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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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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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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18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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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북명(北冥)

DUMMY

※※※



백연으로썬 처음 접하는 무학의 이름이었다.


‘이게 천마가 지녔던 무학의 근간인가.’


백연은 생각했다.


마도 무림에서 천마의 위명은 거대한 것이었다. 당연히 그가 사용했던 무공이나, 검(劍), 또는 그가 즐겨 먹었다는 음식 마저도 숭배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신교가 자리를 잡은 천산(天山) 또한 천마가 그곳에 살았었다는 설화 탓에 신교의 근거지가 되었으니까.


그런만큼 천마의 무공에 대해서 간간히 알려진 것들이 남아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군림보(君臨步). 혹자는 천마군림보라고 칭하기도 하는 그것은 수많은 이야기를 따라 전설처럼 남아 있었다.


백연 자신도 그런 이야기를 길거리에서 주워 들으면서 자랐기에 똑똑히 기억한다.


세 걸음이면 천하가 고개를 숙인다고.


‘그건 어느 정도 사실이었던 것 같은데.’


그가 일기장의 기억 속에서 두눈으로 목도했던 신공. 수천에 달하는 황군을 일거에 제압한 걸음이 아마 후대에서 군림보라 일컬었던 무공이겠지.


허나 백연은 그 어디에서도 북명신공이라는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다. 이 비급에 담겨있는 무학은 대체 어떤 것일까.


“북명(北冥)이라......”


백연이 표지를 쓸며 중얼거렸다.


보통 신공절학은 그 이름부터 무학에 담긴 의념이 드러나기 마련. 헌데 북명이라는 어구에 담긴 의념은 무엇일지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어두운 북해(北海)를 일컫는 말인데, 심상에는 한없이 차갑고 어두운 바다의 파도밖에 떠오르지를 않았다.


현음공을 자아낼때와 비슷한 감각이라고 해야할까.


잠시간 그 이름에 대해서 고민하던 백연은 천천히 책장에 손을 올렸다.


“후우.”


심호흡한 백연이 입술을 핥았다. 바싹 마른 입가에 긴장감이 묻어나오는 듯 했다.


“이것도 펼쳤다가 앓아눕는건 아니겠지?”


천마의 영성이 서려있다면 정말로 무공에 먹힐법도 했다. 물론 백연이 일기장에서 목도한 천마의 성격은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지만, 모르는 일.


그것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천마의 무학의 근간을 이루는 신공이 얼마나 난해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지나친 상승의 격을 지닌 무공은 익히는 것 자체가 백연 자신의 몸에 해가 될지도 모르는 까닭이다.


“......그래도.”


백연의 시선이 곁에 얌전히 놓인 일기장으로 향했다.


그 안에 담겨있던 천마의 이야기. 지금도 백연의 마음 속에서 쉴새없이 일렁이는 감정의 파문을 그려내고 있다.


짧다면 지극히 짧은 하루의 이야기만을 본 뒤에도 바로 이해할 수 있었다. 그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중원을 떠났는지.


그가 어떤 성정의 사람이었는지.


그런 사람이 남긴 물건이다.


무연은 이것을 하령에게 맡겼고, 하령은 그를 선택해 믿고 전해주었다. 보고 익히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백연은 하령을 믿었으며, 또 일기장에 깃들어 있던 하루를 직접 목도했기에.


“죽기야 하겠어?”


긴장감 어린 웃음을 뱉은 백연의 손가락이 낡은 비급의 겉장을 가벼이 넘겼고.


[누군가가 내민 손을 붙잡고 일어선 아이는, 이제 모든 지친 이들의 꿈을 이루어주고자 하는 소망을 품었다. 허나 만물의 뜻을 일신(一身)에 담으려 하는 이는 끝없는 방황 속에서 길을 잃기 마련이니.]


[모든 이의 꿈을 등에 지고도 흔들리지 않는 스스로를 먼저 닦고자 하였다.]


[그를 위해서는 아(我:나) 자신이 곧게 서야 하니. 그를 이루고자 세상 모든것이 쏟아져 들어와도 결코 변하지 않는 북해의 바다를 의념으로 삼았다.]


[모든것은 나에서 시작해서 다시 내게로 돌아와 하나가 되리니.]


[천하 만물은 내게서 오롯이 합일(合一)을 이룰 것이다.]


어느새 자색으로 빛나기 시작한 소년의 눈에, 낡은 비급의 구결이 깃들기 시작했다.



※※※



광오하다.


지금 이 순간 백연의 머릿속에서 휘몰아치고 있는 생각이었다.


그 신념이, 이루고자 하는 꿈이 터무니없이 드높았다. 서문에 적힌 내용과 한치 다르지 않았다.


천마(天魔)는 세상을 오시하는 고고한 무인이라 했던가.


그가 일기장 속에서 본 청년의 모습만으로는 왜 그러한지 이해할 수 없었건만. 북명신공의 구결을 빠르게 머릿속에 새겨넣고 있는 지금은 이해할 수 있을것만 같다.


‘스스로가 하늘에 닿고자 했다.’


그 발상부터가 말이 되지 않는다. 모든 이들의 소망을 이뤄주기 위해, 홀로 완벽한 힘에 닿고자 했다. 아(我)가 곧게 서야 한다는 말은 그런 발로에서 나온 것이었다.


합일(合一).


세상 모든것을 받아들여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천마 자신의 몸에서 완전한 합일을 이루도록.


다른 관점에서 보면 일원(一元)이다. 모든것이 천마 본인으로부터 뻗어나간다는 이야기인데, 이토록 광오할 수가 없다.


콰아아아아-!


귓가에 파도치는 소리가 몰아친다. 백연의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었다. 바닥에 가부좌를 틀고 앉은 소년의 몸 주위로 휘도는 것은 막대한 자연지기.


암야서고의 지하임에도 어디서 몰려왔는지 모를 거대한 기운이 태풍처럼 휘몰아치며 그를 향해 쏟아진다.


북명신공의 구결은 길고 방대했다. 지극히 상승의 무공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백연에게는 그리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몇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그 첫번째는 북명신공의 묘리가 이미 경험해본 적이 있는 것인 탓이었다.


비급에 담겨있던 북명신공은 다름아닌 절세심법의 일종.


그 발상은 단순하고도 간단한 하나의 원리.


천하 만물(萬物)의 기운을 자유자재로 흡수해 받아들이는 것이 북명신공의 첫번째 묘리였다. 그 한계가 끝이 없었는데, 백연이 느낀 바로는 생기(生氣)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것은 물론이요 다른 내공심법으로 연성된 진기조차 빨아들일 수 있는 듯 했다.


그런고로 천하의 자연지기를 마음대로 흡수할 수 있는 것은 당연한 이치.


허나 동시에 보자마자 이것이 아무나 익힐 수 있는 무공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애초부터 자연지기에 익숙하다는 것을 전제로 삼아. 마치 본인이 만물의 기운을 처음부터 느낄 수 있었다는 듯이......?’


백연은 생각했다.


아마 천마 본인은 그런 체질이었을 것이라고. 지금의 백연이 느끼고 있는 감각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 몸에서 깨어난 첫날부터 유독 기운이 달라붙는다 느꼈었는데, 일기장 속 천마의 기억에 동화되었을 때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은 감각이었다.


애초부터 천마는 천하의 기운에게 사랑받는 몸이었던 것이다.


결국 이런 체질이 아니라면 그리 쉽게 기운을 다뤄 북명신공을 익힐 수는 없을 터.


어떻게 보면 무당산에서 보았던 삼봉 진인의 무흔과도 비슷한 면모가 있었다. 태허(太虛)의 묘리. 일신을 비워 대자연을 단전으로 삼던 괴력난신의 흔적.


‘천하의 기운을 자신의 것으로 삼는다는 점에서는 비슷해. 하지만......’


명백히 다른 것이 있었다.


‘무연은 비울 생각조차 하지 않았어. 처음부터 모든걸 끌어안고 가는 사람.’


삼봉의 무학에서 느껴진 묘리는 비우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비워, 자신의 몸을 자연지기가 거쳐갈 통로로 삼는다. 한없이 평범해진 육신을 길로써 삼아 천하 만물이 지나갈 방향만을 엮어내는 것.


순리(順理)를 거스르지 않으며 세상을 굽어보는 것이 삼봉의 무학이었다.


하지만 천마는 그와는 정반대를 바라본다.


이 세상의 모든 기운을 받아들여 자신의 몸을 그릇 삼아 담아낸다. 온갖 잡다한 기운들과 몸에 해가 될 수 있는 악기(惡氣)까지도.


보통 사람이라면 단번에 주화입마에 걸리고, 진기가 뒤섞여 몸을 망칠 일이었다. 그러나 천마는 그렇지 않았다.


북명(北冥).


한없이 깊고 어두운 바다에 수천개의 각기 다른 강물과 빗물이 쏟아져 들어온다 해도 그 깊이와 색은 변함이 없다. 바뀌는 일도 없다. 스스로가 완전히 홀로 섰기에.


그렇기에 북명신공의 가장 중요한 구결과 의념은 천하 만물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것에 있지 않았다.


‘하나로 엮어내는 것이 더 중요해.’


그렇게 받아들인 기운을 하단전 기해혈(氣海穴)에서 하나로 합치는 것. 어떠한 기운이라도 곧 북명신공의 기운 아래 동화시켜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 그야말로 몸에 끝없는 북해(北海)를 담아내는 꼴이다.


그 자신이 가장 깊은 근원이라고 주장하듯이.


어찌보면 순리를 거스르는 일이었다. 달리 말하면 역천(逆天).


지금 이 순간.


콰아아아-


소년의 몸을 따라 휘돌던 기운이 점차 몸속으로 거칠게 스며든다. 땅 기운부터 바람의 진기, 고여있던 기운과 사방을 떠돌던 알 수 없는 잡다한 기운마저도.


그 거대한 기운의 운집체가 혈맥을 따라 흐르며 날카로운 통증과 고통을 불러일으킨다. 온몸 세맥을 금방이라도 찢어놓을 것 같은 흐름 속에서 백연은 기운들을 인도하기 시작했다.


날뛰는 기운들을 잡아채 혈맥의 흐름에 동화시킨다. 어느 순간 몰려든 기운들은 하단전 기해혈에 이르러 뭉치며 하나의 원을 그리며 크게 회전하기 시작했고.


‘합일(合一).’


백연의 머릿속에 이어진 북명신공의 구결과, 그 흐름이 합치되는 순간-


화아아아악!


백연이 눈을 떴다.


미려한 소년의 눈매 사이로 시리도록 투명한 자색 안광이 뚝뚝 흘러내렸다. 어느 순간부터 그의 옷자락이 거칠게 펄럭이는 중이었는데, 몸에서 새어나오는 거대한 진기의 여파 때문이었다. 동시에 백연의 몸 전체를 따라서는 시린 뇌광이 분분히 튀어오르며 발광하는 중이었다.


은하수로 된 옷자락을 마치 수겹을 겹쳐 입기라도 한 듯이.


“이거 너무......”


우웅-


뱉어낸 육성이 삽시간에 증폭되며 방 안을 타고 메아리치듯 울렸다. 스스로의 목소리에 흠칫 놀란 백연이 입을 다물었다.


‘성공했다.’


북명신공의 진기 흐름을 그대로 몸에 체화시키는 것에 이르렀다. 지금 당장 검을 뽑아들어 휘두른다면, 무당산에서 찰나지간 손에 쥐었던 초식, 여뢰를 다시 한번 엮어내는 것도 어렵지 않을 듯 했다.


그러나 소년은 그런 것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위험한 무공이다.’


터무니없이 쉽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마치 처음부터 백연의 몸에 딱 들어맞는 무공이었다는 듯이.


하지만 동시에 그 때문에 북명신공에 끝까지 입문할 수는 없었다. 지금 몸속에서 북명신공을 엮어낸 이 찰나에도 저릿한 통증이 수십차례 몸을 난자한다. 그의 몸 속에 이미 또다른 근원이 또아리를 틀고 있던 탓이었다.


‘태청신공이......’


파스슷.


손등을 타고 튀어오르는 뇌기. 전부 막대한 반발로써 일어나고 있다. 태청신공의 진기가 북명신공의 힘과 충돌하고 있는 것인데, 해결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태청신공의 진기를 흩어 북명신공에 합일시키면 그만.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


그런 것은 애초에 그에게 주어진 선택지가 아니었다. 북명신공은 천마 무연의 무학. 그것을 온전히 백연 자신의 것으로 만든다면 지금보다 강해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백연은 이 무공을 누구에게도 전수할 수도, 그럴 생각도 없었다.


자신과 같은 체질을 지닌 사람이 아니면 배우는 것조차 어려울 뿐더러, 이것이 너무나도 위험한 무공인 까닭이었다.


‘흡성대법이라는 무공이 있다 했나.’


어쩌면, 북명신공은 타인의 몸속에 깃든 기운조차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불가능하지 않다. 외려 안되는게 이상할 정도의 원리. 그릇된 손에 들어가면 한없이 위험해지는 무공이다.


또한 그러한 위험성을 제쳐놓더라도 백연은 그 자신만을 위한 심법을 그의 무공 근간으로 삼을 생각이 없었다. 태청신공은 곤륜파 무맥의 기둥을 이룰 신공.


어떠한 순간에도 청휘의 속삭임이 담긴, 곤륜의 뿌리를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곤 해도.’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북명신공을 남긴 천마는 무엇을 원했을까. 이 심법이 온전하게 이어지기를 원했기에 이를 남겨두었을까.


‘아니.’


그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적어도 백연이 스치듯 본 그의 이야기 속에서는.


‘무공이 중요한게 아니야. 그 안에 깃든 의념이......’


천마 무연.


모두의 꿈을 안고 가고자 하는 이의 소망. 태조에 등을 돌리고, 한 눈을 내어 놓으면서까지 새로이 나아가고자 했던 이의 무학에 담긴 하나의 의념.


합일(合一).


찰나지간.


백연은 문득 자리에서 일어나 있었다. 미친듯이 펄럭이는 장포 자락을 흩날리며 검을 쥔 그가 숨을 길게 뽑아내었다. 분분히 튀어오르는 뇌기를 감은채로.


‘그가 세 걸음을 내딛었을때.’


백연은 그의 기억속 감각을 공유하고 있었다. 일기장에 새겨진 천마의 압도적인 영성으로 말미암아 벌어졌던 놀라운 일.


그 말인즉슨 백연은 아주 잠깐이나마 천마의 감각에 닿았었다는 소리와도 같다.


‘세상이 뒤흔들렸고.’


그 찰나의 감각을 그대로 뇌리에 새긴채로, 다시금 하나의 기억을 불러온다. 무당산 위에서 뽑아내었던 일격.


태허(太虛)의 묘리를 다시금 한손에 쥔다.


세상의 자연지기를 쥐어 휘두르던 일격. 그 모든 기운을 북명신공의 묘리로써 합일 시켜 하나로 엮어내고.


‘그 한계는 무극(無極:끝이 없음)에 이르니.’


하나의 구체화된 의념이 뇌리에 벼락처럼 새겨지는 순간, 백연은 그대로 검을 그어내었고.


화아아아악-!


일순 소년의 시야는 순백으로 물들었다.


일기장 속, 그날 흩날리던 눈보라 속에 선 것처럼.



※※※



“......응?”


하령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어린 성화방주의 커다란 두 눈이 깜빡였다. 무언가를 느낀듯이 고개를 갸웃 기울인 그가 이내 콧등을 찡그렸다.


“언제 나오려나.”


입을 벌려 작게 하품한 하령이 손짓하자 곁에 쌓여있던 책이 차곡차곡 날아올라 다시 서고에 꽂혔다.


늦은 밤이었다.


백연이 무연의 흔적을 받으러 들어간지도 몇시진이 넘게 지난 시각.


한나절이 꼬박 지났음에도 소년이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걱정하던 소홍도 이제는 비급 더미 사이에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을 정도였다.


“뭐가 있길래.”

“......신기한게 있더군요.”


하령이 중얼거리던 그 순간.


사박.


갑작스레 뒤에서 느껴진 기척에 하령이 화들짝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백연?”


하령이 유독 당황한 목소리를 내었다.


“기척이 언제부터 이렇게.......?”

“사정이 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혹시......”


스륵.


사방에 흩날리는 불빛 사이로 백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는 그의 몸은 피투성이였다.


“천 같은거라도 한장만 있을까요.”



※※※



스윽.


백연이 얼굴을 하얀 천으로 문질렀다. 묻어나오는 핏물이 진했다. 그것을 보며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좀 심하네요.”

“야, 그건 내가 할 말이지. 뭘 했길래 그렇게 피투성이가 된거야? 진짜로 깜짝 놀랐네.”

“무공을 좀 만들고 왔습니다.”

“무공을 만들......그게 그렇게 쉽게 던질 말이야?”


하령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앉아서 고개를 저었다. 백연은 그 모습을 보며 옅은 미소를 흘렸다. 수십권의 비급을 쌓아놓고 그 위에 가볍게 앉아있는 모습이 재밌었다.


“여튼, 뭐가 있었는데?”

“일기장과 비급이 있었습니다.”

“아하. 무연답네.”


고개를 끄덕인 하령이 재차 물음을 던졌다.


“뭐라도 좀 얻어낸게 있어? 무연은 정말 중요한 일인 것처럼 이야기 했었거든. 아직도 머릿속에 선명해. 평소에 여간 부탁하는 것이 없던 사람이 그러면 들어줄 수 밖에 없게.”

“......얻어낸 것. 있죠.”


백연이 중얼거렸다.


“우선은 일기장에 담긴 이야기부터......”

“아니.”


하령이 백연의 말을 끊었다. 늘어진 소매로 팔짱을 낀 모습이 퍽이나 단호해 보였다.


“그건 안 들을거야. 무연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그가 오로지 네게만 남긴거니까. 내 임무는 그걸 전해주는 것이었고, 그 일은 이제 끝났어.”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궁금하긴 하지만, 녀석의 삶을 내 호기심으로 소비할 생각은 없어.”


하령의 말에 백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하령의 결정이 그렇다면 백연도 구태여 말을 꺼낼 생각은 없었다. 무연의 삶에 대한 것은 백연 스스로가 고민하며 알아가도 괜찮겠지.


“그나저나 새로 만들었다는 무공은 뭐야?”

“일기장과 비급이 남아 있었다 했죠. 비급을 보았는데, 그것을 그대로 익힐 생각은 없어 새로운 무학을 엮어냈습니다.”


백연이 중얼거렸다. 여전히 검끝의 감각이 손에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그 묘리만을 가져와서.”

“......그게 그렇게 쉽게 되는거였구나. 음.”

“무당산에서 삼봉진인의 무흔을 보고 온 터라. 훌륭한 재료가 두개나 있는데 손질조차 못하면 안될 일이죠.”

“백연. 내 앞에서 말고 어디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알았지?”


어느새 앉아있는 백연의 곁에 다가와서 그의 머리를 툭툭 쓰다듬는 하령의 표정이 진지했다.


“재수없다는 소리 들을라.”

“예?”

“아니야. 그래서 결과가 어떻게 된건데?”


백연이 손아귀를 쥐었다 폈다.


“절반의 성공입니다. 아니, 저번에도 절반이었으니 이제 한 삼분지 이의 성공이라고 해야하나.”

“응? 어째서?”

“구명절초를 만들었습니다. 필시 목숨을 한번쯤은 구할 수 있을 무공인데.”


백연이 하령을 올려다보았다. 그에 하령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뭐, 뭔가 문제가 있어?”

“......시험해 볼 수가 없습니다. 이거, 죽기 직전에나 쓸 수 있는거라.”

“......?”

“저는 완성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군요.”


생긋 웃은 백연이 덧붙였다.


“어쩌면 한번 죽어보면 알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령이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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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약속 +5 24.04.19 1,400 47 16쪽
» 북명(北冥) +7 24.04.18 1,445 56 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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