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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람 님의 서재입니다.

파피루스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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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람
작품등록일 :
2016.07.28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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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8.26 2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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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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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14 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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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차도살인(借刀殺人)―제 24화

DUMMY

이 거대한 조직의 수장인 제이콥 박사는 예상밖의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그저 하얀 백발에 체크 남방을 입고 있는 초라한 촌로 같았다.

작고 마른 체구에 깊게 패인 얼굴의 주름살.

만일 그가 이 웅장한 사무실의 화려한 책상에 앉아 있지 않았다면, 아무도 그가 L.O.P. 재단의 이사장이란 사실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말없이 의자를 돌려 앉으며 한손을 들어 책상 앞의 의자에 앉기를 권했다.


“이름이 정준수라고 했나?”

“예, 그렇습니다. 직접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난 정중히 예의를 갖추며 말했다.

“성화궁 건축 공정이 얼마나 됐나?”

노인의 목소리는 낮고 작았지만 상대에게 위압감을 준다.

“현재 12 프로입니다. 지난주에 기초공사가 끝났습니다.”

“건축 헌금은 얼마나 걷혔나?”

“현재 60 프로가 넘었습니다. 올해 안에 목표액을 채울 거라고 판단됩니다.”

“대충은 터키의 신경식을 통해 보고를 받고 있네. 다만 직접 본인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지.”

노인은 말을 길게 하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제이콥 박사가 입을 다시 열었다.

“자네는 차범석 목사를 어떻게 생각하나?”

난 의외의 질문에 당황했다. 하지만 노인의 질문엔, 뭔가 한국, 성화 재단 담당자들에 대한 불신을 내포하고 있었다.


난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차범석 목사님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길지 않은 시간에 전 그를 가까이서 보았지요. 차 목사님은 나이가 많으십니다. 성화궁 프로젝트가 당신의 생애 마지막 사업으로 생각하고 계시지요. 그는 사리에 밝은 분입니다. 그리고 저를 신뢰하고 계시지요.


저는 그분의 개인적인 모습엔 관심이 없습니다.

제가 이일에 끼어든 것도, L.O.P. 재단이라는 세계적인 조직 안에서 거대한 프로젝트를 담당하고 싶은 욕심에서였습니다. 저는 맡은바 임무에만 충실할 뿐입니다. “


난 거침없고 당당하게 말하고 있었고 아부하지도 않고 있었다.

노인은 쓰고 있던 안경 너머로 눈을 치켜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오는 길에 신경식을 만났지?”

“예, 만났습니다.”

“자네는 한국인이야. 신경식도 그렇지. 같은 한국인으로서 자네는 신경식이 어떤 사람이라고 보았나?”

“짧은 만남이었습니다. 신경식 목사는 한국의 차범석 목사님과 같은 신학교를 나왔습니다. 한국인들에게 선후배 사이의 우정은 남다르지요.”

난 제이콥 박사가 던지는 짧은 질문들 속에서 그의 의도를 읽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묻겠네. 자네는 이곳에 성화궁 사업 자금을 요구하고 받아 내는 임무를 띠고 왔겠지?”

“그렇습니다.”

“만일, 내가 약속했던 사업 자금 지원을 취소한다면, 자네는 어떻게 하겠나?”

난 이 질문을 예상하고 있었다.

“전 칼을 뽑아 이사장님을 죽일 겁니다. 전 한국에서 임무를 받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 이곳에 왔습니다. 돈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저는 제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이대로 빈손으로는 못 돌아갑니다.”

“하, 하, 하, 하......”

노인은 큰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기개가 대단한 젊은이로군! 차 목사는 훌륭한 직원을 두었어!

돌아가게. 성화궁 프로젝트는 차질 없이 진행될 것이네. “


난 일어서며 그에게 허리를 굽혔다.

“말이 지나쳤습니다. 용서하십시오.

가당찮은 제 말의 속내를 이해해 주시는 박사님의 식견에 존경을 표합니다.

다시 뵈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


일어나 사무실을 걸어 나오는 내 모습을, 노인은 회색 눈동자를 들어 지켜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와 난, 동시에 입가의 미소를 띠고 있었다.


사무실을 나오자 레오파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레알타드 거리에 있는 ‘리츠’ 호텔로 데려다 주었다.

“미리 예약이 되어 있습니다. 체크인 하시고 키는 카운터에서 받으시면 됩니다. 호텔 내의 시설은 얼마든지 이용하셔도 됩니다. 계산은 저희가 합니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화강암으로 지어진 호텔, ‘리츠 마드리드’는 6층밖에 안되었지만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5성급 호텔이었다. 재단에서 잡아 놓은 디럭스 룸은, 핑크빛 카펫이 깔려 있었고, 르네상스 풍의 벽면 장식과 샨델리아가 클래식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난 짐을 정리하고 창 옆의 의자에 앉아 잠시 머리를 뒤로 젖혔다.

머리가 아팠다.

피오나의 해맑은 얼굴이 분노와 함께 떠오른다. 그리고 그녀가 죽기 전에 외친 목소리가 들린다.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개새끼!”

내 눈은 울고 있었고 내입은 웃고 있었다.


그렇게 앉은 채 몇 시간이 흘렀을까? 내 몸은 지쳐 있었고,

정신은 피폐해 있었다.

그때 호텔 전화기가 울렸다.

“누굴까?”

난 전화기를 집어 들었다.

“나, 제이콥 박사요. 어때, 호텔은 지낼 만한가?”

난 의문이 들었다. 이 노인네가 왜 전화를 한 것일까?

“예, 박사님. 덕분에 편히 쉬고 있습니다.”

“미안하네. 쉬는데. 다름이 아니고, 난 매일 아침 리츠호텔 근처로 아침 산책을 한다네. 자네도 나와 아침 산책을 즐기지 않겠나?”

“아. 물론이지요, 박사님.”

“그래, 내일 아침, 8시에 호텔 건너편 고야 동상 앞에서 만나지.”

노인은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자산이 5경이 넘는 재단 이사장이 왜 나와 아침 산책을 하려는 걸까?’

열어 놓은 창문 너머로 플라멩고 기타 소리가 들린다.

마드리드의 밤이 깊어만 간다.


나는 아침 7시에 눈을 떴다.

아침을 커피 한잔으로 때우고, 가벼운 복장으로 호텔을 나왔다.


고대 박물관을 돌아 프라도 미술관을 건너, 스페인의 국민 미술가, 고야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 공원까지 뛰었다. 이미 제이콥 박사는 고야의 동상 옆 벤치에 앉아 신문을 읽고 있었다.


“일찍 나오셨군요. 박사님.”

“노인 은 읽고 있던 신문을 접어 벤치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뛰어왔나 보군, 잠시 앉아 쉬게나.”

“제게 무슨 할 말씀이 있으십니까?”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노인이 입을 열었다.

“난, 자네가 탐이 나네. 자네에게서 신뢰와 결기를 볼 수 있어. 난 사람을 볼 줄 아는 눈을 가졌다네.”

“과분한 평가 이십니다.”

“아니야, 내 말 잘 새겨듣게.

난 한국의 성화궁 사업에 무려 2조를 쏟아 부으려 하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어. “

”무엇이 걸리십니까? “

“이 일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신뢰가 안 간다는 거야. 차 목사와 최장로. 그리고 터키의 신경식까지도. 그들의 눈빛에서 신뢰를 읽을 수 없네. 그들이 보고 해오는 보고서와 내가 자체적으로 조사한 내용에도 차이가 많아. 난 이 사업 속에 내 사람이 필요하네. 지금의 그들은 내 사람이 아니야. 뭔가 냄새가 나.”

노인은 심각하고 신중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 말씀을 제게 하시는 이유가 뭡니까? 만난 지 몇 시간이나 되었다고 저를 신뢰하십니까? 그분들은 박사님과 오래된 사람들입니다.”

“사람을 평가 하는데 시간이 중요 한건 아니야. 느낌이 중요하지. 난 자네와의 짧은 만남에서 신뢰를 보았어. 그리고 난 나의 감각을 믿네. “

“제게 무엇을 원하시는 겁니까?”

“지금까지와 같이 일을 하되, 그들의 행동을 분석해서 나에게 보고해 줘야겠네.”

“저보고 감시자 역할을 하라는 말씀이군요.”

그래. 이 사업을 성공 시켜야 하네. 건축이 완공되면 그땐 자네가 이 사업의 주체가 되게 될 거야. 해보겠나? “

“제 생애에 가장 힘든 결정을 요구하시는군요. 지금 대답 해아 합니까?”

“오늘 저녁 아홉시 비행기를 탄다고 들었네. 떠나기 전에 연락 주게. 기다리겠네.”

“만일 제가 No.를 한 다면요?”

“성화궁 사업은 차질을 빚게 될 거야.”

그는 일어서며 내게 명함을 내밀었다.

지팡이를 짚으며 멀어져 가는 노인의 모습을, 잠시 동안 바라보며 그대로 앉아 있었다.


난 호텔로 돌아와 다시 창문 옆 의자에 앉았다.

나는 이스탄불을 떠날 때부터 이 게임에 자신이 없었다.

상대가 너무 강했다. 그리고 난 너무 약했다.


이스탄불에서 마드리드까지 3시간 반의 비행시간 동안 난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난 약하고 적은 강하다. 약한 내가 어떻게 강한 적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애초부터 상대가 되지 않는 게임이었다. 하지만 피오나의 얼굴이 떠오를 때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의무감에, 나는 다시 결기를 다지고 또 다졌다.


그리고 찾아낸 것이 ‘차도살인(借刀殺人)’ 이었다.

그들을 죽이기 위해 그들의 칼을 사용하기로 했다.

그 방법 밖에 없었다. 그리고 적진에 깊이 들어가 적의 칼을 빼앗아야 한다.

난 적의 칼로 적을 죽일 것이다.


난 그들의 칼을 잡아 신경식의 목에 꽂을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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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악마의 최후 - 제 34화 16.08.25 273 12 13쪽
33 작전 실행(2)- 제 33화 +1 16.08.24 270 7 15쪽
32 작전 실행(1) - 제32화 +1 16.08.23 353 7 13쪽
31 장기적출 - 제31화 +9 16.08.22 522 8 12쪽
30 장기밀매의 현장 (2) -제 30화 +8 16.08.21 310 9 12쪽
29 장기밀매의 현장 (1) -제 29화 +9 16.08.20 587 6 12쪽
28 피오나의 복수 -제 28화 +2 16.08.19 412 9 12쪽
27 복수의 시작(2) 제 27화 +4 16.08.18 438 8 13쪽
26 복수의 시작(1) -제 26화 +6 16.08.17 561 9 12쪽
25 파라오 -제 25화 +5 16.08.16 501 10 11쪽
» 차도살인(借刀殺人)―제 24화 16.08.14 453 10 9쪽
23 악마의 수괴 -제 23화 +2 16.08.14 353 10 9쪽
22 쿠르드족의 여전사 -제22화 +3 16.08.13 467 11 11쪽
21 이제, 다시 이스탄불로-제21화 +4 16.08.12 546 13 10쪽
20 호랑이 굴로 들어가다-제20화 +9 16.08.11 523 13 9쪽
19 드러나는 속살-제19화 +8 16.08.11 759 16 7쪽
18 성화궁-제18화 +12 16.08.10 601 19 8쪽
17 다섯번째 동그라미-제17화 +4 16.08.09 652 15 10쪽
16 장기밀매-제16화 +4 16.08.08 667 17 11쪽
15 바울의 사자들(2) -제15화 +6 16.08.07 665 14 9쪽
14 바울의 사자들-제14화 +2 16.08.05 684 19 12쪽
13 여섯명의 사탄들-제 13화 +4 16.08.04 667 21 8쪽
12 세 번째 동그라미를 찾아서-제12화 +4 16.08.04 722 19 9쪽
11 첫 번째 악마의 표식-제11화 +1 16.08.03 595 24 7쪽
10 안타키야 – 제10화 16.08.01 670 27 6쪽
9 끝나지 않은 비밀-제9화 16.07.31 687 2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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