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해품글 님의 서재입니다.

만월검의 연인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로맨스

완결

해품글
작품등록일 :
2022.07.03 19:15
최근연재일 :
2022.10.09 17:30
연재수 :
95 회
조회수 :
5,695
추천수 :
553
글자수 :
531,864

작성
22.09.06 17:30
조회
36
추천
5
글자
10쪽

다시 만남

DUMMY

뒷짐을 진채로 대답 없이 한동안 운해만 바라보던 성운이 선풍을 향해 돌아선 눈길 속에는,

그늘이 짙게 깔린 탓에 피곤함이 가득해 보였다.


운우가 마시던 차라도 간절할 만큼 입술이 메말라 오고 있었지만, 마른침을 삼키며 꺼낸 성운의 목소리는 쉰소리가 섞인 채 많이 갈라져 있었다.


“... 얼마전 천제와 전신과 함께, 운우 상신에 대해 논의를 하였습니다!"


세상의 바람을 부린다는 존귀한 상신의 존재인 그가, 두려움에 떠는것 같았다.

태자를 바라보는 선풍의 눈빛에 불안함이 깔리기 시작하고, 그런 상신의 모습이 너무 초라해 보인다는 생각마저 성운에게는 들고 있었다.


거기에 다시 일격을 가해야 한다는 성운의 마음은, 요동치는 양심으로 불편한듯 말끝이 살며시 떨리고 있었다.


“아마도 운우상신은 귀왕에게 납치가 된 것 같습니다.”


“네, 제 생각에도 그런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 천제께서는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십니까?”


어지러운 하늘의 천둥 번개를 바라보는 인간들처럼, 또다시 두려움이 가득서린 선풍의 눈길이었다.


그의 심정을 의식한 성운이 선풍의 눈길을 피한 채, 말을 이었다.


“ 자성의 별이 천기를 누르는 날이 ... 귀왕의 군단이 천계와 마계를 노릴 수 있는 유일한 날이겠죠.

그들이 지금껏 납치한 선인들의 선기를 이용해서 천계의 문을 열려고 하겠지만, 그들이 천계의 문을 넘을 수 없도록 전신이 천해문 앞에서 그들과 맞서 격전을 벌일 것입니다.”


"네... 물론... 그러실 테죠!


불안한 표정과 다르게, 천계의 상신과 태자의 대화는 지극히 냉철하고 치우침이 없었다.


“...하지만, 귀왕이 이미 마음을 빼앗은 운우 상신을 앞세우게 된다면, 천계와 구중천은 큰 위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여전히 선풍의 표정을 살피던 성운이 조심스럽게 내뱉은 말이었다.


“... 네, 그럴 것입니다. 소선들의 선기를 모아 천해문을 열려고 하는 것보다 천궁으로 들어오려는 상신의 마음하나만 있다면, 천해문은 바로 문을 열어 줄 테죠.”


선풍 또한 터질 듯이 깨문 입술을 펼치며, 나즈막한 소리로 대답을 이어갔다.

성운이 검붉게 부풀어 오른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네, 그래서... 정말 운우상신이 마음을 잃고 천해문 앞으로 나서게 된다면... 어쩌면, 상신의 희생이 필요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될지도 모를 것입니다.”


“천제께서 보내셨습니까?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으라는...”


냉철하던 선풍의 숨결이 드디어 불안하게 들쑥 거렸다.


" ... "


그의 거친 숨결을 외면하지 못한 채 바라보던 성운의 숨결도 조금씩 조급해 지고있었다.


“아닙니다. 제가 먼저 우신과 각별한 사이이신 풍신을 찾아뵙고 말씀을 드리기 위함입니다...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


조금 전 성운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보다, 조금 더 멍해진 모습이었다.


“그런 일이 생기기 전에요...?”


선풍이 성운을 바라보았다.


“제 생각엔, 운우상신은 천계의 상신으로 마음이 깊으신 분이십니다.

아무리 귀왕이 그분의 마음을 뺏고 마성으로 채우려 하려라도, 운우 상신은 모든 걸 다 비우실 분이 아니죠.

분명히 천계와 풍신의 마음만큼은 남겨두실 거라 생각합니다.”


“운우가... 그렇겠죠...?”


마치 힘든 시간을 버텨온 위로라도 받는 듯이, 선풍의 목소리도 갈라지고 있었지만 낮게 평온함도 함께 느껴지고 있었다.


“운우 상신에게 풍신의 마음이 느껴 질 수 있도록, 세상 모든 곳으로 빈틈없이 풍신의 바람을 날려 보내세요.

어느 곳에 머무르고 있을지 모를 운우 상신을 위해서 작은 구멍이라도 있다면, 뚫고 지나갈 수 있도록 어떤 구석구석까지도 바람결이 닿아지도록 보내세요.

운우상신 이라면, 풍신의 바람을 그냥 지나쳐 버리진 않을 거예요.

그녀의 기억을 되살려서, 천해문 까지 오더라도 더 큰 일은 생기기 않도록 해 보아야 하지 않겠어요?”


부명대의 짙은 운해가 천공에서부터 뻗어오는 햇살에 구멍이 뚫리며 조금씩 흩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걷혀진 구름 사이로 인간계의 모습이 신선들의 눈 속으로 들어서자 선풍의 입가에 낮은 미소가 번지고 있었다.



****



선왕부의 높은 담과 지붕 아래로 어둠이 고이고, 이곳저곳에서 분주하게 저녁 풍경을 준비 하는 사람들이 곳곳에 등불을 켜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한껏 생동감 있게 분주하던 시간이 금방 지나가고, 거짓말처럼 세상은 꺼져가는 등불과 함께 빠른 속도로 무겁고 어두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세상 만물의 끝과 시작 사이에는 언제나, 순결할 만큼 맑고 고요한 어둠이 최적의 시간이고 장소인 것 같았다.

그렇게 어둠은, 또 다음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 인간계 사이로 차분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지붕위에 올라가지 않는 밤이면,

인간세상에서의 자운은 높다란 지붕이 올려다 보이는 창가에서 졸음이 몰려올 때가지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연수가 들려주는 신기한 갖가지 모양들의 늙은 도사들의 이야기 속에서, 기억이 끊어 질 때까지 봉순이와 장난질을 치다 잠이 들곤 하였다.


달빛이 귀한 그믐밤, 다소곳이 웅크리고 잠이 들었던 봉순이가 작은 귀를 쫑긋쫑긋 하더니 부스스 일어나, 창틀에 기대어 잠이든 초요에게 다가갔다.


열려진 창문으로 지붕 위를 바라보며 갸웃갸웃 하던 강아지가 짖으려는 듯 목을 움츠리자, 검은 옷의 남자가 웃는 모습으로 봉순이를 향해 하얗고 긴 손가락을 입술에 갖다 대었다.


봉순이 다시 자리에 앉아 몸을 웅크리자, 검은 옷의 남자가 붉은 단옥피리를 입술에 가볍게 대고 맑은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자운의 영체를 모아 혼에 넣을 때. 그녀가 가진 선요검과 월령을 마존이 거두어 간직하고 있었다.


인간의 귀에 들리지 않는 월령의 맑은 음은, 주변의 귀신들에게는 그들의 목을 졸라매는 힘겹고 무서운 소리로, 짐승들에게는 아름답고 편안한 위로로 들려지고 있었다.


자영의 모습이 담긴 창이 보이는 지붕위에서, 밤사이 줄곧 자영의 잠든 모습을 들여다보던 마존이 인간계의 하늘위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월령과 함께 그녀의 밤을 지키고 있었다.



****



“아버님 부르셨습니까?”


초요가 별채로 들어서자,


이른 봄꽃처럼 화사하고 연약해 보이는 여인이 봄 색처럼 아스라한 연 분홍빛 치맛자락을 바닥에 길게 늘어뜨리고 앉아있었다.


터벅거리며 안으로 들어오는 초요를 향해, 유난히 맑아 보이는 미소를 띠우며 여인이 앙증맞게 한 손을 들어 흔들어 보였다.


“초요야, 해윤 공주이시다. 인사 드려야지.”


주선왕이 마주앉아 있는 여인을 가리키며 뿌듯한 얼굴로 초요를 바라보았다.


“초요구나 ! 정말 많이 자랐어. 오라버니께서 항상 침이 마르도록 자랑하실 만 하네요.”


“어릴 때에는 고모 라고도 하지 않고 언니라고 하면서 그렇게 가깝게 지냈는데, 한동안 궁 밖을 나오지 못한 사이에, 모두가 변하는 동안 저 혼자만 예전의 모습 그대로 남은 것 같아요.”


초요가 어색하게 목 인사를 건넨 후, 한쪽 의자에 다소곳이 앉아 여인을 바라보았다.

이상하게도 친근감이 느껴지는 여인에게 초요도 환한 웃음으로 답례를 한 후, 기분이 좋아지는 그녀의 모습을 한동안 가만히 앉아 쳐다보고 있었다.


“그동안 네가 아파서 누워있는 사이에 모두가 많이 걱정을 하였다. 다행이도 네가 이렇게 자리를 털고 일어나 줘서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몰라.”


하지만 이내 주선왕은 그늘진 얼굴로 문밖으로 보이는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며, 또 다른 생각에 빠진 듯이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인이 먼저 말을 꺼내었다.


“제가 일어나고 나니, 언니가 보이지 않았어요...

제가 일어났다는 기쁨보다 언니가 대신 저에게 삶을 주고 떠난 것 같아, 다시 깨어난 것이 모두에게 얼마나 미안하게 느껴졌는지 몰라요.”


“무슨 말이냐. 각자의 준비된 삶대로 살다 가는 것을...!

신이 공주를 모두가 마음 아파하는 이유는, 생전에 그 아이가 보여준 용기와 남 공자와의 애틋한 사랑 때문이지.”


그의 짙은 눈썹이 슬픔을 떨치려는 듯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생전에 백성을 위해 조공에 대한 조건으로, 말도 안 되는 혼인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받아들였던 착하고 용감한 아이였어.

다행히 그 일이 무사히 넘어가고, 결국은 신이가 마음에 품었던 남 공자와 혼례일 까지 잡고 행복해 하던 모습이 눈앞에 선한데.

혼례를 며칠 앞두고 세상을 떠나버렸으니...

남 공자도 요즘 큰 상처를 입은 탓에 집 밖으로 잘 나오지 않고 지낸다지. 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먹먹해 지는구나!”


주원 공주에 대한 이야기는 마치 영웅담처럼 예사롭지 않게 들렸고, 초요도 그들의 이야기 속의 주인공인 신이공주의 이야기에 함께 빠져들고 있었다.


“이렇게 쾌차하게 되었으니, 앞으로 왕부에 자주 들러서 우리 초요와도 자주 만나고 하면 좋겠구나!

이참에, 초요도 너처럼 아름다운 여인이 되는 법을 좀 알려주고 말이지. ”


“오라버니도 참... 제가 보기엔, 제가 오히려 초요에게 사람이 맑아지는 방법을 좀 배워야 하겠는 걸요.”


“하하, 그건 내가 잘 안다. 우리초요처럼 걱정 없고 생각이 없으면, 겨울 시냇물처럼 금방 맑아질 수 있을 거다. 그렇지? 초요야, 하하 !”


모두가 큰 소리로 웃는 바람에, 멋쩍어 하던 초요가 살이 오른 볼 살을 통통히 불리며 입술을 뾰족이 내민 채 뽀로통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2

  • 작성자
    Personacon 이웃별
    작성일
    24.01.16 21:58
    No. 1

    운우가 선풍의 마음을 느끼도록 세상 모든 곳으로 풍신의 바람을 날려 보내세요.
    태자도 너무 멋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4 해품글
    작성일
    24.01.17 00:53
    No. 2

    별님이 오셨네욤~~^^
    마음없이 함께한 일상들의 기억은, 참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서로를 이어주는 큰 힘이 되는것 같아요~~^^

    찬성: 0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만월검의 연인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66 초요의 계획 22.09.10 40 6 12쪽
65 상심석의 응답 22.09.09 37 5 11쪽
64 마존 형님 +2 22.09.08 43 5 11쪽
63 운우에게 부는 바람 22.09.07 43 5 12쪽
» 다시 만남 +2 22.09.06 37 5 10쪽
61 상심석 +2 22.09.05 39 5 12쪽
60 태마경의 위력 +4 22.09.04 38 6 12쪽
59 귀신 잡는 말 +2 22.09.03 37 6 12쪽
58 초요의 손님 22.09.02 33 5 11쪽
57 위기의 운우 +2 22.09.01 44 5 14쪽
56 자운 돌보기 22.08.31 38 5 14쪽
55 마존과 연수의 거래 +2 22.08.30 36 4 12쪽
54 무모한 정 22.08.29 40 4 12쪽
53 보연의 언니 22.08.28 38 4 12쪽
52 운우의 흑화 +2 22.08.27 45 4 13쪽
51 자운의 부활 22.08.26 40 5 12쪽
50 정심검의 또다른 여인 +2 22.08.25 38 5 14쪽
49 귀진검의 공격 22.08.24 41 5 11쪽
48 염라옥의 흐물요괴 +2 22.08.23 43 4 12쪽
47 귀왕에게 잡힌 운우 +2 22.08.22 41 4 11쪽
46 전신과 마존의 악연 +2 22.08.21 46 5 13쪽
45 사라진 운우 22.08.20 41 5 12쪽
44 망천강의 손님 22.08.19 41 6 13쪽
43 그믐밤의 연인들 +2 22.08.18 45 6 16쪽
42 보연의 거래 22.08.17 41 6 12쪽
41 애매한 고백 +2 22.08.16 40 6 12쪽
40 귀왕에게 향한 보연 22.08.15 40 5 12쪽
39 슬픈 마존 +2 22.08.14 45 5 16쪽
38 촉수귀의 습격 22.08.13 44 5 13쪽
37 조용한 위기 +4 22.08.12 53 5 13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