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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님의 서재입니다.

도망치지 못한 왕은 주나라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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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빛시계
작품등록일 :
2022.10.28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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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7.0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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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7.0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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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269화 우선할 사람

DUMMY

269화 우선할 사람


“조선의 세자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명나라 병부시랑 진신갑이라고 합니다.”

“······반갑습니다. 조선의 세자로 이왕이라고 합니다.”


소현세자는 자신의 눈앞에 있는 명나라 사람을 보며 기이한 기분이 들었다.


명나라 사람과 만난 경험이 많은 것은 아니나 전해 들은 것 정도는 있으며, 전에 세자책봉을 위한다고 왔던 이들이 한 짓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무례하고, 오만하고, 탐욕스럽다.


이것이 소현세자가 알고 있는 명나라, 특히나 사절이라는 자들의 모습이었다.


그런 소현세자가 보기에 지금 진신갑의 언행은 정말 그가 명나라 사람인지 한번 의심하게 하니, 이처럼 정중하고 간절한 눈빛으로 다가오는 명나라 사람은 처음이었다.


“세자저하께서 장부다우시며 행동거지가 품위가 넘치시니 참으로 조선이라는 나라는 홍복이라 하겠습니다.”


여기에 아첨까지 더해지니 순간 소현세자는 자신이 명나라 사람이고 진신갑이 조선 사람인가 착각이 들 정도였다.


“명나라와 조선은 이웃으로서 오래도록 좋은 관계를 맺은 막역한 사이가 아닙니까.”

“그렇지요.”


딱히 부정할 말은 아니어 수긍하니 진신갑은 그걸 기다렸다는 듯이 손짓했다.


“좋은 이웃을 보며 어찌 빈손으로 오겠습니까. 작은 선물을 드리고자 합니다.”


진신갑은 그렇게 말하며 뒤에 손짓하니 기다리고 있던 명나라 무관 둘이 몸을 움직여서 묵직한 상자를 소현세자 앞으로 끌어왔다.


사전에 이야기하여 둔 것인지 두 사람은 능숙하게 뚜껑을 열어 안에 있는 내용물을 소현세자에게 보이니 그 안에는 은금이며 비단과 같은 것들이 가득 들어 있었다.


작은 선물이라고 하기에는 그 양이 적지 않으니 소현세자는 물끄러미 내용물을 보다가 다시 진신갑에게 시선을 주었다.


“이웃에게 인사 삼아 주는 것이라고 하기에는 과하군요.”

“친하게 지내고 싶은 마음을 담은 것뿐입니다.”


진신갑은 그렇게 말하며 눈치를 살폈지만 소현세자는 그저 더 말하라는 얼굴로 담담하게 있을 뿐이었다.


이에 진신갑은 가리지 않고 몸을 엎드렸다.


“저하, 부디 옛정을 생각하여 명나라를 도와주십쇼.”

“시랑 대인, 이러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내가 대국인 명에 무슨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말입니까?”


소현세자가 하는 말을 들었으나 진신갑은 요지부동이었다.


아니, 엎드리는 것으로 부족하다고 하듯 머리를 바닥에 댄 그는 그대로 말을 이었다.


“실례가 될 수 있음을 무릅쓰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우리 명은 조선에 화친하는 방법을 배우고자 합니다.”

“화친하는 방법?”

“그렇습니다. 그리고 청나라 사람을 대하며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좋은지, 사람을 어떻게 대할지도 배우고 싶습니다.”

“과연. 말씀은 알겠습니다.”


조선이 청나라와 화친하여 잘살고 있으니 자신들도 그러고 싶다는 뜻임을 모를 정도로 소현세자는 어리석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진신갑의 말이며 태도가 참으로 직설적이었으니 모름은 사실상 모르는 척일 뿐이었다.


“지난날 이래 명나라는 청나라와 수없이 싸웠습니다. 그 일들을 잘못되었다고 여기진 않으나, 이제는 지쳤습니다. 근래에는 북경 주변을 침탈당하기도 하니 이제는 다른 방식으로 평화를 찾고자 합니다.”


말을 시작할 때는 웃음과 공손함이나 끝날 무렵에는 아련함과 불쌍함을 얼굴에 깃들게 하니 경극이든 창이든 하면 참 잘할 거 같다는 생각이 소현세자의 머리를 스쳤다.


“그리하여 이제 명은 청과 화친을 맺고자 하는데, 저들을 대함에 있어서 어떤 말을 내며 어떤 말을 가림이 좋은지 교류가 긴 조선이라면 상세하리라 생각합니다.”

“상세하진 않으나 아는 것이 없지는 않습니다.”

“작은 것이라도 좋습니다. 부디 도와주십쇼.”


소현세자는 가만히 엎드린 진신갑을 보며 처음에 느꼈던 기이함은 이제 멀리 달아나버린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기이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다.


반대로 너무 기이하여 현실감이 사라졌기 때문이라 함이 더 옳았다.


“민망하고 부끄러우나 이리 청하겠습니다. 옛정에 호소하니, 이 부족한 사람이 부디 청나라에서 무사히 목적을 마치고 살아서 돌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쇼.”


진신갑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들은 소현세자는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를 도울 말이 없지는 않았다.


그 역시 지금 시국이 어수선함을 생각하여 아우인 봉림대군과 논하고 그 후에는 외조 사람들이며 세자시강원 사람들을 불러 모아 대책을 논했다.


그렇게 해서 나온 말들은 그들만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이들도 얼마간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니, 소현세자가 생각기에 그가 돕고자 하면 눈앞에 있는 진신갑을 돕기 위해 낼 말이 얼마든지 있었다.


그러나 그 도움을 주고자 하니 영 껄끄럽기도 하였는데, 딱히 그를 싫어하거나 명나라에 대한 반감이나 실망감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 나서서 돕는 일이 조선에 득이 되는 일인지 확신이 서지 않음이요, 과연 말해주는 게 정말 명나라에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 때문이었다.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이 작은 도움이 저들을 나중에 부족한 숫자에 더하게 될지도 모르지 않을까.’


선의로 도와주면 선의로 돌아올 것이니, 실속이 아닌 겉모습이라면 양보하여 줄지도 모른다는 작은 기대감이 소현세자의 마음속을 파고들었다.


‘아니, 아니지. 그렇게 하여 나중에 득을 얻으면 그것은 결국 선의도 아니고 양보도 아니다. 저들이 모르게 빚을 지우고 그 빛이 있음을 강요하고 억지로 뺏는 것이지.;


그런 것은 강탈이라고 불렀음 불렀지 양보라고 하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 생각과 미련을 털어내니 문득 다른 생각이 들었다.


강탈이 아닌 발판 마련 정도라면 이자, 진신갑을 통해서도 당장 이룰 수 있으리란 생각이었다.


“도와드리겠습니다. 다만 저것은 필요 없으니 도로 가져가십쇼.”

“예?”


뇌물 삼아서 가져온 것은 필요 없다고 하니 진신갑은 어리둥절하여 고개만 들었다.


그에 소현세자는 사람 좋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주변이 안정하면 그것은 곧 조선의, 천하의 안녕이 됩니다. 그런 일에 어찌 조력을 아끼겠습니까? 하물며 명나라는 예전에 은혜를 베푼 나라니 전처럼 강성하여지면 다시금 조선을 도울 거라 믿습니다.”

“지, 진심이십, 큼큼. 진심으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감사한다고는 하지만 진신갑의 얼굴에는 미심쩍은 의심이 가시지 않으니, 소현세자는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덧붙였다.


“대신이라고는 무엇하나 명나라에서 조선을 위해 작은 일 하나만 보장해주셨으면 합니다.”


은금 대신 다른 것을 대가로 요구하니 그제야 진신갑은 이해할 수 있다는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그 모습을 보며 소현세자는 가벼이 말을 그에게 건넸다.


“조선 사람이 어디서 가건 명나라 땅을 돌아다니는 일을 보장해주시길 바랍니다.”



***



“통행 보증이라. 기이한 걸 요구하나 당장 은금이 하나라도 아쉬운 내게는 오히려 낫구나.”


소현세자 앞을 물러 나와서 그 제안을 입에 담은 진신갑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만한 요구라면 대단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고마워서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니, 진신갑은 그가 나온 소현세자의 거처를 다시금 돌아보았다.


명나라에 돌아가서 둘러대기도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저 조선이 명나라를 흠모하여 통하기를 원하니 오가는 일을 허락받고자 한다고 고하면 끝날 일이었다.


진신갑은 이러한 요청을 황상이 거부할 거라 생각지 않았다.


‘아니, 아니지. 요청이 아니야. 화친에 더해 내가 세운 또 다른 외교적 성과지.’


내몰리듯이 청나라에 화친 사절로 왔다.


아무도 그에게 기대하지 않고, 이 화친을 해낸다고 한들 그의 공적이라고 여기거나 대단한 일이라고 여기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번국 하나를 되찾음은 이야기가 아주 다르다.


그것도 청나라 후방을 찌를 수 있는 번국이다.


물론 그는 조선이 그렇게 움직이게 할 힘이 없다.


그가 개인적으로 보장할 무언가는 고작해야 은금을 늘리는 게 다였다.


그리고 명나라는 그 은금 한 상자를 내기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해야 할 정도로 형편이 어렵다.


그러니 말 몇이며 당장 재정에 영향이 없는 방법으로 조선을 되찾을 방법이 있다고 하면 조정에서 그 누구도 진신갑을 괄시하지 못할 터였다.


아니, 괄시하지 못하는 걸 넘어서 다른 방향으로 막힌 출셋길을 다시 열 수 있을지도 모른다.


‘흠흠, 병부시랑도 좋지만 예부시랑도 나쁘지 않지. 아니, 상서라고 못할 건 없지. 지금 예부에서 하는 제대로 하는 일이 무엇이 있다고.’


전쟁 중이고 사방에 조공하러 올 이들도 없으니 예부의 위상은 조정 가운데서 그리 높지 않았다.


그러나 썩어도 준치라고, 육부 가운데 하나이니 그곳에서 머리가 된다면 능력 없는 병부시랑 소리 듣는 것보다야 훨씬 낫겠다 싶었다.


“시랑 어르신, 어느 쪽으로 갈까요?”


생각하며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바깥으로 나온 진신갑을 향해 호위하는 이들 가운데 하나가 나서서 물었다.


이에 진신갑은 근엄하게 표정을 바꾸며 입을 열었다.


“청나라 황상을 뵈려면 이틀이나 남았다. 허니 그동안 여러 곳을 돌아본다고 하지 않았느냐.”

“그, 그건 압니다. 다만 그······.”


말끝을 흐린 사내는 눈치를 보다가 조심스럽게 말을 덧붙였다.


“그, 정말 그렇게 찾아가도 되는 겁니까?”


사내는 호위 무관들 가운데 대표격으로, 전에 타타라 이투에게 진신갑이 청나라 내부 사정을 들을 때 곁에서 같이 들었다.


그런 그가 생각기에 다음에 찾아갈 사람은 이 다음이나 다다음이 맞는 것이 아닌가 싶었다.


“왜, 네 생각에는 예친왕이나 영복궁 장비를 찾아가는 게 나아보이냐?”

“······부족한 소인이 생각하기에는 그렇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질책이 떨어질까 움츠리나 의외로 진신갑은 그를 질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해한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니, 무관은 당황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미래의 2인자로 확정된 친왕, 미래의 황제가 될 자의 어머니. 분명 중요한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건 결국 미래다.”


미래.


확정되었다고 한들 그 미래가 오기까지 현실은 녹록하지 않음을 진신갑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숭정제 역시 그러했으니까 말이다.


‘황제가 확고히 정한 후계자의 자리를 구천세 놈은 흔들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다. 그리고 거의 성공할 뻔했지.’


아연할 정도 권력욕을 보인 위충현을 떠올린 진신갑은 당장은 당장이고 미래는 미래임을 잘 알았다.


그리고 그 당장과 미래를 결정지은 사람이 누구인지도 말이다.


이러한 일들을 잘 알고 있는 진신갑이 보기에 가장 먼저 안면을 트고 인사해야 하는 건 예친왕도 아니고 영복궁 장비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다른 친왕들도 아니며 타타라 잉굴다이와 같은 유력한 대신도 아니었다.


“지금은 이 순위가 옳으니 그대로 움직여라. 그 후에나 예친왕에게, 그리고 영복궁에 찾아뵐 것이다.”

“알겠습니다. 허면 길을 이르신 대로 청나라 중궁께서 계신 곳으로 향하겠습니다.”


작가의말

[첨언 - 위충현의 숭정제 계승 저지 시도]

구천구백세로 유명한 환관 위충현은 권력에 대한 강렬한 집착을 보였습니다.

내려오면 죽음이 확실하다고 할 정도로 온갖 짓을 벌였기 때문이니 당연하나, 그 시도는 동아시아에서 보기에서는 터무니 없는 일이었습니다.

바로 당시 태어나지도 않은 천계제의 아이를 황제로 옹립하려고 한 일이었습니다.

유럽과 같은 경우는 이런 게 성공한 사례가 있다고 하나 중국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고, 무엇보다도 천계제의 황후인 효애철황후 장언이 위충현을 극도로 싫어해 견제하여 실패로 끝나게 되었습니다.

다만 효애철황후 장언의 견제가 없었다면 성공했을 수도 있다고 하니 그 위험함은 이루말할 수 없었을 정도며, 숭정제는 이후 그녀를 고맙게 여겨 황태후로서 대우했다고 합니다.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땅늘보님, kkatnip님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후원하신 기대에 응해 더욱 좋은 글을 쓰도록 정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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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2 271화 시기에 맞지 않는 초청 +1 23.07.03 336 23 13쪽
271 270화 더 잘 싸울 수 있는 장소 +2 23.07.02 353 21 14쪽
» 269화 우선할 사람 +2 23.07.01 341 19 11쪽
269 268화 부족한 숫자 +5 23.06.30 358 25 13쪽
268 267화 계승과 충성 +1 23.06.29 359 23 15쪽
267 266화 다음가는 자 +4 23.06.28 347 26 14쪽
266 265화 하늘의 부름은 피할 수 없다 +1 23.06.27 353 17 13쪽
265 264화 사랑을 크기로 표현하면 23.06.26 343 21 12쪽
264 263화 알맞은 일 +2 23.06.25 342 20 11쪽
263 262화 소식을 전하는 순서 +4 23.06.24 371 22 15쪽
262 261화 두 전령 +2 23.06.23 360 21 13쪽
261 260화 보따리 뺏을 궁리 +5 23.06.22 342 23 17쪽
260 259화 쫓고 쫓기고 +1 23.06.21 341 20 12쪽
259 258화 누구도 바라지 않은 결과 +3 23.06.20 352 22 13쪽
258 257화 이기기 위한 손실 +4 23.06.19 368 23 16쪽
257 256화 정해진 선택 +1 23.06.18 332 22 13쪽
256 255화 죽음의 무게는 같지 않다 +2 23.06.17 339 21 14쪽
255 254화 달콤한 제안 +1 23.06.16 346 17 12쪽
254 253화 보이는 것과 의도는 다르기 십상이다 +2 23.06.15 346 20 13쪽
253 252화 도이 +2 23.06.14 358 24 12쪽
252 251화 거짓은 항상 커진다 +2 23.06.13 350 18 12쪽
251 250화 은밀한 일 +2 23.06.12 341 19 12쪽
250 249화 오래전에 했던 일 23.06.11 344 19 12쪽
249 248화 다가온 구실 +1 23.06.10 341 16 13쪽
248 247화 바다를 향한다 +3 23.06.09 368 19 11쪽
247 246화 소년의 마음은 +3 23.06.08 359 24 13쪽
246 245화 윗사람과 거리는 적당한 게 좋다 +2 23.06.07 346 23 12쪽
245 244화 어린 친왕 +2 23.06.06 385 21 12쪽
244 243화 오고 감은 같아야 한다 +4 23.06.05 367 25 13쪽
243 242화 왕의 옆, 신하의 위 +2 23.06.04 364 2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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