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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일반소설

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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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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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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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1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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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8쪽

10장-기원祈願 (8)

DUMMY

"새벽의 창이여!"

냉혹한 칼날이 리아의 피를 머금기 직전, 천장을 꿰뚫었던 것과 똑같은 싸늘한 빛조각이 리그람의 마다르를 거칠게 밀쳐냈다.

순간적으로 무게를 실었던 팔이 흔들리며 리그람의 몸이 크게 흔들렷다.

중심을 잃은 리그람은 반사적으로 자세를 바로잡기 위해 리아에게서 눈을 떼었다.

천금같은 기회였다.

리아는 마지막 힘을 짜내 상체를 튕겨올렸다.

그리고 용수철처럼 일으킨 몸으로 중심을 되찾으려는 리그람을 거칠게 떠밀었다.

"크윽!"

이미 위태로운 자세였던 리그람은 완전히 균형을 잃고 쓰러지기 시작했다.

리그람은 반사적으로 손을 뻗어 무언가를 붙들려 했다.

그의 손에 머리채를 잡힌 채였던 리아도 그와 마찬가지로 쓰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아에게 손을 뗀 순간, 자유로워진 리아는 딱 걸렸다는 듯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한 발을 뒤로 강하게 당겼다.

"영장은 돌려받겠어. 고마워!"

피잉!

팽팽하게 당겨지는 실이 예리하게 허공을 찢는 소리가 날카롭게 울렸다.

그 소리는 리그람의 손에서부터 리아의 발목까지 이어진,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가느다란 실의 울음소리였다.

처음 리아를 끌어당길 때 휘감긴 실을 팽팽하게 당긴 리아는 교묘하게 실의 방향을 꺾어 리그람의 오른손에 끼워져있던 본체, 카르나의 사슬을 힘껏 잡아당겼다.

거의 제 몸처럼 자유자재로 다루던 카르나의 사슬이다.

실로 연결된 반지를 잡아채는 것 정도야, 묘기라고도 할 수 없는 간단한 손장난으로 충분했다.

허공을 움켜쥐며 완전히 열린 리그람의 손가락에서 웃음이 나올 정도로 간단히 반지를 빼낸 리아는 기다렸다는 듯 손을 높이 들어올렸다.

거짓말처럼, 하늘 높이 날아올랐던 반지가 그녀의 손가락으로 부드럽게 떨어졌다.

영장을 되찾은 리아는 곧장 은사를 펼쳐 쓰러지려는 자신의 몸을 떠받쳤다.

바닥에 코를 박기 직전인 아슬아슬한 상황이었지만, 리그람에게서 반지를 빼앗은 것은 바로 그만큼 극히 짧은 한 순간의 일이었다.

물론 코 앞에서 영장을 빼앗긴 리그람의 분노는 더 말할 것도 없다.

리그람은 참격 주문을 칼날에 불어넣으며 자야민을 크게 휘둘렀다.

"슈니엘!"

하지만 그 순간, 눈을 똑바로 뜰 수 없을 정도의 빛이 리그람의 얼굴 앞에서 폭발했다.

리아는 큰 소리를 내어 웃고싶은 기분을 겨우 억누르며 삐걱이는 몸을 튕겨 자야민의 칼날을 피했다.

쉬이익!

머리칼 끝을 스치며 빗나간 주문이 단단한 바닥을 간단히 베어버리는 위험천만한 순간이었지만, 오히려 그 것이 더욱 유쾌하다는 듯한 경쾌한 목소리가 저절로 흘러나왔다.

"늦었잖아, 티엘!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아?"

"늦은 만큼 벌충할게요. 고생하셨어요."

어느새 정신을 차린 티엘이 별의 서에 손을 짚은 채 씁쓸하게 웃었다.

슈니엘의 속성은 탐색.

빛의 속성에 속하는 마력이라고는 하나, 오로지 주위를 읽어내는 것에 특화된 마력이기에 강한 빛을 장시간 유지하는 것은 조금 버거웠다.

그리 오래지 않아 빛이 사라지고, 리그람도 시력을 회복했다.

이를 부득부득 갈던 리그람은 마다르를 낀 왼손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삐걱이고, 잘 움직이지 않는다.

조금 전 티엘의 아스트라가 마다르를 쳐낸 순간 생성된 얼음이 정교하게 맞물려있던 금속 사이사이로 끼어들어 있었다.

관절부위가 얼어붙어 제대로 움직일 도리가 없었다.

주문으로 구현한 얼음은 체온 정도로는 그리 쉽게 녹지 않았다.

단검이나 방패 대용으로는 쓸 수 있어도, 더이상 정교한 움직임은 무리다.

왼손을 축 늘어뜨린 리그람은 신경질적으로 자야민을 휘둘러 애먼 땅을 후려쳤다.

괜히 멀쩡한 돌에 흠집을 만들어놓은 그는 분노를 힘겹게 억누르는 목소리로 겨우 입술을 뗐다.

"어째서 하필이면 지금 눈을 뜬 거지. 겨우 몇 초만 늦어졌더라도 확실히 끝낼 수 있었는데."

"잠들어있을 수 없는 일이 있으니까요."

티엘은 싸늘한 얼굴로 등 뒤를 가리켰다.

물론 그 곳에 다른 누군가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리아가 만들어낸 바위기둥 사이로 희미한 노랫소리가 흐르고 있을 뿐.

'노래?'

그제서야 리아와 리그람은 처음 결계가 깨질 때부터 들렸던 노랫소리가 아직까지 줄곧 이어지고 있음을 깨달았다.


살아서는 건널 수 없는 강,

앞에서는 거느릴 온기가 있으며

넘어서는 받드릴 안식이 있으매


그리는 이여, 지새는 이여,

이곳으로 돌아와 춤추라.

햇살아래 돌아와 춤추라.


산 자는 이 곳에, 그침없이 춤을 추어라.

죽은 자는 그 땅에, 영원한 안식을 얻으라.


"산 자는 이 곳에······, 그침없이 춤을 추어라. 죽은 자는 그 땅에······, 영원한 안식을 얻으라······."

메마른 목소리가 길게 여운을 남기는 장송곡의 끝을 되풀이했다.

처음에는 텅텅 비어 허무하게만 느껴졌던 그 목소리는, 그러나 끝 부분에 이르러서는 해묵은 원한을 씹어삼키는 듯 무겁고 탁한 음색으로 끓어오르고 있었다.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생명의 수레바퀴는 아이넬라 유르마인, '재정자(裁定者)'의 이름으로도 칭해지는 시초여신이 매듭지은 규칙이다.

할 수 있는 것에 한계를 긋는 아이넬라의 이름과, 그 이름으로 새겨진 법칙을 자아내는 노래를, 외도를 걸어서라도 한계를 벗으려 했던 자가 곱게 받아들일 수 있을리 없었다.

이를 바득바득 가는 리그람에게서 잠시 눈을 뗀 티엘은 말없이 벽을 향해 활을 들어올렸다.

원래 가지고 있던 활은 디에렌 칼레의 마법사들에게 빼앗겨 아직 되찾지 못했다.

때문에 티엘이 들고있는 활은 얼음으로 활몸을 만들고 머리카락을 꼬아 시위를 연결한 급조품이었다.

그나마 얼음 사이로 머리카락이 거미줄처럼 박혀 단숨에 부서지는 것은 막아주고 있었지만 그 것도 임시방편일 뿐이다.

겨우 한 발의 아스트라만으로도 활 몸 전체가 균열을 품은 채 부러지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티엘은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그런 활을 당겼다.

하지만 아직 리그람 외에도 제 자리에 서 있는 마법사들은 몇 남아 있었다.

그들은 제각기 자신의 영장을 움켜쥐며 다시 한 번 티엘을 제압하기 위해 마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천장에 뚫린 구멍을 통해, 날개 흰 용이 모습을 드러낼 때 까지는.

"칼라가스······. 시원의 하얀 용······?"

털썩, 쓰러지듯 주저앉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왔지만, 감히 눈을 돌리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계약자와 떨어진 상태에서 지나치게 힘을 쓴 탓인지, 칼라가스의 날개짓은 평소보다 약하고, 지쳐 있었다.

티엘 역시 활을 잃고, 독에 내상까지 입으며 서 있는 것이 고작일 정도로 만신창이인 상태였다.

하지만 그런 티엘이, 그런 칼라가스를 팔에 앉히는 순간, 그 모든 약점들은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 곳에 서 있는 것은 세계의 종말이 다가왔을 때 미처 스러지지 못한 것들을 거두어간다는 최후의 인도자, 설원의 새벽이었다.

"티엘. 이거 써."

그 때 갑자기 리아가 크고 검은 활 하나를 티엘에게 던졌다.

가까운 바위기둥을 몇 개 없애버리며, 그 심지로 들어있던 금속을 뽑아 활의 형태로 엮은 것이었다.

그 것으로 리아의 마력도 다했는지 파도치듯 유동적으로 움직이던 바위기둥들이 서서히 움직임을 멈춰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리아는 오히려 시원하다는 듯, 털썩 주저앉으면서도 의미심장하게 웃었다.

"나티의 마력도 조금 섞었어. 서로 튕겨내진 않을테니, 칼리 마력도 두어번 정도는 견딜거야. 저 자식들,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버려."

"맡겨주세요."

티엘은 대답대신 방금 뚫어놓은 구멍을 통해 가까스로 다시 만난 칼라가스를 향해 팔을 들어올렸다.

아직 리그람의 독은 몸 안을 돌고 있었다.

마력을 쓰는 것은 곧 티엘 자신의 목숨을 깎아내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나셀의 노랫소리가 독을 억누르는 것인지, 아니면 그 노래에 이끌린 혼령들이 하나의 기적을 일으키는 것인지, 적어도 지금은 활을 겨눌 정도로는 마력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시원의 용은 길게 울며 다시 티엘의 곁으로 날아올랐다.

티엘과 칼라가스의 호흡이 하나로 겹쳐지며, 다시 한 번 싸늘한 빛을 화살로 엮어내기 시작했다.

티엘이 태세를 정비하는 사이 떨어뜨렸던 자야민을 다시 회수한 리그람은 더이상 움직이지 않는 바위기둥을 몇 개쯤 베어버린 뒤 천천히 돌아섰다.

더이상 스펠글로스의 수호는 붙어있지 않지만, 그래도 다른 동료들이 정도의 기둥을 부수고 합류하자면 지나치게 오래 걸린다.

사실상 전투 불능이 된 리아를 제외하면 적은 티엘 한 명.

하지만 그 한 명은 어떤 의미에서는 리아 이상으로 까다로운 적이다.

어쩌다 이렇게까지 틀어진 것일까.

허탈하게 웃음을 흘리던 리그람은 다시 마력을 끌어모아 마령의 이름을 불렀다.

"요그마이아."

조용한 호명에 이끌려 검은 깃털뭉치가 다시 리그람의 옆에 섰다.

승산은 낮지 않다.

성좌의 주인이라고 해도 칼라가스는 아직 성체도 아니며, 별의 서가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용의 숨결을 두 번 이상 담을 수는 없을 터.

가장 주의해야 할 '숨결'은 이미 모두 소진했다.

그에 비하면 리그람은 자야민의 움직임이 조금 둔해지고 마력을 조금 소모했을 뿐 만전의 상태다.

"리그람. 투항해주시면 안될까요."

그러나 티엘은, 리그람으로서는 결코 들을 리 없으리라 생각했던 말을 조용히 꺼냈다.

"이제와서 돌아가기엔 늦었어. 이미 서로 칼을 겨눴다면 물릴 수는 없는거야."

자비는 강자가 베풀 수 있는 특권이다.

지금의 티엘이 꺼낼 수 있는 말이 아니다.

리그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끝까지 당신을 믿으려 했어요. 당신이 그럴 리 없다고, 그렇게 믿고 싶었어요."

"나 역시, 너희들과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다는건 인정하지. 하지만 내가 바란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어. 그걸로는 부족했어. 이제는 전부 손에서 놓아버렸지만."

리그람은 꼴이 우습다는듯 큭큭 웃은 뒤 다시 자세를 바로잡았다.

"황혼의 방랑자, 리그람 루아 바이넬. 성좌의 주인에게 도전한다."

"······설원의 새벽, 이스티엘 아르야 카르티치스. 가겠습니다."

카르티치스.

아직 티엘의 본명을 들은 적이 없었던 리그람은 짧게 탄식하면서도 손을 들어올렸다.

결투를 위해 이름을 나눈 이상, 더는 물러날 수 없다. 어느 한 쪽이 패배하기 전까지, 두 사람 사이에 나눌 수 있는 것은 그저 마력과 마력 뿐.

"닿지 않는 손, 정적을 베어라. 우라칸!"

채찍처럼 탄력을 받은 자야민이 회전을 거듭하며 점점 속도를 올렸다.

그 이름처럼 우레같은 소리를 내며 폭풍처럼 휘둘러지는 칼 끝은 이내 하얗게 물들며 예리한 참격을 쏘아보내기 시작했다.

자신을 중심으로 전후좌우 구분없이 모든 방향을 난자하는 검의 폭풍이 점차 기세를 더해갔다.

티엘은 재빨리 발끝으로 선을 그리며 손 안에서 맺어낸 마정석을 던졌다.

창백한 빛깔의 돌들이 멈춰서는 것과 동시에 커다랗게 부풀었다.

주인의 몸을 지키는 방패처럼 자라난 얼음의 벽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던 참격을 가로막았다.

빙벽은 모두 합해 세 겹.

그러나 쏟아지는 참격은 그 수에 반비례해 위력이 떨어진 탓인지, 쉴 새 없이 얼음을 두드리면서도 고작해야 살짝 긁힌 정도의 상처밖에 남기지 못했다.

애초에 칼라가스의 마력으로 짜올린 얼음이다.

그 강도는 열처리를 마친 강철갑옷 이상이다.

미친듯이 참격을 날려보내던 리그람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마력을 끌어모았다.

"우라칸!"

이번에는 마력을 나누지 않는다.

단 한 번의 참격에 끌어낸 마력을 모두 담자 그동안 날려보낸 수십 개의 칼날을 한데 더한 듯한 거대한 참격이 얼음에 꽂혔다.

하나의 얇은 선에 집중된 마력은 기어이 첫 번째 벽을 완전히 베어 갈랐고, 이내 거침없이 달려들어 두 번째 벽까지 파고들기 시작했다.

티엘은 두 번째 빙벽이 절반 가량 부숴진 시점에서 미간을 좁히며 좌우를 살폈다.

그러나 리그람 역시 빠져나갈 길을 내버려두지는 않았다.

일부러 비스듬히 날려보내는 참격의 폭풍은 정면 뿐만 아니라 측면까지도 찢어발기고, 다른 한 방향은 꿈틀거리며 살의를 불태우는 마령이 틀어막고 있었다.

부서져 흩어지는 새하얀 마력광 사이로 입술을 깨무는 티엘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너를 상대할 땐 소모전으로 끌고가는 편이 유리하자.'

리그람 역시 한 달 동안 기사단 사람들을 살피고 나름대로 대책을 세웠다.

티엘의 경우, 칼라가스라는 강력한 생령과 계약한 덕분에 기사단 내에서도 공수 양면으로 손꼽을 정도로 강하다.

하지만 마력량과 체력의 한계로 전투지속능력이 크게 떨어져, 실질적인 전투력은 가까스로 상위 서열에 이름을 올리는 정도에 불과하다.

더군다나 티엘이 지닌 최강의 창은 이미 더는 쓸 수 없다.

티엘이 첫 수로 선택한 것이 방어라는 점도 운이 좋았다.

리그람에게 티엘의 방어를 단번에 부수고 치명상을 입힐 공격력은 없지만, 반대로 티엘 역시 벽 뒤에서 리그람을 제압할 만한 공격은 갖고있지 않다.

아스트라의 특성상 현재 티엘의 위치에서 리그람을 노리기 위해서는 곡사밖에 없다.

그러나 직사라면 모를까,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는 화살 하나를 떨구는 것이 어려울 리 없다.

더군다나 티엘은, 아직까지도 사람을 향해 살의를 드러낸 적 없는 반푼이다.

그 어설픈 적의는 가까스로 활을 쥐더라도, 그 화살촉을 무디게 만들리라.

"칼라가스! 파도의 잔해, 흔들리는 파랑을 그려라!"

버티다 못한 티엘이 끌어모은 마력을 지면에 힘껏 찔렀다.

지면을 타고 날카로운 얼음이 비죽비죽 솟아오르며 리그람을 향해 움직였다.

무리를 해서라도 상황을 바꿔보려는 시도였다.

리그람은 즉시 자야민을 회수했다.

칼라가스의 마력으로 짜낸 얼음이라면 쉽게 베어내기 어렵고, 그 때문에 자야민의 움직임이 계산을 벗어나면 자신이 치명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 애초에 그게 목적이었나.'

리그람의 공격이 잠시 멈춘 동안 여러 개의 마정석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굴러갔다.

그리고 그 돌 하나 하나가 각자 커다란 얼음기둥으로 자라나며 리그람과 티엘 사이에 불규칙하게 들어섰다.

조금 전, 리아가 만들었던 미궁과 마찬가지로 자야민의 움직임을 방해하는 장애물이었다.

리그람은 주저없이 자야민을 버렸다.

어차피 그에겐 아직 남아있는 무기가 많았다.

마다르의 칼날에 우라칸의 마력을 듬뿍 먹여 다시금 참격을 날릴 준비를 하면서, 동시에 그동안 대기시켜두었던 비장의 무기를 향해서도 일갈했다.

"요그마이아! 네 욕심껏 날뛰어라! 적의 피로 그 상처를 씻어내라!"

"끄아아아아아아!"

찢어지는 목소리가 포효일지 비명일지, 티엘은 전혀 알 수 없었다.

이제까지 가장 가까운 곳에서 가장 많은 참격을 맞았던 요그마이아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며 온 몸에서 시커먼 진흙을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그동안 입은 상처때문에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것인지, 처음 보았을 때의 날렵한 움직임 대신 느리고 비정상적인 걸음으로 힘겹게 몸을 뒤틀었다.

저 많은 진흙을 흩뿌리는 것도 움직이지 못하는 것을 대신하기 위한 발버둥에 가까워보였다.

일부러 요그마이아에게도 참격을 날린 것은 그 원한을 끌어올리기 위함이었을까.

하지만 아무리 마령이라도, 원념의 방향마저 잊을까?

그러나 티엘에게 그를 연민할 시간은 없었다.

검은 진흙은 티엘이 세운 방벽 째로 뒤덮어 삼켜버리려는 것처럼 사방에서 조여오고 있었다.

남은 마력을 전부 쓰더라도, 저 진흙에 닿았을 때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다.

이를 악문 티엘은 자신이 세워둔 빙벽 위로 뛰어오르며 남은 마력을 전부 칼라가스에게 돌렸다.

'당신은 어디까지 떨어지더라도 멈추지 않을테죠.'

의식을 차리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어렴풋이 기억나는 것들이 있었다.

티엘과 계약했던 생령들이 저마다 기억하고 있던 것을 전해준 것일지도 모르는 리그람과 그 동료들이 만들어낸 영장의 비밀.

마령의 심장과 인간의 혼을 사용해 만들어낸, 결코 있어서는 안될 죄악.

자신의 숙원을 위해서 타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미 이단이라고도 할 수 없는 악성(惡性)이다.

처음으로, 정말 처음으로, 티엘은 망설임없이 살의로 활을 들어 인간인 리그람의 심장을 겨누었다.

최초의 살인이 가져올 충격과 고통조차 지금 이 순간에는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전력을 다해 무고한 사람들에게 칼날을 박아넣으려 하는 악마를 멈춰야된다는 생각 뿐이었다.

적어도 화살처럼 찔러들어오던 리그람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지기 전까지는.

"티엘, 물러나!"

귀청을 찢을 듯한 리아의 목소리에 따르기도 전, 채 시위를 놓지도 못한 티엘의 얼굴에 뜨거운 피가 분수처럼 튀었다.

머리가, 사고가, 눈에 비치는 것을 미처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경악으로 물든 티엘의 눈동자에 비친 것은, 다름아닌 가슴에 커다란 구멍이 뚫린 채 허물어지듯 주저앉는 리그람의 모습이었다.

스스로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리그람으로서는 알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리그람과 조금 거리를 두고 있었던 리아는 두 눈으로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제 주인을 무참히 공격해 치명상을 입힌 마령의 모습을.

요그마이아는 이제껏 티엘을 향해 마지못해서, 억지로 마력을 흩뿌렸다.

그리고 리그람이 자신을 시야 밖으로 내던지는 그 한 순간, 이제까지의 움직임은 모두 거짓이었다는 듯 벼락처럼 빠른 속도로 움직였다.

단 일격.

그동안 자신을 묶어두었던 흑염의 십자가와 리그람의 육신을 꿰뚫어버린 것은 단 일격이었다.

영장은 산산조각으로 부서지고, 인간은 되살아날 수 없는 치명상을 입으며 쓰러진다.

가장 치명적인 한 순간을 노려온 마령의 일격은 소름끼칠 정도로 자신의 목적을 완수해낸 것이다.

마령이 대부분의 이성을 잃어버린다는 사실을 무색하게 만드는 순간이었다.

"크허억! 어, 어째, 서······?"

요그마이아가 한 순간이나마 지배를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공교롭게도 리그람의 명령 덕분이었으리라.

리그람은 마음껏 날뛰라고, 적을 마음껏 유린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요그마이아에게 있어 자신을 구속하고, 끝없는 고통을 안기며 치욕을 주는 적이 과연 누구였을까.

그야말로 언령(言靈), 말에 깃든 마법이었다.

"크, 크그으아하하하하하! 그아하하하하하!"

마침내 자신을 묶어두던 모든 굴레를 벗어던진 마령은 하늘을 향해 길고 날카로운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마령이 리그람을 공격한 순간 제정신을 차린 티엘은 겨냥을 바꾸어 아스트라를 날렸다.

하지만 아스트라가 그 심장석을 부숴버렸는데도, 치명상을 입은 마령은 기쁨에 미쳐 웃음소리를 멈치지 않았다.

죽음마저 가로막을 수 없는 절절한 원한의 크기에 멀리 떨어져있던 리아조차 오싹함을 느꼈다.

심지어 요그마이아는 서서히 잿가루로 바스라지며 쓰러지고서도 눈앞에, 마령으로서는 극상의 식사라 할 수 있을 리그람의 육체에 손가락 하나 대지 않았다.

증오하는 자의 혈육으로 연명하는 것조차 용납할 수 없다는 것처럼.

"그으하하하하하하하하! 아그아아아아아아!"

복수의 쾌감에 젖어있던 마령은 완전히 소멸하는 그 순간까지도 리그람을 비웃으며 그렇게 떠나갔다.

광기에 물든 웃음소리를 마지막으로, 소름끼치는 정적이 연회장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누구 하나, 심지어 활을 겨누고 있었던 티엘조차도 감히 손가락 하나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러던 가운데, 쓰러지려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던 리그람이 질척한 기침을 토했다.

"쿠헉······. 꼴불견을······, 보여드렸군요. 설마······, 완전히 지배했다고 생각한 놈에게······, 당해버릴 줄이야."

뒤늦게 정신을 차린 티엘과 리아는 재빨리 쓰러져있던 리그람에게 달려갔다.

죽음 속성의 마력에 휩쓸리면 산 채로 살이 썩어들어간다.

조금이라도 빨리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죽어버리기 마련이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아직 리그람의 숨은 붙어 있었다.

마력을 끌어올려 요그마이아의 마력에 저항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즉사를 면했을 뿐, 남은 시간은 최대한 늘려봐야 몇 분이 한계였다.

리아는 한숨을 쉬며 리그람의 머리를 자신의 무릎에 올려주고 중화제를 잘게 가루내어 환부에 뿌렸다. 그러나 리그람은 자신의 이마에 손을 얹고 애냐의 마력을 불러일으키려는 티엘의 손목을 살짝 밀어냈다.

"쿨럭······. 이제와서 뭘 동료처럼······, 보살펴주는 겁니까."

"시끄러워. 아무리 인간같지도 않은 짓거리를 했고, 아무리 우리 뒤통수를 갈겼다지만······, 그래도 가는 놈한테 그거 물어내라고는 못하잖아. 죗값을 받아내지도 못할 놈에게 뭘 더 바라겠어."

"하하······. 둘 다 바보같을 정도로 무르군요. 내가 한 짓을 이제와서 후회하진 않지만······, 악당짓 보다는 역시, 여러분들과 지내는 편이 즐거웠다는건 고백해야겠습니다."

리그람은 거의 입술로만 말하고 있었다.

제대로 숨을 밀어내지 못해 목소리를 내지 못했기에 한 마디를 알아듣는 것도 어려웠다.

절반가량은 표정을 통해 유추하는 식이었지만, 적어도 이 자리에 그것을 몰라볼 사람은 없었다.

한 달.

그 짧은 시간이라고 해도 분명 리그람은 검은 가지의 한 사람으로 녹아들었다.

리그람의 얼굴 역시 좌절이나 원망보다는 아쉬워하는 얼굴에 가까웠다.

"저희가 만든 영장은 전부 이 곳에 있습니다. 제단에 배치도를 숨겨뒀으니, 뒤처리는 부탁드립니다."

"뒤처리?"

"감히 속죄하겠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이제 저 물건들을 관리할 사람이 없으니 그만 회수하는게 안전할겁니다. 그 뒤는, 더이상 제가 알 필요가 없겠지요."

리그람은 손을 뻗어 각각 티엘과 리아의 손을 쥐었다.

몇 차례, 숨을 몰아쉬던 청동빛의 눈동자가 아득히 먼 곳으로 떠나갔다.

드높았던 야망에도, 저지른 죗값에도 어울리지 않는, 조용한 죽음이었다.

티엘은 말없이 손을 들어 리그람의 눈을 감겨주었다.



* * *



남아있던 다른 마법사들은 리그람이 숨을 거둔 것을 보고는 탄식하며 투항해왔다.

은사로 범죄자들을 한 곳에 묶어둔 두 사람은 가까스로 열린 문을 통해 들어온 나셀을 데리고 성 바깥으로 나왔다.

티엘이 싸우는 동안 어느 정도 회복한 마력 덕분에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는 노고는 필요치 않았다.

레나타의 마력으로 적당한 구덩이를 판 뒤 리그람의 시신을 그 안에 뉘였다.

리아는 자신의 세검을 무덤 앞에 꽂았다.

이름조차 잊혀질 묘지를 지킬, 이름없는 묘비였다.

"길을 잘못들은 내 형제, 리그람 루아 바이넬. 그리 길지 못했던 시간 속에서도, 우리에게 보여준 열의와 신뢰를 기억한다. 강대한 용부터 한 티의 불씨까지, 모든 존재에게는 응당 휴식이 있을지니. 형제여, 짊어졌던 것을 잊고 잠들라."

리아의 짧은 추도사가 끝나자 한 걸음 앞으로 나선 티엘은 나셀이 가져다준 깨끗한 물을 무덤 위에 뿌렸다.

그리고 곁에서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나셀은 떠나가는 넋을 위해 다시 한 번 진혼가를 불러주었다.

"지독한 밤이었어······. 누구도 바라지 않았을 결말 뿐이야."

리아는 씁쓸하게 말했다.

아무리 배신 했다고는 해도, 한 달이나 정을 주고받은 동료를 떠나보내는 것은 뒷맛이 쓰다.

그리고 티엘은 그런 리아보다 한결 더 우울하게 무덤을 응시하고 있었다.

기사단에 입단한 후 처음으로 경험하는 동료의 죽음이었다.

설령 살의를 품고 활을 겨눴다고 해도 그 충격은 결코 쉽게 라지지 않았다.

그가 저지른 악행을 용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죽음은 속죄를 위한 형벌은 아니지 않은가.

적어도 그가 살아서 죗값을 치르기를 바랐던 티엘은 눈을 질끈 감으며 입술을 꾹 깨물었다.

"쓰지."

고개를 흔들며 들러붙는 감정을 떨쳐내려 애쓰는 티엘의 머리 위로 리아의 손이 툭 올라앉았다.

"그리 드문 일은 아냐. 오히려 네가 들어온 후 여태까지 아무 일 없었던게 신기하지. 하지만······, 어떤 형태로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는 않아."

"네······."

"······그래서 물어보는건데, 괜찮았던거야? 그 팔찌, 부숴버린 거."

티엘이 슬쩍 고개를 들었다. 리아는 성 안쪽을 엄지손가락과 턱끝으로 가리켰다.

디에렌 칼레 일파가 남긴 영장들 중 칼라가스의 숨결로 인한 연쇄파괴에서 살아남은 것은 모두 스물 일곱 점.

경매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해 늘어놓은 것까지 모두 합한 수였다.

그것을 처분하기 위한 방법은 두 가지였다.

하나는 모두 회수하여 기사단에서 브론딜에게 맡기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남용을 막기 위해 이 자리에서 모두 파괴하고 파편만 회수하는 것.

물론 브론딜에게 맡기더라도 대부분은 파괴된다.

특히나 인간의 혼으로 안정시킬만큼 불안정한 물건들은, 이제와서 브론딜이 손보는 정도로는 정상적으로 기능하는 것을 바라기 어렵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일반론일 뿐, 오랜 시간을 들여 세심하게 손본다면 그 기능을 남긴 채로 수리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리아로부터 남은 영장들의 처분을 넘겨받은 티엘은 한 치도 망설이지 않고 모든 영장들을 부숴버렸다.

물론, 밤안개의 영혼을 담았다는 미라멜 키샤 역시.

"······거기에 아첼의 혼이 있다는 것도 확실한 건 아닌걸요."

"하지만······."

"그리고 한 가지, 더 이유가 있다면."

티엘은 다시 리그람의 무덤으로 시선을 던졌다.

"영면에 든 사람은 쉬도록 해주고 싶어요. 제 욕심보다는, 그 쪽이 더 옳기도 하고요."

정말로 그 팔찌가 아첼의 혼을 담고 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티엘은 만약이라는 가능성에서조차 깨끗하게 미련을 버렸다.

리아는 처음 만났던 시절의 티엘을 돌이켜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 때와는 많은 것이 달라져있다.

뭔가에 묶여 이리저리 휩쓸리는 듯했던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조용히 뿌리내린 채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직시한다.

고작 일 년 만에 이 정도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아마 그 곁에 서주는 사람들 덕분이었으리라.

리아의 시선이 진혼곡을 마치고 두 사람에게 다가오는 나셀에게 닿았다.

바다 건너 저 머나먼 대륙의 북쪽, 옛 제국의 손길도 닿지 않는 혹독한 설원의 땅에서는 진혼곡을 조금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 이름은 '하늘의 기도'.

죽은 자들이 평온하길 바라며 하늘에 바치는 기도라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죽어간 이들이 남겨진 이들을 위해 남기는 기도라는 뜻을 품기도 한다.

떠나는 이는 남은 이들의 행복을 빌고, 남겨지는 이들은 떠나가는 이의 안식을 기원한다.

때문에 그리운 이를 위해 마음을 담아 부르는 노래는, 그들의 마음을 하나로 이어준다고 한다.

하늘의 기도라는 이름은, 바로 그런 믿음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나셀에게 기대어 위로받는 티엘의 모습에서 눈을 돌린 리아는 서서히 밝아져오는 하늘에 가만히 손을 모았다.


산 자는 이 곳에 그침없이 춤을 추어라.

죽은 자는 그 땅에 영원한 안식을 얻으라.


슬픈 이별이 되풀이되지 않길 바라는, 그 먼 옛날부터 이어내려온 기도를, 리아는 한없이 높은 하늘을 향해 던졌다.


작가의말

기원편, 종료입니다.

리그람의 최후는 꽤 고민이 많았습니다. 과연 부리던 마령에게 삼켜지는 것이 합당한지.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야망을 위해 억눌러온 자에게 응보를 받은 셈이지만,

어떤 의미로는 제대로 죗값을 치른게 아닌, 단순한 실수로 죽어버린 것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세상 일이라는게 결국 인과응보가 확실하진 않은 것이기도 하죠. 이번에도 장고끝에 악수일지 모르겠지만, 리그람의 최후는 읽어주시는 분들의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어느새 추석이 다가왔네요. 모두들 연휴 즐겁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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