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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엘 님의 서재입니다.

숨지마. 내겐 다 보여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해리엘
작품등록일 :
2023.04.11 14:30
최근연재일 :
2023.06.12 19:20
연재수 :
60 회
조회수 :
4,020
추천수 :
66
글자수 :
300,371

작성
23.06.01 07:20
조회
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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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9쪽

사표, 나도 써야 되나요?

DUMMY

이십분 쯤 기다리니, 그 여자가 로비에 모습을 나타내더군. 소파에 앉아 기다리고 있던 나는 일어나서 뒤를 따라갔어.


그리고, 그녀가 엘리베이터의 앞에서 버튼을 누르려 할 때,


“잠깐 말씀 좀 나눌 수 있을까요?”


여자가 나를 돌아 봤어.


“누구···?”


이미 겁을 잔뜩 집어 먹은 얼굴이었지.


“어젯 밤 일 때문에 물어볼 게 있습니다. 클라라씨.”


여자의 눈동자가 심하게 흔들리는 걸 보고 나는 더욱 무표정하게 말했지.


“잠깐이면 됩니다.”


그러자, 여자는 더욱 겁먹은 표정으로


“경찰서로 가야 하나요?”


나를 경찰로 착각했던 건데, 다행이었지. 굳이 내 입으로 경찰을 사칭하지 않아도 됐으니까.


“그럴 필요는 없고, 어디 조용한데서 잠깐이면 되는데···”


그랬더니,


“내 방으로 가요. 그래도 되겠죠?”


“물론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그녀의 방으로 올라갔는데, 들어가자 마자 그녀가 묻더군.


“먼저, 하나만 물어볼게요.”


“말씀하시죠.”


“혹시 출국금지같은 거, 하실 건가요?”


“성실하게 진술해주시면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확실하죠?”


“확실합니다.”


대한민국 경찰의 이름을 걸고, 따위의 말은 하지 않았어. 나는 경찰이 아니니까.


나는 테이블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올려 놓았어.


“녹음이 필요한데. 괜찮겠죠?”


그러자, 그녀가 따라 앉으며 물었는데,


“아까 그 약속만 지켜주신다면.”



“약속하죠. 내일 예정대로 홍콩행 비행기를 타실 겁니다. 클라라씨.”


“...”


자신의 비행기 스케줄까지 모두 알고 있으니 그녀는 더 이상의 거짓 증언이 무의미하다는 걸 깨달았을거야. 그저, 빨리 이 밤이 지나고 내일 비행기만 탈 수 있다면··· 그것만 바랬겠지.


“외국인 신분이시고, 직접 범행에 가담하신 것도 아니니까, 출국을 막을 필요도 없습니다, 다만··· 증언이 필요합니다. 이해하시겠죠? ”


“이해합니다.”


그래서, 나는 녹음 앱을 켜고 물었지.


“우선 간단하게 본인의 이름과 주소를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렇게 해서,


나는 그녀로 부터 어젯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두 들을 수 있었는데, 자세한 내용은 생략하겠네.


클라라, 그녀도 재수없게 되어버린 일이었으니까. 출장와서 만난 남자와 잠깐 동안의 일탈을 즐기려 했었던 그녀에게 남편과 두 아이가 있었거든.


나는 그녀와 그 가족을 보호해주고 싶네.


어쨌든,


나는 정중하게, 협조해줘서 고맙습니다, 인사를 하고 그 방을 나왔어.


신고?


물론, 안했지. 그랬다가는 윤성섭이는 어떻게든 또 무마했을 거야. 나는 쓸데없이 내 정체만 드러낸 꼴이 될테고.


그리고 말야. 나는 경찰, 검찰 그런 거, 안믿어.


무엇보다··· 아직 때가 아니야. 더 결정적인 때가 올거야. 지옥으로 밀어버릴 그때가 말이야.




그리고, 이틀 후,


오후에 메시지가 왔어. 서이진 상무에게 경영진단 계획을 보고하기로 약속한 날이었으니 물론 그녀로부터였지.


-혼자?


-네, 상무님.


-준비는 됐어요?


-올라갈까요?


-아니, 다른 사람들 눈에 띌거예요. 집으로 와요. 주소는···


집으로 오라고?


나는 잠시 답장을 미뤘지.


집으로 부른 것에 망설여졌었냐고? 천만에.


물론, 갈 생각이었어. 하지만, 곧 바로 회신하면 좀 없어 보일 것 같았거든. 소위 밀당이라는 거 말야. 그러니까, 곧 서이진으로부터 다시 메시지가 오더군.


-올 거예요?


나는 여유있게 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톡톡톡 두드렸지. 마침표 세개를 말야.


-...


- 왜, 집이라서?


-솔직히, 네.


그랬더니, 그녀가 이모티콘을 보냈어.


-(^^!)


그리고는,


-와요. 명령이니까.


그래서, 나는 마지막 답장을 보냈지.


-일곱시까지 가겠습니다.


비밀이 하나 더 생긴거야. 서이진과 나 사이에.


나는 여섯시 삼십분에 회사를 나왔고, 그녀가 사는 아파트에 일곱시 정각에 도착했어. 그리고, 미리 알려준 비밀번호를 누르고 그 아파트를 들어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있었지.


엘리베이터를 내려 도어 벨을 누르니 양쪽 귀밑 머리가 희끗한, 그렇지만, 흐트러짐없이 단정한 어떤 중년 여자가 열어 주더군.


“어서 오세요.”


뜻 밖이었어. 나는 서이진이 문을 열어줄거라고 생각했거든. 게다가, 건조한 말투며, 무뚝뚝하게 바라보는 그 시선이···


나는 괜히 호수를 다시 확인하는 척 하고 물었지.


“여기가··· 서상무님 댁 맞죠?”


“네, 맞아요. 들어 오세요.”


사람이라기 보다는, 마치 음성을 미리 녹음해둔 로봇 같았어.


나는 그 로봇의 뒤를 따라 들어갔는데, 넓더군. 이 아파트가 비싼 곳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혼자 사는 사람이 이렇게 넓게 살아도 되는 건가 싶게 말이야.


코너를 돌아서니, 거실 유리 창 밖에 보이는 서울의 늦은 저녁 풍경도 좋았고.


“어서 와요.”


서이진이 방에서 나오는데, 회사에서 돌아온지 얼마 안됐는지 외출복 차림 그대로더라고.


그리고는, 그 중년 여자에게 말하기를.


“엄마는 이제 퇴근하셔도 돼요. 오늘도 쌩큐.”


그러자, 그 중년 여인이 나를 한번 스윽 훑어보고는 아파트를 나갔지.


근데···. 엄마?


그 중년 여인을 문 앞까지 배웅했던 서이진이 돌아오면서 말하더군. 내가 엄마라는 소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눈치였거든. 솔직히 당황스러웠었지. 서이진의 생모는 이미 사망했는 데 말야. 분명히.


근데, 저 여자가 엄마라고? 게다가, 퇴근은 뭐야?


“젖엄마예요.”


“... 네?”


“젖엄마 몰라요? 어릴 때 내게 젖을 물려줬던 유모라구요.”


“아··· 네.”


요즘도 그런 게 있나?


“엄마가 몸이 좀 약했었어요. 그렇다고, 늦은 나이, 귀하게 낳은 딸에게 소젖은 먹이고 싶지 않았던 거죠.”


“...”


“어떡할래요? 엄마가 식사 준비를 해놓고 갔는데, 일부터 할까요, 아니면, 밥부터 먹을까요?”


“... 일부터 하시죠.”


“그래요, 그럼.”


나는 서이진의 혈관에 서병률이 부어넣은 돈이 흐를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젖먹고 자란 그냥 포유류 인간이었어.


서이진이 어떤 방의 문을 열고 들어 갔는데, 말하자면 서재였지.


넓직한 방에 컴퓨터가 놓인 데스크가 보였고, 소파 앞에 대형 화면도 있는 것이 일도 하고 영화도 보는 그런 공간이었지.


“앉아요.”


서이진은 대형 모니터 앞의 소파를 가리키고는 막 내린 커피 두잔을 따라 내 옆에 앉았어.


나는 커피향을 맡으며, 오른쪽 주머니에서 칩을 꺼내들고 PC에 꽂아 넣었지.


그때, 사실 나는 두개의 칩을 준비해갔었는데, 왼쪽 주머니에는 스파이 웨어가 들어있는 칩, 오른 쪽에는 그냥 보고서 파일만 들어 있는 칩.


내가 왼쪽 주머니의 칩을 꽃는다면 나는 서이진이 누구와 어떤 메일을 주고 받는지 훤히 파악할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왼쪽 주머니에 손을 넣지 않았어.


왜냐고?


보안.


서이진의 PC라면 분명히 IT 보안팀에서 정기적으로 보안 검색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거든. 그래서, 스파이 웨어가 발견된다면, 당연히 내가 의심받을 수 있었으니까.


보고서 화면이 뜨자, 나는 지난 2주간 준비한 평산 장비 사업부의 경영 진단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어.


“넘어가요.”


대략 70페이지였는데,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 나오면 서이진은 그냥 넘겼는데, 서이진, 다시 봤지. 웬만한 중요 지표는 대부분 숙지하고 있더라고.


근데, 한시간 쯤 되니까, 서이진이 자기 폰을 들고는 손가락으로 뭔가를 몇번 긋고는 내려 놓더라고. 그러더니, 잠깐 중단하고 있는 내게,


“미안해요. 엄마가 식사하기 삼십 분 전에 이걸 하라고 해서.”


“...”


“오븐 작동요. 스테이크를 넣어 놓고 갔거든요.”


스마트 주방기기를 말하는 것 같았어. 스마트 앱으로 작동시키는 주방기기들 말야.


하여튼, 나는 계속 보고를 이어갔지. 삼십분 쯤 더.


“대충 알겠고, 오산에서 제기한 불만사항에 대한 건, 어떻게 할 거죠?”


“가서 현상을 보고 방법을 생각해야죠 그것 때문에 가는 거니까. 그리고, 오산에서 회장님께 제기한 것들만 있지 않을 겁니다.”



“그래요. 좋아요. 근데, 갔다가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하면, 그땐 어떻게 할 거예요?”


서이진이 자못 진지하게 물었는데, 당연한거야. 이 진단 계획의 책임자는 서이진 본인이었거든. 잘못하면 아무 것도 모르는 회장 딸이 괜한 뻘짓 했다, 소위, 미래 리더십에 크게 상처나는 거였으니까.


“사표··· 써야겠죠.”


내가 말했어. 서이진을 빤히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그러자, 서이진이 빙긋 웃어보이며,


“나도 써야 되나요?”


물었길래,


“뭐, 원하시면 그러시든지.”


그랬더니,


훗!


웃더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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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박신호가 앉아 있다 23.06.12 85 0 12쪽
58 달라진 평산 23.06.09 13 0 12쪽
57 친위 쿠데타 23.06.06 24 0 11쪽
56 너, 어쩌려고 그래? 23.06.03 26 0 11쪽
55 징계 대상자는 정해져 있다 23.06.02 33 0 10쪽
» 사표, 나도 써야 되나요? +2 23.06.01 106 1 9쪽
53 홍콩에서 온 클라라 23.05.31 46 0 10쪽
52 타지마 23.05.29 37 0 9쪽
51 하필, 일식 23.05.28 29 0 9쪽
50 나, 너 포기못해 23.05.27 30 0 8쪽
49 불편한 데킬라 23.05.26 26 0 12쪽
48 나 좀 만나 23.05.25 25 0 10쪽
47 여자의 육감 23.05.24 39 0 9쪽
46 5분만 23.05.23 27 0 9쪽
45 갑작스런 키스, 아침부터 23.05.23 25 0 11쪽
44 다시 만난 정연 23.05.21 25 0 11쪽
43 드디어, 서병률을 만났다 23.05.21 19 0 12쪽
42 나, BJ 간다 23.05.19 24 0 12쪽
41 갑작스런 물속의 키스 23.05.18 27 1 11쪽
40 살사 출 줄 알아요? 23.05.17 27 1 11쪽
39 서이진, 마이애미 23.05.16 32 1 12쪽
38 내 목숨을 구한 것은 우랑바리 23.05.15 29 1 12쪽
37 미시간의 영웅 23.05.13 29 1 13쪽
36 자작나무 숲, 포레스트 23.05.12 30 1 12쪽
35 살벌한 결혼 서약 23.05.11 29 1 11쪽
34 히말라야의 악마 23.05.10 28 1 10쪽
33 신과의 내기 23.05.09 33 1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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