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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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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tig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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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4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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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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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2. 새해 첫날 (2)

DUMMY



*


펠렌드로크 시미언 브라이틀란트.

주도면밀하고 능숙하며 모든 술수에 능통한 책략가.

아버지가 그를 신용하면서도 경계하는 것은 어떤 면에서 필연적이었다.


“수고가 많았다. 올해도 잘해주리라 믿는다.”


황제는 창 밖을 내다보며 나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뒤에 선 펠렌드로크는 경의의 표현으로 차렷 자세를 한 채 묵묵히 기다렸다.

재상직에 있는 중요한 관료라도 황제 앞에서는 신하에 지나지 않는 존재였다.

아무리 황자라고 해서 엄격한 상하 관계 질서에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황궁 안에서도 엄연히 공적인 공간과 사적인 공간이 있으니, 이곳 집무실은 전자에 속한 영역이었고 강력한 권위 앞에서 모든 이는 마땅히 겸손해져야만 했다.


“너는 유능하다. 관료주의의 궤에 묶인 범부들과는 본질에서부터 다르지.

하지만 그런 능력이 때로는 더욱 강력한 오만함의 올무가 되기도 하는 법이다.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결코 네가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다고 착각해서는 안돼.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는 어리석은 자보다도 소망이 없는 법이지.”


“명심하고 새겨두겠습니다, 폐하.”


“그래, 고맙다. 부디 모든 일을 다룸에 있어서 너보다 경험 있고 탁월한 자들을 신뢰하고 인정하는 행정가가 되거라.”


황제는 신하의 성과들을 전반적으로 평가한 뒤 추가로 조언들을 더 제공하였다.

원래 엄중하면서도 자애로운 알폰스인지라 부하들의 훈육과 교육에도 철저하게 접근하곤 했지만, 그도 바쁜 사람인지라 이렇게까지 시간을 내어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조언하는 일은 드물었다.

공사를 엄격히 구분한다고는 해도 역시 친아들이기에 쏟을 수 있는 관심이었다.


“펠렌드로크.”


“네, 폐하.”


적자색 빛의 동공이 동요 없이 침착하게 전언을 기다렸다.


“그만 집무실을 나서자꾸나. 퇴근한 이후로는 굳이 예를 갖추지 않아도 된다. 황제로서가 아니라 아버지로서 묻고 싶구나.”


영리해보이는 인상의 흑적발 청년은 묵묵히 황제의 걸음을 따라 나섰다.

아버지가 친히 권위의 벽을 낮추어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일부러 각 잡힌 자세를 유지했다.


“무엇을 여쭙고자 하시는 것인지요?”


“네가 생각하는 브라이틀란트 황가의 존재의의가 무엇인지 알고 싶구나.”


다소 광범위한 기습 질문에 펠렌드로크는 말문이 막혔다.

그는 당황하는 기색 없이 잠잠히 침묵하며 고민하였다.

황제의 질문에 시간을 끄는 것은 예의가 아님이 분명하나 알폰스는 일부러 재촉하지 않으며 찬찬히 기다려주었다.


“세계를 올바르게 계도할 수 있는 유일한 권능입니다.”


“그게 네가 내린 답이구나. 네 판단과 가치관은 잘 알겠다.”


칭찬도, 꾸중도 아닌 모호한 회색의 평가였다.

펠렌드로크는 아버지의 의중을 이해하지 못해 의구심이 들었다.


“지도자들의 지혜 없음은 일종의 죄악이지. 그리고 자신의 무지를 직시하지 못하는 것은 더욱 큰 죄악이란다. 하지만 그와는 또 다른 종류의 무서운 오류가 한 가지 존재한단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가장 지혜로운 자를 우상의 자리에 올려두는 것. 어리석은 지도자를 택하는 것이 우매한 군중의 죄악이라면, 현명한 지혜자들이 빠질 수 있는 가장 커다란 실수는 철인 통치라는 명목으로 포장된 우상숭배란다.”


“폐하께서 말씀하시는 우상이란 것이 브라이틀란트 황가와 그 유산입니까?”


“아버지라고 부르렴.”


“······네, 아버지.”


복도를 걷던 두 사람 사이에 잠시 침묵이 임했다.


“분명 황실에게 주어진 힘은 고귀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로 말미암은 고귀함은 아니야. 그리고 언약의 실존과 그 무게를 아는 자들조차도 언약보다도 더 중요한 그 근원지를 진정으로 두려워하지 않는 경우가 더러 있지.”


그 말은 어딘가 모르게 펠렌드로크를 향한 겨냥 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이들에게 초자연적인 특성을 지닌 선물이란 그저 자신들의 가치관과 이념을 지키기 위한, 그리고 우상으로서 누군가를 세워 야심을 이루기 위한, 이용하기 좋은 수단에 불과하지.”


알폰스의 예리한 눈은 자신의 셋째 친아들의 본질을 꿰뚫고 있었다.

승냥이보다도 더 무시무시한 성정을 소유한 교활한 자, 펠렌드로크.

논외의 위격인 알렉시스를 제외하면 형제 중 어느 누구도 그보다 더 치밀한 그물망을 구축해낼 수 없었다.

그런 펠렌드로크가 브라이틀란트 황가의 언약을 이해하는 방식은 결코 경외함이나 존중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에게는 그 보물마저도 철두철미하게 이용해야 할 대상임이 분명했다.


‘아마 자기 자신을 세우기 위한 수단은 아닐테지.’


저 표리부동함에 능숙한 아들내미의 속을 파헤칠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아쉽지만 그를 컨트롤할 수 있는 이는 큰아들 뿐이리라.

문제는 바로 그 큰아들 녀석이 펠렌드로크가 이용하려는 우상이라는 데 있었다.


“알렉시스를, 네 큰형을 향한 충정은 나도 잔 안다. 하지만 네 방식은 과잉 충성이다. 너는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에서가 아니라, 브라이틀란트 황가의 힘을 절대적으로 확립하기 위해 형을 드높이고 있을 뿐이다.”


온화한 어투로 말하긴 했으나 그것은 분명한 경고였다.

황제는 아들이 부드러운 충고를 잘 깨달아 적용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아는 것과 그것에 기꺼이 순종하고픈 심적 변화는 다른 문제이리라.

아무래도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울 듯했다.

한 사람의 성정이란 간단히 바뀌는 것이 아닌 법이니 말이다.


“아버지, 혹 이터널클렌징 건에 개입했던 일을 문책하시는 것이라면, 이미 저는 깊이 자중하는 마음임을 말씀드립니다.”


“아니다. 그 건을 말하려는 건 아니야.

어차피 그 문제에는 너만이 아니라 모두가 관여했었지. 그 착한 네 쌍둥이 형제마저도. 랜슨 같은 천방지축 녀석이야 혈기가 앞서서 그랬겠지. 뭐, 주동한 주체가 너임은 나도 안다만.

그래도 당시 너희가 품은 동기는 불가피했음을 이해한다. 하지만.”


미중년의 남자는 깊이 지난 기억들을 곱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비단 그 사건이 아니더라도 나는 네가 일처리를 행하는 방식들을 많이 지켜봐왔다. 합리적이고 치밀했지만, 그 마음의 중심과 동기는 늘 황가의 번영과 승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지.”


“그것이 잘못된 것입니까? 황가는 브리튼 그 자체와 맥을 같이 하는 유기체입니다. 그리고 지금은 세계를 보존할 수 있는 유일한 유지 장치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의 가치가 곧 세계의 가치라고 자부할 수는 없지. 우린 그저 청지기일뿐이다. 신께서는 얼마든 그 직책을 다른 이에게 옮기실 수 있다. 겸손함을 잊어서는 안 돼.”


“바로 그 신께서 택하신 것이 아버지 당신의 가문, 그리고 형님 아닙니까?”


펠렌드로크의 이해는 전혀 아버지의 의중에 닿지 않았다.

마치 평행선을 달리는 두 경주자가 만나지 않는 것처럼.


“역사에 가정법이란 없습니다. 택정을 받은 것은 결과론적으로 우리입니다. 그러므로 황실의 주인은 곧 세계의 관리자. 저는 형님 이외의 다른 선택지가 인류에게 존재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치 않습니다. 그럴 기회를 누리기에 그들은 너무 어리석다는 사실이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증명되었으니까요.”


“말 잘했군. 그걸 바로 교만, 또는 우상숭배라고 부른단다, 아들아.”


황제는 몸을 돌이켜 짙은 자색의 눈으로 아들을 응시했다.

펠렌드로크는 그 위엄에도 불구하고 위축되지 않았다.

오랜 세월 알렉시스라는 이상(理想), 누구 표현대로라면 ‘우상’에 눈높이를 맞춰두었기에 상대적으로 낡아진 아버지의 위압감은 크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진정한 철인(哲人)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세대는 다릅니다. 이제는 정말로 인류를 다스릴 자격이 있는 개체가 이 세상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른 어떤 집안도 아닌, 우리 가문의 일원입니다.”


“그건 인정한다. 그래, 알렉시스는 나와 내 조상들과는 달리 인간의 궤를 벗어난 경지에 한없이 가까워진 자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두려웠단다. 너도 그렇듯이, 수많은 이들이 바로 그 아이를 바라보며 브라이틀란트의 유산을 우상으로 삼을 것이 너무도 자명했기 때문이지.”


“경고의 말씀은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아니구나. 어차피 네 마음 깊숙이서 생각을 재고할 의도가 없다면 내가 강요해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니.”


황제의 절제된 책망의 언어 속에는 따스함과 안타까움이 함께 녹아 있었다.

펠렌드로크는 그저 예의로서 그것을 받아들이고 반응할 뿐이었다.


“그러나 네 형을 불완전한 사람이 아닌 ‘세상을 지배하기 위한 우상’으로 만든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비극이겠지. 그를 사랑한다면 그 아이에게서 인간성을 박탈하지는 말려무나.”


“이것이······, 제가 그를 사랑하는 방식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렇다면 결국 그 또한 네 선택이겠지. 존중하마.”


알폰스는 애정을 담아 쓸쓸히 아들의 어깨를 손으로 두드렸다.


“오늘은 그저 다 잊고, 무거운 짐을 짊어질 그 아이를 축복해주자꾸나.”




*


앳된 얼굴과 갈색 피부의 호리호리한 한 청년.

그는 평소답지 않게 주눅든 자태로 건물들의 품위와 웅장함 앞에 정지하였다.

단순히 물리적인 공간의 장엄함이 주는 위압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심리적인 거리감에서 나오는 부담감이 그를 무겁게 짓눌렀다.

일년에 한 번씩 오는 이 장소는 여전히 그에게 있어서 가깝고도 먼 곳이었다.


‘몇 번을 찾아와도 도무지 적응이 안 되네.’


분명 그의 본가이긴 한데 불편해도 이렇게 불편할 수가 없었다.

바쁘고 피곤하다고는 해도 병원 생활은 이렇지 않았다.

오늘처럼 필수적인 연례 행사가 아니면 본가를 찾지 않던 그였다.


‘나 하나쯤 없어도 잘만 돌아갈텐데.’


그를 위축되게끔 하는 것은 소속감의 부재였다.

자신이 이런 명예로운 울타리 속에 감히 발을 디뎌도 될 지 궁금해지는 의문감.

몇 차례나 허락을 받고도 늘 그는 자신의 자격을 의심하고 또 의심해야 했다.

그 기저에는 본연적인 열등감 뿐 아니라 죄책감이 깔려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문의 부름을 거역하지 않는 것은 두려움이나 의무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빚진 마음, 맹종에 가까운 사랑, 그리고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깊은 책무감이 원인이었다.

이 책무는 족쇄와 용수철이 되어 늘 그를 이 울타리 안으로 끌어당겼다.


‘아, 괜찮을까?’


두려움을 직면하자 가슴이 콱 막힌 듯 답답해졌다.

집안 어르신들과 형제들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두려웠다.

하나같이 훌륭한 사람들이고 최소한 위대한 위인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대하기 편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었다.


리키는 은연 중에 자신의 심박수가 불안정해지는 것을 감지했다.

의사이기에 생체 징후 이해에 민감한 그는 자신이 심리적으로 평안을 잃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이런 자신이 이곳에서는 자신의 정체성과 한참 거리가 먼 칭호로 불린다는 사실이 역설적으로 느껴졌다.


“어서 오시지요, 황자님.”


조금씩 식은땀을 흘리며 안색이 어두워지는 리키를 향해 황실에서 일하는 피고용인 하나가 말을 걸었다.


“먼 곳에서 오시느라 피곤하시지는 않습니까.”


“······괜찮습니다.”


“다행입니다. 저를 따라오시지요, 연회장까지 황자님을 모셔드리겠습니다.”


리키는 손수건으로 땀을 훔친 뒤 재빨리 태연한 척 연기했다.

언제 들어도 이질감을 불러일으키는 호칭이었다.

병원에서 매일 선생님이라고 불리다가 황자님이라니.

잘생긴 얼굴과 뛰어난 실력으로 병원 여직원들에게 왕자님 대우를 받아오긴 했지만 그것과 이건 별개의 차원 아닌가.

부담감으로 숨이 턱 막힐 지경이었다.


‘허허벌판에 떨어진 기분이다.’


육중한 황금 미로, 혹은 우주적 공포감을 자아내는 광활한 밤 하늘.

아름답지만 경외감을 불러일으키는 황궁은 리키에게 그런 곳이었다.

이 상징적 장소에 새겨진 명예의 힘이 그를 짓눌렀다.

합당치 못한 자를 불태우는 정결의 불길에 데이는 듯한 착각도 들었다.


물론 그가 나고 자랐던 그 끔찍한 지하토굴보다는 나았다.

하지만 그 ‘지옥’과는 또 다른 의미로 두려운 ‘천국’의 세계가 바로 이곳이었다.


‘어울리지 않는 옷에 묶여 포박 당한 기분이군.’


리키는 수정처럼 반투명한 벽에 반사된 자신을 보았다.

잘 재련된 무채색의 고급 정복을 입은 자신이 보였다.

오로지 황족에게만 허락되는 제복 형태의 명예로운 정장이었다.

옷걸이가 좋아서 그런지 객관적으로 보아도 그런대로 멋들어지게 어울렸다.


하지만 정작 착용한 본인은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기색이었다.

제아무리 근사하고 훌륭해도 사슬에 결박 당한 기분이면 뭐하겠는가.

일하느라 닳아버린 편한 병원 근무복과 흰 가운이 그리워지는 순간이었다.


“휴우.”


엄중한 문 앞에 마침내 당도한 리키는 망설임으로 멈춰섰다.

저 문 너머에 기다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에 차마 손이 뻗치질 않았다.

자신을 그저 적선의 대상처럼 여기는 동정심의 눈빛.

혹은 적절히 위장된 친절 속에 감춰진 외부인을 대하는 듯한 태도.

자기객관화에 능한 리키는 그들의 심정을 이해하였다.

스스로 보기에도 그는 이물질이었다.

만일 그렇게 여겨주지 않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이 이례적인 위인들이리라.


‘결국은 들어갈 수밖에 없겠지?’


입양해주신 아버지이신 그분의 명령에 순복해야 한다는 마음,

자신을 향한 박한 평가와 낮은 자존감으로 인한 망설임,

두 심정이 치열하게 대립하며 문을 향해 뻗은 손을 허공에 멈춰세웠다.


그렇게 용기 없는 자신을 스스로 힐난하던 중.


“잘 지냈어?”


햇살보다도 따스한 온기와 묵직한 무게감이 어깨 위에 얹혔다.

넓은 손바닥과 길게 뻗은 곧은 손가락이 리키의 어깨를 부드러이 움켜쥐었다.

싱그러운 사과나무의 향기를 연상케 하는 상쾌한 체향이 코를 간질였다.


“우리 동생 얼굴 보기도 참 어렵네.”


부담스러운 상황과의 대면을 두려워하던 마음이 순간 싹 잊혔다.

등에서 흐르던 식은땀은 멎었으며 불안정했던 심박도 고르게 가라앉았다.

첼로음을 떠올리는 근사한 중저음의 목소리가 편안함의 담요를 가슴 위에 덮어주는 듯했다.


“올해는 처음 인사하는 거구나. 되도록 기쁜 일이 가득하길 바랄게.”


듬직하고 넓은 체구가 어깨동무를 하며 자신 곁에 가까이 밀착했다.

고목 위에 기대는 듯한 기분이었다.

리키는 고개를 돌려 그 사내를 보았다.

키가 180cm인 리키도 한창 올려다보아야 할 장신이었다.


“혹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뭐, 괜찮아, 그때는 형한테 기대도 되니까.”


“형니임.”


뭉클 하고 북받치는 감정 때문인지 목이 매었다.


“그래, 정말 잘 와줬어. 네 얼굴을 보니 정말 기쁘네.”


고동색과 적갈색이 균질하게 섞인 색채의 머리카락.

한없이 순결한 채도의 선명한 보랏빛 색채의 눈.

그 근사한 얼굴 위에 걸린 따스한 미소를 보자마자 리키는 불안감을 씻어냈다.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그에게 강한 의지가 되는 기쁨의 원천.

만약에 이 집안에 이분이 없었더라면 견디기 어려웠겠지.

은혜를 베푼 것도 모자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준 저 넓은 품.

어울리지도 않는 이런 높은 명예의 울타리 안에 들어갈 기회를 굳이 포기하지 않은 것도 이 사람을 다시금 만나고픈 마음 때문이었다.


“알렉 형님, 그간 평안히 잘 지내셨어요?”


“항상 비슷하지.”


맏형은 막내 아우를 향해 총애의 표시로 가볍게 포옹하였다.

우람하고 단단하고 묵직한 근육에 짓눌리는 와중에도 리키는 잘 참았다.

숨이 막히긴 해도 저 온기에서 굳이 떨어지고 싶지는 않았다.


“자, 어서 들어가자. 겁 먹지 말고.”


형은 동생의 심리를 이미 손바닥 내다보듯 훤히 읽고 있었다.

아우가 무엇을 무서워하는지를 아는 그는 따뜻한 배려의 손길을 내밀었다.

혼자서기를 하려고 그간 열심히 분투해온 동생이니 이런 때만큼은 마음껏 기대도록 지지대를 내줘도 되겠지.


“나랑 함께 가자. 아무것도 걱정하거나 신경쓰지 말고 그저 기뻐해줘.”


알렉시스는 리키의 어깨 위에 팔을 얹은 채로 동생과 발걸음을 맞췄다.

덕분에 짓눌림의 무게가 덜해지자 리키는 용기를 내어 마음을 다잡았다.


“생일 축하드려요, 형님.”


그리고, 미안해요.


진갈색 머리의 청년은 조용히 한 마디를 마음속으로 삼켰다.

형님을 마주할 때마다 항상 본능적으로 속에 메아리치는 한 마디였다.

형은 이곳에서 그가 의지할 든든한 터전인 동시에 이곳을 부담스럽게 만드는 죄책의 근원이기도 했다.

평생 희생적으로 그를 도우며 봉사해도 마음의 빚을 다 갚기는 어렵겠지.


“그래, 고마워. 착하다, 우리 리키.”


알렉시스의 손이 리키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었다.

그는 연회를 준비하여 가지런히 잘 정돈된 동생의 머리가 헝클어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살살 어루만지며 애정을 표현하였다.


곧 연회장의 문이 열리며 초청받은 모든 이들의 시선이 둘을 향해 쏠렸다.

정확히는 주인공인 알렉시스 황태자를 향해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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