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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숨지마. 내겐 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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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4.11 14:30
최근연재일 :
2023.06.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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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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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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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6.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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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구내 식당

DUMMY

서이진 상무의 과장된, 하지만, 그것이 과장되어있다는 것을 아무도 모르는 소개를 받은 나는 임원들에게 향후 2주 동안의 활동 계획을 간략히 설명했어.


한 이,삼십분 쯤이었을 거야.


그러다 보니, 열 두 시가 다 되어 갔는데, 그제서야, 사업부장 이병석 사장이 회의실로 들어왔어.


“하하하, 서상무, 오랜 만이야. 평산에 내려온 게, 보자··· 석달 쯤 됐나?”


“안녕하셨습니까. 사업부장님?”



이른 아침부터 오전 내내 골프장에 있었던 그의 얼굴은 햇빛에 벌겋게 그을려 있었는데, 예순이 다 되는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건강한 것이 보기 좋다고도 할 수 있었지.


하지만, 거기가 어디야? 4천명 직원들이 늘 안전 문제의 위협을 받으면서 제품을 만들어 내는 현장 아닌가 말이야.


게다가, 오늘 만이 아닌 것이 분명했어. 평산 시장과 약속이 있었다는 것도 새빨간 거짓말이었고.


선출직 공무원이 벌건 대낮에 자신의 지역구 안에서 골프를 쳤다고? 그게 말이 돼?



그가 들어오자, 앉아 있던 임원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난 것은 당연했는데, 분위기 파악이 안된 그는 서이진의 한쪽 팔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고는,


“어이, 유전무, 점심은 어디로 잡았어? 서상무, 오랜 만에 왔는데, 좋은 데로 모셔야지? 어디야?”


그에게 한쪽 팔이 잡힌 서이진 상무의 눈이 살짝 찌그러진 것을 회의실 안에 모든 사람들이 눈치했는데, 이병석 만 그걸 못봤어.


서상무는 자신의 팔에 얹혀져 있는 이병석 사장의 손을 자연스럽게 치워내면서,.


“아뇨. 저는 구내 식당을 가봤으면 하는데, 괜찮겠죠?”


“구내··· 식당?”


“네”


“아니, 왜? 밥 먹으면서 사업부 임원들 애로사항도 듣고 그러면 좋을 텐데···”


“애로 사항은 충분히 들은 것 같아요. 사장님 오시기 전에.”


“그래? 그럼··· 그렇게 하지, 뭐.”


그래서,회의실을 나와 여직원이 나눠 준 방문객용 유니폼 상의를 꿰입었는데, 물론, 서이진 상무는 아니었지. 그런 걸 몸에 걸칠 여자도 아니었지만, 그녀는 직원도, 방문객도 아니고, 바로,


오너였으니까..


그때, 박신호 상무가 그랬어.


“김우석 팀장이라고 했죠?”


나는 그가 나를 알아 봤나, 생각했었지.


그런데,


“가방은 여기 두고 가는 게 어때요?”


“...”


딱, 감이 오더군. 초능력을 쓸 필요도 없었어.


가방을 놓고 가면 사람 시켜서 뒤져보겠다는 거 아니겠어? 고전적인 수법이지.


네 자리 숫자를 맞춰야 열리는 가방들이었지만, 여기가 어디야? 그 정도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고 쉽게 열어 버릴 수 있는 기술자들이 득시글 거리는 공장이거든.


“아닙니다. 저희 차에 넣어 두면 됩니다.”


“그래요?... 그럼, 그렇게 하든지.”


박신호···.


제 버릇 개 못준다더니.


그래서, 제 1 식당을 가게 됐는데···


아! 그 사업부의 공장 구조를 먼저 설명하는 게 좋겠군.


장비 사업부에는 3개의 생산 건물이 있었어. 1공장은 자동화 설비, 2공장은 각종 측정 기기, 3공장은 화학 물질이 들어가는 생산 장비를 각각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쉽게 말해서, 기계, 전자, 화학.


말했듯이 제일 큰 고객사는 오산 전자였지. 특히, 반도체.


오산에서 신규 반도체 공장을 구축한다면, 그게 국내든, 아니면 해외가 됐든, 전체 생산설비 투자의 4분의 1 정도는 BJ가 먹는다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거야. 4조 투자 규모라면, 한꺼번에 1조 오더가 들어오는 구조.


거꾸로, 전체 매출의 절반을 차지하는 오산이 등을 돌린다면, 그땐··· 파국이지.


물론, 그런 최악의 경우가 온다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는 아니야. 오산도 공급망 재편에 시간이 걸리니까. 처음에는 워닝(warning)을 줄거야. 그래도, 개선의 조짐이 안보이면, 차츰 주문을 줄여 나가겠지. 그러다가, 결국은 끝.


오산은 BJ 장비 사업부에 그 워닝을 줬어. 그것도 서병률 회장에게 직접, 아주 점잖은 방법으로 말야. 서병률이도 사업부장 이병석에게 우려를 전달했고.


근데··· 막상 사업부장이란 사람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회장님, 제가 알아서 잘 해결하겠습니다.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그래 버린거야.


게다가, 회장이 돌아가서 사업부 임원과 간부들에게 전달하라고 한 내용은 어디다 처박아 놓고, 골프나 치러 다니고, 점심 밥 타령이나 하고 있으니··· 서이진 상무가 구내 식당으로 가면서 나를 굳은 얼굴로 돌아본 것도 당연했지.


‘김우석··· 이 늙은 친구, 역시 안되겠지?”



제1식당은 이미 식사 중인 직원들로 꽉 차있었어. 세 줄로 늘어선 배식 창구에서 식판을 들고 돌아선 직원들은 빈 자리를 찾아 돌아다니다가, 빈 자리가 나면 잽싸게 걸음을 재촉하는 모습도 보였지.


식판의 국이 쏟아질까 조심하면서 말야.


그러거나 말거나, 이병석 사장과 사업부 임원들은 서이진 상무를 ‘임원 식당’이라는 푯말이 붙은 방으로 안내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스무명은 너끈히 앉을 수 있는 방이었어.


미리 전화를 해놓았는지 앉자 마자 식사를 시작할 수 있도록 길다란 테이블은 이미 세팅이 다 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다가, 주방 직원 네명이 막 조리를 마친 양념 갈비, 장어 구이, 오징어 무침등을 채소와 곁들여 내오고 있었지.


그러자, 이병석 사장이 그 주방 직원에게 물었어.


“본사에서 귀한 분 오셨는데, 뭐, 좀 더 없어? 이게 다야?”


“네, 갑자기 연락을 받아서··· 죄송합니다.”


“할 수 없지. 자, 서상무, 앉읍시다.”


서상무는 마뜩찮은 얼굴이었지만, 사실 그녀도 마찬가지였어.


아뇨, 저는 다른 직원들과 함께··· 따위의 용기를 낼 인물이 아니었지. 태생이 금수저였으니까.


다른 공장 직원들과 함께 배식 창구 앞에 줄을 지어 서서, 마치 거지같이 식판을 내밀어 밥을 타 먹을 자신은 애초부터 없었던 거야.


하여튼, 그래서 서이진도 다른 임원들과 함께 앉았는데, 내가 허리를 숙여 조용히 말했지.


“상무님, 저희는 밖에서 하겠습니다.”


“왜···?”


하지만, 내 얼굴을 보고는,


“...그렇게 해요.”


그래서, 다른 팀원들과 함께 뒤돌아 서서 나오려는데, 이병석 사장이,


“자네들, 어디 가? 괜찮아. 앉아서 밥들 먹어.”


그러자, 서이진 상무가 거들었어.


“임원분들하고 앉아 있기가 좀 불편한가 봐요.”


“그래? 그럼, 편한 대로들 해.”



근데 말야··· 막상 나와보니, 나도 자신이 없더라고.


된장국, 소세지, 김치가 담긴 저 식판을 들고, 빈 자리를 찾아 다닐 자신 말야. 게다가, 보나 마나 식사 중인 여직원들이 평산 공장에 갑자기 나타난 훤칠한 훈남을 힐끔 거릴 것이 뻔했는데···


자네··· 그 기분 나쁜 웃음의 의미는 뭐지?


그래, 이해는 해. 자네는 그런 경험이 한번도 없었을 테니까. 그냥, 내게 그런 고충이 있겠구나, 정도로만 이해하게.


하지만 말야···.


그 남자 밝히는 서이진이 나를 만난 이후에 더 이상 밤거리를 헤매지 않았다는 것만 봐도, 뭔가 증명이 되는 것 같지 않나?


또, 정연이는 어때? 내가, 김정연 선배님이시죠? 처음 찾아갔을 때, 단박에, 나를 홍어 무침을 파는 대포집으로 끌고 갔던 것, 그게 왜 그랬겠어?


같은 맥락 아냐?


하여튼, 나는 그 배식 창구 앞에 줄서는 것을 포기하고 물었지. 옆에 서있는 정연이에게.


다른 팀원들은 알아서 세 개의 배식 줄로 나눠서 흩어진 다음에 말야.


“배고파?”


“조금··· 왜?”


“그냥, 나가서 커피나 마시면 어떨까 해서.”


“그래··· 그럼.”


그래서, 우리는 그 식당을 나와 입구 근처에 있는 자판기에서 커피를 빼 들고는 좀 떨어진 벤치로 걸어갔지.


“저 밥··· 재료비가 얼마야?


내가 물었는데,


“3,550원.”


“...”


“총재료비를 급식 인원으로 나눈 거니까, 유실율, 그런 걸 빼면 실제로는 3천원도 안될 거야. 아까, 임원 식당으로 들어간 그 재료비도 빼야 할 거고.”


”그럼··· 오산은? 얼만지 알아?”


“6천원 정도?”


“오산 이회장이 BJ 구내 식당을 방문했다면?”


“사업부장을 당장 잘랐겠지. 오산 직원이 거지 새끼들이냐고.”


“... 그랬겠지.”



실제로 그런 일이 있었거든. 오산의 이회장 말야.


수준이 달랐던 거야. 오산 이회장과 BJ 서회장.


말이 같은 회장이지, 전혀 다른 종류의 인간.


내가 MBA를 하면서 소위 중견 기업의 오너 경영자들을 인터뷰한 적이 있었는데, 그들도 모두 그렇게는 말해.


“나도, 당연히 그러고 싶다. 이차 저차한 여건만 갖춰진다면···”


그런데 말야, 성공한 경영자들은 발상이 달라.


“경쟁사를 이기기 위해. 모든 스탠다드를 올려라. 근데,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할 수 없으니 우선 밥이라도 쟤들보다 잘 먹자.”


그래야,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는 거거든. 소위, 가치의 변화, 발상의 변화가 일어나고 good circle, 소위 선순환이 시작되며 전체 서클이 커지기 시작하는 건데···.


알았어. 그만 하지.


그래도, 딱 한 마디만 하면,


나는 서병률을 처음 만났을 때 분명히 그 얘기를 했어. 서병률도 알아 듣는 척 고개를 끄덕였고.


그런데, 개뿔!


이병석이나, 서병률이나 같은 부류이긴 마찬가지야. 서병률, 그 머릿속에는 어떻게 하면, 제 딸에게 그 꼴랑 BJ를 무사히 넘겨줄 수 있을까, 나중에 나 죽은 다음에 어떤 놈이 뜯어먹지는 않을까, 그 생각 뿐이었지.


물론··· BJ를 통째로 먹을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은 나였지만.



어쨌든,


“제법이다.”


나는 정연이를 슬쩍 쳐다보고 말했어.


“뭐가?”


“구내 식당 재료비까지 파악하고 있고.”


“하··· 참, 내!!”


“...무슨 뜻이지?”


“네가 준 리스트에 있었어. 사전 파악 바랍니다.”


“... 그랬나?”


“아이고, 이걸 팀장이라고···”


“정연아, 부탁 하나만 할까?”


“뭔데?”


“2주 후에 최종 대책 보고서 써야 하는데, 그때, 좀 도와 줄래?”


“내가? 왜?”


“내가, 좀··· 영어는 잘 하는데 말야···네가 글은 잘 쓰잖아. 회장 연설문도 쓰고.”


“알았어. 근데, 그것 뿐야?”


“뭐가 더 있어야 돼?”


“알았어.”


“사실은 이유가 하나가 더 있기는 해.”


“뭔데?”


“뭐냐면···”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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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내 식당 23.06.12 20 0 11쪽
59 박신호가 앉아 있다 23.06.12 85 0 12쪽
58 달라진 평산 23.06.09 13 0 12쪽
57 친위 쿠데타 23.06.06 24 0 11쪽
56 너, 어쩌려고 그래? 23.06.03 26 0 11쪽
55 징계 대상자는 정해져 있다 23.06.02 33 0 10쪽
54 사표, 나도 써야 되나요? +2 23.06.01 105 1 9쪽
53 홍콩에서 온 클라라 23.05.31 46 0 10쪽
52 타지마 23.05.29 37 0 9쪽
51 하필, 일식 23.05.28 29 0 9쪽
50 나, 너 포기못해 23.05.27 30 0 8쪽
49 불편한 데킬라 23.05.26 26 0 12쪽
48 나 좀 만나 23.05.25 25 0 10쪽
47 여자의 육감 23.05.24 39 0 9쪽
46 5분만 23.05.23 27 0 9쪽
45 갑작스런 키스, 아침부터 23.05.23 25 0 11쪽
44 다시 만난 정연 23.05.21 25 0 11쪽
43 드디어, 서병률을 만났다 23.05.21 19 0 12쪽
42 나, BJ 간다 23.05.19 24 0 12쪽
41 갑작스런 물속의 키스 23.05.18 27 1 11쪽
40 살사 출 줄 알아요? 23.05.17 27 1 11쪽
39 서이진, 마이애미 23.05.16 31 1 12쪽
38 내 목숨을 구한 것은 우랑바리 23.05.15 29 1 12쪽
37 미시간의 영웅 23.05.13 28 1 13쪽
36 자작나무 숲, 포레스트 23.05.12 29 1 12쪽
35 살벌한 결혼 서약 23.05.11 29 1 11쪽
34 히말라야의 악마 23.05.10 28 1 10쪽
33 신과의 내기 23.05.09 33 1 13쪽
32 우랑바리 노인이 알려준 진실 23.05.08 3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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