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장 보복과 복수 그리고 이별
병실에 들어선 이들은 모두 셋이었는데 하나같이 깍두기 머리를 하고 있었다. 거기에 190은 되어 보이는 키와 덩치 역시 장난이 아니다. 그들로 인해 병실이 비좁게 되었다.
“허억!”
그들을 본 윤수현이 헛숨을 크게 들이켰다. 놀란 눈에는 공포가 가득했는데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반쯤 벌려진 그녀의 입에서 침이 흘렀다.
“아아아악!”
비명을 지른 윤수현이 무릎을 끌어당기더니 고개를 처박았다. 힘없이 딸려 온 다리가 그녀의 몸부림에 따라 정신없이 덜렁거렸다.
느닷없이 벌어진 상황이다.
“엄마! 엄마! 왜 그래요! 엄마!”
하린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연신 소리쳤다.
“아앙! 엄마아!”
“어머, 윤수현씨?”
급히 뛰어 들어온 간호사 황종미가 다급하게 윤수현을 불렀다.
“선생님! 지금 윤수현 환자가…….”
당황한 황종미가 서둘러 연락을 취했다.
담당의가 달려오고 진정제와 수면제를 투여하면서 윤선희는 겨우 잠이 들었다.
“엄마…….”
한참을 훌쩍거리던 하린의 눈이 어느새 감기고 머리가 침대위로 떨어졌다.
꿈을 꾸었다.
지난번과 같은 꿈이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분명히 꿈인데도 불구하고 머리가 지끈거렸다.
수많은 구결들이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콰앙!
머릿속에서 벼락이 쳤다.
하린의 눈은 깊었다.
‘어머니…….’
가만히 어머니를 불러본다.
절로 눈물이 흘렀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제가 고쳐드릴게요.’
하린이 안타까운 눈으로 어머니를 보았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것도 아니다. 그저 매일 조금씩 치료를 해야 하며 그 시간이 꽤 오래 걸린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세상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사실 거예요. 제가, 이 아들이 그렇게 해드릴게요.”
하린이 나직한 소리로 다짐했다.
어느덧 늦은 밤이다.
병실에 있는 환자는 물론 보호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세상모르고 잠에 빠져들었다.
어머니의 상태를 알아보기 위해서 수혈을 짚었기 때문이다.
간호사들도 아침까지는 찾아오지 않을 터였다.
하린은 먼저 어머니의 이마에 손을 올렸다.
‘깍두기에 대한 공포부터 처리하는 거야.’
기운이 손을 통해 어머니에게로 스며들었다.
하린은 어머니의 뇌를 눈으로 보듯이 느끼고 있었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응? 여긴 왜 이렇지?’
하린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다른 곳은 모두 옅은 색깔이었는데 그곳만 유독 진했던 것이다.
“아아…….”
기운을 멈춘 채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하린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래, 여기다!”
마침내 탄성이 터져 나왔다.
하린은 의학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이 없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부분이 문제라는 것쯤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반쪽짜리라고해도 신선 취급을 받는 몸인데 이거 하나 해결 못할까…….’
내심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을 세우며 손상된 것으로 보이는 부분에 기운을 집중시켰다.
[아파, 너무 아파…….]
손상된 뇌세포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결코 환청도 아니고 그렇다고 상상은 더더욱 아니다.
‘많이 아픈가 보구나.’
[아파, 너무 아파…….]
하린은 기운에 의지를 불어넣을 뿐만 아니라 감정까지 담을 수도 있다.
그것을 통해서 뇌세포와 교감을 할 수 있고 이렇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해 주면 아프지 않겠니?]
하린의 걱정하는 마음이 손상된 뇌세포와 접촉한 기운에 실렸다.
뇌세포는 곧바로 대답했다.
[너무 아파……. 난 지금 열이 나고 뜨거워. 나를 차갑게 해 줘. 열을 식혀 줘.]
[혹시 친구들하고 색깔이 같아지면 되니?]
[으응. 그렇게 해 줘. 아파, 너무 아파…….]
손상된 뇌세포는 계속 아프다는 느낌을 보내왔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해야 아픔이 가시게 되는지를 알려줬다.
‘냉기를 주입시켜야 되겠구나.’
하린은 곧바로 기운에 냉기를 실었다.
허나 냉기의 강도가 너무 높으면 뇌세포가 얼면서 괴사할 수도 있다.
그것을 염려한 하린은 적당한 농도부터 알아내기 위해 냉기를 아주 약하게 투입했다.
‘상태를 봐 가면서 조금씩 높여가야 해.’
[아파, 너무 아파…….]
뇌세포는 여전히 고통스러워했다.
‘으음, 조금 더 높이자.’
하린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다.
더구나 뇌라는 것은 조금만 이상이 생긴다고 해도 큰 문제가 되는 조직이다.
냉기의 농도는 갈수록 짙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살얼음이 얼 정도가 되었다.
[아아 시원해…….]
뇌세포로부터 이제까지와는 다른 반응이 나왔다.
이마에 맺혔던 땀방울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허나 하린은 냉기의 투입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지금의 기운을 유지하며 세포의 색깔이 변하는 것을 지켜봐야만 하는 것이다.
시간이 흘렀다.
아무리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지만 주변의 상황은 항상 하린의 감각 안에 들어있다.
그리고 그런 감각에 간호사의 움직임이 걸렸다.
‘벌써 시간이?’
뇌세포의 색깔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겠지.’
하린은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기운을 거둔 하린은 침대에 머리를 묻었다.
간호사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머, 이러고 잠이 들었나 보네?”
안쓰럽게 여긴 황종미가 하린을 안아 보호자 침대에 눕히더니 담요를 덮어 주었다.
윤수현 곁에는 하린이 있었다.
유치원에 가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함께였다.
하린은 밤마다 치료를 시도했다.
그러한 노력 덕분인지 보름이 지나면서 뇌세포의 색깔이 미미한 변화를 보였다.
그리고 두 달 만에 뇌세포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다리의 치료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반선의 경지에 이른 하린이지만 손상된 뇌세포의 치료는 그만큼 어려웠다.
“엄마, 이제 집에 갈 수 있는 거야?”
하린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으응, 의사선생님이 집에 가도 된다고 하셨다.”
윤수현이 웃으며 대답했다.
“그럼 병원에 안 와도 된대?”
잔뜩 기대를 품은 물음이다.
“그건 아니야. 일주일 한 번씩은 병원에 와서 치료를 받아야 해.”
“내가 엄마 다리 마사지 해 줄 거야.”
“그래, 우리 하린이가 마사지 해주면 엄마가 금방 걸을 수 있겠다.”
윤수현이 하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웃음 속에 처연함이 가득하다.
다시는 걸을 수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까닭이다.
‘어머니……. 이제 다리도 나을 거예요. 그러면 마음껏 걸어 다니며 그림도 그리고 노래 부르세요.’
하린은 머리에 닿은 어머니의 손길에서 한없는 사랑을 느끼며 속으로 얘기했다.
현대의학으로도 포기한 어머니의 다리지만 하린은 기필코 고쳐낼 것이다.
아직은 갈 길이 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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