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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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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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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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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쪽

260화 보따리 뺏을 궁리

DUMMY

260화 보따리 뺏을 궁리


하승덕은 머리가 복잡해지는 걸 느꼈으나 이내에 고개를 흔들었다.


당장 중요한 건 어떻게 저들이 이곳에 있는지가 아니라 저들이 이곳에 있다는 점이었다.


‘원군이 있으면, 원군이 왔다는 사실만 있으면 어떻게든 할 수 있다.’


아군은 도움이 왔다는 사실에 사기가 오를 것이고, 적은 반대로 계속해서 원군이 올지도 모른다는 중압감에 시달릴 터였다.


“앞에 있는 건 아군이다! 아군이야! 모두 속도를 늦춰라!”


당장 중요한 것이 떠오르니 하승덕은 자신들이 마치 적인 것처럼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리고 있음을 떠올리며 화급히 외쳤다.


아군이라는 말에 긴장하던 기병들은 조금씩 속도를 줄이기 시작했다.


그를 대신하듯 오히려 속도를 올려 앞으로 자신을 돌출되게 한 하승덕은 크게 손을 흔들며 외쳤다.


“조 장군! 조 장군! 이 사람 하승덕이외다! 삼변 총독이신 홍승주 대인을 모시고 이번 북방 원정에 갔던 하승덕이오!”


홀로 다가가며 그렇게 외치는 것이 효과가 있었는지 다가오던 이들도 점차 속도를 줄이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하승덕 본인처럼 한 사람이 앞으로 나오니 그는 금주성 방어를 맡은 조대수였다.


막역지우라고 할 정도는 아니라도 면식이 있어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지 않은 그를 보며 하승덕은 세상 반가운 얼굴로 외쳤다.


“조 장군, 조 장군이 맞으시구려!”

“그대가 왜 이곳에 있습니까? 혹시 홍 대인도 함께 계십니까?”

“그것은 내가 물을 말이외,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조대수가 묻는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던 하승덕은 당장 그게 중요한 게 아님을 기억하고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당장 원병을 부탁합니다! 원정군이, 홍승주 대인이 위험합니다!”

“······.”


하승덕이 하는 말에 조대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그 모습에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하승덕은 답답함을 느끼며 지금 얼마나 상황이 다급한지 외쳤다.


“조 장군, 한시가 급합니다! 이게 전부요, 보군은 수만이나 기병은 이게 전부란 말입니다!”

“정말입니까?”

“그렇소. 보군 또한 적어도 삼분지 일은 죽거나 다쳤으니 원병이 한시가 급하니 서둘러주십쇼! 본디 저 역시 금주성으로 원군을 청하러 가던 길입니다!”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던 조대수는 심히 고심하기 시작했다.


“조 장군, 어서 도우러 가셔야 합니다!”


그 모습에 하승덕은 답답하다는 듯이 재촉하나 조대수는 여전히 생각에 골몰할 뿐이었다.


‘이 방향으로 돌아갔을 청나라 놈들과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다.’


금주성에서 깔짝 거리던 청나라 놈들이 보이지 않으나 있어야 했다.


이 사실과 홍승주가 처한 상황을 조합하니 얼추 머릿속에 그림이 그려졌다.


‘개들을 풀었어. 사냥 중이야.’


그가 생각한 것이 맞다면 여기서 함부로 달려가 합류하는 건 그리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조 장군!”


숙고하던 조대수는 다시금 채근하는 하승덕의 외침에 결정을 입에 담았다.


“우린, 아니 나는 가지 않습니다.”

“예!?”



***



“허억, 허억.”


홍승주는 살면서 이렇게 힘든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피로감을 느꼈다.


“청나라 놈들이다!”

“무기 들어!”

“방패, 아니 뭐라도 좋으니 몸을 가려!”


그리고 그 피로를 더욱 가중하겠다고 하듯 장졸을 가리지 않고 호들갑 떠는소리가 들렸다.


홍승주 역시 얼마 남지 않은 힘을 짜내어 이곳까지 오며 안타깝게 죽은 병사의 몸에서 벗겨낸 갑옷을 갈라 만든 방패를 들었다.


푸푹


청나라 놈들이 쏜 화살이 이번은 좀 매서운지 방패를 뚫고 살을 빼꼼히 보였다.


“장군, 먼저 가십쇼! 여긴 제가 남겠습니다!”

“······잊지 않겠네.”


당장 누군가 남지 않으면 모두가 죽으니 처음에 홍승주가 한 약속을 믿고 장수들이 하나둘 자청해서 남기 시작했다.


 홍승주는 벌써 네 번은 자행한 꼬리 자르기가 얼마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임을 잘 알았다.


소용이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허나 지금까지 받은 습격 반절은 후방이 아니라 측면에서 받았으니 말이다.


처음에는 후방에 남겨둔 이들이 변변한 저항도 전멸한 줄 알았다.


물론 한나절이 지난 지금은 그럴 것이나, 중간중간에 습격한 이들은 달랐다.


‘이놈들, 사방에 병사들을 뿌렸어. 아니, 그게 다가 아니야. 이놈들, 금주와 산해관 쪽에 출몰했다는 녀석들이 분명해.’


청나라 놈들이 도술이건 요술이건 쓰지 않는 한 이것이 가장 타당한 추론이었다.


더불어 이는 정답임과 동시에 그들이 생각 이상으로 오래전부터 함정 속에 있었으며 위험도 한층 커졌음을 의미했다.


숫자는 기껏해야 수천에 불과하나 어디를 가던 청나라 군대가 쫓아온다.


이 압박감이 주는 공포와 동요는 상상 이상으로 강렬했다.


“나, 나는 이제 싫어!”

“나라도 살겠어!”


장졸을 가리지 않고 사람들이 겁에 질려 도망치길 관두거나 다른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씩 낙오하고 탈주하니 명나라 군대는 그 숫자가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죽어도 홍승주가 있는 곳은 향하지 않으니 참 빤한 속내다 싶기도 했다.


하지만 홍승주는 그렇게 생각할 뿐, 저들에 대해 아무런 미련이며 원망을 품지 않았다.


어차피 죽을 이들, 그런 것들을 품어봐야 시간 낭비였기 때문이었다.


‘그런다고 살아서 돌아갈 수가 있겠는가. 아예 처음부터 항복하면 모르나, 이미 저들은 독이 올랐다. 어중간한 태도로 망설이면 죽고, 어설프게 저항하면 죽겠지.’


아무리 패배했다고 한들 오랑캐라고 한껏 업신여기던 이들이다.


그런 이들에게 바로 몸을 엎드리고 항복한다니, 그럴 사람이 있다면 도망친 이들 가운데서는 난놈이라고 해도 좋았다.


그리고 홍승주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런 난놈은 없었거니와, 청나라는 처음부터 항복 따위 계획에 넣고 있지 않았다.



***



“나, 나는 대명 장수 강, 끄윽.”

“쥐새끼의 이름을 일일이 들은 시간은 없다. 밀어버려.”


항복하겠다고 외치며 다가온 명나라 장수를 그대로 쏘아 죽인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은 잠도 자지 않고 추격하느라 눈이 피곤한 걸 느꼈다.


‘나이 먹었군.’


어느새 마흔을 넘은 나이를 체감하며 한손으로 양쪽 눈어림을 매만진 지르가랑은 눈을 뜨며 사방을 살폈다.


그가 눈을 돌보는 사이 수백의 명나라 병사들은 이미 그 명을 달리하여 땅에 엎드러져 말하지 못하는 신세들이 되었다.


그러나 지르가랑은 그 일을 대단히 여기지도 안타깝게도 여기지 않고 무미건조하게 말을 이었다.


“금주에 보냈던 녀석들, 기다리기로 한 것이 이 부근이 아닌가?”

“맞습니다.”

“허면 슬슬 막바지로군. 꼬리만 먹기도 질리던 참이다.”


지르가랑은 쓰러진 명나라 군사들을 한번 힐끗 본 후 말을 이었다.


“다들 모아라. 살집이 통통한 몸통을 먹을 시간이다.”



***



“······하, 하하, 하하하.”


조금 넓은 길로 나왔다 싶은 순간 사방에서 몰려드는 먼지구름에 홍승주는 맥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자르고 자르며 도망했는데 그 끝은 몰이 당해 죽을 운명이라니, 어처구니고 의욕이고 한순간에 증발한 기분이었다.


“자, 장군, 며, 명령을······.”


그 와중에 자신에게 명령을 부탁하는 장수를 보니 홍승주는 짜증이 확 솟았다.


‘그렇게 명령이 좋으면 진즉에 좀 듣지 그랬나!’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간신히 삼킨 홍승주는 애써 냉정을 가장하며 물었다.


“가장 수가 적은 무리를 찾아 돌파한다.”

“······그러자면 뒤로 돌아가야 합니다.”

“맞습니다. 뒤는 아예 열린 곳이 있습니다.”


장수들이 하는 말을 들으며 홍승주는 이를 악물었다.


“그럼 답은 하나군.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 와서 돌아가다니, 그런 확실하게 모두가 죽는 길이었다.


차라리 앞을 뚫고 이곳을 빠져나갈 시도를 해보는 것이 더 나았다.


다만 이 경우 문제가, 아주 큰 문제가 있었다.


“으으으.”

“무, 무울······.”

“제길, 이제 건량도 없잖아······.”


승산이 있고 없음을 떠나서 군졸들이 이제 한계였다.


도망치는 처지에 한가롭게 수레나 끌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이고 말은 전부 모아서 구원을 청하러 보냈다.


당연히 먹고 마실 것이라고는 몸에 지닐 수 있는 양이 전부였는데 제대로 쉬지 못하며 하루도 넘게 달린 결과 물은 진즉에 떨어졌고 건량으로 억지로 침을 내어 버티던 것도 한계였다.


일부 병졸은 그 건량조차 없어서 지치고 허기진 얼굴로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하니 태반을, 부상병은 물론이고 힘이 나지 않는 이들도 다 버리고 가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경우 남겨진 이들은 확실하게 죽을 것이고, 그렇게까지 해도 사는 것은 홍승주가 보기에 많아야 일만 남짓에 불과할 듯 보이니 암담하기 짝이 없었다.


“응?”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하며 부월을 잡은 손에 힘을 주던 홍승주는 앞에서 오는 적들이 흔들리는 걸 보았다.


두 눈을 가늘게 뜨고 보니 거기에는 청나라 군사들이 다른 누군가에게 뒤를 찔렸는지 그대로 반전하는 게 보였다.


그리고 하늘의 뜻인지 아니면 살고자 하는 본능인지 홍승주는 그 멀리 있는 깃발에 쓰인 문자를 볼 수 있었다.


조(祖), 금주성 군대의 깃발이었다.


“원군이다! 원군이 왔다! 금주에서 원군이 왔다! 다들 달려라! 저들만, 저기만 뚫으면 살아서 돌아갈 수 있다!”

“아군이 왔다! 금주 병사들이 구하러 왔다!”

“여기만 지나면 금주다! 명나라, 고향이다!”


홍승주가 목청이 터져라 외치는 말에 그래도 눈치는 있는지 장수들은 하나가 되어 병사들을 독려했다.


물론 여기를 벗어나도 금주까지, 명나라 땅까지 거리가 제법 되는 걸 그들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병사들은 그런 지리에 눈이 밝은 자들이 많이 없었으며, 당장이라도 지쳐서 그만두고 싶은 자들에게 딱 한 걸음만 더 내디디면 된다는 말은 대단히 매혹적이었다.


“그, 금주?”

“집이다, 집이야!”

“사, 살았다, 살았어!”

“무기, 무기를 들어!”

“우린 살아서 돌아왔다! 여기서 죽을까 보냐!”


와해되어 가던 분위기는 한순간에 뒤집혀서 마지막 불씨를 태우게 하니 이들의 용맹이며 사기는 전날 승승장구하던 시절과 비교하여도 손색이 없었다.


하지만 이 기세가 오래 갈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는 홍승주는 만족하지 않고 곧장 명령했다.


“돌격! 우린 돌아간다!”


와아아아!!!!


돌격이란 말은 그리 울림이 없으나 돌아간다는 말은 병사들의 마음을 크게 적시니 명나라 군대는 이제까지 쫓기던 이들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용맹하게 뛰기 시작했다.


이제 느긋하게 잘라 먹으면 그만이라고 여겼던 청나라에게 있어서 이는 당연하게도 놀라운 일이며 악재였다.



***



“죽다 만 송장 놈들이!?”

“제길, 포위망이 이상하다!”

“적습, 적습! 금주에서 병사들이 온 거 같습니다!”


연이은 보고에 이번 사냥에서 최종 지휘를 맡겨진 지르가랑은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빌어먹을. 깔끔하게 잡아먹기는 글렀군.”


훙승주보다 후방에 있다고 하지만 시력은 그보다 배는 좋으니 깃발은 몰라도 전방을 막을 마개 역할을 해야 할 부대에서 문제가 생긴 건 훤히 알 수 있었다.


계획대로 다 잡아먹기는 글렀음을, 설령 그렇게 해도 예정보다 피해가 커질 것을 안 지르가랑은 못마땅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지. 앞을 열어주고 뒤를 쳐라. 뒤에서부터 차례로 잡아먹는다.”

“일부 놓칠 수도 있습니다.”

“그거야 어쩔 수 없지.”


지르가랑은 그렇게 말하며 전장을 살핀 후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길은 아직 멀다. 놈들을 차분히 추적하면 그만이야.”



***



“장군, 어서 타십쇼!”


기세에 맡겨 혼란한 전방으로 달려 싸우던 와중에 홍승주는 먼저 보낸 하승덕과 재회할 수 있었다.


그의 말에 홍승주는 복잡한 생각이 들었으나 당장 이것저것 가릴 때가 아니라 여긴 그는 얼른 하승덕이 끌고 온 말에 올랐다.


“숫자는 얼마나 되나?”

“여기에는 급하게 기병 2천이 왔을 따름이나 그리고 조금 가면 금주병의 대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승덕은 홍승주가 묻는 말에 대답하였으나 그 대답하는 모습이 다소 이상했다.


시선도 그렇고 외치는 방향도 그렇고 마치 홍승주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는 것처럼 얼굴을 돌려서 외쳤던 것이다.


의아함도 잠시, 홍승주는 곧 하승덕이 노리는 게 무엇인지 짐작하고 맞장구쳤다.


“후발대 십만이 벌써 도착하였나!”

“그렇습니다! 금주를 통해 오기로 한 병사 십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



“병사 십만?”

“적들의 수괴 홍가가 외치는 걸 보고 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저들은 그 십만에 앞선 기병 2천이라고?”

“예, 전하.”


전장에서 흘러나온 말을 가만히 들은 팔기 몇몇이 달려서 지르가랑에게 그들이 들은 것을 아뢰었다.


이에 가만히 생각하던 지르가랑은 가소롭다는 듯이 웃었다.


“흐하하하, 명나라 놈들 허세며 과장 심한 건 옛부터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죽을 위기에 이런 허풍이라니, 우스운 걸 넘어서 감탄스러울 정도다.”


이곳을 빠져나간 후 지형을 머리에 그린 지르가랑은 확신했다.


한번, 한 번만 풀어주고 저들이 지치기를 기다리면 손실 없이 모두 먹어 치울 수 있다고 말이다.


“거짓이 있다는 말은 저게 전부라는 말이겠지. 무리하지 말고 보내라.”

“괜찮으시겠습니까?”


휘하 장수가 묻는 말에 지르가랑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은 힘을 모두 짜낸 놈들이다. 이제 한번 놓아주고 다시 잡으면 변변한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질 건초더미가 될 것이다.”

“알겠습니다. 허면 말씀대로 한 번 더 풀어주고 다시 포위하도록 하겠습니다.”

“무리하지 마라. 우리 만주족의 목숨은, 아니 청나라를 위해 싸우는 이들의 목숨은 그 누구라고 한들 명나라 잡것들보다 백배는 귀하다.”

“예, 정친왕 전하!”


여유로움을 품고 그렇게 말한 지르가랑은 직접 나서기로 마음 먹고 말을 몰았다.


“그러면 어디 한번, 거짓이 깨진 멍청한 얼굴들을 구경하러 가볼까.”


그렇게 적당히 숨구멍을 트여준 후 재차 추격을 한 지르가랑은 그가 말한 것을 조금 다른 방식으로 맞추게 되었다.


“저, 저건 대체 어디서 나온 병력이냐!?”


전방, 길이 좁아지는 장소에 명나라 깃발이 무수한 진지를 보고 직접 그 멍청한 표정을 지음으로 말이다.


진지가 크고 깃발은 즐비하니 저들이 말한 십만은 아닐지언정 수만이 주둔하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거기에 허세가 아니라고 하듯 여기까지 살아남은 명나라 병사들을 수용하고 화살을 거세게 쏘아 대니 지르가랑으로서는 물러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제길, 대체 어디서 저런 게 나왔단 말이냐! 철수, 철수해라! 이미 전공은 충분하다!”


자존심은 남아 후퇴가 아니라 철수며 전공은 충분하다고 외쳤으나 정작 외친 지르가랑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


이건 마지막에 물려 승리라고 하기에 부족하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



“화살이며 진지며 깃발이며 잘도 이만큼이나 준비했군.”

“화살은 금주에 있는 걸 최대한 모아 온 것이며 진지는 근처에서 나무를 베고 흙으로 쌓아 눈속임한 것에 불과합니다. 또한 깃발은 대만 늘려 적당히 비슷한 옷감으로 나부끼게 한 것이니 요행입니다.”


홍승주가 하는 말에 조대수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며 외쳤다.


“쉬지 마라! 화살을 계속 쏘아라! 놈들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다!”


외치면서 살피니 화살 잔량이 얼마 되지 않음이 보이니 조대수는 한층 더 초조함을 느꼈다.


이곳에 있는 병력은 기실 만은커녕 급히 금주에서 내어온 기병 수천에 불과하니 혹여 청나라 놈들이 접근해서 한 번이라도 두드리면 그 허실이 그대로 드러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하늘은 조대수의 간절한 바람에 귀를 기울였는지 청나라 군사들은 빠르게 후퇴하고 있었다.


“하, 싸울 때는 저 빠른 속도가 지긋지긋했는데 지금은 반갑기 그지없군요.”


청나라 군대가 시야에서 멀리 보여 알기 어렵게 된 순간 화살도 그치니 조대수는 지친 얼굴로 적당한 자리에 주저앉았다.


“반갑다라. 그래, 나도 그러네. 금주는 별문제 없을 걸세. 방금 물러난 것들과 합류한 게 그놈들일 테니까.”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조대수가 일리 있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떡이니 홍승주는 진지 안으로 피해 기진맥진한 병사들을 살폈다.


“우리가 너무 빠르게 물러나면 놈들이 눈치챌 수도 있네. 이곳에서 푹 쉬고 이동하는 게 좋은데, 먹을 건 좀 있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사람이 줄어서 가능은 할 거 같습니다.”


그러던 중 살아남은 장수들 몇몇이 하승덕을 보며 쑥덕거리는 걸 본 홍승주는 눈에 서늘함을 감돌게 하며 그 면면을 외우고 다시 조대수에게 물었다.


“말, 튼튼하고 빠른 말이 필요하겠어. 몇 필 빌릴 수 있겠나?”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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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9 268화 부족한 숫자 +5 23.06.30 356 25 13쪽
268 267화 계승과 충성 +1 23.06.29 357 23 15쪽
267 266화 다음가는 자 +4 23.06.28 344 26 14쪽
266 265화 하늘의 부름은 피할 수 없다 +1 23.06.27 350 17 13쪽
265 264화 사랑을 크기로 표현하면 23.06.26 341 21 12쪽
264 263화 알맞은 일 +2 23.06.25 339 20 11쪽
263 262화 소식을 전하는 순서 +4 23.06.24 370 22 15쪽
262 261화 두 전령 +2 23.06.23 356 21 13쪽
» 260화 보따리 뺏을 궁리 +5 23.06.22 341 23 17쪽
260 259화 쫓고 쫓기고 +1 23.06.21 339 20 12쪽
259 258화 누구도 바라지 않은 결과 +3 23.06.20 350 22 13쪽
258 257화 이기기 위한 손실 +4 23.06.19 367 23 16쪽
257 256화 정해진 선택 +1 23.06.18 331 22 13쪽
256 255화 죽음의 무게는 같지 않다 +2 23.06.17 337 21 14쪽
255 254화 달콤한 제안 +1 23.06.16 344 17 12쪽
254 253화 보이는 것과 의도는 다르기 십상이다 +2 23.06.15 345 20 13쪽
253 252화 도이 +2 23.06.14 357 24 12쪽
252 251화 거짓은 항상 커진다 +2 23.06.13 348 18 12쪽
251 250화 은밀한 일 +2 23.06.12 340 19 12쪽
250 249화 오래전에 했던 일 23.06.11 343 19 12쪽
249 248화 다가온 구실 +1 23.06.10 340 16 13쪽
248 247화 바다를 향한다 +3 23.06.09 367 19 11쪽
247 246화 소년의 마음은 +3 23.06.08 357 24 13쪽
246 245화 윗사람과 거리는 적당한 게 좋다 +2 23.06.07 345 23 12쪽
245 244화 어린 친왕 +2 23.06.06 383 21 12쪽
244 243화 오고 감은 같아야 한다 +4 23.06.05 366 25 13쪽
243 242화 왕의 옆, 신하의 위 +2 23.06.04 361 21 13쪽
242 241화 오래가지 못 할 일 +3 23.06.03 355 25 12쪽
241 240화 이가 없는 입술 +2 23.06.02 372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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