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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숨지마. 내겐 다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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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4.11 14:30
최근연재일 :
2023.06.12 19:20
연재수 :
6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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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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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00,3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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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13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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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쪽

미시간의 영웅

DUMMY

나는 서늘한 기운을 담아 차갑게 바라보았지. 그 녀석이 막 허리에서 권총을 뽑아냈을 때 말야. 하지만, 그 녀석은 내게 그 권총을 겨누지 못했어.


억!


내가 더 빨랐거든. 온 몸의 체중을 실은 내 앞발차기가 그 녀석의 가슴에 꽂혀버렸거든.


불의의 일격을 당한 그 녀석은 뒤로 몇 미터쯤 날아갔어. 그리고, 이내 몸이 축 늘어져 버렸지. 뒷머리를 강하게 벽에 부딪혀 버렸으니까 말이야.


그제서야, 책상 위로 눈만 내놓고 엿보던 톰이 벌떡 일어났지.


“포레스트, 너, 괜찮아!”


나는 대답하지 않고, 정신을 잃고 있는 그 녀석에게로 걸어갔지. 그가 떨어뜨린 자동소총과 권총을 발로 툭툭 멀리 차면서 말이야. 혹시, 그 녀석이 정신을 차리고 다시 그 총을 집지 못하도록 말이야.


“누가 좀 도와줘요!”


톰이 소리치면서 다가 왔지.


“빨리.”


정신을 잃고 있는 그 녀석을 그 육중한 몸으로 누르면서. 그제서야, 책상 밑에서 모습을 드러낸 몇명의 남학생들이 톰을 돕기 시작했고, 로간 네일리 교수는 침착하게 다른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대피시켰고 말이야.


그때, 발표대 뒤에 숨어있던 줄리 팜비나스가 강의실 앞문으로 대피하다가 나를 돌아보았는데, 아마 처음부터 끝까지 그 상황을 모두 엿보고 있었던 것 같아.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거든.


하여튼,


그날 이후 나는 미시간의 영웅이 되었지. 기자들이 카메라와 함께 나를 찾아온 것도 당연했고.


“한국에서 왔다고 들었는데, 혹시, 태권도를 배웠었나요?”

“네. 조금.”


초등학교 때 태권도 학원에 2년 쯤 다닌 것이 전부이기는 했지만, 어쨌든 배운 건 배운 거니까.


“그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렇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있었나요?”

“저는 제가 알고 믿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말해주시겠어요? 무엇을 믿고 계셨었죠?”

“제가 죽지 않는다는 거요.”

“...죽지 않는다고요?”

“영원히는 아니고, 당분간.”

“워우, 아주 인상적인 신앙심을 가지고 계시네요.”


그후에, 그 조그만 대학 도시에 태권도 도장이 생기기 시작했어. 교파를 막론하고 내게 간증을 해달라는 요청도 많았고. 여러 홍보, 광고 에이전트들로부터도 각종 섭외가 들어왔지. 비단, 그 지역 뿐만이 아니고, 전국적으로 유명한 업체들로부터도 말이야.


내 사진 한장 쓰는데 5만불을 주겠다는 제의도 있었고, 30초 짜리 CF 한편에 백만불을 주겠다는 제의도 있었지. TV 뉴스 쇼나 대담 프로그램 출연 요청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요청들을 받아들여서 그길로 나갔다면 나는 아마 유명한 셀렙이 됐을거야. 어디나 그렇지만, 미국은 특히 언제나 영웅이 나타나기를 갈망하고 있는 나라였으니까.


하지만, 나는 그 요청들을 모두 거절했지. 왜냐고! 나는 잊지 않았거든. 내가 이번에 또 헛짓거리하면 내 아버지가 지옥에서 5백년을 보내야 한다는 걸 말이야.


뭐라고?


잘 이해가 안가는데 다시 말해주겠나?


그러니까··· 내가 악마가 맞냐고? 악마가 선행을 베풀은 것이 말이 되냐, 그말인가?


흠!


그게 어떻게 선행이 되지? 나는 악행이었다고 생각하는데··· 그 총기 난사범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내가 그놈을 불쌍하게 여겨서 그를 구해 주었나? 아니지? 분명히. 그건 악마가 할 일이 아냐. 천사애들이 하는 일이지. 안그런가? 이제, 천사와 악마의 임무가 어떻게 다른지 이해가 되나?


어쨌거나, 다시 그 질문으로 돌아가서··· 무슨 질문이냐고? 자네가 나한테 물었었잖아? 공부 말고 대학 생활은 어땠었냐고. 그, 참! 젊은 사람이 쯧쯧.


그래서···


주말 파티에 와달라는 요청들이 있었지. 대부분 거절했었는데,


“꼭 와. 알았지?”


그 줄리 팜비나스라는 애의 요청은 거절하지 못하겠더군.


로간 네일리 교수 집에서 하는 파티인데, 그 사건 당시 그 공간에 있었던 사람들이 모이는 자리였다니 말이야. 그때, 내 다리를 잡아당기며 빨리 몸을 숨기라고 했던 그 톰도 온다고 했고.


참, 여기서 잠깐.


내가 그때 무엇을 공부했었는지 좀 감이 잡히나? 잘 모르겠다고? 그 사건 때 내가 무슨 수업에 참여했었다고 했었지? 맞아, 전통적으로 미국을 대표했던 브랜드들이 어떻게 몰락의 길을 걸었나. 그거였어.


말하자면, 나는 BJ를 어떻게 몰락의 길로 보내버릴 수 있을까, 그걸 공부하고 있었던 거야.


물론, BJ 그룹과 그 네명의 근황도 계속 체크하고 있었는데, 신장이 그애의 도움이 컸어.


BJ그룹의 관계사들 중에서 요즘 어떤 것이 잘나가고 있고, 어떤 회사가 무슨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윤성섭이 요즘 검찰 내에서 어떻게 승승장구하고 있는지, 박세출이 어떤 언론사로 옮겨서 무슨 자리를 꿰찼는지, 오산그룹의 반도체 호황으로 구본일이 어디까지 승진해서 올라갔는지, 그런 것들을 일주일에 한번 꼴로 정리해서 내게 보내줬지.


그때 마다, 나는 당근을 씹어먹으며 그애가 보내준 레포트를 천천히, 하지만 한자라도 빠질세라 꼼꼼히 읽어내려갔지.


당근?


내가 전에 얘기하지 않았었나? 나, 당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엄마가 그 당근 밭 농막에서 돌아가신 이후에 말야. 내가 당근을 씹어먹을 때는 그 새끼들을 씹어먹을 궁리를 할 때 뿐이었다고. 그래서, 내 미국 유학 시절, 냉장고에는 늘 당근 몇 뿌리가 항상 있었지.


자, 이제, 내가 왜 대학생들의 파티에 가지 않았었는지를 얘기할 차례군.


간단해. 신체 접촉.


무슨 얘기나면··· 내 정상 체온이 인간들보다 3도 낮았다, 그 얘기인데, 파티에 가면 어쩔 수 없이 신체 접촉을 해야했거든. 들어가자 마자, 악수를 하고 처음 만나는 사람 만나면 또 그래야 하고, 그게 여자애들이면 가볍게 포옹도 해줘야 하고··· 그럴 때 마다 내 체온을 올려야 하는 것이 번거롭기도 해서 아예 그런 자리를 피하게 된거지.


캠퍼스에서도 마찬가지였어.


“헤이, 포레스트, 왔섭?(What’s up)?”


그러면서 일단 손을 내밀잖아. 미국애들 말야. 지들끼리 주고 받는 손인사법도 있고.

그럴 때 마다, 나는 주저하게 되더라고. 차가운 내 손을 내밀기가 말이야.


그래서, 나는 항상 두 손에 뭔가를 들고 다녔지. 책이나 가방같은 거 말야.


“포레스트, 혹시 이 친구 만나봤어?”


누가 그렇게 자기와 함께 있는 사람을 내게 소개시켜주면,


“반갑다.”

“반가워. 포레스트. 내 이름은 크리스.


그리고는 나는 자연스럽게 고개를 살짝 숙였지. 마치, 유럽의 귀족이 하는 것 처럼 말이야.


그랬더니, 나중에 나를 아는 친구들은 나를 보면 악수대신 허리를 숙였는데, 그게 또 걔네들한테는 재밌는 인사법이라고 생각됐던 모양이야. 저 포레스트가 아마, 동양의 어느 왕족이나 귀족 출신일 거라는 소문도 있었고 말야.


근데, 허리를 너무 많이들 숙이더군. 마치 일본식처럼 말이야.


하여튼,


나는 그 파티에 갔어. 로간 교수의 집에서 열린 금요일 저녁의 파티 말이야.


“어서와. 포레스트.”


초인종을 눌렀더니 곧 바로 로간 교수가 맞이해주더군.


그 로간 네일리 교수는 30대 후반쯤의 나이였는데, 늘 청바지에 헐렁한 셔츠 차림이어서 교수라기 보다는 좀 나이 먹은 대학원생 정도로 보였지.


“초대해줘서 고맙습니다. 로간.”


그는 내게 손을 내밀지 않았어. 내 두손에 와인병하고 과일 바구니가 들려있었거든. 그 대신 그는 글라스를 들고 있지 않은 손으로 내 어깨를 잡고 안으로 끌여들였지. 그리고는 안에다 대고 소리쳤어.


“신사 숙녀 여러분, 지금 막 누가 도착했는지 보시죠!”


마실 것을 들고 얘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들이 모두 나를 쳐다봤어.


예~이! 휘이익!


환호성과 휘파람이 터진 것은 물론이고. 그들을 구한 영웅이 도착했으니까 말이야.


그 다음은··· 뭐, 그냥 그랬어. 생각할 수 있는 그런 파티였다는 말이지.


하나 마나한 얘기들, 그저 그런 얘기들을 무슨 대단한 얘기인 양, 주고 받고 떠들고, 그러다가 각자 가져온 쿠키와 치즈 모아놓은 테이블에서 한점 집어먹고, 또 떠들고.


참, 신기하더군. 와인 한 잔을 들고 그렇게 오래 버틸 수 있다는 게 말이야. 한국인들 같았으면 권커니 잣커니 벌써 몇 병 정도는 벌써 비워버렸을 그 긴 시간동안 말이야.


아마, 로간 교수의 집이기 때문이었을거야. 만약, 그게 오로지 학생들만의 파티였다면 보드카가 돌고, 그 보드카 잔 안에는 수상한 흰색 가루가 들어 갔었을 거야. 틀림없이.


나도 와인 글래스를 들고 사람들의 대화에 끼었지. 혼자 멀뚱히 서있을 수는 없었으니까. 그래도, 낄낄, 깔깔, 호호, 하하 웃고 떠드는 무리는 피했어. 왜냐고? 난 웃지 못하잖아. 분위기 망칠 일 있어?


그러다 보니, 정치 얘기, 기업 얘기하고 있는 무리들에 끼게 되었지.


“우리 영웅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


한참 장광설을 늘어놓던 로간 교수가 나를 보며 물었는데, 난 솔직히 그가 하고 있는 말을 다 알아듣지 못했어. 영어 문제도 있었지만, 어떻게하면 적당히 이 자리를 빠져나갈 수 있을까, 궁리하고 있던 참이었거든.


그래도, 그들이 나누고 있던 대화가 최근 미국 정부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에 대한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말이야.


“지금 민주당 정부가 취하고 있는 스탠스가 맞다고 생각해?”


나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며,


“뭐···”


그렇게 말했지. 그러니까, 그 로간 교수가,


“하긴, 한국 정부의 입장도 있으니 자네가 말하기는 어렵겠군. 이해하네.”


··· 뭘?


한국 정부의 입장이 뭔데? 내가 알게 뭐야.


하여튼, 속으로 하품을 하면서 그 자리에서 계속 서있는데, 다리도 아프고. 무슨 구실이 없을까 궁리하고 있는데, 드디어 그 구실을 발견하게 됐지.


그 줄리 팜비나스라는 여학생이 문 쪽으로 걸어가는 거야.


“잠깐, 실례.”


나는 함께 있는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얼른 들고 있던 와인 글래스를 내려놓고 그 여자애를 따라갔지. 근데, 실망스럽게도 그애는 문쪽으로 가다가 오른 쪽으로 방향을 틀었어. 게스트용 화장실 쪽으로 말이야.


나는 얼른 그애를 낚아채서 문쪽으로 이끌었지.


“먼저 가려고?”


그러면서 말이야.


그 애는 내게 팔을 잡힌 채 이끌려 가면서 나를 쳐다 봤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하려고 하길래,


“나도 가려던 중이었어. 차 가지고 왔어?”

“... 아니.”

“많이 마신 것 같은데, 내가 태워다 줄게.”


내가 문을 열었는데, 그애는 순순히 그 문 밖으로 걸음을 옮겼지. 내게 야릇한 미소를 짓고 말이야.


많이 마실 와인도 없었어. 그 파티에 온 사람들이 모두 한병씩 들고 왔다고 해도, 마시면 얼마나 마셨겠어. 서너시간 동안 끽해야 네, 다섯잔 정도?. 그러니, 그애가 야릇한 미소를 지었던거야.


“어디 살아?”


내가 차의 시동을 걸고 물었지.


“윌름 스트리트 85”


그애가 내 얼굴을 보며 대답했고.


멀지 않은 곳이었지. 대략 5분 정도?


그 대학 도시는 이쪽에서 저쪽까지 아무리 멀어도 15분이 걸리지 않았어. 게다가, 대학생들이 많이 살고 있던 동네는 학교 주변이어서 길 이름만 대면 어디인지 금방 알 수 있었지. 내가 살던 곳도 그 근처였고.


“혼자 살아?”


내가 물었지. 말하자면, 룸메이트가 있냐는 말이었는데, 주방, 화장실을 공용으로 쓰는 침실 하나짜리는 아무래도 혼자 살 수 밖에 없고, 그보다 넓직한 스튜디오 타입은 친한 친구 두 사람이 함께 쓰는 경우가 많았거든. 월세가 아무래도 부담되었으니까.


나?


혼자 썼지. 그 정도 돈은 있었으니까.


“둘이. 에밀리라고, 집에 갔어. 걔는 주말이면 늘 집에 가. 걔네 집이 여기서 멀지 않거든.”


근데, 그 얘기를 왜 그렇게 자신만만하게 하는지···


그러다가, 문득 내 질문이 오해를 일으킬 수도 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더군. 이 야밤중에 여자애한테 혼자 사냐고 물었으니 말이야.


“너는 어딘데?”

“나는··· 가까워. 근데, 좀 지저분해.”


그것도 해놓고 보니, 좀 그랬고.

그러니, 네가 사는 곳으로 가자, 그렇게 들렸을 거야. 그애 귀에는 말야.


하여튼 차는 윌름 스트리트 85에 도착했어.

줄리 팜비나스는 기대에 가득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고.


할 수 없이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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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 홍콩에서 온 클라라 23.05.31 46 0 10쪽
52 타지마 23.05.29 37 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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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불편한 데킬라 23.05.26 26 0 12쪽
48 나 좀 만나 23.05.25 25 0 10쪽
47 여자의 육감 23.05.24 39 0 9쪽
46 5분만 23.05.23 27 0 9쪽
45 갑작스런 키스, 아침부터 23.05.23 25 0 11쪽
44 다시 만난 정연 23.05.21 25 0 11쪽
43 드디어, 서병률을 만났다 23.05.21 19 0 12쪽
42 나, BJ 간다 23.05.19 24 0 12쪽
41 갑작스런 물속의 키스 23.05.18 27 1 11쪽
40 살사 출 줄 알아요? 23.05.17 27 1 11쪽
39 서이진, 마이애미 23.05.16 31 1 12쪽
38 내 목숨을 구한 것은 우랑바리 23.05.15 29 1 12쪽
» 미시간의 영웅 23.05.13 29 1 13쪽
36 자작나무 숲, 포레스트 23.05.12 29 1 12쪽
35 살벌한 결혼 서약 23.05.11 29 1 11쪽
34 히말라야의 악마 23.05.10 28 1 10쪽
33 신과의 내기 23.05.09 33 1 13쪽
32 우랑바리 노인이 알려준 진실 23.05.08 39 1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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