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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Winterer 님의 서재입니다.

새벽의 시, 얼음의 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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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LWinterer
작품등록일 :
2019.07.01 19:36
최근연재일 :
2019.12.10 12:46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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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473,0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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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27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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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31쪽

9장-유산遺産 (1)

DUMMY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르는 곳이라면 누구라도 제 발로 찾아가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거기에 더해 당장이라도 머리를 향해 망치를 집어던질 듯한 사람이 코앞에서 눈을 부라리고 있을때는 더더욱.

하지만 꼭 가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눈물을 삼키면서라도 그 고통을 인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때문에 티엘은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이글거리는 브론딜의 시선을 피해 슬쩍 고개만 돌렸다.

물론 영장을 수리하러 브론딜을 찾아올때면 듣기 좋은 말을 듣는 일은 전혀 없지만, 하필이면 브론딜의 기분이 저조한 날 찾아온 바람에 한층 더 괄괄한 시선을 마주해야만 한 것은 운이 나쁘다고밖에 말할 수 없었다.

게다가 그의 심경이 불편한 이유는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티엘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슬쩍 곁눈질로 그의 작업대 위를 살폈다.

작업대 위에는 한 무더기의 금속조각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단순한 고철 조각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그 금속들은 한때 리아의 검이었던 물건이었다.

신경질적으로 망치를 들어 모루를 두드리던 브론딜은 파편 하나를 뭉개며 으르렁거렸다.

"아드란 놈 플레일은 자루빼고 죄다 갈아야 하게 생겼고, 아메르티는 권갑 한짝을 통째로 날려먹고, 올로비스는 창대를 반쯤 부러뜨려 가져오더니, 리아 이 망할 것은 검 한 자루를 알뜰하게도 개박살 내왔더군. 그런데 비교적 얌전하던 네 녀석까지 똑같은 짓을 해 왔냐?"

티엘은 망치와 모루가 부딪힐 때마다 불꽃이 팍팍 튀는 살벌한 모습에 잔뜩 움츠러들고 말았다.

다행히 브론딜은 거친 콧김만 씩씩 내쉴 뿐 티엘에게 손을 대진 않았다.

병상에서 삼 주 가까이나 누워있다 이제 막 일어난 녀석에게 주먹을 휘두를 정도로 물불 못가리는 사람은 아니다.

게다가 조그만 녀석이 새파랗게 질린 채로 잔뜩 겁먹은 모습을 보는 것도 그리 유쾌하지는 않은 일이고, 무엇보다도 고의로 영장을 망가뜨린 것이 아니라는 것도 충분히 알고 있지 않은가.

하지만 브론딜의 반응도 그저 공연히 일이 늘어 심통을 부리는 것은 아니었다.

티엘을 제외한 단원들 중에서도 대부분은 브론딜이 만들어준 영장을 주 무장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마령과 격렬한 전투를 하다 영장이 다소 망가지는 일은 적지 않고, 보통 한 달에 두세 명 정도는 브론딜의 열렬한 발차기에 나가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 정도가 달랐다.

지난 번 발푸르기스 토벌전에서 돌아온 뒤, 티엘 외에도 대부분의 파견인원은 제각기 길고 짧은 병실 신세를 져야했다.

백마법사들, 그것도 공화국에서 손꼽히는 치유사 '다시 부는 바람' 마이제 브라유가 직접 치유주문을 써 주었는데도 그런 지경이었다.

사람이 그 정도로 다치는 상황에, 그들이 필사적으로 휘두른 영장이라고 멀쩡할 리는 더더욱 없다.

그 주인과 마찬가지로 무리하게 마력을 머금으며 험하게 쓰여진 영장들은 누구하나 수리조차 해주지 못한 채 마지막까지 휘둘러졌고, 그 결과 대부분이 가까스로 형체만 남긴 채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조금 전 브론딜이 내려친 칼날 조각만 해도 검신에서 떨어져나온 정도가 아니라, 아예 칼날의 결을 따라 쩍 갈라진 큼직한 균열을 중심부에 품고 있었다.

스스로 만든 영장을 자식처럼 여기는 브론딜에게는 혹사당한 끝에 과로사한 아들딸을 보는 기분일 것이다.

"네 녀석들 목숨만 챙기지 말고 영장도 좀 챙기란 말이다. 네 녀석들 조금 다치는거야 시간이 지나면 낫지만 영장은 그게 안 된다고!"

과연 어느 선까지가 농담이고 어느 선부터 진심인걸까.

그러나 소중한 영장을 맡기는 입장에서는 그의 인명경시 영장중시 사상에 조금이라도 빨리 익숙해지는게 낫다.

게다가 활이 망가지는 것은 티엘로서도 전혀 바라지 않는 일이다.

"죄송합니다. 앞으로 더욱 주의할게요."

티엘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사죄했다.

순순히 고개를 숙이는 티엘의 모습에 브론딜의 머리도 가까스로 조금이나마 식었다. 툭툭 쏘아대는 리아나 답답한 올로비스, 뻣뻣하게 허리 세우는 아드란과는 다른 모습이니 평소 하던 것 처럼 화끈하게 밀어붙이는 것도 못할 일이었다.

브론딜은 작업대 아래에서 깨끗한 천으로 감긴 티엘의 활을 꺼내들었다.

기사단의 무기고에는 당장 현장에서 사용되는 것을 제외하고도 새로이 입단한 인원이 영장이 없을 경우, 혹은 기존 기사가 사용중이던 영장이 파손될 경우를 대비해 백여 자루의 영장이 보관되어 있다.

하지만 제아무리 브론딜이라도 입수하는 재료들의 질이나 조합에 따라 매 번 벼리는 영장의 성능이 균일하지는 않다.

게다가 종종 드물게 빼어난 영장을 들여놓는 경우도 있기에, 기사들의 영장은 그 편차가 매우 컸다.

티엘의 활은 검은 가지의 무기고에서도 최상위에 속하는 강력한 영장이었다.

더군다나 그걸 대체할만한 영장조차 무기고에 없었으니, 활을 감싼 천을 푸는 브론딜의 손길은 티엘 이상으로 조심스럽기만 했다.

무거운 검은 빛의 활몸이 화로의 불빛에 발갛게 익어 고혹적인 자태를 뽐냈다.

겉보기에는 아무런 이상도 보이지 않았다.

매일같이 기름먹인 손수건으로 정성스럽게 닦아주고, 행여나 활이 뒤틀릴까 사용 후에는 어떤 상황이라도 반드시 시위를 풀어 활을 쉬게 해주는 등 가능한 한도 내에서 최대한 신경써서 관리한 활이다.

그러나 브론딜은 조금 어두운 얼굴을 한 채 활 몸을 손가락으로 톡톡 건드려 마력을 불어넣었다.

감지의 속성을 지닌 그의 마력이 활 안쪽으로 스며들자, 마치 마른 나무판자의 갈라진 틈을 연상시키는 기묘한 문양이 어렴풋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겉으로는 멀쩡해도 한가운데부터 갈라지고 있어. 삼단계 강림에서 살아나온 영장 치고는 놀라울정도로 멀쩡하지만, 조금만 더 무리했다면 저 칼날처럼 산산조각으로 부서졌겠지."

"그, 그럼!"

"영장은 도구다. 아무리 소중히 아끼고 관리하더라도 언젠가 부서지는건 어쩔 수 없는 일. 시간을 되돌리지 않는 이상, 원래대로는 되돌릴 수 없어."

브론딜의 손가락이 활몸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고칠 수 없는건가요?"

"지난 삼 주간 다른 건 대부분 고쳤지만, 이 상태까지 오면 속속들이 알고있는 영장이라도 되살리긴 어려워. 더군다나 이 활은 내 손으로 만든 물건도 아니고. 심지까지 갈라지기 시작해버렸다면 슬슬 수명이 다 됀 게야."

"아······."

티엘은 안타까운 눈으로 아첼의 활을 보았다.

벌써 몇 년간이나 제 몸처럼 아끼며 가지고 다녔던 활이다.

하지만 아끼는 마음과는 별개로 부족한 실력이 활의 수명을 더욱 앞당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마음은 곧바로 얼굴에 드러나 티엘의 표정을 어둡게 물들였다.

별다른 말 한마디 없이 낯빛만 바뀌는 티엘의 모습에 짧게 한숨을 쉰 브론딜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작업대의 부서진 칼날 조각들을 한쪽으로 밀어낸 뒤 티엘의 활을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망치가 모루의 모서리를 힘있게 때리자 녹색의 아름다운 불꽃이 부드럽게 피어올라 검은 활을 감싸안았다.

제법 기세가 강한데도 조금 따뜻한 정도의 미지근한 불이었다.

"브론딜?"

티엘의 눈에 희망이 얼비쳤다.

브론딜은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는다.

일단 활을 모루에 올려 불을 지핀다는 것은 조금이라도 손볼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예상대로 브론딜은 무뚝뚝한 어조로 툭 내뱉듯 말했다.

"완전히는 못 고쳐. 그래도 되는 데 까지는 해 줄테니까 며칠정도 푹 쉬고 와."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녀의 얼굴에 희색이 가득 돌았다.

티엘은 환호성을 지르듯 감사의 말을 던졌다. 그리고 브론딜이 억지로 떼어놓을 때 까지 그의 손을 잡으며 몇 번이나 고개를 숙였다.

"그만, 그만! 썩 꺼지지 못해! 작업에 방해되니까 냉큼 나가!"

결국 티엘은 괄괄한 목소리와 함께 엉덩이를 걷어차여 쫒겨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렇게 아프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브론딜의 작업실을 떠나는 걸음은 훨씬 가벼워져 있었다.

하지만 브론딜이 해줄 수 있는 것은 어디까지나 활이 부서지는 것을 조금 늦춰주는 것 뿐이다.

새로운 영장을 구하거나, 활에 걸리는 부하를 최대한 억누를 실력을 기르지 못하면 결국 근시일 내에 활이 부러지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브론딜의 말에 의하면 활을 만드는 영장사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라고 했다.

더군다나 그럭저럭 괜찮은 활을 구하더라도 오랜 세월 마력을 먹여 길을 잘 들이기 전까지는 제 위력을 내지 못한다니, 새 영장을 구하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다면 마력 운용을 좀 더 정교하게 다듬는 것은?

말이야 쉽지만, 그것도 그리 간단치 않았다.

마력 순도 삼선, 마력량 427시안.

마력을 다루기 시작한 기간으로 보면 분명 매우 순도높은 마력을 지녔지만, 본래 작은 호수를 이뤄야 할 그 마력은 고위 주문은 건드릴 수조차 없는 작은 웅덩이일 뿐이다.

그나마도 꾸준한 명상과 수련으로 조금이나마 늘어난 양이지만, 처음 '문'에 들어선 날과 비교해봐야 겨우 아스트라 몇 발을 더 쓸수 있게 된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동안 칼라가스에게 기대며 스스로의 더딘 성장에도 그만 만족해버린 것은 아닐까.

뒤늦은 후회가 가슴을 후벼파는 것 같았다.

티엘은 무심결에 손을 움직여 손에 별의 서를 집었다.

부서지기 직전까지 내몰린 활과는 달리, 다행히도 별의 서에는 별다른 문제가 없었다.

만약 별의 서도 피해가 축적되어 파손될 상황이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떨렸다.

그것이 아첼이 남겨준 소중한 유품을 잃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마법사로서는 반푼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자신으로 되돌아가기 때문일까.

과거라면 서슴없이 전자라고 말했을테지만, 최근에는 조금 생각이 달라지고 있었다.

별의 서는 마력뿐만 아니라 주문까지도 저장해둘 수 있는 굉장한 영장이다.

의존하는 정도로 말하자면 활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진 않을 것이다.

활과 별의 서를 제외하면, 자신에게 과연 무엇이 남을까.

허탈할 정도로 아무것도 남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그렇잖아도 어둡던 티엘의 얼굴에 한층 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하지만 막 우울감에 빠지려던 티엘은 문득 두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뺨을 때렸다.

찰싹, 하며 제법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하얗던 뺨이 붉게 물들었다.

대신 그 충격으로 꼬리에 꼬리를 물며 이어지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끊어내는 데는 성공했다.

'동요하지 말자. 초조한 마음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창가에 팔을 걸친 티엘은 나무로 된 덧창을 살짝 열었다.

차가운 겨울 바람이 한 조각 흘러들어와 조금 상기되었던 얼굴을 부드럽게 씻어냈다.

온갖 생각들이 탁하게 엉겨붙어 몽롱하던 머릿속도 바람에 조금씩 식었다.

"조금 머리를 식힐까?"

하늘하늘 떨어지는 하얗고 차가운 꽃잎들 사이로 문득 얼비치는 누군가의 얼굴이 있었다.

살짝 망설이던 손이 조심스레 흩날리는 눈꽃을 감싸쥐었다.



* * *



가볍게 내쉬는 호흡에도 하얀 입김이 구름처럼 피어올랐다.

소리없이 내리는 눈발은 제법 굵었다. 보기에는 제법 예쁜 풍경이지만, 금새 소복하게 쌓이는게 문제다.

막연한 인연을 기다리며 거리에서 시간을 보내는 사람에게는 그리 달가운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음유시인에게는 한 가지 고충이 더해진다.

시간을 들여 섬세하게 음을 조율해둔 악기의 음정이 틀어진다는 것이다.

기온과 습기에 따라 팽팽하게 당겨진 현의 상태도 조금씩 변하니 여러모로 귀찮은 일이다.

하지만 나셀은 그저 평온한 기분으로 쌓여가는 눈을 보고 있었다.

오히려 악기를 조율하는 작업이 즐겁다는듯, 옅은 미소를 품은 채 눈이 쌓여가는 거리를 즐기며 연신 시리아를 만지작거렸다.

바람은 그리 많이 불지 않았고, 소리없이 조용하고 얌전히 내리는 눈은 나름대로 눈을 즐겁게 만든다.

흰 눈이 조금씩 거리를 덮어가는 것은 보고 있자면 묘하게 기분이 좋았다.

눈이 쌓이는 것을 걱정하면 어른이 되었다는 뜻이라던데, 아직까지 그의 마음은 순수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저 눈을 보고 있자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기 때문일까.

"받아."

그때 문득 나무를 깎아 만든 투박한 잔 하나가 얼굴 앞으로 불쑥 튀어나왔다.

고맙게도 따뜻한 김이 피어오르는 데운 우유가 가득 들어있는 잔이었다.

어느새 차게 식은 몸을 데우기에는 딱 좋은 선물이었다.

나셀은 따스한 김이 오르는 잔을 받아들었다.

차가운 손 안에 소르륵 번지는 훈훈한 온기에 만족스런 한숨을 폭 내쉰 그는 기대감 가득한 얼굴로 우유를 입안 가득 머금었다.

소금을 약간 넣어 약간 짭짤한 우유가 입안을 적셨다.

맛있다.

너무 짜지도 싱겁지도 않은, 딱 그의 취향에 맞춰둔 맛이었다.

이런걸 준비해줄 사람은 한 사람 정도밖에 없다.

고개를 돌리자 부드러운 웃음을 담고 반짝이는 보라색의 눈동자가 있었다.

"안녕."

"안녕. 오래간만이네."

티엘은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나셀의 곁에 앉았다.

손에는 나올 때 챙겨온 듯한 병과 나무 잔 하나가 들려 있었다.

쪼르륵, 병을 기울이자 기분 좋게 김이 오르는 우유가 나무 잔 안으로 쏟아졌다.

자신의 잔을 채운 티엘은 장난스레 웃으며 나셀에게 잔을 내밀었다.

어쩔 수 없다는 듯 피식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두 잔이 가볍게 부딪혔다.

"이젠 움직여도 돼는거야?"

"멀쩡하니까 걱정 마. 너야말로 추운데 눈 맞으면서 뭐하는거야, 정말."

나셀은 대답대신 요령 좋게 웃음만 흘렸다. 티엘은 밉지 않게 눈을 흘기며 나셀의 모자 위에 수북하게 쌓인 눈을 툭툭 털어냈다.

모처럼 눈덮인 거리에 나와서인지, 티엘의 복장은 평소 흔히 입고다니던 검은 제복 대신 옅은 회색의 긴 코트였다.

별다른 문양이나 장식 없이, 소매 끝단과 옷깃을 따라 흰 색의 선이 들어간 수수한 옷이지만, 하얗게 쌓여가는 눈 사이에서 굉장히 어울리는 색이기도 했다.

특히나 선이 가늘고 다소 차가운 인상을 가진 티엘에게는 수수한 무채색의 밝은 옷이 잘 어울렸다.

눈을 다 털어준 뒤 다시 자리로 앉으려던 티엘의 시선이 문득 나셀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그제서야 이제까지 나셀이 자신을 쭉 응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티엘은 괜히 시선을 이리저리 던지며 코트자락을 매만졌다.

"왜? 뭐라도 묻었어?"

"아니. 잘 어울리고, 예뻐서."

"아무렇지도 않게 심장에 안좋은 말을 하지 말아줄래?"

"아하하하, 빈 말은 아니야. 아참, 잠깐만."

나셀은 자신이 두르고 있던 목도리를 풀며 티엘에게 몸을 숙였다.

티엘의 얼굴이 조금 발갛게 물드는 것을 짐짓 모르는 척 한 나셀은 재빨리 티엘의 목에 자신의 목도리를 둘러준 뒤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티엘은 잠시 들뜬 것처럼 목도리를 만지작거리다, 이번에는 나셀의 목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것에 조금 미간을 찌푸렸다.

"나 안추워. 이건 네가-"

"내 생각 해주는거라면 네가 하는게 나아. 안춥다는 건 알겠지만, 그 가느다란 목을 그대로 드러내놓으면 보는 사람이 더 추운걸."

"너는 어쩌고?"

"나야 모자 쓰고있어서 제법 따뜻해."

거짓말.

모자도, 입고있는 옷도 두께가 상당히 얇다는건 알고있다.

몇 겹을 껴입었다고 해도 찬바람을 완전히 막아주기에는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푹 눌러쓴 모자 아래로 보이는 입술은 더없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그리고 있었다.

티엘이 목도리를 돌려주려 해도 한사코 거절하리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주는 표정이었다.

고집이라면 나셀도 지지 않는다.

오히려 말 한마디 없이 상대의 고집을 꺾어버리는 무언의 박력이 있었다.

차마 되돌려주겠다는 말을 꺼낼 수도 없게 만드는 그 얼굴에 결국 오늘도 티엘이 한 발 물러나고 말았다.

"······고마워."

"천만에."

조금 볼멘 소리로 퉁명스럽게 내미는 감사에도 부드럽게 웃으며 대답하는 저 성격은, 정말 어떤 의미로는 치사하기 짝이 없었다.

"그나저나 무슨 고민이라도 있는 얼굴인데. 푸념이라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다고."

"후후, 어리광 부려도 받아주는거야? 좋은데. 하지만 이번엔 괜찮아. 그냥 그동안 내가 좀 게을렀구나 싶어서."

티엘은 따뜻한 잔을 만지작거리며 나셀로서는 알아들을 수도 없을 말을 중얼거렸다.

그나마 이런 불상사를 함께 나눌 사람이라면 나셀 뿐이긴 하지만 -리아라면 배를 잡고 웃지, 위로같은건 해주지 않을 것이다- 자초지종을 모르는 나셀은 그저 눈만 동그랗게 뜰 뿐이었다.

하지만 티엘은 나셀을 놀리기라도 하려는 듯 그 표정을 보며 배시시 웃었다.

어차피 하소연해봐야 의미도 없을 거라며 자기 합리화까지 마친 티엘을 말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셀은 키득거리는 소녀를 보며 가볍게 혀를 찼다.

"가끔은 너라는 녀석을 이해할 수가 없다니까."

"그거 무슨 의미야? '가끔은'이라니."

"말 그대로의 의미지. 보통 이렇게 눈오는 날 돌아다닐 사람은 별로 없잖아?"

"그냥 보고싶었으니까. 안본지도 꽤 됐고."

생각지도 못한 반격이었다.

라티앙에서 귀환한지 약 삼 주. 확실히 얼굴을 본 지는 조금 지났다.

아드란과 올로비스의 마력을 동시에 통제하려다 몸이 축난 덕에 병원에 쳐박힌 티엘은 병문안조차 받을 수 없이 침대에만 누워있어야 했다.

더구나 나셀 역시 로이아 해에서의 활약상이 멋대로 부풀려져 입소문을 타는 바람에 한동안 원치 않던 유명세로 고생하고 있었다.

덕분에 사람들의 눈을 피해 다소 한적한 거리만 전전하느라, 미처 티엘을 찾아올 틈조차 갖지 못했다.

하지만 보고싶었다는 그 단순한 한 마디가 지니는 무게는 꽤나 미묘했다.

일부러 그런 단어를 고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티엘은 자신의 얼굴이 붉어진 것은 찬바람 때문이라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서로 엇갈렸던 길을 되짚은 후, 전보다 더 다양한 표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 어쩐지 기쁜 마음이 든다.

피식 웃은 나셀은 모자까지 벗어 티엘의 머리에 푹 눌러씌웠다.

짖궂은 장난은 그만두라는 듯한 뾰로통한 얼굴이 모자 아래에서 쏙 나타났다.

"뭐하는 짓이야, 이거."

"머리 젖지 말라고. 머리, 길잖아. 물먹고 얼어붙으면 무거울걸?"

티엘이 좋아하는 특유의 미소가 말문을 틀어막았다.

그냥 흘려보내는 미소가 아니라, 상대에게 진심으로 '좋아한다'는 감정을 전하는 얼굴이다.

흩날리는 하얀 눈발을 배경으로 삼은 옅은 금발과 녹색의 눈동자가 그림처럼 빛났다.

붓을 들어 저 얼굴을 그대로 화폭에 담을 수 있다면.

그림을 배운 적 없는 티엘은 대신 그의 모습을 눈동자에 새겨넣었다.

언제까지나 바라보고싶은 그 미소에 조금씩 빠져들 것만 같은 기분에 조금 아찔해진 티엘은 멋쩍게 모자 끄트머리를 매만졌다.

"추운데서 이러고 있지 말고 어디 들어가는게 어때? 이러다가는 나셀이 외투까지 벗어줬다 감기로 끙끙 앓을까 무서운데."

"아직 점심 안먹었다면 오늘은 내가 살게. 늘상 얻어먹는것도 미안하고. 괜찮은 가게, 많이 알거든."

"응, 기대하고 있어."

티엘은 자리에서 일어나 스스럼없이 나셀의 손을 잡았다.

연인이라 칭하는것조차 다소 어색했던 때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닌데도, 지금은 너무나 자연스레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일 수 있다.

서로를 알아간다는 것이 이런 것일까.

맞잡은 손의 온기가 아직 가슴에 남아있던 먹구름을 부드럽게 씻어내렸다.

문득 나셀의 걸음이 인적 드문 골목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나마 사람들이 눈을 치워두는 대로와는 달리, 빛조차 잘 들지 않는 골목은 발목 높이까지 눈이 쌓여 걷는 것조차 상당히 어려웠다.

"저기 티엘. 어디 가냐고 물어보진 않을거아?"

"왜?"

"보통 단둘이서 이런 으슥한데 데려오면 조금쯤 경계하지 않나 해서."

"왜 널 경계해야하는데? 혹시 나 덮칠거야?"

"······아니."

"그럼 문제 없는 것 같은데. 그렇지?"

서로 농담처럼 주고받은 말에 티엘이 살짝 웃었다.

그러나 마주 웃어주는 나셀의 얼굴은 조금 흐렸다.

몇 번이나 상처를 입었어도 마음을 준 사람을 믿는 마음은 흔들리지 않는다.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혹은 반대로 목숨을 거는 중대한 일이라도 그 점은 달라지지 않는다.

분명 아름다운 일이지만, 그 때문에 겪었을 아픔을 생각해보면 조금 가슴이 시큰해졌다.

흙바닥에 구르고 긁혀 상처입어도 그 심성만큼은 달라지지 않았다.

과연 자신이 티엘의 저 깨끗한 미소를 지켜줄 수 있을까.

그 날, 그 어두운 바다에서 품었던 두려움이 곰팡이처럼 그 가슴에 얼룩을 만들었다.

그러나 사색에 잠기기에는 길이 너무 짧았다.

골목의 모퉁이를 도는 순간, 올망졸망한 작은 음식점들이 죽 늘어선 골목길이 두 사람의 앞에 나타났기 때문이었다.

흔히 '아는 사람만 아는' 가게들이었다.

나셀은 잘 구분도 되지 않는 식당들 중 한 군데로 티엘을 안내했다.

낡아서 글자도 다 지워진 간판은 떨어지기 직전, 문짝에도 수많은 흠집이 나 있는 굉장히 오래 된 건물.

겉보기에는 혹시라도 무너지는 것은 아닐지 걱정해야 하는 심각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나셀이 안내하는 곳은 의외로 숨은 명소라는 것을 익히 아는 티엘은 별 말 없이 안으로 들어섰다.

가게로 들어서자마자, 나셀은 모자도 벗지 않은 채 안쪽으로 인사부터 던졌다.

"오래간만이에요, 할아버지. 모처럼 생각나서 들렀어요."

그리고 그에 화답하는 것은 무뚝뚝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질리지도 않고 또 왔나?"

나이는 어림잡아 육십 정도 되어 보이는, 앞치마를 입은 노인이 나셀을 향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

그러나 나셀은 이미 노인의 반응에 익숙한 듯 빙그레 웃고있었다.

아니, 익숙한걸 넘어 빨리 들어오라는듯 티엘에게 손짓까지 하고 있다.

조금 어리둥절해진 채 나셀의 옆으로 다가간 티엘은 그저 분위기에 이끌려 꾸벅 인사를 올렸다.

"너, 어느 가문 아가씨를 홀려서 끼고다니는게야?"

"바람둥이 한량을 나무라는 듯한 말씀은 그만둬주세요. 친구에게 점심 한 끼 대접하려면 여기만한데가 없다는거 아시죠?"

"아부도 적당히 해야 웃어주지. 쯧, 저 아가씨도 이왕 왔으니 먹고 가라고 해. 혹여 입에 안맞으면 네 녀석을 원망하라고도 덧붙이고."

"아, 저······."

노인은 티엘의 말은 듣지도 않은채 주방으로 들어가버렸다.

무안하게 서있던 티엘은 나셀의 손짓에 따라 잠자코 자리에 앉았다.

"처음 보는 얼굴이라 반가워하시는 것 같아."

"그랬어? 내겐 한마디도 없으셔서 조금 거북해하시는 줄 알았는데."

"표현이 서투르신 분이거든. 나랑 이야기하시면서도 계속 곁눈질 하시던걸? 여긴 정말 단골 아니면 손님이 별로 없어서, 못보던 얼굴을 보면 정말 기뻐하셔."

확실히 나셀의 말처럼 한산한 가게였다.

자리는 겨우 여덟 개 뿐이고, 티엘과 나셀을 제외하면 앉아있는 손님도 한 명 뿐이었다.

게다가 주문을 따로 하지 않았는데도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 음식 역시 역시 한 가지 뿐인듯 했다.

그러나 금새 코끝을 간지럽히는 맛있는 냄새가 흘러나오며 식욕을 자극하기 시작하자, 그런 사소한 문제는 금새 머릿속에서 사라져갔다.

사실 좁은 골목길로 돌고 돌아 들어오며 평소보다는 조금 늦게 먹게된 점심이다.

기대치가 점점 높아지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마침내 갓 구워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빵과 건더기가 듬뿍 들어간 수프가 식탁 위에 차려졌다.

감사인사를 하자 괜한 소리 말라는듯 허둥지둥 주방 안으로 사라지는 노인의 뒷모습에 살짝 웃은 티엘은 기대감에 가득 차 빵을 조금 뜯어 입으로 가져갔다.

"맛있어."

티엘이 나지막히 탄성을 질렀다.

손끝으로 살짝 찢어낸 빵 조각만으로도 입안 가득 보리의 풍미가 차올랐다.

특별한 재료를 쓰지는 않은 단순한 보리빵이었지만, 잘 구워진 보리에서 배어나온 구수한 맛과 짙은 보리향,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질감이 혀끝에 부드럽게 휘감겼다.

같이 나온 수프를 역시 훌륭한 맛이다.

한 숟가락 가득 떠올려 입에 머금자 정성스레 우려낸 육수의 맛에 더해 구수한 감자와 풍부한 야채 건더기들이 기분좋은 식감으로 씹혔다.

"마음에 들어?"

대답을 할 겨를도 없었다.

티엘은 눈까지 지그시 감고 소박하지만 맛좋은 식사를 한껏 즐기고 있었다.

얼굴 가득한 행복감 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을 들은 나셀도 만족스레 웃으며 자신도 빵을 입에 넣었다.

"음유시인들은 이런 데를 자주 오거든. 싸고 맛있는 식사는 수많은 발품을 팔아 얻는다는거지."

빵을 베어물며 조금 의기양양하게 말하는 나셀의 모습에 피식 웃은 티엘은 그에 질세라 얼른 빵을 베어물었다.

큼직한 연회장에나 어울리는 온갖 화려한 음식들보다는 이렇게 조용하고 즐길 수 있는 소박하고 맛있는 음식쪽이 훨씬 좋다.

적당히 낡은 가게 안의 풍경이 자아내는 편안한 분위기도 마음에 들었다.

나무로 짜올린 천장은 오랜 세월에 익어 고즈넉한 운치를 담고 있고, 생나무를 통째로 사용해 만든 탁자는 수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며 매끄럽게 닳아 한결 더 편안한 느낌이다.

마음에 여유를 가져오는 풍경에 맛좋은 식사.

두 사람만의 평화로운 시간을 위해서는 이보다 좋은 장소도 없으리라.

큼지막한 보리빵 세 개와 수프 두 그릇이 빠르게 사라졌다.

기분좋은 포만감에 제법 풀어진 얼굴을 하고 있던 티엘은 쿡쿡 웃는 나셀의 눈치에 조금 새침하게 눈을 흘겼다.

"그나저나 올해도 다 가버렸네. 시간은 너무 빠르게 가버린다니까."

티엘의 시선을 피해 빼꼼히 열린 창밖을 보던 나셀이 중얼거렸다.

어느새 날짜는 12월 27일. 여기저기서 송년회 준비를 하는 시기라 음유시인들도 나름대로 바쁜 시기였다.

하지만 정작 나셀은 그동안 따로 송년회를 챙긴 적은 없었다.

평소에는 적당히 돈을 벌어두고 연말연시를 집에서 조용히 보내곤 했다.

그러나 올해는 조금 사정이 달라지지 않았던가.

나셀은 넌지시 티엘의 눈치를 살폈다.

시간이 난다면, 연말에 한 번 더 만나는 것도 좋지 않을까.

물론 티엘이야 기사단 사람들과 보내고 싶을지도 모르지만 조금쯤 욕심을 내보는 것도 나쁘진 않으리라.

그러나 나셀의 말을 들은 티엘은 갑자기 안색을 바꾸며 손가락을 꼽아보기 시작했다. 소리없이 입술만으로 뭔가를 중얼거리던 티엘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며 고개를 푹 숙였다.

"아아, 까맣게 잊고있었어. 벌써 연말이 다 됐다니!"

"뭔가 바쁜 일이라도 있는거야?"

"단장님께 휴가 신청해야 하는걸 완전히 잊어먹고 있었어."

"휴가?"

기사단이 언제나 인력난에 시달리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휴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매년 일정량의 휴가는 주어지며, 부상으로 인한 병가, 여성 기사의 경우 생리휴가까지도 사용할 수는 있다.

그저, 한 사람이 빠지면 다른 기사들의 부담이 커지는만큼 대부분은 자기 선에서 휴가를 사양하고 있을 뿐.

때문에 기사들은 보통 파견 직후의 하루에서 이틀 정도의 공백기에 휴식을 취한다.

이런 상황에서, 한번에 장기간의 휴가를 내는 것은 오로지 티엘 한 사람 뿐이다.

이는 기사단에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기사단장인 메이와 직접 담판을 벌여 일년치 연가를 한 번에 털어넣은 결과였다.

물론 보름을 전후로 전혀 활동을 하지 못하는 티엘이 그렇게까지 휴가를 쓰는 것을 허락받은데는 이유가 있었다.

뺨을 톡톡 건드리던 손이 조심스럽게 미끄러져 내려가 가슴께의 목걸이를 찾아 쥐었다.

"라간 계곡에 볼일이 있거든. 아무리 단장님 허가가 있다고 해도 직접 신청하지 않으면 탈영이 되니까."

저 목걸이, 그리고 라간 계곡.

두 가지 단서면 이미 답은 나왔다.

저 목걸이가 티엘의 스승이자 가족이었던 아첼레란도의 유품이라는 것도, 그리고 그녀와 함께 살았던 곳이 라간 계곡이라는 것도, 언젠가 티엘에게서 들은 적이 있는 나셀은 휴가까지 신청하는 이유를 어렵잖게 짐작할 수 있었다.

1월 15일, 티엘의 스승인 아첼레란도의 기일이 곧 돌아오고 있었다.

"혼자 가려고? 괜찮겠어?"

"매년 다녀왔는걸. 빼먹으면 언니가 섭섭해할거야."

나셀은 걱정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

보름이면 티엘에게 어떤 일이 닥치는지도 알고있기 때문이었다.

눈도 보이지 않고 마력도 쓸 수 없다면, 혼자 가는건 다소 위험한 일이다.

하지만 티엘은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걱정 안해도 돼. 다들 얼굴 아는 사람들이고, 하루 이틀 정도는 신세 질 수 있어. 일부러 연가를 몰아 쓴것도 역류 기간에 맞추려 그런거였고."

어차피 설득이 먹힐 영역은 아니었다.

티엘을 묶어둘 수 있는 기사단에서 허락한 일을 이제와서 나셀이 반대해도 의미가 없다.

"맘같아서야 따라가고 싶지만······."

"미안. 이번엔 혼자 다녀오고 싶어."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하는 수 없지. 알았어. 조심해서 다녀와."

하다못해 기사단에서 누구 한 사람이 따라가면 좋겠지만, 기사 한 명을 보름이나 빼주는 것만으로도 상당히 편의를 봐준 셈이다.

게다가 티엘만큼 장기간은 아니더라도, 연초에 고향에 들렀다 오기 위해 일 주일 가량의 휴가를 내는 기사들은 몇 명 더 있었다. 호위를 붙여줄 만큼 여유있는 시기는 아니었다.

물론 그저 고향에 다녀오는데 호위가 필요하다는 것도 외부의 시점으로 보면 상당히 우스운 일이기도 하지 않던가.

겨우 수긍하며 물러나는 나셀에게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든 티엘은 일부러 더 밝게 웃으며 손을 살짝 들어올렸다.

매사냥을 나선 사냥꾼처럼, 보이지 않는 새를 팔에 앉힌 듯한 모양새였다.

"걱정 말라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칼라가스가 지켜줄테니까."

바보야, 만월에는 칼라가스도 널 지켜주지 못하니까 걱정하는거야.

혀끝까지 올라온 말을 애써 삼켰다.

걱정하지 말라며 일부러 밝게 웃는 티엘을 위해. 그리고 조금이라도 티엘의 말처럼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길 바라기 위해.

"그럼 무사 귀환을 위해 건배라도 할까?"

"수프 그릇으로 뭐 하려는거야!"


작가의말

유산편 시작합니다 :)


리아가 바깥에서 영장을 수리해오지 않는 이유라면 돈이 들어간다는 것도 있지만, 일반 대장장이는 영장 수리가 불가능하다는 것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영장사 찾는게 쉬운 일도 아니고, 어찌어찌 찾더라도 어설프게 수리해두면 브론딜이 바로 알아볼테니 더더욱 크게 혼나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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