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0화. 금면악동(金面惡童) 상관마, 상관해
무당과 소림의 사자가 급히 돌아가고 정의문 사람들만 있자 청영이 뛰어들었다.
“책벌레, 아니 문주 동생. 나 왔어!”
“아, 그동안 잘 있었어?”
노소자도 반가워 청영의 손을 잡으며 묻자 청영은 잽싸게 손을 뻗어 노소자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동안 심심해서 죽는 줄 알았는데 잘 있긴 누가 잘 있어?”
사람들은 모두 청영이 버릇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서로 쳐다보고 웃기만 했다. 청영은 웃으며 박수를 두 번 치며 말했다.
“설하 언니, 어서 들어와!”
청영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설하와 시녀들이 방금 조리해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요리를 들고 들어왔다.
“문주님, 잘 다녀왔어요? 모두들 시장하실 것 같아 청영과 내가 직접 만든 요리랍니다. 모쪼록 맛있게 많이 드시기 바랍니다.”
청영과 설하의 요리솜씨는 일품이었다. 청영은 고급요리가 전문이었고 설하는 뭐든지 맛있게 만들 줄 알았다.
향냄새를 풍기며 보기에도 먹음직스런 요리들이 커다란 원탁에 오르자, 제일 먼저 전불원이 입맛을 다시며 냄새를 음미하였다.
“자자, 점심시간이 지난 것 같은데 모두들 빨리 자리에 앉읍시다.”
전불원은 참을 수 없었는지 먼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노소자 옆에 청영과 설하가 앉고 남해일절, 전불원, 왕 군사, 공무흔, 황자상, 양백송, 공손휘 그리고 다섯 호위가 자리하였다.
사람들이 연신 맛이 있다고 칭찬하며 음식을 먹자, 청영은 매우 기분이 좋아져서 팔꿈치로 노소자의 옆구리를 툭 쳤다.
“동생, 이 누나가 다른 것도 잘하지만 요리는 더 끝내주지?”
“솜씨도 좋고 순식간에 뚝딱 해치워요, 나는 발뒤꿈치나 따라갈라나?”
설하의 말에 모두 웃으며 화기애애한 가운데 식사를 하였다.
“참, 신군을 만날 때 두 노인도 있었다고 하셨죠? 그들의 생김새를 말해주십시오, 어쩌면 그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니···.”
왕 군사가 말을 하며 노소자를 쳐다보았다.
“그들은 나이가 거의 구십에 가까운 것 같았고 두 사람이 많이 닮았습니다.
모두 호리호리한 몸매에 키가 컸고 얼굴색은 거의 금색에 가까웠으며 눈이 매우 작았던 것 같습니다. 형님, 혹시 더 생각나시는 점은 없습니까?”
전불원은 누가 빼앗아 먹기라도 할 듯 허겁지겁 먹다가 노소자가 물어보자 우물거리며 간신히 말했다.
“인상이 아주 안 좋았고 눈, 코, 입 등 오관(五官)이 한군데로 모인 듯 아주 괴상망측하게 생겨먹은 놈들이었지···.”
그러자 공무흔이 눈을 깜박이며 말했다.
“그 그 놈들은···, 쌍둥이형제로 이름이 사, 사, 사··· 에고, 입안에서 뱅뱅 도는데 생각이 잘 나질 않네···.”
그러자 황자상이 양백송을 보며 말했다.
“양 형, 그 자들은 혹시 상관마와 상관해가 아닌가?”
“맞다, 맞아. 금면악동이 틀림없어.”
두 사람의 말에 공손휘가 놀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금면악동(金面惡童)은 얼굴색이 금색이고 오관이 한 곳으로 모여 나이가 먹었어도 얼핏 보면 아이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여진 별명인데···,
그들은 쌍둥이로 성격을 종잡을 수가 없어서 꼭 못된 아이들처럼 기분 내키는 대로 행동해서 모두 꺼려하던 인물이었어.
대략 삼십여 년 전에 풍뢰십삼장(風雷十三掌)의 비급을 얻고는 그 뒤로 행적이 끊어져 나타나지 않았는데 아직까지 죽지 않고 살아있었군.”
여러 사람들의 말을 묵묵히 듣고만 있던 주진원이 걱정스런 눈빛으로 말했다.
“문주님의 말씀으론 그들의 무공이 매우 뛰어났다고 하셨는데···, 그들이 흑룡방을 도와준다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쪽에서도 그들과 맞설만한 선배를 찾아야 할 텐데,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그러자 황자상이 눈을 껌벅이며 큰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우내일선 사행도 노선배님을 기억하십니까? 그분이라면 놈들을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자 양백송이 고개를 흔들며 말을 받았다.
“그분은 행적이 마치 신룡처럼 묘연한데 어디에서 그분을 찾는단 말이오. 지금 당장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양백송의 말에 황자상은 계면쩍은 듯 눈만 껌벅거렸다. 그러자 청영이 벌떡 일어나더니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사부님이 계시니 그런 늙다리들은 걱정할 것이 없어요. 안 그래요? 사부님.”
“넌 날 구렁텅이로 몰아넣는구나, 그들은 내겐 좀 버겁단다.”
남해일절의 말처럼 금면악동 두 사람을 상대하기엔 남해일절이 미치지 못할 것 같아서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아무래도 내가 소림사로 가봐야겠습니다. 은거하고 계신 둘째 사숙님의 거처를 물어서 직접 찾아가겠습니다.”
황자상의 말에 양백송이 환한 웃음을 띠우며 대꾸했다.
“맞아, 그분. 대력금강장(大力金剛掌)을 팔성의 경지까지 익히셨다고 하는 유명대사님을 생각하지 못했네···.”
“쇠뿔 도 단숨에 빼랬다고 생각난 김에 당장 떠날까 합니다. 양형은 내대신 이곳에서 수고해주구려.”
황자상이 인사를 하고 방을 나갔다.
식사가 끝나 청영과 설하는 시녀들을 데리고 상을 걷었고, 사람들도 하나둘 밖으로 나갔다. 방안에는 노소자와 왕 군사, 주진원 그리고 공손휘만 남았다.
“문주님, 긴히 의논할 일이 있습니다. 문주님 방으로 가시죠.”
왕 군사의 은밀한 말에 세 사람은 노소자의 방으로 들어갔다.
“군사님, 무슨 말씀이신지···.”
“문주께선 태행산에서 비급을 얻으셨는지요.”
“네, 다행히도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노소자는 탈혼염라 악부정과 탈백수라 구염부가 죽은 일, 흑랑채에 잡혔던 일 등을 얘기했다. 왕 군사와 주진원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 마두가 죽었으니 한시름 놓긴 했지만 정말로 큰일 날 뻔하였습니다.”
왕 군사가 주진원과 공손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주 대협과 공 대협도 눈치를 채셨겠지만 여러 사람을 들이다보니 아무래도 내부에 첩자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무당과 소림의 사자와 이야기할 때 밖에 있던 어린 하녀를 말씀하시는 거지요? 나도 미심쩍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주진원이 눈빛을 빛내며 말하자 왕 군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하녀가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그 하녀를 이용해서 우리의 계획을 살피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면 다행이겠지만.”
“그래서 내달 초에 흑룡방을 공략한다고 계획에도 없던 말을 하셨군요.”
“네, 놈들에게 경각심을 주어 다른데 신경을 쓰지 못하도록 한 것입니다. 또한 첩자를 찾아낼 기회가 될 수도 있고요.”
왕 군사의 깊은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던 노소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첩자가 조만간에 이곳을 빠져나가 적들에게 우리 계획을 알리겠군요.
탐색대의 비천야행 전풍문에게 몸을 숨기고 잘 살펴보라고 해야겠습니다.”
“누군지 파악만 하고 우린 모르는 척해서 첩자를 역으로 이용하는 계책을 쓰는 것도 좋지요.”
왕 군사가 신중하게 말했다. 그때 전불원이 밖에서 방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십시오.”
전불원은 개방의 부방주 타구신개(打狗神丐) 굴헌을 데리고 들어왔다. 전불원의 사형인 굴헌과 한차례 인사소개가 끝나자 전불원이 말했다.
“사형께서 수집한 개방의 보고에 의하면 건축자재를 실은 마차들이 끊임없이 화산으로 가고 있다고 합니다.
혹시 흑룡방과 관계가 있지 않나 싶어서 알려주려고 달려오셨습니다.”
왕 군사가 굴헌에게 읍을 하며 말했다.
“부방주님, 무림의 안위를 위해 이 궁벽한 곳까지 소식을 전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무슨 말씀을···, 여러분들의 노고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요. 앞으로도 중요한 정보가 들어오면 즉각 알려드리겠습니다.”
“사형, 우린 오랜만에 만났으니 나가서 술이나 한 잔 합시다.”
눈치가 빠른 전불원은 왕 군사가 문주와 중요한 일을 상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말이 끝나자마자 급히 자리를 비켜주었다.
“여러분, 마침내 우리 무영문의 배신자를 찾아냈습니다.”
노소자의 말이 떨어지자 주위 사람들의 안색이 변했고 모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특히 왕 군사는 격정(激情)에 사로잡혀 몸을 가볍게 떨었다.
“그, 그놈이 지금 어디에 있습니까?”
“바로 갈소군의 부친인 화염신군 갈단입니다.”
노소자의 말에 모두 놀라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고 망연자실하였다.
“갈소군과 갈무종의 무공초식을 보고 의심을 하곤 있었지만 막상 신군이 그놈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투지가 활활 타오릅니다.”
주진원의 기개 있는 말에 모두 눈을 부릅뜨고 입을 앙다물었다. 그때 왕 군사가 진지하게 말했다.
“지금 갈단은 정의문이 무영문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갈단은 무영문의 실체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배반하고 도망가 숨었지요.
우린 갈단을 알지만 갈단은 우릴 모르니 상황은 우리에게 유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참, 갈소군이 떠나면서 자신의 집이 화산기슭의 대나무 숲에 있다고 했는데, 건축자재들이 화산으로 향한다는 것을 보면 갈단이 그 근처에 새로운 본거지를 짓고 있는 게 아닌지···.”
노소자가 조심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왕 군사가 맞장구를 쳤다.
“그들이 각지에서 돈을 거둬들이는 것을 보면 공사비에 쓰려는 것일 텐데 그들에게 타격을 주려면 우선 돈줄부터 죄어야 합니다.”
주진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오늘 밤에 가까운 곳에 있는 금가보의 금광부터 손을 씁시다.”
“금광에서 나오는 돈이 어마어마할 테니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군사님께서 작전을 세워 오늘밤에 습격하기로 하지요.
그렇잖아도 사람들이 너무 무료하다고 야단들인데···.”
공손휘까지 거들자 군사는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그때 설하가 방문을 살짝 열고 노소자를 쳐다보았다.
“문주께선 오늘밤 일은 저희들한테 맡기고 나가 보십시오. 눈이 빠져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하하!”
공무흔의 말에 노소자는 얼굴이 붉어져 주춤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기다리고 있던 설하가 웃으며 말했다.
“문주님, 부탁이 있어요.”
“설매, 무슨 부탁인데?”
“밖에 설치한 오행팔괘진(五行八卦陣)을 구경시켜 줘요, 함부로 들어갔다간 빠져나오지 못한다고 해서 겁먹고 아직 들어가 보지 못했거든요.”
“그럼 같이 갈까?”
설하와 노소자가 이층의 계단을 내려오다가 화산파의 매화신검 풍부상을 만났다. 노소자는 반갑게 인사를 하였다.
“풍 형,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애를 많이 쓰셨다고.”
“문주님, 별 말씀을, 당연히 해야 할 일이지요.”
“참, 그 뒤로 화산파의 소식을 들은 것이 있습니까?”
“아직 못 들었습니다. 그래서 속가제자인 서문극 사형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노소자와 설하는 풍부상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문을 나섰다. 풍부상은 계단 위에서 노소자와 설하의 뒷모습을 빤히 보고 있다가 이 층으로 올라갔다.
설하는 오랜만에 노소자와 단 둘이 있자 기분이 무척 좋아서 생글거렸다. 노소자는 본채 뒤에 있는 오행팔괘진 앞에 도착해서 설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설매, 내 손을 놓치지 마. 혼자 떨어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너무 겁주지 마요,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을 테니!”
이 순간을 얼마나 기대했는지 설하의 음성은 허공에 떠 있었다. 노소자와 설하는 손을 꼬옥 잡고 진 안으로 들어갔다.
천천히 걸어서 커다란 검은 바위를 지나자 주변의 경치가 순간적으로 바뀌었다.
안개가 낀 듯, 사방이 흐릿한 가운데 검은 바위산이 죽 늘어서 있었다. 설하가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
“어머나! 이게 무슨 일이람.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밖에서 볼 때는 그저 커다란 바위가 듬성듬성 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안에 들어오면 엄청난 변화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노소자는 말하며 설하의 손을 더욱 꼭 쥐었다. 그러자 설하의 두 볼은 제철을 만난 능금처럼 빨갛게 익어 손대면 터질 것만 같았다.
설하는 그동안 노소자에게 할 말이 많았다. 가슴속에 묻어두었는데 막상 노소자를 만나고 나니 하나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냥 옆에만 있어도 행복했다.
꿈이라 하더라도 절대로 깨지 말았으면 했다.
설하는 꿈꾸는 듯, 눈을 살포시 내리감고 얼굴을 노소자의 어깨에 살며시 기댔다.
긴 속 눈썹 아래로 두 볼이 빨갛게 익은 설하의 모습은 깨물어주고 싶을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설하를 내려다보고 있는 노소자의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이때, 노소자를 찾아 나왔다가 이런 다정한 모습을 발견한 청영이 새되게 악을 썼다.
“나만 빼놓고 거기서 뭐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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