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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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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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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30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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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2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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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259화 쫓고 쫓기고

DUMMY

259화 쫓고 쫓기고


불타는 수레와 그 밑에 쓰러진 명나라 군졸들의 모습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려주었다.


이 참상을 연출한 장본인, 정친왕 아이신기오로 지르가랑은 무심하게 챙길 여유가 없어 태워버린 양곡이며 건초들을 바라보았다.


“수확은?”

“이만큼 있으면 적어도 추격하면서 부족하진 않을 겁니다.”

“그러면 그만큼 놈들은 굶주리고 느려지겠군.”


미련 없이 말머리를 돌린 지르가랑은 이를 악물었다.


그 고생을 하고 온갖 수모를 감내했는데 결과는 부족한 승리였다.


더 열 받는 건 누구 하나 잘못해서 그런 게 아니라, 상대가 분전했기에 생긴 일이라는 점이었다.


물론 그는 장수로서 이 일을 폄하하거나 할 생각은 없었다.


분명 훌륭한 대처였고, 배울 것이 있던 전투였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니 열이 오른 머리와 마음은 인정과 별개였다.


“연락은?”

“보급부대를 처리하면 좋을 대로 사냥을 시작하라고 했습니다.”

“그게 다인가?”


다소 부족한 전언에 지르가랑은 위협하듯 이를 드러내며 물었다.


이에 대답하던 팔기는 그가 바라마지 않던 말을 입에 담았다.


“한놈도 살려서 보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아주 좋아.”


만족스럽게 웃은 지르가랑은 사방을 둘러보았다.


“사냥을 시작하지.”



***



“이게, 이게 다라고?”

“······그렇습니다.”


부관 하승덕이 하는 말에 홍승주는 말을 잃었다.


급히 군사를, 기병을 끌어모았건만 그 숫자는 처참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았다.


일천.


만 단위로 움직였던 것에 비하면 부족하다 못해 초라할 지경이었다.


아무리 많이 죽고 다쳤다고 하나 기병이 고작 일천 남은 걸 본 순간 홍승주는 다시 한번 절반의 승리 같은 소리는 웃음거리밖에 되지 않음을 절실히 느꼈다.


“장군! 정찰로 보낸 이들이 연기를 올렸습니다!”

“······어느 방향에서냐?”

“후방과 측후방, 심양 쪽과 장성 쪽입니다.”


보고를 들으며 홍승주는 씁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기병을 보낼 필요가 없게 되었구나.”


 심양 쪽에서 올라온 연기는 본래 그들이 있던 장소, 도망친 전장에 남은 물자를 저들이 챙길 만큼 챙긴 후에 불태우는 것일 게 뻔했다.


그리고 장성 쪽에서 올라오는 연기는 두말할 것도 없이 보급 부대가 당하여 그 수레나 청나라 놈들이 미리 챙기지 못한 물자가 타는 것을 거고 말이다.


어려움을 알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생각은 없었기에 홍승주는 무얼 해보기도 전에 일이 어그러진 걸 알고 탄식했다.


“하늘이 내게 너무 가혹하구나.”


고개를 들어 청명하게 맑은 하늘에 말을 던진 홍승주는 돌아오지 않는 말을 기다리듯 바라보았다.


“장군, 이동해야 합니다.”


하승덕이 건넨 말에 홍승주는 현실로 돌아오며 머리를 흔들었다.


“후, 바로 이동한다. 이동에 방해가 되는 건 모두 방기하고 장애물로 만든다.”


장애물로 만든다고 하지만 그럴 만한 물건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이미 한번 다 놓고 도망하였으니 대단한 게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점을 떠올린 홍승주는 잠시 고민하다가 다시 말했다.


“부상병들 가운데 싸우지 못할 자들의 갑옷과 창을 수거해라. 그걸로 장애물을 만들어 시간을 벌 것이다.”

“장군, 부족한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 누군가는 뒤에 남아야 합니다.”


하승덕이 하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그러나 홍승주는 장수들 가운데 누구 하나 미덥지 않았다.


으득


“자, 장군?”


이를 너무 악물어 깨지는 거 같은 큰 소리가 나니 하승덕은 기겁하며 그를 불렀다.


그 대답에 홍승주는 여전히 이를 악물며 말을 이었다.


“지원자를 뽑아라. 장수도 마찬가지다.”

“······지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할 마음이 들게 하면 그만이지. 받아라.”


홍승주는 그렇게 말하며 하승덕에게 서신을 내밀었다.


그걸 보고 불길한 생각이 들었는지 하승덕은 불안한 얼굴로 되물었다.


“이건 뭡니까?”

“황상께 내 죄며 상황을 적은 서신이다. 너는 그걸 가지고 먼저 금주성으로 가라.”


먼저 가라.


이 말에 하승덕은 홍승주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았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되니 차마 입으로는 말하지 못해도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죽고 싶지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말이다.


“대신할 사람을 부르고, 너는 바로 기병 전원을 이끌고 떠나라. 묻는 사람이 있다면 금주에 구원을 청하러 간다고 하고.”

“알겠습니다.”


하승덕은 곧장 서신을 품에 잘 챙겨 넣은 후 홍승주에게 경례를 올렸다.


스스로 소인이라 생각하기에 하승덕은 그 능력이며 인품이며 대인으로 여기는 홍승주를 진심으로 존경했다.


“장군, 아니 대인. 금주성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아니, 말씀하신 대로 돌아오겠습니다.”

“그런 말을 할 시간이 있으면 얼른 떠나게. 그래야 나도 내 수를 쓸 수 있으니 말이야.”

“예, 대인.”


하승덕은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기고는 살아남은 기병을 데리고 떠났다.


그 모습을 보았는지 장수들은 부르지 않았음에도 속속히 홍승주가 있는 곳으로 모여들었다.


“장군, 기병들이 나가는 방향이 이상합니다.”

“저쪽으로는 보급부대가 없습니다.”

“맞습니다. 혹여 적전 도망이 아닌지 우려스럽습니다.”


얼굴에 무엇을 발랐는지 아니면 장인에게 주조 받았은지 어지간히 두껍고 튼튼한 낯짝으로 말하니 홍승주는 열이 한 번 더 오르는 걸 느꼈다.


그러나 그도 잠시, 홍승주는 이런 걸로 실랑이 하는 시간조차 아까워 바로 본론을 꺼냈다.


“금주성에 원군을 청하러 보냈다.”

“오오, 그렇습니까.”

“옳은 일을 하신 겁니다.”

“음음, 맞습니다. 보급부대야 알아서 피했을 것입니다.”


당장에 부월을 휘두를까 싶었던 홍승주는 한 번 더 화를 누르며 말을 이었다.


“이곳에 남아 시간을 끌 병사며 장수가 필요하다. 누가 자원하겠는가?”


말하기 무섭게 침묵이 자리에 내려앉으니 이제는 화가 나기에 앞서서 그럴 줄 알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지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그 지원한 사람은 내 책임지고 패전에 책임이 없음을 황상께 고할 것이다.”


패전에 책임이 없다.


이 말에 몇몇이 솔깃한 얼굴이 되었으나 대다수는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았다.


패전에 책임이 없어짐은 좋은 일이나 남으면 반드시 청나라와 맞서야 할 것이고, 그건 다시 말해 전사자 명단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급격히 올라간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싫다면 모두 함께 죽던가, 아니면 함께 책임을 지던가 하게. 선택을 존중하지.”

“자, 장군. 말씀이 좀 과하십니다.”

“맞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닙니다.”


홍승주가 하는 말을 듣던 장수들이 부끄러움도 없이 발끈하며 나섰다.


그들은 서로 눈을 맞추더니 여차하면 더 강하게 나설 마음을 품었는데, 이는 이곳에 오기 전에 몇몇 장수들이 독단으로 논한 것이었다.


허나 그들의 속셈 따위, 홍승주에게는 뻔히 보였으니 그는 피식 웃으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러고 보니 말하는 것 잊었군. 황상께 올릴 서신을 하승덕, 그 친구에게 맡겨서 금주성으로 보냈네.”


이미 금주성으로 서신이 향했다고 하니 장수들의 얼굴 몇몇에 다급함이 감돌았다.


“금주성에 내가 무사히 퇴각하면 조금 더 덧붙이고 감할 여지가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그대로 올라갈 것이네.”

“어,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이, 이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얼굴을 붉히며 나서니 홍승주는 냉랭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자원하여서 고맙군. 그럼 그대의 용맹, 내 황상께 반드시 전하겠네.”

“예?”


뜬금없는 말에 그는 당황했으나 이내에 주변에서 들리는 말을 들은 순간 그는 알 수 있었다.


“이러한 용맹스러움은 실로 장수의 귀감입니다.”

“맞습니다. 그 용맹함은 물론이고 고결함 또한 칭송받을 일입니다.”

“또한 홍승주 장군을 따르심이 참 대단하니 이 부족한 소인들과는 결이 다르십니다.”

“그렇고 말고요.”


이때다 싶어서 장수들은 하나 같이 그를 칭찬했다.


그들 가운데 가장 열심히 칭찬하는 게 오기 전에 은밀히 뜻을 나누었던 자들이었다.


그걸 본 순간 어느 바보나 얼간이라고 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는 버려졌고, 맡지 않으면 그저 불명예스럽게 죽을 뿐이라는 걸 말이다.


“이, 이건 아니야!”

“지원하겠나, 아니면 불복으로 죽겠나? 그대가 안 하겠다면 다음에는 내가 할 것이다.”


홍승주가 눈을 부라리며 말하니 물러설 곳이 없음을 안 장수는 힘없이 고개를 떨구었다.


‘여기가 내 묫자리구나.’


나서지 않으면 남는 것은 홍승주니, 결국 이곳에 있는 장수 모두가 책임을 면키 어려웠다.


패전에 더해서 총대장을 버려두고 도망하였다는 사실에서 말이다.


그렇게 되면 이미 홍승주가 죽고 살고는 의미가 없다.


적어도 그는 독박 쓰는 걸 거부한 그를 주범으로 몰아 있는 말 없는 말을 낼 테니 죽느니만 못한 꼴이 될 게 뻔했다.


“······남은 가족은 돌보아주실 겁니까?”


머뭇거리던 그는 두 눈을 질끈 감으며 물었다.


그 물음에 홍승주은 얼굴에서 냉랭함을 조금 거두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내 이름을 걸고 그러겠네. 불명예스럽지 않을 것이고, 죽는 날까지 문제가 없을 거야.”

“알겠습니다. 따르겠, 아니 지원하겠습니다.”


장담하는 말에 장수는 눈을 뜨고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에 홍승주는 고개를 끄덕이곤 외쳤다.


“정해졌으니 서둘러라! 모두가 이곳에 뼈를 묻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야 한다!”



***



“제기랄, 제기랄, 제기랄!”


기병들을 몰고 금주성으로 달리기 시작하고 하루가 지났다.


그는 먹는 것도 자는 것도 최소로 하며 기병들과 함께 달렸으니 맡은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정작 하승덕 본인은 자신을 향한 모멸감이며 자괴감에 미칠 거 같았다.


잠시 쪽잠을 청하고 다시 말을 달리니 우습게도 그의 머릿속을 하나의 생각이 가득 채우고 있음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살았다.


“으아아아!!!”


답답함과 수치심에 하승덕은 소리치지 않고는 배길 수가 없었다.


이제 청나라 군대는 자신들을 잡을 수 없었다.


그러자면 먼저 홍승주가 이끈 본대를 다 잡아먹은 다음에나 가능했다.


패하여 후퇴 중이고 그 장비가 전에 비하면 변변치 않다고 하나 그 숫자는 아직도 수만에 이른다.


그런데 그런 이들을 다 죽이고 이만큼 벌어진 자신들을 잡는다니, 그건 만주족이 아니라 만주족 할아비라고 해도 불가능한 일이었다.


처음부터 자신들을 앞질러 매복하고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긴 하나, 홍승주와 함께 지도를 들여다본 하승덕은 그런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적들이 물러간 방향 가운데 금주성 방향은 없었으니 말이다.


“전방에 먼지구름이 보입니다!”

“뭣!?”


그렇게 온갖 인상을 쓰며 말고삐를 단단히 쥐고 있던 하승덕은 옆에서 달리던 병졸의 외침에 기겁하며 고개를 들어 멀리 시선을 주었다.


정말로 앞에서 먼지구름이 일고 있었다.


“······많구나.”


정확한 숫자는 모르나 척 보아도 그들의 수배는 되는 무리인 것은 분명했다.


그런데 기이하게도 하승덕은 한결 마음이 후련해지는 걸 느꼈다.


‘천벌이지, 천벌이야.’


방금까지 하던 짓들이며 마음가짐을 떠올리니 차라리 이게 낫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중 홍승주가 맡긴 일, 서신을 전하는 일을 떠올린 하승덕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전투를 준비해라! 한 명, 한 명이라도 살아서 나가면 아군을 구할 수 있다!”


하승덕은 그렇게 말하며 검을 뽑아 들었다.


그에 병사들 역시 각오를 다진 얼굴로 각각 무기를 들었다.


“어?”

“저, 저 깃발은 설마?”

“전방의 깃발, 깃발을 봐!”


그러던 중 눈이 좋은 몇몇 병사들이 놀라서 외치니 하승덕은 그들을 따라서 깃발을 보려고 두 눈을 가늘게 했다.


이윽고 그 깃발에 적힌 글자를 보니 하승덕은 크게 놀랐다.


“아, 아니 저 깃발이 왜 여기에?”


익숙한 명나라 깃발에 적힌 글자는 조(祖).


금주성을 지키는 장수, 조대수가 이끄는 군대가 그들 바로 앞에 있었다.


작가의말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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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0 269화 우선할 사람 +2 23.07.01 339 19 11쪽
269 268화 부족한 숫자 +5 23.06.30 356 25 13쪽
268 267화 계승과 충성 +1 23.06.29 357 23 15쪽
267 266화 다음가는 자 +4 23.06.28 344 26 14쪽
266 265화 하늘의 부름은 피할 수 없다 +1 23.06.27 350 17 13쪽
265 264화 사랑을 크기로 표현하면 23.06.26 341 21 12쪽
264 263화 알맞은 일 +2 23.06.25 339 20 11쪽
263 262화 소식을 전하는 순서 +4 23.06.24 370 22 15쪽
262 261화 두 전령 +2 23.06.23 356 21 13쪽
261 260화 보따리 뺏을 궁리 +5 23.06.22 341 23 17쪽
» 259화 쫓고 쫓기고 +1 23.06.21 340 20 12쪽
259 258화 누구도 바라지 않은 결과 +3 23.06.20 350 22 13쪽
258 257화 이기기 위한 손실 +4 23.06.19 367 23 16쪽
257 256화 정해진 선택 +1 23.06.18 331 22 13쪽
256 255화 죽음의 무게는 같지 않다 +2 23.06.17 337 21 14쪽
255 254화 달콤한 제안 +1 23.06.16 344 17 12쪽
254 253화 보이는 것과 의도는 다르기 십상이다 +2 23.06.15 345 20 13쪽
253 252화 도이 +2 23.06.14 357 24 12쪽
252 251화 거짓은 항상 커진다 +2 23.06.13 348 18 12쪽
251 250화 은밀한 일 +2 23.06.12 340 19 12쪽
250 249화 오래전에 했던 일 23.06.11 343 19 12쪽
249 248화 다가온 구실 +1 23.06.10 340 16 13쪽
248 247화 바다를 향한다 +3 23.06.09 367 19 11쪽
247 246화 소년의 마음은 +3 23.06.08 357 24 13쪽
246 245화 윗사람과 거리는 적당한 게 좋다 +2 23.06.07 345 23 12쪽
245 244화 어린 친왕 +2 23.06.06 383 21 12쪽
244 243화 오고 감은 같아야 한다 +4 23.06.05 366 25 13쪽
243 242화 왕의 옆, 신하의 위 +2 23.06.04 361 21 13쪽
242 241화 오래가지 못 할 일 +3 23.06.03 355 25 12쪽
241 240화 이가 없는 입술 +2 23.06.02 373 22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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