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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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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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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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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30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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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쪽

푸른 별(8)

DUMMY

※※※



죽은 사람들의 시신을 수습하고, 다친 사람들을 추슬러 오르는 산길은 길었다. 내려앉은 적막은 무거웠으나 동시에 가벼웠다. 죽음을 항시 곁에 두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일까.


“장 할아범은 그 몸으로 칼질해먹고 살 수 있겠어?”

“무당 선극은 외팔이요, 숭산의 신승은 앉은뱅이라 들었네. 팔 하나 없다 하여 검수가 되지 못할 몸이면 처음부터 이 칼로 고기나 썰지 않았겠나.”


그새 친해졌는지 대화를 나누는 예화와 장중의 목소리가 가볍다. 전투중에 잃어버렸다던 삿갓을 어디에서 찾았는지 푹 눌러쓴 모습이었다.


분위기는 그리 가볍지 않았음에도, 기묘한 산뜻함이 감돈다.


“정말로 그대가 부궁주를 격살했구려.”


백연에게 다가와 말을 건네는 황력의 목소리에도 복잡한 감정이 섞여 있었다. 놀람과 감탄, 그 아래 깔린 희미한 성취감과 동시에 안타까움, 그리고 무언가 해탈한 듯한 감각까지도.


“청성파 도인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겁니다. 부월검의 힘으로 재생의 공능이 크게 저하된 터라.”

“허나 소문은 그러한 조건을 따지지 않을 것이오. 그대는 이제부터 부궁주 남평을 격살한 신성이라 불리겠지.”

“예. 그리 되겠지요.”


백연이 뇌까리며 희미하게 웃었다.


강호 무림의 명성이라. 바라본 적은 없건만, 검을 내뻗다 보면 뒤따라온다. 검귀가 그러했듯이.


죽은 이들은 기억되지 않는다. 매일같이 명을 다하는 이들까지 전부 품고 있기에는 마음이 부족하기 때문일까.


부월검 임지승의 이름도 오래 떠돌지는 못하리라. 스스로를 희생해 청성파를 지켜내고 죽은 인물. 그 한줄만이 남겠지.


풍진 강호에서는 금새 바람에 쓸려 사라지고 말 한줄이었다.


‘본디 그것이 싫어서 홀로 다녔었건만.’


검귀는 그랬었다. 헌데 어찌 이리 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끝까지 따라다닌 놈들 때문에 애착이라도 생겼었는지.


“무슨 생각?”


귀신같이 물어오는 사형이었다. 백연은 피식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곤륜이 험하구나, 생각하고 있었어.”


부드러운 흙바닥을 밟아내며 걷기를 한참이었다. 칼날같이 솟아있는 곤륜과는 또 달랐다. 푸르른 숲이 사방을 뒤덮고, 흐르는 안개와 구름 사이로 부서지는 햇살이 신령스러웠다.


사천 청성산. 숨을 들이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거니는 아이들은 푸르른 구름으로 호흡하고, 불그스름한 노을을 눈에 담아내리라.


지금 뒤에 따라오고 있는 청성파의 제자들은 그렇게 성장하여 언젠가 부월검처럼 이곳을 지키겠지. 그처럼 검을 휘두르고, 호쾌한 무공을 펼치면서.


‘그것이 검(劍)이고, 무맥인가.’


소년은 생각했다. 어쩌면 부월검의 이름은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원시천존, 원시천존.”


청성파 도관이었다. 한참을 걸은 끝에 무당보다는 작으나 크고 고풍스러운 산문에 발을 들이자, 늙수레한 노인이 그들을 맞이했다.


“사숙조 어르신!”

“청진 사숙조!”

“괜찮으셨습니까?”


그를 보자마자 우르르 달려가는 청성파 무인들이었다. 잠깐의 소란 끝에 아이들을 물린 노인이 산문 앞으로 천천히 다가왔다. 어색하게 문 근처에 서서 검을 만지거나 수염을 쓸고 있는 표국의 무인들.


그리고 그들의 앞에 선 백연과 소홍을 둘러본 노인이 갑자기 머리를 푹 숙이며 공수를 올렸다.


“감사드리겠소. 그대들의 희생이 청성을 구원해주었소.”


극진한 예를 받은 표국의 무인들이 잠깐 얼어붙은 사이, 백연은 나서 노인을 일으켰다.


“인사를 받으려 한 것은 아닙니다. 헌데, 도인께선......?”

“청진이라 하오. 우선 다들 들어오시오. 다친 이들의 치료가 우선인 듯 보이니.”


금새 도관은 사람들로 가득 들어찼다. 넓다란 청성파의 건물들 사이사이, 안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꽤나 많기도 했다.


건물 곳곳에서 슬그머니 얼굴을 내미는 이들은 대부분 어리거나, 몸에 내공이 그리 쌓여있지 않은 문도들이었다. 그들을 지나칠때마다 얼굴에 슬픔과 기쁨이 동시에 깃드는 모습들이 엿보인다. 간간히 나이든 배분의 무인들도 보였는데, 일신의 무위가 압도적이지는 않은 사람들 뿐이었다.


“이곳이 마지막 저지선이었소. 산문으로부터 십여장 거리를 기점으로, 청성의 모든 힘을 쏟아 적의 진격을 저지했지.”

“어찌 그런것이......?”

“나름 기백여년간 수많은 풍파를 겪다 보면 문파를 방비할 수 있는 진(陣) 하나 정도는 구축하기 마련이지 않겠소. 그럼에도 곧 뚫릴 위기였기에 꼼짝없이 죽었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청진의 시선이 백연과 무인들을 담아내었다.


“그대들이 나타난거요.”

“......”

“아마 오늘밤에 뚫릴 가능성이 높았소. 그랬다면 이곳에 남아있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오.”


백연은 주변을 돌아보았다. 소년의 시선이 문파의 안을 쓸었다.


푸른 하늘 아래 도관의 건물들 사이로 핏물과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풍경은, 쉬이 떠올릴 수 있는 것이었다. 한두번 보았던 것이 아니기에.


소년은 생각했다.


오늘 이곳에 오기를 다행이라고.


“다친 분들은 이쪽으로 오시오. 청성의 비고를 열테니, 영약과 약을 무한정 제공하겠소. 여기, 임소백이라는 제자 놈인데, 의술이 탁월하니......”

“우선 지혈부터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오간다. 다친 이들이 의원에게 몸을 맡기고, 영약을 먹는다. 그 와중에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무인들의 눈에는 다친것에 대한 고통보다는 호기심과 감탄이 깃들어 있었다.


“낭인들이 이런 곳에 올라와볼 일이 무엇이 있겠소. 하물며 구파의 비고라니. 오늘 이곳에서 겪는 일이 내 평생 가장 놀라운 일이외다.”


황력이었다. 백연은 그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물었다.


“안 다치셨습니까?”

“이 늙은이는 괜찮소. 외려 암화 그대가 빨리 치료를 받아야 할 터인데. 그 팔이......”


노인의 눈썹이 찡그려진다. 축 늘어진 백연의 오른팔을 보면서였다. 그에 백연이 슬쩍 오른팔을 내려다보곤 어깨를 으쓱였다.


“견딜만 합니다.”


완전히 부서진 상태였다. 근골이 뒤틀리고 망가졌는데, 주화입마에 빠진 이들의 육신과 진배없었다. 스스로도 이런 부상에 대한 경험이 없지 않아 단단한 나뭇가지를 덧대어 고정시키고 점혈을 해놨음에도 슬슬 통증이 올라오고 있었다.


‘운연동공이 아니었으면.’


완전히 망가졌을지 모른다. 소림의 역근경이나 되어야 이 반동을 버틸 수 있을까.


거꾸로 생각하면 천하제일의 외공 운운하던 부궁주의 말은 틀린 구석이 없다는 소리였다. 궁도 전체가 이 맹화라는 무공을 익히고도 몸이 멀쩡하다는 사실. 그것 하나로 드높은 외공의 경지라 할 수 있었다.


‘이지를 상실하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그정도 전투력이라면 가치가 없지는 않다.’


수라궁도 개개인의 무력은 본디 높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수백에 달하는 이들이 맹화를 사용하고, 신체를 변용하는 무공을 동시에 일으키면 그것이 곧 재앙이자 해일이다. 그 사이에 사냥개 하나 정도라도 있다면.


‘그것 자체로 일문(一門)을 도모해볼만한 전력.’


심지어 부궁주는 맹화의 여파가 뇌리에 미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하면 당연히 궁주도 마찬가지일 터.


압도적인 외공을 익힌 수라궁주가, 맹화를 상시 사용한다고 했을때는.


‘괴력난신이다.’


그것이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괴물이다. 백연은 그제서야 어렴풋이 느낄 수 있었다. 수라궁주가 어찌하여 그리 공포와 경계의 대상으로 취급받는지.


“암화. 그대는 잠깐 이리 와주시오.”


그때였다. 한켠에서 무언가를 집어든 청진진인이 그에게 손짓했다. 수염 한가닥 없는 말끔한 주름 사이에서 온화한 기질이 묻어나왔다.


“왜 그러십니까?”

“그대의 부상은 여기서 볼 것이 아니오. 따라오시오.”


소홍을 힐끗 쳐다보자 그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백연은 옷자락을 갈무리하고는 걸음을 떼었다.


그 사이 뒤에 서 있던 황력이 넌저시 말을 던졌다.


“고마웠소. 암화 그대 덕에 많은 것을 배웠구려.”

“어찌 그리 생각하십니까?”

“헛허. 본디 돈에 눈이 멀어 그날밤에 무당산을 올랐던 것을 크게 후회했었소. 이제는 아니오. 그때 그대를 만난것이 이 늙은이의 검도(劍道)에 있어 가장 큰 행운이 아니었나......”


흐릿한 말끝 속에서 늙수레한 웃음이 깃들었다.


“그리 생각하고 싶구려.”


백연은 그를 향해 옅은 미소로 화답했다.


“그렇다면 다행인 일입니다.”


사람들을 뒤로하고 움직이는 청진의 걸음이 빨랐다. 성큼성큼 걸어나가는 늙은 도인의 몸짓이 호쾌했다.


‘내공 한점 없어 보이는데.’


의문스러운 일이었다. 분명 청성의 장문인인 청운진인과 같은 배분일 도인이, 온몸에서 진기 한터럭 흘러나오지 않는 평범한 노인이라니.


반박귀진이라 생각되지는 않았다. 그정도 지고한 무위였다면 수라궁이 이 정도 무인들로 청성파를 도모하지도 않았을 터.


흔하지는 않은 일이었다. 강호 무림에서 구파의 높은 배분들에 오른 도인들은 대게 무(武)에도 통달하기 마련이었으니까.


그때 그의 눈길을 느꼈을까, 청진이 입을 열었다.


“빈도(貧道)는 무제자가 아니었소. 본디 옛 도가 문파에는 무(武)를 추구하는 이들과, 도(道)만을 추구하는 이들이 각기 제자를 따로 받아들였었는데, 청성파는 그 전통이 꽤 오래 남아 있었소이다.”

“그랬군요. 몰랐습니다.”

“이제는 그러하지 않으니 말이오. 허나 무공을 익히지 않았다 해서 잔재주가 없지는 않소이다. 이곳 청성을 지키는 거대한 진법은 빈도가 맡고 있으니.”

“진법이라 하심은?”

“술법, 진법......그대도 알지 않소이까. 바위를 놓고 돌을 던져 바람과 땅기운을 엮어내는 것은 몸에 내공 한점 없어도 할 수 있으니 말이오.”


백연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였다. 어느 높다란 돌벽 한켠에 수그리고 앉은 청진이 손을 뻗었다. 크게 드리운 나뭇가지 아래, 작은 석상을 집는 손길이었다.


주름진 손이 석상을 잡아 부드럽게 돌려놓는 그 순간이었다.


그극.


묵직한 소리와 함께 주변의 풍경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순간 눈앞에 거대하게 드리운 돌벽이 서서히 물결치듯 일렁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단단한 벽면으로 보였던 절벽의 한 가운데, 커다란 동혈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내었고.


“이쪽이오.”


백연이 흠칫 놀란 기분을 갈무리할 틈도 없이 청진은 그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를 따라 들어가자 서늘하고 묵직한 공기가 사방을 짓누른다. 그러나 그것은 얼마 가지 않았다.


‘통로인가.’


바람의 흐름으로 알 수 있었다. 그들이 들어온 입구에서부터 안쪽으로 크게 흐르는 공기가 느껴진다. 반대쪽이 뚫려있지 않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소.”

“그렇습니까?”

“용봉지회의 일......그 이후로 암화라는 이름은 적어도 청성파 내에서는 존중받아야 할 별호가 되었다오. 그대의 배분이나 무위와 상관 없이 말이오.”


백연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임지승에게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해서 그대가 오면 본디 보답을 해주려 했었소. 장문사형과도 합의가 된 사항이었는데......”


그리 말하며 그를 힐끔 돌아본다. 주름진 미소에는 숨길 수 없는 고마움이 깃들어 있었다.


“오늘의 일로 인해 더욱 큰 은을 입었다 할것이오.”

“......그리 생각지는 않습니다. 부월검께서 제 사형을 목숨바쳐 구해주셨지요.”


백연이 나직히 답했다.


“제가 더 큰 빚을 졌다 생각합니다.”


진심이었다. 소홍이 죽었다면 그가 어찌 행동했을지 알 수 없었기에.


하지만 그럼에도 청진은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원시천존, 원시천존. 강호 무림의 도인으로써 후학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응당 해야할 일이니 그리 마음에 두지 마시오. 아이는 원하는대로 간 것이오. 항시 멋있게 죽고 싶다 하더니.”

“......”

“허나 그 말에서 그대의 품성을 알겠소. 그리 마음이 쓰인다면 언제고 잊지만 말아주시오.”

“당연한 말씀을.”


그렇게 백연이 답하는 순간이었다.


눈앞이 흐릿한 빛으로 가득차더니, 돌연 어두웠던 동혈이 끝나며 탁 트인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백연이 말끝을 흐렸다. 한순간 시야에 들어온 광경에 압도된 까닭이었다.


동혈이 끝나는 장소.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었다. 어디선가 흘러 떨어지는 물이 절벽의 끝자락에 걸쳐 커다란 호수를 형성하고 있었는데, 그 주변을 따라 푸른 구름이 느릿하게 흐른다. 동시에 탁 트인 시야 너머로 펼쳐진 것은 광대한 산맥의 자락이었다.


시야 저편으로는 늦은 오후의 하늘에 걸친 햇살이 불그스름한 노을을 안개 위로 펼쳐내어 물들이고 있었고, 호수의 끄트머리에서 절벽 아래로 떨어지는 물은 구름 사이를 뚫고 유유히 낙하하는 중이었다.


한순간.


별세계라 느껴졌다. 사람이 거닐 것 같지 않은 장소.


한없이 신령스러운 분위기였는데, 꿈결에 나올 것만 같은 풍경이었다. 허나 더욱 놀라운 것은 풍경만이 그런것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쏴아-


귓가에 스치는 물소리가 노래하듯 튕겨오른다. 발치에 굴러 떨어지는 물방울 속에서 흘러나오는 것은 더없이 투명하고 맑은 영기(靈氣)였다.


마치 호수 전체가, 청성산이 품은 생명 그 자체로 맥동하는 듯한 감각.


“이곳은 우리 청성이 귀히 모시는 장소이자, 비처.”


그의 뒤에 선 청진이 말했다.


“이것으로 그대에게 입은 은을 다 갚는다 말할수는 없겠으나, 긴히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소.”

“......이런곳에 제가 들어와도 되는 것입니까?”

“물론. 장문사형이 이곳의 출입을 관리할 권한이 있으나, 그는 여기에 없으니 말이오. 아마 며칠이 더 지나야 올 것인데......그대가 아니었다면 그는 시체와 피로 물든 청성파를 마주했을테니. 이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겠소?”


그의 말대로 청운진인과 청성파는 지금쯤 바삐 이곳으로 향하는 중일 터. 하지만 삼대제자들의 걸음에 맞추려면 백연을 비롯한 별동대만큼 빠르게 움직일 수는 없다. 버리고 갈 수도 없는 노릇에.


청진의 말을 들은 백연이 천천히 호수 근처로 다가갔다. 흘러오르는 기운이 한순간에 그의 몸으로 들어오며 생기를 북돋아주는 것이 느껴진다.


단순히 물 근처에 다가가 호흡할 뿐임에도.


“호수 전체가 영수(靈水)로 이루어져 있소. 천지사방에 널린 영약과 신령스러운 나무들, 땅기운을 머금고 떨어지는 까닭인데, 영약을 직접 섭취하는 것보다는 내공증진의 효능은 미미하오. 하지만 대신 상처를 치유하고, 몸을 강화시키는 것에는 훨씬 뛰어나지.”

“그런......”

“지금의 그대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 믿소. 들어가 몸을 담그시오.”


그리 말하며 웃은 청진은 빠르게 물러나 사라졌다. 한밤이 되기 전에만 돌아와 같이 식사를 하자면서.


청진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백연은 조용히 호수를 응시하다 흐린 미소를 지었다.


‘무슨 은을 베풀었다고.’


과분하다 느껴진다. 임지승은 이곳에 살아 오지도 못했거늘.


그렇게 잠시간 홀로 앉아있던 소년은 이내 천천히 일어났다.


찢어지고 피로 물든 백청색 장포와 연홍빛 무복이 발치에 흘러내렸다. 두 자루 검을 고이 옆에 내려놓은 소년은 천천히 머리를 틀어올리며 호수에 걸음을 내딛었다.


화악-


차가우면서도 부드러운 물결이 몸에 닿아온다. 한없이 투명한 물에 핏물이 섞여들었는데, 그마저도 금새 다시 투명해진다. 강대한 자연지기로 인해 오염되어도 순식간에 정화되는 까닭이었다.


푸른 구름 사이에서 떠 있는 듯한 감각.


그 속에서 소년이 숨을 들이쉬었다.


명경(明鏡)같은 물 위로 비치는 소년의 눈동자가 바람처럼 일렁였다. 점차로 투명하게 밝아지는 자안(紫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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