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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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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5.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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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7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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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20쪽

푸른 별(6)

DUMMY

※※※



드넓은 산기슭.


인파가 물샐틈 없이 들어찼다. 봄날 꽃향보다 진한 피 냄새가 지천에 진동했는데, 절반은 수라궁도들의 시체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단 일검(一劍)에 반절이 넘는 수라궁도들이 유명을 달리했다. 그 앞에 놓인 모든 이의 목이 일순 베였는데, 검로를 인지한 이 하나 없었다.


황력은 생각했다.


그 검격은 초월을 넘보는 일격이었다고.


일격으로 전황을 뒤집었다. 그 반동으로 피를 토해내는 소년의 얼굴이 창백하긴 했지만, 이곳에 도착한 이후 처음으로 승기를 잡았다 느껴졌었다.


아주 잠깐 동안은.


“뒤로, 뒤로 물러나시오!”


늙수레한 음성이 악을 쓰듯 터져나왔다.


뒤이어 사방에서 핏물이 연이어 터져 올랐는데, 희끗하게 일그러진 잔영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마다 팔다리, 또는 목이 하늘로 치솟은 탓이었다.


푸확!


비도를 던져대던 무인이 쓰러졌다. 뒤이어 수라궁도들의 한복판에서 돌연 커다란 굉음과 함께 두 인영이 현현.


백색 검신과 뒤틀린 쌍극이 허공에서 맞부딪히며 불티를 비처럼 뿌려댄다.


쩌저정! 쩌정!


굉음이 일고 잠깐동안 눈에 들어왔던 두 인영이 곧 흐려지며 다시 움직인다.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보법 여파에 휘말린 수라궁도들의 육신이 마구 찢기고 터져나갔다.


암화와 부궁주의 싸움이었다.


희끗하게 일그러지는 선율은 전부 두 무인이 인지를 벗어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잔영이었는데, 그에 가깝게 따라붙는 두 사람의 신형이 있었다. 푸른 검기를 일으키며 충혈된 눈으로 달려드는 부월검과, 화염을 휘감고 무표정하게 전진하는 소홍.


“말려들면 안되오!”


이를 악물고 외치며 황력은 후퇴 보법을 딛었다. 그를 따라 살아남은 표국의 무인들이 날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괜찮은가?”

“괜찮소. 하지만 이곳에 계속 있으면 휘말릴 것이오.”

“산자락 어귀에 진을 치고 수라궁도의 잔당을 상대하는 것이 낫겠네.”


타닥.


곁에 착지한 장중이 검을 쥐고 날카로운 시선을 전장에 던졌다. 뒤이어 취풍의 검격이 길게 뻗어나오며 따라붙던 수라궁도 두엇을 난자. 그들의 곁에 내려앉아 급하게 뱉는다.


“암화가 이길 것 같소?”


아주 잠깐, 둥글게 모여든 표국의 무인들 사이에 침묵이 내려앉았다. 크게 부상을 입은 이도, 아직 멀쩡한 이들도 있었는데 어느 누구 쉬이 입을 열지 않았다.


저편으로 길게 멀어지는 싸움의 잔향이 선명하게 들려오는 까닭이었다.


“내 눈에는 명백히 무리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소만.”

“......그 일검은 아무리 암화라도 쉬이 내칠 것이 아니네.”


장중이 뇌까렸다.


“화염의 비를 내리고 세 호흡이 필요하다 했었어. 헌데 지금은 그보다 더한걸 선보이고도 기운을 갈무리하지 못하고 즉시 싸움에 돌입했네.”


삿갓 아래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경외감과 동시에 딱딱한 걱정이 깃들어 있었다.


“아마 우리들 때문이었겠지.”

“......”

“그가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않았다면 전부 몰살이었네.”


그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주억거리는 무인들. 방금 전의 일을 회상하듯 미간을 좁힌다.


별안간 노지심의 목이 뽑혀 올라간 직후였다.


선혈을 토해내던 암화의 신형이 즉각 자리에서 사라졌었다. 노지심의 목을 뽑아올리던 나찰극마조차 한순간 크게 놀라 뒤를 돌아봤는데, 그 시점에 암화는 이미 검을 내리치고 있었다. 그 검격의 여파로 부궁주의 신형이 멀리 날아가 처박혔었다.


이후부터는 지금 보이는 대로였다. 암화와 나찰극마가 인지를 넘어선 일전을 벌이고, 부월검과 소홍이 따라붙어 그를 지원해주는 형세.


하나를 셋이 상대하고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벅차다는 사실을 모두가 깨닫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느끼고 있었다. 죽음의 그림자가 한없이 가까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허면 노인장은 암화가 질거라 보시오?”

“부궁주는 구파 장로의 무위에 필적하는 괴물이네. 애시당초 청성파의 장로 하나를 격살하고 내려온 상황 아닌가. 암화의 승산을 높게 잡기는 어렵네. 하지만......”


그가 삿갓의 끝을 매만지며 중얼거렸다. 하나 남은 눈이 저편에 길게 이어지는 보법의 잔영을 응시했다.


“노부는 기대해보고 싶네.”

“......헌데 그리 가능성이 낮으면 몸을 빼는것이.”


말하려던 취풍이 입을 다물었다. 곁에서 조용히 검파에 손을 올린 황력 탓이었다.


“나는 남아있겠소. 돈 받았으면 돈값은 해야지.”

“......허어.”

“부궁주를 격살하는 것을 도와주지는 못하겠소. 외려 우리가 끼어드는 것이 암화에게는 짐일테니. 허나 이곳에 있는 수라궁의 잔당들은 붙들어 놓을 수 있지. 적어도 이쪽과 저쪽, 모두 방해받지 않고 싸우게 해주는 것 정도는 하고 싶소이다.”

“거참 무모하기 짝이 없......”

“그대들은 알아 하시오.”


스릉.


말과 동시에 황력이 검을 빼들었다. 나직히 중얼거리는 음성과 함께였다.


“나는 이곳을 막을테니.”


그가 천천히 다가오고 있는 수라궁도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암화의 검격 권역에서 벗어나 살아남은 수라궁도들이 아직 삼분지 일정도 남아 있었다. 이들이 부궁주에게 힘을 보태면 안되는 일.


“흐읍!”


기합성과 함께 황력의 신형이 움직였다. 그의 검이 사선을 그리며 날카롭게 떨여졌다.


푸욱.


검이 수라궁도의 몸을 꿰뚫고 들어간다. 그럼에도 눈을 붉게 물들인 괴인들은 멈추지 않는다. 입술을 베어문 황력은 전력을 다해 검을 비틀었다.


까득.


섬뜩한 소리와 함께 그의 검이 궁도의 머리를 수직으로 가르며 튀어나왔다. 바닥으로 쓰러지는 시체를 걷어차고 다시 검을 휘두른다.


검을 꽂아넣고, 머리를 쪼개거나 목을 가른다. 검을 꽂고, 베어내고, 적을 짓이긴다.


“허억, 헉!”


숨이 차오른다. 가슴에 불이 붙은 것 같이 뜨거웠다. 황력은 생각했다. 외공 수련에 더 힘을 쓸것을 그랬던가.


그렇게 검을 휘두르던 와중-


“혼자 명당에 묻힐려 그러나. 자식도 없는 사람이.”

“묘가놈 혼자 죽은게 부러웠나 보오.”

“어린 도장 하나 구하고 간것 아닌가? 그만하면 호상이지.”


파박!


곁에서 튀어나온 검격이 휘둘러진다. 익숙한 이들의 검을 인지한 황력이 잇새로 미소를 지었다. 차오르는 호흡 속에서 그가 짤막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어지는 연격이 말없이 펼쳐졌다.


“쿨럭......!”

“팔 한짝 가지고 엄살은.”

“아파서 정신이 나가겄소.”


피가 튀어오른다. 어느 순간 크게 부상을 입고는 창백한 얼굴로 검을 내지르는 이들도 있었다. 언제부턴가 발치에 흐르는 피가 누구의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의 어깻죽지에서 흘러내린 것인지, 곁에서 검을 휘두르다 팔이 잘려나간 송 노인의 것인지, 아니면 옆구리가 찢어져 피를 질질 흘리고 있는 백가 노인의 것인지......


머리가 무거워지고 시야가 흔들린다. 황력은 더 이상 자신의 검로가 올곧지 못하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몸에 익은 검로만을 계속해서 무아지경으로 내뻗고 있을 뿐.


그러던 어느 순간 황력은 알아차렸다.


‘세상이......?’


그 순간은 불현듯 찾아왔다.


흐릿하게 물들던 시야가 돌연 한없이 깨끗해졌다. 어느 순간 사방에 자리한 모든 것이 더없이 선명하게 인지된다. 예리하게 허공을 가르는 검끝의 소리. 휘어지는 바람. 저편에서 내달리는 무인들의 발걸음. 코앞에서 그를 향해 짓쳐드는 수라궁도의 예리한 권격부터, 저편 멀리 커다랗게 자란 나뭇가지 끝자락에 이슬을 잔뜩 머금은채 소담스레 피어나고 있는 봄꽃의 자태까지.


그와 함께 전장의 모든것이 시리도록 차가운 감각으로 뇌리에 깃든다.


그의 앞에서 온몸에서 피를 흘리며 도끼를 쥐고 휘두르는 예화와, 불평을 뱉으면서도 묵묵히 검을 휘두르는 취풍, 어느새 삿갓을 벗어 던지곤 검기를 뻗어내는 장중까지도.


전부, 느려지고 있었다.


한없이 세세한 동작들이 전부 머리에 때려박힌다. 수십으로 쪼개진 찰나에서 황력은 곧바로 이해했다.


이것이 간극이고, 그가 무인으로써 하나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텅 비어버린 그의 하단전에서 이제는 내공 대신 생기(生氣)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호상이오.’


황력은 주름진 미소를 지으며 검을 휘둘렀고.


파아아아앙!


노검객의 일흔 평생 가장 완벽한 일검(一劍)이 피어올랐다. 막 고개를 들어올리는 봄꽃처럼.



※※※



쿠구구구궁-


대지가 진동했다. 어느 순간 바닥에 착지했다가, 다시금 그것을 박차며 뛰어오른 부궁주의 탓이었다.


쩌억.


대지가 흉년에 기근이 든 땅마냥 다섯 갈래로 크게 갈라진다. 온갖 지기(地氣)를 머금어 영험한 기운이 깃들어 있어야 할 청성산 능선임에도 불구하고.


[지쳐 보이는군?]


동시에 그의 옆으로 한줄기 선을 그리며 나타난 나찰극마가 웃었다. 기괴한 쌍극을 제 수족처럼 다루면서였다. 대지를 밟으며 뛰어오른 반동을 그대로 창끝에 담는데, 그 기세와 활용의 형태가 가히 절세지경이었다.


쩌어어엉!


굉음과 함께 백연의 신형이 그대로 포탄처럼 튕겨나갔다. 백보 이상의 거리를 죽 날아간 그가 커다란 나무에 부딪히며 죽 미끄러져 떨어졌다.


“커헉......!”


한순간 막대한 충격이 몸에 실린다. 부딪히는 순간 경파를 내뿜어 충돌의 여파를 최소화 했음에도 그랬다.


동시에 울컥 튀어나온 핏물이 진했는데, 호흡을 갈무리 할 시간조차 없었다.


[죽어라.]


거의 동시였다. 공간을 격하며 나타난 나찰극마가 창을 일직선으로 내뻗는 것과, 백연이 시간을 되감은 것처럼 일어나 천마의 검을 치켜올린 것, 그리고 돌연 하늘에서 뚝 떨어진 임지승과 소홍이 양쪽에서 검을 내질러 창격을 저지시킨 것 까지.


콰아아앙!


[쥐새끼들이......!]


적화검류와 청풍검이 끼어들어 쌍극의 전진을 상쇄. 그 즉시 나찰극마가 쌍극을 크게 휘둘러 두 사람을 흩어냈지만, 그 정도로도 백연에게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쩌정-


소년의 시야가 늘어졌다. 한순간 상단세로 치솟은 그의 검끝에 막대한 양의 진기가 켜켜이 쌓이며 압축과 팽창을 반복. 본래라면 이뤄질 수 없을 속도로 절초를 엮어낸다. 태청신공의 뇌기가 다채로이 엮어낸 단 하나의 검이 백연의 손아귀에 현현했다.


오초식, 벼락.


찰나지간 주변의 빛살이 길게 호흡을 내뻗듯 어두워졌다. 직후 새하얀 뇌전(雷電)의 검격이 그대로 낙하했다.


쩌억.


눌어붙은 시간 속에서 새하얀 백광이 시야를 물들였다. 푸른 하늘에서 별안간 내리친 거대한 벼락의 잔향. 간극 마디마디에서 뚝뚝 끊어진 그림마냥 분절된 풍경이 뇌리에 틀어박힌다.


그렇게 소년의 검격이 시간을 건너 나찰극마를 격했고.


콰르르르르르릉!


지천을 울리는 우렛소리가 터져나왔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일검. 누구라도 정면으로 받아냈으면 짓이겨졌을 법한 검격이다. 하물며 그 공능이 막을 수 없는 검격이라면 더욱.


그러나 백연은 검을 내친 뒤에도 호흡을 가다듬으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백연, 괜찮아?”

“자네! 내공이......”

“......쉿. 아직이야.”


그의 옆에 내려앉은 임지승과 소홍이 재빠르게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들의 시선이 자욱하게 시야를 가린 분진 너머를 응시하듯 가늘어졌다.


그 순간.


[......암화라 했나? 어디서 얻은 신공이지?]


화아아아악-!


갑작스레 일어난 커다란 돌풍이 몸을 부풀리며 분진을 확 흩어내었다.


그 한가운데였다. 쌍극을 크게 휘둘러 분진을 걷어낸 나찰극마. 겉으로 보기에는 아무런 위해도 입지 않은 듯 보였다. 하지만 백연은 그것이 아님을 잘 알았다.


‘......회복했다.’


백연의 앞에서부터 나찰극마의 뒤까지. 널찍한 산자락을 따라 대지에 깃든 거대한 상흔이 있었다. 길쭉하게 그어진 검흔은 벼락이 남기고 간 잔향.


그 경로에 나찰극마의 우반신이 자리하고 있었다. 길쭉하게 찢어진 옷자락에는 핏물이 잔뜩 묻어나왔는데, 정작 드러난 맨살에는 상처 하나 남아있지 않았다.


그제서야 그의 시선을 인지한 듯 나찰극마가 입매를 비틀었다.


[소림의 역근경을 아나? 궁주께서 손에 넣으신 힘은 그보다 위라 감히 말할 수 있겠군. 그 은총이 나에게도 닿았으니, 외공의 정점을 네게 보여주지.]

“정점이라.”


백연이 중얼거렸다. 혈향이 숨결에 섞여 나왔다. 그것을 느끼며 백연은 천천히 기운을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파스슷.


검신을 따라 뇌기가 분분히 튀어오르기 시작했다. 벼락을 내치고도 아직 태청신공의 기운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서안의 일 이후 축기량 자체가 크게 늘었는지.


“그거, 어차피 내공 진기를 소모하는 것 아닌가? 평생 회복할 수는 없을테고......”


여상히 내뱉은 순간.


쩌억.


발치를 따라 옅은 금이 새겨졌다. 직후 나찰극마의 옆에서 나타난 백연이 태연히 검을 올려쳤다. 한순간 칠성섬뢰(七星閃雷)의 일곱자락 검로가 허공에 새겨져며 나찰극마의 몸을 난자했다.


쩌저저정!


그 중 셋이 적중했다. 허공에 푸확 터져나오는 핏물이 진했다. 허나 그 상처는 얼마 가지 못했다. 삽시간에 기운이 크게 휘돌고, 직후 상처가 아문다. 베인적도 없었다는 것처럼.


[소용없다.]


그와 함께 나찰극마의 신형이 크게 회전하며 쌍극이 낙하. 찰나지간 여휘마저 뽑아든 백연이 두 자루 검을 교차하며 창격을 가로막았다.


쩌엉!


압도적인 힘에 무릎이 푹 꺾이며 손아귀가 찢어질듯 아파온다.


‘창력은 예린의 다섯 배? 일곱 배? 어느쪽이든 고절하군.’


속으로 뇌까리며 그의 힘을 측정. 직후 여휘를 올려치며 창을 미끄러뜨리고 그대로 전진 검로를 엮어낸다.


크게 전진하며 수직으로 올려치는 하단세 일격 옥룡천강(玉龍天剛). 한순간 낭창하게 휘어진 검끝이 태풍 속 뇌전마냥 흐린 빛살을 휘감고 꿈틀거리며 상승한다.


허나 그 여파는 크지 못했다.


[약해. 점점 약해지고 있군.]


쩌어어엉!


굉음과 함께 그의 검이 멈춰섰다. 전진하던 검로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하고 붙들렸다. 한순간 커다란 탈력감이 머리를 휩쓸며 극심한 어지러움이 찾아왔다.


‘이런......’


천마의 무공을 내친 반동이 심대했다. 그럼에도 억지로 진기를 끌어모아 나찰극마를 상대했는데, 그것도 이제 한계에 부딪히고 있는 모양이었다. 이리 급격하게 힘이 떨어지다니.


[그 자질은 인정하지. 허나 멀었다.]


쩡!


웅웅거리는 음성과 함께 커다랗게 휘두른 쌍극이 그의 검을 쳐내었다. 직후 나찰극마가 일보를 내딛으며 각법을 올려쳤고.


쩌어어어엉-!


한순간 소년의 몸을 따라 물결같은 파동이 일었다. 시리게 빛나는 성라기단의 조각이 각법 여파를 틀어막으며 산산히 부서졌다. 그 반동으로 백연의 신형이 실 끊어진 인형마냥 뒤로 나뒹굴었다.


[여기서 그 목을......음?]


곧장 백연에게 창격을 내지르려던 나찰극마의 앞에 돌연 두 사람의 신형이 떨어졌다.


“놈!”


눈을 부릅뜬 임지승의 검이 낭창하게 휘어졌다. 그의 검끝에서 돌연 일어난 푸른 청풍강기가 강맹하게 펼쳐지며 구름 같은 기운을 마구 흩뿌렸다.


쩌어엉! 쩌정!


[잡것들이 귀찮게......]


화르르르륵!


허공을 따라 켜켜이 일어나는 화염이 그 뒤를 따른다. 화려한 검로가 푸른 강기와 섞여들며 나찰극마를 향해 떨어진다.


‘......위험해.’


그 광경을 보며 백연은 핏물을 삼켰다.


일그러진 시야가 그의 상태를 방증하는 듯 했다. 뜨겁게 달아오른 머리로 전장을 감각하기가 어려웠다.


허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여기서 그가 일어나지 못하면 모두 죽는다. 나찰극마는 임지승과 소홍이 격살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검법의 공능 차이였다. 청양진인이 어느 정도 무위를 지녔는지 모르나, 청운적하검법에 당하고도 멀쩡하게 회복한 괴물이다.


단 일검으로 저자를 끝장낼 일격을 자아내야 했는데, 소홍은 물론이고 임지승 또한 그런 검과는 거리가 한참 멀었다.


‘조금만, 시간을......’


그렇게 백연이 비틀거리며 검을 짚고 일어나던 순간.


[질질 끌리는군. 이제 지친다.]


돌연 공기가 가라앉았다. 그 음성에서 한없이 불길한 기운을 감각한 백연이 눈을 부릅뜨며 보법을 엮어내려던 찰나.


[내 전력을 보고 죽는것을 영광으로 생각해라.]


수천으로 쪼개진 찰나에서 나찰극마의 눈이 새빨간 핏빛으로 물들었고.


“사형......!”


문득 알아차린 순간 나찰극마는 소홍의 뒤에 서 있었다. 백연의 인지조차 뛰어넘은 아득한 속도. 용형보의 걸음은 아직 형성되는 도중이었다.


스무보가 넘는 거리였는데, 백연은 즉시 깨달았다. 허공을 가르는 쌍극이 떨어지기 전에 그가 소홍에게 도달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일단 한놈.]


그 순간 바람같은 기운이 일었다. 찰나지간 움직인 큼직한 신형이 돌연 나찰극마와 소홍의 사이에 그림처럼 현현했고, 뒤이어 나찰극마의 쌍극이 허공을 가르며 떨어졌다.


푸욱.


섬뜩한 피륙음이 일었다. 허나 뒤틀린 창이 꿰뚫은 곳은 소홍의 몸이 아니었다.


[허튼 짓을......?]

“으하하하핫......!”


어깨부터 가슴 중간께까지. 상박이 반쯤 갈라진 채로 선 임지승이 광소를 흘렸다. 쌍극을 온몸으로 받아낸 것이었다.


“암화. 자네에게 입은 은(恩)은 이것으로 갈음하겠네.”

[음?!]


콰득.


손을 뻗은 임지승이 창대를 움켜쥐었다. 동시에 그의 온몸을 따라 진기가 폭발하듯 일어났다. 지저분하게 뻗은 머리칼이 사방으로 흩날리며 일어났다.


키이이이잉-


기묘한 소리와 함께 시야가 휘어지며 비틀렸다. 임지승의 몸을 둘러싸고 일어난 기묘한 화음과 함께였다. 한 무인이 일평생 모아낸 거대한 진기를 일거에 뽑아낸 여파. 아무런 초식이나 구결 없이도 단순한 내공의 폭증만으로 거대한 파동을 엮어내기까지가 찰나였다.


그 속에서 이를 씩 드러낸 임지승이 말했다.


“같이 뒈지지, 부궁주.”


직후 휘몰아치던 진기가 순간 압축되듯 한점으로 수렴했다가 급격하게 몸을 부풀렸고.


콰아아아아아아앙-!


무지막지한 진동과 굉음이 터져나왔다. 사방 일대가 흔들리며 땅이 거세게 출렁였다. 자욱한 분진이 시야를 가리다가, 이내 연이어 터져 나오는 진기 파동의 여파에 휩쓸려 사라진다.


막대한 소음이 귀를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흘렀다.


허나.


“후우......”


분진이 걷힌 자리에 선 것은 가슴이 쩍 갈라진 임지승 혼자였다. 온몸이 짓이겨진 상태였는데, 그의 앞으로는 큼직한 구덩이가 패여 있었다. 하지만 부궁주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있었다.


“......미안하군.”


임지승이 쓴웃음을 지으며 어느새 한달음에 그의 곁으로 달려간 백연에게 말했다.


“힘을 조절했더니, 한번에 죽이지 못했어.”


뒤편에 쓰러져 핏물을 뱉고 있는 소홍. 그를 지키기 위해 진기를 조절한 까닭이었다. 임지승을 기준으로 그의 뒤편은 깨끗했는데, 부러 힘을 조절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그 덕에 소홍은 살았지만, 부궁주도 죽이지 못했다.


“자네한테 은을 입는 것은 이제 그만하려 했더니......뒤는 맡겨야겠어.”

“말을 아끼시지요. 우선 지혈을......”

“됐네. 난 여기까지야.”


쿨럭.


핏물을 크게 뱉어낸 임지승이 씩 웃으며 말했다.


“하지만 자네는 아니지. 아까 보았네. 사방의 진기를 잠깐이나마 빨아들이며 검을 펼치던데.”


천마의 무공을 입에 담는다. 그 기반이 북명신공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당연한 일이었다.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 백연의 얼굴을 본 임지승이 조용히 물었다.


“내 진기는 못 가져가는가?”

“......”

“나름 도인인지라 정순한 기운이네. 받아주게.”


임지승이 손을 내밀었다. 온몸을 따라 흩어져 나오는 내공의 흐름이 짙었다. 푸른 구름마냥 자욱하게 가라앉는 진기의 파편들.


그에 화답하듯 입술을 베어문 백연은 천천히 손을 내뻗었고.


화아아아아악-!


소년의 몸에, 맑은 기운이 꿈결처럼 휘감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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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8 권마(拳魔)(3) +7 24.05.10 1,191 47 15쪽
257 권마(拳魔)(2) +5 24.05.09 1,216 46 16쪽
256 권마(拳魔) +5 24.05.08 1,279 47 16쪽
255 서주(4) +5 24.05.07 1,296 50 16쪽
254 서주(3) +6 24.05.06 1,328 49 14쪽
253 서주(2) +7 24.05.03 1,555 51 17쪽
252 서주 +6 24.05.02 1,456 50 17쪽
251 푸른 별(9) +7 24.05.01 1,382 54 16쪽
250 푸른 별(8) +5 24.04.30 1,417 50 16쪽
249 푸른 별(7) +8 24.04.29 1,433 54 20쪽
» 푸른 별(6) +6 24.04.27 1,529 51 20쪽
247 푸른 별(5) +5 24.04.26 1,385 49 18쪽
246 푸른 별(4) +6 24.04.25 1,444 51 18쪽
245 푸른 별(3) +7 24.04.24 1,424 57 14쪽
244 푸른 별(2) +5 24.04.23 1,472 55 19쪽
243 푸른 별 +5 24.04.22 1,589 52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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