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새글

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4.05.22 18:10
연재수 :
268 회
조회수 :
1,423,234
추천수 :
28,720
글자수 :
2,056,293

작성
24.04.23 18:10
조회
1,471
추천
55
글자
19쪽

푸른 별(2)

DUMMY

※※※



풍진 강호.


어떤 소식이나 정보가 들려와도 놀라지 않아야 할 일이다. 작금의 세태에는 무슨 일이든 벌어질 수 있는 까닭에. 심지어 백연은 검귀 시절 신교대전을 겪은 몸이다. 수년 넘게 이어진 대전을 몸으로 겪었는데 무엇이 그리 놀라우랴.


당장 서방 신강에서 마교주가 진격을 시작했다 해도 그럴 수 있었다. 백연은 그리 생각했다.


‘그렇다곤 해도......’


백청적흑자의 다섯 단계로 정보를 분류하는 하오문 천라방. 이곳에서 취급하는 모든 정보는 천라방주의 손 아래 등급이 매겨지고 전해진다 했다.


즉, 눈앞의 자색 비단에 새겨진 정보는 지금 천라방에서 취급하는 정보들 중 가장 고급의 정보.


진위 여부를 의심할 수가 없다는 소리기도 했다. 그 하나하나가 강호 무림에 큰 파장을 불러 일으킬 내용들밖에 없기에.


그런 까닭에 백연은 그것이 진실이냐고 되묻지 않았다. 다만 투명한 시선으로 일(一)부터 팔(八)까지 적힌 비단을 내려다 보았을 뿐.


‘북방 기마군세.’


오랑캐들이 장성을 넘었다 하던 신개의 말이 떠오른다. 신창은 며칠도 되지 않는 시간에 북경에 도달해 그들의 군세를 멈춰세운 모양.


‘황군을 움직이지 않고?’


자세한 내용은 알아봐야 할 일이다. 동시에 백연은 천라방의 정보 전달 속도에 내심 감탄을 삼켰다. 사람이 이 정보를 들고 그리 빠르게 오갈수는 없고, 전서구 또한 이리 빠른 시간에 정보를 전달할 수는 없을테니 무언가 방법이 있다는 것이겠지.


백연의 추측으로 따지면 아무리 빨라도 이 전투가 일어난 시점은 닷새 정도 전. 어쩌면 하령이 보여줬던 것마냥 신비로운 기예를 사용할지도 모른다.


‘신창은 초월을 넘었다 하더니.’


과연 단신으로 어떠한 군신의 위용을 선보인 것일까. 굉장히 커다란 정보였다. 허나 동시에 지금 당장 백연에게 급한 내용은 아니었다.


두번째 정보도 마찬가지였다.


혈교주의 거동. 혈교를 살피러 간다던 화율이 생각나긴 했으나, 당장 백연에게 중요한 내용은 아니었다. 조만간 혈교가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면 될 뿐.


허나 그 밑의 세번째 정보부터는 조금 달랐다.


“......현천의 발현.”


백연이 중얼거렸다. 그에 월향루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자세한건 관측 불가일세. 그 검은 하늘 아래서 터져나오는 모든 발경력과 전투의 여파가 바깥에는 닿지 않아. 안을 들여다볼 수도 없지. 아마 화천귀제와의 싸움을 위해 검제가 고안한 신공인듯 한데, 패흑련주와의 일전에 사용하게 되었군.”


방해받지 않는 일대일 전투를 벌이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다른 공동파 무인들과 패흑련도들은 어찌하고 있을까.


‘공동이 버텨줘야 할터인데.’


그리 생각하며 백연은 시선을 끌어내렸다.


四. 당가주가 신공을 발현.


그 문장이 눈에 밟힌다. 동시에 소년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목소리가 스쳤다.


-나는 만독을 넘어섰다.


말라비틀어지고 무감한 음성. 당가주의 신공이라면 하나밖에 없겠지. 만독을 넘어섰다 칭하던 그 무공.


어떤 원리인지, 어떤 형태의 무공인지 전혀 모르지만 백연은 막연하게 짐작하고 있는 것이 있었다. 독공을 의념과 진기의 형태로 끌어올려, 세상 모든 것을 독으로써 취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되어야 가능해.’


수라궁주와 수라궁도 전체를 붙들어 버틴다. 어지간한 무위로는 불가능할 일이다. 그럼에도 천독은 그것을 실행하고 있었다.


“당가 무인이 절반이 죽었다......어렵나보군요.”

“그렇네. 서주까지 몰아내어 진형을 구축하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거기까지. 수라궁은 워낙에 압도적인 숫자일세. 거기에 궁주 본인이 왔으니.”

“버티고는 있는 겁니까?”

“천라방이 마지막으로 확인했을때는 그랬네. 당가주가 얼마나 시간을 오래 끌 수 있을지가 의문이긴 하네만.”

“아미파의 무인들은......”

“수가 너무 적네. 금정신니 본인이 빠르게 복귀하지 않으면 큰 도움이 되지 못할걸세. 그리고 설령 장문사태가 전장에 개입한다 해도 그녀의 무위는 천독과 수라궁주와는 격의 차이가 존재하네.”


그 말에 백연이 고개를 갸웃 기울이며 반문했다.


“어째서입니까? 초월의 위에 올랐다 해도 공격 자체가 안통할 정도의 격차는 아닐텐데요.”

“두가지 이유네. 우선 천독은 홀로 싸워야 더 강하지. 그의 신공이 가진 특성이 그러하니. 그리고 두번째 이유는 수라궁주 본인이 굉장히 독특한 무인이기 때문일세.”


담담히 답한 월향루주가 곁에서 작은 자색 비단 하나를 꺼내어 백연에게 건네었다.


“읽어보게.”


그것은 짤막한 정보가 정리된 문서였다.


오로지 한 사람에 대해 기록된 내용.


[수라궁주(修羅宮主).]


[천하제일(天下第一)에 가까운 외공을 보유한 것으로 확인.]


[오년 전, 사도에서 이름을 떨치던 검객인 검갈마(劍蠍魔)와의 일전에서, 호신강기 없이 단 하나의 상처만을 입고 압도적으로 승리.]


[검갈마가 선천진기를 끌어내어 펼친 일격만이 그의 팔뚝에 생채기를 내었음.]


[적어도 초월의 경지를 넘보는 일격이 아니면 상처조차 낼 수 없는 것으로 사료됨.]


비단에서 눈을 뗀 백연이 입매를 비틀었다.


“......난적이군요.”

“더군다나 아미는 불도무문. 상대를 제압하는 것에는 능하지만, 압도적인 경지가 아니면 살계에는 보다 떨어지는 면모가 있으니.”


결국에는 금정신니가 도착한다 하더라도 수라궁주를 격살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였다. 백연은 입술을 베어물었다.


수라궁주. 대체 어떤 괴물이기에.


지금 당장이라도 서주에 합류하러 이동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백연은 그리 쉽게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육과 칠을 건너뛰고 곧바로 눈에 들어오는 여덟번째 정보.


“청성산이 포위당했다......”


백연이 뇌까렸다.


“그것도 수라궁의 부궁주에게.”


이 말대로라면 지금 청성산의 위에 남아있는 청성파 무인들이 있다는 소리였다. 결사항전의 상태에 돌입한채로.


‘구하러 가야하나?’


선택의 기로였다.


지금 이 순간, 가장 뚫려서는 안되는 곳은 단연코 서주. 서주의 방비만을 고려한다면 청성파의 무인들을 버리고서라도 서주로 향해야 한다.


그게 합리적인 선택.


하지만.


‘......먼저 무너질 곳도 청성파다.’


잠시 고민을 하던 백연이 월향루주에게 물었다.


“혹시 서주에 합류한 새로운 무인들에 대한 이야기는 못 들었습니까?”

“맹에 관한 이야기는 들었네만, 적어도 이틀 전을 기준으로 아직 서주에 새로운 지원이 도착하지는 않았네.”

“그렇군요.”


백연이 미간을 좁혔다.


아마 별동대는 곧장 서주로 향했을 터. 이틀 전을 기준으로는 소식이 없었다 하나 지금쯤은 서주에 도착했을 확률이 높았다. 백연 자신이 잃어버린 시간을 만회하려 유독 빠르게 내달렸으니 얼추 지금쯤 도착하는 것이 시간이 맞을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당장 서주에는 별동대 무인 수십의 지원이 도달했다는 의미.


허나 청성산에 지원을 갈 사람은 없다.


‘청운진인을 비롯한 무인들이 도착하려면 족히 칠주야는 더 남았어.’


그리고 그 기간동안 청성파의 무인들이 버틸 수 있을까.


“......지금 청성산을 포위한 수라궁의 전력이 어떻게 됩니까?”

“얼추 이삼백에 달하는 수라궁도들. 그리고 부궁주 본인일세.”

“부궁주의 자세한 무위는 어떻게 되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이지.”


월향루주가 입을 열었다.


“부궁주 남평(南坪). 세간에서 나찰극마(羅刹戟魔)라 불리는 잔인무도한 인물로, 사용하는 무기는 기형적으로 생긴 쌍극(雙戟)일세. 그 무위는 일전의 전적들로 추측컨데 최소 구파의 장로급 이상.”

“......”

“물론 확인된 것에 한해서이네. 전력은 그 이상일지도 모르는 노릇이지.”

“허면, 청성파의 무인들은......?”

“처음 수라궁의 진격때 사천을 방비하려다 많이 죽었네. 지금 항전하고 있을 무인들은 절반정도 될련지.”


백연이 눈썹을 내리깔았다. 그의 시선이 펼쳐진 비단을 나직하게 응시했다. 잠시간 그 위에 새겨진 정보들을 때려박듯 침묵하던 백연이 이윽고 소홍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형......”

“갈거지? 난 준비됐어.”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대답. 어느새 검파에 손을 올리고 있는 것까지 의욕적인 모습이다.


그에 피식 미소를 지은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자. 청성파를 구하러.”



※※※



단순히 의협심이 넘쳐서만은 아니었다. 백연의 결정에는 두가지 합리적인 이유가 깔려 있었다.


우선 청성파 무인들이 살아 있다면, 그들을 구출해 서주에 합류시키면 도움이 될 터. 그리고 또한 부궁주가 수라궁주의 본대와 떨어져 있는 동안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 있었다. 그가 궁주와 합류하기 전에 청성산에서 제거하고 가면 수라궁의 전력 약화를 도모해볼 수도 있기에.


허나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와 소홍만으로는 안된다는 것. 부궁주는 어찌 상대한다 쳐도, 수백에 달하는 수라궁도는 안된다. 단순히 무위로 해결되지 않는 일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무인들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했는데.


“안되네. 이곳의 천라방은 지원이 불가해. 물론 무인 서넛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나머지는 가면 개죽음이 될 정도의 사람들 밖에 없네.”


월향루주가 미안하다는 듯이 덧붙인다.


“자네도 알다시피, 천라방의 역할은 전투가 주가 아니니......”

“알고 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감사하군요.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지요.”


그에 잠시 고민하듯 턱을 매만진 월향루주. 이어서 넌저시 던지는 말이 귓가를 파고든다.


“그나저나 지금 덕양에 모인 무인들이 많은데.”

“그렇지요?”

“덕양표국이라는 곳이 있네. 본래 이름대로 표국 일을 하는 곳인데, 지금은 사방에서 모여든 무인들의 거점 비슷한 곳이 되었어. 이런 난세에 관도를 오가려면 무력이 필요하니, 돈을 내고 그곳에서 지켜달라 의뢰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던데.”


귀중한 정보였다. 반색한 백연은 그 길로 루주에게 인사를 하고 월향루를 빠져나왔다.


그렇게 나와 걷기를 잠깐.


“저긴가 보네.”


백연의 시야 저편, 커다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대문짝만하게 덕양표국이라 걸려있는 현판이 아니더라도 알아보기는 쉬웠는데, 그 앞에 진을 치고 있는 무인들이 수십이 넘는 까닭이었다.


그것을 확인한 백연과 소홍은 가볍게 문을 열고 들어섰다.


“실례합니다.”


백연의 맑은 음성이 울리는 것과 동시에, 그들을 향해 쏟아지는 수십여개의 시선이 느껴진다. 허공을 떠도는 날카로운 눈에 깃든 기운이 있었다.


‘많군.’


백연은 생각했다.


음식 냄새가 가득한 표국의 건물 안. 본래도 숙박과 식당마저 겸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안에 꽉꽉 들어찬 무인들은 각양각색의 행색을 하고 있었다. 키보다 큰 장검을 등에 지고 거적떼기를 두른 낭인부터, 산적같이 생긴 무인, 어디 가문의 자제인 것 같이 고급진 의복을 한 검객이나 여럿이 똑같은 검을 차고 있는 사람들까지.


천하 각지에서 보이는 수많은 무인들이 한자리에 모인 풍경이었다. 진귀하다면 진귀한 광경.


오롯이 정도를 걷는 무인들도 있겠지만, 상당수는 돈을 좇는 낭인들일 터이다. 굳이 따지면 정사지간에 있는, 칼밥을 먹고 사는 사람들.


그러나 그들도 살기 위해서 이리 뭉쳐 있는 것이었다.


‘무위는......’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백연의 시선이 한차례 안을 스쳤다. 가벼운 눈짓에 앉아있는 사람들의 기운들이 일제히 감각에 들어온다. 저들이 백연을 가늠하듯, 백연 또한 단번에 모든 이들의 실력을 가늠했다.


‘낮지 않네.’


물론 기도만으로 모든 것을 파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백연은 다른것까지 눈에 담고 있었다. 검객이 쓰는 검의 낡은 정도, 앉은 자세와 시선의 움직임, 근맥이 움직이는 방향과 음식을 들어 마시는 손짓의 형태까지.


그런 것들은 많은 정보를 내포하고 있다. 가령, 왼편에 앉은 작은 키의 여인은 꽤나 탁월한 수준의 고수였다.


옆에 놓은 도끼가 그것을 방증하고 있었다. 자루의 형태가 완전히 여인의 손에 맞춰져 있었는데, 그것은 도끼를 못해도 수만번은 휘두르며 싸웠다는 이야기. 그와 함께 날에 베인 핏물이 진했다. 실전의 경험이 많고, 그 모든 실전을 겪으며 살아남았다는 소리인데 얼굴에 흉터가 없었다.


즉, 격전을 수십차례 겪고도 얼굴에 흉 없이 살아남을 정도의 실력이라는 말이다.


그런 식으로 수십의 무인을 가늠하는 것이 극히 찰나.


백연은 생각했다. 어쩌면 가능성이 있겠다고.


“무슨 일로 오셨을까요, 젊은 공자께서는?”

“무인들이 필요해서 왔습니다.”

“의뢰군요. 공식적으로 저희 표국이 의뢰를 받지는 않고 있지만, 적절한 보수가 있다면 여기 계신 분들께서 자원해 주실겁니다. 그런데 돈은......”


표국의 사람으로 보이는 청년이 슬쩍 백연의 행색을 가늠하듯 위아래로 시선을 훑는다. 그 모습에 백연은 흐리게 웃었다.


난세에도 금전은 기능하는가. 아직 이들은 이것을 잠시 찾아왔다 사라질 혼란으로 여기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로써는 오히려 좋은 일이었다. 품에 손을 넣은 백연은 비단 주머니를 꺼내어 들어올렸다.


“여기, 이것이면 되겠습니까.”


묵직한 금자가 하나 청년의 앞에 놓였다. 그것을 본 청년의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그 표정은 침착하게 돌아왔다.


“목숨의 값이 비싸지는 나날이지요. 우선은 내걸어 보겠습니다만, 의뢰의 내용에 따라......”


탁.


백연이 말없이 손을 움직였다. 그럴때마다 그 위에 놓인 금자가 하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길다란 손가락이 탁자를 쓸때마다 금빛 조각이 수를 더해간다.


백연의 손이 열 번 움직였을때, 표국의 건물 안은 쥐죽은듯 고요해져 있었다.


그를 향하는 수많은 시선들. 탐욕과 열의였다. 자리에서 서서히 몸을 일으키며 헛기침을 하는 인물들도 있었다.


그러나.


“이 정도면......음?”


백연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금자가 스물에 다다랐을때, 이제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더 이상 탐욕이 깃들어 있지 않았다.


“자, 잠시만요. 뉘시길래 이런 돈을......”


청년이 말까지 더듬으며 그를 쳐다본다. 그럴만한 돈인 까닭이었다. 금자의 가치는 한없이 높았으니까. 상인들이 아니면 쉬이 구경도 하기 어려운 양의 금액. 백연도 이만한 양의 돈을 꺼내드는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목숨값입니다.”


백연이 담담하게 말했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건물의 안을 둘러보았다. 모두의 이목이 그에게 쏠려 있었다.


그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으며 백연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이곳에서 반나절 거리에 청성산이 있습니다. 지금 청성파의 무인들이 사도 육진의 일각인 수라궁의 무인들에 포위당해 죽을 위기에 처해있지요. 그들의 포위망을 돌파하고 청성파의 무인들을 구출하고자.”


소년의 투명한 목소리가 표국의 안에 풍령처럼 스쳤다. 한없이 맑은 음색이 담담하게 모두의 귀에 내려앉았다.


“여러분의 목숨을 사려 합니다.”


금자는 아깝지 않다. 비록 그가 지금 내어놓은 돈이 한 문파가 일년동안 먹을 쌀을 구비할 수 있는 양이라 해도.


“수는 많을수록 좋습니다. 참여한 모두에게 금자 하나씩을 기본으로, 전투가 끝나면 금자 하나씩을 더 드리지요. 적들의 목을 베면 그것도 전부 세어서 쳐드리겠습니다.”


사람의 목숨은 그와는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그렇기에 백연은 이것이 곧장 먹히리라 생각하지 않았다.


백연의 말이 끝난 직후에도 앉아있는 무인들은 머뭇거리며 서로를 돌아볼 뿐, 누구 하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잠시간의 침묵이 내려앉았고.


“......거, 젊은 친구가 모르나본데. 그건 자살 행위일세.”


한쪽에서 조용히 앉아 삿갓을 내리쓰고 있던 검객이 말했다.


“그곳에 수라궁도가 기백이 있다 들었네. 수십이라면 몰라도, 그 정도면 재해야.”

“영감 말이 맞소. 돈도 살아야 쓰는거지 엉?”

“......애시당초 청성파 무인들도 갇힌 포위망입니다. 말코 도사들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들의 검은 인정할 수 밖에 없는데. 그들도 상대하지 못하는 수라궁을 우리가 어찌 이기란 말입니까?”


하나씩 새어나오는 목소리들. 누군가는 백연이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라 생각하며 타이르려 했고, 누군가는 그를 혈기 넘쳐 죽으러 가는 사람 취급한다.


“수라궁의 무인들로부터 덕양을 방어하는 것이라면 승산이 있을지 모르오. 그렇기에 모두가 여기 모여있는 것이지. 헌데 우리가 찾아간다? 나는 반대요.”

“묫자리 찾아가는 법도 신박하군.”

“그대의 의기(意氣)는 높이 사나, 여기서 금자 하나 벌자고 목숨 버리는 사람은 없을것 같소. 목숨은 중하니.”

“그러지 말고 그 돈으로 덕양의 방비를 강화하는 것은 어떻겠소? 어디 거상의 자제나 되나본데. 몇달이고 착 붙어서 보호해드리지.”


한번 물꼬가 트이자 여기저기서 새어나오는 단호한 거부의 목소리들이 많았다. 그에 백연은 한숨과 함께 옅은 미소를 지었다.


‘역시. 이걸로는 안되는군.’


저들도 금자 따위에 눈이 멀어 목숨을 내던질 사람은 아닌 것이다. 아예 의협심이 넘쳐 몸을 던지고자 하는 이가 아니라면 당연한 일이다. 결국에는 돈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도 회유해야 할 일.


그렇게 소년이 막 다시 입을 열려던 그때였다.


“......나는 가고 싶소.”


끼익.


한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길다란 수염을 기른 늙은 검객. 낡은 검을 허리춤에 달랑거리는 무인은 특출난 기도를 지닌것도 아니었다. 허나 그럼에도 담담한 표정으로 일어나 한걸음 앞으로 나선다.


백연이 아는 얼굴이었다.


“......당신은.”

“이 늙은이를 기억하시오?”


백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제게 비무를 신청하셨던 분들 중 한명 아니십니까.”

“허허. 기억해준다니 영광이구려.”


수염을 쓸어내리는 노인. 그는 일전 무당산 위에서 당가가 고용했던 낭인 검객중 하나였다. 밤새 차륜전으로 백연의 힘을 빼놓으려 했던 이들. 사람의 얼굴을 쉽게 잊어버리지 않았기에 잘 기억하고 있었다.


저 노검객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이야. 백연은 노인을 응시하며 차분하게 되물었다.


“진심이십니까? 다른 분들의 의견대로 자살행위가 맞습니다.”

“알고 있소.”

“그럼에도 가려 하십니까?”


그에 노인이 흐리게 웃는다.


“그때 그대가 말했지 않소. 한번의 실수는 죽음을 의미한다고. 그날 이 늙은이가 사지 멀쩡하게 살아남은 것은 그대의 자비 덕이지 않소? 이미 한번 목숨을 빚졌으니 이제 갚을때가 된 것이겠지.”

“......”

“그 날도 돈을 벌려 그랬소. 어차피 돈 벌려고 뭔짓인들 다했는데 이번 일도 못할것 없으니 걱정 마시오.”


백연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가 손을 딱 튕기자 금자 하나가 휙 허공을 가로질러 노인에게 날아갔다. 그것을 낚아챈 노인이 주름진 미소를 지었다.


“황력(黃礫)이라 하오. 잘 부탁하겠소. 암화(暗火).”


늙수레한 음성이 표국 안에 내려앉았고.


“암화......?”

“저 소년이 암화라고?”


그 순간부터 사람들의 표정이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5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곤륜환생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공지 연참대전 참여 공지-주 6회 연재 +2 23.12.04 673 0 -
공지 연재주기 변경 및 향후 작품 계획에 관한 공지 +8 23.07.31 2,203 0 -
공지 후원인명록(後援人名錄) 23.07.06 1,290 0 -
공지 연재주기 공지-주 6일 오후 18시 10분(12/04자로 변경)입니다 23.05.11 22,240 0 -
268 천라방(2) NEW +2 1시간 전 143 7 16쪽
267 천라방 +4 24.05.21 694 33 15쪽
266 천독(3) +5 24.05.20 882 38 15쪽
265 천독(2) +6 24.05.18 1,134 43 18쪽
264 천독 +6 24.05.17 1,043 45 15쪽
263 무극(無極)(3) +9 24.05.16 1,106 47 19쪽
262 무극(無極)(2) +5 24.05.15 1,155 44 22쪽
261 무극(無極) +7 24.05.14 1,169 50 20쪽
260 권마(拳魔)(5) +7 24.05.13 1,166 48 17쪽
259 권마(拳魔)(4) +8 24.05.11 1,300 48 18쪽
258 권마(拳魔)(3) +7 24.05.10 1,191 47 15쪽
257 권마(拳魔)(2) +5 24.05.09 1,216 46 16쪽
256 권마(拳魔) +5 24.05.08 1,279 47 16쪽
255 서주(4) +5 24.05.07 1,296 50 16쪽
254 서주(3) +6 24.05.06 1,328 49 14쪽
253 서주(2) +7 24.05.03 1,555 51 17쪽
252 서주 +6 24.05.02 1,456 50 17쪽
251 푸른 별(9) +7 24.05.01 1,382 54 16쪽
250 푸른 별(8) +5 24.04.30 1,417 50 16쪽
249 푸른 별(7) +8 24.04.29 1,433 54 20쪽
248 푸른 별(6) +6 24.04.27 1,528 51 20쪽
247 푸른 별(5) +5 24.04.26 1,385 49 18쪽
246 푸른 별(4) +6 24.04.25 1,443 51 18쪽
245 푸른 별(3) +7 24.04.24 1,424 57 14쪽
» 푸른 별(2) +5 24.04.23 1,472 55 19쪽
243 푸른 별 +5 24.04.22 1,589 52 14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