그때 말이지.”


세 친구는 아델의 코디네이션을 도우며 함께 웃고 떠들었다.


아, 정확히는 친구라기보다는 시녀라는 표현이 맞겠다.

신분제가 철폐되긴 했지만 여전히 황족과 사용인들 사이에는 질서가 존재했다.

로즈, 데이지, 릴리, 이 셋은 주로 황실의 귀부인들을 보필하는 일을 하였다.

그녀들의 부모님들도 황궁에서 일을 하였었다.

워낙에 직장 만족도가 높고 충성심도 깊었는데 그런 부모님 모습을 곁에서 보고 들은 그녀들도 자연스레 이쪽 일로 진출하게 되었다.


하지만 비록 사용인이라고는 해도 로즈와 데이지와 릴리는 어린 시절부터 아델바이스와 같이 지내온 소꿉친구들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으레 생각하는 무거운 권위주의적 격차는 이 넷 사이에는 없었다.


아델바이스는 내내 학회에서, 대학에서 겪었던 일들만을 주절거렸다.

학문적인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세 친구는 그러려니 하고 듣기만 했다.

머리가 나빠서 이해는 하지 못하겠지만 적당히 황녀님의 관심사에 호응을 해주는 것으로도 충분했다.


“혹시 요새 관심 가는 분은 없으세요, 황녀님?”


릴리가 자연스럽게 연애지향적인 주제로 화제를 틀었다.

내내 어려운 이야기만 듣던 시녀들은 반가워하며 화색을 밝혔다.

화려한 황족의 연애 이슈만큼이나 흥미로운 주제가 또 어디 있겠는가.


“어머, 세상에, 얘, 릴리 너도 참.”


아델바이스는 어깨를 으쓱였다.


“아버지도 요새 그 이야기로 나를 떠보시던데 너마저 합류하면 어쩌니.”


“호호, 사실 저희가 분부받은 일에는 이런 사소한 케어도 포함된답니다.”


“그랬구나. 하기야 그게 너희의 직무이니 할 말이 없구나. 연애 사업 매니지먼트까지 지시하시다니, 아버지도 참 못 말리시지.”


로즈와 데이지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아가씨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혹시 저희가 조언드릴 점이라도?”


“아서라. 조언은 무슨. 기대를 실망시켜서 미안하지만, 아직은 당분간 연애 생각이 없거든.”


“그래도 황녀님의 발치에라도 입맞춤을 하고 싶다고 전 세계의 남자란 남자들은 죄다 줄을 섰는 걸요.”


데이지는 몹시 아쉬워하는 눈치였다.


“유명 연예인부터 젊은 정치계 거물들과 거부들까지, 하나 같이 황녀님한테 목을 매잖아요. 물론 황녀님한테는 급이 못 미치겠지만.”


“급은 무슨. 그리고 알잖니. 우리 집안 연애랑 결혼 문제에서는 엄격한 거. 외적인 조건만으로는 허락이 성립되지 않는단다.”


“아, 하긴. 그렇겠네요.”


로즈는 브라이틀란트 가가 세계에서 가장 보수적인 기독교 집안임을 상기하였다.

게다가 하나뿐인 고명딸이니 얼마나 까다롭게 그 짝을 판별하겠는가.

속세적인 조건들에 더하여 영적인 조건까지 판단 잣대가 되겠지.


“대대로 황녀들은 언약 확장을 위한 매개체였어.”


금발의 미녀는 씁쓸히 거울 너머를 바라보며 독백하듯 중얼거렸다.


“언약 확장이요?”


“황가의 언약의 효력을 타국에 확대하기 위한 일종의 촉매제였지. 타국 혹은 타 대륙을 합병하였을 때 그 영토 안에도 브리튼 제국의 축복이 스며들게 하기 위한 수단. 황녀의 결혼은 주로 그런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하더라.”


지금이야 브리튼이 지구 전체를 차지했지만 이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한 세기 전까지만 해도 브리튼도 꾸준히 영토 확장을 해왔고 새로운 땅을 자신의 것으로 취해왔다.

그 과정의 정당성을 논하는 문제를 떠나, 현실적으로 어떤 영토를 자신의 것으로 온전히 소화하려면 난관을 극복해야 했다.

브리튼의 문화와 정신을 정착시키는 것이 가장 큰 과제였다.

단순히 자국 문화의 여러 요소들을 퍼뜨리는 것으로는 불충분했다.

심지어 열심히 선교하여 기독교적 세계관을 심는 프로세스로도 부족했다.

반드시 브리튼의 뿌리이자 헌법이나 다름없는 ‘언약’의 효력을 새로운 영토 속에도 침투시켜야 했다.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도 언약의 영향력이 침투하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생길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침투 속도를 더욱 증폭할 필요성이 있었다.

이를 위한 촉매제가 바로 ‘결혼을 통한 연합’이었다.

브라이틀란트의 적통 자손 중 하나를 새로운 브리튼령의 원주민 출신 지도자에게 결혼시켜 두 나라를 하나로 묶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주로 황자보다는 황녀가 사용되었다.

이는 성차별적인 기준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역사적 문맥 때문이었다.

과거에는 대부분의 나라들이 여성의 통치권을 인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브리튼 황가 입장에서는 자녀를 결혼시킬 대상인 타국의 지도자 자체가 남자뿐이었던 것이다.


이것은 명백히 정치적, 영적 의미의 ‘정략 결혼’이었다.

하지만 효력은 실제적이고 확실하고 강력했다.

브리튼령의 원주민들이 본국과 민족적으로 융합을 하는 데 있어서 이 같은 결혼 연합은 상당한 도움을 주었다.

그것만이 성공의 유일한 이유는 아니겠지만, 분명 일정량 기여는 하였다.


“실제로 선대 황제들께서는 그 방법을 통해 새로 합병된 지역에 독실하고 믿음 좋은 현지인 지도자를 세우실 수 있었어. 성품 좋고 지혜로운 인물을 미리 찾아낸 뒤 그에게 정략 결혼을 통해 힘을 실어주신 셈이지.”


“의외네요. 유력 가문을 찾아내어서 결혼한 게 아니라는 말이죠?”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지. 정략 결혼의 목적 자체가 정치적인 지지 토대를 얻으려 하는 게 아니었거든. 해당 지역의 우상숭배적인 토대를 깨트리고 성경적인 세계관과 브리튼 언약의 질서를 심어넣으려는 목적이랄까.”


“어떤 의미에서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하네요.”


“고대 이스라엘만 봐도 왕가의 결혼 상대를 잘못 들여서 망한 일이 한두 사례가 아니었잖아. 그렇다면 우리는 그것을 반면교사 삼아서 지혜롭게 접근해야 하지 않겠어. 나름 조상님들의 슬기였던 셈이지.”


“방어를 뛰어넘어서 아예 역으로 공격한다, 과연 브라이틀란트 가문이네요.”


“뭐, 그렇긴 하지만, 이제 더는 그럴 필요가 없게 되었지.”


과거에는 그런 식으로 천천히 한 문화권씩 흡수해왔던 브리튼.

그러나 지금은 어차피 전 세계가 그들의 지배권 아래 놓이게 되었다.


“고로 이 몸은 정략 결혼 같은 건 생각이 없단 말씀이시지.”


“그러면 자유로운 연애는 어떠세요?”


로즈가 질문했다.


“결혼이야 폐하께서 엄격히 평가하시겠지만, 다양한 사람을 만나 보며 알아가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요?”


아델바이스는 로즈의 제안에 저도 모르게 이질감을 느꼈다.

확실히 요즘 세대는 이런 면에서 많이 사고가 개방되었다.

하지만 보수적인 브라이틀란트 황가에서 나고 자라며 배운 영향일까.

그녀에게는 ‘가벼운 만남’이라는 개념이 그리 익숙하지 않았다.

부모님께서는 늘 ‘반려 관계를 고려한 진중한 만남’만을 가르쳐왔었다.


“어렵네.”


의붓오빠인 에드윈처럼 직계 혈통이 아닌 경우라면 그래도 용서된다.

하지만 황제와 황후의 직계이자 고명딸인 자신은 다르다.


“부모님도 부모님이고, 우리 집안 가풍도 가풍이지만, 내 눈도 만만치 않게 높아서 말야.”


언제부터였을까.

거의 모든 남자가 그녀 눈에 이성으로 비치지 않게 되었다.

전혀 설레는 감정이 없다고 해야 할까나.

외모도, 성품도, 자질도, 능력도, 다 그저 그런 수준으로 보일뿐이었다.

외적인 조건들을 배제하고 내적인 품질을 들여다보아도 그러했다.


물론 자신의 기준에 미치지 않는다고 사람의 존엄성을 무시할 생각은 없었다.

예의범절은 어느 누구에게나 지켜야 하는 것이지.

하지만 인간으로 대우해주는 것과 애인으로 대우하는 건 다른 문제 아닌가.


“아마 황자님들과 같이 자라셔서 그런 것이 아닐까요?”


“그거라면 인정.”


로즈의 의견에 릴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저도 황자님들 보다가 유명 연예인을 보면 오징어가 보이는 착시 체험을 자주 해봤어요.”


“외모만이 아니라 능력도 격이 다르죠.”


이에 아델바이스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오빠들이 그런가? 내 눈에는 그냥 평범한 엄마 아들들 같은데.”


그 담담한 평가에 세 시녀는 한층 더 경악했다.

생각보다 그녀의 눈높이의 상향 조정은 심각했구나.


“게다가 난 말야. 나보다 학식이나 두뇌가 좋지 않은 사람들한테는, 불특정 다수에게 다소 죄송스런 말이긴 하지만, 그리 감정이 설레거나 가슴이 뛰지 않거든.”


무시하려는 어투가 아니라 정말로 솔직하게 한 고백이었다.

그녀는 분명 공부머리로는 열세 남매 가운데 ‘한 명의 논외’를 제외하면 가장 뛰어난 축이었다.

심지어 그 대단한 황자들조차도 학식으로는 그녀의 재능을 넘지 못했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기준을 학식으로 설정했으니 누가 감히 만족되겠는가.


그녀의 기준을 통과하려면 세계적인 석학이나 천재여야 하는데 그런 이들은 학식 이외의 다른 기준에 미달될 것이다.

가뜩이나 품성이며 외모며 자질이며 성정이며, 하나 같이 황자들과 같이 자란 덕분에 기준치가 한껏 높아져버린 마당에 말이다.


‘황녀님의 성에 찰 만한 사람은 솔직히 지구상에 한 명밖에 없을 텐데.’


그녀들도 대충 직감적으로 감을 잡았다.

아델바이스 안에서 말도 안 되는 기준점이 설정되게끔 한 범인이 누구인지를.


“아참, 오라버니께서 이제 곧 제도(帝都)에 상륙하시겠다. 어머, 어쩜 좋아.”


들뜬 소녀처럼 화색이 밝아지며 눈이 초롱초롱해진 아델바이스.

평소에는 치장에 큰 관심이 없던 그녀는 열을 띠며 거울을 바라보았다.

한 치의 부족함이라도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기색이었다.


“스크린으로 보니 전보다 얼굴이 갸름해지신 것 같은데, 업무가 바쁘셔서 고생이 심하신가봐. 그래도 언제 봐도 너무나 늠름하고 멋지신 거 있지. 어서 오라버님 얼굴을 뵙고 싶다.”


그렇다.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로즈와 데이지와 릴리는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아델바이스의 찬사 어린 감탄의 말을.

그 대상은 그녀가 혼을 빼놓을 듯 동경하는, 그녀의 자상하고 멋진 큰오라버니.

여인이라면 브리튼 전체를 통틀어 어느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으려니만은, 아델바이스는 유독 오라버니를 향한 선망이 열정적이었다.

같은 배에서 태어난 그 대단한 오빠들마저 시시하게 여기는 막내 황녀가 유일하게 우러러보며 가슴 설레하는 상대였다.


‘큰일이네.’


‘황태자 전하를 기준치로 잡았으니 아무도 안 보일 수밖에.’


‘그런데 솔직히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시녀들의 고민이 무색하게 오두방정은 계속되었다.


“올해는 무엇을 선물해드리면 좋을까. 손 편지에는 뭐라고 격려의 말을 적어드리지? 어서 목소리를 듣고 싶어. 상상만 해도 기쁘네.”


랜슨과 아델바이스.

성격도 재능도 성정도 상이하고 서로 잘 맞지도 않는 견원지간 쌍둥이.

그런 두 남매에게 거의 유일한 공통 분모가 있다면 바로 이런 점이었다.

큰형에게, 큰오라버니께 사족을 못 쓰는 대형견과 아기고양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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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대언자 (1) 24.03.16 14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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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정산 (4) 24.03.08 15 0 15쪽
72 정산 (3) 24.03.07 13 0 12쪽
71 정산 (2) 24.03.06 12 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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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9 어둠의 무리 24.03.02 16 0 14쪽
68 타르타로스 (6) 24.03.01 15 0 16쪽
67 타르타로스 (5) 24.02.29 14 1 12쪽
66 타르타로스 (4) 24.02.26 14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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