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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 님의 서재입니다.

지구 제국의 철인 태자

웹소설 > 일반연재 > 대체역사, 현대판타지

peacetiger
작품등록일 :
2023.07.14 22:47
최근연재일 :
2024.07.13 0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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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22 1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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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호크마 (2)

DUMMY



*


산달폰이라는 이름의 낯선 소년을 처음 만난 날은 열두 해 이전.

당시의 알렉시스는 스물여덟 살의 젊은이였다.

그는 한창 세상에 자기 명성을 드리우며 지평을 키워나가던 사업가요 정치인, 학자였다.


두 사람이 만난 곳은 팔레스타인 지역.

고대 로마의 황제 하드리아누스가 한 민족을 모멸하기 위해 지은 멸칭이 드리워진 땅.

그곳에서 젊은이와 소년은 뜻하지 않게 마주했다.


하나는 세상의 온갖 부귀영화와 자랑거리를 전부 소유한, 축복 받은 부자 청년.

다른 하나는 후줄근한 옷 차림에 그리 유별난 구석이 두드러지지 않아 보이는, 영특해보이는 외양을 제외하면 빛이 드러나지 않던 작은 존재.

언뜻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존재의 조우로 보였다.

문명의 충돌이라는 표현이 조금 더 어울리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당시 알렉시스는 서남부 컨티넌트의 북중부 지역에서 서열 2위 관리자로서 일하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역도 그의 영향권 구역 근방에 놓인 탓에 발령되는 빈도가 제법 잦았다.


그곳은 브리튼령의 모든 영토 가운데 가장 애물단지인, 사실상의 폐허더미였다.

세계대전 중 1차, 2차, 3차 모두의 영향을 빠짐없이 받은, 거의 유일한 지역.

더욱이 3차 대전 당시에는 일부지만 수소폭탄 투여의 영향권에 휘말리기까지 했다.

회복되긴 요원하였고 살아남은 이들도 세기말에 가까운 환경에 거하고 있었다.


물론 수 년간의 투자와 복구로 어느 정도는 사람 사는 곳의 향기를 되찾기는 했다.

허나 여전히 팔레스타인은 당시 테러리즘의 잔포한 횡행이 극도로 성행하던 곳이었다.

다양한 민족이 그곳에 섞여 지냈으며 그들 사이의 내전과 분쟁은 쉬이 가라앉지 못했다.

수많은 학자들이 입을 모아 예견하기를, 그곳은 가까운 시일 내에 시민이 거주하기에 부적합한 지역으로 간주되어 행정 권역에서 방출될 것이라고 하였다.


바로 그 황량한 준 사막 급의 폐기된 구 시가 지역에 당도한 알렉시스.

그는 그곳에서 몇 가지 문제들의 해결 방안을 놓고 고심하는 중이었다.

단기적인 과제들에 대한 고민도 그의 머리를 맴돌았으나 보다 더 먼 미래에 대한 구상과 혜안들이 그를 진지한 사색으로 이끌었다.


알렉시스는 인적이 드문 황량한 폐허에 앉아 지면에 어떤 도면을 그려넣었다.

다양한 심볼과 상징 표현들과 수식과 공식들로 즐비한 그만의 청사진.

그 안에는 정치학, 수사학, 수학, 건축학, 사회과학, 역사학 등 다양한 요소들이 담긴 채 얽히고 설켜 태피스트리를 자아내고 있었다.


간만에 부하들의 숲을 벗어나 미래를 향한 사색에 젖어든 그는 탐구욕에 흠뻑 취했다.

그 바람에 고도로 발달된 그의 감각이 자신 곁에 다른 이가 접근하는 것을 놓치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기척을 감지한 알렉시스는 재빨리 상대를 돌아보았다.


“당신은 누구지?”


한 열일곱 살쯤 되어보이는 액면가이려나.

성장기가 조금 늦는 것인지 또래보다 조금 키가 작은 편인 한 청소년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알렉시스와 정면에서 마주하고도 움츠러들거나 당황하지 않았다.

원체 포커페이스인 성향인 것인지 반쯤 무표정한 자태를 유지하며 그저 자색 눈을 응시하기만 했다.

되려 알렉시스 쪽이 그답지 않게 이유 모를 난처한 기분에 휘말렸다.


“꼬마야, 넌 이곳 출신인가?”


“이곳에서는 열일곱이면 성년 취급 받습니다만.”


“······.”


왠지 모르게 당돌하면서도 시니컬한 소년이었다.

알렉시스는 피식 웃으며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그 정도면 아직은 어른들의 지도와 돌봄이 필요한 나이지.”


소년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알렉시스의 도발에 작게 하품으로 대꾸했다.

성격이 꽤 너그럽고 어른스러운 알렉시스였지만 순간 그 하찮은 도발에 역린이 눌렸는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유치하게 굴고픈 충동이 일었다.


“부모님께 돌아가라. 걱정하실라.”


“제가 가장이라서요.”


괜히 쓸데없는 부분을 논하는 바람에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말았다.

알렉시스는 스스로 자조하며 한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말 실수했다.”


“괜찮아요.”


“하지만 형이 오늘은 좀 바쁘니 혼자 있고 싶구나.”


그때 멀뚱거리던 그 소년은 알렉시스의 도면에 관심이 생겼는지 그것을 뚫어지라 보았다.

단순히 호기심 때문에 눈초리를 두는 기색은 아니었다.

그보다는 뭔가를 통찰하고 이해하는 듯한 표정이었다.

알렉시스는 속으로 ‘그럴 리가 없는 데’라고 생각하며 고개를 저었다.


“시간이 지나면 네게도 가르쳐줄 기회가 있겠지. 하지만 아직은 무리야. 더 많이 배우고 공부한 뒤에나 알게 될 지도······.”


“세 대륙을 가로지르는 사이땅(intercontinental area), 그것을 재구축해서 세계 연결의 중심지로 부활시키려는 계획인가요?”


그 순간 아주 잠시 알렉시스는 당황으로 얼어붙었다.


‘누구지?’


알렉시스는 늘 가장 깊고 농밀한 계획을 구축할 때면 자신만의 언어와 그림과 수식으로 스캐치를 하곤 했다.

대중에게 알릴 때 쓰는 논문이나 보고서로 바꿀 때야 정돈된 형식을 취했지만, 그것은 알렉시스가 담아낸 생각들의 보물창고의 극히 일부분,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다.

진정으로 정수가 풍부하게 담긴 그의 노트들은 대개 비밀스러운 글로 지어졌다.

바로 지금 그가 땅 위에 그려낸 도면처럼.


그런데 이 수상한 소년은 지금껏 어떤 천재들도 보지 못했던 깊은 계략을 단번에 꿰뚫는 것이 아닌가.

기묘한 노릇이었다.


‘우연의 일치겠지?’


하지만 그 부정을 반박하기라도 하듯, 소년은 독백으로 뭔가를 웅얼거렸다.

그 내용들을 들은 알렉시스의 눈이 금세 놀라움으로 확대되었다.

띄엄띄엄 잘려 맥락이 불분명하긴 했지만, 분명 그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여러 생각과 구상들과 문맥이 일치했다.

마치 생각이라도 읽히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다고 소년이 모든 내용을 이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 듯했다.

적어도 각종 학문의 기본 지식들을 섭렵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당신, 학위 레벨이 어느 정도 됩니까?”


어느 새 존댓말을 취하는 알렉시스.


“그런 거 없어요.”


“대학교는?”


“독학으로 배우기만 해서 정규화된 교육 과정은 안 거쳤어요.”


기가 막힐 정도로 어처구니 없는 답변.

혹시 자신이 미처 가늠하지 못할 지능을 지닌 천재라도 되는 것인가?

알렉시스는 조심스레 그 소년의 지혜와 지식을 평가해보기 위해 질문들을 던졌다.

온갖 분야의 인문과학, 신학, 과학, 공학은 물론 첨단 지식과 숨겨진 수수께끼들도.


흥미롭게도 소년의 지식 수준은 막상 그리 대단한 레벨이 아니었다.

그가 말했던대로 정규 과정을 밟지 못한 탓인지 기초 수준의 학문에마저도 미흡했다.

그렇다고 지능이나 연산력이 컴퓨터 수준으로 어마어마한 것 같지도 않았다.

수학 문제나 다른 사회 문제들에 대한 질문도 ‘본질’에 대한 통찰만 간간이 드러낼 뿐 그 자체를 완벽하게 해결낼 정도로 완성된 역량을 보여주지는 않았다.


‘착각인가?’


여러 유형의 재주꾼들을 숱하게 만나온 알렉시스였지만, 이런 타입은 처음이었다.

소년이 소유한 그 기묘함을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알렉시스는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 소년을 토론으로 초대했다.


“내가 이 지역을 장기적 플랫폼으로 활용하려했던 것을 어떻게 알아차렸죠?”


묵묵무답. 노 코멘트.

알렉시스는 순간 참을 인을 이마에 새겼다.

내가 어른이니까 참아야지. 유치하게 아이에게 놀아나면 되나.


대신 소년은 동문서답으로 알렉시스의 도면에 담긴 생각들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제안점들을 넌지시 던져주었다.

알렉시스가 듣기에도 대단히 흥미로운 관점들이 많았고 참고한 지혜들이 녹아 있었다.

단순한 지식의 공급과는 다른 느낌이었다.

소년에게서 지혜를 배운다기보다는 소년이 일종의 촉매제가 되어 알렉시스 안에 이미 들어있던 지혜를 새로운 방향의 발상으로 진화하도록 자극을 준다는 느낌이랄까.

여하튼 그날의 대화와 토의는 여러모로 흥미진진했다.


“당신의 계획들, 말로 명확히 설명하긴 힘들지만 제한점과 결정적 한계점들이 있어요.”


소년은 알렉시스의 책략들에 이렇게 평가를 내렸다.


“그렇게만 말해서는 내가 참고하고 반영할 수가 없군요.”


“글쎄요. 저로서도 똑 부러지게 언어나 공식으로 표현하기가 어렵네요.”


“감이라 이건가? 하지만 그런 비과학적인 접근법으로는······.”


그저 무시하려던 알렉시스는 이유 모를 육감에 이끌려 변덕을 부렸다.

그는 소년이 자유로이 생각들을 표현하도록 내버려두기로 했다.

이윽고 소년은 한참 골똘히 고민하고 사색하더니 알렉시스의 도면 위에 뭔가를 더 그렸다.

수정하는 작업 같기도 했고 첨가하거나 삭제하는 것 같기도 했다.

알렉시스가 자신만의 언어를 사용했듯 그 소년도 자신만의 언어를 투영했는데, 그 패턴이 알렉시스와 달리 정형화되지 않은 상태였고 서투른 데다가 흠도 많았다.

알렉시스는 그것을 이해하고자 몇 분 이상을 고민하였다.

꽤 시간이 흐른 후에야 영감이 뇌리를 강타하였고 안개가 걷히듯 실타래가 풀렸다.

무언가 깨달음을 얻은 알렉시스의 두뇌는 명민하게 회전하며 생각을 전개하였다.


‘믿을 수가 없군.’


어째서일까?

그간 몇 달을 고민하고도 풀리지 않았던 숙제들이 하나씩 명백하게 풀려나갔다.

소년이 해답을 주는 게 아니었다.

그저 소년이 툭툭 생각 없이 던지는 그 이상한 힌트들과 이정표들이 무언가 섭리에 이끌린 듯 알렉시스의 지식과 지혜를 자극하여 시너지를 이끌어내는 듯 했다.


‘설마 모든 답을 알고서 힌트를 준 건가?’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없어 보였다.

전지한 존재, 혹은 준 전지적 존재가 아니고서야 그런 농락이 가능할 리가.

만약 그런 말도 안 되는 일이 가능하다면 저 아이는 신의 현현, 혹은 천사여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기에 저 소년은 지식, 연산력, 자체적 지혜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다.

그렇다고 무언가를 숨긴다거나 일부러 자기 역량을 감추는 기색도 보이지 않았다.


‘정체가 뭐지?’


소년은 그 후로도 몇 번의 대화를 통해, 또 툭툭 던지는 발상의 전환거리를 통해, 또한 자신의 의식의 흐름에서 나온 어떤 이상한 영향력을 통해, 알렉시스의 고민거리들이 알렉시스의 내면에서 저절로 해결되도록 유도해주었다.

배움을 받는 게 아니라 지혜의 마중물을 만난 기분이었다.

저 소년의 정체가 미네르바의 부엉이라도 된단 말인가?


‘아니지, 그 말 같지도 않은 이교도 신화 따위를.’


알렉시스는 불경한 생각이 잠시 스쳐지나간 자신의 마음을 힐난했다.


‘하지만, 어쩌면 지혜라는 형이상학적 실체가 부분적으로나마 현현한다면, 저런 모습으로 나타나려나? 이런 터무니 없는 상상을 지우기가 어렵군.’


청년과 청소년은 몇 시간 이상 이 땅의 미래 사용에 대해 논의하고 토론했다.

알렉시스는 일부러 소년의 배움 수준에 맞춰 간추려지고 단순화된 언어를 사용했다.

소년도 이에 보답하여 알렉시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지혜의 단서들을 던져주었다.

유익하고 보람찬 교류의 장이었다.


“당신 이름, 뭡니까?”


뜻하지 않게 만난 기연의 단서라도 잡아볼 심산으로 알렉시스가 질문을 던졌다.


“알아서 뭐하시게요.”

“그래야 서로 통성명하고 관계를 형성할 수 있지 않습니까? 내 이름은 알렉시스입니다.”


고아 출신이라 그런 것일까?

소년은 이름이라는 개념에 그리 큰 집착이나 의의를 두지 않는 듯했다.


“산달폰.”


소년은 아주 짧게 한 마디로 답했다.


“그렇게만 불러주세요.”

“미들네임이나 라스트네임은?”

“그런 거 없어요. 이 이름도 호적 상의 이름이 아니라, 가족끼리 부르는 별칭 같은 거예요.”

“그렇군요.”


자기 자신도 풀네임을 밝히지 않은 주제에 무례한 요구를 했다고 자각한 알렉시스는 미안함을 느꼈다.

정작 소년은 전혀 개의치 않는 기색이었지만.


“그러면 호크마라고 불러도 되겠습니까? 어차피 별칭이니 상관은 없을 테죠.”


엉뚱하게 오기가 생긴 알렉시스는 인심 베풀 듯 웃으며 툭 던졌다.


“왜죠?”


“아, 그저 첫인상을 마음 속에 간직하고 싶어서요. 싫으시다면 그만 두겠습니다.”


“됐어요. 당신 마음 가는대로 편히 하세요.”


퉁명스러우면서도 무덤덤한 산달폰 특유의 대꾸에 알렉시스는 저도 모르게 피식 실소했다.

만난 지 몇 시간이나 되었다고 벌써 이런 식으로 익숙해진 건가.


“이름을 물은 건 감사를 표하고 싶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부디 이해해주시길.”


“저 같은 볼품없는 자가 그리 도움이 되었을 리 없을 텐데요?”


“천만의 말씀. 생각지 못하게 오늘 기인(伎人)을 만났군요.”


알렉시스는 어른답게 호쾌하고 너그러운 태도로 악수의 손을 뻗었다.


“산달폰 당신과의 나눔을 통해서 그간 도달하지 못했던 새로운 지평에 도달할 기회가 되었습니다. 사고의 틀과 지혜의 연장도 체험했고요. 게다가 당신 덕에 오랫동안 고민했던 이번 계획을 바르게 고치고 보완할 실마리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건 당신 스스로 이뤄내고 해결해낸 발상이잖아요.”


산달폰은 왜 자신한테 공을 돌리는 지 정말 모르겠다는 투로 담담히 반문했다.

알렉시스는 어차피 말이 안 통하겠다 싶었는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긴 무슨 상관이랴. 행운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잘 쥐면 그만이지.


“기회가 된다면 당신을 초대해서 대접하겠습니다.”


“말씀은 고맙지만 사양할게요.”


산달폰은 악수의 손길만 받아들인 후 짧게 손을 흔들었다.



“오빠?”


그렇게 둘이서만 대화하던 와중에 다른 곳에서 어느 여자아이 목소리가 들려왔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열둘에서 열셋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 소녀가 있었다.


“이분은 누구셔?”


소녀는 꾀죄죄하고 볼품없는 차림이었지만 원판은 인형처럼 고왔다.

무엇보다 대단히 영특해보이는 인상이었다.


“아.”


산달폰을 재빨리 그 아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아주었다.

알렉시스가 그 쪽으로 잠깐 시선을 두자 산달폰을 고개를 들어 눈길로 약하게 쏘아보았다.

쓸데없이 관심을 두지 말고 잊어버린 척 갈 길 가라는 투의 제스쳐였다.


“잠시 길에서 만난 사람이야. 별로 신경쓰지 마.”


“오빠는 낯선 사람하고는 네 시간 이상 대화한 적 없잖아.”


산달폰은 말문이 막혔는지 대답 대신 소녀의 머리카락을 살며시 쓰다듬어주었다.

그 모습에서 잠깐 자신과 동생들의 모습이 떠오른 알렉시스는 옅게 생각에 잠겼다.


‘가족이 있다더니, 혼자서 동생을 돌보는 건가?’


산달폰은 여동생을 ‘착하지’라고 달래며 아이의 관심을 수상한 자에게서 돌렸다.

불우한 환경과 좋지 못한 지역에서 자라난 것처럼 보이는 그 두 오누이.

하지만 오누이끼리 같이 대화하며 서로를 챙겨주는 모습에 드러난 은은한 유대감은 여느 평범하고 화목한 가정 못지 않아 보였다.


“안녕하세요.”


작은 소녀는 키 큰 낯선 남자에게 작별 겸 소개의 인사를 하였다.


“안녕.”


얼떨결에 홀린 알렉시스도 대꾸해주었다.


“기회가 되면 또 만나서 같이 이야기해요.”


“······그래.”


이에 산달폰은 질투심과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알렉시스를 쏘아보았다.

알렉시스는 은근 억울한 심정이 들었으나 가정의 평화를 깨고 싶지 않았기에 침묵했다.


“사이땅을 활용하려는 당신의 계획 말이에요.”


산달폰은 떠나가기 전 마지막으로 선물을 줄 심산으로 사족을 덧붙였다.


“당신은 ‘그 왕국’을 벤치마킹해서 이 땅에 평화의 매개체를 두려는 생각이겠죠. 세 대륙의 모든 민족과 문명과 국가가 교류하고 화합하는 중심. 정확한 발상이에요. 원래 이 땅은 그 목적에 알맞도록 설계되고 창조된 곳이죠.”


그러나 이상하게도 산달폰의 톤은 부정적인 뉘양스를 내포하고 있었다.

이를 감지한 알렉시스는 긴장감으로 다음 대목으로 기다렸다.


“하지만 설령 오늘 당신이 깨달아낸 수정 사항들을 무사히 반영한다고 하더라도 당장은 당신의 계획을 이루긴 요원할 겁니다. 거기에는 근본적인 제약점들이 있어요. 정치, 사회, 경제의 문제가 아니예요.”


산달폰의 지적은 알렉시스의 가장 깊은 무의식 속에 있던 고민을 끄집어내었다.

이번에도 이 기묘한 소년은 청년의 사고의 회로를 신비로운 방법으로 활성화시켰다.


“반드시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습니다. 당신 스스로도 아실테죠.”


그 의미심장한 말에 알렉시스는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잘해낼 수 있을지 그로서도 자신이 없었기에 염려로 인해 식은땀이 이마를 적셨다.


“응원할게요.”


“감사합니다.”


산달폰은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자비를 베풀었다.

작은 소녀, 자신의 여동생이 알렉시스의 손을 잡고 악수할 수 있도록 허락해주었다.

알렉시스는 그 맑고 순수한 영혼과 마주함으로써 잠시 두터웠던 경계심이 해제되었다.

소녀의 웃음에 담긴 보이지 않는 영향력은 산달폰이 주는 지혜의 자극 이상으로 강렬한 느낌이었다.

알렉시스도 그 기이한 영향력 앞에서 순간적으로 저항의 태세를 놓치고 말았다.


“행운의 선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산달폰.”


“그러시던가요.”


“그럼 잘 지내시죠.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가겠습니다.”


“사양한다니까 그러시네.”


그렇게 오묘했던 오누이와의 만남은 하루의 짧은 추억으로 남겨졌다.


이것이 12년 전의 일.

딱 한 번의 추억이었으나 깊고 선명한 흔적을 그의 기억 속에 새겨주었다.


그리고 오늘 알렉시스는 뜻하지 않은 이 자리에서 재회의 기회를 얻었다.

어느 덧 소년티를 벗고 어른이 된 산달폰, 요정처럼 신비로운 그 특이함은 여전했으나 농익은 성숙미가 더해진 영향인지 전과는 다르게 새로운 느낌의 인상이었다.


“그때는 고마웠습니다.”


알렉시스의 입에서 무의식적으로 고마움의 인사가 튀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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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2부] 16. 왕들의 식탁 24.07.02 11 0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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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2 [2부] 13. 생일 (1) 24.06.23 13 0 15쪽
91 [2부] 12. 새해 첫날 (2) 24.06.19 11 0 17쪽
90 [2부] 11. 새해 첫날 (1) 24.06.18 10 0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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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 [2부] 7. 에쉬튼 24.06.01 12 0 15쪽
85 [2부] 6. 이안 (下) 24.05.25 17 0 19쪽
84 [2부] 5. 이안 (上) 24.05.23 17 0 12쪽
83 [2부] 4. 에드윈 24.05.18 20 0 12쪽
82 [2부] 3. 제로스 24.05.17 18 0 14쪽
81 [2부] 2. 세르빈 24.05.15 21 0 12쪽
80 [2부] 1. 황제의 반려 24.05.12 28 0 11쪽
79 라하토브 (1부 完) 24.03.27 22 0 23쪽
» 호크마 (2) 24.03.22 21 0 18쪽
77 호크마 (1) 24.03.20 17 0 12쪽
76 대언자 (2) 24.03.18 17 0 15쪽
75 대언자 (1) 24.03.16 17 0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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