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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3.07.14 22:47
최근연재일 :
2024.06.0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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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5.12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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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1. 황제의 반려

DUMMY


브리튼 제국에는 귀족이라는 특권 계층이 없다.

언약이라는 틀 안에 있는 황족 이외에는 모든 이가 같은 신분이다.

그 황족마저도, 심지어 황제마저도 헌법과 ‘언약의 법률’ 아래에서는 평등하다.

아니, 황족에게는 더 무거운 책무의 짐이 얹힌다.


과거에는 브리튼에도 분명 5품작의 귀족 계급이 존재했다.

그러나 18세기 무렵 귀족제는 완전히 폐기되었다.

그로써 오로지 능력만을 기준으로 기회가 주어지는 시스템이 확립되었다.


그럼에도 계층 구조의 흔적마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유력한 가문과 그 명예의 유산은 여전히 존재했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능력에 따라 경쟁하다보면 자연히 사회경제적 수준의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고,

또 인간 본연의 마음에 따라 가정 제도와 상속을 긍정하다보면 가문 사이의 역량 차이가 생기기 마련이니까.

브리튼 제국도 이런 자연적 흐름에는 간섭하지 않았다.


요컨대 뛰어난 가문과 그렇지 못한 가문의 차이는 부정치 못할 현실이었다.


당연한 이야기이겠지만, 상류 사회의 구성원은 같은 급의 상대와 어울리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나 가문과 가문을 연결하는 결혼 같은 중대사의 경우에는.


황가라고 해서 이 관습적 관성에서 완벽하게 자유롭지는 않았다.


물론 황가의 ‘언약 계승자’의 경우에는 그 짝을 찾는 데 있어서 외피적 요인보다는 섭리적 요인에 많이 의존했다.


실제로 신께서 크리스토프 대제와 처음 언약을 체결하셨을 때 약속하신 여러 가지 부가적 은총 중에는 그와 관련된 것들도 있었다.

황가가 신실함을 지키는 한도 내에서 반드시 모든 세대의 후계자가 자신의 선임자보다 뛰어나게 성장하는 ‘청출어람의 은총’을 입는다고?

그러한 말도 안 되게 낮은 확률의 현상이 일어난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는가.

물론 매 세대의 황제와 황후들이 확률의 은혜를 입어 자신의 유전자 중 가장 좋은 부분들만 최적의 패턴으로 조합해 맏이를 낳는 일도 확률상 제로는 아니다.

하늘께서 섭리로 이 낮은 확률을 100%의 확률로 현실화해준다면 황가가 그러한 청출어람의 축복을 입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황제의 반려’ 쪽의 유전자가 우수치 못한다면 성립하기 어려운 가정이다.

즉, 크리스토프의 후손들에게 약속된 은총 속에는 ‘반드시 신의 섭리로 좋은 짝을 마련해주겠노라’는 부가적 혜택이 내포된 셈이었다.


실제로 매 세대에 차기 황제를 위해 준비된 최고의 아내는 반드시 출현했다.

신비할 정도로 절묘한 확률적 농간에 의해 항상 가장 아름답고, 뛰어나고, 지혜롭고, 우수하며, 동시에 성품도 올곧은 여인이 그 세대에 출현했다.

그것도 당대 황태자와 결혼하기에 꼭 적합한 연령대로.

하필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이가 황가 후계자를 위해 맞춰져 나타난다?

우연의 일치로 보기에는 너무도 희박한 확률이었다.


그들 가운데는 브리튼 출신뿐 아니라 외국 출신도 있었다.

동양인 가운데서 나타나기도 했고, 유럽인이나 남미인에서 나타나기도 했으며, 심지어 오지 원주민 혈통을 가진 자 가운데서 나타나는 경우도 있었다.

가난한 이도 있었으며 부유한 이도 있었다.

종교적, 민족적, 국가적, 문화적 배경도 각양각색이었다.

덕분에 대를 거칠 때마다 황가의 유전자풀은 점점 더 풍부해졌다.


더 놀라운 점은 그런 ‘완벽한 반려’가 다른 누구도 아니고 항상 황태자를 선택한다는 점이었다.

별다른 강요나 자유의지의 억압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물론 황가의 후계자들이 대체로 인물과 성품과 능력이 좋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운명적 결합’이 매 세대에 성립되긴 힘들지 않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낮은 확률의 일들은 항상 이뤄졌다.


그러나 황가의 구성원들도 인간이기에 판단의 연약함에서 자유롭지 않았다.

그들도 정치적인 배경을 아예 고려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여러 명의 훌륭한 반려 후보가 존재한다면 그 가운데에서 이왕이면 배경까지도 좋은 사람을 향해 선호가 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후보가 정치적, 가문적 배경을 떠나 순전히 본연의 역량만으로 다른 모든 이를 압도할만큼 뛰어나다면 배경의 문제는 고려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대체로는 비슷비슷한 후보 여럿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간 대 인간으로서 비슷하다면 아무래도 집안이 결정인자가 될 수밖에.


알폰스 지크프리트 엘 제이코프 엑스칼리브, 더 크라이스토브 브라이틀란트.

현 브리튼 제국의 황제이자 사실상의 지구 제국의 지도자, 알폰스 1세.


그가 아직 황위에 오르기 전 젊었을 적에도 황가는 비슷한 문제로 고민했다.

알폰스에게 가장 훌륭한 반려를 맺어주는 일은 황가의 미래에 있어서 매우 중대한 일이었다.


여러 후보가 존재했으나 세일린은 그 가운데 단연 으뜸이었다.

외적인 아름다움, 내면의 기품, 슬기로움, 판단력, 교양, 지식적 전문성, 심지어는 정치적인 통찰력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부족함이 없었다.

더욱이 그녀는 당대의 가장 유력한 가문의 여식이었다.


그런 그녀와 유일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서 대등한 격을 지닌 후보는 단 하나.

이본 하이신스 크롬웰.


능력이나 인품으로는 이본이 아주 조금 더 나았다.

외모로는 각자의 개성이 있어 비교하기 어려웠는데 보편적인 미의 기준으로는 세일린 쪽이 아주 조금 더 나았다.

그러나 이본은 세일린과는 다르게 뒷받쳐줄 든든한 배경이 없어보였다.

적어도 보편적인 개념으로서의 ‘가문’의 형태로는.


어쨌건 두 여인도 운명에 이끌리기라도 한 것인지 알폰스와 엮이게 되었다.


세일린은 능력만큼 야심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실현하고픈 일도 많았고 그를 위해서 힘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외면치 않았다.

그녀는 자신 스스로 이뤄내고자 하는 업무적 성취에도 관심이 많았고 그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으나 동시에 브리튼 황가의 막대한 영향력 또한 이해했다.

즉 그녀가 황태자비 자리에 야심이 없었다면 거짓말이리라.


그러나 그녀는 정정당당하게 그에 걸맞는 자격을 입증받아 쟁취하기를 원했다.

황위 후계자의 배필은 순수하게 연애 감정만으로는 결정되지 않는다.

인품, 능력, 재능, 지혜, 영향력 등 모든 면에서 인증받아야 하는 것이 그 자리.

그녀는 능히 승리할 자신이 있었다.


이본이라는 강력한 경쟁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이본은 천성이 이상가였다.

그녀에게는 세상을 자신이 꿈꾸는 선한 모습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이 있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권력이나 영향력을 소유하고픈 집착이나 욕심은 없었다.

그녀는 자유로운 영혼 그 자체.

그렇기에 무엇에도 묶이지 않았고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만일 자신을 대신해서 자신의 비전과 소망을 이뤄줄 존재가 나타난다면 굳이 그녀 스스로 그 명예를 차지하려 들지 않으리라.

이본은 그런 사람이었다.


황태자 알폰스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기회를 통해 두 사람과 교류하였다.

미래에 대한 자신들의 의견과 고민을 공유하기도 했다.

지식적인 교류, 깊은 관심사의 나눔, 그리고 협력.

분명 두 여인 모두 알폰스에게 있어서는 보다 더 선한 미래를 창조하기 위해 큰 유익과 도움이 될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본디 사람과 사람 사이의 우정과 인연이란 게 유용성, 고귀함, 가치 등에 의해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지 않던가.

사실 그보다는 보다 더 소소하고 작은 요소들에 의해 영향을 많이 받기 마련.

그리고 어떤 이가 어떤 이에게 다른 이들보다 더 끌리는 이유란 수학처럼 명쾌한 공식으로 해석되지는 않는, 어찌 보면 미스테리에 해당하는 영역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알폰스의 마음은 이본에게로 이끌렸다.

이본 또한 천천히 알폰스에게 끌렸다.

그녀가 그에게서 느낀 매력은 딱히 어떤 외적인 요인들과는 무관했다.


물론 외적인 요소들로만 고려해도 알폰스는 지나치게 훌륭했다.

최고의 능력과 패기를 지닌 사나이.

세상에서 가장 유능하다고 평을 받는 젊은이.

최소 IQ 200을 아득히 넘는 천재성,

가장 강력한 육체와 당대와 그 이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매혹적인 외형.

솔직히 황태자비 자리에 대한 욕심을 떠나서도 그 시대의 세계 여성들 중 황태자를 선망하지 않는 자는 없다시피 했다.


허나 이본은 이 모든 요소를 떠나서,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어떤 비밀스러운 숙명과도 무관하게, 오롯이 순수한 인간 대 인간의 정으로서 알폰스를 연모했다.


두 사람은 황제와 선황의 허락으로 맺어졌다.

과정이 아주 순탄한 것은 아니었다.

이본에 대해서 곳곳에서 여러 의문이 제기되었다.

그러나 알폰스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그녀를 택했다.

그 순간만큼은 그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고 그녀를 연모할 자신이 있었다.


한편, 세일린은 어떻게 되었을까?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녀는 야심을 내려놓는 법을 배워야 했다.

씁쓸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는 진지하게 스스로에게 되묻는 자성의 기회를 얻었다.

그녀가 바라였던 것은, 진정 갈망했던 것은 무엇이었는가?

황태자의 사랑이었던가? 한 사람의 애정을 갈구했던가?

아니면 자신의 비전을 이루는 것이었던가?

정직한 대답과의 직면이란 큰 도전이었다.


세일린은 끝내 깨달았다.

비전을 이루기 위한 열쇠가 반드시 외형적인 힘뿐인 것은 아니다.

또 그 힘이란 것이 필요하다 해도 반드시 남의 능력을 빌리는 식으로 얻을 필요는 없다.

지존의 반려가 되는 방식만이 해답은 아니리라.

몹시 뼈 아프지만 자신의 실수에 대해 대답을 얻기까지 그녀는 많은 숙고와 훈련의 시간을 거쳐야 했다.



*


“황후 폐하.”


비행기 특석에 앉아 잠시 낮잠을 취하던 여인.

그녀는 자신을 부르는 비서관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어머, 벌써 도착한 건가요?”


“휴식 중에 깨워서 죄송합니다. 10분 내로 착륙할 예정입니다.”


“그렇군요. 고마워요.”


60대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젊음을 간직한 아름답고 고고한 풍모의 미인.

백금발의 머리에 청록색 눈의 그 여인의 얼굴에는 결연함과 고귀함, 시간의 풍화가 쓰러트리지 못할 강렬한 의지력이 깃들어 있었다.


브리튼 제국의 황후 세일린 로제타 브라이틀란트.

황제의 반려이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여인 중 하나.


늘 그러했듯 근 한 달 간도 구대륙 전역을 돌며 자선 사역을 감당한 그녀.

그녀는 오늘 그녀가 섬기는 한 가문의 귀한 경축일을 맞아 제국의 심장부인 북부 신대륙으로 복귀 중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전 가족이 한 자리에 모이게 되리라.

큰 기대감과 함께 긴장감을 불러일으키는 날이었다.


“부디 편안한 여행 되시기를, Your highness.”


“고마워요, May the Lord God bless you and your house.”


호위 보디가드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열차에 탑승한 그녀.

의외로 그녀는 자가용보다 열차의 낭만을 더 좋아했다.

비록 특석이라는 분리된 보호 구획에 앉긴 했지만, 그래도 브리튼 시민들과 같은 속도 벡터를 공유하며 이동하는 낭만을 그녀는 불편함 대신 낙으로 받아들였다.


“아들들은 잘 지내고 있으려나 모르겠네.”


그녀는 창밖으로 보이는 아름답고 광활한 평야의 풍경을 감상하며 독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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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 [2부] 10. 아델바이스 24.06.07 3 0 18쪽
88 [2부] 9. 테서렉틴 (2) 24.06.07 6 0 14쪽
87 [2부] 8. 테서렉틴 (1) 24.06.03 7 0 14쪽
86 [2부] 7. 에쉬튼 24.06.01 9 0 15쪽
85 [2부] 6. 이안 (下) 24.05.25 15 0 19쪽
84 [2부] 5. 이안 (上) 24.05.23 14 0 12쪽
83 [2부] 4. 에드윈 24.05.18 12 0 12쪽
82 [2부] 3. 제로스 24.05.17 11 0 14쪽
81 [2부] 2. 세르빈 24.05.15 13 0 12쪽
» [2부] 1. 황제의 반려 24.05.12 18 0 11쪽
79 라하토브 (1부 完) 24.03.27 14 0 23쪽
78 호크마 (2) 24.03.22 14 0 18쪽
77 호크마 (1) 24.03.20 13 0 12쪽
76 대언자 (2) 24.03.18 13 0 15쪽
75 대언자 (1) 24.03.16 13 0 11쪽
74 아저씨와 아이들 24.03.15 12 0 22쪽
73 정산 (4) 24.03.08 15 0 15쪽
72 정산 (3) 24.03.07 12 0 12쪽
71 정산 (2) 24.03.06 11 0 12쪽
70 정산 (1) 24.03.05 10 0 14쪽
69 어둠의 무리 24.03.02 16 0 14쪽
68 타르타로스 (6) 24.03.01 14 0 16쪽
67 타르타로스 (5) 24.02.29 13 1 12쪽
66 타르타로스 (4) 24.02.26 13 1 14쪽
65 타르타로스 (3) 24.02.25 14 0 13쪽
64 타르타로스 (2) 24.02.23 10 0 17쪽
63 타르타로스 (1) 24.02.22 14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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