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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작가 님의 서재입니다.

동물의 연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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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작가
작품등록일 :
2017.05.02 13:49
최근연재일 :
2017.07.18 08:35
연재수 :
24 회
조회수 :
2,518
추천수 :
1
글자수 :
107,396

작성
17.05.09 01:50
조회
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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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7회 - 그녀의 본모습 (2)

DUMMY

"아.. 허허. 집이 어둡죠? 여기 물 한잔 드시고 소파에 잠깐 앉아계세요. 일단 제가 청소를 좀.."


도 대리는 또다시 미간을 찌푸렸다. 이 인간은 행동 하나하나가 모두 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그와 반대로 문 과장은 굉장히 긴장해 있었다. 아마도 난생처음일 거다. 종교를 전파하러 온 교회 아주머니. 정수기를 설치하러 온 여자 기사. 아들의 서울 집을 확인하러 오신 어머니. 그리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 집에 여자가 들어온 것이.. 그래서인지 낮의 발표회보다 더 긴장된 상태였다.


"치우긴 뭘 치워요. 그냥 치킨이랑.. 혹시 샐러드 있어요?"

"네? 당근이요?"

"아뇨. 샐러드요.."

"아. 제가 채소는 잘 안 먹어서요. 대신 당근은 하나 남았을 거예요."


도 대리는 성큼성큼 주방으로 향했다. 그리곤 오래된 하얀 냉장고를 찾아 열었다. 냉장고 안을 살펴보니 어렸을 때나 보던 오래된 타파 통에 여러 종류의 김치가 담겨 있었다. 마치 시골 할머니 댁 냉장고를 열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들었다.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밑반찬 들이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한쪽 칸엔 온통 햄과 소시지가.. 혼자 먹긴 힘들 정도로 채워져 있었다.


"혹시 부모님과 같이 사세요?"

"아뇨. 두 분 다 시골에 계십니다. 그건 왜..?"

"아뇨.. 냉장고에 이것저것 많길래요."

"시골에서 자꾸 반찬을 보내주셔서요."

"아.. 저기 당근은 어딨어요?"


문 과장은 허겁지겁 다가와 채소 칸에 오래된 당근 하나를 꺼냈다. 다행히 아직 썩진 않은 것 같다.


"주세요."


도 대리는 당근을 빼앗듯이 집어 들고 냉장고 안 맥주 한 캔을 꺼내 들었다. 주방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과일칼 하나를 꺼내어 당근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그리곤 무심한 듯 문 과장을 더 긴장되게 하는 말을 뱉었다.


"씻고 나오세요."

"네??!"


문 과장은 입을 벌린 채 멈춰 섰다. 머리끝이 곤두설 정도로 정수리가 찌릿찌릿했다. 머리가 선다는 말만 들었지 진짜 설 줄은 몰랐는데 거짓말처럼 곱슬머리가 정전기에 뻗치듯 올라섰다.


'이 말은 혹시..'


그는 성인이 된 후 20년 가까이 기다려온 그 순간을 이렇게 준비 없이 맞이하는 것인지 싶었다. 그리곤 자신도 모르게 새초롬해진 표정으로


"씨.. 씻고 오라고 하셨어요?"

"네. 오늘 낮부터 땀을 자꾸 흘리시길래요. 땀 냄새날까 봐요."


문 과장은 입을 벌린 채 말문이 막혔다. 초면에 이런 직접적인 표현을 하는 여자는 드라마에서도 보지 못했었다. 도 대리는 꼼짝 않는 문 과장이 답답한 듯 다시금 짜증 섞인 목소리로


"저기요. 과장님. 씻고 나와서 치킨 드시라고요.."

"아 네! 알겠습니다."


문 과장은 정신을 차리고 킁킁 몸 냄새를 맡으며 허겁지겁 욕실로 옷을 챙겨 들어갔다.


"하아.. 인간 참. 하아.. .."


도 대리는 몇 달간 쉴 한숨을 문 과장과 다 내쉬는 거 같았다.


"저런 인간이 내 직장 상사라니.."


한탄하며 당근을 먹기 좋게 잘라 조그만 접시에 담고 맥주 캔을 따 한 모금 들이켰다.


"크으.."


온종일 쌓인 스트레스가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 빈속을 차가운 맥주가 알싸하게 감싸는 게 느껴졌다. 이 맛에 맥주를 마신다.

다른 안줏거리가 없는지 다시 한번 냉장고 문을 열고 찬찬히 둘러보았다. 오래된 타파 통에 들어있는 김치가 유독 눈에 띄었다. 김치 통을 꺼내 뚜껑을 열어 냄새를 한번 맡았다. 흠~ 절로 콧소리가 나는 정말 잘 익은 김치 냄새다. 손가락으로 하나를 집어 입에 넣었다.


"아삭. 아삭"


으음. 새콤하고 시원하다. 하나 더 집어 다시 맛을 봐도 아삭아삭. 아.. 예전 시골에서 먹던 김치 맛이다. 오래 익은 듯하지만, 아직도 아삭아삭한 식감에 차갑기보다는 시원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리 사다 먹는 김치가 맛있다지만 이에 비교할 바가 못 되었다.


또다시 맥주를 한 모금 들이켠 후 주위를 둘러보며 거실로 향했다.


'뭐 없나..'


집이 조용하다 보니 화장실에서 샤워하는 문 과장의 소리만 들렸다. 괜히 샤워하는 모습이 상상될까 봐 서둘러 리모컨을 찾아 TV를 틀었다. 오래된 브라운관 TV에 나오는 약간 지지직거리는 방송.. 디지털 방송도 아날로그처럼 만드는 TV였다. 한참을 아무 생각 없이 채널을 돌리다 보니 어렸을 적 따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이상하네. 처음 온 곳인데 낯이 익어..'


짜증 났던 기분이 서서히 풀리자 또 다른 모습들이 눈에 들어온다. 방금까지도 보이지 않던 베란다 밖의 소박한 풍경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크지 않은 도로를 따라 낮고 푸른 동산이 바로 보인다. 아마 이름도 없을 낮은 동산이지만 아기자기한 멋이 있었다.


'여기가 이런 곳이었구나···.'


베란다 문을 열고 나와 밖을 바라보니 노을 아래 뛰노는 아이들이 보이고 재잘거리는 소리가 나지막이 들린다. 옛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어렸을 적 시골 할머니 댁에서 자랐었다. 지금처럼 예쁘지도 않고 하얗지도 않은 소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동네 친구들과 모여 골목 이곳저곳을 떠들며 돌아다녔다. 얼굴이 꼬질꼬질해질 때까지 놀다 노을이 지기 시작해서야 집으로 향하곤 했다. 그곳에선 지금처럼 말린 햇볕 향이 기분 좋게 나곤 했다. 그 당시 무슨 짓을 하건 반겨주시던 할머니의 얼굴이 떠오르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고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가슴이 저릿했지만 아프진 않고 오히려 반갑고 따뜻하다. 그녀는 이 감정이 그리웠나 보다.


지금은 시골에서 상경한 20살 촌 아가씨의 꿈이었던 청담동 오피스텔에 살고 있지만 낡디낡은 이 오래된 아파트가 자신의 집보다 더한 힐링을 안겨 줄지는 상상도 못 했었다.


옅은 미소를 지으며 이 따뜻하고 나긋한 분위기를 느끼고 있을 때


덜컥!


"오.. 오래 기다리셨죠? 하하하"


또다시 감정을 깡그리 깨뜨리는 인간이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도 대리는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문 과장을 돌아보았다. 옷 입은 꼬락서니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누가 봐도 나 서둘러 나왔다 하는 듯이 수건으로 머리를 훔치며 나온 문 과장은, 다 늘어난 하얀 러닝셔츠 위에 무슨 색인지 색상을 정하기도 힘든 푸른 계열 운동복을 입고 나왔다. 굳이 색상을 정하자면 상하 색이라고 해두자. 상·하의 통일 운동복인데 바지통이 그 두꺼운 다리보다도 커서 펄럭거렸다. 멋쩍게 웃는 얼굴은 왠지 한 대 치고 싶게 생겼다.


도 대리와는 달리 문 과장은 씻는 내내 설렜다. 혹시나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싶어 털이 복슬복슬한 가슴과 겨드랑이. 사타구니를 사정없이 닦으면서도 자꾸만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상황 자체만으로도 그의 아랫도리가.. 불끈해졌다.


느지막한 저녁.


단둘뿐인 집안.


술을 마시며 기다리는 아리따운 여자.


씻는 내내 심장은 터질 듯 빠르게 뛰었고, 코피가 나올 듯 얼굴이 뜨거워졌다. 최대한 서둘러 씻고 옷을 챙겨 입었다. 평소 같으면 트렁크 팬티 하나 입고 돌아다니지만, 오늘은 특별히 아끼는 운동복을 입었다. 일전에 홈쇼핑에서 보니 상·하의 통일된 색상의 운동복을 젊은 사람들이 많이 입고 다닌다고 하여 집 앞 시장에서 사 온 문 과장 나름의 패션 아이템이었다.


대충 옷을 걸치고 머리를 털며 문을 열자 베란다 밖을 바라보는 도 대리가 보였다. 어둑어둑한 노을 빛. 혼자 외로이 있던 거실에 하얀 블라우스의 긴 생머리의 여자가 스커트 밑에 맨 다리를 드러낸 채 서 있었다. 그 아름답고 섹시한 광경에 그는 또다시 불끈해졌다. 도 대리가 돌아보자 엉덩이를 뒤로 쭉 빼고 배시시 웃어본다.


"뭐 해요? 앉아요."


도도하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말할 수 없는 매력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어려운 신규 입사자 후배였었지만 이 집에 들어온 순간부터 묘한 친밀감과 함께 여자로 보였다.


"토.. 통닭 드세요. 허허"


문 과장은 까만 비닐봉지 안에 있는 종이봉투를 뜯어 통째로 튀긴 치킨 두 마리를 꺼내어 손으로 대충 찢어 놓았다. 마치 술을 먹고 늦게 퇴근한 아버지가 길거리에서 사 온 전기구이 통닭을 아이들에게 찢어 주듯이..


"아뇨. 전 고기는 별로 안 좋아해요. 과장님이나 많이 드세요."

"아.. 허허. 네. 맥주 드시네요? 저.. 저도 좀 가져오겠습니다. "

"그러세요."


문 과장이 맥주를 가지러 가자 도 대리는 남은 맥주를 순식간에 비운 뒤 말했다.


"제 것 하나 더 가져다주세요."

"아 네. 술을 잘 드시네요?"

"그냥 좀.. "


문 과장은 맥주 4캔을 가져와 자리에 앉아 배시시 웃으며 물었다.


"저.. 그런데 왜 이 부장님께 거짓말하셨어요. 저.. 저야 고마운데.."

"뭐 그냥.. "


도 대리는 왜 그랬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이유가 잘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동정심이었을까?


"그냥.. 치킨은 식으면 맛없으니까요."

"아. 그렇죠."


취향 저격이었다. 지금 이 말 한마디에 문 과장은 사랑에 빠졌다. 제대로 된 짝사랑조차 해본 적 없던 그에겐 첫사랑이나 마찬가지였다.


도 대리는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TV를 보며 오도독 당근을 씹고 맥주를 마셨다. 캔을 들고 맥주를 마실 때마다 꼴딱꼴딱 넘어가는 도 대리의 목선에 문 과장은 시선이 고정됐다. 너무나 흥분되어 머리가 어지러워질 정도였다. 혹시라도 불끈해진 남성이 보이진 않을까 다리를 모으고 한쪽을 살짝 올려 가렸다. 만일이라도 이 파렴치한 모습이 들킨다면 그녀와는 영영 끝일 것이다. 끝이면 그나마 다행일지도 모른다. 회사에 소문이라도 낫다가는 가뜩이나 힘든 회사생활이 두 배, 세배 더 힘들어질 것이다.


문 과장은 남성을 가라앉히기 위해 다른 곳을 보려 하였지만···. 어느샌가 시선은 도 대리의 목선을 향해 있었다.


그때. 도 대리와 눈이 마주쳤고 그녀는 쏘아보며 말했다.


"뭘 봐요?"

"네??"

"방금 제 가슴 본 거예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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