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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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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17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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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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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18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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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9쪽

8장-미해迷海 (1)

DUMMY

해가 바뀌기까지 한 달쯤 남긴 어느 날.

기사단의 휴게실에는 모처럼 많은 기사들이 모여 난로가의 고양이처럼 늘어진 채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파견을 다녀온 시간은 짧게는 사흘에서 길면 닷새 정도로 차이가 있었지만, 고맙게도 최근들어 마령들이 나타나는 일이 뜸했기에 운 좋게도 게으름을 피울 시간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흐느적거릴 정도로 녹아내렸다고 해도 명령이 떨어지면 벌떡 일어나게 될테니 별 문제는 없다.

하지만, 겨우 하루 전에 파견지에서 귀환한 티엘의 눈에는 오로지 게으름뱅이들만 한가득 보일 뿐이었다.

방 안의 참사 아닌 참사에 눈썹을 꿈틀거리던 티엘은 소파에 길게 누워 손을 살랑살랑 흔드는 리아를 노려보았다.

"······청소라도 좀 하는게 어때요."

"와아, 엄마같아. 5분만 더요, 엄마아. 이런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쉬겠어요?"

"이 안에 있는 사람들 중 리아가 가장 오래 쉬었을텐데요. 그리고 리아같은 딸, 키운 기억 없어요."

"쩨쩨하게 그런거 따질 거 없잖아?"

전력으로 게으름을 부리는 리아에게는 설득 자체가 불가능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티엘은 남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들고온 책을 펼쳤다.

말은 그렇게 해도 티엘이 들고온 책 역시 딱히 공부를 위한 책은 아니다.

린델이 심심하면 읽어보라며 던지고 간 시시껄렁한 소설이었다.

주변 분위기가 느슨한 가운데 혼자 공부에 집중하는 것은, 역시나 티엘에게도 무리였다.

난로 가에 앉은 올로비스는 작은 칼 하나를 들고 나무토막을 깎아 무언가를 만들고 있었고, 아드란은 의외로 털실을 가져다 놓은 채 손뜨개질을 하고 있었다.

팔람 구석의 어느 고아원에 자주 찾아가는걸로 알고있는데, 그 곳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라도 만드는 모양이었다.

하품이 나올 정도로 평화로운 분위기였다.

리아가 주구장창 자는 것도 어느 정도까지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밤낮없이 소파에 드러누워있는 것을 이해해줄 생각은 아무도 없겠지만.

미적미적 일어난 리아는 게으르게 눈을 비비며 기지개를 켠 뒤 문득 테이블 위에 올라앉은 오트밀 그릇을 발견했다.

늦잠으로 아침을 거르는 리아를 위해 따로 챙겨온 물건이다.

그러나 리아는 식탁에서 투정부리는 어린애처럼 오트밀을 쭉 밀어냈다.

문득 그 장면을 본 올로비스는 깎던 나무조각 너머로 눈을 가늘게 뜨며 훈계치고는 살벌한 무언가를 음산하게 중얼거렸다.

"쳇, 내 편은 없구나아."

리아는 일부러 자신을 위해 주방에서 휴게실까지 오트밀을 가져와준 사람의 시선에 찔려 미지근하게 식은 죽을 단숨에 집어삼켰다.

정말로 평화로운 분위기다.

두 사람의 신경전을 곁눈질로 살피던 아드란이 낄낄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이야하하하하, 사람들이 우릴 보면 뭐라할까나."

"월세 도둑."

"너무 적나라하잖냐, 올로비······. 아함. 게다가 월세가 아니라 월급이고."

"너도 많은 도박 실행은 유감이다. 적당히 필요."

"······체르타한테 들었냐?"

"밤 지나가도록 했다고. 월세, 아니, 월급의 반, 털었지?"

아드란은 유난히 잠이 모자라보인다 싶었는데, 어제도 도박으로 밤을 세운 모양이다.

기사단 안에서도 마법으로 사기치는 거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도박에 강한 체르타와, 반대로 자선사업 하느냐는 이야기를 들을 만큼 도박에 약한 아드란이 밤새 어울렸다면 결과야 뻔하다.

육체적 피로만큼이나 가벼워진 주머니로 인한 정신적 피로도 강할 것이다.

더군다나 곁에서 뒹굴거리던 리아도 이죽거리며 그런 아드란의 상처를 후벼파기 시작했다.

"아아, 나도 언제 란 뜯어먹어야겠다."

"내 지갑을 자기들 예금통장으로 생각하는 것 같군."

"분하면 실력을 기르시던가? 쿠히히히히. 로비도 그렇고 란도 그렇고 너무 꽉 막혔다니까아. 우리가 일 처리량 고려하면 평상시가 오히려 추가근무라고."

기가 막히다는 시선이 리아에게 집중되었다.

파견 빈도로 보자면 최하위인 사람이 양심도 없이 뻔뻔하게 나오니 당연한 일이다.

"네 얼굴가죽 뜯어다 철물점에 팔면 한재산 나오겠다."

"여자한테 실례잖아."

"아파, 차지 마, 차지 마! 엉킨다고!"

실컷 아드란을 괴롭히던 리아는 다시 소파로 되돌아와 드러누웠다.

조금 전과는 반대 방향이었다.

난데없이 묵직한 물건이 다리 위로 올라앉자 티엘의 시선도 조금 날카로워졌다.

"무거운데요."

"난 편한데."

"전 별로 안편해요."

"그럼 비켜줄테니까 티엘, 마실 것좀 가져다주라. 나 일어나기 귀찮아."

"얼음물이라도 끼얹을까요. 그럼 벌떡 일어날 것 같은데."

"매정하기는."

"나이 어린 동생 부려먹는게 그렇게 좋아요?"

그러나 말과는 달리 책갈피를 찔러넣고 자리에서 일어난 티엘은 휴게실 한켠에 놓여있는 찻장으로 향했다.

짓궂게 웃던 리아는 찻잔을 꺼내드는 티엘의 표정을 보더니 조금 더 편안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있다는 안도감이 티엘의 얼굴에 활짝 피어나 있었다.

티엘은 7월에 있었던 사건 이후로, 자신을 어려워하는 단원들에게도 이전과 다름없이 살가운 태도를 보였다.

미안한 마음에서라도 티엘이 원하는대로 친근하게 주고받다보니, 지금은 사건 직후의 서먹함도 상당히 줄어든 상태였다.

한동안 티엘을 피해다니며 그녀를 어려워하던 소르위까지도 지금은 예전처럼 평범하게 이야기를 주고받을 정도가 되었으니, 아예 같은 방을 쓰며 자주 얼굴을 맞대는 리아가 아무렇지도 않게 장난을 걸 정도로 빠르게 거리감을 좁힌 것도 무리는 아니리라.

더이상 미안하다는 사과는 하지 않는다.

오히려 티엘이 그 때를 떠올리며 괴로워할테니.

그저, 티엘이 바라는대로 편안하게 대해주는 것이 오히려 무엇보다도 큰 사과였다.

"리아. 저기, 설탕 넣어요?"

"응? 아, 응. 두 숟가락 넣어줘."

리아는 조금 눈을 가늘게 뜨며 티엘의 뒷모습을 살폈다.

차를 준비하던 티엘의 손이 어쩐지 조금씩 멈칫거렸다.

티엘과 서로 알고 지낸지도 어느새 일 년이 되어가고 있다.

항상 차에 설탕 두 숟가락을 넣는것을 새삼스레 물어볼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최근, 티엘은 그런 소소한 것들을 종종 잊어버리는 일이 있었다.

물론, 단순한 건망증일 것이다.

조금 있다보면 다시 떠올리기도 하고, 깜빡깜빡 잊는 것도 그런 사소한 일들 뿐이다.

"저, 저기, 설탕이 어디 있었죠······?"

하지만 티엘 자신은 스스로의 그런 실수에 좀처럼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당혹감으로 가득한 목소리가 들리자, 리아보다는 티엘에게 가까웠던 올로비스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찻장 구석에 놓여있던 설탕 그릇을 찾아 티엘에게 건네주었다.

"고마워요, 올로비스. 번거롭게 해서 죄송해요."

"근심 없는게 좋아. 나도 한 번 마실 기회가 있으면 좋겠어."

자신도 한 잔 타 달라는 의미다.

티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린 레몬 조각을 챙겨 물을 끓이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희미하게 웃고있던 얼굴이 조금 어두워진 상태였다.

'그러고보니 역류가 일어나는 시간이 조금 길어졌었지.'

지금은 멀쩡하게 지내고 있지만 몇 달 전에는 죽음의 문턱까지 섰던 아이다.

대정령 하나가 자신의 목숨을 걸고 티엘을 치료해주긴 했지만, 아마 그때의 후유증이 남은 것이 분명했다.

스스로도 자신의 몸상태에 신경쓰고 있을테니 신경이 분산되는 것도 있을 법한 이야기다.

의학이나 주문으로 별다른 이상은 찾을 수 없었던만큼 건망증 자체는 심리적인 요인 때문일 것이다.

가능하면 마음에 두지 않도록 자연스럽게 받아주는 편이 티엘에게 좋을 터였다.

때문에 조금 흐려진 표정으로 쟁반을 받쳐오는 티엘을 향해 이죽거리는 웃음을 던지는 것은 리아 나름대로의 배려였다.

"아하하하하, 그러고보니 누구 가슴속엔 벌써 봄바람이 불었었지? 칙칙한 기사단 안에서 신경이 흐트러질 만도 했네. 이거 미안해라."

"······그거, 무슨 소리죠."

"응? 이제 막 남자친구가 생긴 소녀심이라면 밉상인 동거인보다 바깥의 그 사람에게 신경이 쏠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

"나셀은 상관 없잖아요."

"어머머? 난 나스를 찝어 얘기한 적 없는데?"

티엘의 얼굴이 조금 전과는 다른 의미로 찌푸려지기 시작했다.

냉정한 척 하면서도 일일이 반응하는 모습이 귀엽다는걸 아직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리 고운 표정은 아니지만, 조금 전처럼 수심에 잠긴 얼굴보다는 몇 배 나았다.

리아는 키득키득 웃으며 소파를 훌쩍 뛰어넘었다.

자기가 타 달라고 했던 찻잔은 건드리지도 않은 채 자길 잡아보라는 듯 도망칠 생각이다.

티엘에게서 먼저 잔을 건네받은 올로비스가 애도 아니고 뭐 하냐는 표정으로 쯧쯧 혀를 찼다.

마찬가지로 리아를 딱하게 바라보던 티엘은 어쩔 수 없이 어울려준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손가락을 튕겼다.

"야, 이건 반칙이잖아!"

공기중의 수분이 엉겨붙어 생겨난 한 웅큼 정도 되는 물이 리아의 머리 위로 주르륵 쏟아졌다.

물론 진심으로 쓰지도 않은 주문에 맞을 정도로 헐렁한 실력은 아니다.

리아는 비명을 지르면서도 훌쩍 몸을 날려 쏟아지는 물을 피했다.

이제까지 녹은 설탕처럼 소파 위에 늘어져있었다는게 믿기지 않는 날렵한 움직임이었다.

"그 정도로 활기 넘치는 사람이 하루 종일 자는것도 낭비로구만."

아드란이 질렸다는 투로 반쯤 빈정거림에 가까운 감탄사를 흘렸다.

그러자 휴게실의 문 앞에 떡 버티고 선 리아는 어처구니 없는 소리를 당당하게 외쳤다.

"밖에 나가면 춥잖아! 이런 날씨는 돌아다니는 거 아냐!"

마령들이 춥다고 꼼짝 않는다는 법이라도 있는가.

순간 황당하다는 시선이 리아에게 모여들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리아의 말을 부정하는 것처럼 갑작스레 문이 벌컥 열렸다.

리아가 그렇게도 싫어하는 찬바람이 한가득 안으로 밀려들어왔다.

"아야야야! 뭐에요? 아, 리아였어요?"

동시에, 막 안으로 들어오려던 사람은 문을 막고있던 리아와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으며 비명을 질렀다.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백수가 멀쩡한 문은 왜 막고 있는거에요?"

"······뭐야. 린이었어? 뒤통수를 갈겨놓고 당당하다, 너?"

"양심없이 일 주일 가까이 식량만 축내는 사람에게 미안할 건 없다고 봐요. 설거지 한 번 안하는 게 딱 겨울잠 자는 곰이네요."

넘어지며 바닥에 부딪힌 팔꿈치가 아픈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열심히 문지르는 진한 밤색머리의 여기사.

인형사인 린델이었다.

그녀 역시 사흘 전, 티엘과 다른 파견지에서 막 복귀한 참이었다.

겨우 이틀 차이라고는 하지만 생산적인 일이라고는 조금도 하지 않는 리아를 보며 부아가 치밀지 않는 사람도 그리 없을 것이다.

독기 묻은 린델의 독설에 그나마 남아있던 양심이 드디어 찔리기 시작한 리아는 한 풀 꺾인 기세로 얌전히 문을 닫았다.

그동안 새침하게 리아가 앉아있던 자리를 차지한 린델은 리아가 놓아두었던 찻잔을 자연스럽게 가로채 난로가로 다가갔다.

"아! 그거 내가 마시려던 건데!"

"어쩐지 설탕물이다 싶었네요. 이렇게 먹으면서 살은 용케 안찌네요?"

"······린, 나 너무 미워하는 것 같아."

"자기 행실을 둘러봐요. 아, 그래도 잘 마실게, 티엘."

"한 잔 따로 타드릴게요."

"괜찮아. 몸 녹일 수 있으면 됐어."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후후 불며 한 모금씩 홀짝이는 린델은 금새 행복한 얼굴로 만족스런 한숨을 내쉬었다.

며칠 전만 해도 휴대용 난로 인형을 만들겠다고 선언하더니, 지금 모습을 보면 성과를 보기엔 갈 길이 먼 듯 하다.

린델을 말없이 지켜보던 올로비스는 난로를 향해 약간의 마력을 흘려보냈다.

화염령 파이드모스의 마력이 불길과 뒤섞이며 타오르던 불꽃을 조금 더 거세게 키웠다.

"아, 고마워요. 안그래도 몸이 꽁꽁 얼 지경이었는데."

"싫어하는 차가운 장소에 걸어다니면서, 어떤 이유를 가지고 있어?"

"소르위 찾아 다녔어요. 방에도 없고 연무장도 텅텅 비어있던데, 혹시 여기 있나 싶어서 와봤더니 사람 셋에 곰 한 마리 뿐이고."

"곰 취급 그만 하지 그래? 그나저나 솔, 집에 있었어?"

"리아 찝어 말한 것도 아닌데 어딘가 찔리나봐요? 아아, 소르위 이 인간은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도 모르겠고, 머리아프네요."

조금 전 티엘을 놀렸던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한 리아는 옆에서 숨죽여 웃는 티엘에게 쌜쭉한 시선을 흘겼다.

티엘이 만족할 만큼 으르렁거려준 리아는 이내 다시 린델에게 관심을 돌렸다.

"그런데 무슨 일로 그 재미없는 사람을 찾는거야? 혹시 누구처럼 연애 감정이라도 싹텄어?"

"설마요. 단장님이 찾으셔서 대신 뛰어다니는거에요."

"오, 저런."

린델의 한 마디에 네 명의 얼굴이 똑같은 표정으로 물들었다.

검은 가지의 기사들에겐 정기적인 휴일이 없다.

얼마 없는 휴가를 쪼개 쓰지 않는 이상 파견 직후 2,3일의 공백기밖에 누리지 못하는 그들에게, 연말에 모처럼 주어진 긴 휴식은 그야말로 황금과도 같은 것이다.

안그래도 리아와 린델은 조만간 하룻밤 정도를 거리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보내기로 의기투합하고 있었고, 거기에 티엘까지 데려가기 위해 옆구리를 찌르고 있던 상황이다.

파견중도 아니고, 본부에서 잠시 숨 돌리는 도중에 임무를 뛰라는 것은 상당히 가혹한 이야기였다.

"쯧쯔, 불쌍해라. 이러니까 착하게 살아야 됀다니까? 좋아, 솔 들어오면 바로 전해줄게."

"무슨 헛소리 하고 있나요, 리아. 소르위 혼자만 불렸다고 한 적은 없는데요."

리아의 표정이 단번에 굳었다.

찻잔에 남은 차를 쭉 들이킨 린델은 손가락을 펼쳐 하나씩 접기 시작했다.

"리아, 올로비스, 아드란, 그리고 티엘. 번거롭게 돌아다닐 일은 확 줄었으니 다행이네요."

"······뭐? 우리 전부라고?"

"기사단에 다른 리아가 또 있던가요? 아참, 가는 길에 소르위 만나면 알아서 데려가요."

생긋 웃는 표정이 그렇게 얄미워보일 수가 없었다.

리아를 향해서 '약속 깨는건 봐 줄게요'라며 다시 한 번 눈웃음을 날리는 모습은 그야말로 악마가 따로 없을 지경이었다.

경악한 다섯 사람은 각자 머릿속으로 '가고 싶지만 피치 못할 무언가의 사정'을 고안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물론 그런 어줍잖은 별명으로 메이트리아크의 매서운 눈매를 피할 수는 없다.

사실상 현실도피에 가까운 망상이었다.

그러나 문득 티엘은 다섯 명이라는 인원수에 눈을 가늘게 떴다.

한 번에 다섯이나 보내는 일은 극히 드물다.

세 명, 어쩌면 두 명 정도만 골라서 보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저기, 린델. 혹시 몇 명 파견인지는 들었어?"

같은 생각을 떠올린 리아가 약간의 희망을 품고 손을 들었다.

어차피 네 명에게 밀려 자신은 확정적으로 갈 거라 예상하고 있던 티엘은 몇 명이나 함께 갈지 들어둘 생각으로 귀를 기울였다.

하지만 린델은 더없이 진한 미소를 지으며 행복하다는 듯 리아의 환상을 깨뜨렸다.

"꿈 깨요. 다섯 분 전부 가는거에요. 올 때 선물이나 사와요, 리아."

"그, 그런게 어딨어!"

다섯 명 전원.

아드란의 손에서 뜨개바늘이 툭 떨어져 바닥을 굴렀다.

한 번에 파견되는 인원수가 많아질 수록 임무의 강도와 소요 시간은 기하급수로 증가한다.

다섯 명이면 사실상 작전 지역 일대를 완전히 갈아엎는 대규모 토벌이나 한 지역의 완전정화 수준으로, 길면 한 달 이상은 끌려다니는 대규모 장기파견 임무다.

티엘은 아직 장기파견 임무를 맡은 적이 없었지만, 머리를 싸쥐며 신음을 흘리는 올로비스나 참담한 얼굴로 털실을 바구니에 집어던지는 아드란, 망연자실한 채 현실을 부정하는 리아의 모습에서 무언가를 읽고 긴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네 사람의 다양한 반응에 얄밉게 웃던 린델이 문득 짝 소리나도록 손뼉을 쳤다.

"아참! 듣자마자 바로 달려오라고 하셨는데. 여기서 여유롭게 현실부정 하고있을 시간 있으려나요?"

"저 악마가-!"

우당탕탕!

순식간에 휴게실이 뒤집어지는 소리와 함께 네 명의 그림자가 빠르게 사라졌다.

린델은 홀로 남은 휴게실에서 조금 짓궂게 쿡쿡 웃음소리를 흘렸다.

"자아, 이제 소르위만 찾으면 되는데······. 정말 어디로 간건지, 원."



* * *



"······린델이 뭐라고 했길래 그리 급하게 온 거냐."

집무실에서 들어서자마자 마주한 메이트리아크는 조금 의외라는 표정으로 숨을 몰아쉬는 네 사람을 맞이했다.

아직 시간 여유는 있지만 되도록 빨리 모여주면 좋겠다는 정도로 말했던 것 같은데, 네 사람의 얼굴은 당장 모이지 않으면 목이라도 베겠다는 말을 들은 듯한 안색이었다.

린델이 조금 장난을 쳤거나, 아니면 자신의 평소 인상이 불러온 참사이리라.

악의 없는 장난일테지만 당사자로서는 약간 두통을 일어나는 기분이 들었다.

메이트리아크는 조만간 곤란한 부하에게 장난은 줄여주길 권하리라 마음먹으며 네 기사에게 자리를 권했다.

그래도 늦는 것보다야 조금 일찍 모여주는 게 여러 모로 좋다.

부하들의 곁으로 자리를 옮긴 메이트리아크는 손수 찻주전자를 들어 다섯 개의 잔을 채웠다.

다섯 명을 부를 때부터 미리 준비해 둔 것인지, 이미 충분히 진하게 우러난 차에서는 그윽한 향기가 물씬 풍겨났다.

거기에 더해 리아의 찻잔에는 설탕 두 숟가락, 아드란의 차는 맑은 물을 조금 더 섞어 농도를 낮춰준다.

겨우 스무 명 남짓한 단원이지만, 개개인을 하나하나 신경쓰는 메이트리아크 다웠다.

하지만 아직 주인이 오지 않은 찻잔은 쓸쓸하게 식어가고 있었다.

공교롭게도 저 자리에 앉을 인물은 평소에도 차가 식는 것을 싫어해 잔을 데운 뒤에야 차를 따르는 소르위였다.

"이 녀석······. 늦는군. 차가 식겠어."

움찔!

찻잔이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렸다.

정작 메이트리아크는 조용히 차를 한 모금 머금었을 뿐이지만 지레 긴장해버린 리아와 아드란은 조금 어색하게 찻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비교적 쌓인 죄가 없는 티엘과 올로비스는 두려울 것도 적다.

그러나 평소에도 수시로 말썽을 일으키는 두 사람은 메이트리아크의 눈치를 살피며 남몰래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보다못한 티엘이 슈니엘을 불러 소르위를 찾아볼까 고민하기 시작할 때였다.

"소르위입니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순간 티엘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것처럼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메이트리아크의 허락과 함께 열린 문 뒤에서 창백하게 질린 얼굴의 소르위가 재빨리 뛰어들어왔다.

"늦었군."

"죄송합니다! 브론딜의 부탁으로 시장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앉지."

소르위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

괜찮은건지, 아니면 체벌을 다음으로 미뤄둔 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소르위는 금새 표정을 수습하고 빈 자리에 앉았다.

약간 식은 찻잔에 메이트리아크의 눈길이 닿았다.

소르위는 찻잔을 단숨에 비웠다.

"모처럼 휴식중이라는 사실은 잘 알고, 이런 때에 불러낸 것도 미안하게 생각한다. 하지만 너희도 알다시피, 우리 일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지. 이걸 읽어보도록."

뭔가 오해하는 듯한 소르위를 딱하게 바라보던 메이트리아크는 문득 탁자 위로 한 뭉치의 서류다발을 올려두었다.

빽빽한 서류뭉치 사이로 갸름한 직사각형의 종이쪽지 다섯장이 나란히 눈에 들어왔다.

배를 타기 위한 표였다.

11월 18일 공화국 라티앙 항 발(發), 제국 식민령 아덴 섬 행.

그 사이 전 기사들 중 메이트리아크 다음으로 서열이 높은 소르위가 먼저 서류를 들어 빠르게 몇 장을 넘겼다.

휘리릭, 그저 대충 훑어보고 종이를 넘기는 듯한 손놀림이었지만, 눈은 빠르게 움직이며 필요한 정보들을 뽑아내고 있었다.

"약 사순 정도 걸리는 거리로군요. 그런데 해상에서 상단을 호위하는 임무입니까?"

"표면상으로는, 그렇다."

메이는 소르위의 질문에 애매하게 대답했다.

아드란은 조금 질린다는 표정을 감추지도 않은 채 한숨을 쉬었다.

"하아······. 한 달하고도 일 주일동안 배를 타야하는건가. 그런데 '표면상은 그렇다니,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니, 애초에 교역선도 아니고 민간 상선인데 기사단이 관여할 수 있는겁니까? 한두 명도 아니고 다섯이나?"

"그래서 표면상이라는 이야기다. 항로를 보고 떠오르는 것이 있을텐데?"

소르위는 항로가 표시된 부분을 펼쳐 탁자 위에 내려놓았다.

대륙과 공화국 사이의 바다, 미해(迷海) 로이아.

일찌기 티엘이 건너온 그 바다의 지도가 대략적으로 그려져 있었다.

"최근 우리나라와 제국 사이의 공해에서 빈번하게 마령이 출몰하는 현상입니까?"

메이트리아크는 고개를 끄덕였다.

"상단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위장이다. 사실상 조사대, 내지는 토벌대에 가깝겠지. 조사를 위해 신전과 기사단에서 각각 다섯 명의 마법사를 지원하기로 했다."

"아덴 섬이면 레가야랑도 가깝잖아요. 그쪽 사람들이······. 아차."

무심결에 입을 연 아드란을 향해 세 사람의 뜨거운 눈길이 쏟아졌다.

티엘이 레가야 출신이고, 그 곳에서 쫓났다는 것을 잠시 잊었던 아드란은 어물어물하며 티엘의 눈치를 살폈다.

하지만 티엘은 마음에 두지 말라는듯 가볍게 고개를 가로저으며, 오히려 살짝 웃으며 가볍게 설명을 덧붙였다.

"레가야라면 굳이 외해까지 나갈 필요가 없어요. 근해를 통해서도 미라야를 제외한 제국 전역과 교류가 가능하고, 따라서 제국내 무역만으로도 만족할 수 있죠. 위험지대에 발을 들이는 위험보다는 공화국과의 거래가 끊기는 손해가 적을거에요. 오히려 레가야쪽에서 보자면 이 항로가 열려봐야 경쟁상대만 하나 더 늘어나는 셈이에요."

"물론 우리가 갑자기 무력으로 나올 경우 긴장감을 조성하게 된다. 적어도 레가야에서 트집을 잡을 거리가 생기지. 그러니 공화국 내부에서, 겉으로는 평화적으로 보이는 수단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어. 어쨌든 상대는 대륙 최강국 시엘리아다. 성난 벌집을 건드릴 필요는 없지."

잔뜩 움츠러든 아드란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앞서나갔다 처참하게 침몰하는 아드란의 모습에 흠흠 헛기침을 하던 소르위가 다시 탁자위에 펼쳐둔 서류를 손으로 짚었다.

레가야와 아르타야, 아덴 섬, 그리고 피앙투스의 지형과 그 사이 항로의 모습이 대략적으로 그려져있었다.

로이아는 겉보기에는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수면 아래로는 암초와 거친 해류로 인해 많은 배들을 집어삼키는 위험한 바다다.

미해라는 이름은, 그렇게 뱃사람을 미혹시켜 죽음으로 이끈다는 뜻에서 붙은 것이었다.

다행히 주요한 암초나 위험한 해역은 대략적으로나마 지도에 표시되어 있었다.

항로는 그런 배를 부수는 자잘한 함정 사이로 아슬아슬하게 뻗은 몇개의 선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항로를 나타내는 선 곁에는, 손으로 써넣은 화살표와 작은 글귀들이 잔뜩 적혀 있었다.

날짜별로 출몰한 마령의 수, 대략적인 속성.

"이전과는 달라. 단기간에 지나칠 정도로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다. 대규모 마령 강림이 근처에서 일어난 여파일 가능성이 높아. 최소한 강림 일단계 이상이라고 각오해두는게 좋겠지."

"우와아······. 엄청 겁주시네요?"

"방심하다 돌아오지 못하는 것보다야 낫잖나? 이번에는 나 역시 동행할 예정이다."

누군가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유난히 생생하게 들렸다.

메이트리아크가 전선에 직접 나설 정도라면 임무 난이도는 생각조차 하기 싫을 정도로 올라간다.

이미 다섯 명이나 파견하는 것으로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는 상황에, 메이트리아크까지 참전한다는 것은 생각하는 것조차 싫을 만큼 위험한 일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파견지로 나서는 것을 거부하는 기사는 한 사람도 없었다.

메이트리아크가 여섯 명을 보내겠다고 판단했다면, 그 여섯 명이 모여있을 때 생환률이 가장 높다는 의미다.

더군다나 그 가운데는 메이트리아크 자신도 끼어있지 않은가.

"출발 할 때까진 시일이 꽤 남았네요. 그럼 그동안 파견은 없는건가요?"

"혹시 부상이라도 당하면 차질이 생길테니까. 마음 놓고 쉬면서 자기 점검을 해 두는게 좋겠지."

방금 전까지만 해도 끙끙 앓을 기세였던 리아의 얼굴이 대뜸 밝아졌다.

앞으로 며칠간은 원없이 늘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반기는 표정이었다.

물론 리아의 얼굴을 읽은 메이트리아크는 반대로 심란한 표정을 지었다.

"여가를 즐기는건 좋지만 적당히 해주길 바란다, 리아. 술을 마시지 말라는 소리는 하지 않겠지만 또다시 난동을 부렸다간 곱게 넘어가지 않아."

"윽······. 아, 알겠습니다."

"난 추가 지원등의 문제로 17일 늦은 시간에 도착할 것 같으니 너희들은 14일까지 라티앙에 먼저 가 있도록. 소르위, 내가 도착하기 전까지 네게 전권을 위임하도록 하겠다."

"명 받들겠습니다."

"그럼 소르위만 남고 일단 나가보도록."

순간적으로 소르위의 손가락이 움찔거리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네 사람은 아무 것도 보지 못한 것처럼 자연스레 그의 곁을 지나쳤다.

인간이란, 때때로 홀로 서야만 할 때가 있는 법이다.



* * *



마지막으로 하직인사를 올리며 문을 닫은 티엘의 입에서 문득 짧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사순이나 배를 타야한다는 사실이 가슴 한 가운데 묵직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아르타야에서 팔람으로 오는동안 겪었던 끔찍한 뱃멀미.

그 때는 겨우 20일 가량이었는데, 그 두 배나 되는 시간을 배 위에서 보내야 한다니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다.

바다 한복판에서 배가 부서지면 죽을지도 모르는 가운데 겨우 뱃멀미를 걱정한다는게 스스로도 조금 우습게 여겨졌지만, 한 번 몸에 뿌리내린 기억은 떨쳐낼 방법이 없었다.

애냐의 도움을 받으면 멀미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을까 고민하던 티엘은 다시 한 번 탁한 한숨을 흘렸다.

이번에는 앞서 걸어가던 리아가 깜짝 놀라 뒤돌아볼 정도로 커다란 한숨이었다.

"땅 꺼지겠다. 고민이라도 있어?"

순간 등을 쿡쿡 찌르는 감촉에 화들짝 놀란 티엘은 어느새 되돌아와 음흉하게 웃고있는 리아를 발견했다.

"하아, 리아. 놀랐잖아요."

"난 이름도 부르고 발소리도 냈는걸. 생각에 잠겨 아무것도 못들은 사람이 잘못이야.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렇게 푹 빠졌을까······? 혹시 남자친구? 한 달이나 떨어져있으려면 확실히 그럴만도 하겠네."

"집요하네요. 그 이야기 그만 하면 안될까요."

"아니지, 아니지. 한동안 동거까지 했으면 남자친구라기보다는 애인-"

"오해 살 말은 거기까지만 해주세요······."

남자랑 동거라.

만일 아첼이 들었더라면 펄쩍 뛸만한 엄청난 말이 아무렇지도 않게 툭툭 튀어나온다.

물론 당황하는 티엘의 얼굴을 구경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그러나 정작 티엘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으며 리아의 기대를 벗어났다.

조금 실망한 리아는 다시 휴게실로 향하는 티엘에게 바짝 따라붙었다.

"남녀가 며칠이나 같이 지내면서 정말 아무 일도 없었어? 입맞춤 정도는? 아니면 혹시······?"

"글쎄 그런 일은 전혀 없······."

무심하게 잘라 말하려는 순간 눈앞으로 한 장면이 스쳐지나갔다.

깊은 밤 서투르게 주고받았던 고백과 포옹.

나셀의 품에 안겼을 때의 감촉이 갑작스럽게 머릿속으로 떠오르며 티엘의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

혹시나 들킬까, 저도모르게 걸음이 빨라졌다.

그러나 단지 얼굴을 숨기려는 것만으로도 솔직하게 대답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사실은, 당황해버린 티엘로서는 미처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리아는 평소에는 좀처럼 동요를 보이지 않는 주제에, 나셀만 엮이면 이리저리 흔들리는 티엘을 보며 숨죽여 웃었다.

행여나 잠깐이라도 놓칠까, 재빨리 걸음을 재촉해 티엘을 따라잡았다.

괜히 시선을 돌리며 얼굴을 피하는게 솔직하다못해 귀여울 정도의 반응이다.

"한 달이나 못볼텐데, 잠깐 만나고 오는게 좋지 않겠어?"

"······굳이 그럴 필요 있어요?"

슬슬 포기한건지 따로 부정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한눈 팔지 말라고 눈도장 찍고 와.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져. 의심하라는 말이 아니라, 사람 마음은 자주 덧칠해줄수록 좋다는 이야기야."

"경험처럼 이야기하네요?"

"나도 연애경험은 있단다. 듣고 싶으면 네 이야기도 가져와."

모처럼 연장자다운 말로 대화를 마칠 무렵 계단도 끝이 났다.

곧바로 휴게실로 향하려던 리아는 문득 걸음을 멈추고 의미심장하게 티엘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지금 가고 싶은 곳은, 어느쪽이야?"


작가의말

미해, 로이아는 정확히는 제국 뿐만 아니라 대륙 전체의 남쪽 바다입니다. 엘세데스라는 강력한 해류가 흐르는데다, 그 지류인 리덴 해류 또한 로이아 안쪽으로 갈라져들어가고, 여기에 페넬타라는 강력한 폭풍이 불어닥치는 등 굉장히 거친 바다죠.  레가야 대령결계의 영향도 어느 정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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