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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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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704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07 17:30
조회
43
추천
5
글자
12쪽

운우에게 부는 바람

DUMMY

“아버님 인간계의 현연에게 다녀왔습니다.”


적막해 보이는 정영지 앞 바윗돌에 앉아 먼 곳을 바라보는 상제의 모습은.

마치, 아기 새가 모두 떠난 빈 둥지를 돌아보는 어미 새의 모습처럼 허전해 보였다.


“그래, 이번 생은 인간의 영화를 좀 누려 보아야 할 텐데, 잘 지내고 있더냐?”


“네, 아버님. 이번 생은 신요국의 세 번째 공주로 태어나서, 몸은 허약하지만 영화를 누리며 잘 살아갈 것 같습니다.”


“다행이구나.”


눈길을 돌리지 않으며 대답하는 상제의 목소리가 피곤하게 들렸다.


“그런데 아버님께서 누님에게는 절대 찾아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마침 제가 현연을 찾아 갔을 때 현연이 만나러 간 사람이 인간계의 누님이었습니다. ”


상제가 놀란 눈을 들어 자원을 돌아보았지만, 이내 물기슭에서 첨벙거리는 선학의 움직임 소리를 따라 다시 연못으로 눈길을 돌렸다.


“인연이 제 인연을 찾아 나서는 의지는... 하늘도 어떻게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운명을 거스르는 인간의 의지는 참, 신비롭고 대견하지. 자운과 현연이 만났으니, 사명부의 내용이 다시 쓰여 지고 있겠구나.”


자원도 상제의 눈길이 가는 곳을 따라 연못에서 첨벙거리며 유유히 먹이를 찾고 있는 선학을 쳐다보고 있었다.


“자운은 편해 보이더냐?”


“마존이 마음을 많이 쓴 것 같습니다. 삼두견이 주변에 있음에도, 누님의 바로 옆에 현령계의 선인 까지 한명 붙여 놓은 것 같았습니다.”


' 마존이...

오히려 그 아이를 더 생각하는 건, 천제의 약속보다 마존의 마음 인 것 같은데...'


“그 새 마존이 참 좋은 친구가 된 것 같구나. 고마운 일이긴 하나, 누나와 마존과의 관계를 다른 이 들에게 알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네, 아버님.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마존이나 삼두견이 있는 곳은 어떤 요귀라도 그들 근처에 가까이 까지는 갈 수 없지만, 네가 만약 삼두견이 자리를 비운 틈에 누나에게 가까이 다가 간다면 그들에게 자운의 위치를 알려줄 틈만 만들어 주게 될 것이다.

그러면 잠시라도 마존이나 삼두견이 자리를 비울 때 자운이 위험할 것이니, 이제 인간계에는 당분간 내려가지 않도록 하여라.”


“네 아버님 ... 하지만 궁금합니다. 귀왕이 왜 그렇게 누님을 해하려고 마음을 먹는 것입니까?”


“... 자운의 운명이구나. 운이가 태어나면서 동시에 타고난 마기와 선기의 힘은, 천계에도 반드시 필요하지만 마계에도 큰 힘이 되어줄 수도 있지...!

귀왕은 자운이 가진 힘이 마계에 미칠 영향을 두려워 하는 것이겠지.

자운이 어떤 힘을 쓰게 될지는, 그 아이만의 선택이여야 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의 진심을 선택하기를 바란다. 네 어머니처럼.”


“네?..무슨...”


그들의 어미가 구중천의 황후의 자리보다도 자신의 진심을 선택한 용기 있는 여인이었다는 사실은, 나중에 그들 가족이 모두 한자리에 모이게 되는 날,

그때에는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상제는 기대하고 있었다.


지금 아이들에게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려주게 된다면, 자칫 아이들이 천계에 대한 마음이 돌아서거나, 엄청난 내공을 가진 중천의 가족들이 천계와 적이라도 될 때엔, 구중천 전체에 곤란한 문제만 생길 것이 뻔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맹한 얼굴을 짓고 있는 자원에게, 상제가 아무 말 없이 아비다운 인자한 미소만 띄우고 있었다.



****



인간계에도 구중천에도 속하지 않는,


세상에서 존재한 흔적조차도 없이 구석진 곳에 틀어박힌 회마곡 일대의 어둡고 칙칙한 지하궁전에도 언제 부터인지 모르게...

이 곳에서는 머리카락 한 올 날려 본적도 없던 바람이, 가끔씩 불어왔다.


혼들의 신음소리가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한 운우가, 이를 피하기 위해 선택한 그녀의 구석진 끝 방에도 궁전 바깥에서 불어오는 바람 몇 줄기가 이따금씩 동굴 벽을 타고 스며들어오기도 하였다.


마기를 수련할 때 말고는, 온 종일 거울을 통해 인간계에 남아있는 자신의 모습이라고 믿는 허상과 그녀가 한생동안 사랑한 남자의 슬픈 모습을 보면서 조급한 계획들을 세우고 고치는 것이, 운우가 하루의 모든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었다.


거울 앞에서 남 공자의 모습을 멍하니 들여다보는 사이,

또다시 벽 쪽에서 신선한 바람 한줄기가 타고 들어와, 한동안 정리해 보지도 못한 채 사납게 헝클어진 그녀의 머리칼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깜짝 놀란 운우가 퍼뜩 정신을 차리자, 거울 안에는 귀신처럼 퀭하고 멍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이 올곧게 비춰졌다.

하마터면 거울을 놓칠 뻔 한 운우가 거울을 탁자위에 놓고, 벌레를 보고 놀란 사람처럼 주섬주섬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 방금 그녀의 머리칼을 흩으며 이마 위로 느껴진 감촉을 떠올렸다.


“뭐야, 이런데도 바람이 들어? 모든 게 다 부실하군, 이곳은!”


하지만 어느 틈에 운우의 발걸음은, 혼들이 아우성치고 역한 냄새가 진동하는 통로를 몇 바퀴 돌아 바람이부는 동굴 밖으로 조금씩 더 다가가고 있었다.


“입구가 이렇게 생겼어?”


박쥐 떼가 어지럽게 날아다니는 곳을 지나자 넓은 입구가 드러났지만, 동굴 안이나 바깥이나 별반 다른 것은 없었다.


천정과 벽이 있는 어둠과, 막힘이 없이 더 넓은 어둠의 차이 뿐인 것 같았다.


하지만, 동굴 안은 빛은 있지만 끊이지 않는 비명소리로 항상 시끄러웠고, 밖은 어두웠지만 고요했다.


입구에 서서 잠시 멈칫거리는 사이 또다시 바람 한줄기가 불어오더니, 이번에는 온 얼굴에 부딪히며 물결처럼 부드럽게 퍼졌다.


이상하게 심장이 터질 듯이 두근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운우가 자신도 모르게 동굴 밖으로 몇 걸음 을 나아가 두 손을 뒤로 젖히며, 이어 불어올 바람결에 온몸을 맡길 준비를 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바람은 그녀가 온몸을 밀어젖힌 방향 쪽을 향해 조금 더 크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한번 두 번 불어오던 바람을 맞은 후, 이번 에는 그녀의 오른 쪽에서 불어올 것이라는 예상을 재미있게 해 보기로 하였다.


간만에 흥이 오른 미소를 지으며, 다시 바람이 바뀌어 불어 올 쪽을 향해서 얼굴을 돌려 섰다.


바람이 머릿결을 쓸어주는 감촉이 생각할 틈도 없이 정말 기분이 좋아진 운우가, 또다시 신선한 바람결을 기대하며 온몸을 오른쪽으로 돌렸다.


하지만...

그녀를 향해 불어오던 바람이 갑자기 방향이 바뀌어 지며 그녀의 왼쪽에서 일어나더니, 안그래도 지저분하던 그녀의 머릿결을 뒤에서부터 훅 하고 뒤집어 버렸다.


뒤에서 밀어 올려 진 탓에, 바람결의 기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녀의 머리칼만 사정없이 더욱 난잡하게 헝클어놓고 말았다.

마치 억지로, 물바가지를 뒤집어 쓴 느낌 이었다.


“이런 젠장. 바람이 미쳤나!”


운우가 노여움에 두 주먹을 내리 쥐고, 어둠을 향해 욕이라도 한껏 할 요량으로 목청에 힘을 주고 있을 때였다.


“아...이런. 이런, 젠장!"


가슴이 심하게 요동치고 머리도 심하게 지끈거려 왔다.

양 손으로 관자놀이를 누르며 버텨 보았지만, 이제는 속 까지 메슥거릴 지경이었다.


“... 신이 공주는 우리와 다르게 인간의 몸입니다. 이곳은 땅 아래 사방에서 올라오는 독 기운 때문에, 인간이 오래 버티기에는 힘든 공기입니다.

어서 안으로 들어가시죠.”


귀왕이 적어도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아녕의 목소리였다.


“당신이 왜 여기 있죠?”


치부를 들킨 사람처럼 앙칼진 목소리로 운우가 투덜거렸다.


“신이 공주가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걸어 나가기에, 걱정이 되어서 따라왔습니다.”


“홀리긴, 무슨 !”


운우가 휭하니 돌아서 몇 걸음을 나아가는가 싶더니, 또다시 어지러운지 동굴 입구의 벽에 잠시 손을 기대고 서서 머리를 몇 번 흔들고 난 후에야 다시 꼿꼿하게 선 차가운 모습으로 동굴 안쪽을 향해 걸어갔다.


아녕이 그녀가 기대었던 벽 쪽으로 걸어가 아래를 보았다. 그녀의 옷자락에 매여 있던 매듭 끈 이었다.


운우가 사용하는 끈의 모양은 항상 독특한 모양으로 매듭이 되어있었다.

두 개의 나비 모양이 아닌, 언제나 세 개의 날개 모양으로 봉긋하게 매듭이 지어져 있었다. 얇게 하늘거리는 하얀 천 조각이 거친 동굴 벽에 긁히며 옷 천에 매달려 있던 낡은 매듭이 아래로 떨어진 모양이었다.


한참을 바라보고 섰던 아녕이, 살며시 매듭 끈을 주워 소매 단 안으로 넣었다.



****



부명대.


운우의 뽀얗고 탐스럽게 굴곡진 이마선위로 떨어진 몇 올의 검은빛 머리칼이, 운우의 뺨 위를 간지럽게 건들고 있었다.


선풍의 굵은 손길이 몇 올의 머리칼을 넘겨줄 요량으로, 그녀의 얼굴 쪽으로 손을 뻗치려 할 때였다.


“하지 마요! 있다 내가 할 거에요.”


“알았소. 그래도 간지러울 텐데.”


바둑판에서 한동안 눈을 떼지 못하며, 수가 잘 보이지 않는지 운우가 투정을 부리고 있었다.


그녀의 얼굴이 화를 참느라 붉은 홍조로 물들 즈음, 자세히 보니 이마 끝으로 작은 땀방울까지 맺혀가고 있었다.


선풍이 짓궂게 웃음을 흘리더니, 보이지 않게 한쪽 손을 바둑판 밑으로 살짝 넣어 운기를 시작했다.


그녀의 오른쪽에서 신선하고 보드라운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집어 들었던 바둑알을 손가락 사이에 끼운 채로 시원한 바람을 맞던 운우가, 이렇게 속 깊은 남자를 향해 고맙다는 듯이 귀여운 눈웃음까지 지어보였다.


머리칼을 어루만지며 부드럽게 넘겨주는 느낌에 수줍은 듯이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다음 바람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이번에는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리며 턱 선까지 살짝 들어올리고 있었다.


역시 기대를 져 버리지 않고 시원한 미풍이 오른쪽 어깨너머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불어오는 바람은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며 바람 길을 바꾸어 그녀의 왼쪽에서 휘감아 오기 시작했고,

미리 얼굴을 오른쪽으로 돌린 탓에, 이번에는 뒤쪽으로 감겨 올라온 바람이 그녀의 풍성하게 늘어뜨린 머리칼을 온통 거꾸로 뒤집어 올리며, 뒤죽박죽 엉망으로 헝클어 버렸다.


약이 오른 운우가 거의 울먹거리며 선풍의 이름을 외치며 그를 쏘아보았다.


대책 없이 온통 헝클어진 머리칼 안에서 믿었던 남자를 노려보던 여인의 모습이 참 귀여웠고, 그 모습 때문에 재미삼아 몇 번이나 써먹던 장난질이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속았으면서도, 선풍의 바람이 불어오면 또다시 잊어버리고 운우는 그의 바람을 맞는 것을 참 좋아하였다.




“운우, 어디에 있든... 당신의 생사화가 밝게 피어있는 한, 끝까지 당신을 찾을 거요.

만일, 생사화가 져버린다 해도... 그래도 끝가지 당신을 찾을 거요.”


하루의 대부분을 선풍은, 운우가 기억할 그의 바람을 만들어 부명대에서 온 세상 구석구석으로 선력을 다해 날려 보내고 있었다.


“세상이든 세상이 아닌 곳이든, 내 마음을 보낼 테니, 기억해 주시오. 이 바람을..."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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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4 5 12쪽
62 다시 만남 +2 22.09.06 37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39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8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7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3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7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0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38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5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0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38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1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3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1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6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1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1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5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1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0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0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5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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