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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경신인 님의 서재입니다.

나는 쓰레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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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화경신인
작품등록일 :
2021.05.12 16:48
최근연재일 :
2021.07.06 15:04
연재수 :
48 회
조회수 :
14,105
추천수 :
328
글자수 :
207,292

작성
21.06.22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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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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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글자
9쪽

프로포즈

DUMMY

“무슨 소원 빌었어?”

다희는 두 손 모아 기도하고 나서 나를 보며 물었다.


“나?.. 어··· 음··· 그냥.. 뭐 건강하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사실 나는 7살 이후 기도나 소원이라는 것을 빌어 본적이 없다. 매년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원생들은 보육원에서 가장 큰 강당에 모여 의례적인 행사를 가졌다. 그 행사에서는 매번 산타클로스 할아버지가 와서 우리들에게 선물 한가지씩 주곤 하였다. 그러나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누가 봐도 원장이었다. 그리고 받은 선물은 항상 내가 원하는 것은 없었다. 한달 가까이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지만 단 한번도 내가 원하는 선물은 받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7살 이후부터는 기도나 소원 같은 것을 빌어 본적이 없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조숙했던 것 같다.


“나는 그냥 평범하게 살더라도 항상 같이 있게 해달라고···”


새벽의 차가운 겨울 아침 다희의 눈동자 속에는 97년도 새해 첫날의 해가 반짝였다. 다희는 내 손을 꼭 잡고 나의 가슴에 얼굴을 묻은 채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 보고 있었다.

‘다희야 나는 너만 행복하면 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단 둘이 살고 싶다’는 바램이 생겼다. 그런데 그게 가능할까? 돈은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통장에는 우리나이에서는 상상도 못할 큰 금액이 있었다. 또한 다희 앞으로도 큰 금액의 돈이 있었으니 그냥 아무도 모르게 사라져서 어디 먼 곳 우리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으로 가서 살 수 있다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참! 다희야 2월에 졸업이지?”

“응! 19일”

“졸업하면 바로 약국 열거야?”

“피이 바보! 졸업하자 마자 어떻게 바로 약국을 여니? 시험부터 봐야지!”

다희는 한껏 혀를 밖으로 내며 놀린다.

“아! 그래.. 큭 미안 몰랐네. 언제 시험이야?”

“이번 달 22일 수요일!”

“아! 그래? 시험 준비하느라 바쁠 텐데, 내가 괜히 여기 끌고 온 거 아냐?”

“아냐! 그렇지 않아도 머리가 복잡해서 바람 좀 쐬고 싶었어. 오랜만에 자기하고 데이트도 하고 말야! 호홋”


나는 내 일에만 너무 전념한 나머지 다희에게 너무 무관심했나 보다. 다희의 인생에 있어 이 시험은 넘어야 할 큰 산임에 틀림이 없었을 텐데 그걸 몰랐으니 갑자기 다희한테 너무 미안했다. 그렇게 사랑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큰 일조차 챙기지 못하고 내 욕심만 부린 것 같아 많이 반성했다.


“근데 시험 어렵진 않아?”

“어렵지. 그래도 국가고시인데 쉽진 않을 거야. 뭐 그래도 열심히 공부하고 준비했으니 떨어진다고 해도 후회는 없을 듯 해!”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과목은 그런대로 준비가 잘 되는데 약사법이 생각보다 어렵더라고 다 외어야 하는 것이라.. 법에 관련된 단어는 왜 그리 낯설고 어려운지. 풋! 돌아서면 잊어버려! 호호홋 정말 머리가 나쁜가 봐!”

“훗! 그냥 천천히 하면 돼! 급하게 생각지 말고!”

“응! 그러고 있어!”


다희의 손을 꼭 잡고 우리는 해변을 천천히 걸었다. 길가까지 늘어진 기다란 그림자가 우리를 하나로 묶어 버린다.


***


“차가 많이 밀리네!”

시험 시간까지는 한 시간 이상 여유가 있었으나 마음이 조급했다.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 부지런을 떨었다. 오늘은 다희의 약사고시가 있는 날이다. 배고프지 않게 저녁에 미리 준비해둔 김밥과 점심에 먹을 김밥 그리고 따뜻한 보리차를 보온병에 넣어서 챙겨 주었다. 그리고 다희를 태우고 시험 치는 장소까지 가는데 평소보다 차가 많은 것 같아 늦을까 봐 조바심이 났다. 다행히 시험 30분을 남기고 시험장까지 올 수 있었다.


“심호흡하고 천천히! 서두르지 말고! 알았지?”

“응 걱정마! 추운데 어서 들어가! 들어간다!”


다희는 내 볼에 키스를 하고 교실로 들어갔다. 나는 다희가 안 보일 때까지 계속 지켜 보았다. 그리고 시험이 끝나는 시간까지 그 자리에서 자리를 지켰다. 내가 지금 다희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이것 밖에 없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7살 이후 해 보지 않았던 기도를 했다. 1월 말에 빌딩 사이로 부는 차가운 바람은 두터운 옷을 뚫고 맨 살에 바늘이 되어 꽂혔지만 나의 의지를 꺽진 못했다.


“자기야!”

잠깐 뒤돌아서 떨어지는 석양을 보고 있는데 다희가 언제 왔는지 팔짱을 끼며 반갑게 나를 부른다.

“어 수고했어! 시험은 어땠어?”

“뭐 그럭저럭.. 그나저나 언제 왔어? 난 자기 안 올 줄 알았는데. 의외인걸!”

“으..응.. 뭐.. 좀 전에.. 배고프지? 맛있는 거 먹으러 갈까?”

“웅웅. 정말 배고프다! 오늘은 정말 많이 먹을 거야! 호호홋”


나는 남산에 있는 호텔 레스토랑으로 다희를 데리고 갔다. 그리고 칸막이가 쳐져 있는 곳에 자리 잡은 후 주문을 하였다. 호텔 레스토랑이라 그런지 격식이 있었다. 다희는 파스타를 시켰고 나는 스테이크를 시켰다. 그리고 와인도 한 병 시켰다.


“와! 정말 맛있다. 이렇게 맛있는 파스타는 처음이야! 자기도 먹어 봐!”

다희는 포크에 파스타를 말아 내 접시 위에 올려 준다. 나는 스테이크를 잘라 다희의 접시 위에 올려 줬다. 다희는 정말 맛있게 잘 먹었지만 나는 스테이크가 입에 잘 들어가질 않았다.

“자기 어디 안 좋아? 아님 음식이 별로야?”

“아.. 아냐! 맛있어”

“근데 왜 그래. 잘 먹질 못하는 것 같아서 그래!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응 그럼 나처럼 건강한 사람이 어디 있겠니? 하하”

“호호 그건 맞는 말이지! 그럼 한잔할까?”

다희는 와인 잔을 들고 살짝 부딪쳤다.

‘채에엥’

맑은 소리가 오랫동안 귓가에 울린다.


나는 주머니에 있는 상자를 조물락거리고 있었다. 갑자기 그 생각을 하니 숨이 턱 막히는 게 왠지 가슴이 답답해왔다. 와인 잔을 들고 한입에 톡 털어 넘기니 향긋한 꽃 향기와 함께 씁쓸한 뒷맛이 올라온다. 다희가 식사를 다 했는지 만족한 모습으로 등을 편다.


“아! 배부르다! 정말 모처럼 맛있게 먹었네! 나 정말 많이 먹었지?”

다희는 나를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지금 이 순간 내 눈에는 다희의 얼굴보다 더 빛나는 건 없어 보였다.


“다희야! 이거···”

나는 주머니에서 조물락 거리던 상자를 다희 앞에 올려 놨다.

“어! 이게 뭐야? 생긴 모습은 반지 같은데? 맞아?”

다희는 상자를 받고는 어떤 선물일까 궁금해 하는 아이처럼 신나 했다. 다희가 상자를 잡고 열려고 할 때 나는 용기를 내어서 말을 했다.


“다희야! 우리 결혼하자!”


이 한마디 내뱉기가 그렇게 힘들었나? 그 말을 하고 나니 속이 후련하기도 했지만 마음 한 구석에는 알 수 없는 불안함이 엄습하기도 했다. 물론 같이 동거를 하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엄연히 남남이다. 결혼이라는 건, 같이 동거하고 있는 사람이라도 자신의 인생을 함께 가야 할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라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다. 동거인은 집을 나가면 남남이지만 결혼을 하는 순간 서로의 보이지 않는 끈에 구속되는 것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회에서도 보호자라는 말로 묶어 버린다.


다희는 상자를 열려다 그대로 굳었다.


세상의 모든 움직임이 멈췄다. 시간도 멈추고 흐르던 공기도 멈췄다. 나의 눈도 다희의 손가락에 고정되어 멈췄다.


그 순간이 얼마나 길던지···


영겁이 지난 것 같던 시간이 지난 후에야 다희가 입을 떼었다.

“정..말? 나를 아내로 맞이 하고 싶어?”

다희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며 촉촉했다. 눈을 들어 다희를 보니 이미 얼굴은 눈물투성이다. 나는 말 대신 다희에게 가서 그녀의 얼굴을 안아주었다. 다희는 내 가슴에 얼굴을 묻고 뜨거운 눈물을 한없이 흘렸다. 나중에는 조그맣게 ‘엉엉’거리며 그렇게 눈물을 쏟아냈다.


“사전에 말 좀 하지 내가 얼마나 놀랬는지 알아?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고!”

다희는 내 어깨를 그 작은 주먹으로 치며 흥분을 가라 앉히지 못했다. 왼손약지에는 오늘 내가 선물한 반지가 반짝이고 있었다.

“사전에 말하면 네가 반대할까 봐! 겁났어!”

“피이! 우리가 같이 산 게 얼만데? 설마 내가 딴 사람하고 살겠어? 바보!”

“고마워 다희야! 정말 고마워!”

“자기 정말 날 사랑해?”

“그럼”

“그럼 사랑한다고 말해 줘!”

“여기서?”

호텔을 나와서 남산 타워 가는 길에는 퇴근하는 사람 저녁 운동 삼아 산책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다.

“웅! 꼭 듣고 싶어! 어서어~~”

“흠! 흠!... 다희야 사랑해!”

나는 내가 낼 수 있는 가장 큰 목소리로 하늘을 향해 소리쳤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깜짝 놀라 우리를 쳐다 보았다. 일부는 쑥떡이고 있었다.

다희는 갑자기 내 손을 잡더니 한 쪽으로 빠르게 데리고 간다.

“누가 그렇게 크게 말하래? 아이참! 부끄러워 죽겠네!”

가로등 불빛에 비친 다희 얼굴은 붉게 상기되어 있었지만 표정은 만족해 보였다.


우리는 다음날 동사무소로 가서 바로 결혼 신고를 하였다. 결혼식은 다희가 졸업하고 우리가 독립할 때 그때 조촐하게 하기로 했다.

드디어 법적으로 나는 가장이 되었고 내가 보호해야 할 가족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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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밝혀지는 음모 +1 21.07.01 184 5 9쪽
44 문회장의 죽음 - 2 +1 21.06.30 184 7 8쪽
43 문회장의 죽음 +1 21.06.29 242 6 10쪽
42 문회장 피격 당하다 +1 21.06.28 194 7 9쪽
41 여우사냥 - 2 +1 21.06.25 179 6 8쪽
40 여우사냥 +1 21.06.24 196 6 9쪽
39 재개발지역 +1 21.06.23 196 7 9쪽
» 프로포즈 +1 21.06.22 199 6 9쪽
37 세기의 날치기 사건 +1 21.06.21 205 5 9쪽
36 어느 조합장의 죽음 +1 21.06.20 218 8 18쪽
35 수련 +1 21.06.19 228 6 11쪽
34 숨은 꿩 찾기 - 3 +1 21.06.19 216 5 16쪽
33 숨은 꿩 찾기 - 2 +3 21.06.18 218 4 11쪽
32 숨은 꿩 찾기 +1 21.06.18 219 5 10쪽
31 미인계 - 2 +1 21.06.17 227 4 9쪽
30 미인계 +1 21.06.17 241 4 12쪽
29 후보 제거 +1 21.06.16 232 4 9쪽
28 파견 +1 21.06.15 252 6 11쪽
27 다희의 위기 - 2 +1 21.06.14 262 5 13쪽
26 다희의 위기 +1 21.06.14 257 6 10쪽
25 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 3 +1 21.06.11 242 5 14쪽
24 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 2 +1 21.06.11 255 4 7쪽
23 보라카이에서 생긴 일 +1 21.06.10 266 4 9쪽
22 일본출장 - 6 +3 21.06.09 283 6 9쪽
21 일본출장 - 5 +1 21.06.08 275 6 9쪽
20 일본출장 - 4 +1 21.06.07 271 5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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