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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님의 서재입니다

곤륜환생

웹소설 > 일반연재 > 무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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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하랑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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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5.21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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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4.25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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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쪽

푸른 별(4)

DUMMY

검끝이 둥글게 휘어진다. 발검의 궤적이 아니었다. 어느새 비스듬히 우상단을 격한 검끝이 커다란 태극(太極)같은 원형을 그리며 다시 허리춤으로 돌아가는 수순이었는데, 날을 따라서는 희끄무레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개세적인 발경력의 마찰 탓이었다. 한순간 대기와 부딪혀 극한까지 달아오른 일검.


점점이 흩어져 나와야 할 핏물마저 한번에 한줌 연기로 화(化)한 것이었다.


동시에 소년의 앞을 따라 늘어선 사람들 수십의 인영이 일제히 ‘미끄러져’ 내렸다.


허리춤부터 어깻죽지까지.


사람의 상반신이 비스듬히 떨어져 내린다. 전부 하나의 검권(劍圈)안에 들어와 있던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시체가 땅으로 일제히 미끄러져 쓰러진 직후.


“음?”

“무슨......”

“적습?”


산 위로 나아던 수라궁도들이 그제서야 이변을 눈치채고 뒤를 돌아보며 기파를 끌어올렸다.


백연이 납검하는 것과 동시였다. 경악하는 표정을 지은 수라궁의 무인들이 제각기 무기를 뽑아들며 반응 하는것이 찰나. 곧장 대지를 박찬 그들이 커다란 도끼와 검을 들고 양쪽에서 소년을 짓뭉개려 달려드는 그때.


“허엇-차.”


늙수레한 목소리들이 백연의 귓가에 내려앉았다. 옅은 피륙음과 함께였다.


파바박!


왼편에서 백연을 향해 달려들던 거한의 몸에 돌연 검 세자루가 솟아나듯 박혀들었다. 직후 한발 늦게 도달한 황력의 검이 큰 원을 그리며 거한의 목을 갈랐다.


“거 황가놈 걸음이 왜이리 느리다냐.”

“부러 맞춘 것이니 집중이나 하시오.”


파악!


투닥이는 목소리와 함께 허공으로 튀어오르는 커다란 머리통. 그와 동시에 별안간 옆에 육중한 기척이 유성추(流星錘)마냥 날아와 떨어졌다. 어디서 들고 왔는지 모를 거대한 선장(禪杖)을 꼬나쥔 노지심이 입을 쩍 벌렸고.


“갈(喝)!!!!!”


귀청이 터질 것 같은 사자후와 함께 선장이 수라궁도의 머리 정중앙에 내려앉았다.


콰직.


머리가 사라진 수라궁도의 시체를 한손으로 잡아 집어던진 노지심이 그대로 앞으로 보법을 내딛었다. 둔중한 울림과 함께 그의 신형이 급가속. 수라궁도들 한복판에 떨어진 그가 크게 진각을 쾅-내리찍는다.


“영감!”

“무리하지 말게.”


그와 함께 속속들이 옆에 내려앉는 흐린 기척들. 길쭉하게 이어진 경공 여파 수십이 노지심이 만들어낸 틈에 제각기 내려앉으며 검을 뽑아든다.


어느 순간 백연의 시야 가장자리에 보인 것은 태연하게 검을 역수(逆手)로 뽑아들며 회전하는 장중의 몸놀림이었다. 노지심이 만든 틈새에 비집고 들어가 수라궁도 둘의 목을 일격에 날리는 유려한 검로.


뒤이어 괴성을 지르며 달려드는 수라궁도들 사이에서 예화의 도끼가 번뜩이며 복잡한 궤적을 그렸다.


“은자 두 냥, 세 냥......”


심드렁하게 중얼거리는 목소리가 유달리 귀에 선명하게 꽂힌다. 그 옆에서는 취풍이 날카로운 눈매로 검을 길게 쥐고 휘두르는 중이었다. 별안간 일어난 검풍(劍風)을 제 수족마냥 뻗어내 적을 격하는 모습. 뛰어난 검객이었다.


“뒈져라, 악적들아!”


고함을 치며 달려나가는 검객들부터 침착하게 품에서 비도를 꺼내어 던지기 시작한 무인, 길쭉한 봉으로 수라궁도를 두들겨 패는 이들까지도.


이 순간 자리에 내려앉은 수십의 무인들이 제각기 무공을 펼친다. 그 기세가 가히 맹렬했다. 한순간 청성산을 포위하고 올라가던 수라궁도들이 혼란에 빠지며 멈춰설 정도로.


하지만.


‘한순간의 기세일 뿐이다.’


백연은 생각했다.


기습적인 뇌인의 여파에 이은 무인들의 공격. 그로 인해 아주 잠깐의 우세를 점했을 뿐이었다. 지금 이 순간 소년의 시야에 들어오는 수라궁도의 수가 까마득했다.


‘이백? 삼백?’


대체 얼마나 많은지 가늠도 되질 않는다. 그들이 습격한 자리에서부터 시야가 안보이는 능선까지도.


산맥을 따라 오르고 있는 인영들이 수도 없이 많았다.


‘저들이 전부 이쪽을 공격하기 시작하면.’


그때는 버텨야 한다. 지금의 기세가 남아 있을때 최대한 적의 수를 줄이고, 저들이 반격하는 시점부터는 버티면서 청성파의 무인들과 합공을 노려야 했다.


허나 그렇다면 역으로 지금은 잠깐의 기회가 있다는 소리.


“사형.”

“응.”

“사형이 먼저야. 부탁할게.”


말을 덧붙이기도 전에 유령같은 기척이 전진했다. 길게 검을 늘어뜨린 신형이 어느 순간 전장의 한복판으로 뛰어들었다. 노지심과 무인들이 합류한 방향의 반대.


수십이 넘는 수라궁도들이 모여있는 곳에 돌연 작은 키의 인영이 뚝 떨어지듯 낙하하며 검을 길게 끌어낸다.


터엉.


늘어뜨린 소홍의 검끝이 땅에 닿을 듯 가볍게 스치는 순간이었다. 길쭉하게 뻗은 검신을 따라 시뻘건 빛살이 쪼개진 호흡 사이로 몸을 부풀리며 터져나왔고.


화르르르르륵!


찰나지간 허공을 따라 길쭉한 검로가 수십이 넘게 새겨졌다. 화간접무(火間蝶舞)의 초식. 작열하는 불꽃이 베인 이들의 상처를 태워버리고 막대한 고통을 선사한다. 늘어지는 수십의 검로가 일제히 달아오르며 허공에 화염의 꽃비를 펼쳐낸다.


온전히 소홍의 기파로 엮어낸 거대한 화염의 꽃이 만개하며 사방을 물들인 그 순간.


“뭐 안쓴다고 약속은 했는데......”


입꼬리를 끌어올린 백연이 보법을 밟았다. 길쭉하게 늘어선 소년의 신형이 막 검을 회수하던 소홍의 곁에 현현. 그대로 한손으로 소홍의 어깨를 내리누른 백연이 속삭였다.


“고개 들지 마.”


그와 함께 자색으로 물든 눈으로 허공을 여상히 응시하는 백연. 태연히 검을 치켜드는 동작이 한없이 느릿하게 느껴졌다. 수없이 쪼개진 인지 속에서 어느새 간극에 접어든 소년이, 길다란 호흡과 함께 일대의 모든 진기를 감각 하에 받아들인 순간.


우우우우우웅-!


대기가 몸을 바르르 떨었다.


한순간 길게 드리운 나뭇가지들이 고개를 살풋 더 숙였다. 반대로 늘어져 있던 잎사귀들은 날아오르기라도 할 듯이 위를 향해 빳빳이 솟아올랐다.


‘더.’


소년의 머리가 작열하는 듯이 달아올랐다. 자령안의 감각이 일대에 있는 모든 흐름을 파악하며 낱낱이 해체한다.


직후였다.


사방에 휘돌던 화염이 어느 순간 멈췄다. 소홍이 펼친 적화검류의 화염이 별안간 정지한 것이었다. 한번 불어닥친 화염의 폭풍은 이제 흩어져 사라졌어야 옳았음에도.


“보는 사람도 없고, 암기로 펼친것도 아니고......”


그 사이로 투명한 백연의 음성이 피어올랐다. 옅은 웃음기를 머금은채였다.


“이름도 달리 붙여볼까. 풍뢰화우(風雷火雨)라고.”


여상히 치켜든 검끝. 소홍이 만개시킨 화염의 꽃잎이 백연의 검끝에 매달려 서서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화염꽃의 파도가 춤추며 허공을 수놓는다.


쉼없이 회전하는 뇌기가 적화검류의 여파마저 그러모아 하나의 절초로 탈바꿈시킨다.


머리 위를 가득 수놓은 붉은 파도는 수라궁도들마저 멍하니 고개를 치켜들고 쳐다볼 수 밖에 없는 화려함의 극치.


그 사이에 선 소년이 검을 치켜든채로 입매를 비틀었다.


만천(滿天). 개(改).


풍뢰화우(風雷火雨)의 장.


직후 백연의 검끝이 가볍게 허공을 그어내렸고.


콰아아아아아아!


작열하는 꽃잎의 폭풍이 청성산의 위를 휩쓸었다.



※※※



타닥.


불티가 그을린 땅 위로 흩어졌다. 온몸이 갈기갈게 찢겨 새까맣게 불타버린 인영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진다. 살아있는 이들도 몸이 성하지 못했다. 크게 떠진 눈에 서려 있는 것은 공포였다. 본래 공포를 모르는 짐승 같다 일컬어지던 수라궁도들임에도.


한순간 적막이 휘장처럼 드리웠다.


“후우......”


길게 뽑아내는 숨결이 희끄무레했다. 날씨 탓은 아니었다. 이미 봄에 이르러 선선한 정도의 날씨였을 뿐더러, 지금 소년이 서 있는 자리는 화염꽃의 여파로 뜨겁게 달아오른 대기가 일렁이는 중이었으니까.


그것은 신공절학을 펼친 여파였다.


지금 이 순간도 커다란 눈동자에서 자색 안광이 흘러내리듯 뚝뚝 묻어 나온다. 한손에 검을 여상히 늘어뜨린채로 고개를 살풋 숙이고 있었는데, 그러한 백연을 보고도 누구 하나 먼저 달려드는 이가 없었다.


그의 옆에서 천천히 몸을 일으킨 소홍만이 가볍게 입을 열었을 뿐.


“몇 호흡, 필요해?”

“......셋.”

“확인. 기억해둘게.”


소홍이 검을 쥔채로 백연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렇게 세 번의 호흡이 길게 뽑혀나와 허공에 퍼져나간 뒤.


“이제 됐어.”


백연이 시선을 들어올렸다. 고개를 끄덕인 소홍이 살풋 물러난다. 그때까지도 적막은 여전했다. 저편에서 호쾌하게 선장을 휘두르던 노지심조차 미간을 좁히며 이쪽을 바라보는 중이었다.


“뭔......”


처음 표국에서 그를 보던 눈빛과는 모두 달라져 있었다.


어린 검객을 보던 시선들에 이제는 다른 감정들이 깃들어 있다. 백연은 구태여 그것들을 파악하려 하지 않았다.


익숙한 까닭이었다. 검귀의 앞에 선 이들이 저런 눈을 많이 하곤 했으니까.


아마 인외의 무언가를 보는 느낌이겠지.


‘한가지는 확인했군.’


그를 둘러싼 수라궁도들. 만천의 여파를 피해간 이들조차 쉬이 다가오지 못한다. 그것으로 알 수 있었다. 수라궁의 무인들도 이러한 일격 앞에서는 두려움을 우선시하게 된다는 사실.


‘공포를 모르는게 가장 위험한데, 그건 아닌가.’


섬서에서 싸울때는 어땠더라.


소년은 기억을 되짚어보려 했으나, 그리 넉넉한 시간이 주어지지는 않았다. 갑작스레 저편 어디선가 울린 괴성 때문이었다.


“------!”


직후였다.


그 일은 돌연 일어났다.


“화염을 다루는 검법......누군지 알겠군. 금안을 죽인 녀석이 여기에 와 있었나.”


노지심의 뒤였다. 별안간 땅에서 솟아오른 듯한 길쭉한 그림자가 입을 열었다. 한 손에 든 날카로운 검을 여상히 휘두르면서였다.


스윽.


검게 물든 검신이 소리없이 허공을 갈랐다. 그러나 노지심의 목이 땅에 떨어지는 일은 없었다.


“어딜.”

“음? 암화의 보신경이 이렇게 빠르다는 정보는 없었는데......”

“너, 사냥개지?”


터억.


어느새 납검한 백연이었다. 한순간 원래 서 있던 자리에서부터 노지심의 뒤편까지 한줄기 백광이 분분히 이어져 있었는데, 보법 여파조차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 간극 속에서 소년은 양손을 여상히 뻗어 검면을 합장하듯 움켜잡았다.


공수입백인(空手入白刃).


검을 움켜쥔 순간, 그림자 속에서 검게 물든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고.


“부궁주는 어디있지?”

“무슨......?”

“모르면 말고.”


쩌어어어어엉!


굉음이 포탄처럼 터져나왔다. 그와 함께 노지심을 비롯한 이들의 신형이 주욱 밀려나며 흩어졌다. 뒤늦게 불어닥친 보법 여파로 소년의 머리칼이 줄기줄기 흩날렸다.


“대처가 좋은데.”


백연이 중얼거렸다. 그의 손아귀에서 파직거리는 경파 조각이 흩어져 떨어지고 있었다. 온몸을 따라 성라기단의 흔적이 한차례 일었다가 다시 투명하게 사라졌다.


그리고 그 앞.


오장이 넘는 거리를 훌쩍 물러난 검객이 잔뜩 당황한 시선으로 그를 응시하고 있었다.


‘검을 부수려고 했는데.’


상대의 대처가 빨랐다. 검신이 잡힌 순간 스스로의 검에 막대한 진기를 불어넣어 억지로 터트렸고, 그 여파로 백연의 손아귀에서 검을 빼내었다. 물론 그 대가로 검신에 균열이 생기고, 내상을 좀 입었겠지만.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흑표자(黑豹子)? 수라궁의 사냥개까지 여기에......!”


취풍의 목소리였다. 뒤편에 제각기 흩어져 숨을 가다듬고 있는 무인들을 힐끗 본 백연이 천천히 검을 뽑아들었다.


그에 흑표자라 불린 검객이 기침을 뱉으며 중얼거렸다. 당황이 섞인 음성이었다.


“쿨럭. 암화......분명 알려진 무위는.”

“그간 놀고만 있었던 것은 아니라.”


직후였다.


쩌억.


발치에 거미줄같은 균열이 패였고, 한순간 백연의 신형이 급가속. 어느 순간 흐린 빛살을 쥔 백연이 몸을 뒤틀었다.


콰아아아앙!


벼락이 떨어졌다. 흑표자가 이를 드러내며 백연의 검을 막아섰다. 백연은 신경쓰지 않고 재차 검을 휘둘렀다.


쩌엉! 쩌저정!


“무슨 검력(劍力)이......!”


잇새로 흘러나오는 경악성. 그러나 그것도 얼마 가지 못했다.


점차로 짧아지는 호흡의 간격 속, 벼락의 개수가 분열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희끄무레하게 일어나는 백광이 곁에서 보기에는 운무(雲霧)마냥 자욱한 검권을 그리며 피어나는데, 검격이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표상이었다.


일초 일초가 신공검법이었다.


분광뇌풍검의 초식들을 숨쉬듯이 내친다. 칠성섬뢰(七星閃雷)의 연격을 흩뿌리며 그대로 검신을 비튼다. 직후 상단세로 이어지는 검격 속에 담긴 것은 발검식 묘리의 응용.


그 덕택일까. 금안나찰과 적어도 동격일 것이 분명한 검객을 숨 쉴 틈도 주지 않고 몰아붙인다. 희끗하게 일어나는 검격을 막아내는 사이사이 흑표자의 몸에 붉은 실선이 새겨지기 시작했다.


“네놈, 지금, 무리를......!”


짤막하게 튀어나오는 외침. 그럴수록 백연의 검은 점점 가속할 뿐이었다.


‘더 빠르게.’


여유를 줘서는 안된다. 지금 눈앞의 검객은 위험했다. 전장에 풀어놓는 순간, 그와 함께 온 표국의 무인들은 순식간에 격살 당할것이 명약관화했다. 그만큼 차이가 컸다.


당장 금안나찰 본인이 매화검수들 여럿을 상대로 우위를 점했었다. 놔둘 수 없는 강적이었는데, 한 초식이라도 빠르게 이자의 목을 떨어트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러나 상대도 그것을 눈치채었을까.


“놈!”


쩌엉!


찰나 백연이 내리친 검격을 막아낸 흑표자가 별안간 몸을 뒤틀었다. 뒤로 물러나던 그가 일순 앞으로 일보를 내딛으며 전진. 휘어져 들어오던 백연의 간격 안에 파고든다.


‘수작을......’


찰나였다. 눈을 부릅뜬 백연의 시야가 자색으로 물들었다. 동시에 소년의 왼손이 꿈결처럼 움직였다. 여태껏 허리춤에 매여있던 천마의 검을 역수로 뽑아내기까지가 한순간.


영롱한 백색 검신이 희끗한 궤적을 그리며 크게 휘어졌고.


서걱.


섬뜩할 정도로 옅은 피륙음과 함께 흑표자의 한 팔이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허나.


“크흐......!”


잇새로 신음을 흘린 흑표자가 그대로 백연의 코앞에 진각을 내려찍었다. 동시에 그의 몸에서 커다란 기파가 꿀렁이듯 한차례 크게 방출.


콰아아아아앙!


그의 발치에 놓인 땅이 물결치며 출렁였다. 진각의 막대한 진기 파동이 파도처럼 퍼져나간다. 백연조차도 그에 직격당하지 않기 위해 뒤로 훌쩍 몸을 날릴 수 밖에 없었다.


‘팔을 내주고......!’


허공에서 몸을 뒤집은 백연. 그러나 아직 그는 허공을 유영하고 있었고, 공중을 박찰 수 없었던 탓에 흑표자가 하는 양을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찢어진 간극 속에서 흑표자가 크게 입을 벌렸고.


[------!]


섬뜩한 괴성이 물결처럼 퍼지며 산의 능선을 휩쓸었다.


타악.


직후 바닥에 내려앉은 백연의 신형이 급가속하며 전진. 흑표자의 코앞에 다다른 백연이 검을 그의 목에 들이대었다.


파아아아앙!


뇌광을 휘감은 소년의 옷자락이 흩날렸다. 보법 여파를 뒤로 한채로 백연이 입을 열었다.


“뭘 한거냐.”

“......암화. 수라궁이 어째서 수라궁인줄 아나?”


찢어질 듯 벌어진 입이 기괴했다. 그제서야 백연은 깨달았다. 본래 칠흑처럼 검었던 놈의 눈이 어느새 시뻘건 적색으로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수라(修羅)의 힘을 쥐었기 때문이다. 가장 말단 궁도부터, 드높은 궁주께서까지......”


그 순간.


“------!”


화답하듯 거대한 괴성이 울려퍼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곳에서만 울린 것이 아니었다. 저편에서 놀란듯 크게 숨을 들이키는 이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놈들 눈깔이......!”

“진형을 갖추시오!”

“우선 여기로 뭉쳐!”


물결처럼 메아리치며 퍼져나가는 괴성. 백연은 깨달았다. 산 위를 포위하고 오르던 모든 수라궁도들의 기척이 이제 그들의 지척에 깔려 있다는 사실을.


‘......결국 이렇게 된건가.’


놈들이 무슨 수를 썼는지 몰라도 느낄 수 있었다. 눈앞의 흑표자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기괴하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마치 주화입마에라도 걸린듯이.


‘버틸 수 있을련지.’


수라궁도들이 그들을 향해 덤벼드는 것 까지는 예상 범위 내였다. 하지만 이런 술수가 있었을 줄이야.


[죽어라.]


직후였다. 기괴하게 변질된 목소리로 중얼거린 흑표자가 한순간 크게 움직였다. 그 즉시 백연의 검이 휘둘러졌으나, 흑표자는 이미 그 자리에 없었다.


‘속도가......!’


쩌엉!


백연이 급격하게 회전하며 내친 검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굉음과 함께 옆에서 나타난 흑표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붉은 안광을 흘리며 검을 휘둘렀다.


쩌엉! 쩌정! 쩌저정!


힘도, 속도도 모두 늘어났다. 광기가 깃든 검로는 이전보다 무질서해졌지만, 동시에 파괴력이 수배는 증대되었다.


‘이러면 일반 궁도들도 강해졌을텐데......!’


위험했다. 표국의 무인들이 급작스러운 변화에 쉬이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까지 생각한 백연은 즉각적으로 기운을 끌어모았다.


찰나지간 소년의 두자루 검신에 뇌기가 한계를 넘어 층층이 쌓이며 겹쳐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눈앞의 흑표자를 베어버릴 일검을 소년이 구축하려던 그 순간-


“으하하하핫. 여기로 튀었었구나, 사냥개!”


한없이 청량한 기운이 사방을 휘감았다. 동시에 짙푸른 바람결같은 검기가 돌연 눈앞에 현현.


콰아아아앙!


푸르스름한 일검(一劍)의 궤적이 눈앞을 반으로 갈랐다.


직후 하늘에서 벼락처럼 떨어진 지저분한 머리의 중년이 백연을 보며 호쾌한 웃음을 지었다. 그 얼굴에는 감탄과 반가움, 그리고 놀람이 동시에 깃들어 있었다.


“아니 이게 누군가. 어떤 무모한 인간이 수라궁을 건드렸기에 포위망이 흔들리나 했더니. 자네였군?”

“......간만입니다.”


백연이 흐린 미소를 지었다. 그에 중년의 무인이 씩 웃으며 말했다.


“덕분에 놈을 쉽게 죽였네. 그렇잖아도 이제 수라궁의 포위에 말라 죽는가 했는데, 참으로 고맙군. 매번 그대에게 은(恩)을 입어.”


그리 말하며 가벼이 포권을 취한다.


부월검(斧鉞劍) 임지승.


청성파가 전장에 내려온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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