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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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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711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8.17 17:30
조회
41
추천
6
글자
12쪽

보연의 거래

DUMMY

한 발씩 깊숙이 들어 갈수록, 지옥의 소리는 더큰 울림으로 주변을 가득 에워싸고 있었다.


그 소리에 한결 기분이 좋아진 듯한 보연이, 아침 들판의 새소리에 취한 소녀처럼 허리 뒤춤으로 모아쥔 손으로 깍지를 낀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타박타박 걷기 시작했다.


‘역시 귀왕만이 마계의 진정한 핏줄인거야! 이런 자연스러움이 오히려 마계에는 없으니, 집인데도 항상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거지...'


밝은 표정의 보연이 생각에 취해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나체귀가 보연을 향해 돌아보며 삐죽거렸다.


“남의 집에 들어오면서 저렇게 거드름을 피우다니, 배짱 한번 두둑 하구나!”


나체귀의 음성이 어둔 공간으로 퍼지자, 새까만 박쥐 떼들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처럼 허공을 휘감고 지나갔다.


박쥐 떼들이 일으키는 거친 바람결에 보연이 잠시 눈을 감았다 뜨는사이, 벽 안쪽으로부터 새어 나오는 옅은 불빛을 따라, 나체귀가 모퉁이를 돌아가고 있었다.


놓칠 새라, 나체귀의 뒷모습을 쫓던 보연도 얼른 모퉁이를 따라 급하게 돌아섰다. 그리고는 바로 눈앞에 맞닥뜨려진 모습에 적잖이 놀란 듯이 자리에 그대로 서 버렸다.


잠시 당황한 표정과 함께 이를 바라보던 보연의 눈빛에는, 진정한 지옥의 모습을 마주한 마귀의 모습처럼 희열이 가득 차오르고 있었다.


허공에 매달린 커다란 새장 안에서, 아무렇게나 함부로 구겨 넣어진 채 뒤엉킨 모양은 인간들 이었다.


아직 인간의 모습을 벗어나지 못한 갓 탈혼 한 혼령들 이었지만, 죽음이후 중천으로 오르는 빛의 기둥인 호선로를 선택하지 않은 이상, 인간 세상에 갇혀진 채로 어느 누구 하나 찾아주는 이 없이 세상을 떠 돌아야 하는, 비운의 귀신이 되어야 하는 존재 들이었다.


귀왕은 죽음 이후, 아직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탈혼 한 혼령들을 규령 선관들의 눈을 피해 잡아들이고, 그들의 군대를 키우는데 이용하고 있었다.


“나체귀신, 저렇게 많은걸 도대체 어디서 가져 온 거야?”


보연이 호기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새장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호선로 주변을 잘 살피면, 선관들의 눈을 피해 달아나는 어리석은 혼령들이 있기 마련이잖아. 몰랐나?”


하얀 가면으로 거의 가려져버린 얼굴에서는 어떤 표정도 드러나지 않은 채, 얇은 입술만 성의 없이 옴짝거리고 있었다.




중천의 천유원으로 연결된 빛의 기둥인 '호선로' 안으로는, 빛 송이로 변한 무수히 많은 영혼들이 작은 나비의 날갯짓처럼 파득파득 바람을 타고 앞을 다투어 위를 향해 올라갔다,


하지만 몰래 숨어서 머뭇거리던 혼들은 결국 천유원으로 이르지 못하고, 만약 규령 선관들의 눈에도 띄지 못하면 한동안 위험한 세상에서 떠돌다가 이곳으로 잡혀오곤 하였다.


“빨리 오지 않고 뭐하나!”


나체귀가 한 번 더 투덜거리자, 정신이 번뜩 든 보연이 아무 말 없이 나체귀를 따라붙으며 눈빛을 빛내고 있었다.


잠시 후 습하고 무거운 느낌이 드는 어두운 공간 속으로 나체귀가 들어서며 걸음을 멈추자, 함께 멈춰 선 보연이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천장이 높고 한쪽에 거대한 석물 의자가 삐죽이 솟아있는 것이, 분명 귀왕이 있을법한 대전의 모양새라고 생각하며 보연이 낮게 고개를 까닥거리고 있었다.


“범유의 딸이라고?”


갑작스런 울림에 보연이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살폈다.


‘어디야? 어디서 소리만 나는 거야?’


삐죽이 솟은 등받이가 있는 석물의자 위로 숨겨졌던 그림자가 조금씩 꿈틀거리더니, 짐승의 것처럼 하얗고 붉은 핏빛이 감도는 둥글고 커다란 안구가 열려졌다.


검은 옷을 두르고 지저분한 머리칼을 아무렇게나 늘어뜨린 의자의 주인이, 눈알이 튀어나올 듯이 한동안 보연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리석고 무모한 것을 보니, 범유의 딸이 맞긴 하겠구나 !"


동굴 안을 커다랗게 울리며 내뱉는 거친 말투에, 어깨가 들썩거릴 만큼 보연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꼿꼿하게 서서 두 손을 모야 올리는 모습속엔 당돌함이 가득 묻어나고 있었다.


“귀왕을 뵙습니다. 하지만...!”


잠시 정적이 흐르고, 보연의 말에 귀왕이 호기심을 드러내었다.


“하지만... 이라고?"


“제가 비록 범유장군의 자식이기는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기위해 배만 빌렸을 뿐, 아비가 선택한 길이라고 해서 저 또한 같은 선택을 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잠시 입술을 질끈 물던 보연이 다시 얼굴을 들어 귀왕을 주저 없이 쏘아보고 있었다.


“오히려, 아비의 잘못된 선택의 그늘에 가려 매일 분노에 갇혀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 호...?”


귀왕이 재미있다는 듯이 보연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의자 깊숙이 몸을 들이밀고 있었다.


“아비는 마존을 선택하였지만, 그 선택의 대가가 무색하게 저는 마계의 지옥에서 가장 악독한 마귀들을 지키는 일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래... 보아하니, 네 성정으로 미인 그놈에게 지금까지 목이 삐뚤어지지 않고 붙어있는 것만으로도 큰 다행인 것 같기는 하구나!

그나마 네 아비 덕을 보고 있는 중이 아니겠느냐?"


옆에서 함께 서있던 나체귀와 아녕이 귀왕의 반응에, 킥킥 거리며 웃음을 참고 있었다.


한편, 나체귀는 한 손으로는 연신 입술을 만지작거리며, 보연을 데리고 온 자신에게 불똥이 튀지나 않을지 조급해 하는 표정까지 짓고 있었다.


“네 아비가 내게 한 일들을 알면서도 이곳까지 왔으니, 본 왕이 만족할 만한 일이 아니면 진즉에 없어 졌을지도 모를 그 목을, 대신 내가 속 시원히 따 주도록 하겠다.”


보연의 얼굴빛이 하얗게 질린 채 뒤로 한 발짝을 물러서자, 땅에 끌리는 그녀의 발소리가 동굴 천장을 돌아 거칠게 울리고 있었다.


작은 소리도 피해가지 못할, 예리한 어둠속이었다.


‘그래 ... 귀왕. 네 욕심과 심보는 익히 알고 있지!’


다시 얼굴빛을 정리한 후, 보연 또한 짐승 같은 눈빛을 빛내며 눈앞의 귀왕을 올려보았다.


“ 정심검의 주인이 나타난 것 같습니다!"


“... 같습니다...라고? 그럼 어떻게 확신하지? 본 적도 없단 말인가?”


초조해 하던 나체귀가 대신 나서며 보연을 몰아세웠다.


나체귀를 한번 째려본 후 보연이 퉁명스럽게 그에게 대꾸하였다.


“이런 귀하신 분을 만나는데, 확신도 없이 들이대나? 귀왕을 어떻게 보고!”


나체귀의 입이 떡 벌어지며 대꾸할 말을 찾는 사이, 귀왕의 음흉하고도 커다란 웃음소리가 사이를 비집고 울려오기 시작했다.


“그래, 지 아비를 닮지 누굴 닮겠느냐! 저것을 보아하니, 범유의 한편에도 잔인한 마성이 있었던 건 분명했던가 보군. 하하 !”


보연이 나체귀를 향해 입을 삐죽해 보이더니, 다시 정색을 하며 귀왕을 바라보았다.


“ 중천의 그년이 다쳤을 때, 마존이 자신의 기운을 직접 운기 해 그년을 치료하는 동안, 정심 이명검이 그년의 몸뚱아리 위에서 만월을 만들어 기운을 보태고 있었습니다.

정심검은 주인이 없으면, 세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는 얘길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광채까지 뿜으며 아주 쌩쌩 돌아가더라구요!“


여기까지 이야기를 마친 보연이 나체귀를 쳐다보았다.


“어떠냐?”


하지만 귀왕의 눈치를 살피던 보연이, 금새 숙연해진 모습으로 다소곳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


“그년은 상제의 어미 없는 딸, 자운 이라고 합니다. 태자인 자원과 쌍둥이로 해명연에서 튀어 나온 걸로 알고 있습니다.”


보연이 잠시 뜸을 들이는 사이, 귀왕의 입가에 큼직한 웃음기가 번지기 시작하였다.


“이거 참, 일이 재미있게 돌아가는구나! ”


귀왕이 신이 난 표정으로 아녕을 돌아보았다.


“아녕, 미인의 정심검의 싹도 끊어 버리고, 잘 하면 상제의 궁소검도 우리차지가 될 수 있을 것 같구나! 네 생각엔 어떠하느냐?”


많은 생각이 담긴 아이의 작고 검은 두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나기까지 하였다. 귀왕을 바라보던 아녕이 대답하였다.


“소신, 귀왕께 아룁니다. 중천의 공주가 많은 일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열쇠인 것은 분명하지만, 섣불리 건드리게 되면 같은 적을 품은 적끼리 서로의 동맹이 되어, 오히려 넘어야 할 고비가 더 커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신중하게 움직이셔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


아녕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던 귀왕이 아쉬운 표정을 남기며 아녕을 바라보았다.


“...그래. 그럼 너는, 어찌하면 좋겠느냐?”


“아직 중천의 공주를 없애기에는 상제의 반응에 위험부담이 크니, 일단은 우리 쪽에서 비밀리에 먼저 잡아온 이후에 마계와 상제의 심기를 흐트려 놓는 것부터 시작하심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잠시 후, 아녕에게 대할 때와는 사뭇 다른 표정으로 귀왕이 나체귀를 돌아보았다.


“상제의 딸년이 검술이 뛰어나다고 하니, 실력이 괜찮은 놈으로 골라 귀진검을 보내어라.

상제의 딸년을 죽이지는 않더라도 정심검을 다룰 수 없도록 귀진검으로 선기를 다 끊고 회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알겠습니다 귀왕 !”


나체귀의 대답이 끝나기 전에 귀왕이 아녕을 다시 바라보았다.


“ 어떻게 잡아올 수 있겠느냐?”


“귀신들의 말에 의하면, 그믐날 밤이 되면 인간계에 남아있는 요마귀들을 사냥하러 주로 자원과 함께 나온다고 합니다."


나체귀가 아녕을 대신해서 먼저 대답에 나섰다.


실눈을 뜬 채 나체귀를 잠시 바라보던 귀왕이 만족한 듯이 호탕한 웃음을 사방으로 뿌리기 시작했다.


“그래, 그래... 세상의 기운이 본 왕 쪽으로 기울어지는구나. 하 하 !”


잠시 후, 귀왕이 그의 앞에 서있던 보연을 쳐다보았다.


“그래, 범유의 딸. 원하는 게 무엇이냐?”


기다렸다는 듯이 보연의 얼굴에 기뻐하는 표정이 가득 찼다.


“귀왕께서, 마계를 차지하시는 거죠!”


“뜻밖이군.”


또다시 호기심 가득 한 눈빛으로 귀왕이 보연을 바라보았다.


“그거야, 네가 원하지 않아도 그렇게 될 일인 것이고... 그러면, 네가 얻을 것이 있는 것이냐?”


함박 웃음을 띠며, 수줍게 보연이 말을 이었다.


“마계는 귀왕께서 쓸어버리시고, 전 지금의 마존과 함께 현령계로 보내 주시면 조용하게 함께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하하하...! 마계를 쓸어버리라는 이유가, 고작 이런 여인의 질투 때문이라니! 미인 녀석이 들으면 꽤나 볼 만하겠구나!"



“대신, 이번 기회에 연꽃에서 태어났다는 그 모자란 년을 반드시 없애 주셔야 해요.

참, 그놈의 시커먼 똥개도 같이 좀 죽여주시구요!"


귀왕이 핀잔이 섞인 투로 보연에게 물었다.


“신물이 된 혼들이 모이는 현령계에는 따로 규칙도 존재하지 않는 자유로운 곳이기는 하지.

하지만, 네가 그 곳의 질서에 따르지 않고 다른 혼들의 지목을 받으면, 겨뤄볼 경황도 없이 그곳의 땅에 발도 디딜 수 없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기는 한 건가?”


보연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대답하였다.


“지금처럼 제 심보를 건드릴 상대만 곁에 없다면, 저도 얼마든지 선녀처럼 구는 것도 가능하죠. 그리고 그건 나중에 천천히 적응하면 되니까, 아무 문제는 없을 겁니다. 귀왕.”


보연의 말투는, 참 곱지않고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힘이 들어 있는 것 같았다. 옆에 서 있던 나체귀와 아녕도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녀를 내내 쳐다보고 있었다.


만황지의 전투이후, 이제 거의 요귀의 형상으로 바뀌어 진 귀왕이 보연을 향해 무시한 눈을 부릅뜨며 말을 이었다.


“ 하지만 만일, 지금 너의 이야기가 모두 추측일 뿐이라면, 이후에 넌, 아마 죽는 것이 소원인 채로 살게 될 것이다.

앞으로 필요한 일이 있으면 마귀에게 이야기를 심어서 용마천으로 보낼 테니, 일러주는 대로 움직이도록 하여라. ”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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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마존 형님 +2 22.09.08 43 5 11쪽
63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4 5 12쪽
62 다시 만남 +2 22.09.06 37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39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8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7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3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7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0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38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5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0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39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1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3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1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6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1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1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5 6 16쪽
» 보연의 거래 22.08.17 42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0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0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5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5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3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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