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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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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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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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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9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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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푸른 별(7)

DUMMY

※※※



도가 청성.


그 기운이 티없이 맑고 정순하다. 사시사철 푸르른 숲으로 둘러싸인 이 청성산의 풍광마냥.


숨이 탁 트이는 듯한 청량함으로 기경팔맥과 십이경맥 전체를 휘돌며 상처를 어루어만진다. 봄날 바람결에 올라탄 듯한 감각에 백연은 크게 숨을 들이켰다.


‘반발이......’


없었다.


본디 지금의 몸 상태로는 쉬이 기운을 감당할 수 있으리란 확신이 없었다. 천마의 무공을 펼친 반동 탓이었다. 온몸 세맥이 찢겨나가지 않은 것이 천운이라 여겨질 정도였기에.


허나 북명신공의 묘리로 받아들인 임지승의 기운은 외려 내상이 가득한 육신에 치유로 작용하는 양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기반이 운연동공과 비슷한 풍기(風氣)에 근원을 두고 있기 때문일까.


동시에 소년은 이해했다. 어찌하여 청성파의 절기가 청운적하검법인지. 그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두가지 성질의 기운을 엮어 내치는 검이었나.’


청운검과 적하검이라 불러야 할 것이다. 그런 두 검을 합일시켜 펼치기 위해서는 이리 맑은 기운이 아니면 불가하겠지.


화아아악-


푸른 기운이 끝도 없이 그의 몸에 깃든다. 한 무인이 수십년간 일신에 쌓아온 내공의 양. 그 거대한 진기가 백연의 몸에 온전히 전해지고 있었다. 본래 격체전력(隔體傳力)의 수법은 커다란 내공의 손실을 동반해야 옳음에도.


‘......북명.’


어느새 백연의 몸을 따라서는 다시금 희미한 별빛이 감돌고 있었다. 깨져나갔던 호신기가 물결처럼 파문을 그리며 옷자락 위로 덧씌워졌고, 투명한 시선에는 자색 기운이 일어났다.


그렇게 영원같은 찰나가 지났다.


“......염치 불구하고 부탁하겠네.”


거친 숨결 속에 가라앉은 임지승의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백연이 맑는 눈으로 그를 응시했다.


“청성의 아이들을 구해주게.”


소년이 천천히 눈꺼풀을 내리깔았다. 길다란 눈썹 아래 비친 자색 빛살이 일렁이며 흔들렸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좋습니다.”


말을 들었을까. 꼿꼿이 선 임지승의 고개가 푹 가라앉았다.


그 순간이었다.


쩌억.


“하, 하하......동귀어진의 수법이라. 크게 당했군.”


저편에서부터 일어난 길쭉한 기파가 돌연 눈앞에 현현했다. 임지승의 뒤에 서서 다 찢어진 옷자락을 걸친채로 창을 늘어뜨린 나찰극마. 한눈에 보아도 상태가 온전하지 못했다.


창을 쥔 팔뚝의 뼈까지 드러나있었다. 직후 그 위로 어느 순간 붉은 물결이 파도치듯 일어나더니, 스스로 상처를 회복하는 기묘한 광경. 마치 홀로 시간을 수천배로 가속해 살고 있는듯 보이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온몸에 상처가 가득했다. 아직 채 회복되지 못한 육신이 꿈틀거리며 재생을 반복하는데, 그 속도가 일전보다 현저히 느렸다. 거칠게 흘러나오는 육성마저 그의 힘이 크게 소진 되었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임지승의 일격이 큰 타격을 입힌 것이었다.


‘예상대로였나.’


천하제일의 외공이라고 했지만, 무한한 회복은 불가능하다. 체내의 진기를 전부 소진하면 저것도 끝일 터. 아니, 그 전에 회복할 수 없는 일격을 먹이면 그만이다.


“짜증나는 놈이었군. 귀찮게 했으니 보답으로 그 머리는 가져야겠다.”


말과 함께 임지승의 목을 향해 길쭉한 쌍극이 휘둘러진 순간, 백연은 한없이 여상한 일보를 내딛었다.


후욱.


바람소리가 귓가를 스쳤다.


어느 순간 나찰극마의 앞에 선 백연. 길게 뻗은 여휘는 우상단을 격하고 있었다. 마치 시간을 건너뛴 것만 같은 움직임.


뇌인(雷印)의 일격이 나찰극마의 코앞에 새겨지기까지가 찰나였다. 순간 쪼개진 간극 속에서 눈을 부릅뜬 나찰극마가 두팔을 겹쳐 검격에 들이밀었고.


콰아아아아아앙!


굉음과 함께 흑색 신형이 뒤로 포탄처럼 날아가 숲속으로 사라졌다.


쪼개진 빛살이 검로를 따라 너울지며 흩어지는 찰나. 백연은 손을 뻗어 임지승의 눈을 쓸어내려 감겨주었다. 직후 그가 다시 한번 일보를 내딛었을때, 그는 소홍의 곁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괜찮아?”

“응. 그런데 너는......”


소홍이 그를 올려다보며 눈을 크게 뜬다. 백연은 신경쓰지 않고 사형의 몸을 살폈다.


“많이 다쳤네. 기운을 불어넣어 줄테니 운기하고 있어.”

“괜찮겠어?”


손목을 가벼이 쥐고 묻는다. 그에 백연이 살풋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천천히 백연을 응시하던 소홍이 이윽고 말했다.


“......이기고 와.”


백연은 옅은 미소를 짓고는 일어섰다.


직후 소년의 발이 흙바닥을 사뿐히 짓눌렀다. 임지승의 육신과 앉아있는 사형의 곁에 경공 여파가 미치지 않도록 조심하면서였다. 곧이어 시야 가장자리의 풍경이 누가 소매로 문대어 없앤것 마냥 푸른 진창으로 화했다.


콰르르르릉-!


경공 여파로 일어난 우렛소리가 뒤편으로 따라붙는다.


그 소리는 멀어지고 있었다. 비룡축전의 경공 질주가 일전보다 더욱 빨라진 까닭이었다. 온몸에 들어찬 막대한 진기가 큼직한 울림을 반복하는데, 마치 호탕한 임지승의 목소리가 귓가에 틀어박히고 있는 듯 했다.


‘......부월검.’


소년은 생각했다.


소홍의 목숨을 스스로를 희생해 지켜주었다. 무엇으로 갚아도 부족할 일이었다.


그렇게 길쭉하게 늘어진 시야 속, 문득 백연은 시야 한가운데에서 점점 커지는 흑색 점을 인지했다. 그것을 본 즉시 백연의 손가락이 검파를 휘감았다.


비스듬히 검을 쥔 채로 경공을 딛으며 검격을 엮어내기까지가 찰나.


“잡것이......!”


붉은 안광을 흘리며 저편에서부터 빛살처럼 가속해 짓쳐온 나찰극마를 향해 백연이 검을 휘둘렀고.


쩌어어어엉!


벼락같은 검격과 뒤틀린 창격이 충돌하며 허공에 짙은 파문을 그려내었다.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검이 충돌하는 순간 순간적으로 일어난 반동을 휘감고 꽃잎처럼 회전한 백연.


운해비영의 묘리로 창격 권역 안으로 깊숙하게 달라붙으며 눈을 빛낸다. 한순간 나찰극마의 몸이 전부 눈에 들어온다.


‘선명해.’


전부 보였다. 놀랍도록 선명한 감각이 사방 모든것을 뇌리에 그대로 때려박는다. 한계까지 일어난 자령안의 공능이 나찰극마의 다음 움직임을 그대로 예측한다. 임지승의 진기로 다시금 만전, 그 이상까지 회복한 까닭일까.


‘우상으로 일격. 육신의 회복력을 믿고 반격초를 꽂아넣을 셈인가.’


백연은 찰나지간 그의 움직임을 읽었고, 인지와 동시에 검을 뻗었다. 직후 일곱갈래로 쪼개진 하나의 검로가 나찰극마의 육신에 적중.


파바바바바바박!


뱀처럼 꿈틀거리며 뻗어나간 칠성섬뢰의 검로가 나찰극마의 전신을 난자했다. 진한 핏물이 비처럼 터져나왔는데,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크윽, 무슨......?”


당황섞인 나찰극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큼직한 반원을 그리며 백연의 우상단으로 낙하하던 거대한 쌍극이 별안간 허공에서 멈춰선 탓이었다.


백연은 무감한 자색 시선으로 나찰극마를 응시했다. 내뻗었던 검을 회수하면서였다.


“사소한 것으로도 구결은 비틀리기 마련인데, 근맥의 움직임은 어떨지.”

“뭐......?”

“네놈은 끊어진 근맥도 바로 회복이 되나?”


툭 뱉음과 동시에 백연이 그림처럼 일어섰다. 나찰극마의 어깻죽지 아래를 깊이 파고들었던 자세 그대로 올려치는 일검.


옥룡천강의 초식을 펼치는 그 순간이었다.


끼긱.


별안간 새빨간 눈동자가 길쭉하게 움직였다. 적색 안광이 허공에 붓자락 마냥 길쭉한 호선을 그려내기까지가 찰나였다. 서 있던 자세에서 돌연 백연의 코앞에 얼굴을 들이미는 것이 시간을 뚝 끊어 건너뛴 듯이 기괴했다.


동시에 그의 창은 어느새 백연의 검과 겹쳐 있었다. 길쭉한 창날이 검신을 휘감아 땅에 짓누르고 있는 형국.


“그것 참 놀라운 감각이군. 내가 펼치려는 창격 구결에 필요한 근맥을 그 찰나에 전부 끊어 공격을 막았다?”

“어렵진 않았는데.”

“천고의 자질이다. 암화, 암화 하던 이유를 알겠어.”


그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광기 섞인 눈매를 하고 있음에도 눈이 붉어지기 전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한다.


어째서인지 백연의 눈에는 보였다. 몸 전체를 따라 휘도는 진기. 역행의 형태로 휘도는 중이었다. 그로써 일신의 파괴력을 한없이 증가시키는 독특한 무공이다. 주화입마의 진기 흐름에서 영감이라도 얻었을까.


‘몸을 파괴시키는 힘인데.’


그것을 외공으로 받아내고 있다. 그럼에도 본래라면 머리에 영향을 미쳐 이성을 잃고 본능대로 싸워야 옳았다.


허나 부궁주는 아니었다. 광기의 영향을 제어하고 있는 듯 했는데, 한계까지 달아오른 자령안의 시야에는 보였다. 휘도는 진기가 상단전에까지는 이르지 못하게 눌러두고 있다는 것이.


“하지만 아쉬울 따름이야. 여기서 그 자질이 저물게 되었으니.”


창에 짓눌린 검이 한없이 무겁게 느껴졌다. 그러나 백연의 신경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다. 몸에 담겨있는 막대한 양의 진기를 미친듯이 눈에 퍼붓는다.


안법을 통해 시야에 닿는 모든것을 남김없이 읽어내고 받아들여 해체한다.


그것은 그가 가진 가장 뛰어난 재주.


찰나지간 눈에 들어온 구결과 진기의 흐름을 낱낱이 쪼개 다시 엮어내 손에 쥐는 순간, 백연은 크게 숨을 들이켰고.


“맹화(猛化)를 쓴 내가 전력을 다하기로 한 이상, 너는 이미 죽은것과 다름이 없지.”

“......”

“남길 말이 있나?”


이를 드러내며 웃는 나찰극마를 올려다보며 백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거 아나? 네놈들의 사냥개도 나를 처음 만났을때 똑같이 말했었는데.”

“그게 어쨌다는......”

“놈한테 권법 묘리를 받았다. 꽤 효율적인 기예던데. 나선 경파로 파괴력을 증대시키는 방식......네놈이 준 것보다는 훨씬 쓸모가 있어.”

“내가 준것?”


의문을 표하며 고개를 갸웃 기울이는 나찰극마. 그를 보며 백연이 여상히 눈매를 쓸었다.


직후였다.


두근.


커다란 울림과 함께 시야가 비틀렸다.


찰나지간 귀에 찢어지는 비명소리가 수십, 수백이 겹쳐 스친다. 그와 동시에 온몸에 휘돌던 진기가 일제히 역류하기 시작. 사방의 소리가 침잠하며 몸속에 흐르는 핏물의 소리가 더없이 선명하게 들려온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물속으로 침잠하는 듯한 느낌. 온몸의 감각이 무뎌지고, 한없이 날카로운 기세만이 한곳으로 수렴한다. 그와 함께 끊임없는 이명(耳鳴)이 길게 이어지며 모든 소리를 틀어막는다.


그 속에서 소년은 길게 숨을 들이쉬었다.


하단전 깊은 곳에서부터 하나의 기운에 집중해 끌어올린다. 사방이 검게 물든 바닷속에서 한점의 별빛을 띄워올리듯이.


그렇게 떠오른 태청신공의 뇌기가 상단전을 휘감으며 작열하는 순간-


화아아아악-!


비틀린 시야가 되돌아온다. 여전히 날카로운 이명과 무뎌진 감각은 그대로였으나, 주변의 풍경만큼은 더없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때문에 보였다. 경악한듯 부릅뜬 나찰극마의 두 눈과, 그 속에 비친 스스로의 모습이.


“이거, 느낌이 별로인데.”


투명하던 자색 빛깔에 불그스름한 기운이 섞여서 흘러내린다. 자홍색(紫紅色) 안광을 눈물처럼 흘리고 있는 소년이 여상히 검을 치켜들었다. 그 위를 짓누르고 있던 쌍극을 가을 바람에 실린 낙엽마냥 걷어내면서였다.


“어, 어찌 네놈이 맹화를......!”


나찰극마가 내뱉는 순간, 백연의 검신에 진기가 태풍처럼 휘감겼다. 쪼개진 호흡 속에서 엮어낸 일검이 더없이 쾌속했다.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벼락의 구결이 여휘를 타고 형성되었고.


쩌저저저저저저정-!


소년의 검이 낙하했다.


우렛소리를 휘감은채였다. 쪼개진 인지 속에서 나찰극마의 어깨를 파고드는 검의 형상이 선연했다. 오른쪽 어깻죽지를 뚫고 들어간 검격은 그대로 가슴께의 한중간까지 갈라내었다.


동시에 눈을 부릅뜨며 움직인 나찰극마가 창을 뻗어내었다. 백연과 그의 사이 발치를 향해서 내리찍는 강대한 창격.


콰아아아앙!


여파는 즉각적이었다. 땅거죽이 크게 흔들리며 진동했고, 나찰극마의 신형은 피를 뿌리며 뒤로 튕겨져 나갔다. 스스로의 공격초를 회피기 삼은 것이었다.


그 즉시 백연은 비틀거리듯 일보를 내딛었다. 몸에 전해져 오는 여파를 무시한채로.


곧장 온몸을 무겁게 짓누르는 압력이 사방을 휘감았다. 머리칼과 장포가 미친듯이 펄럭이며 늘어졌고, 뇌광에 휘감긴 소년의 신형은 허공에 흩뿌려진 선혈의 잔상보다도 빠르게 전진했다.


“크윽......!”


백보가 훌쩍 넘는 거리였다. 바닥에 나뒹굴며 착지한 나찰극마가 다시 일어서는 순간, 코앞에 다다른 백연이 진각을 내리찍었다. 치켜든 검신에 또다시 벼락을 휘감은채였다.


콰드드득.


직전과 똑같은 궤적으로 휘어진 검신이 나찰극마의 어깨를 뚫고 들어갔다. 불그스름한 기운과 함께 달라붙던 그의 어깻죽지가 다시금 쪼개지며 울컥 피를 토해냈다.


“크아아악!”


고통에 찬 음성이 울렸다. 그러나 회복도 즉각적이었다. 이제는 속도에서 밀린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대지에 그대로 발을 박아넣으며 창을 꼬나쥔다. 그와 함께 번개같은 창격이 사방에 현현.


사방 허공을 따라 흐릿한 창격이 분열하며 새겨졌다. 쪼개진 인지 속에서 눈에 들어온 수십여개의 창격 연타.


그 순간 백연의 검끝도 똑같이 가속하며 뻗어나갔다.


쩌저저저저저저저저저정!


검과 창이 맞닿은 타점마다 경파가 물결처럼 파문을 그리며 터져나왔다. 찰나지간 수십개의 불티가 비처럼 솟아올랐는데, 전부 나찰극마의 주변을 따라 흩날린다. 채 뻗어나가기 전에 전부 저지당한 탓이었다.


미리 창이 뻗어나갈 궤적을 읽어내기라도 한 듯이.


“......어떻게?”


허탈한 듯 한 목소리가 흘러나왔을때쯤 백연의 검은 다시 떨어지고 있었다. 이번에도 벼락이었다. 온몸에 가득 차 있던 임지승의 진기가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콰드드드득!


검신이 다시금 어깨를 파고들었다. 직후 이를 악문 나찰극마의 창이 휘어지며 전장의 화살마냥 백연을 향해 다채로운 궤적을 그려내었고.


카가가가가강!


전부 틀어막혔다.


이어 다시금 벼락이 현현. 이제는 채 달라붙지도 않은 나찰극마의 육신을 뚫고 몸에 틀어박힌다.


“커헉!”


핏물을 왈칵 내뿜는 나찰극마. 여전히 발악처럼 쌍극을 휘두르며 일격을 가한다. 한 호흡 사이에 십수번에 달하는 창격이 다채롭게 구부러지며 떨어졌다.


푸욱.


이번에는 하나가 백연의 허벅다리에 틀어박혔다. 불타는 듯한 통증이 엄습했지만 백연은 그것을 뇌리에서 차단하며 검을 휘둘렀다.


콰르르르르르릉!


벼락이 떨어진다. 시야가 백광으로 물들었다가 되돌아오길 반복한다. 검격 사이사이에 날카롭게 떨어지는 창격을 되받아칠때마다 백연의 몸에도 길쭉한 상처가 새겨졌다. 동시에 몸에 가해지는 막대한 부하가 느껴졌다.


우득.


팔이 뒤틀린다. 근맥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상단전은 태청신공으로 보호하고 있었으나, 육신은 그렇지 못했다. 주화입마에 빠진 이들의 몸은 쉽사리 망가져버린다고 했던가.


그렇게 벼락을 수차례 내쳤을때, 커다란 소리가 귓가에 들렸고.


콰드드득!


검을 쥔 팔이 부러졌다.


“크흐흐......준비 없이 그 힘을 소화해낼 수 있을것 같았나. 맹화를 훔친건 네 오판이자 실수였다.”


여휘가 몸에 반쯤 박혀들어간채로 웃음을 흘리는 나찰극마. 지친듯이 거친 호흡을 내뱉고 있었지만 여전히 형형하게 빛나는 눈이었다.


“신공을 훔친다고 이길 수 있을것 같았나?”

“......아니.”


백연이 중얼거렸다. 축 늘어진 오른팔 대신 왼손으로 허리춤의 검파를 쥐면서.


“처음부터 질걸 알고 싸웠다? 멍청하기 그지없군. 정파 놈들은......”

“착각하고 있나본데.”


스릉.


새하얀 검신이 허공에 풀려나왔다. 천마의 검을 쥔채로 백연이 나찰극마와 눈을 마주쳤다.


“말했잖아. 네놈이 준건 별로 쓸모가 없었다고.”

“뭐라?”

“궁금했을 뿐이야. 너같은 놈들은 무공을 빼앗기면 어찌 반응할지.”


그렇게 말하며 소년이 검을 뻗는 순간, 나찰극마가 창을 휘둘렀고.


쩌저저저저저저정!


십수개의 창격이, 정확히 똑같은 형(形)을 그린 백색 검신에 틀어막혔다. 그것을 응시하며 나찰극마가 황망한 표정을 지었다.


“......내 창법마저?”

“묘리도, 내용도 어설퍼. 무공에 담긴 의념에 고민이라고는 흔적도 없군. 맹화라는 힘에 얹혀 광기를 풀어내기 위한 수단 정도인가.”


백연이 무표정한 시선으로 나찰극마를 응시하며 검을 치켜들었다. 그에 멍한 시선을 하던 나찰극마가 발악하듯 외쳤다.


“애송이가. 내 진기가 소모되지만 않았어도 네놈 따위는......!”


그 순간 백색의 검신을 따라 막대한 진기가 휘감겼다. 온몸에 차 있던 청성의 진기. 맑고 정순한 바람결이 소년의 몸을 타고 하나의 초식을 자아낸다.


새하얀 검신 위로 휘감기는 것은 한없이 짙푸른 진기의 조각들. 무수히 많은 푸른 별빛을 엮어낸 듯한 일검은 곧, 꺼지지 않는 푸른 벼락이 되어 소년의 손아귀에 깃들었고.


쩌억.


마른 소리와 함께 시야가 푸르게 물들었다.


한순간 그 자리에 있던 대기마저 일거에 갈라내며 소멸시키는 거대한 검격. 나찰극마의 어깻죽지부터 허리선까지 대각으로 갈라낸 검로는 끝없이 이어지며 산의 능선을 따라 한없이 예리한 검흔을 새겨내었다.


여뢰(餘雷).


꺼지지 않는 벼락이 소년의 앞을 물들였다.


임지승과 똑같은 모습으로 상박이 쩍 벌어진 나찰극마가 무릎을 꿇으며 땅으로 풀썩 쓰러져 내린다. 허나 그럼에도 눈에 새겨진 안광은 아직 꺼지지 않았다. 더 이상 회복되지 않는 육신으로 울컥 피를 뱉어낸 그가 입을 열려는 순간.


콰득.


그의 뒤에서 나타난 백연이 여상한 손짓으로 그의 머리통을 통째로 뽑아올렸다.


이윽고 머리 잃은 몸통이 바닥으로 무너져내렸다.


“......약속은 지켰는데.”


백연이 중얼거렸다. 희미한 시선으로 산의 능선을 응시하면서였다.


“남은 놈들도 처리해야......”


그리 말하며 백연이 스스로의 몸을 관조했다. 어느새 맹화는 꺼진지 오래였다. 몸을 축내던 사이한 무공은 두번 써먹을 것이 아니었다. 그 기반이 주화입마에 뿌리를 둔 탓에.


“......후우.”


길게 숨을 뽑아낸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몸에 차 있던 내공이 텅 비어버린 것을 확인한 까닭이었다. 임지승이 남기고 간 힘마저 전부 소진했다.


목숨을 건 구명절초를 사용해야만 싸움을 더 이어갈 수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소년은 느릿하게 손을 뻗으며 숨을 들이켰고.


화악-!


사방을 따라 휘돌던 자연지기가 일제히 백연을 향해 고개를 숙이며 휘어들던 그 순간-


“자네!”


타닥.


길쭉하게 이어진 경공 여파가 그의 주변에 착지했다. 한 눈이 하얗게 멀어버린 노인이 그의 어깨를 짚으며 내려앉았다.


“괜찮은가? 이건 무슨......”


장중이었다. 한 팔은 어디다가 두고 왔는지 소매가 가벼워 보였는데, 삿갓 또한 사라진 것이 꽤나 어색한 모습이었다.


“이건 부궁주 아닌가?”


뒤이어 속속들이 그의 곁에 내려앉는 인기척들이 많았다.


“이봐. 정신 차려. 나한테 빚진 은자가 칠십냥은 되겠는데, 여기서 죽으면 안되지.”

“암화. 괜찮으시오? 오른팔이......”


모여든 이들이 제각기 백연의 상태를 살피다가, 곁에 나뒹구는 시체의 머리통을 확인하곤 숨을 들이킨다. 경악이 섞인 음성을 뱉는 이들도 많았다.


그리고는 산의 능선을 따라 길쭉하게 새겨진 푸른 별빛같은 검흔을 보며 멍한 목소리로 놀라는 것이 반복이었다.


“......이 신공은 대체?”


그 사이에서 훌쩍 다가온 기척이 있었다.


“백연. 다 죽였어.”

“......전부?”

“응.”


운기를 하고 있으라 했더니, 남은 수라궁도를 처치하러 내려갔다 왔는지 피 냄새가 진했다. 그의 어깨를 조심스레 살피는 소홍을 확인한 백연이 길게 숨을 뱉었다.


동시에 몸에 준비하고 있던 구결을 탁 놓으며 풀어버리기까지가 찰나.


자리에 풀썩 주저앉은 백연이 흐릿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끝났군요.”


그의 목소리에 주변을 둘러싼 이들이 조용해졌다.


많은 이들이 죽었다. 임지승을 비롯하여 목숨을 내던진 이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이들이 더 많았다. 해일처럼 몰려들던 수라궁도들의 사이에서 살아남아 검을 짚고 선 이들. 그리고 그들의 뒤에서 불안한듯, 한시름 놓은 듯 다채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청성파의 아이들까지도.


그들을 응시한 백연이 흐린 미소를 지었다.


“우리가 이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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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 천독 +6 24.05.17 1,023 45 15쪽
263 무극(無極)(3) +9 24.05.16 1,093 47 19쪽
262 무극(無極)(2) +5 24.05.15 1,144 44 22쪽
261 무극(無極) +7 24.05.14 1,161 50 20쪽
260 권마(拳魔)(5) +7 24.05.13 1,161 48 17쪽
259 권마(拳魔)(4) +8 24.05.11 1,295 48 18쪽
258 권마(拳魔)(3) +7 24.05.10 1,184 47 15쪽
257 권마(拳魔)(2) +5 24.05.09 1,211 46 16쪽
256 권마(拳魔) +5 24.05.08 1,274 47 16쪽
255 서주(4) +5 24.05.07 1,289 50 16쪽
254 서주(3) +6 24.05.06 1,321 49 14쪽
253 서주(2) +7 24.05.03 1,549 51 17쪽
252 서주 +6 24.05.02 1,448 50 17쪽
251 푸른 별(9) +7 24.05.01 1,375 54 16쪽
250 푸른 별(8) +5 24.04.30 1,409 50 16쪽
» 푸른 별(7) +8 24.04.29 1,426 54 20쪽
248 푸른 별(6) +6 24.04.27 1,520 51 20쪽
247 푸른 별(5) +5 24.04.26 1,380 49 18쪽
246 푸른 별(4) +6 24.04.25 1,435 51 18쪽
245 푸른 별(3) +7 24.04.24 1,416 57 14쪽
244 푸른 별(2) +5 24.04.23 1,462 55 19쪽
243 푸른 별 +5 24.04.22 1,580 52 14쪽
242 약속(2) +8 24.04.20 1,601 51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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