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화궁-제18화
막탄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동쪽으로 기수를 돌렸다.
이륙을 끝낸 비행기가 고도를 찾았을 때 안전벨트 싸인이 꺼지고,
스튜어디스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난 의자를 뒤로 저치며 눈을 감았다.
지난 시간 흩어졌던 기억의 파편들이 모습을 갖춰가며 물결처럼 흘러간다.
‘도착하면 먼저 이모님 댁으로 가야지’
난 한국에 가족이 없다.
일찍 남편과 사별하셨던 어머니는 슬하에 나와 여동생, 두 남매를 두셨고,
식당을 운영하며 자식들을 키우셨다.
그리고 어머니는 내가 제대 후, 대학을 졸업하던 해, 폐암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폐암 선고가 내려지고 의사로부터 자신에게 남겨진 시간이 일 년이란 사실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당신의 죽음을 준비하셨다.
그리웠던 사람들을 만나 회포를 풀고, 미워했던 사람들을 만나 맺혔던 한을 풀었다.
그리고 외할머니의 무덤 옆에 자신의 자리를 준비하시며 그곳에 사과나무를 심으셨다.
“어머니, 왜, 사과나무를 심으세요?”
“그래야 내가 죽으면 너희들이 이곳에 사과라도 따 먹으러 오지 않겠니?”
어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여동생은 삼일을 울었다.
난 동생이 그토록 서럽게 우는 모습을 처음 보았다.
그 후 그녀는 학교를 졸업한 후 결혼해서 미국에 이민을 갔고,
그리고 얼마후, 난 두바이로 떠났다.
착륙을 알리는 안내멘트에 눈을 떴다.
어느새 날이 밝아 있었고, 비행기는 인천공항을 선회하며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공항을 나온 리무진 버스는 반포대로를 지나고 있었다.
그때, 버스 창밖을 바라보고 있던 난, 충격적인 건축물과 마주쳤다.
옆의 남자에게 물었다.
“저건 뭐하는 건물인가요?”
남자는 날 한번 흘끔 쳐다보더니,
“오랜만에 한국에 오시나 봐요. 저건 교회예요.”
“예? 저게, 교회 맞아요?”
재차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두바이에서 본 사막 위의 스키장을 연상케 했다.
그저 멍하니,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랬다. 내 눈에 그것은 현대 자본주의가 낳아놓은 한 마리 괴물이었다.
‘저 안에서 사람들은 무엇을 할까?’
‘저곳을 드나드는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저 안의 화장실은 어떻게 생겼을까?
저곳의 화장실에 앉아서 똥이나 제대로 눌 수 있을까?’
“하, 하, 하······.”
그저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지난 오 년간 내가 비워 놓았던 이 자리에서, 자본주의가 바꿔놓은 현실과 마주했을 때, 난 그저 어디론가 숨어 버리고 싶었다.
‘이건 아닌데······.’
이모님은 날 반갑게 맞아주셨다.
“아니 이게 얼마 만이냐?
이제 일흔을 넘기신 이모님은 오 년 전 떤날 때보다 많이여위어계셨다.
“예, 오 년 만에 돌아왔습니다. 건강하시지요?”
난 이모님께 큰절을 올리고 안부부터 물었다.
“키가 더 큰 거 같은데?”
“아이, 이모님도, 키가 크다니요, 나이가 몇인데 키가 커요.”
“아무튼, 건강하니 다행이다. 다, 주님께서 보살펴 주신 덕분이지.”
“교회에 다니세요?”
“그래, 작년부터 여의도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어. 창빈 에미가 하도 성화길래 얼떨결에 따라 나갔지. 이 나이에 교회 집사가 됐단다.”
원래 이모님은 불교 신자셨다.
“선화는 어디 갔나요?”
“응, 걔도 이제 시집갈 나이가 됐는지 밖으로만 싸돌아다녀. 쯧, 쯧......”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문소리가 들리고 선화가 들어왔다.
그녀는 나를 보자마자 달려와 껴안으며 말했다.
“오빠, 이게 얼마 만이니? 보고 싶어 죽는 줄 알았어.”
“그래, 자식, 몰라보겠구나.”
천의 고아였던 선화는 어려서 이모님이 다니던 절의 주지 스님이 데려다 키우던 애였다. 그녀가 11살 때 스님이 돌아가시자, 오갈 데 없던 그녀를 이모님이 데려다 키웠다. 그랬던 그녀가, 이제 스물두 살이 된 것이다.
이모님께서 일어서시며 말씀하셨다.
“선화야, 준비해라. 수요예배 가야지. 너도 같이 가자.”
평일인데도 예배가 있나 보다.
“예, 그러지요.”
난 마지못해 이모님을 따라나섰다.
교회는 웅장한 두바이의 이슬람 모스크를 닮았다.
주일이 아닌데도 이천 석이 넘는 자리가 신도들로 꽉 차있었다.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선화가 내 팔을 잡으며 따라오라고 했다.
“이모님께서 오빠 데리고 사무실로 가서 등록시키래.”
“등록은 무슨, 난 카톨릭인데.”
“그냥 등록만 해. 이모님 성격 알잖아?”
난 마지못해 선화를 따라 교회 사무실로 가 등록서류를 작성해야 했다.
이름과 주소, 연락처, 직장과 월수입······.
‘신도 등록하는데 월수입도 적어야 하나?’
어거지로 등록을 마치고 자리에 돌아오자, 대규모 관현악단과 합창단의 찬송가가 울려 퍼지며 예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TV에서 보았던 차범석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다.
“오늘의 말씀은 신명기 14장, 28절에서 29절······.”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진 목사의 설교는 십일조와 건축헌금에 관한 내용이었다.
목사는 3천 년 전 유대인들의 고대 율법에 나오는 전설들을 가지고 와 신도들에게 수입의 일 할을, 신의 이름으로 요구하고 있었다.
“이 땅에 주님의 이름으로 지어지는 세계 최대의 하나님의 궁전, ‘성화궁’을 위해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목사는 피를 토하고 있었고, 그가 말을 마치자, 그곳에 모인 2천여 신도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외계의 소리로 통성기도를 시작한다. 동자가 없는 하얀 눈에서 눈물을 비 오듯 쏟으며 짐승의 소리로 울부짖는다.
난, 그 엄청난 소리의 파장이 건물의 구조를 진동시키고 있는 공간 속에서 귀를 막으며 참아야 했다.
그날 저녁, 난 선화를 데리고 나와 시내구경을 나섰다.
오랜만에 거리의 음식들을 맛보며 시내 거리를 돌아다녔다.
그리고 우리는 작은 카페에 마주앉아 맥주를 마셨다.
“너, 남자친구는 있니?”
“응, 만나는 사람이 있어. 출판사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인데 사람이 착하고 따뜻한 거 같아.”
“그래, 그거 반가운 얘기구나. 넌 외롭게 자랐어. 네겐 따뜻한 남자가 필요해.
그나저나 이모님께서 교회에 나가신 지는 얼마나 됐니?“
“한 이년 됐어. 얼마나 열심이신지 일주일에 서너 번씩 교회에 가자고 하셔.
안 따라갈 수도 없고, 허구한 날 교회 사람들이 집에 몰려와 두세 시간씩 기도 다, 뭐다, 아무튼 죽겠어.”
선화는 마지못해 이모님을 따라 교회에 다니지만 마땅찮은 모양이었다.
“그렇게라도 마음 붙이실 데가 있으니 됐다. 근데, 그 목사가 말하는 ‘성화궁’이 뭐니?”
“아, 그거? 올 초에 시작한 교회 사업이야. 규모가 어마어마해.
여섯 개의 대형교회가 함께 시작하는 사업인데, 경기도 용인에 140만 평의 부지를 사 놓았어. 거기에 교회와 기도원, 기숙사를 짓는대.
방문객을 위한 호텔도 짓고 300개의 병상을 갖춘 병원도 짓는다고 했어.
사업자금이 2조 원이 넘는다나 봐. 3년 계획인데 벌써 입주 신청을 받고 있어.
신도들이 재산을 정리해서 교회에 기부하면 입주 자격이 주어져.
그들은 그곳에 살며 매일 기도하며 여생을 보내게 되는 거야.
물론 먹고 자는, 모든 게 무료로 주어진대.
신청자 중에 젊은 사람들도 꽤 있나 봐.”
난 그녀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었다.
“혹시, 장기기증 운동 같은 얘기는 없었니?”
“그걸 어떻게 알았어? 거기 들어가려면 사후 장기 기증서에 서명해야 한데.
이모님도 성화 궁이 지어지면 재산 정리해서 거기로 들어가실 계획인가 봐.”
“그렇구나!”
“근데 오빤 그걸 어떻게 알았어?”
“아냐, 그냥 얼떨결에 생각이 들어 물어 본 거야.”
그날, 난 한국에서의 첫 밤을 이모님 댁에서 묵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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